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션카드 편집 커미션  @L0V3DR34M / 라노벨 표지 트레 

 

 

 

 

 

 

KPC 키사키 에리

PC 모리 코고로

 

 

 

w. 수연

 

 

 

 

BGM리스트

더보기

*본 시나리오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도입 :: 大豆田とわ子と三人の元夫 OST - Good night (Variation 6) https://youtu.be/ItG2ixQMZWk
기묘한 공포 :: LAYTON’S MYSTERY JOURNEY OST - Puzzle-Solving Piece https://youtu.be/DQjS_XZpDx0
목표는 너랑 연애해서 해피엔딩! :: Bgm President - Brunch https://youtu.be/bO5FQBl77VU
첫 번째 에피소드 :: 海がきこえる OST - First Impression (piano cover) https://youtu.be/ahYluCa6VxI
수상한 자 :: Wonder Egg Priority OST - キマグレガール https://youtu.be/BLnYt3_HoUU
두 번째 에피소드 :: コクリコ坂から OST - Canal in Twilight https://youtu.be/4WIvJUL05GY
이상 기후 :: LAYTONS MYSTERY JOURNEY OST - Tension Mounts https://youtu.be/8AFVUTh8PGo
세 번째 에피소드 :: Love Letter OST - A Winter Story https://youtu.be/4YlWxDD3-OE
졸업 파티 :: Ristorante Paradiso OST - Bon Appetit https://youtu.be/TlaIerrtkHg
댄스 플로어 ::  Love Letter OST - Childhood Days https://youtu.be/BZQ_vZxFvRI
현실 복귀, 그리고 진상 :: Ristorante Paradiso OST -  Yureru Kokoro https://youtu.be/OJ70D6z_eiM
복선 삭제 :: あいみょん - 桜が降る夜は (Instrumental) https://youtu.be/lcLmA-U-O-A
엔딩 :: あいみょん – 空の青さを知る人よ https://youtu.be/ztdpBUDf00o

 

 

 

 

더보기

 

 
 
이미지
 
바쁜 일상에 휘둘리던 코고로는 지난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가까스로 잠들었습니다.
 
분명 그랬을 텐데, 그런데 눈을 뜨니 웬 처음 보는 길거리입니다.
 
똑같은 교복을 단정히 챙겨 입은 학생들이 한 방향으로 걷습니다.
 
小五郎:이게 뭐야……. (꿈인가? 발에 못질이라도 당한 듯 서서 한참을 두리번거린다.)
 
코고로는 곧 자신도 똑같은 차림새라는 걸 눈치챕니다.
 
졸업한 지가 언젠데, 교복?
 
어리둥절한 당신의 머리카락에 분홍색 꽃잎이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은 등굣길 한복판인 것 같습니다.
 
지척에 익숙한 이름이 새겨진 정문이 보입니다.
 
그 너머, 마리아상이 두 팔 벌려 학생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꿈인가? 꿈이겠지?
 
小五郎:별 꿈을 다 꾸네. (꿍얼거리면서도 학생들 사이에 섞여 걸음을 옮긴다. 그보다 학교는 질색인데 왜 하필 학교람.)
 
학생들에 섞여 교문으로 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사태를 파악하고 있자면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英理:길이라도 잃어버렸어?
 
지독하게 낯익은 얼굴의 누군가가 같은 교복을 입고 당신을 바라봅니다.
 
小五郎: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에리. 이름표를 보지 않고도 당신은 그 이름을 떠올립니다.
 
Handout. 주인공, 사랑이 가라사대를 순서대로 공개합니다.
 
에리와 같은 색 머리카락, 에리와 같은 색 눈. 마주 보는 얼굴의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분명히 에리입니다.
 
현실의 에리와 꼭 닮아서 인상 깊었던.
 
(믿을 수 없지만) 여기……
 
청춘 로맨스 소설, 「사랑이 가라사대」의 배경인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 같습니다.
 
小五郎:……. (소설을 너무 재밌게 읽었나? 아니, 그런데 꿈속까지 쫓아올 건 뭐야. 네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만 끄덕인다.)
 
소설에 빙의하다니,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머리가 띵합니다.
 
San C (0/1).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56/28/11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英理:…… 데레테? (네 명찰을 바라보며 작게 되묻듯이 중얼거린다.)
 
시선을 돌리면 흐릿한 이름표에는 분명히 데레테라고 쓰여 있습니다.
 
데레테.
 
「사랑이 가라사대」의 등장인물 중 그런 이름의 캐릭터는 없었습니다.
 
주인공도, 주인공의 친구도, 주인공의 라이벌도 아닙니다. 아마도 역할이랄 게 없는 엑스트라일까요?
 
小五郎:(데레테가 뭔데. 누군데.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게 제 이름인 것 같으니 뒷머리만 만진다.) 어어. 너는, 그. (흘끔.) 에리지? (진짜 어색하다…….)
 
英理:응. 날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네. …… 너도 A 클래스지? 입학식 때 우리 같은 줄이었잖아. 그것도 기억나?
 
小五郎:어……. 응. 기억하지. (그랬냐고. 여기에서도 얽히는 거냐고. 어색하게 웃었다.) 같은 줄이었나? 솔직히 입학식 때 일은 기억이 잘 안 나서.
 
小五郎: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왠지 뺨이 따끔따끔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면......
 
일정한 속도로 정문을 향해 걷던 학생들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본관을 향해 걸으면서도, 더는 목이 꺾이지 않을 때까지 뒤를 돌아볼 정도입니다.
 
감정이 텅 빈 눈들이 감시 카메라처럼 당신을 주시합니다.
 
모든 학생이 전부, 하나 같이, 누구도 빼놓지 않고!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SanC 0/1.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에러로 가득한 풍경을 등지고 에리만 옅게 웃고 있습니다.
 
英理:괜찮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앞으로 한 해 동안 보고 살게 될 테니 얼굴 정도는 익혀 두는 게 좋을까, 싶어서 기억하고 있었어.
 
지이잉.
 
당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머니 속에 얌전히 잠들어 있던 스마트폰이 몸부림칩니다.
 
小五郎:그, 어, 상냥, 상냥하네? 하하. 하하하……. (뭐냐. 내가 내 와이프를 보는데 왜 저렇게 째려보는 거야. …… 와이프라 생각해도 되나? 진동이 울리자 주머니를 뒤적인다.) 잠깐만.
 
검은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설정? 딱딱한 문장은 사람이 보낸 메시지라기보단 어떤 프로그램의 자동 응답 같습니다.
 
서비스 불가 지역이란 표기와 함께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연결이 안 되는데 방금 그 메시지는 어떻게 수신한 거지?
 
英理:왜 그래? (고개를 기울인다.) 무슨 일 있어?
 
小五郎: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소설에 이런 설정이 있었는지도 희미하다. 그냥 지금 눈앞의 이 녀석이 가장! 날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보다 슬슬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
 
英理:응. 이만 들어가자. (발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네 쪽을 돌아본다.) …… 어차피 같은 반인데 같이 갈래?
 
여전히 당신의 뒤에서 집요하게 시선이 쏟아집니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小五郎:그러든가. (아. 알겠다. 이건 고등학교 시절하고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질투든 웃음이든 끝없이 달라붙는 시선이 너무 오랜만이라 이상했을 뿐이다. 멋대로 납득하며 제 머리 뒤로 양손을 깍지 껴 얹고 먼저 걸음을 옮긴다.) …… 어디로 가야 했지?
 
英理:그럼 길 안내 겸 같이 가자. 나는 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본관 3층이었던가? (네 보폭에 맞추어 종종걸음으로 뒤따라가며 말했다.) 큰일이네, 자기 반이 어디인지도 몰라서 길을 잃는다니.
 
小五郎:뭐야. 너도 정확히 모르잖아. (피식 웃고서 널 돌아본다.) 그래서 네가 온 게 아닐까~ 싶은데.
 
英理:…… 그, 그래도 교무실이나 보건실 같은 기본적인 곳의 위치들은 전부 외우고 있거든. (시선을 피하며 뾰로통한 얼굴을 했다.) 나중에 학교 안내라도 다시 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네.
 
““지금 KPC랑 있는 애 누구야?”
 
“몰라, 뭐지? 올해 신입생 중에 저런 애가 있었어?”
 
“어디서 굴러온 돌이길래 둘이서…….”
 
주변을 둘러싼 엑스트라들이 티 나게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가던 길도 멈추고 두 사람의 주위로 몰려듭니다. 에리는 눈치채지 못한 건지 홀로 태연합니다.
 
小五郎:어, 나중에 부탁한다. (제 경험보다 노골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건, 꿈이라 그렇겠지. 게다가 소설이었으니까. 흠. 네 얼굴을 보고서 비로소 보폭을 좁혀 걸으며 손을 뻗어 손끝으로 볼을 콕 찌른다. …… 이야. 촉감도 에리랑 똑같네.) 삐쳤냐?
 
英理:자, 잠깐……. (당황한 얼굴로 네가 찌른 뺨을 감싸잡었다.) 그, 그런 거 아니거든. …… 아까 전에는 되게 얼빠진 것처럼 서 있더니 금세 뻔뻔해지는구나, 너. 그러면 학교 안내 같은 거 안 해줄 거야.
 
술렁거리던 엑스트라들은 당신들의 뒤로 졸졸 쫓아옵니다. 여전히 당신을 향한 의문과 견제의 목소리도 함께요.
 
에리는 혼자 음 소거 기능이라도 탑재한 것 같습니다.
 
에리의 뺨을 찔렀어! 당신의 행동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小五郎:아깐…… 잠깐 졸렸을 뿐이야. 그렇게 분하면 너도 나 찌르든지. (확실히 에리라고 하기엔 반응이 훨씬 잔잔하다. 자꾸 들려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 쫓아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남 구경이나 하러 왔나?
 
그러나 여전히 이상징후가 드러납니다.
 
엑스트라들은 당신에게 대답하긴커녕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철저히 무시합니다.
 
투명 인간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아무리 엑스트라라도 취급이 너무하네…….
 
당신의 말에 에리가 뒤를 돌아보면 하나 같이 약아빠져선 그때만 아닌 척 복도 곳곳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쫓아옵니다.
 
이 미친 전개에 적응하지도 못했는데, 의심과 경계로 가득 찬 시선까지 소시지처럼 달고 다니자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英理:후후. 아침잠이 오래도 가는 타입인가 봐. (농담처럼 말하고서는 계단을 올라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 아, A반. 저기 있다. 어때? 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小五郎:아침마다 일어나기 싫어서 죽겠던데. 우등생은 안 그런가? (얘는 아무것도 모르나 보다. 주인공이란 거 참 편하네. 네가 말한 곳을 쳐다보곤 그대로 손목을 붙잡아 끌고 간다. 일종의 버릇이다.) 그럼 앞으로 길안내는 네가 담당하면 되겠네. 빨리 들어가자. 네 추종자들이 자꾸 따라붙어서 짜증나거든~
 
英理:앞으로라니, 나는 딱 한 번만 알려 줄…… 앗, 잠깐만……! 데레테. (허둥지둥 네가 가는 대로 교실 쪽으로 어정쩡하게 끌려간다.)
 
小五郎: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나 오늘 등교하다가 길에서 에리 봤다?”
 
“헐, 부러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 거지.”
 
교실 문가에서 수다를 떠는 엑스트라 두 명이 보입니다.
 
웃고 떠들던 두 사람은 곧,
 
“나 오늘 등교하다가 에리 봤다?”, “헐, 부러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 거지.”
 
똑같은 대화를 반복합니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그 둘만이 아닙니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학생들은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끝에서 끝까지 왕복합니다.
 
하품하는 학생은 정확히 1분에 한 번씩 하품을 반복하고 “어제 잠을 설쳤어. 에리랑 같은 반이라니까 떨려서…….”라고 말합니다.
 
나뭇가지에 앉은 흰 비둘기도 예외는 아닙니다. 날개 치는 소리와 함께 가지에 앉았다가 고개를 서너 번 갸웃거리곤 다시 후다닥 날아갑니다.
 
전부.
 
모든 엑스트라가 단편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부여받은 역할은 그것뿐이라는 듯.
 
기묘한 공포가 느껴집니다. San C 0/1.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뭔 꿈이 이래. 게임 같구만……. 아, 혹시 이 꿈속 세계 자체가 게임이란 설정인가? 아가사 박사님이나 하실 만한 상상이네. 주변을 둘러보다 여전히 손을 놓지 않고 다른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한다. 아직도 전파 안 잡히나.)
 
여전히 잡히지 않습니다.
 
英理:데레테, 네 자리 어디야? 내 자리는 저기 창가쪽인데. (손끝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가리킨다.)
 
A 클래스에 도착하면 모든 등장인물이 이미 착석한 후로, 빈자리는 에리의 옆자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小五郎:몰라. (그딴 걸 알겠냐. 주변을 다시 보곤 혀를 차며 네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여기밖에 없네. …… 야, 에리. 너 인기 많냐?
 
당신이 옆자리에 앉자 교실 전체가 술렁거립니다.
 
“일부러 아무도 안 앉고 비워둔 자리인데.”
 
“에리의 옆자리잖아. 비워두는 게 불문율이라고.”
 
“왜 쟤가…….”
 
“그래서 대체 쟤가 누군데?”
 
英理:넌 대체 알고 있는 게 뭐니? (못마땅하게 대답하고서는 가방에서 가지고 온 교과서들을 확인한다.) …… 인기?
 
小五郎:네 이름 정도. (다리를 꼬고 발끝을 까딱거리며 네 옆얼굴을 빤히 본다. 진짜 완전 똑같이 생겼는데. 그보다 지금 아무것도 안 들리는 것 같으니 확인이나 좀 해 봐야겠다.) 그래. 인기. 지금 계속 애들이 내 욕만 하고 있거든. 무슨 학교의 여왕이라도 되는 것 같다?
 
英理:…… 욕?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책 두어 권을 미리 꺼내 두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 인기라고 말해도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 알고는 있어. 그런데 그런 건 왜 묻는 거야? 내 옆자리라 불만인 거야?
 
小五郎:사람은 칭찬하는 말보다 까내리는 말에 귀가 가는 게 보통이라. (네 이어지는 되물음에 웃음을 터뜨리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도 고생 참 많겠다 싶어서. 너랑 비슷한 놈을 하나 알고 있거든. 불만이면 어쩌게. 저 놈들 다 물리쳐 주게?
 
英理:…… 어느 정도는 익숙해. 내 옆자리라 불만이면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서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힐끔 널 바라본다.) …… 그래서? …… 진짜 불만이야?
 
小五郎:바꾸면 또 새로 앉는 놈이 같은 취급을 받겠지. (근데 표정은 완전 똑같은데. 몸을 돌려 아예 널 향했다. …… 더 놀리고 싶어.) 완전 좋은데?
 
英理:……. (예상치 못한 대답에 정곡이라도 찔린 사람처럼 깜짝 놀라더니, 귀를 붉히며 급하게 널 외면한 채 고개를 돌린다.) …… 그, 그럼 여기 계속 있으면 되겠네. …… 그럼 이제 불평은 안 받을 거니까 미리 알아둬. 나중에 바꾸게 해 달라고 해도 난 모르는 일이니까…….
 
小五郎:어차피 혼자 앉는 것도 재미 없었을 거고, 네가 원하는 인기도 아닐 거고. (다시 네 볼을 콕콕 찌른다.) 저기요, 공주님. 부끄러움 타나? 응?
 
英理:…… 부끄럽기는 누가! 하, 하지 마! 이런 거……. (가볍게 네 손을 밀어내고 입술을 우물거리며 괜스레 책을 뒤적인다.) …… 만약 수업 시간에도 이렇게 귀찮게 굴면 내가 바꿔버릴 거야.
 
小五郎:그럼 다른 거? (의자를 잡아당겨 바짝 가까이 앉아 네 얼굴을 감상한다. 솔직히, 어린 시절의 아내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오겠나. 퍽 즐거웠다.) 수업 끝나고 나서는?
 
英理:……. (저를 빤히 지켜보는 네 시선이 느껴져 곤란한 얼굴을 그대로 내비쳤다. 어떻게든 그 시선을 외면하려 애쓰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 그건……. …… 아주 가끔 정도라면…….
 
小五郎:나, 전부 다 모르니까 가르쳐줬으면 하거든. (지금 이 녀석은 순전히 사람이 착해서 도와줄 뿐이다.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중에 초콜릿 많이 선물해 줄게. 불쌍한 사람 돕는다 치고~
 
英理:…… 초콜릿? (그제서야 다시 책에서부터 눈을 떼고 곁눈질을 했다. 조금은 화색이 도는 얼굴이었다.) …… 별로 필요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 답례라면 잘 받아들여 둘게. …… 그리고 나는 아까 말했듯이 모르는 건 한 번씩만 알려 줄 거야. 두 번씩 알려 주는 건 안 좋아해.
 
거대한 종소리가 울립니다.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의 하루를 알리는 경종입니다.
 
그리고는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며 담임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네요.
 
小五郎:그것도 너무 달콤하고 맛있어서 황홀한 기분이 드는 초콜릿. (…… 여기에도 고디바가 있나? 바로 떠오르는 초콜릿 브랜드가 그것 뿐이다. 선생이 들어오는 것을 보곤 소곤소곤 귀엣말을 건넨다.) 미안. 나는 열 번 스무 번을 알려 줘야 알아듣는 사람이라 고생 좀 하겠다.
 
모든 인원이 착석하자 담임 교사가 교탁에서 출석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1번부터 24번까지. 이름의 첫 글자 순으로 차례차례 호명하면 엑스트라들도 착착 대답합니다.
 
“에리.”
 
英理:네.
 
에리의 순서에 또 다들 쓸데없는 소리를 웅성거린 것만 빼면요.
 
그리고 담임 교사는 출석부를 접은 뒤 첫날의 당부사항을 전합니다.
 
오늘부터 정상 수업이다, 급식실에 이동할 땐 뛰지 말아라, 매주 수요일에는 저녁 예배가 있다…….
 
…… 자연스럽게 코고로의 호명은 건너뜁니다.
 
小五郎:(뭐냐. 첫날이었냐.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밖이나 본다. 이름을 부르든가 말든가 어차피 꿈인데 뭘.)
 
英理:…… 그러면……. (모든 조례가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 제 스마트폰을 꺼내 네 쪽으로 살그머니 밀었다.) …… 연락처나 알려 줘. …… 그냥 혹시 모르니까. 네가 또 학교에서 길이나 잃으면 곤란하고…….
 
小五郎:어? 어. 잠깐만. (제 휴대폰도 꺼내곤 생각한다. 번호? 번호 모르는데. 혹시 모르니 화면이나 켜본다.)
 
달라진 화면은 없습니다. 평소에 쓰던 번호랑 같은 번호일까요?
 
小五郎:(성가시네. 일단 네 휴대폰에 익숙한 번호를 눌러 통화를 걸어 본다.)
 
