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雜錄

[코고에리] 여름

毛利 2022. 6. 8. 03:49

 


  “어째서 내가 이런 여자에게 봉사를 해야 하는 건데?”
  “아빠!”
  “애초에 저렇게 등이 파인 수영복을 입은 것부터 의심스러웠어. 가족여행을 온 건지 헌팅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잖아?! 선블록 같은 건 알아서 발라!”
  “어차피 수영하러 갈 것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는 순순히 좀 하라구요. 그러니까.”
  “란, 그만하면 됐어. 어차피 저 수염 아저씨는 젊은 아가씨들 성추행이나 하러 온 거란다.”
  “뭐?”

 

  내가 틀린 말 했어요? 그녀는 조소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울리지도 않는 수영복을 입은 건 과연 누구일까. 철 지난 하와이안 무늬가 볼썽사나운 바지를 입은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용도가 확실한 선글라스까지 흉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처음부터 거절할 생각도 없었던 주제에.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길로 다시 시선을 마주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하면 되잖아, 하면!”
  “자, 그럼 저는 코난 군이랑 수영하고 올게요.”
  “그러렴. 란, 코난 군. 물에 들어가기 전에 스트레칭하는 거 잊지 마렴. 특히 코난 군은 구명조끼도 꼭 입어야 한단다?”
  “네!”

 

  그는 아이들이 멀어지자마자 파라솔에 손을 뻗었다. 햇빛이 얼굴을 향해 곧바로 내려쬐고 있었기에 그나마 반가운 일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어쩐지 파라솔을 두 개나 빌리겠다고 득득 억지를 부리더라니, 이렇게 될 것도 예상하고 있었나 보다. 그가 손을 탁탁 털자 파라솔이 바다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공간을 만드는 듯했다. 이럴 거면 천막을 빌리지. 그녀가 뒤를 흘끗 보니 그쪽은 수풀과 나무로 미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적당히 숨어서 훔쳐보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역시 저질이야. 그녀는 기지개를 쭉 편 뒤 선베드 위에 엎드려 누웠다.

  “이런 건 좀 미리 하고 오면 안 돼?”
  “발라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내가 언제?”
  “또 모르는 척.”

  크흠. 헛기침 소리만 들어도 그의 표정을 알 수 있을 듯해 그녀는 그 몰래 미소를 지었다. 안경이 눌리지 않도록 고개를 모로 돌려 팔에 받치고 눈을 감으면, 그가 허리 위로 손을 얹었다. 대충 가늠해도 허리의 반절 이상이 가려지는 크기다. 그만큼 기분도 좋고. 그녀는 때때로 이렇게 비밀스러운 생각을 즐겼다.

  “푼다.”
  “마음대로 하세요.”

 

  수영복은 유키코가 골라 준 것이다. 이런 걸 입어도 될까 고민하는 그녀에게 유키코는 수상한 미소를 지었더랬다. 나랑 커플로 사면 괜찮지, 하고 밀어붙이는 유키코에게 그 사람이 싫어할 거라며 완곡히 거절하자 미소는 웃음으로 번졌다.

  “코고로는 질투가 많으니까 말이야.”
  “?”
  “하지만 효과는 보증할게. 에리 쨩.”

 

  정말 괜찮을까. 오늘 아침 차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이어지던 고민은 수영복을 입고 나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를 보고 투덜거리던 그가 흘끔흘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역시 조금 창피하긴 한데. 원피스는 원피스지만 등이 너무 훤히 보인다. 차라리 레이서백이었다면 안 부끄러웠겠지. 어깨끈부터 이어지는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선지 뭔지 몸을 타이트하게 조이는 이 끈이 특히 민망하다. 이 모양 그대로 탄 자국이 남으면 그가 겨울이 돌아올 때까지 의식할 게 뻔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끈을 당기자 수영복이 흐물흐물하게 풀어졌다.

