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안 좋대요. 요즘 감기가 유행이잖아요.”
여름의 입구. 정신없던 중간고사도 어느새 끝이 났습니다.
학생들의 입에서는 온통 다가올 여름 축제나 부활동에 대한 얘기들이라 이제 여름이라는 실감이 나죠. 막 짧아진 교복 소매가 한결 가볍습니다.
점심시간, 당신은 빌렸던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부드러운 여름 바람이 느껴지고 멀리서 함성이 오고갑니다. 곳곳에 도시락이나 매점에서 사온 빵 등을 펼쳐놓고 함께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이네요.
구름다리로 향하는 길목은 다행히 아무도 없어 느긋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네요.
小五郎:(책을 한손에 들고서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며 터벅터벅 걸어간다. 진짜 졸리네. 하루종일 체육 수업만 하면 좋겠다. 그럼 하루에 두 시간은 공 찰 수 있을 텐데.)
어라? 곁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의 복도 창문에 금이 가 위험하니 수리할 때까지 주의하라고 했던가요.
小五郎:뭐야? (일단 옆으로 한발 물러난다.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슬쩍슬쩍 깨진 창문 근처로 가 바깥을 쳐다본다.)
같은 반 학생인 나카미치입니다. 옆에 사람이 한 명 더 있네요.
나카미치 군의 여자 친구였던 것 같은데… 진지한 얼굴입니다. 싸우는 걸까?
“웃기네.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간다.”
곁의 그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자, 나카미치는 황급히 그를 붙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멈칫, 깨진 창문에 눈길을 돌리고, 코고로를 한 번 쳐다보고, 깨진 창문을 한 번 더 봅니다…
나카미치:그...... 미안! 뒷일 좀 부탁해!
나카미치:어쨌든 인생에서 한 번은 달려야 할 때가 있으니까!!!
小五郎:돌았나……. 딱 보니까 지가 잘못했는데 뭔……. (아, 씨, X됐다. 도서관 가야 하는데, 교무실 가서 저 놈 꼰지르기도 해야 할 것 같고…….)
황당해져 잠시 자리에 서 있으면, 어느새 혼자가 된 당신에게 다른 방향에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옵니다.
운 나쁘게도 신임 교사인 키사키 에리 선생님입니다.
英理:(깨진 창문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서 네게로 종종걸음으로 뛰어온다.) 이게 무슨……. 다친 데 없어?
小五郎:아. (더 더 X됐다. 왜 하필이면 키사키 선생님인데? 뜨악한 표정을 짓다가도 네가 급하게 뛰어오자 덩달아 뛰쳐가선 어깨를 쭉쭉 밀어 뒤로 보낸다.) 전 괜찮으니까 뒤로, 뒤로요. 유리조각 엄청 많아요.
英理:그래, 다친 곳이 없으면 다행인데……. (밀리는 대로 뒷걸음질을 치다 창문에서부터 네게로 시선을 돌린다.) …… 네가 깬 거니?
선생님은 확신에 찬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무슨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小五郎:……. (안전한 곳까지 와서야 네게서 떨어진다. 혹시 몰라 제 슬리퍼를 벗어 탈탈 털다가 어이가 증발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제가요? 아뇨???????!!!!!!
英理:이 녀석, 창문을 깨놓고 거짓말까지 하면 안 되지. (네 귀를 약하게 꾹 꼬집어 당긴다.) 여기에 너 말고 누가 있었다고 그래, 으응?
小五郎:아, 아. 나카미치가 여친한테 차였다고 난리치고 간 거예요! (아주 가볍게 일러바치며 얼굴을 찌푸린다. X나 억울하네…….)
英理:……. (여전히 안 믿는 얼굴로 미심쩍게 바라보더니 귀를 놓아준다.) 모리 군, 앞으로 일주일 동안 수영장 청소 행일 줄 알아요. 수업 끝나면 교무실로 와.
발 밑으로 유리파편이 굴러다닙니다. 억울하다……
小五郎:선생님이 학생을 안 믿어도 돼요? (내가 언제 이 선생님한테 찍힐 만한 짓을 한 적이 있나? 없는데? 나 그냥 좀 열심히 잔 게 전분데? 귀가 별로 아프지도 않으면서 괜히 잡혔던 귓가를 만지작거린다.) 수업 마치고 청소 시작하면 저녁 지나서 끝난다고요.
英理:정 억울하면 나카미치 군한테 자백이라도 받아오지 그러렴. (눈 하나 꿈쩍 않고 제 팔짱을 끼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양을 단번에 시키지는 않을 거니까. 그럼, 알아들은 걸로 할게. 이만 가도 돼.
小五郎:직접 방범 카메라 보시면 되겠네요. (흥. 어느새 입이 댓발 나와선 삐죽거린다. 저쪽을 흘끔 보면 널 밀치느라 떨어뜨린 책이 있어 뒷머리를 긁었다.) …… 제가 가면 이건 누가 치우는데요.
英理:자꾸 선생님한테 말대꾸 하지. (널 따라 시선이 옮겨졌다가, 다시 네게로 향한다.) 네가 깼어도 너한테 치우라고 할 리가 없잖니. 도서관 가던 길인 것 같은데……. 얼른 가 봐.
小五郎:아, 됐어요. 잘 치울 테니까 선생님은 손대지 마세요. (이상하게 이런 일엔 서툴 것 같은 사람이니까. 시선이 느껴지자 여전히 뚱한 얼굴로 눈을 마주친다.) 왜요?
英理:…… 하아. 자꾸 고집 피울래? (이 녀석이 정말. 인상을 찌푸리며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위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수영장 청소 일주일에서 2주 동안 하고 싶어?
小五郎:어차피 마음에 안 들면 2주고 100주고 시키실 거면서. (널 내려다보는 얼굴에 금세 심드렁한 기색이 물든다. 이 선생님도 다른 선생님들이랑 이런 점은 비슷하네. 그러더니 옆으로 비켜선다.) 전 빗자루 가지러 가야 해서 이만.
英理:……. (이마를 짚으며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큰 한숨을 쉬었다. 이 나이의 남자애들이 다 저렇지, 뭘. 이 이상 받아줄 시간은 없었기에 몸을 휙 돌리더니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네 시야에서 사라진다.) 네 마음대로 해.
小五郎:(여자 선생님들은 왜 저러지? 죄다 스타킹에 발바닥 아파 보이는 신발만 신고, 손은 물렁물렁하게 생겼으면서 저런 걸 치우겠다고 하는 속을 전혀 모르겠다. 네게 대답도 않고 가까운 교실로 간다.)
점심시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하필 오후에는 또 키사키 선생님이 담당하는 영어 수업이 있습니다.
교편을 든 선생님을 보자 점심에 있었던 황당한 사건이 떠오릅니다.
일주일이나 방과 후 청소를 하라니 장난이겠지…?
저쪽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나카미치와 눈이 마주치면 그는 뜨끔한 듯 미안! 제스처를 취하곤 다시 고개를 숙입니다.
핸드폰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자 친구와 아직 화해를 못 했나……
小五郎:(죽어……. 여친 있는 것도 짜증나는데 저 표정은 진짜 못생겨서 열이 받는다. 고개를 돌려 멍하니 교탁만 바라봤다. 창밖을 보고 싶지만 그랬다간 무슨 잔소리를 세트로 들을지 모른다. 아니그것보다저새끼자수안하냐고. 뒤지고싶나.)
옆자리에서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옆자리 학생이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것 같네요.
키사키 선생님에 대한 내용 같아요. 그러고보면 최근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던 것 같기도…?
小五郎:(영어는 서투르다. 솔직히 수업 내용을 들어도 반은 그냥 반대쪽 귀로 흘러내린다. 차라리 저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옆자리 쪽으로 촉각을 곤두세운다.)
小五郎: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2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학생A: 그러고 보니까 지난 주말에 해피 산책시키러 공원에 갔었는데, 그때 키사키 선생님을 봤거든. 누구랑 같이 있더라?
학생A: 글쎄? 그런데 싸우는 건지 심각한 분위기였어. 언제 올거냐든지, 좀 기다리라든지……
小五郎:(……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학교 관두는 게 저 그만둘게요~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뭐 더 없나? 괜히 입술을 삐죽인다.)
학생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터집니다. 나카미치는 봐달라는 애절한 시선을 보내지만 선생님은 가차없습니다.
英理:안 돼. 누구랑 그렇게 메시지를 열심히 해?
나카미치:어, 엄마요! 엄청 급한 일이었단 말이에요.
교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일변해 “애인 이야기 해 주세요!”, “첫사랑 이야기라도요~” 같은 함성이 오고갑니다.
小五郎:(시끄럽네……. 나카미치가 혼나는 일엔 관심이 있었지만, 남의 사랑 이야기엔 그닥 관심이 없다. 그것도 저 선생님이라면 더더욱. 아무튼 없기에 아예 턱을 괴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유도부 연습 가고 싶다.)
키사키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탁을 한 번 탁! 두드립니다.
英理:너네 챙기기만도 바빠. 자, 수업 돌아간다.
에이~ 가벼운 야유 소리. 나카미치의 핸드폰을 압수한 채 선생님은 수업으로 돌아갑니다.
小五郎: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당신은, 아주 잠깐이지만 선생님이 목에 걸린 자신의 로켓펜던트를 한 번 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틋해 보이는 표정으로요.
小五郎:……. (싫다. 애인 없는 척은 다 하더니 왜 저런대.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 창밖을 더 보다가, 그마저도 질려 자리에 엎드렸다. 잠이나 자자.)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수업이 전부 끝나고, 돌아갈 시간입니다.
부활동이 있는 학생들은 각각의 부실로,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귀가 준비에 한창입니다.
코고로는… 선생님에게 명령받은 수영장 청소가 있었죠. 정말 해야 할까?
小五郎:…… 나카미치!!!!!!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봄;)
小五郎:(쾅쾅 소리를 내며 뛰어가 나카미치의 뒷덜미를 낚아챈다.) 인마.
그 순간, 나카미치의 여자 친구가 복도 모퉁이에서 나타납니다.
나카미치의 여자 친구: 왜 연락에 답을 안 해? 진짜 여기까지 하자 이거야?
나카미치:아니, 핸드폰을 뺏겨서…! 야! 잠깐만 좀!
눈앞에서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내곤 또 다시 그는 여자 친구를 쫓아 달려갑니다.
나카미치:아……! 진짜 미안! 내가 다음에 뭐든 쏠게! 꼭!!
小五郎:야!!! 너네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꼴을 당했는데 연애놀음이나 하고 싶냐? 다시는 얼굴 안 봐 개자식아!!!!!!!!! (일단 화가 나니까 또 지르고 본다.)
코고로는 그렇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집니다...
小五郎:…… 저딴 것도 친구라고……. (우울해졌다. 털레털레 교무실로 간다. 또 뭔 소리를 구구절절 늘어놓을지 모르겠네…….)
앞반 체육 선생님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키사키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을 반깁니다.
英理:안 도망치고 잘 왔네? 착하다. (벽에 걸린 수영장 열쇠를 빼들고 네게 가까이 다가간다.)
小五郎:……. (애 취급은 딱 질색이다. 그저 입을 일자로 다물고 가만히 있는다.)
英理:그럼 같이 갈까? 수영장으로. (그런 널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함께 바깥으로 나간다.) 나도 청소는 도와줄게.
小五郎:됐어요. 할 일 하고 빨리 퇴근하셔야 기다리는 사람 보러 가실 거 아녜요. (네 목걸이를 흘끗 보곤 바닥만 보고 걸었다. 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거야. 짜증 나게.)
英理:기다리는 사람? (고개를 기울이더니 슬쩍 입꼬리를 올린다.) 어차피 나도 학교에 남아서 업무를 해치우는 시간은 지루하거든…….
학교 수영장은 강당 건물의 옥상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당은 3층 정도의 높이로, 안에서 계단을 타고 위로 향합니다.
반 년 넘게 사용되지 않아 먼지가 쌓인 자물쇠를 가볍게 털어내고 문을 엽니다.
철문이 움직이는 묵직한 소리. 탁 트인 하늘과 옥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가운데에 풀, 안쪽으로는 탈의실 건물과 작은 휴게실, 구석에는 비트판 무더기가 비닐 커버로 덮여 있습니다.
작년에 이곳에서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있죠. 풀은 5개의 라인이 들어가는 25M 길이로, 지금은 물이 빠져있습니다.
얼룩덜룩한 빗자국이 남은 푸른 타일 위로 먼지와 쓰레기들이 굴러다닙니다. 텁텁한 냄새가 납니다.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네요.
英理:풀장만 청소하면 돼.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하나씩 네게 건넨다.)
小五郎:……. (이거로요? 하고 되묻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얌전히 받아들고 수영장 안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진짜 더럽네…….
英理:오늘 하루는 쓰레기만 걷어내고, 2, 3일차에 물걸레질, 4일차에는 마을 축제가 있으니 쉬고 마지막 5일차에 호스를 연결해 물청소를 하면 끝이야. (제 몫의 빗자루도 가져온다.)
小五郎:네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주변을 둘러보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곤 얼굴을 찡그렸다.) 그 차림으로 하시게요? 옷 다 더러워져요.
英理:괜찮아. 어차피 금방 돌아갈 텐데. 장갑도 줄까? (미리 챙겨온 장갑을 네게 건넨다.) 큰 쓰레기들은 우선 손으로 옮겨놓자. 참, 모리 군. 다른 것은 도와주겠지만, 마지막 물청소 때에는 도울 수 없을지도 모르니 친구를 데려와도 괜찮아.
小五郎:방금 절교하고 와서 혼자 해도 상관 없어요. (괜히 툴툴거리며 장갑을 끼고 바로 앞에 있는 쓰레기들을 줍다가, 뒤늦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왜 못 오는데요?
英理:(저리 말하면서도 며칠 뒤면 같이 놀고 있겠지. 열심히 쓰레기를 주우며 입꼬리를 올려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더니, 네 시선을 외면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 음. …… 바쁠 예정일 것 같아서, 그날.
小五郎:데이트? (다시 평소의 심통 난 표정으로 돌아와선 쓰레기만 줍는다. 벌이라고 주는 건데 선생님이 도울 필요 있나? 애초에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거나 좀 확인해 주지.)
英理:데이트는 무슨. 설령 데이트가 있다고 해도, 학생한테 청소를 떠맡기고 데이트를 하러 가겠니.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으로 화제를 돌렸다.) 왜, 그렇게 선생님을 같이 부려먹고 싶어서? 아직도 삐쳤어?
小五郎:모르면 끝이죠. (쓰레기를 하나하나 줍다 보니 성질이 나 그냥 빗자루를 들었다. 그대로 한쪽 벽부터 바닥에 닿지 않게 쭉쭉 쓸고 가 쓰레기를 모은다.) 제가 한 거 아니라고요. 사고 친 놈은 연애질이나 하러 갔는데 왜 내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진짜.
英理:……. (손에 들린 쓰레기를 비워내고서 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더니, 어쩐지 조금 미안함이 담긴 얼굴로 머쓱하게 웃어보인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 다음 주에 선생님이 주스라도 사 줄까? 아니면, …… 음. …… 초콜릿 같은 거라도…….
小五郎:저 일곱 살 아닌데요. (화가 안 나나, 그럼? 원래 한참 부활동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이러고 있으니 나쁜 마음만 솟아난다. 뭐, 선생님하고 둘만 있는 건 괜찮은데. 이미 이미지 다 박살났잖아.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네게서 휙 멀어져 다시 열심히 빗자루질을 한다. …… 뭔데, 그 표정.)
英理:……. (네가 제 곁에서 멀어지자 여전히 머쓱하게 그 뒷모습만 가만히 바라본다. 빗자루를 든 손끝을 만지작거리다 숨을 잠깐 들이마신다.) …… 그럼 이렇게 할래? 청소가 끝나면 매일 하나씩 선생님의 비밀을 알려 줄게. …… 네가 궁금한 것들도 뭐든지, 전부 괜찮고. …… 어때?
小五郎:말하면 비밀이 아니게 되잖아요. (어쩔 수 없이 꺼낸 말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궁금한 걸 물으래도 물어볼 수 있을 리가 없고, 네가 먼저 알려 준대도 예전에 시험 성적이 나빴다던지 하는 수준 아닐까. ……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뿐이다. 저도 모르게 빗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빗자루 머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다 네 앞에서 멈췄다.) 선생님, 발이요. …… 그리고 진짜 제가 다 해도 괜찮으니까 구경만 하셔도 돼요. 진짜, 진짜로요.
英理:응? 아, …… 미안. (한 발짝 네게서 물러나고는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했다.) …… 별로 안 궁금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네 말은 들을 생각이 없는지 도로 입을 꼭 다물고 묵묵히 쓰레기를 주웠다.)
小五郎:…… 그런 이야기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수업 시간 때에도 그랬고. 고집을 부리는 네 모습을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생님 친구 별로 없죠?
英理:…… 무, 무슨 소리니! 없기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목소리를 냈지만 이내 헛기침을 했다. …… 애가 한 말에 진지하게 뭐하는 거람. 귀끝을 살짝 붉히고 고개를 돌린다.) …… 선생님한테 버릇 없는 말 하는 거 아냐.
小五郎:없네. (다시 빗자루질을 하며 태연하게 말을 이어간다.) 그냥 시시콜콜하게 말할 사람이 없었나 짐작했을 뿐이에요. 다른 애들은 신나서 아까처럼 첫사랑 이야기나 들려달라 했겠지만요.
英理:…… 그런 거 아니거든. (대답하는 제 어투는 조금 툴툴거리듯이 말했다. 큰 쓰레기들을 대강 버려내고 손바닥을 털었다.) …… 나는 그냥 모리 군을 달래 주려고 한 말이었어. 생각난 게 그거였으니까……. …… 그러니까 비밀이든 뭐든 듣기 싫으면 괜찮대도.
小五郎:보통 달래 주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물어 보지 않아요? (무조건 저를 몰아붙이던 아까의 모습이 떠올라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빗자루 위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서 널 쳐다본다.) 키사키 선생님이 일곱 살인가 보다.
英理:……. (이번에는 제가 심통이 난 얼굴로 네 시선을 외면했다. 입술을 삐죽이며 허리를 숙여 말없이 빗자루질을 했다.) …… 지, 집에 빨리 가고 싶으면 빨리 끝내!
小五郎:어차피 이거 끝나면 유도부 가거든요~ (빨갛게 달아오른 귓가에 시선이 꽂힌다. 진짜 이상한 선생님이야. 네 뒤를 쫓아 한 번씩 더 빗자루질을 하며 다 들으라는 듯 떠든다.) 사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니죠? 그럼 배신감 느낄 것 같은데. 그리고 전 주스 말고 우유가 좋아요. 그리고 우유보다 콜라.
英理:…… 알았어. 그럼 다음 주에 콜라 사 줄게. (네가 뒤를 쫓아오면 애써 멀리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그럼 콜라로 더 이상 아무 말 않는 거지?