낯선 번호와 함께 당신의 핸드폰이 울립니다.
 
小五郎:…… 자. (수신 거부를 하고 네 휴대폰을 돌려준다.)
 
英理:학교에서 무슨 일 있거나 하면 이 번호로 연락해. (네게서 휴대폰을 받아들고 주머니 안에다 넣어두었다.) …… 일단은 짝꿍이니 한 학기 동안 잘 부탁해.
 
小五郎:나야말로 잘 부탁한다. (네 번호를 대충 저장해놓고 아까 같은 알림은 없는지 열심히 확인한다.)
 
D20 판정합니다.
 
小五郎:
rolling d20
 
(
8
 
)
 
 
=
8
 
동시에 징, 스마트폰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SYSTEM] 현재 호감도 8점.
 
호감도? 점수? 이게 무슨 게임 공략 같은 표현인지…….
 
Handout. 호감도 시스템을 공개합니다.
 
연달아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小五郎:(돌겠네……. 뭐가 이렇게 본격적이야. 호감도 시스템을 노려보다 다음으로 도착한 메시지에 얼굴이 더 구겨진다. 이건 대체 뭘 불러오는 거냐고. 전체 진행도 같은 건가?)
 
스마트폰을 확인하면 발신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小五郎:(확인한다!)
 
보내는 이는 텅 비어 있습니다. 연락처도 메신저 아이디도 확인할 수 없지만……
 
답을 보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小五郎:(너인마누구야. 간단하게 메시지를 보낸다.)
 
답장을 보내면 ‘발송 실패’ 표시 대신 ‘읽음’ 표시가 뜹니다.
 
곧 상대의 채팅창에 점 세 개가 떠오릅니다. 무언가 적고 있는 것처럼.
 
[SYSTEM]:응답할 수 없는 질문.
접근 권한 없음.
 
小五郎:여기는 어디? (일단 뭐라도 보내봐야겠지. 귀찮게…….)
 
[SYSTEM]:당신이 아는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
당신은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인물.
 
메시지는 당신의 정체를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小五郎:그럼 내가 왜 여기에 있는데. (로봇이야 뭐야. 말투가 뭐 이래.)
 
[SYSTEM]:기록을 불러오던 중 잘못 섞인 불순물.
 
小五郎:그게 무슨 소리야. 처음부터 설명 좀 해.
 
[SYSTEM]:[SYSTEM] 응답할 수 없는 질문.
 
小五郎:(아오!) 응답할 수 있는 질문을 알려 주든가!
 
[SYSTEM]:불가능.
 
小五郎:가능한 건?!
 
[SYSTEM]:기록을 불러오는 중에는 다른 작업을 병행할 수 없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대기 요망.
 
小五郎: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SYSTEM]:잘못 휘말린 외부인은 이야기가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감.
 
그럼 대체 얼마나 걸리는 거야?
 
지금 입학식이고 완결 시점은 졸업식이니까……
 
3년이요? 3년? 3녀어어언?!
 
小五郎:…… 이거 꿈 아니었어? (어?)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만 옆에서 계속 말을 겁니다.
 
英理:누구랑 그렇게 문자를 해? 곧 수업 시간인데.
 
에리의 관심을 받으면 정해진 수순처럼 엑스트라의 시기, 질투가 따라옵니다.
 
“에리가 왜 저런 애를 특별 취급하는 거지?” 모난 목소리가 튀어나오네요.
 
小五郎:별 거 아니야. (엑스트라들의 목소리를 완벽히 무시하고 손을 내저었다. 이 몸은 지금 엄청나게 심란하다고. 꿈인 줄 알았는데……. 이게 그건가? 이세계 환생?) 근데 오늘 수업 몇 시 즈음에 끝나?
 
英理:…… 네다섯 시 아닐까? 첫날인데 벌써부터 집에 갈 생각만 하고 있어?
 
[SYSTEM]:새로운 방법 확보.
 
小五郎:끝나고 너랑 놀 생각 하는 중인데. (대답하며 손을 열심히 놀린다.) 한번에전부보내라
 
[SYSTEM]:기록을 불러오는 목적은 개연성의 파악.
개연성을 모두 충족하면 완결까지의 소요 시간 단축 가능.
 
시스템은 어렵고 복잡한 표현으로 엔딩 조건의 충족을 요구합니다.
 
英理:…… 미안한데 오늘 수업 끝나면 공부하러 갈 거거든? 흥.
 
그러니까, 원작 내용이…….
 
대충 사랑에 빠지고 방해꾼들을 만나고 쫓아내고 질투하고 화해하고 졸업 파티에서 미래를 약속하며 해피엔딩! 짜잔! 이었던 것 같은데.
 
小五郎: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잊을 리 없습니다. 「사랑이 가라사대」의 모든 이야기는 코고로가 낱낱이 꿰고 있으니까.
 
Handout. 세 가지 에피소드를 한 번에 공개합니다.
 
호감도 80점과 주요 에피소드 재연.
 
그 어디에도 상대가 누구여야 한다는 조건은 없습니다. 어떻게든 개연성만 충족하면 끝난다는 거잖아요?
 
물론 원작대로라면 에리와 모든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건 상대 주인공이어야 할 겁니다. 진정한 사랑에 빠지고 영원한 미래를 약속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려 3년. 코고로도 넋 놓고 기다릴 순 없는 노릇입니다.
 
英理:데레테. 선생님 오셨어. (네 팔을 툭툭 두드린다.)
 
小五郎:……. (고개만 대강 끄덕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하. 일단…… 학교 끝날 때까지 잠이나 자자.)
 
새로운 교사가 칠판에 글씨를 적고 있습니다. 녹색 판을 기어 다니는 꼬부랑글씨는 영어도, 독일어도 아니고 무려 라틴어군요.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 신약 성경은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만, 로마의 교인이 점차 늘어나며 라틴어 문헌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라틴어를 배워둘 필요가 있으며…….”
 
과목의 취지를 설명하는 교사는 분명히 교실을 보고 있습니다만, 당신의 수업 태도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여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데도요.
 
기계적인 필기 소리가 교실을 채웁니다. 에리만 걱정스러운 눈치를 이따금 살핍니다.
 
당신을 배제하는 세계와,
 
당신에게 다정한 주인공.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결심할까요?
 
에리의 운명을 망쳐서라도 자신의 운명을 되찾고 싶나요? 아니면 에리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3년이나 미루어 둘까요.
 
小五郎:(골 때리는 글자를 외면하고 책상에 엎드린다. 만약 현실에서 사라진 거면 란이 걱정할 텐데. 에리도…… 분명 난리가 날 거고. 최대한 빨리 나가는 수밖에 없다. 요 꼬맹이에겐 좀 미안하지만, 그게 시스템 탓이지 내 탓이냐. 드르렁.)
 
분명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외따로 떨어진 세계를 견디는 건 너무 외롭고 서글프니까요.
 
게다가 에리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확신이 듭니다.
 
코고로가 잠시간 그 자리를 취하더라도, 결국 에리는 상대 주인공과 예정된 완결을 맞으리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코고로의 세계 복귀 프로젝트,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당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에리가 상대 주인공에게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도서실에서의 만남’이었습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에리에 대한 소문을 들은 상대 주인공이 던진 한 마디를 또 우연히 지나가던 에리가 듣게 되는 식이었죠.
 
원작에서야 모든 과정이 우연으로 이루어졌습니다만 엑스트라인 당신에겐 어림도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당신이 직접 상황을 조성해야 한단 겁니다.
 
다행히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재연하기 쉬운 편입니다.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 어디를 가도 에리에 대한 소문이 차고 넘치니까요.
 
일단 수업이 끝났으니 도서실로 가봐야겠습니다.
 
小五郎:(마음 편히 자려고 했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도서실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터벅터벅…….)
 
도서실로 가는 복도, 그 안의 공간에선 여전히 반복된 행동을 되풀이하는 엑스트라들이 돌아다닙니다.
 
“에리,입학식 선서 때 전혀 안 떨더라.”
 
“이런 것쯤은 별거 아니다~ 그런 느낌!”
 
“맞아, 맞아. 노력하지 않고도 타고나길 그렇겠지. 그런 점이 특히 동경하게 된달까.”
 
小五郎:
기준치: 50/25/10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소문은 한참 절정을 향해 치닫는데, 에리는 영 올 기미가 없습니다. 도서실로 들어갈까요?
 
小五郎:(들어가긴 뭘 들어가. 짱박힌다.)
 
“대단하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소문이 너무 과장된 거 아냐? 사실 평범한데.”
 
“그러니까. 추종자들이나 난리지……. 에리 은근히 남들이 떠받들어주길 바라는 티 내지 않냐?”
 
“아, 그거 진짜 재수 없어.”
 
小五郎:
기준치: 50/25/10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때마침, 저 멀리서 에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엑스트라들은 정해진 대본대로 착실하게 연기를 반복합니다.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에리에 대해 떠듭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에리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 가장 공들인 피사체처럼 느껴집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완벽한. 혼자가 어울리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에리는 복도를 가로지릅니다.
 
그가 걸을 때마다 엑스트라들은 뺨을 붉히거나 시선을 힐끔거리면서도 두어 발자국 물러섭니다. 벽에 붙어선 소곤소곤 떠들기만 합니다.
 
눈 마주쳤어, 오늘도 완벽하지. 실수인 척 부딪혀볼까?
 
엑스트라들은 에리가 듣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신경 쓰지 않는 건 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의 반응에 주눅 들거나 부담을 느낄 법도 한데 걸음걸이는 태연하기만 하거든요.
 
그러고 보면 에리는 내내, 엑스트라들의 이상행동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죠. 으레 의연해지는 것도, 주인공의 설정값일까요?
 
小五郎: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기준치: 50/25/10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코고로는 에리가 멈칫거리는 순간들을 발견합니다.
 
아주 짧아, 초침 소리보다 순식간에 지나간 찰나였지만…….
 
당신은 패턴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내내 자신의 이름에 귀 기울이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이름이 들릴 때마다 돌아보고 싶은 걸 참고 있었습니다.
 
하긴, 주인공이라고 모든 것이 괜찮았다면,
 
에리와 상대 주인공의 첫 에피소드가 이 장면이었을 리 없었을 텐데.
 
저쪽은 아직 당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까워졌으니 목소리는 충분히 들릴 겁니다.
 
원작의 상대 주인공은 뭐라고 말했더라. 기억해내려 해도, 막상 눈앞에 닥치자 머릿속이 새하얘집니다.
 
“음, 확실히 에리는 말 걸기 어려운 이미지지.”
 
“진짜 보이지 않는 선이 있어.”
 
小五郎:너네가 그렇게 만들고 있으면서 무슨. (어차피 남자 주인공처럼 멋들어진 말은 할 수도 없고, 해도 그렇게 괜찮아 보이지도 않겠지. 그리 생각해도 멋적은 건 어쩔 수 없어 시선을 멀리 돌린다.) 불편해서 숨이나 제대로 쉬겠냐…….
 
엑스트라들은 당신을 깨끗하게 무시하고 제 할 말만을 반복합니다.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화를 내지도, 당황하지도 않습니다. 멈추긴커녕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당신의 존재를 지워버립니다.
 
…… 상대 주인공이 지적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정해진 대본이 없다면 엑스트라는 엑스트라와 소통하지 않는 법.
 
이래서야 완벽한 작전 실패겠군요. SanC 0/1.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Han J (GM):
(To GM)rolling 1d20
 
(
14
 
)
 
 
=
14
 
[SYSTEM]:현재 호감도 22점.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립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갱신됩니다.
 
……상황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째서?
 
英理:…… 데레테.
 
데레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선명합니다.
 
당신의 이름이 아니라는 건 더 이상 문제처럼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당신에게 응답하지 않는 일방통행의 세계에서 상호작용이 가능한 단 한 사람인걸요.
 
小五郎:…… 공부하러 왔냐? (여전히 시선은 멀리 둔 채 대꾸만 하곤 착잡한 표정을 숨겼다. 아니, 어차피 소설 속 주인공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입맛이 쓸 이유가 있나. 이상하네. 이상해. 진짜로.)
 
英理:저기, 그……. (침묵을 유지하다 어색하게 네 앞에 선 채 고개를 수그렸다. 네 발치만을 바라보며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 왜 그런 거야? 못 들은 척하면 될 텐데…….
 
小五郎:너도 싫잖아? (당연한 질문을 하면서도 고개를 숙이는 그 모습에 모든 답이 들어 있었다. 별 거 아닌 엑스트라 중 하나일 뿐이지만, 네가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 위해서였다면 여기까지 끌려온 이유도 이해가 간다. 물론, 실제로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 넌 사람이지 신이 아니니까. 금붕어도 아니고. 물속에 밀어넣고 숨 쉬세요, 한다고 쉬어지겠냐.
 
英理:……. (몇 번이고 무언가 말하려다 말기를 고민하다, 이내 웅얼거리며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 그, 그게……. …… 고마워. 데레테.
 
小五郎:…… 그래. 그거면 됐다. (그 모습마저 어느 순간의 에리와 겹쳐 보여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네 머리를 슬슬 쓸어주다 손을 거둔다.)
 
희미하게 말라붙은 목소리에선 애정이 담뿍 묻어 납니다.
 
英理:…… 아마 나는 쭉 그런 말이 듣고 싶었나 봐. (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 말을 덧붙였다. 옷을 놓고 제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 데레테는 왜 여기 왔어? 데레테도 공부하려고?
 
어쩌면 에리에게 필요했던 건 소문의 해결이 아니라, 소문 속 주인공이 아닌 자기 자신을 알아봐 줄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小五郎:(보통 인간이, 그것도 고작 17살 먹은 인간이 떠받들어지는 건 전혀 가벼운 일이 아니겠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제 목적을 되새겼다. 미안하단 말도 할 수 없다는 게 미안하군.) …… 너 보러.
 
英理:……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거짓말하지 마! (화들짝 놀라서는 발끝으로 네 정강이를 퍽 차버린다.) 기, 기껏 고맙다고 했더니 그런 장난이나 치고……!
 
小五郎:악! (얻어맞자마자 몸을 웅크려 정강이를 손으로 감싼다. 아니, 그런 구둣발로 걷어차면 엄청엄청 아프다고! 이건 진짜 에리 같은데?!) 장난 아니야! 인마!
 
英理:(씩씩거리다 네게서 몸을 휙 돌려버린다.) 어차피 진짜라고 해도 나 방해하려고 온 거겠지! 수업 시간 내내 잠이나 잔 걸 봐서 공부하러 온 것도 아닐 테고. 미안한데 너 상대해 줄 시간 같은 거 없어! 흥…….
 
小五郎:왜 혼자 화가 나서 난리래? 아, 됐어. 됐어. 무슨 말을 해도 안 믿겠네……. 마음대로 해. 믿든 말든 나는 할 말 다 했으니 간다. 어차피 공주님은 시간도 없다고 하시고~
 
英理:…… 가, 가든지! (별 꼴이야, 정말……. 투덜거리며 책을 안고 종종걸음으로 도서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버린다.)
 
감동도 잠시.
 
小五郎: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온통 검은 교복 사이, 긴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 복도 모퉁이로 휙 사라집니다.
 
색이 비슷해 모르고 지나칠 뻔했지만, 분명히 학생도 교사도 아니었습니다.
 
불청객이 아니라면 손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꽁꽁 싸매고 다닐 리 없으니까요.
 
小五郎:(뭐야? 누구야? 로브를 입은 사람이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간다. 뭐가 됐든 수상한 놈은 다 족쳐서라도 여기에서 빠져나가야겠어!)
 
다급히 쫓아가도 이미 복도는 텅 비어 있습니다. 곤란한 일입니다.
 
교사에게 말해봤자 소용없을 텐데……. 아무도 코고로의 말은 들어주지 않을 테니까요.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불안을 안고 뒤돌아서면, 모든 엑스트라가 당신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또 아침과 같은 상황입니다.
 
감정이 없는 눈동자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숨통을 조입니다. 단조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거긴 네 자리가 아니야.”
 
“네 역할은 데레테.”
 
“데레테는 데레테일뿐.”
 
“개입하지 마.”
 
“그만둬.”
 
“그만둬.”
 
“그만둬.”
 
차라리 질투라면 우스웠을 텐데. 엄중한 저주가 되풀이됩니다.
 
小五郎:어~ 그럼 나 집에 보내주든가? 나도 토끼 같은 자식이 있고 여우는 아니지만 와이프가 있는 사람이거든? 엿이나 먹어라! (메롱.)
 
英理:혼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금세 뒤따라와 네 뒤에서 물었다.)
 
小五郎:어? 어? 어……. 애들이 공주님이랑 논다고 질투하길래 나도 개소리로 대답해 줬다. 왜? (질색;)
 
英理:…… 뭐? 그치만……. (주위를 둘러봐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아무도 없는데……. …… 갑자기 뭐라도 찾은 사람처럼 막 뛰어가니까 이상해서 왔지. 너 어디 아파?
 
小五郎:니가 못 들은 거야. 상대해 줄 시간 없다더니 갑자기 생겼냐?
 
英理:…… 왜 걱정해서 와도 뭐라고 해? ……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냐. (조금 기가 죽은 얼굴로 다시 뒤돌아 발걸음을 옮겼다.) 성격 나쁘기는…….
 
小五郎:야, 야, 에리! (돌아가는 네 어깨를 잡아 제게 쭉 끌어당겼다. 적어도 붙어 있으면 저 놈들이 황송해서 말을 못 걸겠지?) 공부는 이따 하고 산책이나 하러 가자.
 
英理:뭐?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 무슨 바람이 불었어? 음, …… 잠깐이라면 어울려 줄게. 너무 오래는 밖에 있지 않을 거야.
 
小五郎:나 길 알려주는 셈 치고 가면 되지. 말 참 많네. (씩 웃고서 손목을 잡아끈다.) 자, 어디든 좋으니까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
 
英理:……. (순순히 네 곁을 따라가며 교정 바깥으로 나간다. 교정의 뒤편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네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 여기, 벚나무들이 엄청 많이 피어 있다고 해서……. 궁금해서 와보고 싶었어.
 
小五郎:오고 싶었는데 왜 안 왔어? (눈치가 보여서 그랬나. 소설 주인공의 삶도 참 각박하다. 각박해. 그제야 손목을 놓아주며 가장 벚꽃이 흐드러진 나무 밑으로 간다.) 여기가 딱 좋네.
 
英理:…… 아무도 없네. (안심이 묻어나오는 어투로 말하고서 네 곁으로 다가간다.) ……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어서…….
 
벚나무를 올려다보는 순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를 뒤덮습니다.
 
본디 흠 없고 점 없던 성채는 눈송이를 발라 한층 순결한 백색을 띠고, 활짝 만개한 벚나무들은 가지마다 구름 솜을 에둘러 치장합니다.
 
옅은 분홍 위로 소복이 쌓이는 하양. 그림으로 그려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겁니다. 봄에 내리는 눈이라니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요.
 
