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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괴도형사 AU

이름은 한국 더빙판 이름을 가져와 썼습니다

(유명한 / 노애리)

 

 

 

 

 

BGM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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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 あの花 OST - Before it Gets Dark
지하 감옥 :: WONDER EGG PRIORITY OST - Innocent
무도회 :: 恋は雨上がりのように OST - 月に願いを スーパームーン 
무도회 추격전 :: 明日のナージャ OST - Kuro no Bara
묘지 :: ひぐらしのなく頃に解 OST - Mitsudan
초상화의 굴 :: 氷菓 OST - 解決ながらも暗然
탑 :: 空の青さを知る人よ。OST - Aoi's Decision
부서진 계단 ::  Parasite OST - Busy to Survive 
보름달의 입구 :: 千と千尋の神隠し OST - ふたたび (Piano ver.)
엔딩:: JUJU - こたえあわ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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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24
 
평화로운 밤입니다.
 
내내 그랬듯이, 이 도시에는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시민들은 도시의 안전을 수호하는 경찰에게 감사하고, 그 경찰 중에는 당신도 있습니다.
 
이제 생활안전과로 이동한 것도 옛날 일이 되었다고 할 만한 정도의 시간이 흘렀네요.
 
많은 것들이 바뀌고 변해갔지만,
 
한 가지 여전한 것은 그날 이후로 당신은 팬텀 블루 로즈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놀이공원의 화려한 불꽃놀이와 퍼레이드 속에서 작별을 고한 괴도는 안녕, 이라고 말한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괴도에 대해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일상을 휘저어 놓았던 괴도가 사라졌으니, 마침내 평온한 일상을 즐길 수 있겠지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아직도 괴도를 종종 생각하나요? 팬텀 블루 로즈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종적을 감춰버린 괴도에게 당신은 어떤 마음을 품고 있고,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요?
 
유명한:(만나면 한 대 쥐어박아야지. 다 알면서도 또 남겨진 사람으로 만들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래도, 솔직히, 이제 탓하는 것도 지쳤다.)
 
새것으로 말끔하게 교체한 창문 유리가 도시의 야경을 비춥니다.
 
환한 보름달이 떴지만, 달을 등지고 자신만만하게 대사를 읊었던 어떤 이는 더 이상 이곳에 없습니다.
 
그래요. 이 부재도 익숙하기만 합니다.
 
유명한:
기준치: 40/20/8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반짝, 반사된 빛이 당신의 시선을 끕니다. 서랍이 조금 열려 있네요.
 
달빛이 서랍 안쪽의 뭔가에 반사된 것 같은데……
 
유명한:……. (뭐야. 서랍을 드르륵 당겨 열었다.)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죠. 지난번이라고 해도, 아주 오래전이지만요.
 
서랍을 들여다보면 푸른 장미꽃 귀걸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괴도와의 질긴 악연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떠나버린 괴도가 놓고 간 마지막 유품(그가 죽었다는 뜻은 아니지만요)처럼 느껴져요.
 
이제 이 귀걸이마저 없으면, 괴도와의 인연을 증명할 만한 건 어디에도 없네요.
 
귀걸이는 여전히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습니다.
 
유명한: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문득 귀걸이를 힘껏 쥐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집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에요.
 
유명한:(귀걸이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다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대로 쥐어도 안 깨지나? 하긴 그런 놈이 가지고 다녔으니 튼튼하겠지. 잠시 고민하다 꽉 쥐었다.)
 
......
 
귀걸이를 손에 쥐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괜스레 숨을 멈춘 것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귀걸이는 그저 빛나기만 할 뿐, 당신을 어디에도 데려가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소 허탈해집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잘까요. 뭐니 뭐니 해도 숙면이 제일이니까요.
 
유명한:하긴 나는 괴도도 아니고……. (꿍얼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예전에 괜히 집에 데리고 왔을지도 모른다. 무슨 짓을 해도 생각이 나니 돌아버리겠네. 뒤척이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눈을 감았다.)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 어째선지 삽시간에 졸음이 찾아옵니다. 오늘은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았는데, 감당할 수 없을 수마예요.
 
당신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무시할 수 없는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유명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리 중에, ‘형사님’이란 단어가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돌연 더없이 싸늘한 냉기가 닿아옵니다.
 
당신은 분명히 푹신한 이불 속에서 잠들었을 텐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당신이 눈을 뜨면, 어째선지 너무나도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지독한 추위가 몰려와, 저도 모르게 몸을 떨게 됩니다.
 
입고 있는 옷은 잠들기 전에 입은 그대로이며, 그렇기에 별다른 소지품은 없는 듯싶네요.
 
아, 목에 위화감이 있습니다.
 
유명한:(갑작스러운 한기에 팔뚝을 문지르다 목에 손을 짚었다.)
 
어째선지 푸른 장미꽃 귀걸이가 걸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귀걸이를 만지기 위해 들어 올린 손에 아주 강한, 부자유스러움을 느낍니다.
 
찰캉, 쇳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은 자신의 한쪽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수갑에 매달린 쇠사슬은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는지, 늘어져 있지 않고 좀 떠 있네요.
 
유명한:? (쾅쾅 소리가 날 만큼 팔을 세게 흔들어 본다.)
 
……익숙하지만, 낮게 가라앉은,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당신의 옆에서 들려옵니다.
 
애리:아야! 아야, 잠깐만요! 아파요.
 
온기를 가진 살갗과 옷이 손끝에 닿습니다. 슬슬 눈이 어둠에 익숙해집니다.
 
애리:…… 이제야 깨어나신 모양이네요. 아무리 불러도 일어나지 않아서, 혹시 죽은 거 아닌가 걱정했어요.
 
주위를 보니 이곳은 마치…… 감옥 같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쇠창살이 촘촘하게 박힌 문이 보이고, 딱딱하고 거친 바닥은 조금만 움직여도 생채기가 날 것 같네요.
 
천장에서 물이 새는지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당신의 바로 앞에는,
 
유명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익숙한 복장과 망토, 한쪽 귀에서 빛나는 푸른 장미꽃의 귀걸이.
 
당신이 아는 괴도가, 당신과 반대쪽 손에 같은 수갑을 찬 채 앉아 있습니다.
 
…… 어쩐지 가면 대신 평상복대로의 안경을 썼고, 그의 옷이 낡고 너덜너덜한 것처럼 보이네요.
 
유명한:뭐냐? (진짜 뭐냐, 너. 멋대로 사라지더니 멋대로 나타났네. 꾸물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아, 추워.) 꼴이 왜 그래.
 
애리:(네 곁에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 꼴이 왜요? 전 멀쩡해요. 아, ……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다 형사님의 꿈이거든요!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어둠 속에서, 괴도와 수갑으로 연결된 채 재회했다는 게 말이에요.
 
유명한: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꿈이라고요? 하긴, 이런 상황이 현실일 리는 없겠죠?
 
찜찜하지만 지금은 괴도 외엔 상황에 관해 물어볼 사람도 없네요.
 
유명한:…… 꿈이란 말이지. (가까이 다가온 네 얼굴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진짜 꿈이라 해도 누가 믿냐고. 그대로 벽에 머리를 쾅 부딪힌다. 아픈가?)
 
엄청나게 아픕니다.
 
애리:뭐, 뭐하는 거예요! (허둥지둥 네 팔을 잡아당긴다.)
 
유명한:꿈이 아니잖아!!!!! (엄청나게 발끈했다!)
 
애리:꾸…… 꿈 맞다니까요! 형사님의 꿈이에요, 여기는. 그렇지 않고서야 저희가 이런 감옥 같은 곳에 있을 리가 없잖아요?
 
유명한:눈 뜨자마자 말도 안 되는 거짓부렁만 늘어놓을 거면 때려치워! 솔직히 말해!!
 
애리:거,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그럼 제가 잠든 형사님을 데려와서 직접 감옥 안에 들어가 수갑을 채웠을 거란 거예요? 바보 아니에요!? 그, 그리고 만나자마자 큰소리치지 마세요!
 
유명한:아 뭐 둘이 잡혀오든 어쩌든 한 거겠지! 됐어. 거짓말만 할 거면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그대로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애리:……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데요. 왜 제가 나오는 꿈을 꾸고 계셨는지? …… 혹시 처음이 아니라거나. (중얼중얼 말을 붙이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유명한:……. (말을 안 하기로 했으니 정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흥.
 
애리:……. (시무룩한 얼굴이 되어 다리를 감싸 웅크린 채 저도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유명한:…… 그냥 잠들었다 눈을 떴는데 여기였다. (꿈의 기역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제야 다시 널 쳐다보며 크게 다친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묻지. 꿈이야, 아니야?
 
애리:…… 꿈이에요. (계속해서 중얼중얼거린다.) 꿈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 아무튼 꿈 맞다구요.
 
유명한:아니구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명해. 아니면 이대로 가만히 여기서 깰 때까지 기다릴까?
 
애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네 말을 무시한 채 쇠창살 바깥으로 시선을 던지며 입술을 삐죽였다.)
 
유명한:꿈인데 왜 나가고 싶으신데요. (수갑을 찬 팔을 들어 네 입술을 손가락으로 꾸우우우욱 찔렀다.)
 
애리:좀……! (네 손을 치워내며 억울한 얼굴을 그대로 내비쳐 보였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유명한:어이가 없네……. (헤어져도 이렇게 만날 거라면 왜 그런 이유로 헤어지자고 한 거야. 전부터 생각만 하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자 영 불만스러웠다. 네 얼굴을 다시 뚫어져라 보다가, 툭 내뱉었다.) 귀걸이 쓰면 나갈 수 있잖아.
 
애리:…… 여기서는 안 써져요. 그러니까 꿈이라는 거지……. (힐끔 네 목에 있는 목걸이를 바라본다.) 써 봐요, 안 써질 걸. 내 말이 맞다니까요.
 
유명한:…… 하여간 말 한 번을 곱게 안 해요. (어쩔 수 없나. 다시금 주변을 살펴본다. 맨몸으로 감옥에 던져졌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나.) …… 멀쩡해서 다행이네.
 
감옥은 춥고 어둡습니다. 창문이 없는지, 무언가를 보려면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쇠창살은 아주 단단해서 구부리거나 부술 수 없고, 문은 굳게 잠겨 있습니다.
 
나갈 준비가 되었다면 감옥을 탐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리:제가 할 소리거든요? 만나자마자 뭐라고 하는 것밖에 없었던 주제에. (심통이 난 얼굴로 무어라 하다가 이어진 네 말에 입을 다물었다.) …… 형사님도요.
 
유명한:만나자마자 꿈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는데 그럼 화가 안 나냐? (추워 죽겠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다. 묶인 팔이 무겁다.) 멍청이.
 
애리:……. (네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뾰로통한 채 따라 일어나 섰다.)
 
유명한:수색부터 해. 네가 아래쪽, 내가 위쪽. (묶이지 않은 팔을 위로 들어올려 가까운 벽부터 손바닥으로 천천히 훑는다.) 진짜 더럽게 어둡네…….
 
유명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먼 바닥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걸 발견해냅니다.
 
애리:저기 뭐 있어요. (바닥 쪽을 가리킨다.)
 
유명한:내가 볼게. (발을 뻗어 밟는다. 아픈가?)
 
아프지 않습니다.
 
유명한:(쭈그려서 반짝이는 뭔가를 집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리를 수그린 명한이의 수갑이 당겨지면서 둘은 중심을 잃습니다.
 
우당탕탕! 같이 넘어집니다.
 
애리:아야! 형사님, 좀!!!!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댄다.)
 
유명한:본다고 했잖아! (본다고 하면 알아서 따라붙어야지. 꿍시렁거리며 네 옷가지를 탈탈 털어준다.)
 