小五郎:햄버거랑 같이 먹는 콜라. (단호하게 한 번 더 말하곤 속으로 웃었다. 평범하게 빗자루질을 해도 체격 차 덕분인지 금세 네 뒤로 따라붙게 된다. 슬쩍 어깨 위로 얼굴을 들이민다.) 무슨 말을?
英理:그건……. (사 준다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틈에 가까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작게 놀라는 소리를 내며 한 발짝 떨어진다. 여전히 휘둥그레진 눈으로 널 올려다보다 휙 뒤돌아 서서 헛기침을 한다.) 아, 아니……. 그, 그러니까, 더 이상……. 삐치지 않을 거냐는 말이지…….
小五郎:한 명 사주면 백 명 사줘야 돼요. 제 용돈으로 사서 마실게요. (어깨를 으쓱이며 그제야 제대로 웃었다. 네게서 물러나 빗자루를 고쳐 쥐고서 등을 돌린다.)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여태 제대로 삐친 것도 아니었거든요.
英理:…… 그럼 우유로. (짧게 대답하고서 괜스레 같은 곳을 몇 번이고 쓸어댔다.) 그, 그러니까 제대로 삐치지 말라고 사 준다는 거잖니. 비밀도 싫고, 콜라도 사양하면…… 선생님도…… 어쩔 수 없지. …… 대충 다 정리한 것 같아?
小五郎:우유 백 개면 대체 얼마지…… (곰곰 암산하다 역시 어른이 짱인가, 싶어진다.) 안 돼요. 나중에 '모리 군, 역시 선생님이 잘못했어~' 하고 수행평가 백 점 주면 안 삐치지 않을까요? 아, 네. 거기는, (네가 계속 쓸던 곳을 가리킨다.) 광이 나네요.
英理:우유 백 개를 사 주더라도 수행평가 백 점은 안 되지. 네가 영어 스피치 평가 때마다 얼마나 버벅거리는지 짧은 시간이어도 다 알 수 있던데. (네 말에 쓸던 손을 멈추고 다시 뺨을 붉혔다. 성큼성큼 쓰레받기를 휙 뺏어들고 쓰레기통으로 걸어간다.) …… 흥.
小五郎:아, 선생님 오고 나서부터 갑자기 영어 토론이 돼서 그런 거잖아요! (또 빨개졌다. 왜 귀엽냐. 예쁘게 생긴 사람은 삐쳐도 예쁘구나. 네 뒤를 쫄랑쫄랑 따라간다.) 이제 선생님이 삐쳤어요?
英理:…… 내가 어린애니? 삐치게. 이 빗자루나 저기 보관함에 갖다 놓고 오렴. (새침하게 말하고서 네 가슴팍에 빗자루를 밀치듯이 건넨다.) 자.
小五郎:네, 네. 선생님이 제자 앞에서 삐치면 쪽팔리니까 아닌 셈으로 치죠. 뭐. (청소도구들을 한손에 모아 쥐고서 수영장 바깥으로 올라간다. 바닥에 도구를 내려놓고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올라올 수 있어요?
英理:올라갈 수 있어. (흥! 여전히 삐친 티를 내며 보란 듯이 힘겹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小五郎:선생님 진짜 고집쟁이네요. (해맑게 웃으며 상체를 숙여 양팔을 아래로 뻗는다.) 빨리요. 안 잡으면 나 굴러 떨어져요?
英理:……. (얼굴이 빨갛게 변한 채 괜히 원망스레 네 얼굴을 노려본다. 그러다 저도 양손을 뻗어 붙잡고 천천히 올라온다.) 어른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小五郎:지금은 완전 멋진 어른이 될 거라고 칭찬할 때 아니에요? (새침한 얼굴은, 진짜 완전 대박 귀엽다……. 괜히 저도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선 네 뒤쪽으로 손을 뻗어 여기저기 묻은 먼지를 털어 준다.)
英理: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네. 자, 잠깐……. 혼자 할 수 있어. (입을 꼭 다물고 네 손을 피해 제가 대신 털어낸다.) …… 어, 얼른 빗자루 갖다 놓고 오래도.
小五郎:덜렁이에, 새침떼기에, 고집쟁이에, 부끄럼쟁이인 것까지 알았으니 벌써 나흘치 비밀을 억지로 알아버렸네……. (역시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하며 주섬주섬 빗자루를 집어 도구함에 골인시킨다.) 나이스~
英理:……. (얼굴의 열은 식을 줄을 모른다. 원망스레 인상을 찌푸리며 네 등짝을 힘을 실어 한 대 때렸다.) 이 녀석, 제대로 넣지 못 해! 쓰레받기도 가져다 놓고, 응? 장난치지 말구! 2주로 연장시킬 거야!
小五郎:아! (급습에 몸이 휘청인다. 따가워라. 어깨를 한참 달싹이며 따가움이 가실 때까지 꿈틀거리고 나서야 쓰레받기를 집었다.) 완전 제대로 들어갔거든요? 보실래요? 네? (다른 손으로 네 손을 잡고 도구함까지 질질 끌고 간다.)
英理:얘, 얘가 왜 이러는지……. (질질 끌려가다가 네 손을 놓으려는 듯 흔들었다.) 확실히 봤어, 봤다니까.
小五郎:그럼 제대로 한 거 맞죠? (손 꼬옥!)
英理:……. (아무래도 자력으로 손을 놓기는 힘들 것 같다. 계속해서 손을 약하게 흔들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둔다.) 성실하고 착실한 학생은 그런 식으로 빗자루 정리 안 해.
小五郎:성실하고 착실한 학생이라곤 한 적 없는데……. (이상해. 그러다 손을 너무 오래 잡고 있었단 생각에 슬쩍 손을 놓는다.)
英理:……. (네가 놓은 제 손을 어색하게 만지작거리다 후다닥 발걸음을 옮겼다.) …… 서, 선생님은 쓰레기통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마저 정리하고 와.
小五郎:네에. (사과하면 더 어색해지겠지? …… 내일 초콜릿 사와야겠다. 선생님이 좋아해서 말씀하신 걸지도 몰라. 열심히 고민하며 뒷정리를 한다.)
한참 쓸고 주운 보람이 있어 굴러다니던 쓰레기는 거의 다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정리를 하고 돌아가면, 꽉 찬 쓰레기 봉투를 묶는 키사키 선생님의 로켓 펜던트가 노을 빛에 반짝입니다.
小五郎:(먼지투성이가 된 장갑을 탈탈탈 털고 한데 묶는다. 네게로 돌아가니 반짝이는 펜던트가 보여 시선을 빼앗겼다.) …… 그거, 아까도 만지시던데.
英理:…… 응? 아, 이거? ……. (제 펜던트를 쥐어 내려다보더니 살풋 웃음을 띤다.) …… 아는 사람, 음, …… 친구가 준 거야. 만난 지는 조금 됐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습니다. 선생님이 아닌 키사키 에리 개인의 얼굴.
누군지 모를 사람을 향한 친애의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것뿐만이 아닌 것도 같아요.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
小五郎:……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역시 애인? 적어도 좋아하는 사람? 그래. 예쁜 사람은 이미 다 짝이 있다니까. 아~ 개멍청이 모리. 표정이 딱딱해진다.) …… 그럼 저는 부활동 하러 갈게요. 수고하셨습니다.
英理:…… 앗, 응.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일 보자, 모리 군. 오늘 수고 많았어.
小五郎:네. 안녕히 계세요. (그대로 도망치듯 수영장에서 벗어났다. 왜? 대체 왜? 이 거지 같은 기분은 뭐야?)
다음 날, 평소보다 늦게까지 몸을 움직였던 탓인지 몸이 뻐근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여름 감기가 유행이라던가? 피로나 졸음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것도 같아요. 날이 갑자기 더워지고 있으니 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수업 시간에는 어김없이 키사키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는 옆자리 학생들이 보입니다.
小五郎:……. (결국 가방에 넣었던 초콜릿을 생각하며 옆자리에 귀를 기울인다.)
小五郎: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학생B: 진짜, 진짜. 나 교무실 청소할때 걔가 교감한테 우리 학교 사내결혼 되냐고 물어보는 거 들었다.
학생A: 아하하. 벌써 거기까지 설레발을 쳐? 웃기네.
학생B: 앞반 체육 선생님 있잖아. 키사키 선생님한테 관심있대.
小五郎:(체육 선생님도 앞길이 훤하네. 키사키 선생님은 딱 봐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흥. 그보다 졸려 죽겠다. 하품을 쩍쩍 해댄다.)
나른한 수업 시간들이 전부 지나면, 어느새 방과후가 다가옵니다.
小五郎:……. (나카미치는? 주변을 둘러본다.)
“... 오늘은 일찍 갈래. 가야겠어. 날 부르는 거 같아.”
小五郎:? (부르는 거 같다고? 감기가 심한가. 갸웃거리며 가방을 챙겨들고 교무실로 껄렁껄렁 걸어간다.)
英理:(업무를 처리하다 너와 눈이 마주치면, 화색이 밝아져 일어나서 네게 다가간다.) 모리 군, 오늘도 와 줬네. 마침 잘 왔어.
小五郎:네? 무슨 일 있나요? (네게 가볍게 목례한다.)
英理:잠깐 나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오늘 낮에 다른 학생들이 밀대를 쓰다가 부러뜨리는 바람에……. 마침 다른 비품들도 살 게 있어서 근처 마트에 다녀오려고.
小五郎:…… 아. 알겠어요. (짐 나르는 일은 자신 있고. 문제 없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걸어서 가요?
英理:아니. 선생님 차 타고. (네 발걸음에 맞추어 주차장이 있는 쪽으로 향한다.) 후후, 오늘은 별로 싫은 기색이 안 보이네…….
小五郎:뭐, 계속 절교 상태고. (어쩌면 귀여운 거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英理:응? 뭔데? (한층 부드러운 얼굴로 네게 고개만 돌려 올려다본다.)
小五郎:…… 차에 타고 나서요. (별 것도 아닌데 주변에 누가 있을까 싶어 신경이 쓰인다. 네 시선이 와닿자 고개를 휙 돌렸다. 뭐야!?)
英理:……? (얼굴에 물음표를 한가득 띄우고서 고개를 기울인다. 다시 앞을 보며 진지한 이야기인가, 하고 생각했다.) 고민 상담 같은 거야? 후후. 그런 거면 좋겠네.
小五郎:…… 어떻게 하면 다음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가 고민 상담의 전부인데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영어 수행평가를 때울 수 있을까. 아, 너무 녹아서 초콜릿이 녹진 않았겠지? 갑자기 등골이 축축해지는 기분이다.)
英理:모리 군이라면 우승할 수 있을 게 뻔하잖아. (여유롭게 대답하고 주차장에 도착하자 차키를 꺼내 잠금을 풀었다. 네가 탈 수 있도록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고, 저도 운전석으로 향했다.) 정리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네. 일단 타렴.
小五郎:잘 모르겠어요. 요새 컨디션이 영 별로라. (계속 졸리고 몸이 찌뿌둥한 걸 보면 썩. 감사합니다, 짧게 인사하고 조수석에 올라탄다. 가방을 허벅지 위에 올리고 안전벨트를 맨다.)
英理:(저도 운전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하고서 시동을 걸었다.) 여름 감기 같은 거니? 별나기도 하네. …… 마트에 가면 먹고 싶은 것도 사 줄게. 따라와 준 답례 같은 걸로.
小五郎:감기가 유행하나 봐요. 아까 다른 애들도 피곤하다 그러던데. …… 그럼 어제 말씀하신 우유로요. (눈치를 흘긋흘긋 보다 가방을 열어 뒤적거린다. 이내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을 때 초콜릿 상자를 꺼내 네 허벅지에 톡 올려놓는다. 제 용돈에 비하면 꽤 고급품이었지만, 포장이라곤 제품 상자와 비닐 뿐이다.) …… …….
英理:모리 군도 조심해야겠네……. (중얼거리다 허벅지에 무언가가 닿아 힐끔 내려다보자 초콜릿으로 보이는 상자가 보였다. 눈을 깜박이며 너와 초콜릿을 번갈아본다. 나한테 주는 건가? 하지만 네게 초콜릿을 받을 만한 호감을 사진 않았던 것 같다.) …… 웨, 웬 거야? 이거…….
小五郎:…… 어제, 너무 무례했나 싶어서……. (물론 그땐 즐거웠지만 집에 가며 생각하니 역시 너무했다는 생각도 자꾸 들었더랬다. 사람이 너무 착해도 탈이야. 네 시선을 피해 창밖을 보려 했지만 유리 위에도 네 얼굴이 보여 말짱 도루묵이었다.) 초콜릿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 하고…….
英理:……. (말없이 초콜릿을 만지작거리며 받아들었다. 고등학생이 사기에는 확실히 조금 비쌌을 것 같다고 걱정이 먼저 앞섰지만, 얼굴을 붉히며 살며시 놓아두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 으음. (그대로 한참 동안이나 붉어진 채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뗀다.) …… 조, 좋아해…….
小五郎:……. (그런 말은 앞에 주어를 붙여 달라고. 괜히 혼자 착각하게 되잖아. 나란히 얼굴을 푹 익힌 채 고개를 숙였다. 가방끈으로 손장난만 치며 작게 중얼거렸다.) …… 혼자 전부 드세요.
英理:…… 으, 응. …… 혼자만 먹을게. 전부……. (네게 보이지 않게 기쁜 듯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마트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안전벨트를 풀고서도 나갈 생각을 않고 꼼지락거린다.) 그, …… 저기……. …… 고마워, 모리 군.
小五郎:…… 네. (차가 멈췄다는 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저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아서 그렇지. 역시 너무 오버했나……?)
英理:……. (아무 말도 못하고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다, 살짝 손을 들어 네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는다.) …… 모리 군은 정말로 멋진 남자가 되겠네.
小五郎:애, 애 취급은 싫다니까요…….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꺼낼 수 있는 대답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지금도 멋진 남자라고 해줬다면 더 기뻤을 텐데. 괜한 욕심에 입술을 깨물었다.)
英理:…… 응, 미안. (네가 진심으로 싫어하는 티는 아닌 것 같아 배시시 웃었다. 초콜릿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손을 뻗어 네 안전벨트를 풀어준다.) …… 갈까?
小五郎:네, 가죠. (벨트가 풀리자 주섬주섬 가방만 그자리에 놓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운전석 문을 열러 가는 것도 과한 것 같아 대신 쇼핑 카트를 끌고 온다.)
英理:(저도 따라서 차에서 내리고 널 뒤따라 간다. 널 따라잡으면 곁에 나란히 서서 네게 손을 뻗었다. 여전히 얼굴은 아직 빨갛다.) 내, 내가 끌게.
小五郎:아녜요. 전 뭐뭐 사야하는지도 모르고. (괜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남자애가 따라다니기만 하면 보기에 안 좋잖아요.
英理:…… 으음. 그래도……. (신경쓰이는 듯이 곁을 서성거리다 포기하고 걸으며 메모한 포스트잇을 꺼냈다.) 그럼 일단 생활용품이 있는 쪽으로 가자. 밀대 두 자루랑, …… 테이프랑 클립…… 이 정도겠네.
小五郎:알겠어요. (밀대랑 테이프, 클립. 이 정도면 혼자 와도 금방 사지 않나? 그냥 교무실에서 나오고 싶으셨나?) 그래도 오늘은 밀대라 다행이네요.
英理:응? 어떤 게 다행이야? (네 말을 흘려들으며 카트를 살짝 당겨 생활용품 코너 쪽으로 향했다.) 음, 온 김에 파일도 몇 개 사가는 게 좋으려나…….
小五郎:창문보다 덜 위험하잖아요. (그리고 청소할 사람도 안 늘어나서 다행이다. 웃고 싶은 기분을 꾹 눌러 참으며 네가 이끄는 대로 졸졸 따라간다.) 그리고 내 수행평가 점수도…….
英理:그래도 애들이 부순 거면 방심할 틈 없이 무엇 하나 위험해. (고개를 살며시 젓고서 하나 둘 필요한 것들을 꺼내 카트에 넣었다.) …… 다음 수행평가 기대해도 되지? 모리 군.
小五郎:적어도 덜렁이 선생님이 마구 뛰어오다가 위험해지진 않죠. (차곡차곡 쌓이는 비품들을 바라본다. 왜 말한 것보다 많은 것 같지?) …… 아마도…….
英理:너 정말. 창문 깬 사람이 할 말 아니야. (째릿 흘겨보고서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음, 이것도 언젠가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저것도……. 아, 이 고양이 모양 클립은 귀엽다. 이것도 넣는다.) 이번에는 저번보다 쉬울 예정이니 저번만도 못하면 혼낼 거야.
小五郎:제가 깬 거 아니라니까요?! (어제도 결국 내가 깼다 생각했다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학교 돈으로 산다기에 이상한 클립에 또 어이가 없어지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에 또 또 어이가 없어진다.) 저번이 너무 어려웠던 거래도요.
英理:시끄러워. 아무 불만도 받지 않을 거야. (네 말을 다 한 귀로 흘리며 클리어 파일의 무늬를 꼼꼼히 살폈다. 이쪽이 더 귀여운 것 같으니 다른 것을 밀어넣고 세 개 정도 넣어둔다.) …… 이 정도면 됐겠지? 먹고 싶은 거 사줄 테니 갈래? 우유랑, 아니면 과자라든지…….
小五郎:고집쟁이. (결국 카트가 고양이나 그 외 귀여운 무늬 사무용품으로 가득해졌다. 이게 무슨.) 우유 한 팩이면 돼요. 흰우유로요. 조금이라도 더 커야 하거든요.
英理:…… 지금보다 더 크면……. 으음. 뭐, 더 커서 나쁠 건 없겠지만 그래도 충분해. (식료품이 있는 곳으로 카트를 당겨 끌고 간다.) …… 내가 신경쓰여서 그래. 초콜릿도 받았고…….
小五郎:조금만 더요. 근육이나 지방은 괜찮은데 키는 맘대로 안 자라잖아요. (처음보다 확연히 무거워진 카트를 꾹꾹 민다.) …… 그거 별로 안 비싸요. (개구라다.)
英理:무슨 소리니. 내가 그 정도도 못 알아볼 것 같아? (흥, 콧방귀를 뀌고서 우유 두 팩을 넣었다. 하나는 내 거. 그리고 나서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다.) …… 음, 모리 군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게 없네…….
小五郎:……. (알아볼 정도면 초콜릿을 좋아하는 게 맞나 보다. 혼자 안심한다. 그리고 학교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응.) 다른 애들 좋아하는 건 저도 좋아해요.
英理:……. (과자 코너에 우뚝 서서 초코바를 빤히 바라본다. …… 당 충전용으로 사두었던 간식 서랍이 살짝 휑해지고 있단 것을 기억해내고 열 개가 들어있는 박스를 통째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힐끔 네 쪽을 돌아보며 감자칩 하나를 집는다.) …… 과자도 좋아해? 아니면 사탕이나 빵, 젤리라든지…….