  “이래서야 속옷이잖냐.”
  “뭐 어때요.”
  “차라리 위에 뭘 두르기라도 하든가.”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직접 가져왔어야죠?”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져.”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쏘아붙이려던 찰나 매끄러운 오일이 뒷덜미부터 허리까지 주르륵 떨어지자 고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부턴 서로 기분을 망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녀는 대접받는 기분을 위해서, 그는 지배하는 기분을 위해서. 부부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그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 허리부터 천천히 오일을 녹여 문질렀다. 아래부터 시작할 모양이다. 보통 반대가 아닌가 싶지만 아무래도 좋다. 손끝이 은근하게 움직이다 뭉친 곳을 눌러 풀자 그녀는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으응…….”
  “이런 건 언제 산 거야?”
  “기억 안 나.”
  “혼자 갔어?”
  “사사건건 시끄럽네. 최저.”
  “…….”

  그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손이 그 말들을 전했다. 대체 누구랑 간 거야. 전에도 입은 적 있나.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샀어. 그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게 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인지라 그녀는 지금의 기분을 만끽했다. 어쩌면 이 남자, 마사지에 재주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허리부터 시작한 손길은 어느새 등과 팔을 전부 문지르고 뒷덜미를 꼼꼼하게 매만지고 있었다. 조금만 손에 힘을 주면 그녀의 숨이 막히게도, 나아가 목을 부러뜨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값비싼 인형을 만지듯 다정하기만 하다. 그녀는 그의 그런 점이 아주 조금 좋았다. 정말 아주 조금.

  “아래로 내려간다.”
  “응.”

  옆에서 몸을 숙여 마사지하던 방금까지와 달리 그는 그녀의 허리를 양쪽 다리 사이에 두고 앉았다. 살이 닿진 않았지만, 이따금 바지가 스쳐 간지러웠다. 그냥 발밑에 앉으면 될 텐데. 꼭 힘든 일을 사서 하는 남자다.

  아까는 허리부터 시작하더니 이번엔 발부터 시작이다. 이런 점은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다. 이해를 하려는 시도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인 걸까.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나른했다. 발바닥과 발목을 꾹꾹 누르면 낮게 숨이 샜다. 역시 기분이 좋다. 그녀는 벌만큼 벌고, 꾸밀 만큼 꾸몄음에도 에스테만은 가지 않았다. 누가 몸을 만지는 게 싫고 부끄러웠다. 가족이 전부다. 그것도 이렇게 집요하게 만질 수 있는 건 이 남자뿐이다. 좋든 싫든 이 남자의 손을 탔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거긴 안 해도 돼요.”
  “시끄러워.”

  어느덧 손이 허벅지로 올라와 살이 접혀 민망한 부분으로 파고들자 그녀는 어깨를 움츠렸다. 간지럽기도 하고, 수영복 위긴 하지만 예민한 곳에 닿아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의식하게 된다. 정작 만지는 사람은 아무런 사심이 없는 듯해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쩌면 이렇게 무덤덤할 수 있지? 눈앞에 유키코의 얼굴이 아지랑이처럼 떠올랐다. 미안, 유키코. 진짜 별로인가 봐……. 선베드에 눌린 부분까지 만족스레 발랐는지 그는 몸을 일으켜 반대 방향으로 앉았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를 돌아 눕혔다.

 

  “앗.”
  “마저 바를게.”
  “그건 내가 해도…….”
  “가만히 있어.”

 

  그의 고요한 눈동자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잘 모르겠다. 아직도 화가 난 걸까, 아니면 참고 있는 걸까. 오일이 잔뜩 묻어 반짝거리는 손이 수영복을 아래로 접어 내렸다. 가슴을 가리고 싶었지만 꿈틀거리는 눈썹을 보고 있자니 그럴 수도 없었다. 다시 한 번 오일이 또르륵 떨어졌다.

  “흣, 아, 당신…….”
  “애먼 짓 하지 않을 테니까.”
  “으응. 그치만.”

