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고에리] 늦잠
* 사실 코고에리가 아니라 명한애리
* 팬텀 블루 미스트! 3부작 AU 커플링
* 해당 로그를 안 읽으면 이해할 수 없을 가능성 많음!
아저씨. 아저씨이.
애리가 잠든 명한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간지럽게 속삭였다. 코까지 골며 잠든 명한에게 들릴 리는 없었으나 애리는 만족했다. 이 남자와 만난 이후로 잠든 모습을 보는 건 겨우 두 번째다. 한 번은 갇혀 있었던 데다 사귀는 중도 아니었으니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 이유로 애리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타고나기를 아침잠이 많아 늘 명한이 출근할 때도 반쯤 감은 눈으로 겨우 얼굴만 확인하기 일쑤였던 애리다. 안 신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진짜 아저씨네……."
시끄럽게 코 고는 소리도, 온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도 길 가다 보면 발에 차이는 아저씨들과 다를 게 없다. 왜 아저씨는 이런 모습도 예뻐 보이지? 열두 시 전에 들어와서? 립스틱 자국이 없어서? 향수 냄새가 안 나서? 아니면 잘생겨서? …… 내가 아저씨를 좋아해서? 애리는 손끝으로 명한의 코를 꾹 잡았다. 숨이 막히는지 잠깐 컥컥대던 명한은 곧 입으로 숨을 쉬었다. 이래도 안 깨네.
하긴 피곤할 만도 했다. 술에 절어서 들어왔는데도 안아 달라고 조르자 순순히 안아 줬으니까. 심지어 평소보다 격렬하지 않았나? 애리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간밤의 일을 떠올렸다. 이렇게 하고, 저렇게도 하고……. 역시 아저씨는 변태야. 아닌 척 안 그런 척 무심한 소리는 다 하면서 막상 판이 깔리면 그런 짐승이 또 없었다. 그래서 좋아.
손을 아래로 내려 명한의 가슴팍을 더듬는다. 이불도 살짝 들춰 보면 손톱자국이 선명하다. 아저씨도 이 정도는 아파야지. 사실 그렇게 아파하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애리가 정강이를 걷어차거나, 등짝을 내리치거나 할 때 더 아파했다. 맞을 짓을 하는 걸 어떡해? 요리조리 흘러가던 생각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새어나간다.
'도둑질로 돈 버는 건 안 된다고. 아니면 나까지 쌍으로 남들 주머니나 털고 다닐까?'
'난 대체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하긴 사람이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냐.'
언젠가 명한이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되감겼다. 이렇게 보면 정말 최악의 남자다. 애리가 여태까지 만나왔던 남자들이 다 거기서 거기이긴 했지만, 상대 생각 안 하고 마구 말하는 점도, 말 좀 했으면 할 때는 절대 말을 안 하는 점도 별로 중의 별로다. 혼자 참다가 터져 나오는 기분은 나도 잘 알지만 상처받는단 말이야. 흥. 괜히 손에 닿은 가슴을 꼬집었다. 매를 버는 남자가 이런 남자 아닐까? 적어도 잘 달래기라도 했으면 평가가 좀 올라갔을 텐데.
"흠냐……."
"아저씨?"
"…… 으응."
"아저씨, 잠꼬대해요?"
"잠꼬대 아니야……."
생각에 잠겨 우울해지려던 찰나 명한이 잠꼬대를 시작하자 댓발 나와있던 입술이 쏙 들어갔다. 이거 잠꼬대 맞지? 그치? 애리는 낄낄거리며 한층 더 명한에게 달라붙었다. 이런 찬스를 놓칠 수 없다. 지난 달이었나, 명한이 애리가 자는 사이 잠꼬대로 이런저런 장난을 쳤다며 놀리던 모습이 떠올라 더 그랬다. 다시 명한의 귓가에 입술을 댄다. 닿을락 말락 가까워진 명한에게 최대한 애교 담긴 목소리로 종알거렸다.
"어제 왜 늦었어?"
"삼겹살, 맛있어서……."
"나도 삼겹살 좋아하는데."
"미안…… 으응."
"나는 안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 …… 잘래……. 건드리지 마……."
어라, 깬 건가. 아직 깨면 안 되는데.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켜 명한을 보니 눈이 꼭 감긴 게 아직 괜찮지 싶다. …… 근데, 마흔 넘은 아저씨가 삼겹살이 맛있어서 늦게 들어왔다는 건 무슨 소리래? 역시 아저씨는 귀여워. 아저씨가 그걸 모른다는 점이 제일 귀여워. 뒤이어 든 생각에 애리는 다시 몸을 숙였다.
"명한 씨."
"응……."
"나 명한 씨 사랑해."
분명 자고 있음에도 명한의 귓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애리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도 아저씨가 가장 좋다느니, 최고라느니 하는 일은 잦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몸을 섞을 때 가장 많이 하곤 했다. 잠든 연인이 모르는 비밀이라 생각하니 괜히 이런 짓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게 다 아저씨가 표현이 박해서 그래. 아무튼 아저씨 탓이야. 아저씨가 나빠. 평소 같으면 제 잘못 먼저 생각했을 애리였지만, 지금만은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명한이 표현에 박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대답은 왜 안 하는 거야? 짜게 구는 것도 정도가 있다는데. 온 세상 소금을 긁어모아도 이 정도는 아니라구.
"명한 씨는요? 아저씨는 나 사랑해?"
"…… 사랑하지……."
"얼마나?"
"많이……."
"다 버릴 수 있어?"
"응."
예상외의 즉답에 오히려 애리가 놀란 표정이 되고 말았다. …… 바보. 맨날 안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느니 어쩐다느니 잔소리만 하는 주제에. 진짜 왕바보가 여기 있잖아. 다 버리면 내 보잘것없는 모습도 전부 보게 되겠지? 그래도 날 좋아해 줄까? 문득 애리는 며칠 전 봤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자면서 하는 말은 진심일 확률이 백 퍼센트라나 뭐라나, 하는 연애 상담 전문 채널이었다. 그럼 이것도 백 퍼센트 진심이지? …… 왕바보 아저씨 좋아.
어쩔 수 없지. 일요일이니까 특별히 서비스 좀 해 볼까. 아저씨 해장해야 하니까 국도 끓이고, 밥도 하고, 꿀물도 타야겠다. 명한의 볼에 짧게 입을 맞추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차가운 공기가 닿자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친 애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명한의 셔츠를 주워 입었다. 아직도 고기 기름 냄새가 났다. 가만히 서서 셔츠 목덜미에 코를 묻고 킁킁거리자 희미하게 명한의 체취가 느껴졌다. 이래서 아저씨 옷이 좋아. 침실을 나서는 애리의 발길이 한없이 가벼웠다. 명한은 여전히 드르렁 컥컥 코를 고느라 바쁘다. 일어날 때까지 절대 안 깨워야지. 그리고 잔소리해야지.
근데 꿀물에 소금 타면 더 달지 않을까? 넣어야겠다.
혼자 남은 명한의 얼굴이 어쩐지 구겨졌다는 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