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고에리] 3
  • 2022. 8. 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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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고에리 페어 100일 기념글

    오리지널, 히클AU, 팬블미AU 코고에리들이 등장합니다

     

     

     

      리처드는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쫓는다고 하기에도 민망했다. 그저 여기쯤 있지 않나, 저기쯤 지나갔던 것 같은데, 하며 무작정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높고 낮은 건물 사이로 드문드문 사람이 보일 때마다 리처드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다. 이 사람도 아니다. 희한한 건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단 점이었다. 단순히 리처드가 한동안 집 밖에 나올 일이 없어 그럴지도 모른다. 한 번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 이 거리 자체가 서먹하게 느껴졌다. 간판에 쓰인 언어를 어째서 읽을 수 있는 건지, 회색 투성이의 이 도시는 대체 어디인지. 느릿한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러자, 그녀가 나타났다.

     

      에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뒷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알 수 있었다. 그녀다. 목이 조이고 내장이 조이고 머릿속까지 조여들어 타들어가고 있었다. 아프다. 그러나 두 번 다시 그녀를 잃을 수 없다. 달빛 아래 산산이 부서지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이 멀지 않은 게 이상했던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후회할 것이다. 리처드는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감색 외투를 입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 코고로?"

      "에바."

      "당신이 여기 무슨 일이에요?"

      "드디어 찾았군."

     

      그녀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는 리처드가 기억하던 그 눈동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리처드가 모르는 이국의 말을 하고, 리처드가 모르는 옷을 입고, 리처드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별안간 그 사실을 깨달은 리처드가 황급히 손을 거뒀다.

     

      "내일 만나기로 하지 않았나요?"

      "……."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죽었고 더는 웃을 수 없다. 리처드에게 안길 수도 없으며 사랑을 속삭일 수도 없다. 이미 수천 번을 인식한 사실이 다시금 리처드의 온몸을 찔러댔다. 하지만 아파할 자격이 있을까. 평소보다 조금 늦게 떠오른 생각에 리처드는 설핏 웃었다. 너는 환생인가, 아니면 환각인가. 그렇다면 나는 뭔가. 혹시,

     

     

     

      …… 꿈이었나. 리처드는 눈을 뜨지 않았다. 사실 뜨고 싶지도 않았다. 침대에 몸을 누일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랐고 지옥에 떨어지길 바랐다. 살아 숨을 쉬면 온몸에 닿는 게 전부 그녀였기에 마치 화마에 휩싸인 것만 같아서 매 순간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고통이 그녀의 고통에 미칠 수 없으리라. 리처드는 쏟아지는 햇빛이 싫어 팔뚝으로 눈을 가렸다. 해는 왜 매일 뜨는가.

     

     

     

      "형사님."

      "혀엉사님."

      "안 일어날 거예요? 진짜 잠꾸러기네."

      "이런 애인이 있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흥."

     

      틀림없는 그녀의 목소리에 팔을 내렸다. 상황을 가늠할 틈도 없이 눈을 뜨면 잠옷 차림의 그녀가 품에 안겨왔다. 그녀는 퍽 기분이 좋은지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리처드의 뺨에 입을 맞추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리처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 했으나 그녀의 이름이 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명한 씨……?"

      "……."

      "명한 씨, 왜 그래요. 나쁜 꿈이라도 꿨어요?"

      "응. 아주 지독한 꿈이었어."

     

      명한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주 기분 나쁜 꿈이었다. 괴도가 이미 몇 차례나 눈앞에서 사라진 전적이 있기에 이런 꿈을 꾼 모양이다. 손끝에 닿는 부드러운 천의 감촉이 사랑스러웠고,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다정했다. 명한은 그녀를 품에 꼭 안고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여태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어왔지만 그 악몽 속의 명한과 그녀는 무슨 저주라도 받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현실이 아주, 아주 감사하게 느껴졌다.

     

      "나쁜 꿈에 휘둘리는 사람일 줄은 몰랐는데~"

      "시끄러워."

      "응? 부끄러워요? 뒤늦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어?"

     

      고개만 쏙 빼든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명한은 그녀가 그랬듯 흥, 콧방귀를 뀌며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만 더 자고 싶었다. 딱, 따악 두 시간만 더 자면 이 활기 넘치는 아가씨의 기운을 쏙 빼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거리에 섰다. 이번엔 화가 난 그녀의 뒤를 쫓았다. 뭐가 그녀를 이렇게 화가 나게 만들었는지 몰랐지만, 일단 무작정 쫓아갔다.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번엔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왜 여기에 있어?"

      "…… 네?"

      "어떻게 네가 내 눈앞에 있을 수가 있냐고."

      "무슨 그런 심한 말을……."

     

      그녀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릴 때마다 리처드의 무언가가 찢겨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물어야 했다. 어째서 그녀가 여기에 있는지, 어째서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날 수 있는지, 이번에야말로 정말 그녀인지. 마지막 질문을 하려던 순간 그녀는 다시 리처드의 눈앞에서 부서졌다. 마치 몇 년 전의 밤처럼. 정원에 가득히 피어난 에리카 꽃만이 수많은 말을 건네던 그, 밤처럼.

     

      돌아가고 싶다더니.

     

      후회할 거라고도 했잖아.

     

     

     

      다시 정신이 들자마자 리처드는 주변을 살폈다. 드디어 익숙한 곳에 도착했다. 리처드는 소파에 앉은 채 타다 만 시가를 쥐고 있었다. 잠이 들었던 건지, 아니면 모든 게 유리처럼 투명한 현실이었는지 알 수 없어 몇 번이고 눈을 깜박였다. 여전히 정신은 먹먹했고 쏟아지는 햇빛은 따가웠으며 모든 것이 낯설었다. 익숙함이 느껴지는 만큼 낯설어서 리처드만이 이 공간에서 거칠게 도려내진 듯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이어 사용인이 들어왔다. 리처드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출발 준비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도련님."

      "……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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