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임에도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가 당신을 반깁니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마침내 찬란한 휴가의 스타트 라인까지 당도했네요!
9시간의 비행은 무척이나 고되었습니다. 편안한 1등석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지루하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자고, 마시고, 영화나 좀 보다가, 애리랑 떠들고…… 다시 자고!
물론 여행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푸른 하늘에 그려진 설렘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요.
공항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리조트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따스한 햇살 냄새와 꽃 향기가 우리를 환영해 줍니다.
오늘의 일정은…… 그러게요, 일단 제일 먼저 리조트에 짐을 풀어야겠지요?
오늘은 이미 시각이 늦었으니 리조트에서 쉬다가 내일부터 생각해 봐요.
모처럼 휴가를 왔으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휴식하도록 합시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내일 모레 예약한 프라이빗 요트 투어입니다!
둘이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누워서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니…… 로맨틱을 시간 위에 그려낸 풍경이 될 거예요.
여행의 보금자리가 되어 줄 리조트는 입구에서부터 그 명성만큼이나 휘황찬란합니다.
노애리:꺄아~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이는데요? 최고급 리조트 이름 값 하네……. (끌던 캐리어를 멈추고 위를 올려다본다.)
유명한:벽을 돈으로 쌓았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란히 서서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곳에서 놀면 집에 돌아가기 싫어서 어쩐대.
노애리:벌써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끝내주게 놀 생각부터 해야지. (네 어깨를 툭툭 친다.) 자~ 들어가요!
유명한:끝내주게 놀 생각을 하려 해도 네 걱정부터 되는데. (예에. 느슨하게 대답하며 다시 캐리어를 질질 끌고 리조트 입구로 들어선다.)
새하얀 대리석 바닥에 드넓은 천장, 벽면을 가득 메운 검은색 프레임의 통 유리창 너머로는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 로비를 가득 채웁니다.
당신이 리조트에 들어서면, 전문 버틀러가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서 짐을 들어줍니다.
직원: 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체크인을 도와드릴 테니 잠시 카운터로 오시겠어요?
에리는 그를 따라 들어가 예약 확인과 체크인을 하러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
그동안 당신은 한숨 돌리며 앉아서 우리가 4일동안 머물 리조트의 분위기를 살펴도 좋겠죠.
유명한:살아생전 이런 곳을 다 오고……. (앉기는 무슨, 통유리벽 앞에 찰싹 붙어 바깥을 쳐다본다…….)
유명한:(평화가 익숙지 않은 형사……. 뒤늦게 리조트 내부를 흘끔거리며 어색한 티를 팍팍 낸다.)
리셉션 카운터 한 편에 [인어 조각상]이 놓여 있습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네요.
유명한:(저 조각상, 눈 뜨고 볼 수 있는 수준인가? 실눈을 뜨고 흘깃 본다.)
인어 조각상은 제법 우람한 형상입니다. 동화나 일반적인 미디어에서 그리는 인어보다 전투적이고 강인한 형상을 띄고 있는 게 특징적이네요.
유명한:(무서워서 눈 뜨고 못 보겠네……. 인어의 근육을 손으로 훑어보려다가 소심하게 손을 거둔다. 엄청나게 비쌀 거야. 응.)
직원: 이 조각상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네 곁에 다가와 미소를 띤 채 묻는다.)
유명한:에……. 뭔가 좀, 그, 예에……. (머쓱하게 직원을 바라보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직원: 인어는 뭐랄까, …… 이 지방에만 있는 전설이거든요.
직원: ‘인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두려운 형상을 하고 있지만 무서워할 것 없다. 그들은 당신이 웃어 준다면 함께 웃어 줄 것이며, 당신이 화를 낸다면 그들도 당신에게 분노하리라. 그들은 지적이고, 예술적이며, 온화하다.’
쭉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라고 하더군요.
유명한:……. (인간과 인어가 교류한 이야기라도 전해지나? 퍽 진지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신기하군요. 혹여 만난다면 화는 안 내야겠습니다. 하하.
직원: 체크인을 끝내신 듯하니, 웰컴 드링크를 방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히비스커스 아이스티, 자스민 아이스티, 그리고 커피나 칵테일도 준비되어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유명한:엥? (어느새 돌아온 너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다 거기서 거기겠지?) …… 칵테일로?