小五郎:으엑. 눈. (추워지겠네. 나무 기둥 쪽으로 네 몸을 끌어당기곤 아직 젖지 않은 바닥에 먼저 척하니 앉는다. 눈이 안 왔으면 한숨 더 자는 건데.)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야.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난리잖아.
 
英理:…… 그치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 (짧게 대답하고서 네 곁에 따라 앉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눈과 함께 떨어지는 잎들을 바라본다.) 그거 알아? 떨어지는 벚꽃 잎을 붙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小五郎:너무 남 눈치만 보지 않아도 돼. 어차피 실망할 놈들은 실망하고, 좋아할 놈들은 좋아하게 되어 있어. (현실이든 아니든. 기둥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가 이어지는 말에 다시 뜬다.) 그러냐. 잡게 만들어 줄까?
 
英理:……. (네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화색이 되어 네 쪽으로 돌아본다.) 정말? 잡을 수 있어? 어떻게?
 
小五郎:(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이나 짓는군. 조용히 네 눈을 마주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대로 성큼성큼 나무를 타고 올라가 가지가 부러지지 않을 만큼 힘을 주어 흔들면 벚꽃과 눈꽃이 함께 떨어지기 시작한다.) 야, 이 정도면 가만히 있어도 잡겠다!
 
英理:자, 잠깐만…… 그러면 위험한데, 잠깐, 데레테!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을 모르는 얼굴을 했다. 떨어지는 잎과 네 쪽을 번갈아보다 서투르게 손을 뻗어댄다.) 앗, …… 아, 안 잡혔어. 더, 더 해 줘! 조금만 더…….
 
小五郎:정말 어쩔 수가 없는 공주님이네. (저 엉성한 몸짓 좀 보라지. 그러나 입가의 웃음기는 거둘 수 없었다. 전부 만들어진 세상이지만, 나는 데레테가 아니고 너는 에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즐거워서 안 될 이유는 없잖아. 조금 더 두꺼운 가지를 찾아 꽃비처럼 떨어지도록 세게 흔들었다.)
 
英理:(팔을 계속해서 휘적거리다 손끝에 벚꽃을 붙잡는 것에 성공했다. 네 쪽을 올려다보며 기쁜 듯이 웃는 얼굴로 꽃잎을 흔들어 보였다.) 잡았어! 데레테. 잡았어!
 
小五郎:잡았어? (고개를 끄덕이고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어려지니 참 좋다. 네가 잡은 꽃잎을 보다 머리카락 위에 놓인 꽃잎도 몇 장 주워 손에 놓아준다.) 온몸으로 잡았네.
 
英理:후후…….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양손으로 소중한 듯이 꽃잎을 꼭 쥐었다.) 이 정도면 소원을 잔뜩 빌어도 되겠어. …… 데레테는 안 잡아도 돼?
 
小五郎:꽃잎을 잡는 사람이 소원을 이룰 수 있으면, 꽃잎을 내려주는 사람은 소원을 빌 필요도 없지 않겠냐. 아니면 네가 내 몫까지 알아서 빌어. 그거면 충분해.
 
英理:…… 그치만 데레테의 소원이 뭔지 나는 모르는데? 말해 줘. 내가 대신 빌어 줄게. (여전히 웃는 낯으로 꽃잎 하나를 네게 건네 준다.)
 
小五郎:……. (이걸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네가 건넨 꽃잎을 받아들고서 잠시 낯빛이 어두워진다. 그러다 에두르고 둘러서야 대답한다.) 에리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응. 그거면 되겠다.
 
英理:…… 응? 내일이면 또 만나는데? (고개를 기울이다 금세 뾰로통한 얼굴을 했다.) 또 이상한 장난 치는 거지!
 
小五郎:아니야. (방금까지의 미소가 돌아오지 않아 가라앉은 얼굴을 들어 나무 위를 바라본다.) 진짜야. 그거 외엔 없어.
 
英理:……. (자연스레 저도 말수가 없어진 채 꽃잎들을 챙겨 제가 가지고 온 책 사이에 끼워넣었다.) …… 알았어. 그럼 데레테가 나랑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고 빌어 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거야.
 
小五郎:……. (소원이나 기도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최후의 순간에 믿을 수 있는 건 사람 뿐. 네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밖에 안 들리겠지.) 안 추워? 추우면 들어갈까?
 
英理:…… 응. 이제 들어갈래. 공부도 해야 하고……. 덕분에 재미있었어, 데레테. (다시 책을 품에 안고서 네 곁에서 발걸음을 옮긴다. 영문 모를 씁쓸한 기분을 안고서.)
 
 
첫 번째 에피소드가 지나가고, 두 번째 에피소드를 준비해야 합니다.
 
주인공과 상대 주인공이 가까워진 계기가 소문이었다면, 서로를 연애 대상으로 인식시킨 계기는 밀실이었죠.
 
주인공 앞에서 핀잔을 들었던 엑스트라들이 앙갚음하기 위해 상대 주인공을 기도실에 가둬버린 겁니다.
 
아카데미를 한참 헤맨 끝에 두 사람은 극적으로 재회하지만……. 고장나버린 문이 바깥에서 잠기는 바람에 완벽한 밀실에 갇히고 맙니다.
 
…… 차례대로 짚어보니 기억은 제법 선명한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엑스트라들이 당신을 투명 인간 취급한다는 겁니다!
 
에리의 옆자리가 아니면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억지로 끌고 갈 리도 가둬줄 리도 없습니다.
 
개연성도 돕지 않으니 문이 잠기는 기가 막히는 우연 따위 일어나지 않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코고로의 자작극입니다.
 
아무도 질투하거나 가둬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기도실에 갇히는 수밖에요.
 
小五郎:(남자 주인공을 두들겨 패서 강제 연애 루트로 돌입시키는 게 낫지 않나. …… 문고리만 부숴서 안에 들어가 있으면 되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기도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수십 배로 무겁다…….)
 
기도실은 별관 4층 복도에 줄지어 있습니다.
 
대리석 복도 양쪽으로 백합을 새긴 문호가 차곡차곡 놓인 모습이란, 신앙심이 없더라도 성결하게 느껴집니다.
 
한창 수업 중이기 때문에 복도나 기도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의 기도실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대부분 저녁 식사 후에 이용하는 편이거든요. 시간적 여유는 충분할 겁니다.
 
小五郎:……. (어떻게 해야 고장이 나지. 일단 걷어찬다?)
아, 음, 흐음……. (문고리를 달각달각…… 만진다. 아무 열쇠나 가져다 꽂고 안에서 부러지게 하면 고장나나? 고민하다 휴대폰을 꺼냈다.) 시스템 씨~ 의~ 새 연락이~ 없나~
 
잠잠... 합니다.
 
小五郎:
기준치: 50/25/10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기도실의 문들 중 하나의 문고리를 만져보자...
 
운 좋게 고장 난 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깥에선 수월하게 열리는 주제에, 안에선 절대 열리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런 문이 진짜 있다고? 라고 생각해도 소용없습니다.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설정이니까요.
 
小五郎:거 참 이상한 세계일세. (고장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불경하게 퍼져 앉아 문을 닫는다. 이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단 말이지…….)
 
이제 에리를 유인해야 할 것 같네요. 어떻게 할까요?
 
小五郎:나…… 기도실에…… 갇혔…… 어……. (중얼거리며 문자라도 보내 본다……. 근데 이거로 되는 건가, 진짜…….)
 
에리에게 문자를 보낸 코고로는 막연히 에리를 기다립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쾅, 당신이 있는 기도실의 문이 열리고 에리가 들이닥칩니다.
 
몰아쉬는 숨, 상기된 얼굴, 엉망진창으로 흩날린 머리카락.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한참 헐떡거립니다.
 
英理:데, 데레테……. 괜찮아!?
 
열린 문틀 너머로 복도에서 들이 쬔 빛이 스밉니다. 환한 곳에서 마주한 눈동자엔 당신을 향한 걱정이 선명합니다.
 
전혀 다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인데. 원래는 다른 사람을 향했을 다급함인데. 그런데도…….
 
小五郎:
rolling d20
 
(
1
 
)
 
 
=
1
 
[SYSTEM]:현재 호감도 23점.
 
한달음에 달려온 에리는 당신의 손을 붙잡습니다. 당신이 괜찮은지 여기저기 살피는 시선이 분주합니다.
 
엑스트라 사이, 단숨에 당신을 알아채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주인공과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단역의 시선이 똑바로 마주칩니다.
 
小五郎:괘, 괜찮아. 너야말로 괜찮냐? (엄청 뛰었나 본데. 이 모든 일의 원흉이면서도 손을 뻗어 네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준다. 이거 엄청 죄책감 생기네.…….)
 
英理:내, 내가 괜찮을 게 뭐가 있어. 어쩌다 갇힌 거야? 문이 고장이라도 났어? (눈썹이 처진 채 걱정스레 물었다. 제 얼굴을 닦아주는 네 팔을 작게 탁탁 때렸다.) 칠칠맞지 못하게!
 
小五郎:들어올 땐 괜찮았는데……. 그, 안에서는…… 안 열려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자니 눈을 마주할 수 없어 바닥을 쳐다본다. 팔을 때리는 것도 어떠한 질책으로 느껴져 한숨이 새어나왔다.) …… 고마워.
 
마냥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아직 당신에겐 충족해야 할 개연성이 남아 있으니까요.
 
에리가 열어젖힌 문은 활짝 벌어져 있습니다. 저걸 닫아야 완벽하게 갇힐 텐데…….
 
小五郎:
은밀행동
기준치: 40/20/8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에리의 시선을 피해 빈손으로 슬쩍 문고리를 잡습니다.
 
쾅, 다시 문이 닫혔지만.......
 
문을 닫아버린 손을 에리에게 딱 들키고 말았네요.
 
英理:(???)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을 벌린 채 문고리와 네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小五郎:아, 아니, 아니, 혹시 모르니까 제대로 열어 두려고 했던 거야. (; 살려줘;)
 
英理:…… 그치만 방금 문…… 닫았잖아?
 
小五郎:팔에 힘을 너무 줬어…….
 
英理:응? 아, 아니, 말도 안 돼……! (허겁지겁 문고리를 붙잡고 열어보려고 낑낑댄다.) 아, 안 열려…….
 
小五郎:……. (아. 양심 아파. 네 뒤에 붙어 같이 문고리를 열심히 돌린다. 어차피 안 열릴 테니까……!)
 
英理:여, 여기 사람 있어요……. 사람 있는데……! (문을 두드리며 바깥으로 외쳐보지만 들어왔을 때에도 아무도 없었다는 걸 알기에 점점 목소리가 작아진다.) 가, 갇혔어…….
 
小五郎:미안. (쭈뼛거리며 뒤로 물러나 시선을 이리저리 굴린다. 원하던 상황은 만들어졌지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英理:바보! 어쩔 거야! 어쩔 거야! (울상이 된 채로 네 몸 곳곳을 주먹으로 힘주어 여러 차례 때려댄다.) 책임져. 바보. 책임져.
 
小五郎:분명 누군가 구하러 올 거야. (몇 번이고 주먹으로 때려도 그자리에 가만히 서서 맞고 있었다. 나야 전후사정을 알지만 너는 말 그대로 갇힌 셈이니 불안하겠지. 고민하다 네 팔뚝을 조심스레 잡았다.) 책임질게. 그러니까 울지 마라.
 
英理:안 울었거든! 바보야. (입술을 삐죽이며 네 손을 뿌리친다.) 같이 갇힌 주제에 책임은……. 됐어. …… 그냥 한 소리야. 별로 화도 안 났으니까……. 진지한 얼굴 하지 마. 안 어울려.
 
小五郎:…….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얌전히 입을 다물고 제 머리만 만지다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는 것보단 화내는 게 더 나아서 그래.
 
英理:울지도 않을 거고 화도 안 낼 거야. 그럼 됐지? (치맛단을 정리하며 문에 기대어 다리를 모은 채 웅크려 앉았다.) …… 데레테도 앉아. 기다려야지, 별 수 없잖아.
 
기도실은 좁은 단칸방입니다. 사방이 흰 공간에는 벽에 걸린 헤일로와 작은 제단만 소박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눈높이 살짝 위에 창문이 있지만, 사람이 빠져나갈 정도의 크기는 아닙니다. 두 사람이 앉으면 딱 어깨가 닿을 것 같네요.
 
小五郎:어어. (빈 공간에 같은 자세로 앉아 등을 뒤로 기댔다. 진짜 기분 이상하네. 가만히 눈을 감고서 생각에 빠졌다. 이 다음에 무슨 대사를 했더라.)
 
英理:……. (팔과 어깨가 꼭 붙자 힐끗힐끗 의식적으로 네 눈치를 살폈다.) …… 가, 가까워……. 바보 데레테.
 
小五郎:…… 좁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벽으로 붙어 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체격이 작은 것도 아니고 말이지. 아예 고개를 돌려 네 얼굴을 쳐다본다.) 그렇게 급하게 올 만큼 날 걱정했어?
 
英理:뭐? (예상치 못한 질문에 네 쪽을 돌아보자 눈이 마주쳐 황급히 다시 원위치로 돌려버린다.) …… 그, 그야, …… 걱정…… 하는 게 당연하잖아. …… 또 어떤 애들이 너한테 못되게 굴거나 했을지도 모르니까…….
 
小五郎:애들이 널 너무 좋아해서? (그런 세상이었지. 여전히 네 얼굴을 바라보며 얕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괜찮은데. 너한테 못되게 구는 놈들은 없냐?
 
英理:(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 없어. 직접적으로 그런 일을 당한 적은 없으니까. …… 그러니까 내 걱정 말고 본인 걱정이나 해! 흥, 너는 엄~ 청나게 손이 많이 가는 짝꿍이라 귀찮단 말이야.
 
小五郎:하긴. 가만히 있어도 괴롭힘 받는 거나 다름이 없겠다. 누가 하루종일 내 이야기만 하면 나는 가서 주먹부터 날릴 거라고. (무릎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중얼거린다.) 네가 상냥해서 그래. 네 잘못은 없는데, 아무튼 그래.
 
英理:…… 무슨……. (네 쪽을 돌아보며 귀를 붉힌 채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런 말을 한대도 네가 기도실에 가둔 걸 봐주지는 않을 거니까! …… 별로 네 생각처럼 상냥하거나 하지도 않고…….
 
小五郎:아, 가둔 게 아니라니까! (붉어진 귀끝이 보여 낮게 웃었다.) 상냥하기만 하다는 건 아니다? 사람이 한 가지 면만 보이면 무서워. 다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당연해.
 
끼익, 툭. 달칵.
 
그때 기도실 근처에서 인기척이 들려옵니다.
 
옆방? 아니면 한 칸 더 옆방? 아무튼 근처의 기도실에 누군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직 마지막 교시는 끝나지 않았을 시간. 기도하러 오기엔 한참 이릅니다.
 
小五郎: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원작에서도 기도실에 들린 사람의 도움으로 빠져나왔던가?
 
주인공과 상대 주인공이 갇혔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빠져나온 방법은 기억이 안 납니다.
 
당신이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기도실의 벽을 타고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우당탕, 누군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와 허겁지겁 달려드는 발소리…….
 
“……여기선…….”
 
“아무도 없…….”
 
속닥거리는 두 명분의 목소리까지.
 
…… 아, 이거 설마…….
 
“조금만, 응?”
 
신성한 기도실에서 뭘 하는 거냐?!
 
에리도 당황했는지 도움을 청하려다 말고 뻣뻣하게 굳어 버렸습니다.
 
얼굴부터 목덜미까지 눈에 띄게 새빨간 게 보고 있기 불쌍할 지경입니다.
 
도움을 청하긴 그른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불러봐야 허겁지겁 도망가기 바쁠 테니까요.
 
아니, 아무리 기도실이라지만 이렇게 방음이 허술해도 되는 건가…….
 
小五郎:……. (청춘 났네. 청춘 났어.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뻗어 네 귀를 꽉 막았다.)
 
英理:……. (차마 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얌전히 바닥만을 바라본다.) 어, 어떻게 다른 곳도 아니고 기도실에서 그, 그런 짓을…….
 
小五郎:그 생각하지 말고 다른 거 생각해. …… 벚꽃이라든가. (손바닥을 살짝 들고 속삭인 뒤 다시 귀를 꼬옥 덮는다. 나도 이런 걸 듣는 취미는 없는데 말이야…….)
 
英理:…… 이, 이 와중에 벚꽃 같은 걸 생각할 리가 없잖아. (얼굴이 뜨거워져 작게 손부채질을 했다.) …… 데, 데레테는 왜 아무렇지도 않아?
 
小五郎: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냐. (혀를 차곤 제게도 바람이 닿도록 고개를 살짝 숙인다.) 글쎄, 왜 그럴까~
 
英理:뭐, 뭐야? 이럴 때만 혼자 태연해져서는……! (제가 더 의식하고 있는 꼴이 된 것만 같아 괜히 더 부끄럽다. 제 귀를 막은 양손을 붙잡아 떼어낸다.) …… 나, 나도 데레테를 상대로 부끄러워할 이유 같은 거 없으니까, …… 흥.
 
小五郎:한 명이라도 태연한 게 좋지. 아냐? (아니다. 손이 떨어지고 나서야 제게도 다시금 소리가 의식되기 시작한다. 들을 수 없게 하겠답시고 너무 집중했나 보다.) …… 내 상대를 떠나서 이 소리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든가. (다시 자리에 철푸덕 앉았다.)
 
英理:……. (그, 그런 건가. 네 말을 듣고 보니 또 후회가 밀려왔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빨개진 얼굴을 유지한 채 제 치맛단만 만지작거렸다.) …… 그래도 같이 갇힌 게 데레테라서 다행이야.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댄다.)
 
小五郎:(또 쳐다보면 오해만 사려나. 다시 눈을 감고 무릎 위에 팔을 걸쳤다. 저 놈들, 빨리 나갔으면 좋겠네.) …… 뭐라고? (방금 뭐라 그랬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미간만 찌푸린다.)
 
英理:아, 아니야. 아무것도. ……. (급하게 손사래를 치고서 시선을 떨어뜨린 채 묻는다.) …… 데레테는 나랑 있는 게……. 싫지 않아?
 
小五郎:…… 싫으면 처음에 옆에 앉지도 않았지. (대수롭잖게 대답하고 나서야 속으로 뜨끔한다. 너무 무뚝뚝하게 대답했나?)
 
英理:…… 그치만. (뜸을 들이다 이내 무릎에 고개를 수그려 푹 묻어버린다.) …… 나랑 있을 때에는 늘 재미없다는 얼굴 하고 있는걸.
 
小五郎:…… 내가 언제? (재미없다는 얼굴? 애초에 너 말고 내가 누구랑 같이 있긴 했나. 눈을 뜨고 네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야. 내가 언제.
 