小五郎:…… ……. (엄청, 좋아하는구나. 보통 저걸 박스로 사는 경우는 잘 없지? 그치?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 네. 네. 좋아해요. 다른 것도 전부…… 좋아해요.
英理:그, 그럼……. (감자칩도 넣고 포도 맛 사탕 한 봉지도 넣고 크림빵 하나도 넣는다.) 이거면 답례가 충분하려나……. 이, 이제 계산하러 가자. 생각보다 너무 많이 샀네.
小五郎:그…… 럴까요. 너무 많이 받아서 죄송한데요……. (좋아한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해도 괜찮은 걸까. 어쩐지 정말 가득해진 카트를 밀고 계산대로 향했다.) 같이 오길 잘했네요.
英理:이 정도로 무슨. (하나하나 계산대 위로 부지런히 올려놓는다.) 그러게. 혼자였으면 다 들고오기 힘들었을 것 같네. …… 미안, 이따가 청소도 해야 하는데 이런 잡일까지 맡겨서.
小五郎:아니에요. 선생님은 이거 반절만 옮겨도 지치셨을 것 같고. (아예 한뭉치씩 꺼내 게임이라도 하듯 빈 자리에 쑥쑥 채워넣는다.) 죄는 안 지었어도 받은 벌이 있으니 받아야죠.
英理:말이라도 못하면. (계산이 끝난 것들을 옮겨 박스 안에 차근차근 담았다.) …… 방금 전에 미안하다고 하고 면목없지만 이거, 차 트렁크까지만 옮겨 줄 수 있을까?
小五郎:진실만 말하거든요? (기다렸다는 듯 박스를 품에 가뿐히 안아들었다.) 문제 없어요. 먼저 가지고 가 있을까요?
英理:응. 계산하고 금방 갈게. (네 주머니에 제 차키를 쑤셔 넣어준다.)
小五郎:…… 네. (진짜 위험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으니 당연히 허벅지에 손이 닿는 거지만. 하마터면 공공장소에서 못 볼 꼴을 보일 뻔했다. 고작 그 잠깐 때문에 반응하지 말라고. 박스를 안고서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짐을 나르고 차 옆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으면 마트 옆을 가로지르는 강이 눈에 들어옵니다.
멍! 저 옆에서 떠돌이 개가 강가를 향해 짖고 있습니다. 미지근한 바람이 불고 초목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小五郎:
지능
기준치: |
65/32/13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근처의 갈대밭이나 잡초 등이 이상하게 웃자라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햇빛이 잘 드는 길목인데 이상하네요.
푸른 빛을 띤 식물들은 마치 시들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당신의 발 옆으로 지네 한 마리가 기어갑니다.
아니… 자세히 보면 거미입니다. 그러나 몸이 이상하게 길어요.
어쩐지 숨이 막힙니다. SanC (0/1D4)
小五郎:
SAN Roll
기준치: |
44/22/8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으엑. (개싫어. 아직 네가 올 것 같지도 않으니 조금만 살펴볼까 싶다.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 그나저나 멍멍이가……. 강가를 향해, 정확히는 개가 있던 쪽으로 빠른 걸음을 옮긴다. 뭐 있나?)
아지랑이 아래에서 가볍게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몸이 휘청이고, ...... 어느새 뒤에서 키사키 선생님이 나타나 당신의 등을 받칩니다.
小五郎:키사키 선생님……. 이상한 거미랑 멍멍이가……. (손으로 이마를 짚고 중심을 잡으려 애쓴다. 어지럽다.)
英理:…… 으응? (네 몸을 반쯤 안듯이 떠받쳐주며 주위를 둘러본다.) …… 멍멍이? 없는데…….
小五郎:잘못 봤나……. 그럼, 지네만큼 긴 거미는요?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뜨며 숨을 골랐다.)
英理:…… 음. 안 보이는데……. 모리 군, 벌레 무서워? …… 나도 그렇지만. (괜찮다는 듯 네 등을 토닥여 준다.)
小五郎:아뇨, 안 무서운데. 이상했어요. 이만큼 길어서……. (어지러움이 가실 때까지 네게 가만히 안겨 있었다.)
英理:……. (입을 다물고 토닥이던 손을 가만히 쓸어내려 쓰다듬었다.)
小五郎:진짜 감긴가……. (중얼거리며 네 어깨에 부비적대다 겨우 뒤로 물러나 제대로 선다.) …… 감사합니다.
英理:…… 응. 이제 괜찮아? 갈 수 있겠어? ……. (걱정스러운 얼굴로 네 손을 양손으로 감싸 잡아준다.)
小五郎:네. 괜찮아요. 빨리 가서 청소도 해야 하고……. (다시 한 번 눈을 꾹 감았다 뜬다. 강가를 보면 네 말대로 보이는 게 없는 것 같기도 해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느새 강아지도, 지네같은 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의문만을 가득 남긴 채, 우리는 수영장으로 돌아갑니다.
英理:…… 모리 군, 지금은 어때? 괜찮아? (수영장 안으로 들어서며 널 뒤돌아본다.)
小五郎:…….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네게 웃어보였다.) 괜찮겠죠. 그 뒤로 이상한 것도 안 보였고요.
英理:…… 으응. 어차피 물걸레질은 내일도 해야 하니까 오늘은 조금만 하자. …… 아니면 쉬고 있어. 선생님 혼자 해도 괜찮아.
小五郎:아니에요. 선생님도 운전한다고 고생하셨고……. 선생님 혼자 하시면 선생님이 벌 받는 사람 같잖아요. 벌을 받고 싶으신 거라면 모를까.
英理:…… 오, 오늘은 벌 받고 싶은 사람 하지 뭐…….
小五郎:비밀 그렇게 쉽게 알려 주면 안 된다니까요? 바보 선생님.
英理:무, 무슨……! 비밀 하나도 안 알려 줬어. (새 밀대 자루를 들고 호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오늘은 한 삼십 분 정도만 하다가 돌아가는 거야.
小五郎:벌 받고 싶은 사람도 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게 비밀이 아니면 뭐예요? (평소처럼 장난스레 웃으며 네 뒤를 쫓아 걸어간다.) 네에. 왔다갔다 하기 귀찮으니까 선생님이 위에서 물 뿌리실래요? 제가 닦을게요.
英理:…… 음. (호스 앞에서 서성거리며 네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한참 동안 머뭇대다 한 발짝 물러난다.) 그, 그럼…… 그냥 내, 내가 닦을게…….
小五郎:……? (네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간이 구겨졌다. 그러고보니 마지막 날엔 도와줄 수 없다고 한 게 아니라 도와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던가?) …… 물 싫어하세요?
英理:…….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하다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돌려 피했다.) …… 응. …… 무서워서…….
小五郎:뭐야, 아래에서 닦으면 폭삭 젖는다구요. (바보. 어제 그랬듯 네 몸을 밀어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럼 제가 적실 테니까 같이 들어가서 닦아요.
英理:…… 으응. (이번에는 순순히 물러나 밀대 자루를 만지작거렸다.) …… 미, 미안. 도움이 전혀 안 되고 있네, 선생님이.
小五郎:무서운 걸 꼭 할 필요 없잖아요. 특히 이럴 때는요. (호스를 길게 풀어 수영장 쪽으로 가려다 말고 널 쳐다본다.) 보는 것도 무서워요?
英理:…… 음, 조금? …… 그래도 볼 수는 있어. (네게 가까이 다가가 옆에 붙는다.) …… 젖지 않게 조심해.
小五郎:전 젖어도 상관 없는데. 그러면 조금 덜 무서워지게 연습이라도 하죠.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곁으로 온 너를 흘끔 보고 오르내리는 손잡이 옆으로 대충 네가 앉을 만한 공간을 남기고 앉는다. 그리고 빈 공간을 탁탁 친다.) 여기 앉으면 손잡이 잡을 수 있어요. 참, 신발은 벗으시는 게 좋겠다.
英理:……. (조심조심 신발을 벗고 앉으려다 얼굴을 붉힌 채 힐끔 올려다본다.) …… 스, 스타킹도 벗는 게 좋을까?
小五郎:…… …… 젖는 게 싫으면? (시선을 수영장 바닥으로 처박는다.)
英理:…… …… 그, 그럼……. (머뭇거리며 네 뒤로 가서 스커트 안쪽으로 손을 밀어넣는다.) 저기, …… 뒤돌아보면 안 돼.
小五郎:아, 안 봐요! (그거 봤다가 이대로 죽으라고?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그저 호스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눈마저 감아버렸다. 귀는 누가 막아 주냐고. 망할.)
英理:(조심조심 스타킹을 발끝까지 벗어내리고는 네 뒤에 구두와 함께 개어 놓아둔다. 짧은 스커트도 아닌데 괜스레 신경이 쓰여 치맛단을 붙잡고 곁에 살짝 걸터앉았다.) …… 이, 이제 다 됐어.
小五郎:네……. (조심스레 눈을 뜨면 뽀얀 살결이 보인다. 미쳤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다시 호스에 정신을 집중했다. 한참 더듬거리다 물을 틀기 직전 네 얼굴을 보았다.) 무서우면 바로 눈 감고 뭐든 잡으세요.
英理:…… 응.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수영장 바닥을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 그래도 모리 군이랑 같이 있으면, …… 덜 무서울지도…….
小五郎:……. (이 선생님 진짜 바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따로 있으면서 왜 이런 말을 하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물을 약하게 튼다. 제 손에 물을 살짝 적셔 네게 내밀었다. 왜 무서워하게 됐는지 몰라도.) 보세요. 이 물은 하나도 안 무서워요.
英理:……. (흠칫 눈에 띄게 놀라 어깨를 움츠리며 살짝 물러난다.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 으, 응……. …….
小五郎:…… 죄송해요. (단순히 축축한 정도도 안 되는구나. 물 마시기도 힘들겠네. 제 허벅지에 손을 쓱쓱 닦곤 다시 내밀었다.) …….
英理:아니야. 내가 미, 미안……. (다시 머뭇거리며 물러난 상체를 가까이하고 네 손을 조심스레 잡는다.) …… 비도 무서워.
小五郎:선생님이 뭐가 미안해요. …… 그럼 학교 선생님 하기 힘들지 않아요? 애들이 다 튀기고 다니는데. (손을 깍지 껴 꽉 쥐어주고 다른 손으로 딱 청소에 필요할 만큼만 물을 더 튼다. 그대로 맨 구석부터 천천히 적셔나간다.)
英理:…… 후후. 깜짝깜짝 놀랄 때는 있어도, 어쩔 수 없지. (손깍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얼굴을 붉힌다. 괜스레 두 발을 살랑살랑 흔들며 네 옆모습을 힐끔거렸다.) …… 모리 군은 무서워하는 거 없어?
小五郎:앞으로 그런 애들은 혼내야겠네……. 짜증난다고 하면서, 요. (살랑대는 발끝이 제겐 과하게 자극적이다. 애써서 물줄기 끝을 봐도 한 번씩 네 얼굴이나 다리를 눈만 굴려 보게 된다.) …… 높은 곳이요.
英理:…… 높은 곳? …… 고소공포증 같은 거? (고개를 기울이며 어쩐지 안심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 모리 군도 무서워하는 게 있어서 좋아. 귀여워라.
小五郎:네. 높은 곳이 싫어요. (조금씩 수영장에 끼인 먼지가 걷히는 모습을 지켜보며 꿍얼거린다.) 무서운 거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럼 세상 사람 전부 좋고 귀엽게요?
英理:…… 바보. 그런 뜻이 아니잖아. (네 팔을 약하게 톡 때린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화색이 밝아졌다.) 참, …… 아까 초콜릿이랑 우유. 챙겨왔는데 잠깐 먹고 할래?
小五郎:……. (나도 그게 질투라는 거 정도는 안다 뭐. 괜히 공중에서 다리만 꼰다.) 좋아요. 그럼 조금 빨리 하고 있을게요.
英理:응.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나 맨발로 타박타박 짐을 둔 곳으로 다가간다. 우유 두 팩과 초콜릿 상자 하나를 가지고 다시 네게로 돌아온다.) 내가 전부 먹겠다곤 했지만 역시 같이 먹는 쪽이 좋아.
小五郎:(네가 뒤로 도는 듯하자 바로 물을 세게 틀어 지금까지보다 두세 배는 빠르게 바닥을 적셔간다. 이렇게 해야 어느 정도 이끼도 닦이니까. 마구마구 바닥을 적시자 다시 네 목소리가 들려와 물을 잠근다.) 고집쟁이면서 변덕쟁이네요. 선생님.
英理:…… 그래서 싫어? (네 곁에 앉아 조심스레 물어보다 퍼뜩 말을 덧붙였다.) 아, 그게, 내가 아니라……. …… 가, 같이 먹는 게 싫냐는 말이었어.
小五郎:전혀요. 좋아요. (네가 말을 덧붙이자 눈을 굴린다.) …… 저는 설명 안 할래요.
英理:……. (얼굴이 붉어진 채 말없이 우유 두 개를 놓아두고 초콜릿 상자의 포장을 뜯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 그렇게 말하면 오해하잖아.
小五郎:…… 해도 상관 없으니까. (여태 호스만 만지작대고 있다가 겨우 내려놓았다. 우유팩을 들어 뜯으면서도 부끄러워져 꾸물대긴 마찬가지다.)
英理:…… 저, 정말이지……. 어른을 놀리면 못 써……. (웅얼거리듯 말하며 상자를 열자 내심 화색이 밝아졌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참고서 하나를 집어 네게 먹여주려다, 그건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 입에 넣고 상자째로 건넸다.) …… 모리 군도 먹어 봐. 엄청 맛있으니까…….
小五郎:그런 건, 아닌데……. (괜히 목이 타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제자리에 두었다. 그래. 차라리 놀림으로 생각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네가 상자를 건네자 쉬이 고르지 못한 채 상자 속의 초콜릿만 바라본다. 역시 내가 먹기엔 아깝다.)
英理:…… 왜 그래? (저도 우유를 한 입 마시고 고개를 기울인다. 싫어하지는 않을 텐데. 하나를 집어 머뭇머뭇 네게 건넨다.) …… 이거, 맛있어. 가장 좋아하는 거야. 모리 군이 먹어 주면 좋겠는데.
小五郎:아, 그, 별 건 아니라. (괜찮은 변명을 생각해내는데 네 손끝이 다가오자 빳빳하게 굳었다. 먹어도 되나? 그치만 손으론 상자가, 한 손으로 들면 엎을지도, 그치……? 고민하다 고개를 내밀어 초콜릿을 입에 넣고 자연스레 손가락을 핥으며 떨어진다.) …….
英理:핫, ……. (손가락 끝에 생소한 감각이 닿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손을 거두고 제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애써 화제를 이어나갔다.) …… 어, 어때? …… 맛있지? …….
小五郎:…… 네, 네에……. 달고, 쌉쌀하네요. (초콜릿을 천천히 혀 위에서 굴려 녹인다. 달다. 최대한 오래 그 맛을 기억하려 한참을 조용히 먹다 제 뺨 안에 남은 것까지 훑을 지경이었다.)
英理:……. (단순히 초콜릿을 먹을 뿐인 건데 왜 이렇게까지 부끄러운지. 말없이 초콜릿을 집어먹고 우유도 한 모금 마시며 입을 다물었다.) …… 하, 하나만 더 먹고…… 청소하자.
小五郎:그, 저는 이거면 충분해요. (더 먹었다간 머리가 펑 터질 것만 같았다. 초콜릿이 진한 덕인지 남은 우유를 한 번에 먹고도 뒷맛이 남아 있었다. 다시 호스를 쥐고 약한 물살로 마저 바닥을 적신다.) …….
英理:……. 으응. (저도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상자를 닫고 일어난다. 나머지는 가져가서 먹어야지.) 이거, 정리하고 올게.
小五郎:네. 천천히 하세요. (지금, 선생님 입속도 엄청 달겠지. 거기까지 생각하니 이미 뇌가 반쯤 녹아내렸지 싶다. 네가 오기 전에 끝낼 셈으로 물살을 더해 마구마구 손을 움직였다.)
英理:(쓰레기들은 버리고 상자는 다시 놓아둔 뒤 네 쪽을 바라보자, 물살이 센 것을 보고 조금 주춤거린다. 그래도 보는 것 정도라면……. 쭈뼛대며 네 곁에 서서 말없이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본다.)
小五郎:……. (이제 물을 봐도 네 생각이 나겠구나. 한참 늦게 실감했다. 바닥을 한 차례 다 훑자 다시 한 번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훑고 나서 물을 잠갔다.) 선생, 엑!? 왜 여기 계세요?
英理:아, 미안. 그냥…… 구경하느라. (정확히는 네 뒤통수를 더 많이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뭔가 농땡이 피운 것처럼 말해 버렸지만…… 후후. …… 다 했어?
小五郎:그, 그래요? (구경할 게 따로 있나? 서서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정도면 충분히 젖은 것 같은데요. 겸사겸사 이끼도 닦였고요.
英理:그럼 나머지는 내일 와서 하자. 어제보다 시간을 더 잡아먹은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이만 가봐도 괜찮아. (옅은 미소를 짓는다.)
小五郎:내일요?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하긴 선생님도 할 일이 많겠지? 그럼에도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네, 말씀대로…… 내일.
英理:응. 잘 가, 모리 군. 내일 보자. (손을 뻗어 가볍게 네 머리를 헝클어뜨리듯 쓰다듬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小五郎:…… 수고하셨습니다. (네 손길에 그 어느 때보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곤 고개를 숙였다. 뒤로 돌아서자마자 얼굴을 반쯤 손으로 가리고 어김없이 급한 발길로 수영장을 나섰다.)
처음 풀장에 들어섰을 때 나던 매캐한 악취는 어느덧 많이 날아간 것 같습니다. 제법 뿌듯함이 느껴지네요.
오늘 키사키 선생님은 일이 바쁜지 중간까지 일을 도운 후 먼저 교무실로 내려갔습니다.
돌아갈 때는 열쇠를 반납하고 가달라고 했었죠. 아직 남아있을까요?
小五郎:(안 계시면 어쩔 수 없지. 열쇠를 손가락에 끼우고 빙글빙글 돌리며 교무실로 내려간다.)
교무실로 들어가 벽에 수영장 열쇠를 걸어둡니다.
교직원들은 대부분 이미 퇴근한 듯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만, 안쪽 교사 휴게 공간에서 그림자 하나가 움직입니다.
아직 이쪽의 인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듯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小五郎:……. (인사 정도는 하고 싶은데. 휴게 공간 쪽으로 걸어가 본다.)
小五郎: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키사키 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핸드폰 밖으로 흘러나오는 상대의 목소리까지 들려옵니다.
선생님에게서는 그동안 들어본 적 없는 매서운 목소리였습니다.
英理:……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 알잖아.