애리:갑자기 그렇게 숙이면 제가 어떻게 알아요! (씩씩대며 네 손길을 받다가 주섬주섬 일어난다.)
 
반짝이는 걸 주워보면 그것은 녹슨 열쇠입니다. 이것으로 감옥의 문을 열 수 있겠죠.
 
다만, 쇠창살 사이로 팔을 뻗어 돌려 열어야 하는 까닭에 높은 유연성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유명한:그럼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얌전하게 내 옆에서 살았어야지! (빽 화를 내곤 열쇠를 네 손에 놓았다.) 열어.
 
애리:귀찮은 것만 나한테 시키네. (열쇠를 받아 바깥으로 팔을 뻗어 낑낑 안간힘을 쓴다.) …… 그, 근데 뭐라구요? 어디서 살았어야 한다구요?
 
애리가 시도하자 낑낑거리면서도 어떻게든 해냅니다.
 
유명한:뭐. (문이 열리자 네 팔을 잡아 안쪽으로 당겨 빼내고 문을 발로 걷어찬다.)
 
애리:……. (순순히 체포당하란 소리로 말한 걸지도 몰라. 온갖 이상한 생각을 하며 네 뒤를 바짝 붙어 따라간다.)
 
어떻게든 둘은 감옥 밖으로 나옵니다.
 
이곳은 아마도 지하인 모양이에요. 창문이 없는 복도를 한창 걷고 있노라면, 발소리가 울려 기괴한 메아리를 자아냅니다.
 
수갑을 찬 탓에 바로 옆을 걷고 있는 애리는 기분 탓인지 말수가 적네요.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사람이 좀 변한 것도 같고. 조금 어색해집니다.
 
유명한: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 (잠옷 차림으로 이런 말을 해도 우습기만 하겠지. 짜증도 나고, 반갑기도 하고, 또 짜증이 난다.) 왜 하필 이런 곳에서 만나는 거냐고…….
 
애리:…… 네. (한동안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힐끗 네 뒷모습을 올려다본다.) …… 잘 지냈어요?
 
유명한:(대체 어딘지나 좀 알고 싶네. 걸으면 걸을수록 뼛속까지 시린 기분이 들었다.) …… 별로.
 
애리:…… 왜요? …… 이제 안전했을 텐데.
 
유명한:잊을 때도 됐다던 놈이 똑같은 곳을 찌르고 가더라고.
 
애리:……. (그 말에 도로 입을 다물어 버린다.) …… 그래도 잘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명한:다들 그렇듯이 그냥 살아가는 거야. (죽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네겐 전보다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지.) 너는 좀 어땠는데?
 
애리:저요? 저는……. (말끝을 흐리다 어깨를 으쓱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엄청나게 잘 지냈죠. 돈 펑펑 쓰면서 쇼핑도 다니고 휴양지에서 휴가도 보내면서 살았다니까요.
 
유명한:잘됐네. (엄청나게 잘 지낸 놈이 그 꼬락서니로 잘도 나타나겠군. 그래도 저리 꾸며낼 수 있을 정도면, 자신이 곁에 없는 게 네겐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더 뭔가 묻지 않고 묵묵히 걸음만 옮겼다.)
 
계속 걷다 보면, 갑작스레 앞에 보이던 바닥이 꺼지고, 거대한 웅덩이가 하나 나타납니다.
 
웅덩이라고 할지, 호수라고 부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물이 출렁이는 가운데, 호수의 건너편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 주변에 미약하게나마 횃불이 타고 있어, 호수의 모양새가 얼핏 보이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애리:…… 형사님, 수영 잘 해요? (발끝으로 물가를 밟으며 묻는다.)
 
유명한:…… 묶인 채 수영하는 게 될 것 같냐? (더 깊은 곳을 푹 밟는다.)
 
애리:옛날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생쥐와 개구리라고, 둘은 호수를 건너기 위해 발목에 밧줄을 묶어 서로를 연결하거든요…….
 
유명한:
교육
기준치: 65/32/13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거, 결국 개구리가 생쥐를 익사시키고, 매가 죽은 생쥐를 낚아채는 바람에 개구리도 같이 죽는 이야기잖아요? 지금 하기엔 너무나도 지독한 농담입니다.
 
아무래도 이 호수를 수영으로 건너가는 건 너무 위험한 일 같습니다.
 
서로가 수갑으로 묶여 있으니 더더욱 그래요!
 
유명한:…… 업혀. (앞으로 한 발 나아가 선다.)
 
애리:네? 어,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는데요!? (널 잡아당기듯 뒷걸음질을 친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유명한:다른 게 아무것도 없잖아.
 
자세히 보니, 빈 궤짝이나 나무판자 같은 것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습니다.
 
적절한 균형감각이 있다면 저것들을 밟거나, 배로 써서 호수를 건널 수 있을 거예요.
 
애리:…… 제가 무거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둘이서 올라가면 가라앉지 않을까요? (네 곁에 서서 호수를 쭉 둘러보며 말한다.)
 
유명한:…… 킥판 삼아서 발장구만 치는 것도 무리인가? (슬슬 그냥 돌아가고 싶어졌다.)
 
애리:헛소리 말고 따라오기나 해요. 저 이런 거 자신 있어요. 건물 난간 위를 걷는 것처럼요. (먼저 앞장서서 조심조심 판자를 밟아 올라가본다.)
 
유명한:나 너보다 두 배는 무거운데. (팔을 들어올리고 쳐다보기만 한다.)
 
애리:빨리빨리 지나가면 괜찮을 거예요. 얼른요! (네 팔을 잡아당긴다.)
 
유명한:하……. (진짜 싫다……. 나는 건물 난간 위를 걸어다니는 취미 없다. 아무 판자나 대충 밟아본다. 여길 왜 지나가야 하는지부터 알려 주라고…….)
 
유명한: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애리가 먼저 앞 판자로 이동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판자에 올라가는 것에 성공합니다. 균형을 잘 잡으세요!
 
문득 어디선가 물을 가르며 헤엄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주 고요하지만, 이 공동에서는 작은 소리도 크게 증폭되어 들리는걸요.
 
유명한:……. (이거, 혹시 죠스 세계관? 뭐 그런 거? 큰 몸으로 잘도 균형을 잡고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무언가 물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뾰족한 등 지느러미만이 물 위로 올라와 있어요.
 
잠깐, 저거 혹시…… ……상어일까요? 설마? 여기서? 갑자기?
 
유명한:저놈이 수갑만 잘라주진 않겠지…….
 
애리:히익. 무, 무슨 꿈을 꿔도 이런 걸 꾸세요!? (괜히 네게 뭐라 하고서는 수갑을 바짝 당겼다.) 빨리 가요!
 
유명한:네가 빨리 가야 내가 가지! (정말 꿈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제 상태를 낱낱이 보이는 기분이라 거부감이 들었다.) 난 신경쓰지 말고 팍팍 가!
 
애리:네, 네…… 그럼 갈게요. (폴짝 뛰어 먼저 앞으로 이동한다.)
 
유명한:(뒤따라 성큼 발을 내딛는다.)
 
유명한: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애리:형사님, 생각보다 잘 따라오시네요. 그럼 한 번 더 갈게요! (균형을 잡으려 조금씩 휘청이다 앞으로 한 발짝 또 내딛는다.)
 
유명한:잔말 말고 가기나 하라고. (그저 감각적으로 뒤를 쫓아 발을 옮겼다.)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상어가 있는 호수를 무사히 건너면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균형을 잘 잡을 수 없는 위태로운 나무판 위에서 버텼더니, 다시 땅에 발을 디디자 새삼스레 떨림이 올라오네요.
 
애리:형사님의 꿈은 지독해요. 상어 다음엔 뭐가 나오려나.
 
팬텀 블루 로즈는 뻔뻔하게 이게 당신의 꿈이라는 주장을 밀고 나갈 생각인 모양입니다.
 
대체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는 한 번 보자고요.
 
유명한:불지옥이나 나오면 좋겠네. (태평하게 받아친다.)
 
애리:그럼 둘 다 같이 죽는 거죠, 뭐.
 
유명한:꿈에서 죽는데 뭐 문제 있냐?
 
애리:…… 그럼 상어밥이라도 되든가요.
 
유명한:좋아. (뒤로 돌아선다.)
 
애리:…… 진짜요? 같이? (미심쩍은 얼굴로 네 뒷모습을 바라본다.)
 
유명한:되라며. 어쩌자는 거야. (묶인 손목을 탈탈 턴다.)
 
애리:……. (못마땅한 얼굴로 널 노려보다 종아리를 퍽 발로 찬다.) 마음대로 해요, 그럼! 같이 죽든지 말든지! 자기가 먼저 불지옥이니 뭐니 해놓고.
 
유명한:아!! 매번 상황 설명도 제대로 안 하는 놈이 불만만 많아서 성질만 내놓고 뭐? 내 꿈이 지독해? 지독하면 오지 마! 평소엔 이거보다 지랄맞은 꿈만 꾸니까!
 
애리:지, 지독하다고 말한 게 뭐가 어때서 그래요! 그 말에 삐친 거예요? 진짜 속 좁아. …… 지랄맞은 꿈만 꾼다구요? 제 꿈은 안 꿨어요!?
 
유명한:안 꿨어. 삐치지도 않았고. 짜증나서 그런다, 왜? 꿈 타령만 계속할 거면 빨리 깨게 해 줘. 살던 대로 잘 살고 이런 데 오지 말라고.
 
애리:……. (눈에 띄게 울상이 된 채 시선을 내리깔았다. 고개를 슬금 돌리며 수갑으로 네 몸을 끌어당긴다.) …… 미안하네요. 괜히 얼굴 비춰서. …… 가요. (그리고는 홱 뒤돌아 서서 먼저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유명한:……. (끝을 받아들이는 일에 하루이틀을 보낸 것이 아니다. 그런 만큼 이대로 멀쩡하게 잘 돌려보내고 네 기억 속의 내가 사라지길 기도하는 게 최선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나란히 걸었다.)
 
계단은 좁아서, 두 사람이 동시에 올라갈 수는 없어 보이네요.
 
유명한:(여전히 말을 않고 먼저 계단을 밟았다. 뒤에서 쫓아오는 편이 그나마 안전하겠지 싶다.)
 
투박한 돌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저 위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유명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가사가 없는 음악 소리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이내 시야가 환하게 밝아집니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린 홀. 악단이 직접 연주하는 클래식이 경쾌하게 깔리고, 고성의 높은 창문으로는 몽환적인 달빛이 밀려들어 옵니다.
 
무도회에 참석한 이들은 드레스와 수트를 입고 쌍쌍이 대화를 하고 있네요. 테이블에는 은빛 접시가 가득합니다.
 
유명한:……. (그냥 상어밥이 되어야겠다. 몸을 돌려 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름다운 무도회의 정경입니다. 하지만 이 무도회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네요.
 
애리:…… (무도회 쪽을 바라보다 네 손목을 당겨 계단으로 끌어당긴다.)
 
유명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뿔이 달린 가면과, 드레스에 달린 꼬리 장식, 발굽 모양의 희한한 구두. 모두들 조금 특이한 가장무도회네요.
 
아무래도 애리는 이 무도회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 같네요. 맨얼굴로 뻔뻔하게 무도회에 참여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인 것 같습니다.
 
유명한:……. (좋아.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간다. 저런 짓을 또 하느니 죽는 게 낫지.)
 
애리:자, 잠깐만요. 다시 뒤돌아 가서 어쩔 셈이세요? 길은 여기밖에 없는데…….
 
유명한:꿈에서 깨자. 나 저기 싫어.
 
애리:…… 깨봐요, 그럼.
 
유명한:너 진짜 나 열받게 하려고 왔냐? (마저 끌고 내려간다.)
 
애리:그, 그러니까……. 내려가서 어쩔 셈이냐구요! (질질 끌려 내려간다.)
 