英理:…… 몰라. (네 손길에도 아랑곳 않고 더 깊게 고개를 묻었다.) 아무튼 그랬단 말이야. 그렇게 느꼈다구. …… 물론, 데레테가 나한테 좋은 말을 잔뜩 해 줬던 건 사실이지만. …… 그래도 따분하다는 듯 굴면서…… .
 
小五郎:……. (너도 서른여덟 먹고 갑자기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봐라. 게다가 한 명 말곤 날 공기 취급한다고. 안 지루하겠냐. 입맛을 다시고 더 가까이 찰싹 붙었다.) 그건 원래 내가 그런 거고. 따분하다 생각하면 좋은 말도 안 해. 야, 고개 좀 들어. 응?
 
英理:……. (그제서야 울상이 된 얼굴을 들어 네 얼굴을 마주했다.) 정말? …… 그럼, 그럼……. …… 나랑 있는 거 좋아?
 
小五郎:(막상 눈이 마주치니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른다. 아무튼 이 얼굴이 문제야! 진짜 완전 내 삶을 다 망가뜨린다고!) …… 으응.
 
英理:(가뜩이나 가까워진 거리감에 저와 똑같이 붉어진 얼굴을 보자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던 눈으로 괜스레 아무 말도 못한 채 네 이목구비를 찬찬히 훑었다.) …….
 
小五郎:……. (괜히 숨까지 막힌다. 분명 비슷한 일을 먼 옛날에도 겪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마치 삐걱거리는 로봇처럼 팔을 올려 네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울 것 같은 표정도 금지하고 싶네…….
 
英理:……. (네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아오른 제 양뺨을 감싸 더듬더듬 살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더라? 저도 모르게 슬쩍 네 품에 톡 몸을 기댄 채 우물쭈물거린다.) …… 그, 그렇게 별로인 얼굴이었어? …… 미, 미안. …… 아, 안 울었으니까…….
 
小五郎:별로라는 게 아니라, 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두 명 한정인 이야기긴 하지만. 금세 품에 안기다시피 한 모습에 이제 아주 온몸에 열이 끓는다. 죽겠네.) 예쁜 애는 울어도 예쁘다는 거 모르나 봐?
 
英理:…… 그, 그러니까 자꾸 그런 식으로 짓궂은 장난 치지 말래도! (네 다리를 툭 때리고는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착각한단 말이야.
 
小五郎:…… 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그래. (사람 말을 곧이 듣지 않는 것도 역시, 에리다. 이어지는 말에 제 볼을 긁으며 물었다.) 뭘 착각하는데.
 
英理:……. 그게……. (잔뜩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어서는 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 지, 진짜라고 믿게 된다니까. …… 진심으로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게 돼서, 그래서……. 읏, 무, 물어보지 마! 바보.
 
小五郎:귀찮은 성격이네……. (역시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어디에서 물러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무한히 반복되는 칭찬만 들어왔겠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면 되지. 네, 네. 더 안 묻겠습니다.
 
小五郎: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끈적한 소리가 오갈 줄 알았던 옆방에서는, 나직한 말소리가 오가는 것이 들려옵니다.
 
“…… 역시 기도실에서 이러는 건 내키지 않습니다.”
 
“이제 와서 정숙한 사제인 척하는 거야?”
 
“…….”
 
“하긴, 야훼의 선지자들은 언제나 '우리'를 문란하다고 멸시했지.”
 
웃음기를 머금은 은근한 비난.
 
“그런데도 야훼는 매번 우리에게 신자를 빼앗겼어. 왜 그런지 알아?”
 
“…….”
 
“인간은 원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신을 숭배하거든.”
 
“비난하려던 건 아닙니다.”
 
“알아, 우린 이미 하나가 되었잖아?”
 
“그냥, 걱정하지 말란 뜻이야.”
 
“너의 야훼는 푹 잠든 것 같으니.”
 
뱀처럼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말은 조롱.
 
“준비는 잘 돼 가?”
 
“시키신 대로 해두고 있습니다만…….”
 
“얼마나 걸립니까?”
 
“재촉하면 그분이 싫어하셔.”
 
“정말 황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의심해도 싫어하신다~”
 
명백하게 수상쩍은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기도실을 나갑니다.
 
‘그분’? ‘준비’?
 
발소리는 금세 멀어집니다. 얼굴이라도 확인해둘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보았던 검은 그림자도 한 패일까요? 찜찜하기 짝이 없습니다.
 
장르를 벗어난 사건인데다, 원작에서도 본 적 없는 사건이니까요.
 
이야기를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확실히 이상합니다.
 
英理:…… 데레테? (벽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네 상태를 살피듯 올려다본다.)
 
小五郎:…… 가 버렸네. (네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인상을 구겼다가, 머잖아 무표정하게 돌아와선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데 너, 휴대폰 안 가지고 왔어?
 
英理:…… 아까 꺼졌어. (네 말에 방전된 휴대폰을 꺼내 보여준다.) 데레테한테 연락 받았을 때, 배터리가 5% 정도였어서 간당간당했거든.
 
小五郎:…… 아. (그랬군. 이 세상 참 편리하면서도 짜증이 나네. 제 휴대폰도 꺼냈다.)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英理:…… 어, 부모님 말고는 없는데…….
 
그때, 동시에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기 시작합니다.
 
어슴푸레 어두워지는 시간, 컴컴한 배경에 내리꽂히는 흰빛. 마른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갈라진 벼락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小五郎:? (정말 갑작스러운 상황에 널 보호하듯 감싸안았다. 여기 건물 멀쩡한 거 맞지? 그런 사고는 소설에 없었지? 아마?)
 
英理:…… 힉! (깜짝 놀란 탓에 새된 비명이 작게 튀어나왔다. 네가 저를 감싸면 그 몸을 꽉 끌어안은 채 다시 울상으로 바깥으로 난 창을 곁눈질했다.) 가, 갑자기 무슨…….
 
벚나무를 맹렬하게 흔들고 사라져, 막 피어난 꽃들은 처연히 낙화합니다.
 
벼락은 정확히 세 번 떨어지더니 자취를 쏙 감춥니다.
 
小五郎:…… 비가 오려고 그러나? 괜찮아. 괜찮을 거야. (네 등을 천천히 토닥여 달래며 창밖을 흘끔 본다. 뭔가 불길한데.) 빨리 나가야 하는데…….
 
英理:오, 오늘 비가 내릴 거라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창문에서부터 시선을 거두고 품에 고개를 묻었다.) …… 이제 저녁 식사 시간이니까 금방 나갈 수 있겠지? …… 밖에 무슨 일 생긴 거면 어떡해?
 
小五郎: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 계속 곁에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정말 걱정이 되는 건 내 쪽인데. 이대로 뭔가 사단이라도 나서 못 돌아가게 되면 어쩌냐. 네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시스템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게 무슨 일이야?
 
[SYSTEM]:버그 확인되지 않음.
에러 발생하지 않음.
개연성 이상 없음.
 
小五郎: 방금 그 벼락은 뭔데 그럼?
 
[SYSTEM]:기록을 불러오는 중에 발생한 오류일 가능성 D100%.
 
小五郎:방금은 에러 없다며?
 
[SYSTEM]:개연성 이상 없음.
 
小五郎:너 자체가 고장난 건 아닌지 확인하는 게 좋겠는데……. 방금 옆방에 있던 놈들은 뭐야?
 
[SYSTEM]:버그 확인되지 않음.
 
시스템 메시지는 여전히 이상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원작 「사랑이 가라사대」가 사실 이런 이야기였던 걸까요?
 
코고로가 모르는 다음 시리즈가 나왔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야기 바깥에선 알 수 없던 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두 사람이 기도실을 빠져나온 건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난 후였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한 일들밖에 없었던 세계지만 페이지는 착실히 넘어갑니다.
 
메시지를 확인하면 현재 진행률은 75%. 25% 간격으로 상승하고 있으니 정말로 마지막이 임박했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만 재연하면 개연성을 충족하고, 완결을 앞당겨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나 그분 등, 누가 봐도 수상쩍은 복선을 목격했으니 당신이 머뭇거리게 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에리를 이대로 두고 가도 되는 걸까요? 위험한 일이 생기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청춘 로맨스 소설이란 장르 안에선 주인공이 위험해지지 않으리라 믿었는데. 당신이 목격한 이야기는 어딘가 궤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小五郎: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rolling d30
 
(
8
 
)
 
 
=
8
rolling d30
 
(
24
 
)
 
 
=
24
 
이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원작의 내용도 의심스러워집니다. 코고로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걱정한답시고 땅을 판들 달리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엑스트라인 코고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요.
 
……그저, 이미 끝난 이야기라고 하니 원작의 에리는 상대 주인공과 행복해졌기를 바라는 수밖에.
 
마지막 에피소드 재연을 시작합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상대 주인공이 (또) 우연히 에리가 고백받는 장면을 목격하며 시작됩니다.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는 미션 스쿨이란 설정에 충실하게 교내에 각종 성인상을 세워뒀는데, 
 
발렌티노의 성인상은 유명한 고백 스팟입니다. 그 ‘발렌티노’니까요.
 
이번에는 자작극도 무리입니다.
 
코고로가 에리에게 고백하고 코고로가 그 장면을 훔쳐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주인공인 에리가 엑스트라에게 고백받는 이벤트는 툭 하면 발생한단 겁니다.
 
게다가 유명한 고백 스팟이란 건? 고백 이벤트 열에 여덟은 발렌티노의 성인상 앞에서 발생한단 거죠.
 
무슨 소리냐면…… 발렌티노의 성인상 근처에서 잠복하고 타이밍을 노리는 수밖에 없단 겁니다.
 
小五郎:(아무리 다른 놈들은 내가 아예 안 보이는 수준이라지만 갈수록 기분 나쁜 놈이 되어가고 있는데…….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도 없다. 어디, 숨을 만한 곳이 있나…….)
 
교정 뒤뜰, 봄을 맞아 핀 벚꽃은 그곳이 어디건 낭만의 중심으로 만들어 줍니다.
 
사람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목. 높은 담벼락으로 구분된 공간. 연인을 축사하는 성인의 조각상. 고백하기에 완벽한 공간적 배경입니다.
 
벚나무 뒤나 성인상 뒤, 담벼락 모퉁이 등등...... 적당한 곳에 몸을 숨겨볼까요?
 
小五郎:(어디를 골라도 들킬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일단 담벼락 뒤에 착 달라붙어 본다. …… 보일까?)
 
小五郎:
은밀행동
기준치: 40/20/8
굴림: 3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완벽하게 잘 숨은 것 같습니다.
 
이제 에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것 같네요.
 
小五郎:
기준치: 50/25/10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도착한 건 주인공, 에리입니다.
 
손에 편지를 하나 들고 있습니다. 새하얀 편지 봉투에 새빨간 하트 스티커.
 
읽어보지 않아도 러브레터라고 확신하게 되는 디자인이군요. 아마도 이곳으로 와 달라고 쓰여 있겠죠…….
 
小五郎:(매번 저렇게 나오는 것도 대단하다. 단순히 소설이나 드라마 속 이야기라면 이런 생각까지 하지 않았겠지만, 막상 눈앞의 일이 되니 기분이 마냥 이상했다. …… 이대로 지켜보기만 하면 되나.)
 
코고로가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잠시 후 엑스트라가 도착합니다.
 
저 멀리서부터 붉어진 뺨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손만 만지작거리던 엑스트라는 준비된 대사를 시작합니다.
 
코고로는 이미 책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장면입니다.
 
“에리, 나와줘서 고마워.”
 
“오늘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한 박자, 숨을 들이켠 핀리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첫눈에 반했어! 사귀는 사람이 없다면 친구부터 시작하지 않을래?!”
 
「발렌티노 성인상 앞에 선 에리는 곤란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한껏 새빨개진 얼굴은 곧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기억해냅니다. 저 애의 이름을.
 
어차피 상대 주인공이 아닌 이상, 누구든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핀리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 문장이나마 이름을 남겼습니다. 같은 엑스트라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게 느껴집니다.
 
이제야 드는 의문이라면, 당신은 왜 하필 데레테였던 걸까요?
 
차라리 상대 주인공이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른 엑스트라들에게 투명 인간 취급받지 않아도 되고, 네 자리가 아니라고, 네 역할이 아니라고 비난하는 시선도 받을 일 없었을 텐데.
 
에리의 운명을 망치고 이야기를 방해한단 기분 따위 느끼지 않아도 됐을 텐데…….
 
생각에 빠진 당신을 깨우는 건 에리의 목소리입니다.
 
英理:…… 미안,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어라? 이다음 대사는 분명히…….
 
小五郎: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미안해, 아직은 누군가와 사귈 생각이 없어.”였을 텐데.
 
하지만 이 대사도 분명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잠깐 기억을 곱씹습니다.
 
아, 이건 조금 더 이야기의 후반부, 에리가 상대 주인공을 향한 마음을 자각한 후의 거절 대사였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호감도는 아직 한참 모자랍니다.
 
왜 벌써? 대체 누구를……. 설마, 자리를 비운 사이 상대 주인공과 마주쳤던 걸까요?
 
小五郎:
rolling d30
 
(
3
 
)
 
 
=
3
 
바스락.
 
당신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발아래에선 작은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습니다.
 
이런 우연이라니, 그토록 필요로 할 때는 발생하지 않다가…….
 
소리를 들은 에리는 당신이 있는 쪽을 돌아보곤 눈을 크게 뜹니다.
 
小五郎:
rolling d30
 
(
28
 
)
 
 
=
28
 
숨 쉬는 법조차 잊고 시선을 빼앗깁니다.
 
붉어진 뺨과 풋풋한 애달픔이 서린 눈동자. 전심전력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의 선명한 반짝거림.
 
한낱 설정값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로…….
 
호감도 점수를 확인할 때는 실감 나지 않던 선명한 애정.
 
목격한 그 감정은 선명하고 생생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英理:데, 데레테……..
 
언제부터 좋아했느냐고, 나를 좋아하는 게 맞냐고, 내가 왜 좋으냐고. 사실 네가 좋아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상대 주인공이라고.
 
하고 싶은, 그러나 할 수 없는 많은 말 대신 짧은 진동이 울립니다. 지이잉.
 
小五郎:…… 고생 많네. (저 얼굴이 다시 날 저런 표정으로 보는 광경을 보게 되다니.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한 게 표정으로 다 드러난다.)
 
불현듯 현실에 등 떠밀리는 기분입니다. ……왜? 87%라니, 이게 마지막이 아니었나? 뭔가 더 남았던 건가?
 
이 상황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한 에리는 그저 겸연쩍고 부끄러운 얼굴로 다가옵니다.
 
英理:…… 아, 저기…… 그, 응…….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수그린 채 발치만 바라본다.) 그,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小五郎:(나도 얘도 그만 괴롭히고 이제 좀 내보내 주라.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다가오는 네 얼굴을 바라본다.) …… 방금 전에.
 
英理:……. (왠지 네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기에 얼굴이 더 빨개진다. 곤란한 얼굴을 하고서 우물쭈물 어떻게든 화제를 돌렸다.) …… 아, 오, 오늘 날씨 되게 좋다, …… 그치?
 
小五郎:뭐, …… 적어도 벼락은 안 치네. (찔리는 게 많은 입장인지라 얼버무리듯 대답하며 애꿎은 제 머리만 만진다.) …… 얼굴 터지겠다.
 
英理:…… 시, 시끄러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투덜거리고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 요즘 왠지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그땐…… 맑을 거래.
 
그때?
 
英理:…… 다행이지? 한 번뿐인 졸업 파티잖아.
 
졸업?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리면,
 
小五郎: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에리의 뺨이 코고로가 근래 보던 것보다 말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젖살이 빠져 한층 어른스러워진 골격. 앳된 시절이 사라지고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선 주인공.
 
시간의 흐름에 괴리감을 깨닫는 도중,
 
갑자기 세상이 캄캄해지기 시작합니다.
 
불을 끈 방처럼, 정전이 든 건물처럼 온 풍경이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봄날의 태양이 검은 그림자에 잡아 먹히고 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밀려듭니다.
 
SanC 0/1.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봄에 내리는 눈. 마른하늘에 날벼락. 뜬금없는 일식.
 
명백하게 세계가 망가지는 중에도
 
착실하게 기록은 완성되어 가고
 
英理:그러니까.......
 
눈앞의 에리는 그저 사랑에 눈이 멀어
 
英理:…… 그때 내 파트너가 되어 줄래? …… 싫지 않다면.
 
미친 소리를 합니다.
 
[SYSTEM]:개연성 충족.
히든 에피소드 오픈.
 
 
깜빡, 깜빡.
 
부드러운 음악이 흐릅니다. 낯설기 짝이 없는 멜로디지만 어쩐지 애틋하고, 아련하게 느껴집니다.
 
아득하니 멀어졌다가, 선뜩하니 가까워졌다가. 시작도, 끝도, 정체도, 의미도 알 수 없는 노랫소리의 끝에서…….
 
英理:데레테.
 
에리가 당신을 부릅니다. 눈을 뜨면 두 사람은 홀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小五郎:…… 어? (아니, 이게 뭐야. 뭔데? 얼떨떨한 표정으로 널 바라본다.)
 
퍼뜩, 정신을 차리면 위화감이 우르르 쏟아집니다.
 
한층 어른스러워진 에리, 화려하게 꾸며진 홀, 교복 대신 드레스와 정장을 차려입은 등장인물들.
 
……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습니다.
 
英理:뭐해? 멍하니 있고. 들어가야지. …… 에스코트, 안 해줄 거야? (샐쭉한 얼굴로 작게 흥, 하고 콧방귀를 뀐다.)
 
小五郎:미, 미안. (이게 무슨 난리통이지. 한참 주변을 살피다 어색하게 손을 내민다.) 들어가자.
 
英理:…… 오늘은 조금 멋있으니까 봐주는 줄 알아. (귀끝을 살며시 붉히며 그 손을 약하게 잡았다. 네 곁에 꼭 붙어 종종걸음으로 홀 안쪽으로 걸어간다.)
 
분명 기억상으로는 여전히 1%가 모자랍니다. 맥락상 히든 에피소드가 졸업 파티 같은데…….
 
원작을 되짚어 보면, 주인공과 상대 주인공은 파트너가 되어 졸업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에리가 건넨 파트너 제안에 대답하지 못했는데도 무사히 장면이 넘어온 걸 보면 거기부터 개연성을 충족할 필요는 없는 거겠죠.
 
小五郎: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졸업 파티는 「사랑이 가라사대」의 클라이맥스였으므로,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Handout. 히든 에피소드를 공개합니다.
 
졸업 파티를 맞은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는 완벽하게 연출되어 있습니다.
 
빛을 떨어뜨리는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성화가 벽의 면면을 빈틈없이 채웁니다. 바닥에 깔린 대리석은 어찌나 깨끗한지 얼굴이 비칠 지경입니다.
 