“알아. 난 널 걱정하는 거야. 거긴…… 너무 좋은 곳이잖아. 익숙해지면 돌아온 뒤 힘들 거야.”
英理:…… 그런 건 문제가 안 돼. 어쨌든, 여기서 볼일만 마치면 바로 떠날 거야. 연락도 적당히 해.
“잊지 마. 넌 이방인이야. 거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고.”
英理:끊어. 내가 걸 때까지 연락하지 마. 찾아오는 것도 그만하고.
키사키 선생님은 전화를 끊고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小五郎:……. (안 듣는 게 나았네. 발뒤꿈치에 힘을 줘 몸을 돌린다. 진짜, 안 듣는 게 나았다. 괜히 쿵쿵 발소리를 내 나가는 문으로 향했다.)
英理:(인기척에 화들짝 놀라서는 뒤를 돌아본다. 바깥쪽을 내다보자 네 뒷모습이 보여 마른침을 삼켰다.) …… 모, 모리 군? …….
小五郎:(네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옆으로 살짝만 돌려 눈을 마주치지 않게끔 나름 신경을 쓴다.) …… 열쇠 제자리에 뒀어요.
英理:(들은 걸까, 아니면 방금 전에 들어와서 듣지 못한 걸까. 잘 모르겠지만 애써 평소같은 얼굴로 네게 가까이 다가간다.) …… 오, 온 줄 몰랐어. 인사라도 하고 가지 그랬니.
小五郎:(네가 다가오면 아예 고개를 더 들어 교무실 벽면을 쳐다본다.) 그러려고 했는데 중요한 전화를 하고 계신 것 같길래요.
英理:……. (역시 들었구나. 어찌할 바를 몰라 눈에 띄게 동요한 기색으로 우물쭈물 네게 가까이 온다.) 아, 음……. 미안. 땡땡이치려던 건 아닌데……. 삐쳤어? (농담인 척 얼버무리며 웃었다.)
小五郎:아뇨. 처음부터 안 도와주셔도 되는 일이었잖아요. (곧 떠날 사람이 뭐하러 다음 수행평가니 뭐니 한 거래. 뭐든 나 혼자 기대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확신하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신경쓰실 필요 없어요. 이만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英理:모, 모리 군……. (저도 모르게 네 짧은 소매의 옷깃을 꽉 잡아버린다. 스스로도 놀라 흠칫 손을 떼고서 양손을 가슴팍 앞에 가지런히 쥐어 모았다.) …… 아. 그, 그게. …… 오늘 모리 군에게 수고했다고 줄 주스 사 뒀거든. …… 바, 받고 가.
小五郎:……. (팔이 당겨지자 비로소 시선이 아래로 내려온다. 이상했다.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나는 내가 해야 할 마음 정리를 시작했을 뿐인데 서로 이렇게 불편해지는구나. 받으면 미련만 생길 텐데. 받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는 걸 아는데.) …… 네. 그것만 받고 갈게요.
英理:…… 응.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기에 안심한 얼굴을 하고서 제 자리를 찾아 걸어간다. 어디에 있더라. 제일 아래쪽 서랍을 뒤적인다.) …… 오렌지 맛이 좋아, 사과 맛이 좋아? 뭘 좋아할지 몰라서 둘 다 샀거든.
小五郎:…… 아무거나요. (사실 포도가 좋다. 평소처럼 뒤를 쭐래쭐래 따라가지도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발등에 누가 대못이라도 박은 것 같았다. 대못은 발등, 손등, 그리고 등 뒤에서 박혀 몸 한가운데로 빠져나왔다.) 둘 다 비슷하니까 진짜 아무거나 주세요. 앞에 있는 거.
英理:…… 음. (제게 가까이 오지도 않는 네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일어나서 다시 다가갔다. 네게 사과 맛을 건네 주며 화제를 돌리려 들었다.) …… 참, 그러고 보니까…… 내일은 축제였지.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청소 안 와도 돼. 알겠지?
小五郎:(너를 기다리는 사이 시선은 다시 벽으로 향한다. 커다란 칠판에 월간 계획표가 빡빡하게 들어찼고, 그 옆으론 공문이며 전달사항 프린트가 난잡하게 붙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읽는 척을 한다.) …… 내일 부활동도 없으니까 혼자 해놓고 갈게요.
英理:무슨 소리야. 건드리지 마. 알겠어? 선생님이 수영장 열쇠 들고 갈 거야. (단단히 일러두고 자연스레 네 어깨에서부터 팔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다 오면 돼. …… 이제 가봐도 괜찮아. 붙들어서 미안해.
小五郎:…… 네. (재미 따위 있을 리가 없잖아. 늘 똑같은 축제고, 늘 똑같은 음식을 판다. 올해는 좀 즐거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뭘 혼자 설레발을 친 거냐, 나는. 네게 인삿말도 없이 고개만 대충 숙이고 돌아섰다. 손에 쥔 주스팩이 조금씩 구겨지는 느낌이 끔찍했다.)
“부장 말이에요, 어제부터 집에 안 들어왔대요.”
수영장 청소에 어울리게 된 지 어느덧 4일 째.
오늘은 마을에서 축제가 있는 날입니다. 오전 수업부터 점심시간, 오후까지 학교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누구와 함께 축제를 가네 마네 하는 이야기로 들썩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은 키사키 선생님이 담당하는 영어 수업입니다.
그는 아무도 오늘은 공부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빠르게 이해하고 오늘만이라며 수업 대신 영화를 틀어준다고 하네요.
다들 영화를 고르기 바쁩니다. 당신은 어떤 영화가 가장 먼저 생각나나요?
小五郎:(별로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마음 같아선 그냥 축제도 쌩까고 집에 가고 싶은데.)
몇 명의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고른 영화는 수수께끼의 괴물이 지구를 침공한 뒤를 그린 아포칼립스 영화입니다.
완전히 무너진 문명과 질서, 타인의 안위를 걱정할 여유마저 닳아가는 세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은 매일같이 인간을 잡아먹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의 동생을 지키기 위해 쉘터를 만들려 합니다.
영화는 나쁘지 않은 완성도입니다만, 영화를 제대로 시청하는 학생들은 반 정도로 남은 반은 역시나 오늘 있을 축제에 대해 떠들고 있습니다.
제일 화면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은 학생들보다도 키사키 선생님 같네요. 어쩐지 애매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스크린을 보고 있습니다.
小五郎:(선생님 얼굴이 더 재밌네 뭐. 짜증 나게. 밤새 못생겨지지도 않았잖아. 좀 그러면 덧나?)
영화의 끝보다도 앞서 수업시간의 끝이 다가오면, 선생님은 영화를 끄고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英理:축제라고 너무 사고치지는 말고. 선생님들도 순찰하며 돌아다닐 거니까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그리고…… 3학년의 다나카 군과 연락이 되는 사람 있으면 교무실로 오도록 해요.
“우리 부 부장이야. 어제부터 안 들어왔대.”
그리고, 오늘은 분명 수영장 청소는 휴식이었죠. 집으로 돌아갈까요?
小五郎:(가서 잠이나 자자. 가볍디 가벼운 가방을 어깨에 대충 메고 일어난다.)
학교를 나서는 길, 주차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으면……
쭈뼛거리며 키사키 선생님에게 말을 걸고 있네요.
“오늘 순찰, 2인 1조로 돌아야 한다던데요. 괜찮으시다면 저랑…….”
저 선생님, 키사키 선생님에게 관심이 있다고 요새 한창 소문이 돌고 있었죠.
잘 되어가는 걸까…… 어쩐지 공기가 물을 먹은 듯 무겁습니다.
축제가 시작되는 저녁 전까지 시간은 있을 듯하고, 유도부 친구들에게서는 같이 축제에 가자며 문자가 몇 통씩 와 있습니다.
小五郎:(가기는 싫지만 그래도……. 체육이 헛짓거리를 하면 몰래 뒤에서 한 방 후려칠 수 있을지 모른다. 집에 들러서 옷만 갈아입고 갈까. 휴대폰을 만지작대며 다 같이 모이자고 문자를 보낸다.)
친구들과 함께 모이기로 약속을 하고, 집에 들렀다가 축제로 향하는 길입니다.
해가 길어진 덕에 아직 날은 어둡지 않습니다.
小五郎:와. 사람 X나 많네. (압사당하는 거 아니냐. 사람들 사이에서 아는 얼굴을 찾는다.)
小五郎:뒤에서 따라갈게. (대충 손을 흔들고 일행에 합류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맨 뒤에 선다. 중간에 적당히 빠져나오는 것도 괜찮겠다.)
여러 점포가 문을 열고 장사에 한창입니다. 이곳저곳에서 음식 냄새가 느껴지고, 미니 바이킹이나 회전컵이 돕니다. 아이들을 위한 에어바운스도 설치되어 있네요.
풍선 사격과 뽑기, 물풍선 건지기 등의 게임도 보입니다.
본 적이 있는 듯한 같은 학교 학생들도 저마다 무리지어 축제 회장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곁으로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小五郎:(과학 쌤 말고 체육이나 영어 이야길 하라고. 가만히 볼 생각밖에 없었지만, 결국 이리저리 이끌려 풍선 사격까지 하고 말았다. 손에 든 곰돌이 인형을 흘끗 본다. …… 좋아할까?)
곰돌이 인형을 안고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낡은 테이블에 카드나 큰 수정구슬을 놓아두고 로브를 쓴 사람 한 명이 앉아있습니다.
小五郎:앉자마자 얼굴에 침 뱉는 이유가 뭐예요? (뭐야? 이 사기꾼?)
점쟁이:학생 근처의 기운이 상당히 흐트러져 있어요.
점쟁이:좋지 않아요. 이대로는 당신까지 휘말려 표적이 되어버립니다…….
이질적인 무언가가 당신의 선에 끼어들어 있어요. 어서 거리를 둬야 해요.
小五郎:뭔가 했네. 제가 다 발라버릴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가도 되죠?
점쟁이:예. 마지막으로…… 검은 개를 조심해요.
小五郎:네에. (검은 개? 그 개 무슨 색이었지. 기억 안 나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들 먼저 갔겠네. 씨.)
직장인들의 퇴근시간 또한 겹쳐오는 듯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小五郎:숨 막히네. (적당히 외곽으로 빠져서 돌아다닐까. 선생님 찾기에도 좋을 것 같고. 고민하다 오징어 통구이를 하나 사서 한 입씩 뜯어먹으며 옆으로 슬슬 빠져나간다. 맛있다.)
<이후 30분부터 광장에서 공연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또한, 현재 회장 내에 소매치기범이 출몰한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으므로 발견시 바로 신고해 주세요. 장사 허가를 받지 않은 무단 점포도 운영위원회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안전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 협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외곽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과일 주스를 파는 부스 옆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려 하면……
옷자락이 상자 하나에 걸리고 안에 들어있던 오렌지가 다여섯 개 우르르 쏟아집니다.
小五郎:?? 아, 죄송합니다. (곰인형, 오징어, 곰인형, 오징어……. 어쩔 수 없이 입에 오징어를 물고, 팔엔 곰인형을 끼고 오렌지를 주우려 몸을 숙였다.)
小五郎:응? (웬 지갑. 지갑을 주워 과일 주스 부스 직원에게 말을 건다.) 저기요.
“겨우 찾았다…… 너 뭐야?! 네가 그 소매치기야?!”
라며 사나운 노성이 꽂힙니다. 지갑의 주인인 것 같아요.
지갑을 주워든 당신을 소매치기범이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뭐야?” “소매치기? 누가?” “잠깐만, 여기 밀치지 마세요!”
순식간에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고, 그를 만류하던 사람들도 그의 완고한 태도에 이내 당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小五郎:예? 아저씨는 소매치기범이 이러고 다니는 거 본 적 있어요?! (우물거리며 말하다 빡쳐서 오징어 꼬치를 상대의 얼굴에 뱉었다.) 소매치기범이 곰인형 들고 다니냐고!
小五郎:
위협
기준치: |
55/27/11 |
굴림: |
67 |
판정결과: |
실패 |
주변에서는 당신을 향한 야유와, 지갑의 주인은 분노에 차 경찰을 부르겠다며 당신의 팔을 붙잡습니다.
지갑 주인: 이리 와! 경찰서로 데려가든가 해야지, 이 쬐끄만 녀석이 벌써부터……!
小五郎:쬐끄매? 이게 쬐끄만 걸로 보이냐? 눈을 그렇게 달고 다니니까 지갑이나 잃어버리지!
위협
기준치: |
55/27/11 |
굴림: |
64 |
판정결과: |
실패 |
구경꾼은 더 몰려들고, 지갑 주인은 정말로 신고하려는 듯 핸드폰을 꺼냅니다.
小五郎:어~ 신고해~ 어차피 내가 안 훔쳤고 바닥에 떨어진 거 주운 거거든요? 자알 됐다. 먼저 손댔으니 폭행죄로 신고할 거예요. (도야가오!)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듭니다. 키사키 선생님입니다.
당신의 뒤에서 나타나 당신을 보호하려는 듯 화난 통행객을 가로막고 섭니다.
지갑 주인: 당신 누구야. 이 자식이랑 말하고 있잖아!
英理:…… 제 학생입니다. (짧게 대답하며 네 앞에서 비켜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小五郎:초면에 고래고래 소리지르지 마라고! (네 뒤에서 우렁차게 받아친다.)
선생님은 통행객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 나면 일단 그를 진정시키고, 뒤를 돌아 당신과 눈을 마주칩니다.
그 얼굴에서 의심의 빛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당신에게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英理:…… 사실이 아닌 듯한데, 의심스럽다면 거리의 CCTV라도 확인하러 가시죠. 그러면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학생은 그럴 학생이 아니라는 걸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쯤 되니 주변의 분위기는 다시 일변해 대개 통행객을 향해 가벼운 힐난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小五郎:자기가 잃어버려놓고 애먼 곳에 성질 내는 사람이네. 지갑 안에 잃어버린 게 있나 확인이나 하시죠? 아, 오징어 아까워. (투덜투덜투덜…….)
英理:모리 군. 입. (목소리를 낮추며 손을 뻗어 네 손등을 작게 꼬집는다.)
小五郎:뭐요. 아저씨, 머리카락이나 안 잃어버리게 간수하세요. (메롱.)
그리고 그때, 회장 내 방송이 다시 울립니다.
<방금 회장 내 소매치기범을 경찰에 인도하였습니다. 도난품으로 파란색 동전 지갑과 갈색 핸드백이 들어와 있으며, 도주 중 분실한 도난품도 있다고 하니 분실물이 발견되는 경우 운영 본부로 신고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물건을 도난당하신 분들은 본부에 찾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小五郎:갈 길 가시죠? 아저씨. (메에로옹.)
英理:잠깐만……. 일단, 가시기 전에 저희 학생한테 사과부터 해 주시죠. (그제야 네 앞에서 물러나 곁에 선다.)
지갑 주인: 칫……. 거 미안하게 됐네. 내가 사람을 잘못 알아봤군. 미안해, 학생.
英理:자, 모리 군. 너도. 버릇없게 군 거 사과드려. (네 등을 가볍게 탁 두드려 앞으로 밀었다.)
小五郎:앞으론 예의 차리고 사세요. (고개를 까딱이고 다시 뒤로 물러난다.)
英理:(다른 사람들이 물러나고 나자, 네 귀를 약하게 꼬집어 당겼다.) 모리 군!
小五郎:아. 제가 선생님 장난감인 줄 아세요?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네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왜 혼자 있지?)
英理:너 말버릇이 그게 뭐야. 으응? 네가 소매치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 너를 봐온 나는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함부로 굴면 못 써요. 전부 모리 군의 손해라는 걸 왜 몰라. (잔소리를 쏟아내고서 귀를 놓아준다.)
小五郎:그래서 예의바르게 아니라고 하면 누가 날 믿기나 해요? 저쪽이 먼저 반말 찍찍 하면서 먼저 나 쳤는데? (안 쳤지만 아무튼 친 거다. 여전히 짜증이 난 기색은 사라지질 않았다.) 선생님 바보 멍청이.
英理:…… 너! (인상을 찌푸려 화가 난 얼굴을 해 보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 허리에 두 손을 얹고 그대로 몇 초간 널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네 마음대로 해. 바보 멍청이 선생님은 가려니까. 그럼…….
小五郎:어차피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잖아. 나는 뭐라도 하려고……. 씨. (진짜 자기 맘대로인 게 누군지 선생님은 모를 거야. 여태 들고 있던 곰인형을 네게 던지고 먼저 가버렸다.)
英理:(뒤에서 푹신하고 커다란 것이 몸을 맞추자 작게 휘청인다. 뒤를 돌아보자 곰인형이 떨어져 더러워질까 황급히 줍고서는 네 뒷모습을 바라본다.) ……. (주변을 둘러보며 망설이더니 이내 곰인형을 안고서 네게 뛰어간다.) 모리 군! 이리 와. 너 선생님한테 자꾸 그럴래? 이건 왜 던져!
小五郎:당신 거니까 버리든지 남 주든지 마음대로 해! (싫어. 다 싫다. 선생님도 싫고 선생님 애인도 싫고 학교도 수영장도 다 싫어. 그저 사람들 사이를 마구 밀치고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애썼다.)
英理:모리 군, 모리 군! …… 앗. (쟤가 왜 저러는 건지. 잔뜩 곤란한 얼굴을 하고서 네 뒤를 열심히 쫓아갔지만, 구두를 신고 네 보폭을 따라가기는 역부족이었는지 이내 발이 삐끗해 탈싹 주저앉듯 넘어진다. 다행히 곰인형 덕분에 아프지는 않았지만 얼른 인형을 챙겨들고 울상이 된 채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
小五郎:(한두 걸음 걸으면 다시 사람에게 가로막힌다. 진짜 뭐 같네. 그러다 문득 뒤에서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드디어 멀어졌나 싶어 뒤를 돌아본다. …… 왜 저러고 있어? 울 것 같은 얼굴로 주저앉은 모습이 보이자 잠시 고민하다 다시 네게로 돌아간다.) 바보 멍청이 맞잖아요. (여전히 사람이 많다. 네 몸과 인형을 한번에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었다.)
英理:(네 목소리가 들리자 올려다보기도 전에 제 몸이 먼저 떠올랐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두리번거리며 네 어깨를 마구 밀어낸다.) 모, 모리 군……! 뭐, 뭐하는 거야. 다, 다른 학생들이 보게 되면 어쩌려고…… 내, 내려 줘!
小五郎:알면 인형으로 가려요. 떨어지면 온몸 개박살이야. 그리고 무거우니까 밀지 좀 마세요. (협박과도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처음 목적대로 외곽을 향해 빠져나간다. 벤치가 어디 있냐.)
英理:무, 무거워? …… 무거우면 내려달래도! (아무리 소리쳐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이내 시선을 떨구고, 인형을 꽉 끌어안으며 네 품에 새빨간 얼굴을 기댄다.) …….