노애리:그럼 나도 칵테일로 할래요. 두 개 다 도수 높은 걸로 주세요! (멋대로 주문하고는 놔뒀던 캐리어를 다시 집어들었다.) 뭐 보고 있었어요?
유명한:야, 뭔 도수 높은 거야? 낮은 거로 주십쇼. (네 손에서 캐리어를 탁 빼앗아 잡는다.) 저기 인어 조각상. 뭔 근육이 나보다 많아…….
노애리:전 형사가 아니니까 싸움 같은 거 못해도 되잖아요!
유명한:형사보다 더 위험한 짓만 쏙쏙 하고 다녔으면서 양심이 있냐 없냐?!
노애리:그거랑~ 이거랑은 별개구요. (딴청을 피우며 먼저 종종걸음으로 직원을 따라가 버린다.)
유명한:(하여간 질 것 같으면 말부터 돌려요. 느릿하게 뒤따라 걸으며 혀를 찬다.)
음료를 선택하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리조트로 향합니다.
우리 리조트는 그야말로 환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겠네요!
다른 객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조용한 독채 객실은 겉면이 전부 우드로 칠해져 있어 한층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거기다가 무려 복층형이라구요!
음료가 도착할 동안 리조트의 내부를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노애리:(신발을 벗고 호다닥 먼저 안으로 들어가 마냥 행복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닌다.) 아저씨, 여기 진짜 짱이에요! 완전 내가 원했던 느낌 그대로야.
유명한:(네가 팽개친 신발을 보다가 나란히 놓고 저도 신발을 벗었다. 원래 이런 거 하는 성격이 아닌데…….) 얌마, 뭐 부숴먹으면 다 변상해야 해.
노애리:뭐, 어때요. 돈을 얼마나 냈는데 좀 마음대로 해도 되죠! (냉장고도 열어보고 여기저기 다 열어보고 다닌다.)
유명한:그래도 정도라는 게……. (네 뒤를 졸졸 쫓아 열어젖힌 문짝들을 하나하나 닫고 다닌다.)
노애리:아저씨, 살면서 이런 곳 와본 적 있어요!? 왜 이렇게 텐션이 낮아요. 재미없게. (더우니까…… 에어컨부터 켜야겠다. 리모컨으로 하나하나 꾹꾹 눌러본다.)
유명한:형사가 그럴 일이 뭐가 있겠어. (솔직히 말하자면 텐션이 올라도 네가 전부 죽여버리는 기분이다. 감당이 불가능했다. 문 열기 릴레이가 끝나자 소파에 털썩 앉아 늘어진다.) 죽겠네…….
노애리:글쎄 왜 벌써부터 지치냐구요? 이제 도착했잖아요? 이래서 아저씨는……. (내부 온도를 시원하게 맞추고서 소파 위로 무릎을 꿇고 곁에 딱 달라붙어 앉아 네 허벅지를 짚었다.) 별로예요? 마음에 안 들어?
유명한:너도 고소공포증 있는데 비행기 타 봐. (갑자기 끔찍했던 비행이 떠올라 울상을 지었다.) 젊어서 왔어도 이 꼴이었을 텐데 뭘……. 그렇게 좋냐?
노애리:글쎄 제가 잠 좀 자면 금방 올 거라고 했잖아요. 자기가 자꾸 힐끔힐끔 아래 쳐다보고 그랬으면서. 그래도 우리 되게 빨리 온 편이거든요? (저도 괜히 똑같이 축 늘어진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 나만 좋은 거예요? …… 이왕 아저씨랑 오는 거니까 전부 다 좋은 것들로 했는데…….
유명한:쉴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야. 아무리 옆에서 보지 말라고 해도 보게 된다고……. (늘어지게 한숨을 쉬고 옆에 찰싹 붙은 네 허리를 안으며 뺨에 입술을 누른다.) 당연히 좋지. 하나같이 무서울 만큼 휘황찬란해서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다.
노애리:……. (살그머니 얼굴을 붉히고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입술을 우물거리기만 했다.) …… 진짜 좋아요? …… 여기 밖에도 2층도 더 구경하고 싶은데. 아저씨는 쉴 거야?
유명한:이제 내 말 믿을 때도 되지 않았나? (볼이 붉어지는 걸 보자마자 몇 차례 더 입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같이 구경하고 싶어?
노애리:…….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그, 그리고 짐도 풀어야 하니까…….
