毛利 2022. 6. 5. 11:37





  “엄마.”
  “응?”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뭘 가장 먼저 할 거예요?”
  “얘도 참. 그건 또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니.”
  “아무래도 좋으니까 대답해 봐요.”
  “음…….”

  딸이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녀는 일부러 시선을 저 멀리로 돌리며 대답을 미룬다. 코난 군은 궁금한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만 웃고 있음은 확실했다. 딱히 도와줄 것 같진 않네. 에리는 난처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지.”
  “한 명만 만날 수 있다면요?”
  “란.”
  “제발요.”

  애교를 부리는 딸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가능하면 쿠도 군을 보러 가지 않을까. 평소에도 얼굴을 보기 힘든데 세계의 끝에서마저 볼 수 없다면 그건 꽤 비참한 결말이 되겠지. 딸의 서투른 연애를 상상할 때면 절로 어떤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고 만다. 부모와 자식은 이런 취향마저 유전되는 걸까. 평소의 자신이 코웃음을 칠 만한 생각도 드는 것이다. 바보 같아. 그녀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겨우 알아들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에게…….”
  “와아!”
  “왜?!”
  “아빠랑 같은 대답!”
  “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딸을 보니 책상 밑으로 숨고 싶어졌다. 아, 그건 그것대로 숨고 싶어 지겠지. 망할 저질 변태 인간쓰레기. 안 타는 쓰레기! 안경을 살짝 들추고 콧잔등을 꾹꾹 누르고 나니 어느새 딸이 책상 앞까지 다가왔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아침에 아빠한테도 같은 걸 물어봤거든요.”
  “…… 그래서?”
  “처음엔 대답을 안 하더니 흥, 하면서 ‘에리가 있는 곳으로 가겠지’ 하고.”
  “…….”

  내 얼굴, 이미 터졌나? 아직인가?

  “심지어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선택지가 나오기도 전에요.”
  “정말이지 글러먹은 아빠네.”
  “그래도 정말 좋아요, 엄마.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게 이런 건가~?”
  “그건 좀.”

  그녀는 서류를 들어 늦게나마 얼굴을 가렸다. 뭐가 에리가 있는 곳으로, 야? 당장 오늘 아침까지 거머리처럼 붙어서 안 떨어진 주제에. 이쪽은 아직도 허리가 욱신거린다고? 한참을 칭얼거리더니 용케 집까지 간 모양이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불평불만을 입 밖으로 쏟지 않기 위해 애쓰던 그녀는 슬쩍 휴대폰을 집어 들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건 풀 코스 요리로 대접하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