小五郎:가만히 있으니까 안 무겁네. (툴툴거리며 한참을 더 걸어 벤치를 발견하자 조심스럽게 내려준다.) 왜 그러고 있었어요?
英理:…… 선생님이 뭘. (모르는 척을 하며 벤치에 앉아 끌어안은 인형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英理:청승 떨긴 누가. …… 넘어진 것뿐이야……. (인형에 제 얼굴이 보이지 않게끔 가리며 중얼거린다.)
小五郎:……. (넘어져? 그대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네 구두를 훌렁훌렁 벗기고 발목을 만져본다.) 어느 쪽?
英理:자, 잠깐……. (양다리를 세워 앉으며 허둥지둥 발을 빼낸다.) 아주 약간 삐끗한 거니까 내버려 둬도 돼! …… 버릇없게 굴 땐 언제고, …….
小五郎:…… 보라색. (속옷 다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네 잔소리를 싸그리 무시하고 저도 할 말만 한다.) 구두 신고 뛰면 안 된다는 건 안 가르쳐 주시나요?
英理:……. (새빨개진 얼굴을 들지 못한 채 얌전히 구두를 다시 신었다.) …… 바보 멍청이 선생님이라 그런 거 모르나 보지. …… 모리 군이 불러도 그냥 가버렸잖아.
小五郎:선생님이 먼저 갔잖아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휙 돌렸다.)
英理:……. (말씨름을 하자니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짧은 한숨만 내쉬었다. 그제서야 머뭇머뭇 고개를 들며 저를 외면하는 옆모습을 바라본다.) …… 그래서, 이 곰인형은? …… 친구 주지, 왜 선생님을 주고.
小五郎:선생님 말고 줄 여자 없는데요. (여전히 부루퉁하지만, 이상하게 뺨이 따끈해진다. 왜 이걸 말하고 있어야 하지.) 애들이 사격하라고 시켰는데 일등상이 곰인형인 줄은 몰랐죠.
英理:여, 여자는……. …… 서, 선생님 놀리면 못 써.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채로 말을 더듬으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 나한테 줘도 되겠어? 안 아까워?
小五郎:제 방에 두는 게 더 이상한데요. (고작 곰인형 하나로 붙드려고 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진짜 바보 멍청이는 나야.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버려도 돼요. 떠날 때 짐이 많으면 성가시잖아요.
英理:…….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을 꼭 다물었다.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여닫기를 반복하다 그저 짧게 대답했다.) …… 안 버릴 거야. …… 평생…….
小五郎:…… 그럼…… 그러시든지……. (아, 몰라. 몰라.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다. 뭐 처음엔 알았냐. 모리. 애꿎은 제 머리만 마구 헝클어 개판을 쳐놓는다.)
英理:……. (힐끔 네 얼굴을 바라보다 눈치를 살피더니 주춤주춤 일어난다.) …… 가서 뭐 먹을래? 선생님이 사줄까?
小五郎:발목 삐었는데 뭘 움직여요. 곰돌이랑 앉아계세요. (네 어깨를 꾹 눌러 다시 앉힌다.) 제가 사올게요.
英理:…… 그래도. 모처럼 축제인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시무룩한 기색으로 도로 앉았다.) …… 으응.
小五郎:금방 올테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내 지갑은 안 털렸지? 주머니를 뒤져 확인하곤 상가가 있는 쪽으로 잽싸게 뛰어간다. 그러니까, 시럽 빙수랑, 야끼소바랑, 타코야끼랑, 음, 음, 크레페? 눈에 보이는대로 음식들을 마구마구 사서 돌아온다.)
英理:(곰인형을 옆에다 앉혀놓고 제 발목을 살폈다. 다행이네. 이 정도면 금방 통증이 가라앉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맛단을 정리했다. 인형과 나란히 앉아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 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빨리 왔, ……. …… 뭐, 뭘 그렇게 많이 사왔어?
小五郎:…… 뭐,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내가 봐도 좀 많긴 하다. 붉어진 얼굴로 네 옆에 털썩 앉았다.) 녹으니까 빙수 먼저, 아, 야끼소바도 식으면 맛없는데…….
英理:…… 이, 이렇게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어. (얼른 빙수부터 제 손에 들고 같이 먹기 좋게끔 네게 가까이 붙어 앉았다.) …… 모리 군은 이거 다 먹을 수 있어?
小五郎:…… 아. (아무 생각 없이 제 기준에 맞춰서 사버렸다. 네가 가까이 붙자 마른 침을 삼키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보다 많아도 다 먹어요.
英理:…… 모리 군은 듬직하네. 멋있고……. (작게 중얼거리며 숟가락으로 천천히 빙수를 떠먹는다.) 모리 군은 그래서 인기가 많은가 봐.
小五郎:……. (안 믿는다. 그냥 선생님이 학생에게 하는 칭찬 중 하나일 뿐이니까. 음식 무더기 사이에서 야끼소바를 꺼내 포장을 뜯었다.) …… 인기 없어요.
英理:거짓말. …… 뭐어, 본인은 모르는 법인가…….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리고서 부지런히 빙수를 우물거렸다.) …… …… 좋아하는 여자는 있어?
小五郎:여자애들이 고백하는 것도 다 벌칙게임이잖아요. (그럴 땐 늘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여자애들이 있었으니까. 젓가락에 소바를 돌돌 말았다.) …… 그런 것 같아요.
英理:…… 글쎄. 여자들은 그런 벌칙게임 별로 안 좋아해. …… 적어도 난 그랬거든. (조금 먼 곳을 바라보다 힐끔 곁눈질로 널 살폈다.) …… 그래? 그럼…… …… 그 아이랑 잘 해보면 좋잖니. 선생님이랑 있을 게 아니고…….
小五郎:괴롭힘받아서 그렇게 된 걸지도 모르잖아요. 아니더라도 고백받는다 해서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무뚝뚝한 얼굴로 마저 소바를 말고서 소바를 네 입술 사이로 쏙 넣었다.) …….
英理:그건 그렇지만, …… 으응. (이어지려던 말은 그대로 텁 막혀 소바를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가득 물어 우물거리다 인형을 만지작거린다.) …… 이 인형도, 역시 그 아이한테 주는 게…….
小五郎:아, 씨. 진짜. 좋아하는 여자 줬고, 좋아하는 여자랑 있으니까 상관 없다고요! (빽 내지르고서 제 입에도 야끼소바를 마구 쑤셔넣었다. 말하기 싫었는데. 진짜 짜증 나.)
英理:그,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러다 문득 네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하더니 빠르게 빙수 두세 입을 먹었다.) 선생님 놀리는거 아니래도……. …… 모리 군은 나만 보면 짜증 내잖아.
小五郎:…… 자꾸 그런 말만 하실 거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금세 소바를 삼키고 대꾸하고선 양배추도 쓱쓱 긁어 입에 넣고 한참을 씹었다.)
英理:……. (이것 봐. 정말로 입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반절은 남은 빙수만 열심히 먹을 뿐이다.)
小五郎:어차피 잘 될 거라는 희망 같은 거 없었으니까. 놀리네 어쩌네 하는 말 들을 거면 그냥 모르게 하는 게 낫다고요. (텅 빈 용기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다 다시 오징어 통구이를 들었다.) …… 이거 맛있어요. 그건 얼음 덩어리고요.
英理:…… 괘, 괜찮아. …… 빙수도 맛있어. (가뜩이나 습기가 가득한 날씨에 얼굴까지 잔뜩 더웠기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모리 군, 평소에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데? …… 이상형이라든지, …… 그런.
小五郎:예쁜 여자요. …… 보기 좋은 여자라고 하는 게 맞나? (아무튼 내 눈에 꽂히는 여자. 그리고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여자. 중얼중얼 덧붙이고선 네 얼굴 앞에 오징어를 들이밀었다.) 고집 진짜 심하네. 선생님.
英理:서, 선생님 이미 충분히 많이 먹었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오징어의 끄트머리만 살짝 베어물어 먹는다.) …… 뭐, 확실히 모리 군 나이의 다른 남자애들이랑 비슷하네. …… 예쁜 여자는 대학에 가면 더 만날 수 있을걸.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해.
小五郎:……. (그러니까 그런 말이 듣기 싫다는 건데. 한숨을 쉬고 손을 거둔다. 말없이 오징어만 질겅질겅 씹으며 앞만 바라본다. 당신이 그렇다는 거잖아. 이 바보 멍청이 말미잘에 라면 봉지 같은 여자.)
英理:(그대로 입을 다물고 다시 빙수를 먹기에 집중하고 있다가, 저 멀리를 바라보고는 네 팔을 톡톡 건드렸다.) …… 아, 모리 군. 저기 쟤네 유도부 학생들 아니니? …… 모리 군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小五郎:…… 아, 진짜 쓸데없이 찾아다니기나 하고. (반쯤 남은 오징어를 들고 쳇, 혀를 찬다. 좀 어색하긴 해도 떨어지긴 싫은데.) 저 가면 선생님은요?
英理:나는 다시 순찰 돌기 시작해야지. 아까 잃어버린 선생님도 혼자이실 테니 찾아 봐야 하고……. 이제 얼른 가서 친구들이랑 놀아. 알았지? (살며시 웃는 얼굴로 네 등을 쓸어내린다.)
小五郎:…… 체육한테도 여지 주지 마세요. 그 새끼 진짜 개변태니까. (흥. 네 웃는 얼굴에 뺨을 살짝 붉히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진짜로요.
英理:서, 선생님께 그런 말버릇 하면 못 써!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 (저도 인형을 다시 꼭 끌어안으며 따라 일어난다.) 얼른 가봐! 정말이지…….
小五郎:아, 그러니까 체육이 그렇게 치대는 거라고요! (메롱! 혀를 내밀고선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당신을 찾아다니던 친구들과 합류하여 다시 축제를 돌아다니며 걷습니다.
저 멀리서 선생님을 발견했을 때에는 체육 선생님이 “키사키 선생님!” 하고 뻘뻘거리며 달려가는 게 보입니다.
小五郎:아. 저 개변태 새끼……. (이가 으드득 갈린다…….)
키사키 선생님과 헤어진 후로 어쩐지 공기는 쭉 무겁고 불쾌합니다.
중앙 광장에서 공연을 하는 소리가 들리고, 친구들은 당신을 이끕니다.
小五郎:좀 놔……. (나 저 새끼 뒤에서 후려쳐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친구들에게 끌려간다…….)
아이돌의 공연인가? 관심없는 눈으로 코고로는...
3시간 동안 그 공연을 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小五郎:와……. (눈호강은 했지만 그만큼 몸이 피곤하다. 축제에서 이런 걸 한 적이 있었나?)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지고, 슬슬 축제가 끝날 무렵이 된 것 같습니다.
小五郎:(선생님도 집에 갔을까. 일단 공연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혹시 아직 있는지 찾아본다.)
보이지 않네요. 역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오후부터 줄곧 축축한 공기와 습한 기운. 미지근한 바람……
그리고,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빗방울이 하늘에서 툭 떨어집니다.
빗방울은 점점 빠르게 떨어지더니 이내 거센 비가 됩니다.
축제 회장의 사람들은 빠르게 부스를 접고, 사람들은 인근 편의점에 들어가 우산을 사거나 집으로 귀가합니다.
小五郎:갑자기 이게 뭔. (폭싹 젖고 말았다. 비를 피하려다 문득 네가 물이 무섭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얼굴에 당황이 스쳤다. 진짜 돌아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네 모습을 찾아 헤멨다.)
축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봐도,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小五郎:씨이……. (멍청이 선생님. 이럴 땐 안 보이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걷는다. 어차피 젖었는데 뭐 어때.)
코고로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터벅터벅 걷습니다.
그리고 인근 시민 공원 근처를 지날 무렵, 빗소리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저 사람 괜찮은거야? 쓰러질 거 같던데…….”
小五郎:(무슨 일 있나. 웅성이는 소리에 다시금 주변을 둘러본다. …… 선생님은 아니겠지?)
소리를 듣고 자연스레 공원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사람 하나가 등나무 벤치 아래에 앉아있습니다.
그는 멀리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불안한 기색으로 혼자 앉아 등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네요.
이내 그는 몸을 좀 더 휘청이는 듯하더니, 옆으로 쓰러지듯 천천히 벤치에 몸을 눕힙니다.
小五郎:……. (진짜, 아무리 여지 주지 말라 했어도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할 수는 있는 거잖아. 네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벤치로 뛰어간다.) 선생님!
그는 호흡이 힘든 듯 가쁘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몸이 물을 뒤집어 쓴 듯, 비로 완전히 젖어있고 상당히 불안해 보입니다.
小五郎:우, 우산도 없는데. (어쩌지. 일단 손으로라도 네 얼굴에 묻은 물기를 열심히 닦아본다.) 선생님. 목소리 들려요? 선생님!
英理:……. (무서운 광경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찡그린 채 질끈 감고서는 몸을 눈에 띄게 떨었다.)
小五郎:아무도 없어요. 저밖에 없다구요. (벤치 앞에 아예 무릎을 꿇고 앉아서 네 손을 꼭 잡았다. 다른 손으론 여전히 얼굴을 매만졌지만 얼굴은 점차 사색이 되어간다.) …….
英理:……. (네 목소리가 귓전에 웅웅 울리는 느낌이다.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닌지 네가 잡아준 손을 똑같이 힘주어 잡고서 떨리는 입술로 작게 중얼거렸다.) 물, …… 싫어…….
小五郎:응, 알겠어요. 물 없는 데로 갈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입술을 깨물며 몸을 일으킨다. 네 흠뻑 젖은 몸을 품에 꽉 끌어안고 빗길을 뛰었다.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 집으로 가야 하나?)
英理:……. (전적으로 네 품에 몸을 내맡기면서도 쫄딱 젖어버린 곰인형은 놓지 않고 끌어안았다. 다른 손으로는 네 옷깃을 꼭 틀어쥐듯 붙잡는다.)
小五郎:금방 도착해요. 그러니까 정신 놓으면 안 돼요. (오늘 집에 아무도 없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있어도 사실 상관 없어. 한참을 뛰어 익숙한 주택이 보이자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소파에 널 아기를 내려놓듯 살포시 눕힌다.) 수건 가지고 올게요.
英理:(소파에 몸을 뉘이면 몸의 힘이 어느 정도 빠진다. 몸의 떨림이 살짝씩 멎어들고 가쁘던 숨도 조금씩 안정되어 가기 시작했다.)
小五郎:(수건을 한 무더기 가지고 와서 네 얼굴부터 조심조심 닦았다. 머리카락도 닦고, 옷 위로 묻은 물기도 끝없이 닦으면서 자꾸만 욕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참았다.) 왜 비를 맞은 거예요. 왜…….
英理:……. (서서히 눈을 뜨면 제 앞에 앉아 머리카락과 얼굴을 닦아 주는 네 모습이 흐릿하지만 제대로 보인다. 이내 양팔을 네게 벌리더니 네 머리통을 제 품에 느리게 끌어안고 눈을 감는다.) …… 여보…….
어라. 지금 누굴 부른 거지? 정말 날 부른 건가?
小五郎:……. (네 부름에 굳게 입을 다물었다. 네 품에 안겨서도 얼떨떨한 기분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결혼하셨구나. 왜 몰랐지. 지금 이 순간만은 이 모든 물기가 제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英理:(그대로 힘겹지만 애틋하게 네 머리카락을 쓸어내려주다, 몸에 힘이 빠졌는지 천천히 팔을 내려놓고 다시 눈을 감은 채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
小五郎:…… ……. (우울함에 젖을 때가 아니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야. 옷을 갈아입힐 수는 없으니 두꺼운 이불을 가져와 네게 덮어주고 소파 옆 바닥에 주저앉았다. 빗소리가 드세다.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다 저도 깜박 잠에 빠져들었다.)
英理:(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일찍이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뜨면 어둡지 않은 은은한 조명이 눈에 띄었고, 그 다음으로는 네 얼굴이 보였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나자 조심조심 몸을 일으켰다. 아직 옷은 잔뜩 물을 먹어 축축해 무거웠다. 깨우지 않고 나가는 게 좋겠지. 제가 덮고 있던 이불을 네게 덮어준다.) …….
小五郎:(어깨에 무게가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눈이 뜨인다. 어, 언제 잠들었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면 네가 있어서 순식간에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물 무섭다는 사람이 그거 다 맞고 있으면 어떡해!!
英理:……! (눈에 띄게 놀란 얼굴로 화들짝 놀라서는 소파에 등을 바짝 붙이며 물러난다. 숨을 크게 몰아쉬길 반복하며 시선이 방황했다.) 아, 아니, ……. …… 미안해. …… 모리 군한테는 정말, 매번 폐 끼쳐서…….
小五郎:…… 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아직 놀란 사람에게 화를 냈으니 무서워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러고 들어가면 남편이 걱정하잖아요…….
英理:……. (정말 면목없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고 있다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제서야 제가 뱉었던 한 마디가 생각나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말을 잇지 못했다.) ……. …… 모, 모리 군. 오해야. 이건……. …… 미안. 모리 군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서…….
小五郎:…… 아녜요. 저야말로 남편이 있는 분께 실례했습니다. (하필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여서, 모르는 척조차 할 수 없었다. 새 수건 두세 개를 네 무릎 위에 올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비 많이 오니까 씻고 옷 갈아입고 가세요. 택시 불러드릴게요.
英理:모, 모리 군……. 아, 아니야. 그게……. (횡설수설 말을 잇다가 저도 모르게 네 손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 모리 군…….
小五郎:…… 말씀하세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평소와 다름 없는 목소리였다. 널 내려다보며 살짝 웃었다.)
英理:……. (제가 불러세운 게 맞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잡았던 네 손에 살살 깍지를 끼며 올려다본다.) …… 이제 나 싫어?
小五郎:그건 왜요? (역시 이 사람도 바보다. 좋아하면 안 될 사람이라 해서 좋아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닌데. 그냥 입밖에 낼 수 없는 건데.)
英理:…… 아, 아니야. …… 이상한 거 물어 봐서 미안해. (손끝이 살짝 움츠러들었다가, 못내 아쉬운 얼굴을 지워내지 못하며 네 손을 놓았다.) 학생 집에서 주책이네, 정말…… 난 이대로 택시 타고 돌아가도 괜찮아.
小五郎:…… 안 싫어요. (깍지 낀 손이 멀어져간다. 아마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씻고 옷 갈아입고 가시라고요. 맞을 만한 옷 찾아 올게요. 말 들으세요. 안 듣다가 이렇게 된 거잖아.
英理:…… 그냥 돌아가도 된다니까. …… 이 정도 신세 졌으면 된 거야. 택시 타면 금방이고, 옷 정도는……. (말을 하며 제 옷을 내려다보자 흰색 블라우스 위로 달라붙어 고스란히 비치는 속옷이 보였다. 얼굴을 붉히며 몰래 수건으로 가슴께를 슬그머니 가렸다.) …… 아, 아무튼.