유명한:나란히 상어밥 엔딩 보자고. 왜? 뭐 다른 수라도 있어? 지금 그 꼴로? (휙 뒤로 돌아 언짢은 얼굴로 올려다본다.)
 
애리:…… 어떻게든 잘 숨어서 나가면 되죠……. 남자가 뭐 이렇게 포기가 빠른지. (저도 똑같이 언짢은 얼굴이 되어 콧방귀를 뀐다.) 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잘만 살아남으면서 왔잖아요.
 
유명한:난 그냥 두들겨 패고 두들겨 맞으면서 절체절명의 순간을 보내와서 말이다. (뭘 숨어? 왜? 꿈인데?) 애초에 잠옷바람으로 끌려와서 별 난리를 다 치게 하더니 이제 무도회야? 제발 편히 좀 자자…….
 
애리:……. (계단의 벽에 기대어 그대로 털썩 앉아버린다. 웅크려 앉아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마음대로 해요. 꿈에서 깨보시든지, 수갑을 끊어보든지, 아니면 올라가든지. 안 갈 거면 전 여기서 꼼짝 안 할 거예요.
 
유명한:왜 가야 하냐고. 너 늘 그런 식인 건 아냐? 뭘 해야 한다고 소리만 치지 왜 해야 하는지 하나도 말을 안 해. (뒤따라 털썩 앉아 눈을 감았다. 진짜 열 받네.)
 
애리:…… 그냥 좀 순순히 저를 믿어 주면 안 돼요? 어떻게든 당신이 또 나 때문에 무슨 꼴 당하는 게 싫어서 사라진 게 전데, 형사님 해될 일 시킬 리는 없잖아요……. (웅크린 손끝이 떨려오자 힘주어 꼭 주먹을 쥐었다.)
 
유명한:그 말이 지금 몇 번째인데. 나라고 한들 무조건 싫다고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솔직해지는 게 그렇게 어려워?
 
애리:…… 이건 솔직함과는 별개의 문제예요. (시선을 굴리다 힐끗 네게 시선을 던진다.) …… 그런 거잖아요. 형사님은 아무리 제가 알려달라고 졸라도 수사 정보를 흘리실 수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 본분은 괴도인데, 괴도 일과 관련된 것들은 형사님한테 알려줄 수 없는 거니까. …… 그런 것뿐이에요. …….
 
유명한:뭐? 누군 협력하겠답시고 수사 정보도 다 보여줬더니…….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작게 투덜거렸다.) 꿈이니 뭐니 열심히 주장하더만 결국 이것도 그 망할 놈들한테 잡혀온 게 맞다 그건가…….
 
애리:……. (대답은 하지 않고 도로 입을 다문 채 시선을 거두었다.) …… 애초에 그런 것보다도, …… 다시 만나게 됐는데 전혀 기뻐 보이지도 않고, 얼른 저 같은 거 보기 싫다는 듯이 구시니까. …… 그러니까 저도 얼른 나가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유명한:…… 바라던 대로 만날 일이 없었으면 했어. 내가 너한테 득될 게 없는 인간이라는 거 정돈 잘 알아.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꿈이라고 하니 할 말도 전부 사라지는 걸 어쩌냐. 어차피 너도 나 봐서 좋을 거 없잖아. 하……. (그냥 최악이라 생각하게 만들자. 그리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가자.
 
애리:……. (체념한 듯한 얼굴을 하고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면 수갑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널 뒤따라 올라가는 동안에도 시선은 줄곧 바닥에만 있었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면, 저쪽 테이블에 누군가 두고 간 것인지 얼굴을 대부분 가리는 가면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저곳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다면 들키지 않을 거예요. 무도회 분위기가 한창이니 웬만해선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유명한:(이 꼴로 들어가면 없던 관심도 줄 것 같은데……. 제 곰돌이 잠옷을 멍하니 쳐다봤다.) …….
 
애리:…… 형사님? (힐끔) 저쪽에 가면들이 있는 것 같은데.
 
유명한:가면들이 아니라 하나 있어. (네 말을 정정하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사람들을 등지고 선다. …… 그래도 어떻게 가지. 여기 데려온 새끼가 대체 누구야. 사지를 잘라서 구워버릴 테다…….)
 
애리:쉿, 쉿. (자세를 낮추라는 듯 손짓을 한다.) 빠르게 후다닥 가면 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유명한:……. (순순히 몸을 낮추고 수갑에 엮인 네 손을 잡아채 테이블로 향했다.)
 
유명한:
은밀행동
기준치: 20/10/4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누군가 가까이 오는 기척이 느껴집니다.
 
어떡할까요?
 
유명한:(어떻게 해? 입술만 움직이며 널 쳐다본다.)
 
애리:(이럴 때만 나 찾고! 투덜거리듯 작게 소리치며 급하게 망토자락으로 네 머리 위를 덮었다.) 숙이고 있어요……! 얼굴 안 보이게.
 
유명한:아, 알았어. (최대한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
 
무사히 기척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마저 이동할까요?
 
유명한:(숙인 그대로 엉금엉금 움직인다…….)
 
무사히 가면이 있는 테이블까지 이동해 올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하……. (거 참 힘드네. 가면을 집어 네 손에 탈싹 놓는다.)
 
애리:…… 왜 저를 주시는데요!? 전 가면 있어요. 괴도잖아요!
 
유명한:? 안경 쓰고 있길래.
 
애리:그, 그건 그냥……. 이제 형사님 앞에서 가면은 별 의미 없으니까……. (품 이곳저곳을 뒤져 제 가면을 찾아 꺼내 네게 내밀었다.) 그럼 형사님이 제 거 쓸래요?
 
유명한:……. (조용히 방금 테이블에 있던 가면을 제 얼굴에 눌러 썼다.)
 
애리:…… 제 건 만지기도 싫어요?
 
유명한:…… 작을 게 뻔해.
 
애리:…… 그, 그런가……. 괜찮을 것 같은데……. (고개를 기울이며 저도 평소처럼 가면을 쓰고, 네 가면을 손으로 고쳐준다.) …… 잘 어울리네요. 가면.
 
가면을 획득했다면 무도회장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수갑 차림으로?)
 
가면을 쓴 당신들을 눈여겨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명한:(이상한 놈들 뿐이네……. 지쳐서 축 처졌다. 그러다 네 얼굴을 보았다.) …… 어, 뭐, 너도. 아니, 넌 그거 좀 안 쓰면 좋겠네.
 
애리:…… 왜, 왜요? …… 이상해요? (손으로 더듬더듬 제 가면을 만진다.)
 
유명한:…… 안 쓰고 있을 때가 좋아. (아주 작게 대답하고 회장 내를 둘러본다.)
 
고성의 1층을 차지한 홀은 천장이 아주 높고, 천장에서부터 뻗은 샹들리에가 내려온 구조입 니다.
 
밖으로 나가는 [문과 창문]이 보이네요. 위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거대한 [액자]가 하나 걸려 있습니다. 중앙에는 춤을 출 수 있는 텅 빈 공간이 있고, 사이드로 [만찬 테이블]이 보입니다.
 
한쪽 구석에 흥겨운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의, 가면을 쓴 [참석자들]은 느긋한 걸음걸이로 무도회장 안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유명한:(뭐부터 봐야 좋을지 모르겠네. 일단 주변의 참석자들부터 쳐다본다…….)
 
가만히 보고 있자, 그중 하나가 가면을 벗습니다. 형형하게 빛나는 눈, 튀어나온 사슴의 뿔.
 
긴 혀를 내밀어 썩은 음식을 먹는 그는 악마라고밖에는 묘사할 수 없습니다. 담소를 나누고 있던 참석자들은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웃습니다.
 
악몽 같은 일이에요……
 
유명한:진짜 지옥인가 보다……. (중얼거리며 오케스트라 쪽도 본다. 저쪽도 괴물 모임?)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와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그 외에도 구색을 갖 춘 많은 악기를 든 악단이 알지 못할 경쾌한 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악단은 단정한 턱시도를 입었네요. 단, 그들 중 누구도 ‘머리’가 보이지 않아요!
 
악보는어떻게 보는 걸까요?
 
유명한:……. (만찬 테이블을 확인한다. 썩은 음식 투성이겠네, 그럼…….)
 
새하얀 테이블보 위, 무수한 접시가 올려져 있고, 당연히 모든 접시는 차 있습니다.
 
허기를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이곳의 음식을 먹을 수는 없겠어요.
 
파리 떼가 꼬이는 썩은 음식,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음식, 역한 유황 냄새가 훅 끼쳐오는 음식. 병 와인에서는 녹색 연기가 흘러나오고, 후르츠 펀치엔 붉은 피와 함께 도마뱀의 눈알이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딱 하나, ‘멀쩡해 보이는’ 고기가 접시에 담겨 있는데, 당연하지만 멀쩡하지 않겠죠?
 
역겨운 광경에 SanC 1/1D3
 
유명한:
SAN Roll
기준치: 38/19/7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애리:으윽……. (역겨워하는 얼굴로 입을 틀어막으며 음식에서 고개를 거둔다.)
 
유명한:후……. (숨도 쉬기 싫다. 네 손을 잡고 계단 쪽으로 슬슬 걸어가며 액자를 쳐다본다.)
 
밖에서 본 성의 그림이 걸린 커다란 액자입니다. 당신의 키를 넘어서는 크기예요. 그림의 배경은 밤이고, 역시 달이 떠 있네요.
 
고성은 상당히 높아 보여요. 뾰족한 탑이 솟아 있군요. 성 밖에 그려진 건, 묘지일까요?
 
붉은 양탄자가 깔린 계단에는, 어째선지 중간에 뚝 끊어져 있습니다. 위로 올라갈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겠어요.
 
유명한:너……. 여기가 어딘지 아냐? (이제 꿈이라고 하는 편이 더 믿을만하게 느껴진다. 남은 건 문하고 창문인가. 계단을 올라가야 갈 수 있나?)
 
애리:…… 아뇨. 모르겠어요. (그저 널 뒤따라가며 고개를 젓는다.)
 
문은 어째선지 단단한 나무판자로 못질이 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들인다면 부술 수 있겠지만, 큰 소리가 나니 모두에게 들키는 건 확실하겠죠.
 
창문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도저히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덩그러니 뜬 보름달이 원망스럽게 느껴져요.
 
이 홀에 갇혔다는 충격으로 SanC 0/1
 
유명한:
SAN Roll
기준치: 37/18/7
굴림: 61
판정결과: 실패
…… 야수회 놈들도 아니고? (이제 어쩌지. 계단 옆에 서서 고개를 돌려 널 보았다.)
 
무도회장을 둘러보고 있자, 그들이 쌍을 지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는군요.
 
강한 기시감이 몰려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리라고 해도, 괴물이 날뛰는 무도회장에서 설마……
 
애리:일단 우리도 춤부터 출까요!? (한층 밝아진 얼굴로 홀을 바라본다.)
 
어이, 진심이냐고 팬텀 블루 로즈! 심지어 이쪽은 잠옷이라고!
 
유명한:…… 정신머리 좀 차려 줄래? 춤 추다가 목 뽑히고 싶냐……. (역으로 우울해졌다.)
 
애리:하지만 이제 별다른 수도 없잖아요. 문으로 나갈 수도 없고, 창문으로 오를 수도 없고. 음식도 먹지 못한다면…… 할 수 있는 건 춤밖에 없지 않겠어요?
 
유명한:에너지를 아껴도 모자랄 판에 왜 춤인데……. (하지만 저 텐션은 말릴 수가 없다. 그간의 경험으로 아주 잘 안다.) 그리고 난 잠옷 입고 있는데……. (시무룩.)
 