유명한:알았어. 대신 뭐 좀 마시고 하자. 음료는 언제 온대? (애 같긴. 턱을 잡아돌려 입술에도 꾸욱 입을 맞춘다.)
노애리:으응, 그, 그만……. 좀!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서도 크게 널 밀어내지는 않았다.) …… 금방 오지 않을까요? 배는 안 고파요? 룸 서비스로 먹을 것도 시키면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유명한:난 기내식 먹어서 괜찮은데, 배고프면 지금 시켜도 돼. (그만은 무슨 그만. 오히려 더 꼭 안고서 능글맞은 표정으로 장난을 친다.) 뽀뽀하지 마?
노애리:음, 그럼 안주로 간단한 것 정도만 시키면……. (고민하다 네게 더 가까이 밀착되자 힐끔 너와 눈을 마주치고, 이내 그 시선을 피해버린다.) …… 하,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많이 하면, …… 부끄럽다구요!
유명한:키스라도 하면 아주 때리겠다? (코만 콕 붙인 채 속삭이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내려와 뺨을 쓰다듬는다.) 사과가 다 됐네.
노애리:……. (시선을 내리깔았지만서도 어쩐지 분하다. 네 허벅지만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다 결심한 듯 슬쩍 눈을 감고 턱을 들었다.) …… 해, 해줄 거면 지금…….
유명한:욕심은 또 많고. (그런 점이 귀엽다고는 차마 말 못 한다. 눈을 아주 감진 않은 채 네 아랫입술을 물고 부드럽게 우물거린다.)
노애리:(손끝을 더듬어 네 손이 있는 곳 위로 꼭 포개어 겹치고, 네게 몸을 완전히 기댄 채 자연스레 입술을 살짝 벌려낸다.) …….
유명한:……. (벌어진 입술 새로 자연스레 혀가 밀고 들어간다. 살살 달래듯 네 혀를 간지럽히며 일부러 입 맞추는 소리를 적나라하게 흘린다.)
노애리:으응……. (작게 소리를 흘리고서 네 혀가 들어오자 민망함에 살짝 미간이 찌푸려진다. 손을 떼어내고 아예 네 뒷목을 감싸안아 달라붙어 할짝이듯 네 혀를 반겼다.)
유명한:(달래듯 허리를 토닥이다 네가 완전히 매달리자 기다렸다는 듯 몸을 안아들어 제 허벅지 위에 앉힌다. 서로 혀를 얽기보단 맞대 부비며 쪽쪽댄다.)
노애리:(네 위에 올라타 앉아 마음껏 네 안을 헤집어댔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타액을 뒤섞다, 절로 숨이 차오르자 서서히 입술을 떼어내며 느리게 눈을 뜬다.) …… …… 오자마자 이런 짓이나 하고, 저질.
유명한:그래, 나 저질이다. 좋으면서 꼭 그러지. (오히려 더 달라붙은 게 누군데. 타액으로 매끈해진 네 입가를 할짝이다 웃으며 엉덩이를 톡 두들긴다.)
노애리:…… 시, 싫다고 안 했어요. 뭔가 이러면 꼭, 저기……. (커플이나 부부라도 된 느낌이라고 말하려다 입을 꼭 다문다. 부끄러움이 밀려와 말없이 네 어깨에 얼굴을 푹 파묻어 버린다.) 모, 몰라요……. …… 이번에도 키스하고 무드 없이 굴지 마요.
유명한:네, 네. 분위기 안 깨겠습니다. (네 부끄러움이 가실 때까지 기다릴 셈으로 등도 천천히 쓸어주며 한참 큭큭거린다.) 이따가 더 많이 해줄게. …… 그렇게 부끄러워?
노애리:그, 그야 당연하죠! …… 처음 했을 때에는 아저씨도, 네? 막 얼굴 빨개져서 했으면서. …… 호, 혼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그 품을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 나랑만 해야 돼요, 이런 거.
유명한:그때는 아무래도, 좀! 그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와? (덩달아 민망해져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귓가에 속삭인다.) 더한 짓도 너랑만 할 거야. 바보.
노애리:……. (살짝 웃음기를 띠던 눈이 금세 커다래져서는 네 어깨를 주먹으로 퍽퍽 쳐댔다.) 벼, 변태 저질. 맨날 그런 농담이나 해대고! 무드 없잖아요! (그리고는 몇 초간 잠잠하더니 힐끔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했다.) …… 진짜죠?