小五郎:그대로 물 찔찔 흘리다가 돌아가는 게 더 신세 지는 일이에요. (한숨을 쉬며 네 손목을 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그대로 욕실까지 질질 끌고 간다.) 왜 한 번을 그냥 안 들어줘요?
英理:자, 잠깐, 모리 군……. (네게 뻘뻘 끌려가며 주위를 살폈다. …… 집에 아무도 안 계시는 건가…….) 너무 그렇게까지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응? …… 부모님은?
小五郎:가끔 말씀 없이 외박하세요. (욕실 문을 열고 널 그 안으로 밀어넣고서 문간에 선 채 팔짱을 낀다.) 설마 씻겨드려야 하는 건 아니죠? 선생님.
英理:…… (여전히 가슴께를 팔로 가리고 어쩔 줄을 몰라 욕실 안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다 얼굴을 붉히며 깜짝 놀란다.) 무, 무슨 소리야! 선생님 놀리지 말라고 했잖아! …… 그게, 역시 선생님이 학생 욕실까지 쓰는 건 조금…….
小五郎: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씻으세요. 그 차림으로 계속 계시는 게 더 곤란해요. 이 버튼 누르면 바로 뜨거운 물 나와요. 저기 선반에 엄마가 쓰는 세면도구 있으니까 그거 쓰고요. 욕조도 쓰세요. (그 말을 끝으로 욕실 문을 닫았다. …… 아. 죽을 뻔 했다. 속옷은 의식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네가 가린 이후로 자꾸만 머릿속에 어른거린다. 남편 있는 여자가 저래도 되냐고. 혹시 네가 다시 나올까 봐 문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英理:모, 모리 군……. (안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네 실루엣이 보여 그냥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머뭇거리며 제 옷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리고, 속옷들까지 전부 벗어내 알몸이 되었다. 미묘하고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따뜻한 물에 조심조심 몸을 녹였다. 아까 그런 일이 있었던 직후라 샤워를 하는 것도 무섭게 느껴져 최대한 바닥을 보며 물줄기를 쐬고, 축축한 머리까지 감았다. 샤워를 끝마친 뒤 수건으로 머리와 몸을 닦고, 한 겹을 두르고 문앞에 섰다.) …… 모리 군, …… 선생님 다 씻, 씻었어…….
小五郎:(물소리가 들리는 사이 제 방으로 가서 제겐 딱 달라붙는 티셔츠와 고무줄 반바지를 찾는다. …… 까만 게 좋겠지. 그렇게 옷들과 함께 수건을 더 챙겨와 들고 널 기다렸다.) …… 옷은 여기 두고 갈까요? (아무래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뒤늦게 샤워도 무서웠으면 어쩌지 싶어 아차 싶었다.) 머, 멀리 가진 않을 테니까……. 그, 문에서 다섯 걸음만 떨어져 있을 테니까요.
英理:…… 으응. 그래도 선생님 이제 많이 괜찮아졌으니까……. (몸에 두른 수건을 꼭 쥐고 조심조심 문을 조금만 열어 얼굴만 내놓고 확인했다.) …… 이, 이제 나가도 돼?
小五郎:…… 네. 다 씻으셨으면요. (얼굴만 내놔도 아래로 다 보인다고…….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렸다.)
英理:(바깥으로 나가자 개운함이 밀려온다. 네가 준비해 준 옷을 입으려 들자 속옷은 어떻게 할까, 고민이 밀려왔다. 축축하게 젖은 걸 다시 입을까? 하지만 위아래로 속옷을 안 입고 입기에도……. 얼굴이 붉어진 채 네 얼굴과 옷을 번갈아본다.) …… 저기, ……. 아, 아니야. (결국 그냥 네가 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었다.) …… 다 입었어.
小五郎:(문이 열리자마자 뒤로 돌아 앞으로 다섯 걸음 걸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비를 맞은 건지, 왜 그렇게 불렀던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제 발끝만 보다 다 입었다는 말에 느릿느릿 다시 뒤로 돌았다.) …… 그럼 택시 부를게요. (민망하다……. 내 옷이 저렇게 컸나.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따뜻한 차라도 내놓는 게 좋겠지?)
英理:아, …… 으, 으응……. (속옷도 입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가슴은 잘 드러나고, 반바지는 통이 커 움직이기조차 신경이 곤두섰다. 똑같이 가슴께를 가리고 제가 입었던 속옷과 옷을 가져온다.) 아, 혹시 쇼핑백 같은 것도 빌릴 수 있을까? 이거, …… 가져가야 하니까……. 그리고 네 옷은 내일 세탁해서 돌려줄게.
小五郎:……. (조금만 더 보고 있으면 설 것 같다……. 보지 말아야 하는데, 가려졌어도 선명히 보이는 가슴이나 하얗게 드러나는 허벅지에 자꾸 시선이 꽂힌다. 네가 말을 걸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 찾아볼게요. 잠시만요. 거실에 계세요. 안 젖은 소파에요. ……. (그제야 재빨리 부엌으로 도망쳤다. 내가 무슨 미친 짓을 한 거지?)
英理:아, 응. …… 고마워. (얼떨떨하게 대답하며 정신이 없는 채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속옷과 옷을 가지런히 개어 바닥에 잠시 둔 후에, 기다리는 동안 저 때문에 엉망이 된 소파를 정리하고 닦아내고, 열심히 이불을 개고 있었다.)
小五郎:(부엌 찬장에서 큼지막한 쇼핑백을 찾고, 핫초코 가루도 찾았다. 이거 엄마가 아끼던 건데. 상관 없겠지? 가루를 아낌없이 탈탈 털어 핫초코 한 잔을 타서 거실로 돌아갔다.) 제가 치워도 돼요.
英理:(네 인기척이 들리자 후다닥 반바지를 잡아내리고 다시 가슴께를 가렸다. 어색하게 소파에 걸터앉으며 머쓱한 웃음을 띤다.) 이 정도는 선생님이 하게 해 줘. …… 후후. 옷에서 모리 군 향이 가득 나네……. …… 그래서인지 조금 마음이 놓여.
小五郎:손님에게 일을 하게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네 손에 따뜻한 머그를 쥐어주고 옆에 앉았다.) …… 아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英理:아까? …… 아. (고마워, 작게 말하며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을 때까지 컵을 만지작거렸다.) …… 특별한 일은 아니었어. 집에 돌아가던 길에 비가 쏟아졌다, 그런 거지. …… 갑자기 그렇게 쏟아질 줄은 몰랐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있던 선생님께 데려다 달라고 할 걸 그랬네……. 모리 군한테만 폐 끼치고.
小五郎:차는 왜 안 가지고 왔대. (체육 차를 타는 게 차라리 나았긴 하지만 지금 듣자니 차라리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잖아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간 죽었을지도 모르고요.
英理:…… 응. (잠자코 네 이야기를 들으며 짧게 핫초코를 홀짝였다. 초코가 진한 것이 제 입맛에 마음에 들어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다.) …… 날 발견한 게 모리 군이라 정말 다행이야……. …… 정말로.
小五郎:……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급차 이야기를 하길래 선생님이 아닐까 했어요. 선생님이 아니어도 누가 위험한 상황이었을 수 있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다 고개만 푹 숙였다. 부끄럽다.)
英理:…… 후후. (귀가 빨갛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손을 뻗어 그 귀를 엄지로 쓸어주듯 만지작거린다.) 역시 모리 군은 멋있는 남자가 될 거라니까. 모리 군만 몰라서 그렇지, 인기도 정말 많아, 모리 군은.
小五郎:괘, 괜히 띄워주지 마세요. (별로 멋있는 남자도, 인기가 많은 남자도 아니다. 네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英理:……. (귀여워. 밖으로 꺼냈다가는 애 취급을 하는 것처럼 보일 게 뻔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귀에서부터 뺨으로 손을 쓸고 지나간다.) …… 모리 군과 만나게 될 여자는 분명 행복할 거야. 세상에서 제일…….
小五郎:…… 관심 없어요, 이제. (연애고 뭐고, 그런 데에 집중할 시기는 아니다. 쉬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심지어 네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좋아하란 말인가. 그저 고개를 더 숙일 뿐이었다.)
英理:모리 군은, ……. (손을 거두고 양손으로 컵을 감싼 채 무릎을 세워 앉았다.) …… 평소에 조금만 더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을 텐데.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친구에게든…….
小五郎:그런 거, 부끄럽기만 하고…….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제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진로 이야기만 하고, 친구들도 거기에 이끌려 같은 이야길 하거나 아니면 연애를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나마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일이 유도였고.)
英理:……. 해결되는 게 왜 없어. 그런 소중한 사람들이 네 정신적 지주가 되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 건데.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핫초코를 반쯤 마시고 바닥에 내려놓은 뒤 다시 고쳐앉아 네게 손짓했다.) ……. 선생님한테 어리광 부려 볼래? (그리고는 제 무릎 위를 톡톡 두드렸다.)
小五郎: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어리광은 부리고 싶겠죠. 그럼 안 부리고 싶은 나라도 가만히 있어야 다들 덜 피곤하잖아요. (나름 괜찮은 대답이었다 생각하며 한숨을 쉬는데, 네 손길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 한 번 정도는 괜찮을까. 얼굴도 모를 어떤 남자에게 미안해지면서도 이겨먹는 기분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네 무릎 위에 누워 완전히 기대지 않으려 애쓴다.) …… …….
英理:…….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네 어색한 얼굴이 보여 절로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괜찮다는 듯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며 네 가슴팍 위를 규칙적으로 두드려 준다.) 어리광도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괜찮아. …… 선생님한테는 부려도 돼. 여기는 우리 둘밖에 없는걸……. …… 그렇지?
小五郎:오늘이 지나면 앞으로 부릴 일도 없는걸요. (네가 사라지면 끝이다. 그러니까, 이건 짧은 비행과 비슷한 일이다. 마른 입가를 혀로 훔치곤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선생님한테서 나랑 같은 냄새 난다.)
英理:뭐어…….. (예상했다는 반응이라는 듯 느긋하게 쓰다듬는 손길을 계속했다.) 그럼 평생 부릴 일 없는 어리광 오늘 선생님에게 다 부리면 되겠네…….. (속삭이듯 말하고서는 고개를 살짝 숙여 얼굴을 마주하며 웃었다.) 오늘은 모리 군이 내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도 모르는 척, 해 줄게.
小五郎:…… 이미 다 부렸는데. (이상한 선생님이야. 선생님이 맞긴 해? 보통 선생님들이 이러나?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화악 붉어져 소파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그, 그게 뭐예요……!!!!
英理:……. (만족스러운 미소로 붉어진 뺨을 약하게 꼬집었다.) 이런 모습 말이야. ……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할게. 나만 아는 얼굴로…….
小五郎:(아파……. 허리를 문지르는데 뺨에 닿는 손길에 다시 흠칫댄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이상해지신 건가.) 그, 그런 건 남편 분하고…….
英理:……. (네 뺨을 주무르던 손길이 잠깐 멈춘다. 금세 머쓱한 웃음으로 바뀌어 손을 거두고 만지작거린다.) …… 별로, 내가 잘못된 일을 한 건…… 아니잖아. …… 아니야?
小五郎:무릎에 눕히는 것도, 선생님만 이런 얼굴을 아는 것도, 제가, 어디까지나 비유지만…… 제가 선생님 남편이라면요. 알게 되면 슬플 거예요. (즐기려고 했지만 결국 되질 않았다.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다시 바닥만 쳐다봤다. 왜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거야.) …… 주제 넘는 말을 해서 죄송해요.
英理:……. (네 말에 내리깐 시선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어두워진 낯빛으로 제 양손을 꼭 힘주어 잡으며 허벅지 위에 가지런히 모아두었다.) …… 응. 그렇겠다. …… 미안해. …… 어리광 부리라고 한 주제에 모리 군한테 이상한 부담을 지게 했네. …… 돌아갈게. 미안……
小五郎:저는 그냥, 많은 학생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왜 나는 안 되지. 좋아한 기간이 짧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자리에서 일어나 젖은 얼굴을 팔등으로 대충 닦았다.) …… 잠시만 거기 계세요. 택시 부르고 올게요.
英理:……. (어느새 저도 울상이 되어 애꿎은 바닥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자리를 뜨는 네 옷깃을 세게 잡아 멈춰세웠다.) …… 모리 군. 나는, …… 나는 아무것도 아닌 학생 아무나에게 이러지 않아. …… 그것만은…… …… 알아 줘. 싫어, 그런 말은…….
小五郎:…… 그건 더더욱 안 되는 거라고요! 남편도 있는 사람이 남학생 하나를 더 아껴서 이런 일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녜요? 좋아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 왜 그러냐고! (반쯤 소리를 지르며 결국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이러는 거야. 그냥 내가 끔찍한 학생이라고 생각해주면 안 돼? 좋아한다는 말도 뭣도 할 수 없게 두면 안 되는 거냐고. 나 자신이 미웠다.)
英理:……. (네 말을 들으며 어깨를 움츠린 채 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렸다. 무릎을 세워 앉고서는 퇴로도 없는 등받이에 몸을 꼭 붙였다.) …… 미안해, …… 모리 군한테 미움 받는대도 어쩔 수 없겠다, 그렇지? ……. …… 이렇게나 글러먹은 여자인걸. 모리 군 말이 다 맞는데, 그런데도 나는 모리 군을 보면……. (뒷말을 차마 이을 수가 없어 금세 목이 메였다.)
小五郎: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데. 좋아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데……. 왜 더 좋아하게 만드는 거예요. 선생님이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싫어할 수가 없다니까? 좋아하는 여자한테 어떻게 싫어한다는 말을 해? 선생님 바보야? …… 왜 선생님도 나 좋아하는 것처럼 굴어요……. 나도 선생님 상처 주기 싫어……. (아니면서. 어차피 떠날 거면서. 미워. 진짜 밉다. 그래도 좋아. 안 좋아하고 싶은데 좋다고. 코를 훌쩍이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래봤자 뭐 하나 변하는 것도 없는데. 휴대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英理:…… 미안해……. (네가 떠나고서 거실에 침묵이 흐르자 뒤늦게 중얼거리며 눈물이 나온다. 숨을 죽이고 눈물을 닦아내도 한 번 터진 눈물이 그치지 않아 감정이 잔뜩 북받쳤다. 홀린 것처럼 네가 있는 곳으로 뛰쳐나가 보이는 네 등을 힘을 실어 와락 끌어안는다.) …… 코고로…….
小五郎:(겨우 택시를 불렀지만 오는 데엔 시간이 걸린댄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현관에 멍하니 서서 휴대폰만 쥐었다 펴길 반복하다 네 발소리조차 듣질 못했다. 뒤늦게 네가 끌어안자 뻣뻣하게 굳을 뿐이었다.) …… 서, 선생님……?
英理:미안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용서받지 못할 거란 것도 알고 동시에 모리 군한테도 못할 짓이라는 거 알지만, 그치만……. 그치만 이제 한계라고 해도 좋을 만큼 너무 외로워서, 그래서…….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중얼중얼 말을 쏟아내며 네 몸을 힘주어 꽉 안았다. 네 옷깃을 꽉 쥐어잡고 이마를 등에 톡 기댄다.)
小五郎:…….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 펜던트를 볼 때 선생님 표정은……. 고민하다 뒤로 돌아 널 가슴팍에 안고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선생님, 울었구나. 저도 아직 물기가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요……. 하나씩 말씀해 보세요. 그, 듣는 건 할 수 있어요…….
英理:……. (네 품에서 조금 흔들리는 얼굴을 하며 고민하는 듯 뜸을 들인다. 어쩌면……. ……. ) …… 말할 수는, …… 없어. …… 미안해……. (결국 똑같은 대답을 내놓고서 고개를 저었다.) 화났어? …….
小五郎:…… 말하면 선생님한테 문제가 생겨요? 누가 뒤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다거나, 협박한다거나……. (그런 거면 엄청 큰일이잖아. 얼굴이 험상궂게 구겨진다.) 화난 건 아닌데……. 걱정스러워서…….
英理:으으응. …… 그런 거 아니니까, …… 걱정하지 마. 모리 군은. …… 모리 군이랑 있으면 자꾸 어른스럽지 못하게, …… 이상해지는 기분이라, …….. (말끝을 흐리며 네게서 한 발짝 떨어진다. 이대로 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야 없었다.) …… 역시 나 혼자서 스스로 돌아갈 수 있어. …… 나 때문에 피곤하겠네, 모리 군도…….
小五郎:한계라면서요. 뭔데요. 무슨 일이 있긴 있다는 거잖아요. (이번엔 제가 네 손목을 거칠게 잡아당겨 다시 품으로 들였다. 이어 양 어깨를 붙잡고서 눈을 마주친다.) 택시 이미 불렀어요. 온다고 하니까 그 전까지 말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말해요. 그냥, 힘들다, 울고 싶다, 그런 거라도 괜찮아.
英理:……. (다시 바짝 가까워진 거리감에 숨을 삼켰다. 머뭇거리며 널 올려다보자 꼭 제가 어린아이처럼, 어쩌면 너와 같은 나이의 내가 이곳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 이래서야, 내가 어리광 부리는 꼴이 되잖아…….
小五郎:그게 뭐 어때서요. 지금 사람 대 사람으로서 걱정하고 있는 거라고요. (네 어깨를 몇 번 고쳐 쥐며 얼굴을 좀 더 가까이에 둔다. 이제 제 얼굴엔 수줍음이나 부끄러움보단 걱정이 가득했다.)
英理:…… 힘들지는 않아. 정확히는 힘들다는 말만큼은 아껴두고 싶어. 정말로 그렇게 느껴질 것만 같으니까……. …… 그렇지만 역시, …… 외로워. …… 사무치게 외롭고, …… 안기고 싶어.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웃고 화내고 싶어. …… 잔뜩 사랑받고 싶어. (말을 잇는 제 자신은 한없이 한없이 작아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초라한 말을 늘어놓으며 피하던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붉어진 고개를 다시 돌렸다.) …… 가까워, 모리 군…….
小五郎:…….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는데 뭘. 무너지면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는 거겠지. 제 시선을 피하는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다시 품에 꽉 안아주었다. 그대로 머리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안고 있음에도 여전히 속이 쓰라리다.) 괜찮아요. 선생님. 안기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랑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도 그럴 게, 선생님이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인걸요. 선생님이 솔직하게 말하면 분명 그렇게 해줄 걸요? 나라도 그럴 거라고요. (…… 그래.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니까.)
英理:……. (입을 꼭 다문 채 네 몸을 마주 끌어안았다. 어쩐지 네 상냥한 대답도 마음 한 구석이 꾹 아파오는 듯하다. 그런데도 가까운 이 온기와 네 심장 박동이 좋아서, 그래서 한참을 네게 안겨 있었다.) …… 모리 군, 만약 혹시라도…… 내가 외로움에 덥석 모리 군에게 안겼다고 오해하면 안 돼. …… 알았지?