애리:자, 오히려 추지 않는 게 더 눈에 띌 거라고요? (네 손을 잡아 이끌며 홀의 중앙으로 가까이 간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에요. 오늘 있었던 모든 게 꿈만 같아요. 물론, 팬텀 블루 로즈는 이게 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요.
 
거추장스러운 수갑도, 지금만큼은 가까이 붙어 있으니 방해되지 않을 것 같네요.
 
유명한:…….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표정으로 끌려갔다. 왜 항상 나는 이런 영문 모를 일만 겪는 거지. 세상이 조금 원망스러워졌다.)
 
애리:(능숙하게 박자에 맞추어 스텝을 밟는다.) …… 있죠. 사실 처음부터 묻고 싶었는데 형사님이 화낼까 봐, 그리고 분위기 깰까 봐 말 안 했는데요……. …… 평소에 그런 잠옷 입고 주무세요?
 
유명한:(말 그대로 발을 움직이기만 한다.) 그래. 어머니가 사다 주신 거니까. (별로 화낼 일도 아닌지라 차분히 대답하고 시선을 저 멀리에 둔다. 이도저도 아닌 아저씨 인생의 끝으로 삼기엔 너무 화려하지 않나?)
 
애리:…… 귀여워요. 그거. 그리고 엄청 웃겨요.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웃음을 흘려내고서 네 발등 위를 고의적으로 꾹 밟았다.) 제대로 춰 주실래요? 눈앞에 숙녀를 두고.
 
유명한:웃든가……. (죽으면 두 분 모두 엄청 슬퍼하시겠지. 유산은 알아서 처리되는 건가. 갑자기 이상한 생각에 굴레에 빠져 있다가 발이 아파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유언 생각하느라 바쁘거든?
 
애리:…… 무, 무슨 유언이에요……. 딴 생각 하지 말래도.
 
유명한:혹시 모르지. 너는 잘 전달할 준비해 둬라.
 
애리:…… 형사님이 유언을 남기게 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제가 보장할게요.
 
유명한:네 안전부터 챙겨. ……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구해달라고 소리를 질러도 네가 나가는 걸 우선으로 하겠다 약속해. (네 허리를 감싸안고 낮게 속삭인다.)
 
애리:…… 아뇨. (네 말에 기뻐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반대라면 약속해드릴게요. 저는 이제 늦었어요, 형사님.
 
유명한:그럼 약속은 관두지. (뭐가 늦었는지, 나만 내보내고 어쩔 셈인지 물으려 해도 대답하지 않겠지. 답답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먼 곳을 쳐다본다.)
 
멍하니 춤을 추던 중...
 
갑자기 음악이 빨라지면서, 당신은 박자를 놓칩니다.
 
몸이 어긋나자 옆의 이들과 부딪칠 것 같은데요. 이걸 어떻게 한담!
 
유명한:
예술 Roll
기준치: 5/2/1
굴림: 54
판정결과: 실패
 
피할 수 없었습니다! 호되게 부딪쳐, 당신은 그만 가면을 떨어트리고 맙니다.
 
사과하려던 이들이,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굳힙니다. 그리고……
 
“■■■■! ■■■ ■■■ ■■!”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을 웁니다. 음악이 뚝 끊어집니다.
 
춤을 추던 이들이 모두 동작을 멈추고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동물의 털이 곤두서고, 꼬리를 흔들고, 발굽으로 땅을 두드리면서……
 
누군가 먹던 접시를 놓칩니다. 음식이 쏟아져 바닥을 더럽히고, 그리고 그중 하나가 당신의 신발 앞까지 굴러 옵니다.
 
채 손톱이 뽑히지 않은, 잘린 인간의 손가락.
 
“■■■! ■■■ ■■■! ■■■ ■■!”
 
애리:형사님, 우리 도망가요!
 
유명한:어디로?!
 
하지만 어디로 도망칠 수 있죠? 문은 봉쇄되어 있고, 창문은 너무 높고, 계단은 도중에 끊어져 있는데도요!
 
“■■! ■■! ■■! ■■ ■, ■■ ■■■■!”
 
애리:어, 어……. …… 그, 그러게요!?
 
유명한:귀걸이, 혹시 모르니까 써 봐. (그래도 안 되면,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얼굴을 구긴 채 괴물들을 등지고 서서 널 품에 꽉 안았다.)
 
유명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애리:…… 아, 안 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든 낑낑대며 귀걸이를 써보려고 노력한다.)
 
커다란 액자의 그림이, 커튼처럼 일렁입니다. 원한다면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요.
 
어쩌면…… 그림을 통해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유명한:이대로 죽는 것보단……. (안은 그대로 그림을 향해 돌진했다.)
 
애리:형사님!? (당황한 목소리로 액자가 있는 쪽과 괴물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액자를 향해 뛰어가면 괴물들은 당신이 패닉하여 막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줄 알고 비웃으며, 추격의 속도가 느려집니다.
 
숨을 삼키고, 그림 속으로 돌진하자 그대로 쑥 들어가 버립니다.
 
강한 밤바람이 불어, 눈을 뜨기 어렵습니다. 절로 재채기가 나옵니다.
 
그림 속에 들어왔다는 것에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이런 얇은 잠옷으로는 추운 밤 기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애리:바, 방금 우리…… 벽? 아니, 그림 속으로 들어온 건가요……. (얼떨떨한 얼굴로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명한:아마도……. (턱끝까지 찬 숨을 고르며 엉거주춤하게 서서 헥헥거린다.)
 
그림으로 본 고성 밖에는 무엇이 있었던가요? 아, 분명히 묘지였습니다.
 
공동묘지네요. 비석이 빽빽하게 세워져 있고, 계속 흙냄새가 납니다.
 
애리:…… 방금 진짜 무서웠는데……. (겨우 진정하려 애쓰며 주섬주섬 다시 일어난다.) 어떻게 살긴 했네요? 둘 다 죽는 줄 알았어요.
 
유명한:그러게. (네 안색을 살피곤 다시 품에 안고 살살 토닥인다. …… 조금 덜 추워졌다.) 저런 놈들이 있으니 자다가 납치당해도 이상하지 않네…….
 
애리:……. (저도 네 곁에 찰싹 붙어 주위를 이리저리 훑었다.) 형사님 꿈 진짜 특이해요. 이제 또 뭐가 나올지 무서워서 가겠어요?
 
유명한:…… 짐작가는 거, 진짜 아무것도 없어? (이게 무슨 꼴이냐. 애초에 묘지가 나오는 꿈을 꾼 적도 없지 싶은데.) 일단…… 추우니까, 여기만 좀 벗어날까.
 
애리:…… 추워요? 아, 하긴 잠옷 차림이고……. 그럼 제가 이거라도……. (네 질문에 대한 답은 자연스럽게 피한 채 어깨에 걸쳐진 망토를 주섬주섬 벗어낸다.)
 
유명한:…… 괜찮으니까 너나 잘 싸매. (그렇게 말해도 한 번을 안 말해 주네. 네가 벗은 망토를 다시 꼭꼭 여며 입힌다.) 가자. 뭐 보이면 바로 말하고.
 
묘비가 잔뜩 세워진 공동묘지를 지나갑니다. 달빛만큼은 여전히 밝아, 원한다면 비석을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유명한:……. (비석들을 흘끔, 흘끔, 흘끔 쳐다본다…….)
 
메리 레이시 벨. 흡혈귀와 외계인의 습격으로 사망......
 
에바 카단. 7번의 시간을 되돌리는 주문을 이행하여......
 
기이한 사인입니다. 이런 사인으로 사망하는 게 가능이나 한가요?
 
이해할 수 없는 오싹함에 (어쩌면 추위 때문일지도요) 소름이 돋습니다.
 
유명한:자다가 죽어서 지옥에 왔다고 하는 게 더 믿음직스러워지네……. (그럼 이런 사인도 이해가 간다. 명백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도 뭔가 특이한 비석이 없나 계속 쳐다본다.)
 
애리:……. (웃지도 않고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비석들을 하나하나 똑같이 읽으며 지나간다.)
 
비석을 훑어가는 당신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질 때였습니다.
 
유명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갓 만들어진 듯 깨끗한 비석에 발이 걸립니다.
 
유명한:? (멈춰서 비석을 살핀다.)
 
새겨진 글자에 시선이 간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이 낯선 이름들 사이, 당신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이름이잖아요. 애리, 정확히는 노애리라고 적힌 세 글자입니다.
 
애리:왜 그래요, 형사님? 아는 사람 비석이라도 찾았어요? 눈이라도 가려줄까요?
 
팬텀 블루 로즈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천연덕스럽습니다.
 
유명한:짜증 나……. (비석을 발로 퍽 걷어찬다. …… 아프다.)
 
애리:왜, 왜 그래요!? (깜짝 놀라서는 네 몸을 끌어당긴다.)
 
갓 만들어진 무덤엔 새 흙이 얕게 덮여 있습니다.
 
깊게 묻히지 않은 듯, 새하얀 관이 언뜻 보이네요.
 
유명한:……. (그대로 바닥에 쭈그리고 관 주변의 흙을 맨손으로 마구 걷어낸다.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뭔놈의 무덤이야.)
 
애리:……. (네 행동이 이상하다는 듯 덩달아 따라 쭈그려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유명한: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지금 당장 저 관을 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입니다. 닫힌 상자가 있다면 안을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잖아요.
 
유명한:…… 너는 눈 감아. (혹시 모르는 일이다. 혹시. 혹시니까. 그러니까. 새하얀 관뚜껑을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던지다 살짝 열어본다.)
 
애리:…… 응? 응. (확실히 시체를 굳이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순순히 눈을 슬쩍 감는다.)
 
열린 관을 들여다보면...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그것에 안도할 새도 없이,
 
툭,
 
누군가 당신의 등을 밀쳤습니다. 아니, 밀친 걸까요?
 
에리는 당신의 옆에 있는데도. 오히려 경악과 놀람으로 눈을 크게 뜬 채,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붙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당신은 관 안쪽으로 떨어집니다.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아니 애초에 얕은 무덤이니 작은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일까요.
 
이 추락이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은 계속, 계속 추락합니다.
 
추락하는 꿈은 키가 클 징조라고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그건 아니겠죠.
 
수갑이 묶여 있던 손목을 내려다보면 그저 말끔하기만 합니다.
 
유명한: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이건 마치 동화 같아요! 토끼 굴 대신 끝없는 무덤에 떨어진 게 다를 뿐이죠.
 
하지만 이 추락의 끝은 어떨까요?
 
굴 안쪽에는 크고 작은 액자들이 걸려 있습니다.
 
유명한:이게 뭔데……. (몸을 마구 버둥거린다. 뭐라도 잡히는 거 없나?)
 
그저 공허한 허공에서, 보이는 건 액자들 뿐입니다.
 
유명한:(액자를 보려고 해 본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위도 한 번 본다. 애리는?)
 
얼마나 떨어진 건지 위에는 여전히 캄캄합니다.
 
떨어져 내리며 액자들을 바라보면, 그것들은 전부 초상화네요!
 
다만 정적인 자세로 앉은 일반 적인 초상화가 아닌, 생동감 있는…… 인물화에 더 가깝나?
 
유명한: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무수한 초상화의 공통점을 깨닫습니다. 전부 동일한 ‘사람’이 등장하고 있어요.
 
갈색 머리카락과 푸른 색 눈을 가진 아이가 점점 자라는 형상입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일상 같기도 하네요.
 
추락은 아직 멈추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속도가 한층 느려지지 뭐예요.
 
여유를 갖고 그림 하나하나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초상화 속 아이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눈을 찌푸리고 그림을 조금 더 자세히 살핀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런 곳에 처넣은 거겠지.)
 
어느덧, 초상화가 소곤거리며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당신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아니면 그저, 이 굴에 떨어진 단 한 사람이 당신이었기 때문일까요?
 