유명한:악, 농담 아냐!! (아프다! 얘는 왜 갈수록 손이 매워져?! 움찔거리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내가 뭐 할 사람이라도 있어 보여? 그럼 눈 다친 거지…….
노애리:그, 그거야 모르죠. …… 그게……. (무언가 말하려다 우물쭈물 뜸을 들이더니 네 품에서 쏙 빠져나와 일어나 버린다.) …… 저, 저 룸 서비스 시킬 거니까 아저씨는 더 둘러보고 있기나 해요!
유명한:또 허공에 주먹질한다. (어차피 전 와이프 생각이나 했겠지. 네가 일어나자 다리를 벌려 앉고서 고개를 뒤로 젖힌다. 아, 소파도 참 편하네.) 같이 보자며. 참, 짭짤한 것도 같이 시켜라. 단 음식만 먹으면 속이 느글느글해져.
노애리:대, 대충 둘러보고 있으란 소리였어요! 2층은 저도 같이 올라갈 테니까 그동안…….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고 하듯 허둥지둥 전화가 있는 곳으로 가 메뉴판을 보며 전화를 연결했다.)
유명한:그러니까 다 같이 볼 거라고. (네 뒷모습을 바라보다 슬그머니 일어나 다가가더니 뒤에서 폭 끌어안았다.) 빨리 달라고 해. 음식 왔는데 자고 있으면 큰일이다.
노애리:(더듬더듬 주문을 끝마칠 무렵 눈에 띄게 화들짝 놀라며 널 뒤돌아본다. 여전히 식지 않은 얼굴로 전화를 끝내고서 네 팔을 약하게 붙들었다.) 까, 깜짝 놀랐잖아요, 바보! …… 졸려요?
유명한:피곤해서 잠들지도 몰라. (놀란 얼굴에 히죽거리며 눈을 마주친다. 잠깐 더 안고 있다 떨어지며 손을 끌고 2층으로 향한다.) 위부터 보자.
노애리:오늘은 일찍 잘 예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빨리 잠들면 안 돼요……. (종종걸음으로 네 손을 잡고서 천천히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이 방의 백미는 2층입니다. 검은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오면 새하얀 커튼이 나풀거립니다.
불어온 바람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커튼까지도 그림의 한폭 같은 객실이란, 탄성을 지르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어요.
커다란 침대에서는 가로로 자도 괜찮을 정도네요. 주름 하나 잡히지 않은 흰 시트를 보면 어쩐지 쾌감이 듭니다.
그리고 침실 옆에 딸려 있는 욕실이 보이네요. 여기는 샤워 부스만 있나 봐요.
그렇지만 2층이 백미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테라스에 있는 수영장이지요.
유명한:알았어. (위로 올라오자마자 펼쳐지는 광경에 조용히 입만 뻐끔거리다 네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 …… 신혼부부 침실보다 더하네……. …… 저거 수영장이야?
노애리:진짜 좋죠? 로망이었다구요, 이런 수영장 있는 최고급 리조트……. 혼자 오면 전혀 기분 안 나니까. (신혼부부란 말에 괜히 두근두근 간질거리는 기분을 숨기고 이번에는 제가 네 손을 이끌었다.) 가까이 가 봐요, 밤에는 조명 때문에 더 예쁘댔어요!
유명한:돈을 바른 티가 나긴 한다. (혼자 오면 기분이 안 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얌전히 입을 다문다. 네게 끌려가며 왠지 모를 민망함에 볼을 긁는다.) 이렇게 좋으면 사흘 내내 밖으로 나가기 싫어지는데…….
노애리:그, 그건 곤란해요! 이왕 하와이까지 왔는데 바다도 보고, 네? 그래야죠! 요트도 제~일 좋은 걸로 빌렸다구요! (후후, 작게 웃으며 테라스 바깥으로 나간다.)
둘이서 수영하기에 차고 넘치는 야외 프라이빗 풀에서는 한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바다가 보입니다.
날이 좋으면 테라스 의자에 길게 누워서 칵테일을 마시다가 졸기만 해도 행복할 거예요.
수영을 하는 서로를 지켜보며 간단한 간식을 가지고 와서 먹어도 괜찮겠죠. 아! 벌써 멋진 휴가 플랜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유명한:바다는 여기서도 보이는구만……. (쉬러 왔으면 푹 쉬는 게 제일이다. 그보다 요트 조종은 할 줄 아나? 다시 제가 네 손을 이끌고 테라스 난간까지 가서 선다. 여기서 담배 피우면 죽이겠다.) 어쩐지 수영복 챙기라고 닦달을 하더라니.