小五郎:…… 네. (지금은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서 위로하고 있을 뿐이란 거겠지. 그 말이 맞다. 그저 마지막 욕심으로 네 몸을 더 꽉 안았을 뿐이다.)
英理:…… 아까처럼 오해할까 봐. 나는 외로움에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짓, 안 하니까……. (작게 중얼거렸다. 저보다 훨씬 큼지막한 품에 안기면 절로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 어쩌지. ……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네…….
小五郎:……. (더더욱 모르겠다. 아까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했는데. 그저 남편과 아주 심각한 일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는 게 상책이리라. 네 말에 그럴듯한 대답을 찾고 있는데, 바깥에서 무정한 클랙션 소리가 울렸다.) …… 왔나 봐요. 우산 빌려 드릴게요. 앞까지 배웅도 나가고요.
英理:…….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무색하게 떨어져야 할 때가 왔다. 아마 그렇게 생각한 것도 저뿐이었겠지.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든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몰려드는 무안함에 부끄러움 반 아쉬움 반을 섞어낸 얼굴로 빠르게 네 품에서 빠져나온다.) …… 으, 응……. (그리고는 그런 제 얼굴을 보이기 싫어 빠르게 등을 돌려 짐을 챙기기 위해 거실로 들어갔다. 마음속으로 뒤늦게 후회가 몰아치는 기분이다.)
小五郎:(제게서 벗어나기 전의 네 얼굴을, 확실히 보았다. 뭘까. 왜 이 여자는 자꾸 날 헷갈리게 만드는 걸까. 아니. 아니다. 그만 생각하자. 생각할수록 혼자 이상한 길로 접어들게 된다. 우산꽂이에서 가장 질이 좋은 우산을 꺼내고, 제가 쓸 우산도 아무거나 하나 꺼냈다.)
英理:(역시, 이야기하지 말걸 그랬어.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빨리 나가기나 할걸. 나잇값도 못하고, 울고 어리광까지 부리고. 무엇 하나 후회가 안 되는 게 없다. 쇼핑백을 챙겨들고 한껏 가라앉은 얼굴로 현관에 돌아왔다. 아마 혼자서 나가겠다고 해도 분명 따라나올 것이 분명했기에 말없이 구두를 신는다.) …….
小五郎:(네가 신발을 신자 슬리퍼를 신고 먼저 밖으로 나가 장우산을 폈다. 널찍한 우산이니 둘이 써도 남겠지. 택시 쪽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네가 우산 밑으로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英理:(네게 있어서 저는 그저 부모뻘인데. 그런 아줌마가 나잇값도 못하고 매달리기까지 했단 사실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네 침묵에 입을 꼭 다물고 한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곰인형을 끌어안은 채 우산 밑으로 들어가 걸음을 옮겼다.) …… 음. …… 오늘 고마웠어. 모리 군.
小五郎:…… 태풍이 불었으면 좋겠어요. 피해는 없는데, 우리 집 주변만 아무도 오갈 수 없을 만큼 계속 비가 왔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나갈 수 없게. …… 그런 생각을 했어요. (네 조심스러운 사과에 나직하게 전혀 다른 말을 했다.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 네게 줄 우산을 먼저 넣은 뒤,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비를 맞으면 곤란하거든요.
英理:……. (눈이 커진 얼굴로 네 옆모습을 올려다본다. 그 얼굴은 금세 서글프게 변한 채 눈을 내리깔았다. 붉어져오는 눈시울을 참으며 순순히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네 얼굴을 애써 외면한 채 주먹을 꼭 쥔다.) …… 갈게. …… 잘 자.
小五郎:…… 네. 안녕히 가세요. (마음 같아선 집까지 데려다 주고 싶지만 그건 제게 주어진 역할이 아니라 여겼다. 조심스럽게 택시 문을 닫아주고 택시가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볼 셈으로 우산을 고쳐 썼다.)
축제가 끝난 다음 날. 학교의 공기는 불온합니다.
오전 1교시가 되어도 선생님은 교실에 얼굴을 비추지 않고, 2교시가 되어서야 옆반 담임선생님이 급하게 들어와 이번 수업은 자습이라 말하고 바쁘게 떠납니다.
학생들이 내내 소곤거리고 있습니다. 어제 축제가 끝난 뒤 사고가 있었다는 내용 같네요. 선생님 한 명이 크게 다쳤다고요.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에야 담임 선생님이 반으로 들어섭니다.
교탁을 탁 치고 학생들이 전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하면 다시 입을 엽니다.
얼마나 들었을진 모르겠지만, 앞반 체육 선생님이 근처 강에서 빠진 채 발견되셨다.
아직 회복이 다 되진 않아서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 계실 거야.
이곳저곳 괜히 들를 생각하지 말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도록. 이상.
바로, 수업이 종료됩니다. 평소보다 빠른 하교를 반가워하는 학생도, 불길한 소식에 무서워하는 학생도 보이네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늘은 부활동 또한 없는 것 같습니다.
小五郎:(청소……. 오늘도 하나? 일단 주변 분위기를 살피며 교무실로 향한다.)
英理:아, 모리 군……. (교무실에서 나오려다 너와 마주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어수선한 주위를 둘러보다 교무실의 칸막이 안쪽으로 널 불렀다.) …… 잠깐 이쪽으로 올래?
小五郎:…… 네에. (여기도 정신 없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는 알아서들 다 했겠거니, 싶어 칸막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英理:(자리에서 쇼핑백을 가져와 안쪽으로 들어가서는 네게 그것을 건넨다.) 이, 이거…… 모리 군의 옷. …… 저기, ……. (어제의 일이 생각나자 얼굴을 발그레하게 붉혔다.) …… 어제는 미안해. 여러 가지로…….
小五郎:……. (필사적으로 어제 일을 외면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다시 끄집어내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선을 내리깔고 조용히 쇼핑백을 받았다.) 아녜요. 그, 오늘 청소는……?
英理:…… 안 해도 괜찮아. 전달 사항대로 바로 귀가해야 한다. 오늘은 학교도 곧 문을 닫을 테니까……. (말없이 다른 손에 들린 주스 한 팩도 네 손에 쥐여 준다.)
小五郎:……. (챙겨주지 마세요. 말을 해도 될까. 안 하는 게 낫겠지. 주스를 쇼핑백에 넣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네. 바로 들어갈게요. …… 감사합니다.
英理:……. 아, …… 으응. (무어라 할 말을 찾으려 눈치를 살피다 황급히 네 옷깃을 잡았다.) …… 모리 군도 아까 체육 선생님 소식, 드, 들었니? (난 뭘 묻는 거야. 당연한 것을 물어본 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
小五郎:(몸을 돌려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발목을 잡히자 잠시 휘청였다.) ……. (잠시 네 얼굴을 보았다가, 금세 다시 바닥으로 시선이 꽂힌다.) 들었어요. 제가 욕해서 그렇게 된 걸지도…….
英理:그, 그런 거 아니야. …… 오히려 나 때문일지도 몰라. (저도 똑같이 시선을 떨구며 손끝을 만지작거린다.) 사실 어제, 비가 오기 전에…… 사라졌던 다나카 군을 발견해서 체육 선생님이랑 같이 만났거든. 그런데…… …… 으음.
小五郎:……. (잠자코 네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끼어들어 뭔가 더 물었다간 보채는 어린애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이미 네겐 꼬맹이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英理:……. (커튼을 완전히 치고서 소파에 가까이 다가갔다.) …… 잠깐 앉을래? …… 그,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리 군한테만 해 주는 거니까……. 비밀이야. 알았지?
小五郎:알겠습니다. (왜 나한테만? 어젠 아무 말도 없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파 가장자리에 앉았다.)
英理:……. (맞은편과 네 옆자리를 번갈아보다 슬쩍 옆자리에 앉는다.) …… 어제 체육 선생님께서 본인이 직접 다나카 군을 데려다 주겠다고 하셨어. 그리고 헤어지고 모리 군을 만났거든. 그리고 오늘 아침, 거리를 지나다니던 사람이 강가에서 떠내려온 선생님을 발견한 거야.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저체온증으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어. 얼마나 오래 물에 빠져 있었는지 체력이 크게 떨어져 당분간 입원해야 한다고…… 그러더라.
小五郎:(허벅지를 최대한 모아서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려고 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숨을 쉬는 소리도, 은은한 화장품 냄새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발끝만 바라보며 네 이야기를 듣고 나자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내쉬었다.) …… 중간에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네요. 그게 선생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요……. 셋이 있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음. (에잇, 역시 서투른 위로 따위는 하는 게 아니다.) …… 다나카 선배는?
英理:…… 그래도 그때 내가 같이 따라가거나 했더라면……. (시선을 내리깔고 제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다나카 군과는 그 이후에 연락이 닿지 않아. 병원에서 잠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체육 선생님이 말하기론…… 강가에서 다나카 군에게 달려드는 큰 개를 막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가 그대로 다리 너머로 떨어지셨다고 해. 다나카 군은 그 자리에서 도망쳤대.
小五郎:그럼 선생님도 강에 빠졌겠죠. (눈에 선하다. 이 사람은 생각보다 덜렁댄다. 뒤로도 이어지는 말을 얌전히 듣다가, 개라는 말에 눈이 커다랗게 커진다. 저도 모르게 네 팔뚝을 덥석 잡았다.) …… 개, 개요? 무슨 개?!
英理:(화들짝 놀라서는 저도 똑같이 눈이 커진다. 제 팔을 잡은 손을 힐끔 보며 발그레한 얼굴을 살그머니 돌린다.) …… 으응, 그, 글쎄……. …… 혹시 몰라서 지금부터 교직원들이 강가 근처를 돌면서 수색할 거라고 하더구나.
小五郎:개를, 개를 조심하라고……. (점쟁이가 검은 개를 조심하라고 했던 일과 그 전에 쇼핑하던 날 개를 봤던 일을 더듬더듬 네게 말해주었다.) 진짜였냐…….
英理:…… 기억나. 그때, 모리 군이……. 멍멍이가 있다고 하던 때였지. (읊조리듯 작게 중얼거리고서 네 손을 겹쳐 잡고 고개를 기울여 눈을 마주했다.)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꼭 집에 바로 돌아가야 해, 알겠지?
小五郎: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겹쳐진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선생님도, 그, 순찰 돌지 마세요. 혹시 모르잖아요.
英理:선생님은 선생님이잖니. 학생들이 위험하지 않게 예방하는 걸 선생님이 아니면 누가 하겠어. (괜찮다는 듯 잔잔히 웃어보인다.) 그럼 이만…… 돌아갈까? 너무 붙잡아 둬서 미안해.
小五郎:…… 순 제멋대로야. (이쪽이 부탁하는 일은 그렇게 쉽게 밀어내도 되는 거야? 왠지 성질이 나 손을 거칠게 빼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하세요.
英理:아, ……. (네 얼굴을 올려다보며 금세 서운함이 올라오는 표정을 했다. 네가 빼낸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이 보이지 않게끔 고개를 숙였다.) …… 응. 잘 가, …… 모리 군.
小五郎:……. (몰라. 이상했던 건 어제 뿐이야. 어제가 이상했던 거라고. 네 표정을 잊으려 몸을 휙 돌리고서 빠른 걸음으로 교무실을 벗어났다.)
평소보다 이른 하굣길은 낯선 느낌입니다. 가벼운 일탈을 하는 것 같은 기분.
착실히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대놓고 놀러가자며 떠드는 학생들 또한 보입니다.
小五郎:(잠시 강가에 갈까 고민하다 생각을 고이 접는다. 유치해. 만화책이나 사러 갈까. 발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걸었다.)
혼자가 된 하굣길. 돌연 누군가가 눈 앞을 달려갑니다.
나카미치네요. 그는 당신을 보면 다급하게 외칩니다.
나카미치:야, 모리! 저쪽으로 학생이 떠내려가는 걸 봤어!
小五郎:XX, 되는 게 없네! (나카미치가 가리킨 방향을 흘끔 보고 전력으로 뛰었다.)
코고로는 나카미치와 함께 흐르는 물가를 계속 달립니다.
달리고, 달려서, 주택가에서 벗어나 물이 고이는 지점으로 옵니다.
다리에 올라 아래를 살펴보면…… 정말 저 멀리 누군가가 둥둥 떠 있습니다.
교복을 입고 있는 것도 같은데, 얼굴이 물에 잠겨있어 누구인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小五郎:너는 경찰 불러! (나카미치에게 가방을 던지고 물가로 뛰어든다.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구해야지.)
그때, 등 뒤에서 “모리 군!” 하고 다급히 외치는 키사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풍덩! 수면과 전신이 부딪히는 강렬한 충격. HP를 1 감소합니다.
몸이 수면 아래로 빠져듭니다. 물 속은 기묘할 정도로 어둡습니다. 주변이 가스로 뒤덮인 것만 같아요.
하늘처럼 흘러가는 색채는 마치 우주를 연상시키지만, 부유감도 자유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강가 주변으로 먹물이 퍼지듯 검은 무언가가 뻗어나갑니다. 수면이 검은 광택으로 일렁이고, 수많은 녹색 눈들이 생겨났다 사라집니다.
반투명한 물결이 당신의 다리를 붙잡고 점점 안개 한가운데로 끌어당깁니다.
小五郎:
민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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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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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25,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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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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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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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
당신은 빠져나가면 빠져나갈수록 색채에게 붙잡혀 몸이 끌어당겨집니다.
小五郎:(먼저 빠졌던 사람은……? 온통 생소한 감각 뿐이다. 고개를 이리저리 휙휙 움직이며 물에 빠져 있었던 학생을 찾았다. 이게 대체…….)
그때, 당신의 시야에 멀지 않은 곳, 빛나는 무언가가 보입니다.
小五郎:(빛나는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홀렸다기보단,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보석입니다. 당신의 손 근처에서 빙빙 돌고 있습니다.
小五郎:뭐야……? (팔을 휘적휘적 흔들어 보석을 움켜쥐어본다.)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순식간에 수많은 시선이 당신에게 꽂혀듭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누군가의 손이 당신의 눈을 가립니다.
그대로 당신을 끌어당겨 머리를 품에 안습니다. 키사키 선생님의 손이에요.
小五郎:……. (수많은 눈동자가 저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네 얼굴을 보고서도 뻣뻣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서 보석을 쥔 손에 힘을 꽉 준다.)
그는 당신을 안고서 단숨에 수면을 향해 도약합니다. 낮은 진동이 귓가에서 울립니다.
시야를 가리려는 듯 손으로 눈을 감싸고 있지만 원한다면 수면의 주위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小五郎:(네 손목을 잡아내리고 주변을 살펴본다. 아직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바닥에서 악취와 검은 광택을 내는 진흙이 점점 더 크게 몸집을 불리며 안개를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그것은 포식에 집중하고 있어 이쪽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습니다.
키사키 선생님과 당신은 무사히 근처의 뭍까지 헤엄쳐 나옵니다.
英理:하아, …… 하아. (숨을 몰아쉬며 육지에 몸이 엎어지더니 딛은 팔을 잘게 떨었다.) …… 괜찮니? 모리 군…….
小五郎:……. (주머니에 보석을 넣고서 곧바로 네게 찰싹 달라붙었다. 물을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네 얼굴과 몸에 묻은 물기를 아무리 훔쳐내도 제 몸에 묻은 물기가 옮겨가 점점 표정이 무너진다.) 왜, 대체 왜…….
英理:……. (숨을 잔뜩 몰아쉬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떨리는 손을 네게 뻗어 네 손등 위를 쥔다.) …… 놀랐어……. 갑자기 모리 군이 강으로 뛰어드는 걸 봐 버려서……. 나도 모르게…….
小五郎:…… 사람이 물에 빠져 있었어요. 나카미치가 알려 줘서, 그래서……. (여전히 네게 묻은 물기를 몇 번이고 훔쳐냈다. 여긴 수건도 뭣도 없는데.)
英理:(네 손길에 얼굴을 작게 부비며 물기를 훔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 아무도 없었어. 나카미치 군도, 물에 빠진 사람도…….
小五郎:…… 에? (저도 모르게 얼이 빠진 목소리를 냈다. 그럴 리가. 분명 나카미치가……. 네 얼굴만 만지작거리며 울 것 같은 얼굴로 몸을 떨었다.) 거짓말…….
英理:……. (다른 한 손을 떨어 저도 똑같이 네 뺨을 잘게 쓰다듬어 주며 눈썹을 늘어뜨린 채 웃어 보인다.) …… 다행이다. 모리 군을 발견한 게 선생님이라서……. 발견할 수 있었어서. …… 다행이야.
小五郎:바보 멍청이 선생님. 사람을 불렀어야죠. (물도 무서워하면서, 하마터면 나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네 웃는 얼굴을 보자 널 품에 꽉 안고 눈을 감았다. 이상한 날이, 끝나지 않았다.)
英理:(순간 눈이 커지다, 이내 시야가 희뿌옇게 변했다. 작게 훌쩍거리고는 네 몸을 마주 끌어안은 채 얼굴을 묻었다.) …… 바보 멍청이 선생님이라도, 싫어하지 않을 거야?
小五郎:…… 좋아해. 좋아한다고요. 어제도 들었잖아. 싫어할 수 없다는 걸 알잖아……. (말은 거칠게 나갔지만 네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부드럽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데, 욕망은 점점 커져간다.)
英理:…… 나는. 나는 완전히 모리 군한테 미움받았다고 생각해서……. (손의 떨림을 멈추려 네 젖은 옷깃을 붙잡아 쥐었다.) 모리 군이 나를 피하게 될까 봐 걱정했어…….
小五郎:…… 피하는 건,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다가가면 안 되니까……. (다가가선 안 될 사람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았으니까. 비참한 기분에 널 안고 있던 팔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英理:……. (말없이 그 품에 가만히 몸을 기대고 있다 고개를 기울여 네 옆모습을 올려다본다.) …… 선생님이 미안해, 모리 군……. 미안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모리 군을 한껏 혼란스럽게만 만들었지…….
小五郎:…… 아니에요. 내가 혼자 생각만 하면 됐을 일인데, 괜히 말해서 그런 거잖아요. 선생님이 밀어내는 게 당연해요. …… 저, 챙겨주지 마세요. (시야가 탁하다. 슬금슬금 네게서 물러나 가방을 찾았다.) …… 선생님 도와줄 사람 부를게요…….
英理:…… 모리 군……. (한 발짝 다가가면 한 발짝 물러나고,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기에 그저 뿌연 시야를 들어올렸다. 눈물이 툭 한 방울 떨어지면 허전해진 제 손을 꼭 주먹쥐었다.)
小五郎:저도 앞으로 티내는 일 없을 거예요. 없는 사람처럼 취급해도 괜찮아요, 저는……. (그게 차라리 편할 것이다. 너를 등지고 몸을 웅크린 채 가방만 끌어안았다.)