 

  이럴 땐 좀 했으면 하는데. 그녀는 말을 삼켰다. 적당히 벌어진 두 손이 아랫배부터 부드럽게 쑥 훑고 올라왔다. 가슴 밑부터 만지겠지? 예측과 달리 그는 손목을 틀어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왔다. 간지러워. 힘을 줘도 아랑곳 않고 옆가슴을 밀고 올라탄 후에야 밑가슴을 문질러 광을 냈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유륜을 감싸고 손바닥을 빙글빙글 돌리면 오일이 묻지 않은 곳이 극히 적어졌다.

  “응, 앗, 그만, 그만…….”
  “간지러워?”
  “간지러워요…….”
  “참아.”

  툭. 툭. 툭. 엄지가 무심하게 첨단을 쓰다듬으면 그녀는 참을 수 없어져 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대로 목을 감싸 안고 여전히 차분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뽀뽀…….”
  “그것만?”
  “…… 키스.”
  “싫은데.”

  약속했잖아요. 그녀가 칭얼거리면 그는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거짓말쟁이. 그 말까지 하고 나서야 입술이 맞닿았다. 언제나 시작은 다정하다. 엇갈려 겹쳐진 입술이 서로를 삼키고 닳지 않게끔 살살 핥았다. 아예 닳아버리는 것도 그것대로 만족스럽지 않을까 여길 때도 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민망할 만큼 빨아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살그머니 눈을 떠 주변을 살폈다. 인마. 잠깐의 공백조차 용납할 수 없는지 그가 미끈거리는 손가락 끝으로 뺨을 쿡 찔렀다. …… 욕심쟁이. 그가 그녀도 못지않은 욕심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핫, 으응……. 거기만, 하지 말고요.”
  “그럼?”
  “또 그런 식으로…….”
  “지금 무슨 꼴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냐.”
  “알아요.”

  그래서 죽어도 부족할 만큼 부끄러운데도 용기를 낸 거라구. 그녀는 칭얼거리는 대신 먼저 혀를 내밀었다. 몸을 맞댈 때마다 마치 교육을 받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그가 반응하는지, 좋아하는지, 숨겨둔 표정을 드러내는지. 아마 그건 이 남자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가 잘했다는 듯 그녀의 입안으로 침범하면 그녀는 뒤늦게 그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몸에 묻은 오일이 그의 가슴팍에도 묻어 조금만 움직여도 미끄러졌다. 더 하고 싶어. 더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야속하다. 숙소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다. 뾰족한 수가 나지 않자 그녀는 무릎을 세워 그의 다리 사이를 꾸욱 눌렀다. 입천장을 간지럽히던 혀가 금세 자취를 감췄다.

  “…… 무리야.”
  “안 돼?”
  “…….”
  “엄마!”

  조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오지 마라! 그가 목소리를 크게 내자 안 그래도 붉었던 뺨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달아올랐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무리 기분이 좋았다지만 이 정도는……. 몸을 꾸물거리니 그는 재빨리 흐트러진 수영복을 다시 입히곤 뒤돌아 서서 더위를 먹은 것 같네 어쩌네 변명을 늘어놓았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그래. 조금 쉬면 나아질 거다. 흥, 이 정도로 더위를 먹을 거면 뭐하러 바다까지 왔나 몰라.”
  “뭐라구요?”
  “윽, 조용히 해.”

  그의 괘씸한 언동에 다리를 꼬집었다. 그냥 더위를 먹었다는 말이면 충분하잖아. 유치한 복수심에 꼬집었던 허벅지를 훑고 올라갔다. 머잖아 단단해진 그의 것이 닿자 은근슬쩍 끝부분을 만지작거리며 바짓단을 살살 잡아끌었다.

  “왜?”
  “…… 차로 가요.”
  “…… 차에서 잠깐 쉴 테니까 점심 먹기 전까지만 놀아!”
  “응, 무슨 일 있으면 꼭 불러야 해요?”

  날이 갈수록 널 닮는다니까. 어머, 그건 칭찬이죠? 아니야! 고개를 휙휙 저으며 그가 다시 앉자 기다렸다는 듯 너른 품에 안겼다. 목에 팔을 감고 그에게 무어라 더 말을 하려다 자신 못지않게 붉어진 뺨을 본 그녀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