이유를 알지 못할지라도, 초상화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그는 처음으로 기이한 일에 맞닥뜨렸습니다.
 
세계를 혼돈에 빠트리려는 나쁜 악당들에게서 의식의 키워드가 되는 중요한 물건을 훔쳐낸 거예요.
 
그는 기뻤고, 앞으로도 이 삶을 이어나가기로 합니다.
 
그에게 약점이 될 만한 것은 없었고, 그는 아주 유능한 ‘탐사자’였으므로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초상화의 그림은, 자신만만하게 옥상 난간 위에 서 있는 팬텀 블루 로즈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첫 사건이었을까요.
 
유명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다.)
 
몇 번의 사건을 겪으며 그는 더욱 능숙해졌고, 교활한 괴도가 되어갔습니다. 사교도도 경찰도 그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죠.
 
아, 하지만 새로 발견한 형사는 그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이 형사를 이용한다면 그의 일에 더욱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아리아드네의 명화를 훔치는 팬텀 블루 로즈와, 그를 쫓는 당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괴도는 당신의 기억보다 더 얄밉게, 그리고 당신은 더 분하게 묘사되어 있네요.
 
두 번째 초상화 옆에서, 당신은 ‘피자 배달부가 되어 도망치는 팬텀 블루 로즈’와, ‘가장무도회에서 당신에게 춤을 권하는 팬텀 블루 로즈’, ‘총을 맞은 척 피를 흘리는 가증스러운 팬텀 블루 로즈’, ‘당신에게 붙잡힌 채 꼴사납게 애원하는 팬텀 블루 로즈’의 그림을 봅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펑, 반짝이 폭탄이 당신에게 뿌려집니다. 어디선가 감미로운 사랑의 세레나데가 들려오네요.
 
명한, 기분이 어떤가요? 좋은가요?
 
유명한:지랄…….
 
아니었다면…… 어쩔 수 없죠.
 
유명한:(외면하듯 고개를 돌린다…….)
 
추락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그는 꽤 많은 위기를 겪었어요. 죽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죠.
 
아무리 강인한 탐사자라고 해도, 결국 그의 이성은 마모되고 체력은 깎여가거든요.
 
인간이 얼마나 죽기 쉬운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럴 때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팬텀 블루 로즈와, 그를 받아 안는 당신의 그림입니다.
 
당신이 보는 사이, 그림은 몇 번이나 깜박거리며 변해갑니다. 깨지는 유리 조각, 관람차에 갇힌 둘, 사교도에 둘러싸인 둘, 그리고 불꽃놀이.
 
어쩌면 의지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길을 선택해서 걸었지만, 선택하기도 전에 휘말린 사람에게도 그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떠나기로 합니다. 아주 가벼워지기 위해서.
 
당신의 위에서 불꽃이 터집니다. 당신은 이때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더라도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결국 팬텀 블루 로즈는 당신을 떠났는데도요. 약점 운운이나 하면서.
 
유명한:(듣다 보면 이야기의 본질에 도착하겠지. 그림들은 대충 훑어보기만 하고 청각에 신경을 집중했다.)
 
시도는 꽤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휘말린 사람은 안전해졌으며, 그는 다시 가벼워졌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쉬워지진 않았습니다. 운이 나쁘게도, 괴상한 공간에 빠져버리고 말았거든요.
 
이 공간엔 탈출구가 없으니, 그의 장기인 탈출 마술도 무리였어요.
 
고성 지하에 쓰러진 팬텀 블루 로즈의 그림이 보입니다. 시체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요. 아주 얕은 숨만 쉬고 있습니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모든 탐사자에게 오는 끔찍하고 비참한 죽음이, 마침내 자신에게도 돌아온 것을, 괴도의 위대한 ‘시트’를 찢어낼 차례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그림 속 팬텀 블루 로즈의 귀걸이가 빛납니다.
 
이윽고, 추락하고 있는 당신의 목에서도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귀걸이가 빛나고 있습니다.
 
유명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 공간에서 의 텔레포트는 불가능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요
 
한쪽 귀걸이를 가진 사람이 끌려 오고 말았습니다. 불완전한 이동이었으므로 ‘영혼’만 말이에요."
 
유명한:이게 뭔……. (죽었다고? 나는 지금 영혼 상태라고? 몇 번이고 마른세수를 하며 최대한 정신을 맑게 하려 애쓴다.)
 
그는 자신의 미련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끌려오며 생겨난 불완전한 탈출구를 이용하면, 둘 다 나갈 수 있을 거라고도 추측했죠.
 
그는 당신의 영혼이 튕겨 나가 갈기갈기 찢기지 않게 수갑을 채웁니다.
 
수갑을 찬 팬텀 블루 로즈와 당신이, 고성의 여기저기를 탐험하고 있습니다. 이후로는 당신이 겪은 그대로입니다.
 
……추락이 끝납니다.
 
당신은, 푸른 장미꽃이 한가득 핀 꽃밭에 떨어집니다.
 
은은한 향기가 당신을 감쌉니다. 아주 편안하고, 안온한 기분이 들어요.
 
이곳은 팬텀 블루 로즈의 관. 언제고, 그가 죽게 되면 눕게 될 무덤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적어도 당신이 그를 구하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는 앞으로도 숨 쉴 수 있을 거예요.
 
유명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곳에서 탈출할 아이디어 판정을 요구하세요. 지금은 당신이 탐사자잖아요.”
 
유명한:뭔 개소리야. (알 수 없는 용어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었지만 큰 줄기는 알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죽진 않았다는 거지.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방금, 빛났으니까…….) 뭘 요구하라는 건지. 끝까지 그 방식 그대로구만…….
 
귀걸이는 서로 이끌리는 것 같으니, 지금 귀걸이를 사용한다면 팬텀 블루 로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마력 3을 지불하고 텔레포트를 사용합니다.
 
“…… 형사님!”
 
“…… 형사님, 일어나보세요!”
 
눈을 뜨면, 아까의 그 무덤가입니다. 관은 굳게 닫혀 있고, 애리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당신을 흔들고 있네요.
 
수갑은 여전히 당신과 애리의 손목을 잇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매달린 귀걸이도 그대로예요.
 
유명한:……. (눈을 뜨자마자 한 차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쉰다. 더듬더듬 네 몸을 짚어 품에 꼭 안았다.) 망할 자식…….
 
노애리:혀, 형사님? (어리둥절한 얼굴로 네게 안긴 채 힐끔 얼굴을 바라본다.) 갑자기 관 안으로 쓰러지더니 기절하셔서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유명한:…… 너 언제 여기 끌려왔어. (네 말엔 대답을 않고 제 할 말만 하고서 마저 숨을 고른다. 얼마나 떨어져 있었다고 그런 꼴이 된 건지. 머릿속이 새까만 먹물로 가득찬 기분이었다.)
 
노애리:왜…… 왜요? 그…… 당연히 아까 형사님 깨어날 때부터 있었죠. 기억 안 나세요? 같이 감옥 안에 있었잖아요, 그쵸? (농담처럼 말하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유명한:전부 알게 됐어.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그러니까. (말해. 눈앞이 가물거린다. 분명, 그저 먼지가 들어갔다거나, 너무 갑작스러운 일을 겪어서 그런 거겠지. 그대로 눈을 감고서 팔에 힘을 주었다.)
 
노애리:……. (마른침을 삼키며 흔들리는 눈으로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시선을 피했다.) 아, …… 주, 죽지는 않을 정도로 예전에……? 며, 며칠 안 됐어요.
 
유명한:흥. 현실의 나는 당장 병원에 실려가도 이상하지 않겠네. (농담처럼 중얼거리곤 네 머리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이제 일부러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노애리:거, 걱정 마세요. 형사님은 진짜로 오늘 밤에 도착한 거니까. 멀쩡할 거예요. 멀쩡히 살려보낼 거고……. (저도 괜스레 농담처럼 가볍게 대답했지만 네 손길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얕은 숨을 내쉰다.) …… 제일 잘 하는 게 거짓말밖에 없는데도?
 
유명한:네가 없는데 뭐가 멀쩡해. 혼자 돌아갈까 보냐……. (진짜 짜증 나는 놈이다. 머리에 있던 손이 아래로 내려와 뺨과 얼굴을 꼼꼼하게 더듬어 매만진다. 아직 죽진 않은 거지, 그렇지…….) 서투른 일도 해야 늘어.
 
노애리:…… 저 없이 잘 지내셨잖아요. (금세 투정을 부리는 듯한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네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 그래도 싫어. 여기서 더 최악의 인간으로 기억되느니 거짓말쟁이로 남을래요…….
 
유명한:네가 괜찮을 거라 믿고 어떻게든 지낸 거야.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솔직해지게 하려면 먼저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진작 서로에게 최악이던 때는 지나가지 않았어? 괜찮아. 네가 뭔가 특별하다는 것도, 죽기 직전에 내가 여기 불려왔단 것도 전부 알았으니까…… 응? 뭐든 들어 줄게.
 
노애리:……. (대답 대신 그저 네 몸을 끌어안았다.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생각의 끝에 닿았는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 저 진짜 괜찮아요. 뭐든 괜찮아요. 이것도 저것도 전부 제가 초래한 일이니까. …… 사실 형사님한테는, …… 미안한 마음밖에 없어요. 이건 진심이에요.
 
유명한:네가 초래한 일이든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든 나는 아무런 상관 없어. 바보야, 이 바보 천치야……. 원래 살다보면 여기저기 휘말리고, 이상한 일도 생기고, 그런 거지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안 보냈어. 곁에서 한 순간도 떨어뜨리지 않았을 거라고…….
 
노애리:…… 정말?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하자, 어쩐지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황급히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목이 잔뜩 메여 떨리는 목소리로 제 옷깃만 만지작거린다.) …… 안 싫어요? 나랑 있는 거? …… 여태까지 쭉, 계속 나 때문에……. 내가 형사님을…….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참으려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유명한:같이 있으면 짜증이 나. 열도 받고, 속상하고, 화가 나서 머리가 아픈데…… 그런데도 자꾸 생각이 나고. 떨어져 있으니까 미치겠고……. (편히 울 수 있도록 머리를 가슴팍에 기대게 한 채 천천히 등을 토닥인다.) …… 좋아해. 전보다 더 많이 좋아해. 앞으로도 더 좋아하고 싶어. 그러니까, 도와줘.
 
노애리:…… 그럼 형사님이 저를 도와주세요. 같이 나갈 수 있게……. ……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착각해요. (애써 농담처럼 대꾸하려 했지만 어느새 안경 너머로 시야가 희뿌얘진다. 입꼬리를 올려봐도 오히려 눈물이 계속해서 쏟아나오자 손등으로 뺨을 마구 닦아낸다.) …… 보고 싶었다고, 하는 말 듣고 싶었어요. 다시 만나게 되면 보고 싶었다고 안아주지는 않을까, 하고, …… 내심 기대해 버리고…….
 
유명한:내가 보고 싶었다고 해서 그런 짓을 하면 괜히 네 마음만 흔드는 꼴이 되잖냐. …… 엄청 보고 싶긴 했지만. (시선을 모로 돌리며 작게 핑계를 댄다. 그러다 네가 펑펑 울기 시작하자 제 손으로도 눈물을 닦아주고서 얼굴 여기저기 꾹꾹 입을 맞춘다.) 너도 참 너다. 이런 아저씨가 뭐가 좋아서 이렇게 펑펑 울어?
 
노애리:…… 응, 그치만…… 으응. (네가 입을 맞춰대자 괜스레 그간 참았던 몫까지 눈물이 더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뺨을 적신 채 네 가슴팍을 작게 때린다.) 몰라요, 바보 형사. 좋아서 우는 거 아니야. 미워서 우는 거예요. 여태까지 좋은 말도 안 해준 아저씨가 미워서, 네? 그러더니 갑자기 잔뜩 상냥한 말이나 하고. …… 반칙이잖아요.
 