英理:…… 싫어, …… 모리 군. 그런 건 싫어……. 모리 군은 할 수 있어? (보이지 않는 네 뒤로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서 손을 뻗어 네 소매를 꾹 잡아당긴다.) 나를, 없는 사람처럼…… …… 생각할 수 있어?
小五郎:…… 안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요. (스스로 생각해도 차가운 말이다. 결국 다 나 때문이라니까? 내가 멋대로 좋아해서, 멋대로 선생님을 흔들어서 이렇게 된 거다. 네 손길에도 아랑곳않고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英理:…….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기가 섞인 숨을 토해내 급하게 손등으로 제 입술을 눌렀다. 어깨를 떨다 소매를 잡은 네 손을 천천히 놓았다.) …… 내가, 모리 군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자조적인 웃음을 작게 터뜨리고서 제 눈물을 닦아낸다.) …… 모리 군, 아까 강에서 찾은 거……. …… 선생님에게 줄래?
小五郎:다 내가 잘못한 거예요. 그냥 남자애 하나가 맘대로 선생님을 좋아했다가 포기하는 거라고요. 선생님은 불쌍하게 휘말린 거야. (끝내 그 말까지 해버리고선 어깨를 들썩였다. 눈가를 손등으로 마구 훔치고 네 말에 주머니에서 보석을 꺼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바닥에 가만히 내려놓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춥다.)
英理:……. (보석을 주워들고서 너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 미안해. 괴로운 기억들만……. (말끝을 흐리고는 저도 네게서 등을 돌렸다.) …… 모리 군, 하나만 기억해 줘. 나는 모리 군을 만나서 기뻤어. 엄청, 엄청 기뻤어……. …… 조심히 가, 모리 군.
小五郎:……. (기뻤으면, 뭐가 어떻게 변하는 걸까. 오히려 좋아하는 마음만 커져간다. 사실 이대로 서서 버틸 힘도 없었다. 그렇다고 너를 먼저 보낼 수도 없지 않은가. 네가 떠날 거라는 걸 안다. 뭔지 몰라도 저 보석을 찾았으니 그 순간이 곧이라고도 느껴진다. 모래주머니라도 매단 듯 무거운 걸음을 애써 옮길 때마다 머릿속이 웅웅 울린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뜹니다. 평소처럼 몸을 일으키려 하면…… 어라?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침대를 짚은 팔이 쭉 미끄러져 아래로 구릅니다.
온 몸에서 열이 오르고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찰은 받았을 텐데 회복이 다 안 된 걸까요?
어머니가 당신이 구르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부축해 침대에 눕힙니다.
오늘 학교는 쉬는 게 좋겠다며 서둘러 물수건을 가져오네요.
小五郎:……. (그냥 이대로 아프다 죽어버리면? 불덩이 같은 몸으로 웅크리니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눈을 질끈 감았다.)
당신에게 병문안을 온 키사키 선생님의 꿈을요.
꿈에서도 당신은 여전히 아픈 탓에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합니다.
분명 한낮일 텐데도 창밖은 어둡고 공기는 탁합니다.
얼마 전 교실에서 봤던 영화 속 풍경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당신의 방 벽지 위로 갈라진 콘크리트 벽이 흐릿하게 겹쳐집니다.
당신이 잠든 침대 곁에 앉는 키사키 선생님은 어쩐지 당신이 알던 것보다도 훨씬 앳된 인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도 당신과 가깝고 손에 잡힐 듯한 거리. 키사키 선생님이 입을 엽니다.
英理:전에 말했던 그 일 말이야. 가기로 했어.
별 수 없겠지. 이대로 있으면 당신도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저도 곧 죽을 테니까.
여전히 몸은 무겁고, 입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키사키 선생님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대화를 계속합니다.
英理: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대요. 돌아올 때는 어차피 지금 여기라고 하긴 하는데…….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말 그대로 무언가를 가져가는 듯, 그 위로 손을 한 번 쥐어 들고는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 댑니다.
그러면 문득, 당신에게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다거나, 뒷일은 부탁한다든가, 하다못해 몸 건강히 돌아오라는 말이라도.
그러나 그 중 무엇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키사키 선생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英理:오래 자는구나. …… 안녕. 이제 갈게.
小五郎:
건강
기준치: |
70/35/14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지금이라면 힘을 쥐어짜, 한 마디 정도는 건넬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키사키 선생님은 발을 멈춰, 잠시 당신을 돌아봅니다.
긴 꿈에서 깨면, 정말 오래도 잤는지 어느덧 아침입니다.
몸이 개운합니다. 체온을 재 보면 열은 전부 날아가 있습니다.
마치 꿈 속 선생님이 손짓과 함께 열을 전부 가져간 것만 같아요.
몸이 전부 회복되었으므로 이제 학교에 갈 준비를 해야겠죠.
小五郎:……. (가기 싫다. 오늘 영어 수업이 있었나. 모르겠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등교 준비를 했다.)
교복을 입고, 익숙한 가방을 듭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평소와 같은 여름 하늘이 보입니다.
꿈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물감을 머금은 듯한 생생한 푸른색.
푸른 강가와 강에 뛰어들던 선생님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물이 무섭다고 했는데, 그 이후 선생님은 괜찮았던 걸까…….
학교에 등교하면, 뒤로는 언제나와 같은 무료한 수업 시간이 지나갑니다.
학생들은 그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듯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수업중인데도 매점으로 향하는 학생 또한 보입니다.
小五郎:……. (선생님도 감기에 걸렸나. 평소와 다름 없이 창밖만 멍하니 바라본다.)
그렇게 모든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키사키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小五郎:(입원? 아니면 병가? ……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건 나니까 뭘 어떻게 할 자격도 없겠지. 청소는 어떻게 되는 걸까. 혼자서라도 해놓는 게 나은가. 참견인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일단 가방을 챙겼다. 교무실로 가도 되나……. 지나치지, 역시.)
小五郎:(…… 청소, 다 끝내두면 좋아할지도.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며 교무실로 향한다.)
체육 선생님: (네가 교무실에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모리 군 아니냐. 수영장 청소 때문에 왔어?
小五郎:…… 네. 그런데요. (잘도 살아났네. 껄렁한 투로 대꾸하며 교무실 안을 둘러본다.) 키사키 선생님은요?
체육 선생님: 으응? 너 키사키 선생님 소식 못 들었냐?
체육 선생님: …… 어제부로 선생님은 학교를 퇴직하셨어. 너무 갑자기라, 변변찮은 송별회조차 못해드리고……. 고향에 일이 생겼다고 하시더라고. 보고 싶네…….
체육 선생님: 아무튼 그렇게 돼서 오늘은 수영장 청소 안 해도 돼. 일단 돌아가라.
小五郎:…… 네. (어안이 벙벙해진 채 교무실에서 겨우 빠져나온다. 퇴직? 어제? …… 내가 그런 말을 해서?)
…… 그 순간,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희미한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키사키 선생님의 로켓 펜던트입니다. 이게 왜 여기에?
로켓 펜던트를 손에 쥐면, 머리에서 자연스레 어느 장소가 떠오릅니다.
小五郎:벤치……. (펜던트를 당황한 얼굴로 바라본다.)
어쩌면 아직 거기에 있지 않을까? 있다면 잡을 수 있는게 아닐까?
小五郎:……. (저도 모르게 발이 움직인다. 아직 있다면, 적어도 잘 가라는 말 정도는 하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고 싶어.)
小五郎:
민첩
기준치: |
75/37/15 |
굴림: |
98 |
판정결과: |
실패 |
복도를 달리다 다른 사람과 부딪힌 덕분에, 바꾸기 위해 근처에 기대어 세워둔 새 유리창에 몸이 충돌합니다.
곁에서 지나가던 나카미치가 놀라 당신과 유리를 번갈아 봅니다.
小五郎:빚 갚아라! (흥! 나카미치의 등을 퍽 갈긴다.)
뒤에서 노성이 들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립니다.
“야! 나카미치! 너 이거 깼어!? 이리 와!”
지나가던 선생님이 높이는 목소리 또한 들립니다. 그러나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의 말대로, 어쨌건 한 번은 달려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小五郎:(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무시하고, 학교를 벗어나 그저 그날의 벤치를 향해 뛰었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푸른 하늘,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몸은 가볍고 머리는 상쾌합니다.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땀방울이 떨어져도, 가벼운 전능감이 온몸으로 뻗어나갑니다.
만약 지금 그를 잡는다 해도 아마 그는 떠납니다.
내일이면 이곳에서 더 볼 수 없게 되겠죠. 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직 당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곁에는 작은 짐가방.
앉아있던 곳에 자신의 가방을 놓아두고, 아무것도 가져갈 것은 없다는 듯 하늘을 바라보며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깁니다.
小五郎:(이름을 부를 여유따위 없다. 그저 네 뒷모습을 쫓아 뛰어가 어깨를 잡아챈다. 숨소리가 거칠다.) …….
英理:(뒤를 돌아보고 네 얼굴을 발견하자 눈이 커졌다.) 모, 모리 군……. 여기는 어떻게…….
小五郎:멋대로 가는 게 어딨어요. (폐가 조일 만큼 숨이 가쁘다. 겨우 네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없는 사람 취급하라 했지만 남들이랑 같이 작별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잖아.
英理:……. (눈썹을 늘어뜨리며 힘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미안해. …… 이대로 사라지는 쪽이 모리 군에게 폐도 끼치지 않고 나을 것 같아서…….
小五郎:사과하지 마세요. 내가 찾았으니까, 그러니까 됐어. (어깨를 너무 세게 쥐었나 싶어 뒤늦게 버벅이며 손을 거둔다.) …… 어디로 가는 거예요?
英理:…… 펜던트. (펜던트가 사라진 제 목덜미를 내려다본다.) …… 펜던트를 준 그 사람한테……. …… 사실 돌아가는 게 조금 망설여지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말이야. …….
小五郎:바보 멍청이!!!! (어쩌면 그 꿈은 네 과거였겠지. 어떻게든 네가 말하고 싶었던 일이었을 수도 있겠지. 제 주머니에서 펜던트를 꺼내 네 손에 거칠게 쥐여준다.) 기다리고 있을 거야. 무조건 당신만 기다릴 거야. 남자는 그렇게 생각 안 하면 이런 거 안 줘!!
英理:…….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울음을 참고 네 얼굴을 올려다본다.) …… 정말? ……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어도? …… 이런 아줌마가 되어 버렸는데도, 그런데도 날 반겨 줄까?
小五郎:그 사람도 아저씨가 됐겠지. 왜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는 건데요. 한심한 아저씨가 되어 있으면 그냥 버리고 나한테 다시 오면 되잖아. 나도, …… 나도 기다릴 거라고요. 도망칠 곳도 있는데 무서워할 이유 있어요?!
英理:……. (손에 쥔 펜던트를 양손으로 꼭 붙잡고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 그는 아주 오래 잠들어 있었거든. …… 그래도, …… 다른 사람도 아닌 모리 군이 해 주는 말이라면 틀림없이 그렇겠지? …… 그 사람과 모리 군은 우스울 정도로 똑같은걸. (작게 웃는 소리를 내며 제 눈꼬리를 손끝으로 훔쳤다.)
小五郎:…… 당신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한 번도 안 쉬고 뛰어왔어. 학생보다 못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다시 만나면, 복받은 줄 알라고 해요. 내가 전부 포기하고 그 사람한테 보내주는 거야.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요. (제 성질을 못 이겨 머리카락을 마구 흩뜨렸다.) 가서 말해요. 엄청 엄청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다 말하고 개같이 굴면 뺨이라도 한 대 치면 되지 뭐!
英理:후후. …… 역시, 내가 아는 코고로구나, 너는. (붉어진 눈시울로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네 양뺨을 감싸잡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 나 때문에 고생 많이 시켜서 미안해. …… 유리창, 깬 거 네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었어. …… 그런데도…… 후후, 나는 선생님 자격이 없네. …… 돌아갈 때, 모두의 기억을 지울 거야. 모리 군의 기억도……. …… 그치만 한편으로는 지우기 싫다는 생각도 드는걸.
小五郎:……. (뭐라고 하는 거야. 당신이 아는 내가, 당연히 나인 거잖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이어지는 말에 네 손목을 감싸쥐었다.) …… 괜찮아요. 뭐든 다 어떻게 된 거든 상관 없어요. 괜찮다구요. …… 안 지우면 안 돼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그냥 혼자 생각할게요. 절대 비밀로 할 테니까……. 그런 건 싫어…….
英理:……. (마음이 약해지자 절로 걱정스러운 낯빛이 되었다. 애틋하게 엄지로 네 뺨을 살살 쓰다듬어 주면서도 시선을 이리저리 굴린다.) …… 그래도 괜찮아? …… 나는 모리 군에게 안 좋은 기억들만 잔뜩 남긴 것 같고, …… 모리 군을 힘들게 만들고……. …… 정말로, 모리 군에게 내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해서…….
小五郎:…… 나쁜 기억 같은 거 없었어요. 전부 내가 멋대로 굴어서 그런 거라고 이미 말했잖아요.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 욕심이에요?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시무룩해져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다. 끝이 오리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이런 끝을 바란 것도 아니다. 나는 욕심이 많다. 그래서 또 욕심을 부리고 있다.)
英理:…… 학생에게 잔뜩 어리광 부리고, 잔뜩 욕심을 부렸던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할 리가 없잖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다가, 네 시선이 떨어지는 곳으로 로켓 펜던트를 살짝 열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지금에 와서도 작은 손짓마저 기억이 생생한 네 모습을.) …… 이번에도, …… 네 처음이 나라서 다행이야. 코고로. …… 괜찮으면……. …… 날 잊지 않고 기억해 줄래?
小五郎:…… 이게, 뭐예요? (나잖아. 펜던트 안에서 제 모습이 보이자 시선이 떨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떨떨함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가, 어색하게 끄덕인다.) …… 평생 안 잊을게요. 잊고 싶어도 못 잊어.
英理:……. (펜던트를 목에 걸고서 기쁜 듯 환하게 웃었다.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며 네 한 손을 부드럽게 양손으로 감싸쥔다.) …… 마지막이니 비밀 하나 알려 줄게.
小五郎:…….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맞닿은 손이 지나치게 따뜻해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저 조용히, 네 말을 기다렸다.)
英理:…… 사실은 눈앞의 코고로에게 흔들릴 뻔했어. 많이. 이건 그 사람한테는 비밀이야. (웃는 낯을 순간 네게 가까이하더니, 까치발을 들어 네 입술 근처에 제 입을 맞췄다.) …… 미안해, 고마워. …… 그리고 엄청 엄청 좋아해. 코고로. 건강해야 해.
小五郎:…… 바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거지 흔들릴 뻔한 건 뭐야. 분하다. 질투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게 돼서 분한데, 이건 더 분하다고.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여 네 이마에 꾸욱 입을 맞춘다.) …… 이건 그 사람한테 비밀 아니니까 꼭 전해요. …… 잘 지내요, 선생님. 보고 싶을 거예요.
英理:…… 응. 코고로. …… 다시 만나자. 반드시…….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 품을 한 번 꽉 끌어안았다가, 한 발짝 떨어진다.)
에리가 품에서 떨어지고, 순간 세게 바람이 불어옵니다. 동시에 눈을 깜빡이면 말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져 당신은 홀로 남습니다.
小五郎:…… 가기 싫다고 한 번만 말하지. (홀로 남아 하늘만 올려다본다.)
코고로가 마음 한 켠에서 예감했던 대로 에리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모두에게서 잊혀집니다.
이제 그 누구도 이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가르쳤던 키사키 에리에 대해서 떠올려내지 못 합니다.
에리의 자리를 메꾸고 들어온 선생님은 완전히 낯선 다른 인물로, 코고로를 포함한 학생 몇을 뽑아 마지막 남았던 수영장 물청소를 부탁합니다.
수영장 청소에 동원된 아이들은 저마다 야유를 보내거나 작은 소리로 불만을 내뱉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물청소만 하면 되는데 뭐가 불만이냐며 학생들의 머리에 가볍게 출석부를 가져다 댑니다.
그러고보면 지난 일주일, 앞서 수영장 청소를 했던 당신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요?
끼익, 수도를 돌리는 소리. 머지 않아 호스 끝에서 힘차게 물이 터져나옵니다.
호스를 쥔 아이들은 꺄악거리며 비어있는 풀장의 타일 위를 위험하게 달리거나 밀대를 밀기 시작합니다.
푸른 하늘로 깨끗한 물방울이 튀고, 작은 무지개가 그려집니다.
바람과 함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봅니다.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던 그날. 손을 뻗어 상대를 붙잡은 한 순간. 낯익은 얼굴, 목소리. 웃음소리.
밝은 함성이 오고갑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리를 뒤로하고 당신은 떨어진 비품을 가지러 몸을 돌려 교사를 걷습니다.
탁, 탁, 탁. 어떤 발소리가 들립니다. 점점 가까워집니다.
스쳐 지나가나 했지만 정확히 당신의 뒤에서 멈춥니다. 누군가 당신의 팔을 잡아챕니다.
익숙한 암갈색 머리칼, 귀에 익은 목소리. 당신에게 한결같이 달려오기 위해 거칠어진 호흡.
시간은 물과 같아. 잡을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지.
서투르게 발을 떼면 순식간에 휩쓸려 흘러갈 뿐.
그러니 당신은 지면을 박차고, 자신의 길을 따라 달립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남은 인생이 모조리 바뀌는 그 순간. 마치 운명처럼.
키사키 에리의 세계는 마침내 다 모인 고대종의 수정을 이용해 재건이 시작됩니다.
무사히 돌아온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살아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몸 어딘가가 기이하게 변질되었거나 혼자 나이를 너무나 많이 먹어버리거나 다양한 후유증을 앓는 등,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일에 몸을 던졌던 수 많은 사람들은 후원을 받아, 얼마든지 원하는 식으로 신분을 바꾸거나 지원을 받아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에리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했던 대로…… 신분을 완전히 감춘 뒤 먼 곳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지난 주 겨우 운행을 시작한 정기 선박을 타고 먼 대륙으로 떠날 것입니다. 그럴 예정이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햇빛 한 줄기가 이쪽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면 언젠가의 하늘이 떠오릅니다.
에리는 밖으로 나섭니다. 이 시각이라면 이미 배가 출항했겠죠.
그렇다면…… 가야 할 곳은 한 곳밖에 남지 않습니다.
사람이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기술에 손을 댄 대가도, 분명 언젠가 돌아옵니다.
저 멀리 모리 코고로가 입원한 시민 병원의 간판이 보입니다.
키사키 에리, 생환. 본인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에리가 고대종의 수정을 회수해 갔으므로 색채는 쇼고스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쇼고스에게 잡아먹혔습니다. 따라서 엉망이 되었던 강가의 생태도 원래대로 돌아오며 생명력을 흡수당해 기운이 없었던 사람들도 점차 회복합니다.
지역에 남은 쇼고스는 아마 당분간 이 마을을 배회하겠지만, 운이 좋다면 마주치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