일반적인 졸업 파티처럼 신나게 웃고 떠들 분위기는 아니지만, [댄스 플로어]에선 손을 잡은 엑스트라들이 웃고 춤춥니다. 벽을 따라 선 [긴 테이블] 위에선 색색의 음식이 눈길을 끕니다. 커튼 너머엔 [테라스]들이 숨겨져 있을 겁니다.
 
小五郎:(이게 진짜 뭔데……. 안으로 들어가서도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이도저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네 얼굴을 바라보면, 다른 의미로 심란해져 입맛을 다신다.) …… 뭐부터 할래?
 
英理:……. (네 말에 힐끗 댄스 플로어 쪽을 바라본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발끝을 바닥에 툭툭 두드렸다.) …… 춤 신청 같은 건 원래 남자가 하는 거잖아. 무드 없기는.
 
小五郎:여자가 하는 것도 멋있거든? (정작 진짜 에리랑은 이럴 일조차 없었는데. 아, 모르겠다. 일단 나가는 것만 생각해야지. 네 손을 잡은 그대로 댄스 플로어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손을 잡고 천천히 댄스 플로어로 나갑니다. 때마침 새로운 곡이 시작되었네요.
 
경쾌한 박자, 발랄한 음계. 왈츠입니다. 퍽 익숙한 멜로디군요.
 
英理:……. (여전히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입술을 삐죽이며 자연스레 네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 …… 많이 연습했으니까 오늘은 완벽하게 출 수 있어.
 
小五郎:얼마나 많이 연습했길래. (적당히 기본 스텝만 밟아도 문제 없겠지? 어깨에 손이 닿자 네 허리를 감싸안고서 얼굴을 내려다본다.)
 
英理:…… 같이 연습했잖아? (이상하다는 듯 힐끔 널 올려다보자 눈이 마주쳐 부끄러움에 황급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 있잖아? 오늘 다들 나더러 이 드레스 잘 어울린대.
 
어깨를 감싼 손과 허리를 끌어안는 팔, 익숙하게 스텝을 밟는 구두 굽 소리, 꽃잎처럼 활짝 펼쳐지는 드레스의 치맛자락…….
 
진짜 소설에나 나올 법한 낭만적인 순간입니다.
 
小五郎:어……. 혼자 따로 연습했나 하고. (난 여기 갑자기 던져졌는데 뭔. 천천히 발을 옮기며 네 옷차림을 살펴본다. 주인공이니 가장 화려함은 물론이고, 어떤 의미로 위험하게도 느껴져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풀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늘 네가 가장 돋보이겠네.
 
英理:…… 진짜? …… 그치만 데레테가 날 만났을 때부터 쭉 그런 말 안 해 줬으니까……. (이상했나 하고, 점차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입술을 우물거린다.) …… 별로 상관은 없지만. 난 그런 거 신경 안 쓰거든.
 
小五郎:누가 봐도 신경이 쓰여서 죽겠단 얼굴이거든? (설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던 걸로 설정된 건 아니겠지. 춤만 아니라면 저 입술을 꼬집어 줬을 텐데.) 잘 어울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드레스가 주인만큼 예쁘진 않단 점인가.
 
英理:……. (얼굴이 한껏 새빨개진 채 고개를 들지 못 했다. 괜히 제가 감싸쥐고 있던 네 어깨를 한 번 통 때렸다.) 바, 바보. 말이라도 못 하면……. 맨날 말해 주는 타이밍이 묘하게 늦어.
 
小五郎: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한 바퀴 돌아야 하는 타이밍입니다. 박자에 맞춰 성공적으로 팔을 들자 에리가 사뿐히 한 바퀴 돕니다.
 
小五郎:말이라도 해 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게 빠를걸. 장담해. (말로는 툭툭 쏘면서도 허리를 안은 팔이 달래듯 옆구리를 토닥인다. 이어 빙그르르 돌고 보니 이 몸뚱이가 연습을 하긴 했나 보다, 싶었다.) 고개 좀 들지?
 
英理:…… 그, 그렇게 말하면 진심이 아니라는 것처럼 들리거든! (발끈하듯 말하고서는 머뭇머뭇 시선만 네 쪽으로 올려다본다. 여전히 이 거리감이 어색해 입을 꼭 다물었다.) …….
 
小五郎:진심이야. (아, 확인까지 꼭꼭 받는 점도 똑같나. 새빨간 얼굴을 보곤 작게 웃으며 팔에 더 힘을 줘 안는다.) 이러다 펑 터지는 거 아니냐? 얼굴이 사과가 됐어.
 
英理:…… 그런 건 보고도 알아서 모르는 척해 주면 되잖아! 놀리지 말고. 그러고도 오늘 에스코트 해 주는 파트너야? (어깨를 때렸던 곳을 두어 번 더 때린다. 그래도 네가 웃는 낯에 조금은 안심한 태도로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 데레테도 연습 때에는 실수 엄청 많이 하더니 금세 늘었네.
 
小五郎: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툭툭, 위에 쌓인 먼지를 털고 묻어 두었던 기억을 꺼냅니다.
 
처음 에리의 손을 잡았던 일, 음악 없이 몇 번이고 같은 스텝을 밟으며 익혔던 일, 피아노 연주 대신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을 메우던 부드러운 허밍…….
 
잠깐, 이건 당신이 겪은 일이 아닙니다. 원작의 데레테도 빙의한 코고로도 에리와 춤 연습을 한 적 따윈 없으니까.
 
小五郎:나 말고 다른 파트너는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튀어나가는 대답은 거의, 탁구공이 튀듯 당연한 것이었다. 역시 뭔가 이상하긴 하지. 애초에 남자 주인공도 아닌데……. 내가 이 세상을 아예 다 망쳐놓은 게 맞겠지. 떠오르는 기억이 불쾌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느지막히 입을 벌린다.) 그랬던가…….
 
英理:…… 꼭 그렇게 말해야 해? 조금 더 기쁜 티는 내줄 수 있잖아. 내 파트너라서……. (말을 잇다 보니 어쩐지 자존심이 상해 도로 입을 다문다. 이어지는 네 말에는 점점 시무룩한 얼굴로 변해 가더니 어깨를 힘주어 붙잡았다.) …… 매번 그렇게 심드렁하게…….
 
小五郎:모두에게 사랑받는 네 파트너라서? 지난, …… 몇 년 전 일을 떠올려 보는 게 어때. (적어도 데레테는 단순한 동경에서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네 표정에 한숨을 쉬곤 맞잡은 손도 제 어깨를 짚게 한 뒤 손을 올려 뺨을 간지럽히듯 쓰다듬는다. 성가시네.)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그간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싶더라고.
 
英理:그,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서는 미간을 꾹 찌푸린다. 스텝을 밟던 발을 우뚝 멈추고 양손으로 네 어깨를 밀어냈다.) 도대체 뭐야? 아까부터 이상해. …… 데레테, 계속 날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이나 하고……! 됐어. 파트너 같은 거 하기 싫으면 그냥 가! (그리고는 네게서 뒤돌아 서서 인파를 밀치고 성큼성큼 댄스 플로어 바깥으로 향해 걸어가 버린다.)
 
小五郎:……. (아, 진짜. 널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안 할 수가 있겠냐. 아까까진 신입생이었는데 지금은 졸업생이 되어 있는데 뭘 어쩌란 말이야. 머리가 아파와 이마를 만지다 점점 멀어지는 너를 쫓아 뛰어간다.) 에리! 야! 멈춰!
 
英理:(짜증 나. 잔뜩 속상해진 얼굴로 사람이 적은 듯한 홀의 구석으로 가서 고개를 푹 수그리는데 네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쫓아온 네 모습이 보여 언성을 높였다.) 따라오지 마, 바보야! 나도 억지로 붙들고 있을 생각 없으니까!
 
小五郎:(그러니까…… 하던 대로 달래면 되나. 물론 거짓말을 얹어야겠지만. 왠지 조금 더 성격이 날카로운 것도 같고. 꺅꺅거리는 네 얼굴을 보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애들 앞에서 놀림거리가 될 셈이야? 멋대로 생각하고 결론짓는 건 한결같네. 너.
 
英理:…… 됐어, 놀림거리가 되든 말든. 전부 데레테 탓이잖아! (네 손을 뿌리치지 않은 채 여전히 씩씩거린다.) …… 예전에는 아니라고 했지만 내 앞에서만 그런 거 맞잖아. 심드렁하고, 오늘은 내내 다른 생각이나 하고, …… 다른 애 생각을 하고 있는 거면 걔한테 가봐도 난, 난 전혀 신경 안 쓰니까…….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와 말끝을 흐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小五郎:네 앞이 아닌 나는 대체 어떻길래 매번 그 소리야!? (어이가 없다 못해 승천하겠다. 어쩌면 전부 정해진 대사, 정해진 상황일지도 모르지만 짜증이 나는 건 짜증이 나는 거다. 마찬가지로 점점 언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마음대로 결론지을 거면 왜 나한테 화를 내는데?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은 거 아냐? 내가 너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걸 알긴 해? 어?
 
英理:……. (반대로 네 쪽에서 소리를 치자 흠칫 눈을 크게 뜨고서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 했다. 흔들리는 눈으로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잡았던 손을 떼어내고 제 떨리는 손끝을 만지작거린다.) 나, 나는……. …… 나는 그냥……. …… 그렇게 다 알고 있으면 한 마디만 말해 주면 되잖아! …… 그런 게 아니라고…….
 
小五郎:누구 말대로 바보라 할 줄 모른다, 왜? (달래려던 것과 달리 오히려 화를 더 내고 말았다. 짜증나는 걸 어떻게 해. 어떻게 하라고. 망할 세상아.) 그렇게 불안하면 말을 하든가……. 전부 오해라고 저번에 충분히 말했는데, 진짜.
 
英理:…….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무리 말해도 데레테는 이해 못할 거야. …… 불안한 걸 불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애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 ……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주제에 하나도 몰라. 귀찮다는 얼굴만 하고 있으면서, 말을 하라니…… 그랬던가? 같은 대답이나 하면서. 나랑 파트너 같은 건 왜 한 거야? 내가 불쌍하기라도 했어?
 
小五郎:불안한 게 눈에 다 보이는데 아니라고 거짓말만 하니까 그런 거 아냐. 뭔가 마음에 걸리면 묻기도 전에 화부터 내는데 어떻게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냐……. (속이 타는 기분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지만 주먹을 쥐는 것으로 대신했다. 역시 그 말밖에 없나. 그래도 그건 미루고 싶은데.) …… 하. 네가 날 어떤 수준으로 생각했는지는 잘 알겠다. 불쌍하다고 해서 파트너 자리까지 전부 줄 만큼 관대한 사람인 줄 알았냐?
 
英理:왜 꼭 그렇게 말을 해. …… 그러니까 불안한 거잖아. …… 데레테 네가 무뚝뚝하고 낯 간지러운 말 같은 건 못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꼭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잖아. 덧붙인다. 힘없는 눈꺼풀을 늘어뜨리고 네게서 발걸음을 돌렸다.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 화장실 다녀올게. 가고 싶으면 지금 돌아가.
 
小五郎:……. (기껏해야 이제 서너 번 얼굴을 마주했는데 이미지가 무슨……. 이야기 속의 데레테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심히 의심스러워졌다. 다시금 멀어지려는 네 손을 낚아채 억지로 품에 들인다. 물론 마음은 안다. 전부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하지만 그 마음이 모든 엇갈림의 시작점이기도 해서 더 머리가 아팠다. 이딴 식으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 좋으니까 한 거지, 좋으니까.
 
英理:…… 잠깐……. (방심한 새에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네 품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더니 이내 눈시울까지 붉어진 채로 작게 되묻는다.) …… 정말? …… 나 싫지 않아? 나 귀찮지 않아?
 
小五郎:…… 어. (뭐지. 이거 역시 꿈인가? 상당히 상세한 꿈인가. 여태까진 단순히 닮았나 보다 했지만 이제 수상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네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억지로나마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아무리 귀찮아도 싫어지지 않던데.
 
英理:……. (품속에서 한 번 훌쩍이는 소리를 내더니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얼굴을 빼꼼히 올려다본다.) …… 그럼 오늘 쭉 파트너로 있어 줄 거야?
 
小五郎:애초에 파트너를 그만둔다거나 말한 적 없어. (어이구. 어이구. 순간 젖어든 얼굴이 과거와 겹쳐 보여 눈가를 닦아주곤 등도 토닥여준다.) 뭐 좀 마실래? 진정해야지.
 
英理:…… 응. (조금의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리광을 부리듯 고개를 순순히 끄덕이고 품에서 빠져나와 먼저 네 손끝을 꼭 감싸잡았다.) …… 배도 고파.
 
小五郎:그래. 뭐 먹고 싶냐? 보니까 이것저것 있던데. (손을 잡은 그대로 길게 늘어진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아무래도 술은 못 마시겠지…….)
 
긴 테이블에는 파티 도중 먹기 편한 핑거 푸드가 여러 종류 준비되어 있습니다.
 
구운 빵 사이 꿀에 저민 밤을 채운 미니 샌드위치, 노른자에 아보카도와 닭고기, 특제 소스를 버무려 흰자에 동그랗게 짜낸 데빌드 에그. 얇은 크래커 위에 버터와 치즈, 생크림을 종류별로 바르고 과일을 곁들인 카나페.
 
올리브와 파인애플, 방울토마토와 촙스테이크를 꽂은 꼬치, 기둥을 떼어낸 버섯에 옥수수알과 치즈를 듬뿍 채워 구워낸 양송이 요리. 바게트 위에 새싹 채소와 파슬리로 장식한 새우를 올린 부르스게타. 한입 크기의 케이크와 초콜릿, 치즈에 마카롱. 테이블 끄트머리에 세워둔 샴페인 탑까지.
 
원하는 만큼 먹고 마시면 됩니다.
 
英理:데레테. (종종걸음으로 네 손을 이끌어 테이블로 다가가더니, 양송이 요리를 덜어와 네 입가 가까이에 댄다.) 느끼한 것보다 이런 거 좋아하잖아. …… 아, 해.
 
감동할 새도 없이 의심이 끼어듭니다. 어떻게 알았지? 잘 먹긴 하지만, 데레테가 된 후 음식 취향 얘기는 한 적 없습니다.
 
…….
 
의심은 한 가지 추론에 다다릅니다. 원작의 상대 주인공이 좋아하는 음식이었겠죠.
 
이것도 그저 정해진 대사란 사실이 새삼 마음을 저밉니다.
 
小五郎:…… 아아. (어쩔 수 없지. 아니꼽긴 하지만 마냥 즐길 수 있는 것도, 그러고 싶지도 않다. 순순히 요리를 받아 삼킨다.) 맛있네. (고개를 끄덕이곤 샴페인 탑을 흘끗 본다. …… 잠깐 봤을 뿐이다.)
 
英理:후후, 정말? 나도 먹어 봐야지. (아직까지 붉은 눈가로 작게 웃고서 저도 테이블 근처를 기웃거린다. 그러다 네 시선이 향한 끝을 덩달아 따라가 바라본다.) …… 목말라?
 
小五郎:조금. 진짜 조금. (네게 들키자 다시 고개를 돌린다. 접시를 하나 들고 음식마다 하나씩 꼼꼼하게 담더니 초콜릿과 케이크도 담아 네 앞에 내려놓는다.) …… 저거, 무알콜일까?
 
英理:…… 앗, 이렇게 많이 먹으면 살찌는데……. (곤란한 듯한 얼굴을 하고서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 어차피 졸업 파티니까 무알콜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 아, 아닌가?
 
小五郎:안 찌니까 팍팍 먹어. (뒤에 착 붙은 널 보다가 미니 샌드위치를 들어 네 입에 쑥 밀어넣었다.) 너나 나나 취하면 곤란하니까 그렇지. 잠깐만 기다려 봐. (샴페인 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이리저리 살펴본다. 알콜인가? 논알콜인가? 괜찮나?!)
 
英理:(샌드위치를 입에 합 물고서 우물거린다. 그래봤자 한 잔 정도일 텐데. 걱정도 많다니까……. 샌드위치를 먹으며 널 기다리는 동안 초콜릿 두어 개를 더 집어놓는다.)
 
무알콜 샴페인인 것 같습니다.
 
小五郎:에이……. (걱정한 주제에 진심으로 실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샴페인 두 잔을 들고 네게로 돌아간다.) 좀 먹고 있었냐?
 
英理:(네가 돌아올 동안 초콜릿까지 우물거리고 있다 급하게 삼키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 응! ……. 여기 초콜릿 엄청 맛있어. 아, 샴페인 가져왔네? 마셔도 괜찮을 것 같아?
 
小五郎:그러냐……. (뭐야. 나이를 먹어도 완전 아기잖아……. 정신이 잠시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초콜릿에 손을 뻗다 말고 작은 치즈 조각을 하나 먹었다.) 응. 무알콜인 것 같더라. 그러니까 마음껏 먹고 마셔도 돼. 에리.
 
英理:…… 그, 그치만. 졸업 파티를 위해서 3일 동안 다이어트 했는데……. (괜찮은 건가? 작게 중얼거리고서 카나페를 더 가져온 뒤에 네게서 잔을 받아들었다.) 그, 그럼…… 모처럼이니 건배할까?
 
小五郎:파티는 이미 시작됐고, 드레스도 잘 입었으니 문제 없네. (사흘이라. 저는 그 사흘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던져놓을 거면 정보 정도는 충분히 달란 말이다. 망할 시스템. 고개를 끄덕이고 잔을 내민다.) 건배.
 
달큰한 술 냄새가 백일몽처럼 코끝을 스칩니다. 잔을 기울여 건배하면 청명한 소리가 울립니다.
 
英理:(네게 잔을 부딪히고서 조심스레 술잔 끄트머리를 홀짝여본다.) …… 응, …… 이거 진짜 무알콜 맞아? 아, 안 마셔 봐서 잘 모르겠지만…… 조금 쓰네.
 
小五郎:응? 술은 원래 쓰니까……. 잠시만. (네 반응에 익숙하게 잔에 입을 대 한 모금 마신다. 무알콜이 맞나?)
 
아닐지도?
 
小五郎:(야!)
…… 너 그만 마셔. (네 손목을 꼬옥 잡는다.)
 
英理:(한 입을 더 마시려다 저지하는 손길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 왜? 조금 쓰긴 해도 생각보다 달콤해서 맛있는데…….
 
小五郎:달콤하다고 마시다 보면 금방 취해. 정 마시고 싶으면……. (눈가를 찌푸리더니 초콜릿을 집어 네 입술 사이로 밀어넣는다.)
 
英理:(초콜릿을 받아먹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초콜릿을 삼킨 뒤 샴페인을 한 모금 더 마신다.) 무알콜이니까 취할 리 없잖아. 데레테는 바보.
 
小五郎:무알콜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렇지. (시스템을 죽여버려야겠다. 심란한 표정으로 제 잔을 쭉 비우곤 마카롱을 집어 한입에 전부 먹는다.) …… 으엑, 달아.
 