유명한:왜 그랬는지 알면서. …… 앞으로도 하지 말까 보다. (영혼을 때린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가도 결국 웃고 말았다. 여태까지보다 조금 더 깊게 입을 맞추곤 속삭였다.) 이렇게 얌전하니 얼마나 귀여워? 아기네, 아기.
 
노애리:…… 으응. (네가 입을 맞추면 훌쩍이면서도 눈을 감고 입맞춤을 받아낸다. 눈을 뜨고서 한껏 뺨이 붉어진 채 화난 얼굴을 해보였다.) 아, 아기 아니거든요!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뽀뽀나 해대고! …… …… 평소에는 안 귀여웠어?
 
유명한:평소엔 짜증 나는 편이지. (히죽거리며 대답하고선 화난 얼굴에도 자꾸만 입을 맞춘다.) 다 울고 나면 어떻게 나갈지…… 음. 탈출구? 거기를 찾는 게 좋겠네.
 
노애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또 한 번 네 가슴팍을 주먹으로 힘주어 때렸다.) 최악이야, 진짜! …… 가는 길 알아요. …… 아마도 추측이지만.
 
유명한:최악이라 뽀뽀 몇 번에 그렇게 헤롱헤롱 녹아내렸냐? (나가면 더 많이 해 줄게. 다시금 네 머리를 쓰다듬고서 허리를 쭉 폈다.) 그럼 거기로 가야겠군. …… 살다 살다 남의 관짝에도 떨어져 보고…… 정말.
 
노애리:제가 언제요! …… 그러게 갑자기 모르는 사람 관을 왜 열어요? (입을 삐죽인 채 부은 눈가를 더 닦아낸다.) 형사님이 쓰러졌던 동안, 탑의 문이 열렸어요. 저 위로 올라가면 뭐라도 될 것 같은데.
 
그림에서 보았던 뾰족한 탑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원한다면 들어오라는 것처럼요.
 
유명한:모르는 사람 관이면 열었겠어? (마지막으로 눈가에 입을 맞추고 네 몸도 추슬러 같이 일어난다.) 탑?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저게 생겼나?
 
노애리:…… 잘 모르겠어요. 탑의 존재는 유심히 본 적이 없었어서.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알았어요. (문이 있는 쪽을 올려다보다 다시 네게로 고개를 돌렸다.) …… 근데 진짜 누구 관이었어요? …… 아는 사람 중에 죽은 사람 있어요? …… 중요한 사람?
 
유명한:분명 그렇다고 했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저었다.) 죽은 사람이야 있지만, 저건……. …… 네 관이었어. 노애리 씨. 안 죽었으니 다 개수작이지만. (괜히 관을 걷어찼다. …… 역시 아프다.)
 
노애리:……. 아. (별로 놀란 기색은 없었다. 네가 걷어찬 관과 비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탑이 있는 쪽으로 널 데려간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에 괜스레 농담을 던졌다.) ……. 아~ 그치만 제 이름 다 털렸네요. 이제 체포당하는 것도 시간 문젠가?
 
유명한:저 관짝 안에 네 스토커 있더라. (걸음을 옮기며 얽힌 쪽 손을 꼭 잡았다. 이어지는 농담에 어깨를 으쓱이곤 가볍게 받아친다.) 그러게나 말이다. 체포해서 호적에 넣을까 봐.
 
노애리:…… 스토커요? 안에 아무도 없던데…… 네!? (달아오른 얼굴로 화들짝 놀라서는 네 종아리를 또 한 번 걷어찼다.) 자,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 음, 그래도……. 제 정보 넘기면 형사님 승진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탑 안에 들어가면, 그곳은 천장까지 빙글빙글 가파른 나선계단이 이어져 있습니다.
 
다리를 혹사할 시간입니다. 엄청나게 길고 높네요.
 
유명한:(집어넣어도 자꾸 빠져나올 거 겸사겸사 곁에 묶어두는 게 좋을 것이다. 갑자기 종아리를 채이자 크게 휘청거렸다.) 야, 야!! 적당히 좀 해! (겨우 중심을 잡고서 다시 걸음을 옮긴다.) …… 팬텀 블루 로즈가 죽었다는 정보를 넘길 수도 있겠지. 강력계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노애리:흥……. (네가 소리치는 모양새에도 아랑곳 않고 뒤따라 걸어간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죽은 걸 어떻게 아냐고 하면 어떡해. …… 강력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유명한:네가 공문서 위조라도 해서 우리 집에 등기 부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며 계단을 하나하나 오른다. 영혼 상태로도 이렇게 빡셀 일이냐…….) 경찰이 하는 일은 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그쪽이 더 적성에 맞아. 동료들도 있고……. 왜, 내가 같이 괴도가 되기라도 하면 좋겠어?
 
노애리:……. (네 말에 푸훗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진짜 상상도 안 가요. 이런 아저씨 괴도가 어디 있어. 후후……. 형사님은 형사면서 저한테 뽀뽀하고 막 그래도 돼요? …… 이미 이런 거 물어볼 타이밍은 늦었지만.
 
유명한:너도 나이 먹으면 아줌마 되는 거야. …… 형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거든? (별 걸 다 묻네. 투덜거리면서도 꼬박 대답하며 계단을 오르다 주변을 잘 살펴본다. 이거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은데……. 이런 요상한 곳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 업힐래?
 
노애리:…… 그치만 언제는 절 인간 미만의 범죄자 취급 하셨잖아요. (흥,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었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같이 떨어질 일 있어요? 수갑도 있는데……. 됐어요. 어린애도 아니고 싫어.
 
유명한:악질 범죄자긴 해.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혼자 떨어지겠냐. 어차피 수갑으로 꽁꽁 묶여 있는데 무슨. 나이 먹고 어린애 취급 받기 힘들다? 빅 찬스 놓치는 거다? 어?
 
노애리:네에? 지금까지 계~속 어린애 취급 하셨잖아요? 딸 취급 하셨잖아요? 어린애 취급 안 하신 적 없잖아요!
 
유명한:그냥 어린애 취급이랑 애인으로서 어린애 취급하는 건 궤가 다르잖냐. 싫으면 마라. 흥이다.
 
노애리:…… 애인이요? (잘못 들었나? 잠시 제 귀를 의심하며 네게 얼굴을 기웃거린다.)
 
유명한:좋아하는 사람이면 애인이지, 아닌가? (여전히 장난을 치듯 한쪽 눈썹만 치켜뜨고 웃으며 손을 잡아끈다.) 나가면 그것도 상의하십시다. 괴도 양반.
 
노애리:……. (얼굴이 다시금 빨개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이 아저씨는 왜 맨날 이딴 장난만 쳐? 사람 착각한다고 말했잖아! 성난 얼굴이 된다.) …… 지, 진짜 짜증 나.
 
유명한:덕분에 부숴먹은 창문 값도 받아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도 정해야 하고, 대괴도 사망 작전도 꾸며야 하고, 아, 할 일 많다. (딴청!)
 
노애리:……. (네게 보이지 않도록 눈을 가늘게 뜬 채 입을 삐죽였다. 그것 봐. 맨날 장난이잖아.) 됐어요. 됐어. 그냥 어린애 취급을 받고 말지.
 
나선계단의 중간쯤, 너무 높이 올라와 여기서 떨어지면 확실히 죽겠다 싶은 높이에 오자 갑자기 올라왔던 계단들이 스르륵 사라집니다.
 
유명한:……? 야, 야. (왜 X같은 예감은 틀리지를 않냐. 다급히 네 허리를 잡아채 당겼다.) 좀 안을게?!
 
노애리:네? (얼떨떨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고서 상황 파악이 되자 황급히 널 따라 분주히 움직였다.) 자, 잠깐……. 여, 여기서 떨어지면 분명 둘 다 죽을 텐데!
 
유명한:그러니까 안 죽게 안겨! (대답은 듣지도 않고 품에 널 안아들고서 계단을 두 개씩 밟아 뛰어오른다.) 진짜 미치겠네!!
 
노애리:(얌전히 네 품에 꼭 안겨서 구경이라도 하듯 빼꼼히 사라지고 있는 계단들을 바라본다.) 형사님, 따라잡히겠어요!!! 빨리!!
 
유명한:꽉 잡기나 해!!!! (여기서 죽으면 진짜 진짜 곤란하다. 젖먹던 힘까지 짜내 뛰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질 무렵... 사라지던 계단은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해집니다.
 
유명한:(주변을 둘러보며 뛰다 조용해진 느낌에 잠시 발을 멈춘다. 그러나 그것도 말 그대로 잠시였을 뿐 그대로 널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언제 또 그럴지 누가 알아…….) 뒈지는 줄 알았네…….
 
노애리:…… 끝났나? 저, 이, 이제 내려 줘도 괜찮은데요…….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이는 말끔한 얼굴로 올려다본다.)
 
유명한:내가 안 괜찮아. (여전히 심장이 퍼덕거린다. 네 얼굴도 보지 않고 앞만 노려보며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른다. 그렇게 추웠는데 이제 더워서 땀이 날 지경이다.)
 
노애리:내, 내려가고 싶다니까요? 저 멀쩡하게 걸을 수 있어요. 네에? (네 품에서 빠져나오려 어떻게든 몸을 밀어낸다.) 엄청나게 뛰어놓고……!
 
유명한:그러면 진짜 넘어지니까 좀! (자유로운 손으로 네 엉덩이를 찰싹 내려치곤 이를 악문다. 무겁진 않은데 다리가 힘들다. 돌아가면 운동 열심히 해야지……!)
 
노애리:힉!? 그, 그러니까 엉덩이 때리지 말라구요! 이 변태 저질 치한 아저씨야! (얼굴이 빨개져서는 오히려 더 과하게 품에서 버둥거린다.) 내려 줘. 내려 줘! 아무리 저라도 이 정도 염치는 있어요!
 
유명한:원래 염치 하나도 없었거든? 말 좀 들어. 철 좀 들고! (네가 버둥거리면 버둥거릴수록 더 꽉 안고, 더 빠르게 계단을 밟는다.) 어차피 내려도 이 속도 못 따라오니까 얌전히 있는게 돕는 길이야.
 
노애리:……. 내려주는 게 절 도와주는 길이라구요!? (몸을 주먹으로 때려대다 무언가 생각난 듯 계단 아래를 물끄럼 바라본다.) 형사님, 형사님. 저기 봐요. 엄청 높다. 우리가 올라갔던 관람차보다 더 높게 올라온 것 같아.
 
유명한:…… 아,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소리를 빽 지르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여긴 평지다. 평지다. 평지! 평지라고!)
 
노애리:저 그럼 여기서 안 나갈 거예요. 나갈 방법도 안 알려드릴 거구, 형사님 혼자 내보낼 거예요. 네? (아…… 진짜 짜증 나는 고집이다. 콩콩 때리는 손길을 계속했다.) 협박 맞아요.
 
유명한:멍청아, 그런 말을 하면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인다고! 지금, 너 하나 구할 생각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건데……. (짜증 나. 이어지는 협박에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며 팔을 풀어 내려놓는다.) 어떻게 혼자 보낸다는 말을 해?
 
노애리:……. (저도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바닥에 발을 디디고 널 흘겨본다.) …… 전 형사님 구할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거든요. 아무튼, …… 저는 형사님한테 짐이 되는 게 싫어요. 알잖아요, 저 빚지는 거 싫어하는 거……. …… 화났어요?
 
유명한:사람 구하려고 하는 일은 빚 안 따지는 거야. 그게 좋아하는 사람이면 더더욱. 어. 화났다. (그 이상 말을 않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오히려 그 말이 빚이 되는 걸 왜 모르냐고.)
 
노애리:…… 형사님. (속상해진 얼굴로 널 뒤따라가며 괜스레 수갑을 묶인 손을 마구 흔들어댄다.) 저 그렇게 약골 아니에요. 여태까지 목숨 부지하면서 여기까지 기어온 사람이에요. 운도 좋았고. …… 형사님이 절 생각해 준 건 기쁘지만, 네? …… 만약에 나가서 만나는 일이 없다면 빚처럼 남는 게 싫어서 그래요. 뭐든지요…….
 
유명한:약골이 아니어도 그 꼴인 사람 굴릴 만큼 나쁜 새끼 아니거든? (휙 뒤를 돌아보며 반쯤 소리를 질렀다.)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밀려왔나? 사람이 계속 운이 좋을 수는 없어! 나가서 만나는 일이 왜 없는데?! 안 만난다고 해도, 어? 사람 구하려고 한 일로 빚 삼을 만큼 인간 말종으로 보이냐? 잘 모르는 것처럼 굴더니 이젠 나가는 방법도 아네 어쩌네, 진짜 열 받게…….
 
노애리:……. (네가 소리를 치자 흠칫 놀라며 숨을 멈춘 채 한 발짝 물러난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렸다.) 아니, 형사님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그냥 제가……. 최, 최악의 상황은 늘 생각해야 하니까…… 나갈 방법이라는 건 거, 거짓말이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뱉는지도 모르는 채 두서없이 쏟아내듯 말했다.)
 
유명한:최악의 상황, 뭐. 죽기 직전까지 갔으면 충분히 최악인데 뭘 더 생각해. 생각 좀 관둬라. 네가 지금 해도 되는 생각은 딱 두 개야. 나갈 생각, 나가서 나한테 고마워요 인사할 생각! 알겠어? 대답해!
 
노애리:……. (제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대답을 삼키고 우물쭈물 눈치만 살폈다.) …… 그래도……. 만약 제가 나가지 못 하는 게 최악의 상황이니까……. …… 나, 나갈 생각은 할게요…….
 
유명한:무조건 같이 나가. 한 명만 나가야 하면 나도 안 나가.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도 꼭 받을 거니까?! (다시 앞을 바라보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 못 나가게 할 거면 이 망할 세상이 여태까지 가만히 뒀겠어? 나가게 하려고 날 불렀겠지.
 
노애리:……. (한층 풀이 죽은 채 말없이 뒤를 다시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힐끔 뒤통수를 바라본다.) …… 지금 나 짜증 나요?
 
유명한:…… 거짓말 한 것만. (이 망할 탑은 언제까지 올라가야 하는 거지. 일부러 속도를 늦춰 천천히 걸었다.)
 
노애리:…… 응. (작게 대답하고서 더 이상 네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터덜터덜 그 뒤를 따라간다.)
 
이제 거의 올라왔나? 라고 생각할 무렵,
 
당신의 발밑에서 계단이 무너집니다.
 
아찔한 높이에서의 추락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죠.
 
이번에는 끔찍한 고통이 오겠죠. 어쩌면 당신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새로 돋아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차 싶은 다음 순간, 당신은 앞쪽으로 세게 밀려납니다.
 
괴도가 당신을 밀치고, 대신 떨어진 것입니다! 당연히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당신은 이어진 손목에 격통을 느낍니다.
 
사람 한 명의 무게를 버티기엔 역부족입니다.
 
노애리:크, 큰일날 뻔했어요, 형사님……. (수갑의 힘에만 의존한 채 매달려 당황한 얼굴을 네게 내비쳤다.) 다행이다……. 역시 제 순발력 어디 안 가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애리는 미안한 듯 웃어 보입니다.
 
유명한:…….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그저 수갑을 끌어올려 손을 맞잡아 쥐고, 다시 팔을 뻗었다. 힘이 들어감과 동시에 긴장 때문인지 땀이 뚝뚝 흘렀다.) 손, 잡아……. 빨리.
 
노애리:……. 조금만 더 올라가면 끝이니까……. (이내 걱정이 어린 눈으로 네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달려가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아, 아프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애리는, 다른 손으로 자신의 수갑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합니다.
 
팬텀 블루 로즈는 열쇠 따기에 무한한 재능이 있었죠. 그가 무엇을 시도하는지는 뻔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유명한:같이 나가자고 했잖아!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수갑을 만지는 손을 낚아채고 필사적으로 끌어올린다.) 안 돼, 안 된다고……. 너도 죽고 나도 찢기는 꼴 보고 싶어?!
 
노애리:그, 금방 풀 수 있어요. 네? 형사님은 무사히 돌려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유명한:
근력
기준치: 70/35/14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서로의 손목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힘을 써서 끌어올리면, 다행히 상체를 붙잡을 수 있을 정도로 올리는 것에 성공합니다.
 
유명한:닥쳐. (그대로 네 몸을 안고 뒤로 눕다시피 해 완전히 끌어올리려 끙끙거린다. 항상 생각하지만 죽을 작정을 한 사람의 몸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무사히 애리를 끌어올리는 것에 성공합니다. 계단도 잠잠해요.
 
노애리:하아……. (어느새 저도 땀으로 푹 젖은 채 기어올라와 엎어졌다.) …… 형사님, 힘 세네요……. …… 안 다쳤어요? (갈라진 목소리로 힘없이 말을 이으며 옅게 웃어 보인다.)
 
유명한:……. (마음 같아선 뺨이라도 한 대 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겠어. 그저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며 한숨을 쉬었다. 한 번 더 온몸에 힘을 주어 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저 올라가야지. 그래야 돌아갈 수 있겠지.)
 
노애리:형사님, ……. (네가 아무런 말이 없자 괜히 널 부르며 네 옆모습을 올려다본다.)
 
유명한:…….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계속 다리만 움직였다. 어떻게 해야 사람이 이렇게 뒤틀릴 수 있을까. 마음대로 하고 다니기 위해 자기 마음에 빚을 안 남기려는 걸까. 말로는 제게 빚을 지기 싫다곤 하지만, 결국 자기 마음에 남는단 거잖아. 이제 와선 또 마냥 그렇지도 않을 테다.) …… 가만히 있어.
 
노애리:…… 네. (짧게 대답하고서도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지 눈치를 살폈다. 빨갛게 남겨진 손목의 자국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 미안해요.
 
유명한:잘못했다고 해야지. (무뚝뚝하게 대답했으나 여전히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노애리:…… 잘못……. (물론, …… 미안하긴 하지만 잘못을 하진 않았는데. 나는 구해주고 싶었던 것뿐이고, 애초에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네 얼굴을 보자 그저 머뭇머뭇 말을 마저 이었다.) …… 잘못했어요.
 
유명한:왜 잘못했다고 하라는지도 모르지. (잠시 터벅터벅 계단 올라가는 소리만 들렸다.) …… 그렇게 가면 내가 아, 살아남아서 땡 잡았다, 하고 살 것 같냐. 너는 내가 여태 죽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몇 명이나 봤다고 생각하냐.
 
노애리:그,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구요……. …… 형사님은 제가 형사님을 구하면 빚으로 남을 사람이냐고 한다든지, 그렇게 말하지만 형사님을 그런 눈으로 보고 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 (하나도 이해 못 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얕은 한숨을 쉬었다.) …… 제 나름대로의, …… 속죄예요.
 
유명한:사람을 눈앞에 두고 희생하면 안 돼.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쳐.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살아남아야 뭐든 할 수 있으니까. 화도 낼 수 있고, 울 수도 있고, 계속 사랑할 수도 있고. 차오른 숨을 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 무슨 속죄.
 
노애리:…… 모르겠어요. 그런 거. 물론 저도 죽고 싶지 않아서 여기까지 도망쳐 왔지만, …… 여기에 온 순간 받아들였거든요. 아, 여기까지구나, 하고. 그러니 어차피 사라질 목숨이라면 착한 일 정도는 하고 가고 싶었어요. …… 이것도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 (그저 제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뜸을 들였다.) …… 그냥, …… 그냥…… 속죄요.
 
유명한:끝을 예감할 수야 있겠지. 나도, 뭐……. 그런 적이 있었고. 그런데 내가 여기 있잖아. 같이 나가겠다고도 하잖아. …… 사라질 목숨이 아니라 내가 불려왔다고 믿고 싶어. 믿어. 착한 일 그거 살아서 하는 게 더 좋거든. 적어도 이제부턴 날 생각해서라도, 하다못해 놀려먹을 생각이어도 좋으니까…… 그러지 마. (고개를 숙여 네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남긴다.) 목숨값 받을 일 없었는데, 나는.
 
노애리:…… 네. …… 잘못했어요. (얼굴이 붉어진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 몰라요. 모르면 됐어요. 어쨌든 그런 게 있다구요! 조용히 해요.
 
정상에 도착했는지, 드디어 출구가 보입니다.
 
유명한:허이구, 기세 참 빨리 돌아온다. (여태 좀 얽혔다고 그러나. 물론 좀 많이 짜증이 나긴 했지만 어디 야쿠자 쌈박질에 끼는 것보다 훨씬 낫다. 출구가 보이자 고갯짓을 했다.) 저기 봐라. 다 왔네.
 
노애리:(네 말에 따라 고개를 돌리면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출구가 보여 화색이 된다.) …… 이제 진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유명한:아니, 나갈 거야. 나가서 꿀밤 백 대 때려야지. (조금 더 힘을 짜내 빠르게 걸어 올라간다.)
 
출구로 나가 높은 탑 위에 섭니다.
 
보름달을 제외하고는, 별이 하나도 뜨지 않은 밤하늘입 니다.
 
종탑이었나 봐요. 줄이 달린 종이 걸려 있네요. 줄을 당기면 종이 울리는 구조입니다.
 
유명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줄에 쪽지가 붙어 있습니다.
 
유명한:(널 안은 채 잘도 쪽지를 집어 네게 넘긴다.) 읽어 봐.
 
노애리:이, 이제 그만 놓아 줘도……. (부스럭거리며 쪽지를 펴서 읽는다.) '종을 울리고 돌아가세요.'
 
유명한:아, 그렇지. (널 바닥에 조심히 내려주고 줄을 손에 쥐었다.) …… 아까 그놈들 단체로 몰려오는 거 아냐?
 
노애리:…… 설마요. 그럼 또 도망치는 신세 되겠네. 저 그런 거 잘해요.
 
유명한:좋아. 네가 책임지면 되겠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온몸의 힘을 끌어올려 줄을 마구 잡아당겼다.)
 
종을 울리자, 청명하고 맑은 종소리가 퍼져나갑니다.
 
동시에 그 커다란 보름달이 하나의 출구로 변합니다. 공간에 생긴 균열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하늘에 뻥 뚫린 구멍을 보는 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지만, 오늘은 이미 이상한 일들을 충분히 겪었으니까요.
 
하지만, 저 위까지 어떻게 도달할 수 있단 말이죠? 하늘을 날 수 없는데다가, 여긴 비행기나 기구, 하다못해 행글라이더나 거대 풍선도 없는데
 
유명한:뭔…….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 일만 벌어진다. 괜히 목걸이를 흘끗 본다. 지금은 일 안 하냐? 어?)
 
잠잠하네요......
 
유명한:주인 닮았네……. (널 쳐다보며 농담을 한다.) 공중부양 마술 못 해?
 
노애리:글쎄 마술이랑 마법은 다른 거라니까요.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옅은 미소를 띤다.) …… 그치만 형사님, 저를 믿을 수 있어요?
 
유명한:마법이었냐? 그건 몰랐군. (너스레를 떨다 뒤늦게 제 얼굴에 맺힌 땀을 훔쳤다.) 나 살리겠다고 자기 목숨 던지려던 놈을 못 믿으면 여기서 사는 수밖에 없지?
 
노애리:꿈이라고 생각하면, 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잖아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럼 끝까지 제가 가능한 일을 해 볼까요…….
 