英理:뭐야? 아깐 무알콜이라며? (대놓고 못 미더운 표정을 해보인다.) 거기다 무알콜이 아닌 것 같다면서 왜 데레테는 전부 마셔?
 
小五郎:네가 잘 아는 게 있듯이 나도 잘 아는 게 있지 않겠냐. (초콜릿을 하나 더 네 입에 넣는다.) 나는 잘 마시니까 괜찮아.
 
英理:…… 잘 마시는지 어떻게 아는데? (일단 우물거리지만 미심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小五郎:…… 본가에서 마셨으니까? (사실 수십 년간 마셔왔습니다. 이거 미안하게 됐구만. 속으로 꿍얼거린다.)
 
英理:…… 데레테, 엄청 불량 학생이네! (저도 샴페인을 마저 홀짝인다.) 나도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평소 같았으면 절대 허용하지 않았겠지만……. 이제 어른이고, 학교에서도 내줬고…….
 
小五郎:우리 엄마랑 아빠가 불량 부모라는 거야? (농담을 하곤 네 손을 잡아당겨 잔에 남은 샴페인을 전부 마셔버린다.) 안 돼. 이제 끝. 대신 초콜릿 백 개 먹어도 귀엽다고만 생각할게.
 
英理:그, 그게 아니라…… 앗! (허망하게 다 비워진 잔을 바라본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지더니 네 정강이를 가볍게 퍽 찬다.) 왜 멋대로 마시는 거야, 바보! 데레테가 무슨 내 아빠야?
 
小五郎:(아빠는 맞는데. 정강이가 찌르르 울려 잠시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숨을 고른다.) 안 되는 건 안 돼! 금방 취하는 체질이라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잠들고 싶냐?
 
英理:그건 마시기 전에는 모르는 거잖아!? 나도 잘 마실 수도 있고! 한 잔 정도는 문제 없을 테니 학교에서 준비해 줬겠지! 내 말이 틀려? (심통이 난 얼굴로 똑같이 혼내는 듯한 얼굴을 했다.) 데레테가 내 아빠냐구! 모처럼 졸업 파티인데! 기분 내고 싶단 말이야!
 
小五郎:틀려! 내가 잠깐 못 보고 있을 때 쓰러지거나 하는 건 절대 절대 사양이거든? (그리고 아직 할 일도 많이 남았다. 그리고 그리고 아빠도 맞다고!! 네 볼을 손끝으로 콕콕 찌른다.) 이따가 끝나기 전에 한 잔 더 마시면 되잖아.
 
英理:…… 그럼 이따가는 허락해 줄 거야? (한층 누그러진 태도로 시무룩하게 물어본다.)
 
小五郎:그래. 빨리 마시면 취하니까 끊어서 마셔. 초콜릿 하나 더 먹을래? (일부러 주의를 돌리려 네 손을 잡고 초콜릿 무더기 쪽으로 끌고 간다.)
 
英理:너, 너무 많이 먹었는데, 오늘……. (힐끔힐끔 샴페인이 있는 곳을 뒤돌아봤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 아쉬운 대로 초콜릿을 세네 개 더 담았다.) 으응, 그럼 딱 세 개만 더……. 평소에는 절제했으니까.
 
小五郎:뭐 얼마나 먹었다고. 이 마카롱도 엄청 단 게 네가 좋아하겠던데. 이것도 먹어. 나는 고기 좀 더 먹을래. (접시가 채워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나마 지금 즐겨두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서러워질 것 같았다.)
 
英理:……. (초콜릿을 입에 넣으니 얼굴이 행복하게 풀렸다. 샴페인에 대한 건 금세 까맣게 잊고 널 따라다니며 조잘거린다.) 데레테, 데레테. 그럼 있잖아, …… 파티가 끝나고 나서도 나랑 계속 있어 줄 거야?
 
小五郎:맛있네……. (이 찹스테이크 꼬치 진짜 맛있잖냐. 돌아가서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감상에 빠져있는 사이 네가 쫑알거리는 말에 사레가 들려 마구 기침을 해댔다.) 켁…….그, 그럼. 그래야지.
 
英理:괜찮아? 천천히 먹어! 바보. (조금 놀란 얼굴로 네 등을 가볍게 두드려 준다. 그리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 응, 그 대답이면 충분해. …… 이, 이따가……. 마저 먹고 우리, 그, …… 아무도 없는 데로 가지 않을래?
 
小五郎:네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까 그렇지. (그 뒤로도 한참 잔기침을 하고 나서야 속이 편해졌다.) …… 어, 어어. 중요한 일이면 지금 가도 괜찮은데. (어차피 할 일도 있고 말이지…….)
 
英理:응? 아, 아니, 크게 중요한 건…….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 채 우물쭈물 초콜릿을 먹었다.) 중요한 건 아닌데……. 그냥, …… 그냥 둘이 있고 싶어서…….
 
小五郎:…… 그러면 초콜릿만 몇 개 더 챙겨. (테라스로 가면 되겠지. 그나저나 마지막 조건은 이미 충족한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네. 먹다 만 꼬치를 내려놓고 네 얼굴만 바라본다.) 얼른.
 
英理:돼, 됐어! 이 정도 먹었으면. 엄청 많이 먹었다구.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네 시선을 피한 채 살그머니 손을 잡아온다.) …… 더 안 먹어도 돼? 데레테.
 
小五郎:그러다 나중에 후회해도 몰라? (배가 차긴 했는지 모르겠다. 잡아오는 손을 마주 잡고서 커튼이 드리워진 쪽으로 향한다.) 괜찮아. 자, 살짝 들 테니까 몰래 들어가.
 
英理:…… 응. (고개를 끄덕이고 커튼 안쪽으로 뻗어 있는 테라스로 몰래 먼저 나간다.)
 
小五郎:(어차피 날 쳐다보는 사람은 없겠지. 그래도 주변을 쭉 둘러보고서 네 뒤를 따라 테라스로 나간다.)
 
커튼 너머의 테라스로 나가면,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의 정경이 펼쳐집니다.
 
숲의 백합보다 새하얀 성채, 정문의 창살 너머로 팔을 벌린 마리아상, 여름을 맞아 꽃을 떨구고 푸른 잎을 낸 벚나무.
 
작중의 시간이 3년이나 흘렀단 설정일 텐데도 한결같습니다.
 
英理:(테라스에 기대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 …… 조금 살 것 같아. 물론 데레테랑 있는 건 좋지만 보는 시선이 많은 걸 그렇게 즐기는 타입은 아니라서…….
 
小五郎:알아. (항상 수십 개의 눈동자가 쫓아다니는 삶 같은 건 부럽지도 않다. 테라스 난간에 등을 기대고 서서 고개만 돌려 네 옆모습을 바라본다.) …… 힘들었지?
 
英理:……. (말없이 네 시선을 받아들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돌려 바닥을 내려다본다.) …… 괜찮아. 별로 힘들다거나 느끼지는 않았으니까. …… 그리고, 데레테도 있어 줬잖아.
 
小五郎:누군가 같이 있다고 해서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겠냐. (조금 덜어주는 정도일 뿐이지. …… 적어도, 지금 정도는, 인간으로서 위로해도 괜찮지 않을까. 네 팔을 콕 찌르곤 안기라는 듯 품을 보인다.) 여태 잘 버텼네. 대단해.
 
英理:…… 뭐야? 또 아빠인 셈 구는 거야? (장난스레 웃으며 툭 물었지만서도 머뭇거리다 네 품에 조심스럽게 안겼다.) …… 하지만 정말이야. 데레테가 없었다면, …… 버티지 못 했을지도 몰라.
 
小五郎:아빠가 아니라 친구지. (너만이 알고 있는, 그런 친구. 거기까지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품에 들어온 네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정말? 난 네가 그렇게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英理:…….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웃는 낯으로 널 마주 끌어안았다.) …… 데레테, 아니야. 나는 생각보다 약해. 그러지 않은 척을 해온 것뿐이지. …… 데레테가 없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약한 나는 싫어?
 
小五郎:누군가에게 의지해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충분히 강한 사람이야. 네가 강철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그저 네 생각만큼 작은 존재가 아니란 거지. (조심스럽게 네 머리 위로 뺨을 기댄다.) 아니, 무너져도 돼. 마음껏…… 몇 번이든.
 
英理:…… 앞으로 몇 번이고 무너지게 되더라도, ……. (부끄러움에 뒷말을 잇지 못한 채 얼굴을 붉히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 그게 데레테 곁이라면 상관없을 것 같아.
 
小五郎:……. (내가 사라지면 데레테도 함께 사라질까. 아니면 데레테 대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까. 데레테는 남아있으면 좋겠다. 나는 데레테가 아니라 코고로니까. 홀로 생각하며 나즈막히 웃음을 터뜨린다.) 엄청 무뚝뚝하고 낯 뜨거운 말도 못 하는데?
 
英理:…… 그, 그런 데레테니까……. (차마 이 이상은 더 말하지 못 하겠는지 으응, 하고 앓는 소리만 냈다.) …… 그래도 어리광을 부리지는 않을 거야. 무사히 졸업했도 했고 합격도 했으니 이대로 대학에 가서, 또 무사히 변호사가 될 거니까. 무너질 여유 같은 것도 없을지도 몰라.
 
小五郎:여태 어리광만 부리고 있었……. (뭐? 변호사? 난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는데. 이것도 내가 생략당한 시간에 지나간 일인가. 인상을 찌푸리며 네가 그런 얼굴을 볼 수 없도록 단단히 꽉 안았다. 억지로 입을 열고 농담을 흘렸다.) …… 변호사가, 되려면…… 얼굴 볼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지는 거 아니냐.
 
英理:우응, …… 숨 막혀, 데레테. (한 손으로 네 팔을 가볍게 툭툭 친다.) …… 왜? 쓸쓸할 것 같아? 후후. 데레테, 안 그럴 것 같았는데 외로움을 많이 타는 타입이려나…….
 
小五郎:괜찮잖아. 잠깐 정도는 숨 막히는 경험을 하는 것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통 모르겠다. 어째서…….) 그거야……. 허전하겠지. 원래 있다 없으면 더 그렇대.
 
英理:……. (얌전히 네 품에 안긴 채 아무 저항 없이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네 얼굴을 안 볼 수 있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 있잖아. 변호사가 되기까지도, 꿈을 이루고 나서도, 결혼 같은 걸 생각할 만큼 어른이 되어서도, …… 나는……. 데, 데레테랑 같이…… 있고 싶어.
 
小五郎:…….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할 수 있는 말도 단 하나. 선택지가 없는데도 갈등하게 되다니. 네 고백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손끝에 힘을 준다.) 네 곁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네가 말한 만큼 어른이 되어도, 그 이후로도…… 그래.
 
英理:(네가 말이 없는 동안 불안함으로 가득한 얼굴을 숨기며 마른침을 삼켰다. 대답이 이어나오자 두근거리던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지며 안색이 밝아진다. 꾸물꾸물 몸을 움직여 네게서 한 발짝 떨어져 나온다.) 기뻐. 진심으로…… 엄청. 데레테, …… 오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 들어 줄 거야?
 
小五郎:…… 응. (눈을 뜨면 여전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네 얼굴이 보인다. 내가 기억하는 너인지, 아니면 정말 너인지, 그도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지. 억지로 쥐어짜고 비틀어 만든 이 이야기 속에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네 말을 기다리며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손만 만지작거리던 에리의 붉어진 뺨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은 이후에 올 대사를 알고 있습니다.
 
英理:…… 데레테, …… 오늘 어울려 줘서 고마워. 그리고 어, 어른이 되어서도 같이 있어 주겠다고도 말해 줘서……. (고개를 수그린 채 주먹을 꼭 쥐었다.) 그, 그래서 말인데, 나 역시……. …… 데레테를 좋아하는 것 같아. 데레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박자, 숨을 들이켠 에리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英理:…… 나한테는 처음부터 사랑이었어.
 
「테라스에 선 ■■■는 ■■한 얼굴로 에리를 바라봤다.」
 
小五郎:
rolling d30
 
(
26
 
)
 
 
=
26
 
어느새 이만큼 부푼 사랑은 성큼 다가옵니다.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인 걸 전혀 모르는 얼굴입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설렘에 부풀어 있습니다.
 
원작대로 흘러가는 이야기. 코고로가 데레테라서 절대 채울 수 없는 공백.
 
미래를 약속하면 끝나는 이야기. 해피엔딩 후에 찾아올 이별.
 
그 모든 것이 뒤섞인 장면에서, 당신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小五郎:…….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저 나를 사랑해 준 너를 위해서, 나를 0이 아닌 100으로 바라보는 너를 위해서, 허상 뿐인 세계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쉬는 너를 위해서, 나는.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일지라도.) …… 나는. 그보다 더 전부터 사랑해왔어. 바보야.
 
당신이 대답하고 있는 순간, 톡. 콧잔등에 차가운 감촉이 떨어집니다.
 
테라스 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를 뒤덮습니다.
 
파릇파릇한 녹음 위로 소복이 쌓이는 하양. 여름에 내리는 눈이라니 이 얼마나……. 불가해한가요?
 
9월에 학기를 시작하는 커리큘럼상, 졸업 파티 시즌은 한여름. 때늦은 눈이라고 말 못 할 타이밍입니다.
 
문득 주변이 어두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식이 벌어질 때처럼.
 
小五郎:……. (눈? 급하게 주변을 살피다가 네 상태를 확인했다.)
 
英理:…… 누, 눈? (저도 똑같이 당황한 얼굴로 하늘 위를 바라본다.) …… 데레테, 저건…….
 
小五郎:눈이……. (눈이 왜 오는데. 네 눈길을 쫓아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면 멸망의 시작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떨어지던 건 눈송이 따위가 아니고, 벌어진 건 기상이변 같은 게 아닙니다.
 
하늘이 깨지고 있습니다. 차가운 조각들은 그 파편입니다.
 
누군가 잡아 뜯은 것처럼 길게 갈라진 하늘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고입니다.
 
그림자라고 확신한 건, 다닥다닥 달라붙은 눈알들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또 저 눈입니다. 악의로 가득 찬 시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모든 눈알이 전부, 하나 같이, 한 쌍도 빼놓지 않고. SanC 1/1D10.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小五郎:
rolling 1d10
 
(
9
 
)
 
 
=
9
 
깨진 틈새로 거대한 무언가가 기어 나오고 있습니다.
 
사사삭, 다리 많은 벌레가 어둠을 기는 소리입니다.
 
너머에 있는 게 대체 뭐지?
 
이번만큼은 주인공도, 엑스트라도 똑같은 광경을 봅니다. 비명이 난무하고 두려움이 팽창합니다.
 
하늘은 부서지고 땅은 흔들리는 와중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小五郎:(이 상황에…….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다.)
 
[SYSTEM]:개연성 100% 복구 불가.
오류 발생.
기록을 불러오는 중에 발생한 오류일 가능성 100%.
 
당신은 이제야 제 이름의 올바른 표기를 읽어냅니다.
 
[SYSTEM]:Error Code: DELETE.
 
삭제해야 하는 버그.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에러.
 
작품 속 설정이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 상대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는 이야기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주인공을 원래 궤도에 돌려놓지 않으면 세계는 이대로 멸망하고 맙니다.
 
SanC 0/1.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SYSTEM]:개연성 복구 필요.
개연성 복구 필요.
개연성 복구 필요.
 
시스템 메시지는 당신에게 개연성을 복구하라고 종용합니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안에서 공포에 질려 도망치던 엑스트라들은 당신과 눈이 마주치면 일제히 행동을 멈춥니다.
 
합창하듯 일시에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거긴 네 자리가 아니야.”
 
“그건 네 역할이 아니야.”
 
“여긴 네 세계가 아니야.”
 
“네 역할은 데레테.”
 
“데레테는 데레테일뿐.”
 
모두가 데레테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 역할.
 
세계가 데레테에게 부여한 단 한 가지 대사.
 
에리가 이후에 상대 주인공을 만날 수 있을지, 다시 사랑에 빠질 순 있을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원작을 복구할 수 있을지.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이야기지만, 애당초 그런 걸 걱정하는 건 주인공들의 역할입니다.
 
英理:데레테, 괜찮아? 일단 도망치자. 안으로…….
 
에리는 다급하게 당신을 붙잡습니다.
 
처음부터 사랑이었다는 사람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까요.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대로 멸망한다면.
 
비록 해피엔딩은 아닐지언정 이야기의 끝에 도달한 셈이니,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에리는…….
 
小五郎:
rolling d30
 
(
21
 
)
 
 
=
21
 
[SYSTEM]:현재 호감도 100점.
 
Handout. 호감도 시스템을 수정 후 재공개합니다.
 
코고로는 실감합니다.
 
이 세계를 한낱 작품으로, 주인공을 고작 캐릭터로만 여길 수 없다고. 책을 덮듯 끝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네가 처음부터 사랑이었듯, 나도 이제는 사랑이기에.
 
종말이 다가오는 이때, 당신은 에리에게 어떤 말을 하나요?
 
小五郎:…… 그래. 도망치자.
좋아해. …… 좋아해, 에리. 그러니까 도망치자.
 
「DELETE가 말했다.」
 
“좋아해. …… 좋아해, 에리.”
 
[SYSTEM]:엔딩 조건 충족.
 
한 차례의 진동이 지나간 후, 실이 끊긴 인형처럼 몸이 허물어집니다.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의 홀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천장을 떠받들던 기둥은 무너졌으며, 샹들리에는 산산이 부서졌고, 쏟아진 음식과 사람이 뒤섞여 진창을 이루고 있었다. 흘러넘친 피는 절묘하게도, 벽화 속 신의 두 눈을 가리웠다.」
 
「DELETE는 고개를 가누려 했으나 실패했다. 단단한 것에 부딪혔는지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
 
「죽고 싶지 않아, 생각과는 달리 DELETE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 에리의 표정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으니까.」
 
「DELETE를 내려다보던 에리는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英理:…… 앞으로도 함께 있자던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어른이 된 너도 보고 싶었는데…….
 
「말릴 새도 없이 뺨에 입맞춤이 떨어졌다.」
 
英理:살아남아, 코고로.
 
까무룩 떨어지는 무의식 속에서도 어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사랑이 가라사대」에 이런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청춘 로맨스 소설인걸. 세계 멸망 같은 지독한 사건이 벌어질 리 없는데…….
 
하지만 당신은 분명히 읽었습니다. 아니, 기억하고 있습니다.
 
……
 
깜빡, 깜빡. 어깨를 흔드는 진동에 정신을 차리면 낯익은 천장이 보입니다.
 
당신이 지난밤 잠들었던 침대 위에서 깨어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분명 당신의 방입니다. 익숙한 가구 사이 [책장]에 시선이 미칩니다.
 
小五郎:……. (성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가서 책을 찾는다.)
 
코고로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가라사대」라는 제목은 보이지 않습니다. 몇 번을 다시 확인해도 그런 책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책, 어디서 읽었더라.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니, 정말 실재하는 책이긴 한 건가?
 
산 적도, 본 적도 없는데,
 
하지만 소설이 아니라면 어째서 이렇게 익숙해?
 
당신은 이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의문에 책장을 등지면, 거울과 눈이 마주칩니다.
 
혼란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얼굴. 지독하게 낯익은 38세의 남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벼락같이 내리치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왜 모든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동안 상대 주인공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지?
 
침대 위에 내팽개쳤던 스마트폰이 다시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小五郎: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전부 싫다. 그럼에도 억지로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보았다.)
 
[SYSTEM]:삭제된 데이터 복구 완료.
DELETE 정보 확인: 모리 코고로.
접근 권한 확보.
모든 정보 열람 가능.
 
존재하지 않는 발신자. 공백의 번호. 익숙한 말투. 마지막 텍스트 끝에서 깜빡거리는 커서가 현란하게 혼란을 들쑤십니다.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小五郎:(이건 또 뭔 개소린데. 알게 되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입술을 깨물며 토도독, 화면을 두들긴다.) 너 누구야.
 
[SYSTEM]:코고로의 파편.
한때 코고로였던 일부.
삭제 후 남은 더미 데이터.
 
小五郎:나는 여기 있는데?
 
[SYSTEM]:코고로가 속했던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
코고로는 한때 이곳에 존재했던 인물.
 
小五郎:(아닌데……? 질문을 해도 해결되는 게 없어 얼굴에 짜증이 가득 서린다.)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르겠어.
 
[SYSTEM]:2022:07:07:19:11:39 코고로의 모든 정보 삭제.
개연성 확인 절차를 거쳐 삭제된 정보 복원 완료.
 
메시지에 적힌 날짜는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의 졸업식입니다.
 
그러니까, 한참 졸업 파티가 진행되던 중에…… 모든 정보가 삭제되었다고?
 
눈앞의 기록들은 한 가지 추측으로 연결됩니다.
 
당신은 기록을 불러오던 중 휘말린 불순물이 아니었다는 것. 도리어, 강제로 삭제된 정보.
 
억지로 잘려 나간 개연성. 채워야만 하는 빈칸. 기록을 불러오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小五郎:그러니까 그게 뭔……. 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내가 두 명이라는 거? 아니면 여기 있는 내가 가짜라는 거?
 
[SYSTEM]:코고로는 한때 이곳에 존재했던 인물.
코고로 삭제 원인: 세계 추방.
 
小五郎:하나도 답이 안 되잖냐……. 나는 나고, 네가 쫓겨난 나인 거 아냐? (애초에 나의 파편이니 뭐니 하는 말부터 납득이 안 간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화면을 노려본다.) 그럼 에리는 뭐야. 누가 날 추방했어?
 
[SYSTEM]:에리.
 
에리가 마지막에 건네던 말이 떠오릅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 살아남으라던 간절한 염원.
 
시스템 메세지는 계속해서 간결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한낱 이야기가 아니었던 겁니다. SanC 0/1D2.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찢어진 하늘 틈새로 형형하게 빛나던 눈알들을 떠올리자, 깊숙한 곳에 묻혀있던 원 세계의 마지막 장면마저 함께 딸려옵니다.
 
「시작은 기상이변이었다. 봄에 눈이 오는가 하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고, 예측하지 못한 일식과 월식이 반복됐다.」
 
「몇 번의 징조가 반복됐을까. 학계와 환경단체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과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하늘이 부서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멸망은 세계 바깥에서 찾아오는 외우주의 존재임을.」
 
「제일 먼저 틈새를 비집고 나온 건 거대한 인간의 머리였다. 금관을 쓴 남자였는데, 눈에는 흰자가 보이지 않고 피부는 가뭄이 든 땅처럼 갈라져 있었다. 행성마저 한입에 삼킬 듯 압도적인 머리가 하늘을 찢고 나타나자, 양옆에 달린 또 다른 머리들이 보였다. 하나는 고양이, 하나는 개구리를 닮았는데, 결합부는 부글거리는 거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한 냄새가 가득했다.」
 
「머리가 전부 빠져나오니 다음은 다리였다. 흡사 거미의 것처럼 생긴, 단단하고 마디가 있는 66개의 다리는 하늘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찢어발겼다. 그 뒤를 따라 모든 걸 먹어 치우는 66개의 거미 군단이 쏟아졌으며…….」
 
「살육의 현장에서 오직 악한 숭배자들만 기뻐 날뛰었다.」
 
모든 인과가 제자리를 찾습니다. 세계가 멸망한 건 당신이 개연성을 망가뜨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계가 멸망했기 때문에 당신이 쫓겨난 것입니다.
 
데레테, 지워진 코고로의 이름.
 
다른 이의 역할을 빼앗은 게 아닙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에리는 내내 당신을,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데레테. 그렇게 부르던 목소리의 이면이 이제야 들립니다.
 
에리가 발견한 것도, 바라본 것도, 부른 것도, 찾아낸 것도, 좋아한 것도, 고백한 것도, 춤을 춘 것도, 미래를 약속한 것도…….
 
전부 당신, 코고로였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아내면 한 가지 의문에 도달합니다.
 
그렇다면, 왜 나를 불러낸 거지?
 
小五郎:……. (화면을 두드리는 손끝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예상이 가는 건 있지만 확실하게 알아두고 싶었다.) 그럼 왜 쫓겨난 나를 불렀어. 누가 부른 거야.
 
[SYSTEM]:새로운 방법 확보.
개연성을 파악하는 목적은 복선의 식별.
복선을 모두 삭제하면 결말 수정 가능.
 
복선이라면 코고로도 다시 읽는 과정에서 몇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복도 모퉁이를 돌던 수상한 그림자, 기도실에서 작당을 벌이던 목소리들, 담벼락 너머로 사라진 또 다른 그림자.
 
돌아가서, 그 모든 복선을 삭제하면 결말을 바꿀 수 있다. 한때 당신이었던 더미 데이터는 그렇게 말합니다.
 
자아를 잃고 이름도 잊어버린 주제에 오직 결말을 바꾸겠다는 염원으로 작동하는 더미 데이터.
 
코고로가 세계에서 추방당하며 잃어버린 마음은 완전히 지워지지도 사라지지도 못하고 이런 형태로 완성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새로 품은 마음은, 이 더미 데이터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요?
 
[DELETE]:에리를 구ㅎㅐ줘.
 
불완전한 메시지가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사무소의 노크 소리가 울립니다.
 
英理:여보, 안에 있어요?
 
에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에서 만난 에리가 아니라, 지금 당신의 현실에서 만난 에리가.
 
온종일 연락이 닿지 않아 집까지 찾아온 것 같습니다.
 
[DELETE]:복선을 모두 삭제하면 결말 수정 가능.
 
…… 하지만, 그 결말은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과거.
 
결말을 바꾸면 과거도 바뀌게 됩니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뀌고 말겠죠.
 
다시는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小五郎:돌아갈 방법도 모르는데 무조건 그렇게 말을 해도……. 일단. (일단, 에리가 괜찮은지 봐야겠다. 잠깐 사이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도…….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린 문으로 향했다.)
 
에리를 구해줘. 동일한 메세지만이 반복해서 당신의 핸드폰을 울리고 있습니다.
 
결말이 바뀌어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에리는 코고로를 추방하지 않을 테죠.
 
이번처럼 운 좋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따위 불가능할 겁니다.
 
복선을 삭제하고 세계를 구한 후에,
 
아직 살아있는 에리에게
 
다시 보내 달라고 말하면…….
 
에리의 반응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엑스트라 데레테가 아니라 상대 주인공이니까.
 
주인공은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을 테니까.
 
코고로는 선택해야 합니다.
 
돌아가서 원 세계를 구할까요? 아니면 이 메세지를 외면할까요.
 
小五郎:(징징 울려대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현관으로 걸어갔다. 어떻게 하든 네 얼굴부터 보고 싶었다.) …….
 
여전히 걱정스러운 노크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웁니다.
 
小五郎:(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쾅, 현관문을 열면 에리가 들이닥칩니다.
 
몰아쉬는 숨, 상기된 얼굴, 엉망진창으로 흩날린 머리카락.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한참 헐떡거립니다.
 
英理:여, 여보……. 괜찮아요!?
 
열린 문틀 너머로 바깥에서 들이 쬔 빛이 스밉니다.
 
환한 곳에서 마주한 눈동자엔 당신을 향한 걱정이 선명합니다. 이렇게 닮았는데. 이름도, 생김새도, 성격도 똑같은데. 그런데도…….
 
기어코 포기한 과거의 에리를 생각하자 반사적으로 눈물이 떨어집니다.
 
울고 싶어지지도 않았는데. 바닥으로 떨어진 눈물은 희미한 자국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도 언젠간 이렇게 흐릿해지겠죠.
 
한달음에 달려온 에리가 당신의 손을 붙잡습니다.
 
괜찮은지 여기저기 살피는 시선이 분주합니다.
 
이 모든 건 당신의 선택인데도, 넘치는 걱정에 위안을 얻는다면 우스울까요.
 
붙잡은 손의 체온이 딱 적당할 정도로 따뜻합니다. 낯선 세계에 왔었다는 두려움도 형태를 잃고 뭉근히 녹아내립니다.
 
마냥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닙니다. 아직 당신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요.
 
열린 문은 활짝 벌어져 있습니다.
 
小五郎:걱정하게 해서 미안. 에리……. (겨우 사과를 하고서 숨을 골랐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누가 알았겠어. 네 손을 만지작거리다 조심스레 놓았다.) 급하게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 다 끝나면 연락할게. 최대한 빨리 끝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줄래? (이 얼마나 염치 없는 말인지. 차마 네 눈을 볼 수 없어 시선이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英理:…… 일 때문에 연락이 안 됐던 거예요? 무슨 의뢰였길래……. (양손을 뻗어 네 젖은 뺨을 쓸어주며 닦아낸다.) …… 어디 아픈가 했어요. 알았어요, 일이라면 방해 안 할게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도…… 돼요?
 
小五郎:…… 응. 대신 이상한 일이 있어도 신고하거나 하진 마. 끝나고 나면 무슨 일인지 이야기도 전부 할 거야. (네 손길에 고여있던 눈물을 마저 흘리곤 고민하다 네 몸을 꼬옥 안고 뺨에 입을 맞춘다.) 거실에 있을래? 아니면 침실?
 
英理:…… 거실에 있을게요. (걱정스럽게 네 얼굴을 올려다보고 묻고 싶은 많은 말들을 삼킨다.) …… 약속이에요. 당신이 이런 모습 보이는 건 처음이니까……. 꼭 다녀와서 얘기해 줘야 해.
 
小五郎:알았어. 약속. (그대로 널 거실로 데려가 소파에 앉히고, 뒤늦게 휴대폰을 꺼낸다. 네 앞에 선 그대로 초조한 얼굴을 내비치며 아직도 메시지가 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DELETE에게서는 여전히 메세지가 오고 있습니다.
 
小五郎:구하러 갈게. (간단히 답을 보내고 다시 네 얼굴을 쳐다본다. 무조건 돌아올게. 다짐하는 속이 여전히 쓰리다.)
 
구하러 가겠다고 답장을 보내면, 주변의 자잘한 소음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눈을 뜨면 도서실 근처의 복도입니다.
 
엑스트라들은 정해진 대본대로 착실하게 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에리의 뒤통수가 보이고요.
 
“에리, 입학식 선서 때 전혀 안 떨더라.”
 
“이런 것쯤은 별거 아니다~ 그런 느낌!”
 
“맞아, 맞아. 노력하지 않고도 타고나길 그렇겠지. 그런 점이 특히 동경하게 된달까.”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목격하는 장면은 전혀 다른 씬 같습니다.
 
첫 번째 복선은 이곳. 복도의 모퉁이였습니다.
 
小五郎:언제 오냐. (복도 안쪽 모퉁이에 숨어 흘끔흘끔 상황만 살핀다.)
 
제대로 자리를 잡고 기다리면 아니나 다를까, 긴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 복도 모퉁이로 휙 뛰어 들어옵니다.
 
손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꽁꽁 싸맨 불청객입니다.
 
小五郎:(드디어! 뛰어 들어오는 놈에게 주먹을 날렸다!)
 
행보를 방해받은 불청객은 흠칫 놀란 채 바닥에 나뒹굽니다.
 
로브 아래 보이는 눈동자는 탐욕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습니다. 이때가 분명히 시작이었을 겁니다.
 
코고로는 입수한 주문으로 불청객을 세계에서 추방할 수 있습니다.
 
小五郎:(발로 놈의 얼굴을 콱 밟고 추방 주문을 사용했다.)
 
“넌 뭐……!”
 
주문을 외자 대상은 보이지 않는 문밖으로 밀려납니다.
 
완성되지 못한 대사는 토막 나 허공에 흩어집니다. 복도에는 다시 코고로만 남습니다.
 
동시에 다급한 발소리가 이쪽을 향합니다. 달려오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별관 4층 복도에 도착합니다.
 
대리석 복도 양쪽으로 백합을 새긴 문호는 여전히 꽉 닫혀 있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점인지 모르겠습니다. 불청객이 도착하기 전인지, 아니면 이미 들어간 후인지.
 
小五郎:으으음. (고민하다 기도실 문을 하나하나 직접 열어제낀다. 어차피 사람 없는 시간대였고 별 일 없겠지.)
 
하나씩 문을 열고 있는 동안,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립니다.
 
“준비하란 건 왜 하나도 안 해놨어?”
 
“저희는 전달받은 게 없습니다.”
 
“그 자식……. 죽었나?”
 
“무엇이 필요합니까?”
 
“높은 거처의 주인께 닿을 만큼 큰 소리가 필요해.”
 
“그래서 저희를 선택하셨군요.”
 
“그런 건 가톨릭에나 있으니까.”
 
내용이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아마 코고로가 삭제한 복선이 비어버렸기 때문이겠죠.
 
세계 멸망 모의에 차질이 생기고 있는 겁니다.
 
끼익, 툭. 달칵.
 
대화 끝에 복도로 나온 사람은 둘.
 
하나는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의 교사고 다른 하나는 아까의 불청객처럼 검은 로브를 입고 있습니다. 딱 봐도 한 패입니다.
 
小五郎:쓰레기……. (패거리에게 뛰어가 공평하게 두 놈 다 차례차례 업어친다. 주머니 속의 놈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뒤에서 기습하자 방심하고 있던 두 사람은 아차 하는 사이에 쓰러집니다.
 
小五郎:가서 좀 착하게 살아라! (마찬가지로 얼굴을 꾹꾹 밟으며 추방 주문을 외운다.)
 
둘은 세계에서 추방당합니다. 기도실의 복도엔 다시 불온한 인기척 대신 고요만 감돕니다.
 
그리고, 봄을 맞아 흐드러진 벚꽃은 상황이 어떻건 낭만적입니다.
 
담벼락 근처에 몸을 숨기고 뒤뜰의 상황을 살피자, 첫눈에 반했다는 진부한 고백과 곤란한 기색이 역력한 주인공이 보입니다.
 
거절당한 슬픔에 젖은 핀리가 먼저 뛰쳐나옵니다. 이제 바톤 터치하듯 불청객이 나타날 타이밍입니다.
 
온통 화려한 벚꽃 사이, 바쁘다고 외쳐대는 시계 토끼처럼 바쁘게 뛰어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小五郎:(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낸다.) 나쁜 놈이 안 와!!!!!
 
어째서?
 
타이밍이 틀렸나?
 
과거의 복선을 삭제했으니 전개 후반부가 달라져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코고로는 담벼락 모퉁이에 선 채로, 과거의 기억을 곱씹습니다. 불청객이 달려가던 방향에는 분명히…….
 
小五郎: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종탑이 있습니다.
 
小五郎:(저긴가.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무작정 종탑이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
 
성 살바토레 아카데미의 일과를 알리는 종탑입니다.
 
두꺼운 나무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들게 열립니다.
 
종탑의 내부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들은 이곳에 들락거린 자들의 자취를 기록해두었습니다.
 
小五郎: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다행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종은 꼭대기 층에 있는 것 같습니다.
 
小五郎:(일단 계속 계속 올라간다. 남는 게 체력이니 괜찮다!)
 
신중한 걸음으로 꼭대기 층까지 오르면 정중앙에 걸린 [거대한 종]이 보입니다.
 
그 아래는 피에 젖은 장작, 이리저리 [흩어진 양피지]로 잔뜩 어지럽혀진 상태입니다.
 
小五郎:이게 뭔……. (난리통이야. 일단 바닥에 흩어진 양피지부터 주워서 읽어본다.)
 
피에 젖은 양피지는 바닥에 마구잡이로 쏟아져 있습니다.
 
라틴어, 히브리어로 적혀 있지만...
 
小五郎:
교육
기준치: 65/32/13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익숙한 그림이 보입니다.
 
금관을 쓴 거대한 남자의 머리, 양옆에 달린 또 다른 머리 둘과 예순여섯 개의 거미 다리. 찢어진 하늘 너머로 마주쳤던 외우주의 악신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SanC 0/1.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초상화를 보고 있으니 양피지의 내용이 이해가 됩니다.
 
小五郎: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SanC 1/1D3+1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44/22/8
굴림: 1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오컬트 5점이 상승합니다.
 
小五郎: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몰락의 손아귀에 제물을 올리고 아래에 불을 지핀다. 번제가 끝날 때까지 제사장은 종과 북을 두드린다. 높은 거처까지 닿을 만큼 큰소리로 노래할지어다. Eloi, Eloi, lama sabachthani!」
 
인신 공양의 기록을 읽은 코고로, SanC 0/1.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43/21/8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주문 「몰락의 손아귀」를 획득합니다.
 
종을 녹이면 강림 의식을 방해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라면…… 고개를 한껏 들어도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위압적인 크기입니다.
 
종의 크기는 200. 전부 녹이기 위해선 마력 14점을 소모해야 합니다.
 
小五郎:(마력…… 9점이 전부다.)
(종 안의 추만 녹이려면 마력이 얼마나 필요하지?)
 
1점과 이성 1d4가 필요합니다.
 
小五郎:좋아. 일단 뭐라도 해봐야 아는 거지.
rolling 1d4
 
(
4
 
)
 
 
=
4
벤…… 바사르 라하트 아칼. (더럽게 기네. 주문을 외우며 혹시 같이 타버릴까 뒤로 물러난다.)
 
주문을 외우면 종을 매단 축이 달아오릅니다. 홧홧한 열기와 눅눅한 탄내가 여름의 무더위를 부추깁니다.
 
데일 듯 뜨거운 숨을 머금었을 때, 종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축이 끊어지고 거대한 놋쇠 덩어리가 종탑 아래로 투신합니다.
 
쾅!
 
굉음에 깜짝 놀란 새들이 시계탑의 지붕에서 일제히 날아오릅니다.
 
이것으로 충분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코고로가 발견한 복선은 빠짐없이 삭제했습니다.
 