그리고 그는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팬텀 블루 로즈의 장갑은 너덜너덜하고 해지고, 손목엔 수갑까지 채워져 있지만. 이 손으로 수많은 일을 해낸, 대괴도의 손이거든요.
 
유명한:마술쇼 1열 관람은 또 오랜만이군. (여전히 농담을 하며 네 손을 꽉 잡았다.) 삐끗하면 진짜 화낼 거야.
 
애리는 아무런 예고도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당신을 끌어당겨, 종탑의 바깥에 발을 디딥니다. 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노애리:…… 높은데, 괜찮아요?
 
유명한:…… 말을 꺼내지 말라고…….
 
그리고는, 종탑으로 뛰어내리듯 당신의 손을 잡고 이끕니다.
 
그만 눈을 감아버리고 추락에 대비하지만......
 
아무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 다시 눈을 뜨면,
 
당신은 하늘 위에 서 있습니다.
 
종소리가 은은하게, 계속 퍼져나갑니다.
 
잠시 숨어 있었던 별들이 하나둘 피어나고, 반짝이는 별빛 아래에서 괴도는 당신을 더 위로, 위쪽으로 끌어올립니다.
 
노애리:후후, 여기 엄청 높아요. 엄청 엄~청. 밑에 보면 안 돼요? (네 양손을 꼭 마주잡은 채 웃음기를 머금었다.)
 
유명한:말을 하지 말라니까! (눈을 살그머니 떴다가도 바로 꾹 감았다. 여태 밀린 공포감이 단숨에 몰아쳐 온몸이 뻣뻣했다.)
 
분명히 계단도 받침대도 없는 하늘인데, 당신은 떨어지지 않고 그가 이끄는 대로 올라갑니다.
 
노애리:후후, 팬텀 블루 로즈의 사상 최대최후의 마지막 마술이에요. 어쩌면 기적일지도……. 눈 떠요, 네? 제가 꼭 붙들고 있을게요.
 
유명한:……? (최대 최후의 마지막? 의아함에 눈을 뜨면 온 사방이 별하늘이라 절로 숨이 멎는다.) 높, 높네…….
 
이미지
 
그렇게 서서히, 서서히 달이 있는 곳까지 평화롭게 올라갑니다. 어쩐지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같고......
 
달의 모양을 한 문 앞에서 한쪽 손을 놓아도, 당신은 그대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바닥이 있는 것처럼요.
 
노애리:…… 봐요, 괜찮죠?
 
유명한:…… 응. 왠지 모르겠지만 괜찮아졌어.
 
노애리:……. (나가기 전에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서성였다.) …… 형사님. 아저씨, …… 있잖아요.
 
유명한:으응. (주변과 네 얼굴을 열심히 번갈아 바라보다 네가 부르자 눈을 맞춘다.)
 
노애리:사실, 그 남은 귀걸이…… 훔쳐 가려고 했어요. 결국 이번에도, 저로 인해 아저씨가 위험을 겪게 됐잖아요. 귀걸이를 가져가면 저와 형사님의 연결점은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니까. …… 그럼 정말 문제 해결!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명한:…… 안일하네.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 사이가 그렇게 쉽게 지워질 거면, 이 귀걸이가 있어도 지워졌겠지. 훔치고 나면 뭐 어떻게 할래. 또 혼자서 아저씨 보고 싶어, 하고 훌쩍훌쩍 울면서 보내게?
 
노애리:…… 아, 안 그랬거든요!? 한 번도 그런 적 없어요! 바보. (발끈하듯 소리치고서는 못마땅한 얼굴로 다시 얌전히 말을 이었다.) …… 그치만 아저씨도 그랬잖아요. 서로 봐서 좋을 거 없는 거 아니냐고……. …… 사실인 걸 아니까.
 
유명한:그렇게 하면 네가 괜찮을 줄 알았어. 성가시는 아저씨랑 얽히느니 혼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잘 지내겠지, 문제 없겠지 했는데 아니잖냐. 나도 잘못 생각한 거지. …… 옆에 잘 끼고 이상한 짓 하려 하면 붙잡아야겠더라. 암만 괴도니 뭐니 해도…… 도둑질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쁜 놈들을 혼내 주고 싶은 거잖아? 나랑 똑같네, 뭐.
 
노애리:…… 귀걸이, 안 주시겠다는 뜻이에요? (샐쭉하게 곁눈질로 흘겨보지만서도 귀끝은 붉어져 있었다.) …… 아저씨도, 나를 이후에 잘 먹고 잘 살 그 정도 사람으로 본 건 똑같은데 뭘.
 
유명한:…… 응. 나랑 있자. 빈말로라도 누구보다 잘 대해 주겠다곤 못 하지만, 명줄은 잘 잡아 주잖냐. (덩달아 뺨을 붉게 물들인 채 헛기침을 한다.) 아, 아까는 아주 잘 지냈다며?!
 
노애리:……. (결국 얼굴까지 새빨개진 채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 그건……! 그럼 전부 다 말하겠어요!? 매일같이 사교도들한테 쫓기고 싸웠더니 이번에는 다른 차원에 빠져서 못 나가는 바람에 죽을 위기였다고!? 말할 리 없잖아요! 무슨 얼어죽을 쇼핑에 휴양지야. …… 그런 거 갈 엄두도 못 냈어.
 
유명한:…… 잘 말하네. (아예 다른 차원이었구나. 뒤늦게 한 번 더 이해하곤 피식피식 웃었다.) 사교도 퇴치도 좀 쉬엄쉬엄 해야지. 돌아가면 쇼핑도 하고 놀러도 가자. …… 나 연차도 있고 포상휴가도 안 썼는데.
 
노애리:……. (조금 솔깃하는 얼굴로 한 번 힐끔거린다.) …… 정말? 진짜예요? …… 계속 같이 있어도 돼요? 평소에는 짜증밖에 안 나는데…….
 
유명한:나만 짜증이 나냐. 너도 날 텐데. (그럼 대충 된 거 아닌가 싶다.) 너 어차피 갈 곳 없지?
 
노애리:…… 뭐, …… 아마도요. 이제 사교도들도 제가 죽은 줄 알고 쫓아오진 않을 것 같지만……. (중얼거리며 발끝으로 허공을 톡톡 두드린다.)
 
유명한:왜, 쫓아오진 않을 것 같아도 복수는 하고 싶어? (아주 조심스레 그런 네 발끝을 제 발로 톡 친다.)
 
노애리:……. (들릴 듯 말 듯 작게 띄엄띄엄 덧붙인다.) …… 이참에 괴도, 그만둘까 싶어서…….
 
유명한:…… 괴도의 자부심은 다 어디 갔대. (귀엽네. 고개를 숙여 뺨에 쪽 입을 맞춘다.) 그만두면 뭐 할 거냐?
 
노애리:그, 그러니까 좀……! 갑자기 사람 놀래키지 말라구요. (네 입맞춤에 허둥지둥 반 발짝 물러난다.) …… 몰라요. 거기까진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 일단 일반인처럼 산다는 감각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고 할까……. 쫓기거나 숨어 다니지 않구…….
 
유명한:야, 야, 뒤로 가지 마. (무섭다. 바짝 달라붙으며 눈을 깜박인다.) 하긴 급하게 생각할 거 없지. 한동안 푹 쉬면서 노는 일에 집중해. 상담 같은 것도 다녀 보고,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싶어지면 하고.
 
노애리:…… 그럴 수 있을까요? 내가……. (자신은 없는데. 덧붙이며 시선을 떨군다.)
 
유명한:왜? 기껏 돈도 집도 있는 남자 잡았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하냐. (일부러 그리 말하곤 허리를 꼭 끌어안고 억지로 눈을 맞춘다.) 정 두려우면 나 끌고 가면 되는데 왜.
 
노애리:……. (가까이 다가온 네 얼굴을 조심스레 올려다보며 네 팔을 꼭 감싸잡는다.) …… 그럼, 저 정말 또 만나러 갈 거예요? 네? 지, 진짜 약속했어요……. 다 기억할 거니까.
 
유명한:그럼 방금까지 속으로 혼자 안 만나려고 생각했냐? (진짜 속을 알 수가 없네.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러시든지요. 팬텀 내맘대로 로즈 씨.
 
노애리:그게 아니라……. 아, 이상한 호칭 붙이지 마요. 웃긴 사람이야, 진짜……. (네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작게 터뜨린다. 양팔로 네 뒷목을 감싸안고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한다.) 그럼……. …… 명한 씨. …… 앞으로도 제 약점이 되어 주실래요?
 
바람이 불어, 당신의 목을 휑 훑고 지나갑니다. 귀걸이는 아직 당신의 목에 걸려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참 많은 선택을 해왔죠. 이번이 당신의 마지막 선택이 될 거예요.
 
유명한:응. …… 내 자랑이 되어 줘, 애리. (원래 사랑은 약점을 동반하는 거니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날뛰던 삶의 굴곡이 다시 평탄해질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팬텀 블루 로즈에게 뜻을 전하자, 그는 괴도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여린 표정이 됩니다.
 
하지만 곧 자신만만한, 당신에게 익숙한 미소로 변하네요.
 
괴도는 당신의 목에 걸린 귀걸이를 살짝 매만집니다. 서로의 귀와 목에서 푸른 장미꽃이 반짝입니다.
 
노애리:고마워요, 명한 씨. 그럼…… …… 다시 만나러 갈게요.
 
애리가 당신을 잡았던 손을 떼자, 언제 그랬냐는 듯 수갑이 깔끔하게 풀어집니다.
 
유명한:기다릴게.
 
당신은 자신을 끌어당기는 부드러운 힘을 느낍니다.
 
공간의 균열로, 달의 구멍을 통해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노애리:……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작은 속삭임을 끝으로 당신은 눈을 감습니다. 바야흐로 위대한 모험의 끝입니다.
 
새까만 어둠이 눈꺼풀을 덮고……
 
……
 
…… 새 소리가 들립니다. 아침입니다.
 
유명한:으어……. (번쩍 눈을 떴다.)
 
잠에서 깨면, 아마 간밤 좋은 꿈을 꾼 것 같아요. 더없이 개운하고 뿌듯한 기분입니다.
 
당신은 괴도의 전언을 생각하며, 서서히 잠기운을 몰아냅니다.
 
…… 어디선가 꽃향기가 납니다.
 
유명한:……. (내 몸 맞지. 돌아온 거 맞지? 누운 채로 제 몸을 더듬어보다 꽃향기가 밀려오자 눈을 꿈벅이며 창가를 본다. 웬 냄새야?)
 
왠지 창문이 열려 있네요. 분명히 창문을 닫고 잤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그때……
 
누군가 아주 가뿐하게, 창턱에 착지합니다.
 
어디서 들어온 걸까요. 이 사람.
 
마치 새가 날아 들어온 것처럼. 환하게 웃는 그는, 푸른 장미꽃 다발을 품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고백으로 오해하면 어쩌려고요!
 
다시 만난 애리가 즐거운 듯이 웃습니다.
 
노애리:좋은 아침이에요, 내 형사님. …… 아, 이제 형사님이라고 부르는 건 조금 그런가?
 
물론, 이것은 당신에겐 최선의 결말이겠지요.
 
명한은 애리와 함께하는, 진정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명한과 애리는 재회합니다. 함께 나눈 귀걸이는 여전합니다.
 
둘은 앞으로 어떻게 지내게 될까요? 명한은 애리를 다시 체포하려 할까요?
 
애리는 표면적인 괴도 일을 그만둘까요?
 
이후의 일은 KP와 PL이, 그리고 두 명의 탐사자가 정할 일이겠죠.
 
명한의 행복을 빌며, 캠페인 엔딩 보상으로 이성 회복 3가 지급됩니다.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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