원 세계에서, 배교자들은 꼬박 3년 동안 강림 의식을 예비했습니다.
 
추측하건대 불러내려면 여간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게 아닐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조용하던 세상은 마지막 종소리에 깨어납니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는 학생, 무슨 일이냐며 뛰어오는 교사, 계획의 차질을 깨닫고 종탑의 꼭대기를 노려보는 배교자.
 
술렁이는 인파를 보니 이제야 저들이 실존 인물이란 실감이 납니다.
 
“웬 놈이냐!” 종지기가 문을 열어젖히는 것과 동시에
 
정신을 차리면 이번에는 홀의 구석에 서 있습니다.
 
살짝 열린 커튼 너머, 테라스에 기댄 에리가 보입니다.
 
익숙한 옆모습도 보입니다. 자신을 데레테라고 믿던 당신의 모습입니다.
 
곧 에리의 붉어진 뺨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은 이후에 올 대사를 알고 있습니다.
 
英理:…… 코고로, …… 오늘 어울려 줘서 고마워. 그리고 어, 어른이 되어서도 같이 있어 주겠다고도 말해 줘서……. (고개를 수그린 채 주먹을 꼭 쥐었다.) 그, 그래서 말인데, 나 역시……. …… 코고로를 좋아하는 것 같아. 코고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박자, 숨을 들이켠 에리가 고개를 들고 말합니다.
 
英理:…… 나한테는 처음부터 사랑이었어.
 
고백받던 당신은 어떤 얼굴로 에리를 바라보고 있던가요?
 
눈이 내리지도, 종이 울리지도, 하늘이 찢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졸업 파티의 한창.
 
대신 다른 인과가 도착합니다.
 
에리의 눈앞에 서 있던 코고로가 여름에 내리는 눈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당황한 에리가 보입니다. 코고로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합니다.
 
이 세계의 코고로는 딱 저 자리에서 추방당했으니까요.
 
이제 남은 건 커튼 뒤 당신뿐입니다.
 
사랑을 고백한 시점에 사라져 버린 상대는 에리에게 영원한 트라우마가 될지도 모릅니다.
 
멸망하지 않은 세계. 강림하지 않은 공포.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 없이, 해피엔딩만 남겨둔 마지막 장.
 
모든 걸 설명한들 에리가 당신을 또다시 추방하려 들까요?
 
추방한들 불시착하게 된 세계가 여전히 당신이 머물던 그곳일까요?
 
자, 예측불허의 미래를 향해, 상대 주인공은 테라스에 오를 시간입니다.
 
小五郎:……. (이 모습으로 나타나면 오히려 놀라는 거 아닌가 몰라……. 조심스럽게 커튼을 걷고 네 등 뒤로 걸어간다.) …… 에리.
 
英理:……. 코고……. 엣, 코, 코고로?
 
테라스를 벗어나려던 에리는 당신의 등장에 걸음을 멈춥니다.
 
눈에 띄게 놀란 기색입니다.
 
하지만 사랑이 일렁이는 눈동자는 과거나 현재, 원 세계나 신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한결같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설명하고 나서 원 세계에 남아야 할지, 신세계로 돌아갈지.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여름이 드리운 테라스에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당신과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에리가 서 있습니다.
 
英理:…… 코고로? 코고로야? (쭈뼛거리며 한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小五郎:어, 어어……. 일단은. 그런데. (거봐. 놀란다니까. 덩달아 뒤로 물러나며 눈치를 본다.)
 
英理:…… 어,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는데…….
 
小五郎:뭐어……. 약속을 지키러 왔다 해야 하나……. 이야기하자면 긴데…….
 
英理:…… 응? 알아듣게 설명해 줘. (눈치를 살피며 제게 익숙한 네 목소리가 들려오자 조금 다가간다.)
 
小五郎:어른이 되어서도 있겠다고 했잖냐. (아주 잠깐이지만. 머쓱한 표정으로 널 보다가 다시 뒤로 물러난다.) 삼 분만 기다려. 금방 올게.
 
英理:어, 어디 가는데? (놀란 얼굴이 불안한 얼굴로 변해서는 금세 성큼 네 옷깃을 붙잡았다.) 가지 마…….
 
小五郎:멀리 안 가. …… 샴페인 가지고 오려고. (네게 붙잡히자 쉽게 떼어낼 수 있으면서도 그대로 멈춰 얼굴을 붉힌다.)
 
英理:아, …… 응. (민망함에 후다닥 손을 떼어내고서 순순히 물러났다.) …… 빨리 와야 해.
 
小五郎:알았어. (그대로 다시 커튼 뒤로 들어가 샴페인 두 잔과 초콜릿 한 웅큼을 들고 돌아온다.)
 
英理:……. (얼떨떨한 기분으로 난간에 턱을 괴고 가만히 널 기다리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본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양손을 뻗어 받아들었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거기다 아까 샴페인은 못 먹게 하더니…….
 
小五郎:이제 어른이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 (사실은 아까 다툰 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 탓이지만. 잔을 건네고 네 옆에 나란히 서서 난간에 기댄다.) …….
 
英理:……. (귀끝을 붉힌 채 샴페인 잔을 한 입 홀짝이고 난간에 내려둔다.) …… 왜 어른이 된 거야? 갑자기. …… 사실 지금도 잘 못 믿겠지만, 어쩌면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小五郎:그게……. 원래 아까 내가 없어졌을 때,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야 했어. (스스로 말하면서도 더 못 믿을 말만 하는 게 아닌가 싶어 괜히 초콜릿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英理:…… 그래서? 그럼…… 왜 안 무너진 거야? (어쩐지 놀라지 않은 눈치로 고개를 기울이며 그저 옅은 미소를 띠었다.)
 
小五郎:음……. 나쁜 놈들이 작당을 해서 그런 거였는데…… 그놈들 몇 명 혼내 주고, 그리고……, 전에, 종이 떨어졌잖아? 그거. (민망함에 이번엔 샴페인을 홀짝거리다 네 얼굴을 보곤 되려 당황한다.) 왜 안 놀라?!
 
英理:후후. 그야, ……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턱을 괸 채 널 올려다본다.) …… 그럼 아까까지 같이 있던 코고로는 어디 가고? …… 갑자기 어른이 된 거야?
 
小五郎:이래서 똑똑한 애는……. (쳇. 못마땅하단 표정으로 널 내려다보다 이어지는 질문에 잠시 입을 다문다.) …… 원래, 그렇게 난리가 나서 네가……. 으음. 날 아주 멀리 보내버렸지. 그래서…….
 
모든 진실을 들려주면 한층 성숙한 얼굴로 에리가 대답합니다.
 
英理:…… 그럼 나는, 너를 구하는 것에 성공했구나.
 
때마침 눅눅한 바람이 붑니다. 뜨거운 열기와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장마의 예고장입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주인공과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단역의 시선이 똑바로 마주칩니다.
 
한때는 서로의 주인공이었을 우리인데.
 
英理:다행이야……. 외워두길 잘했어.
 
붉어진 뺨은 감추지 못하는 주제에, 그 눈동자는 정말 선선하게 웃습니다. 에리는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英理:언젠가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잖아. 왠지 기상이변은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멸망론 같은 걸 믿는 건 아니지만……. (손끝으로 잔을 만지작거린다.) …… 그래도, 혹시 몰라서 방법을 찾아봤어. 알아낸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우리 학교 금서 구역에 이상한 책 많더라. 농담처럼 덧붙인 말을 통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에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구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小五郎:…… 고마워. (더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난간에 잔을 올려놓고 몸을 돌려 완전히 너를 향해 선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진작 알았다면 멀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는 나를 구했고, 나를 사랑했고, 그 끝에 희생했다. 금세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늦었지만…… 나도 널 구하고 싶었어.
 
英理:늦었어. 바보. …… 그치만……. 고마워. 코고로. 네 덕분이야. 기특하네. (네 말에 한껏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 까치발을 살짝 든 채 팔을 쭉 뻗어 네 두 뺨을 감싸쥐고 고개를 기울인다.) 후후, 아저씨가 다 됐네…….
 
小五郎:항상 바보였으니까. (지금도 바보일 수밖에. 부드럽게 네 몸을 끌어안고 시선을 마주한다.) 흥……. 그거 아냐. 너 진짜 잘나가는 변호사가 될 거야. 아줌마도 될 거고.
 
英理:(네 품에 안기면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빼꼼 들고서 낯설지만 익숙한 네 얼굴을 보며 뺨을 붉힌다.) …… 아저씨가 돼서는 쓸데없이 덩치만 더 컸어. …… 그, 그거야 당연하지. 어떻게 알아? …… 나는 변호사도 못 된 채로 세상이 멸망했을 텐데…….
 
小五郎:…… 그 덩치를 네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말을 할수록 선명하게 깨닫는다. 이별을 미루면 미룰수록 모두에게 아픔만 깊어지겠지. 붉어진 뺨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옅게 웃었다.) 여기로 다시 불려왔을 때……. 아내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어서 엄청 놀랐었거든. 결국 너는 나를 보내면서도 네게로 보낸 거야. 진짜 바보 같고 이상하지……. …… 미안해. 널 잊어버려서. 혼자 행복하게 살아서. 전부 다 미안해.
 
英理:…… 아내? (네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게 네 얼굴을 보다, 조금은 불안한 손길로 퍼뜩 네 옷깃을 꼭 쥐었다.) …… 어른이 되어서도 있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러 왔다고 했잖아. …… 코고로……. 기, 기껏 다시 만났는데 사라지는 건 아니지?
 
小五郎:……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더라, 에리. (내가 모든 너를 취할 수 없듯이, 너 또한.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너를 꼭 안았다 팔에 힘을 빼며 말을 잇는다.) 저쪽에도 기다리고 있는 에리가 있어. 그 사람을 나를 지울 방법조차 몰라. …… 사랑해, 에리. 사랑하니까 헤어져야 해. 작별 인사를 할 시간 정도는…… 욕심을 부려도 되겠지?
 
英理:코고로. …… 코고로. (어쩔 줄 몰라 급하게 네 이름만 불렀다. 눈썹을 늘어뜨린 채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이었다.) ……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인데, 마지막이라니……. …… 코고로, 나는 네가 없으면……. (버티지 못할 거야, 말을 이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네게 이 이상 짐을 얹어 주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어리광을 부리면 마지막까지 귀찮은 녀석처럼 여겨질 것도 같았다.) …….
 
小五郎:버틸 수 없을 것 같아? (그렇게 단단히 다짐하고 왔건만 네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렸다. 가만히 널 내려다보며 뺨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뺨 위로 떨어진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다.) …… 운명이란 게 있다면 아까 사라진 내가, 다시 네 앞에 나타날까.
 
英理:…… 코고로. (울지 않으려 했건만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네게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품에 푹 파묻었다.) …… 미안. 코고로가 무사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어른이 된 코고로를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운명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자꾸 욕심이 생겨서……. 미안해. 코고로한테 전하고 싶었던 말들이 분명 더 많았을 텐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
 
小五郎:자꾸 그렇게 말하면 돌아갈 수 없어지잖냐…….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나는 두 명을 전부 욕심내고 있을까. 그저 품에서 울 수 있도록 다시 꽉 안고 쓰다듬으며 자신도 울음을 죽였다.) 남길 수 있는 것도 얼마 없네…….
 
英理:……. (네 말에 저도 힘주어 꼭 끌어안고서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코고로, …… 아까 화내서 미안해. 불안하다고 바로 말할게. 불안해하지도 않을게. 머, 멋대로 혼자 생각하고 결론짓지도 않을게. …… 귀찮게 굴지 않을게……. 그러니까……. 코고로.
 
小五郎:…… 네 말이 다 맞는데 왜 사과하는 거야. 바보……. (돌이켜보면 전부 다 후회되는 일들 뿐이다. 그저 빠져나가려 심드렁하게 굴었던 것도, 생각할 게 많다고 괜히 네게 화를 내는 것도, 그리고, 그리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끝도 없어져 다시금 눈가가 뜨거워진다.) …… 응.
 
英理:그러니까……. (목이 메여 훌쩍이는 소리를 한 번 내고서 이 품을 놓칠까 필사적으로 붙잡아 안고 있었다.) 그러니까, 안 가면 안 돼? 코고로가 어른이어도 좋아. 아저씨여도 좋아. 이것도 귀찮게 구는 거겠지만 마지막으로 어리광 부리게 해 줘……. 응?
 
小五郎:아내랑 딸이, ……. (겨우 짜낸 말은 너와 다를 바 없이 흠뻑 젖어 목소리에서도 물기가 뚝뚝 떨어진다. 왜 이렇게 헤어져야 하는 거야. 왜 헤어지지 않는 방법은 없는 거야.) …… 나도 가기 싫어…….
 
英理:……. (네 말에 차마 더 이상 투정어린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꽉 안고 있던 팔에서 조금이나마 힘이 빠진다.) …… 그 세계의 나를 더 사랑해?
 
小五郎:…… 둘 다 똑같은 너인데 어떻게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겠어. (그저 보이는 모습이 다른 거지. 빈 자리가 더 허전하다. 실로 그렇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좋아해. 에리. …… 엄청, 엄청 엄청 좋아해…….
 
英理:바보. …… 바보. (여전히 네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 채 주먹으로 네 품을 약하게 때렸다.) 마지막에 와서야 그런 말 잔뜩 듣고 싶지 않아. …… 갈 거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냥……. …… 그냥 말해도 돼. 말해! 그 세계의 나를 더 사랑한다고……. 내가 더 귀찮게 조르지 않을 수 있게…….
 
小五郎:…… 미안해, 에리. 그래도 사랑해. (못난 모습을 보고 환멸해도 좋아.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조차 사라지길 바라. 전부 나 혼자 아파할 수 있게. 천천히 숨을 고르고 네 뺨을 감싸 들어올려 시선을 마주친다.) …… 사랑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英理:바보……. (너와 시선을 마주하면 참고 있던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큰 소리로 훌쩍이며 떨리던 목소리가 이내 울음 소리처럼 목놓아 바뀌어갔다.) …… 코고로랑, …… 코고로랑 못 해본 게 너무 많은데. 코고로랑 아직 사귀지도 못 했고, 키스 같은 것도 못 해봤고, …… 결혼도 못 해봤는데. 내가 모르는 코고로의 모습들이 잔뜩인데, …… 나도, 나도 전부 하고 싶었어. 전부 보고 싶었어…….
 
小五郎:…… 가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기억하는 내 모습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없을 거야. 에리……. 그래도 괜찮아? 안 괜찮잖아. 너까지 무너질 거잖아……. (차마 입을 맞출 수도 없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제 손으로 받아내는 게 고작이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자꾸만 모두에게 상처를 내고 있었다. 잘못한 사람은 여기 없는데, 왜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전부, 내 탓이야…….
 
英理:…….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어깨를 떨며 작게 소리내어 울었다. 제 뺨을 감싼 네 손을 더듬더듬 겹쳐 잡는다.) …… 만약, 만약 우리가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 그랬다면, 나랑 미래를 약속해 줬을 거야? 나랑 사귀고, 결혼하고, 쭉 곁에 있어 줬을 거야?
 
小五郎:…… 응. 나도 줄곧, 그러고 싶었으니까……. (저 먼 세계로 밀려나고 나서도 다시 널 만나 사랑에 빠졌을 만큼 사랑하니까,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다 결국 고개를 푹 떨군다. 형언하기 힘들 만큼 괴로웠다.)
 
英理:……. (네가 고개를 떨구자 뺨을 감싸 시선을 맞춘다. 어찌할 바를 몰라 붉은 눈시울로 어떻게든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감싸쥔 손의 엄지로 네 뺨을 애틋하게 쓸었다.) …… 그거면, 그거면 됐어. 그러니까 코고로……. 미안해 하지 마. 코고로의 탓이라고도 생각하지 마.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니까. …… 코고로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야…….
 
小五郎:…… 왜. 왜…… 그렇게 상냥한 거야……. (너 같은 건 정말 질렸다고, 끔찍하다고 하면서 밀쳐내도 될 텐데 다정한 목소리가 이어지자 언제든 몸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아 억지로 버티고 버텼다.) 에리……. 나보다 행복해야 해, 알았지? 무조건 그래야 해. 안 그러면 나, 엄청 화낼 거니까…….
 
英理:바보 코고로. …… 당연하지. 나 원래 혼자서도 잘 지내는 거 알잖아. …… 너한테 걱정 끼칠 일 같은 거 안 하는 것도 알잖아. 보란 듯이 행복하게 지낼 테니……. (말을 더 이었다간 애써 유지했던 미소가 일그러질 것만 같아 울음을 삼켜냈다. 가슴은 이렇게나 찢어질 듯이 아픈데 네게 마지막까지 약한 모습을 보여 걱정을 사고 싶진 않았으니까.) …… 돌려보내 줄게. …… 그래도 나 잊지 마, 절대 잊지 마. 약속이야…….
 
小五郎:…… 안 잊어. 죽어서도 안 잊을게. 약속해. (하나도 안 그러면서. 네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최선이었다. 코고로가 데레테가 되었듯, 다시 데레테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쉽지 않다. 애써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면 웃고 있는 네가 있어서, 따라 미소를 지었다.) …… 안녕, 에리.
 
에리는 천천히 당신의 손을 잡습니다.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내주기 위해서. 정들었던 우리로부터 너와 나로 졸업하고자.
 
붙잡은 손의 체온이 딱 적당할 정도로 따뜻합니다.
 
또다시 찾아온 이별의 서러움도 형태를 잃고 녹아내립니다. '함께'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英理:잘 가, 코고로. …… 사랑해.
 
말릴 새도 없이 당신의 입술 위로 입맞춤이 떨어집니다.
 
눈을 뜨면 당신은 원래대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에리는?
 
小五郎:……. (멍하니 선 채 움직일 힘도 없어 눈만 움직여 주변을 살핀다.)
 
소파에 웅크려 앉아있는 에리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小五郎:에리……. (소리 없이 천천히 걸어가 뒤에서 네 몸을 끌어안자마자 다시 울음이 터져나와 입술을 꽉 깨물었다.)
 
英理:여, 여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널 뒤돌아본다.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네 팔을 살살 쓰다듬어준다.) 왔어요? 이제 괜찮아요. 천천히 말해도 괜찮으니까…….
 
열린 문틀 너머로 바깥에서 들이 쬔 빛이 스밉니다.
 
환한 곳에서 마주한 눈동자엔 당신을 향한 걱정이 선명합니다.
 
어찌나 닮았는지.
 
떨어졌던 찰나로 이토록 그리웠던 사람을 품에 안으면,
 
마지막 알림과 함께 엉망진창인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다시는 연락할 수 없는 당신으로부터.
 
사랑이 가라사대,
 
에리, 생환, 코고로 생환.
 
보상: 이성 4, 주문 「세계 추방」, 「몰락의 손아귀」
 
당신은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에리는 실연의 아픔에 오래 울겠지만, 언젠가 괜찮아질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나아가기 마련이니까.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