노애리:바다도 가고, 수영장도 있고……. 수영복을 어떻게 안 챙겨요. (발끝으로 수영장 물을 톡 건드려 본다.) 그래서, 바다 가기 싫어요? 요트 타기 싫어요? 네?
유명한:너 요트 몰 줄 알아? (뒤로 돌아 난간에 등을 기대고 네가 발장난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가고야 싶지.
노애리:우리는 그냥 거기서 먹고 놀기만 하면 돼요. (흐흠! 의기양양한 얼굴을 해 보인다.) 여기 경치 좋은데, 이따 여기서 술 마실까요? 1층도 보고, 짐까지 풀고 나서…….
유명한:모는 사람은 따로 있나? 둘만 있는 게 좋은데. (괜히 열 받는 얼굴에 시선을 바다로 돌린다.) 그럴까. 그럼 얼른 짐부터 풀어야겠어.
노애리:…… 왜, 왜요? …… 어차피 리조트에서 원없이 둘만 있는데……. (발그레한 얼굴로 네게 가까이 다가가 다시금 손을 잡았다.) 그럼 대충 1층 둘러보고, 음식 오기 전에 후딱 짐만 풀어요.
유명한:너 모르는 사람이랑 있는 거 피곤해하잖냐. (아닌가? 잡은 손을 흔들다 다시 1층으로 걸음을 옮긴다.) 응. 어차피 내 짐은 십 분이면 다 정리할걸?
노애리:…… 그야 나도 아저씨랑 둘이 있는 게 당연히 좋아요. (들릴 듯 말 듯 작게 덧붙이고 1층으로 내려간다.) 나, 나는 짐 엄청 많은데……. 아저씨가 내 거 도와주면 되겠다.
1층에는 조리 시설을 갖춘 부엌과 검은 벨벳으로 만든 소파가 특징적인 거실과 메인 욕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어요.
욕실을 장식한 둥근 사각형의 월풀 욕조는 성인 두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충분한 크기입니다. 욕실은 1층의 것이 조금 더 커보입니다.
거실에는 장식용으로 몇 권인가 [책]도 비치되어 있네요. 관심이 있다면 천천히 읽어 보아도 좋겠죠.
유명한:너 또 이삿짐 쌌어? (이젠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욕실 쪽으로 향하며 안을 둘러본다.) 누구 눈 높아져서 나중에 이런 집으로 이사가자고 그러겠네…….
노애리:후후, 당연하죠. 이렇게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넓고, 욕조도 넓구, 또……. (널 따라다니며 같이 둘러본다.) 방도 최소 세 개는 있으면 좋겠고…….
유명한:지금 우리집도 보통 사람들 집에 비하면 엄청 넓거든? (나름 본가인데……. 욕실 리모델링 공사만 하면 되나. 중얼거리며 미리 견적이라도 짜듯 여기저기 꼼꼼하게 보며 태연하게 되묻는다.) 방이 왜 세 개나 필요해? 애들 방?
노애리:그러니까 아저씨 집에 붙어있죠. 아저씨 집이 좁았으면 답답해서 거기 못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다 화들짝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무, 무슨 소리예요! 그, 그런 생각은…… 저기……. 몰라요! 변태. (무어라 더 덧붙이지 못하고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휑 가버린다.)
유명한:뭐가 그렇게 뻔뻔해? …… 어? (네가 왜 그렇게 구는지 순간 눈치를 못 채고 있다가 뒤늦게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딱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어디 갔어? 멋적게 걷다 거실에 놓인 책을 괜히 들었다 놨다 한다. 영어로 된 책인가?)
영어로 되어 있지만 조금씩…… 읽을 수는 있어 보입니다.
두꺼운 책들은 내일 밤 관광을 끝마치고 돌아와 시간이 있을 때에 천천히 읽어도 좋고, 빠르게 훑어보려면 [자료조사]를 굴려 주세요.
자료조사
기준치: |
30/15/6 |
굴림: |
82 |
판정결과: |
실패 |
(사실 없다.)
책들 중에는 바다에 관한 전설, 미신들을 다룬 것이 눈에 띕니다.
유명한:이 동네 이런 이야기 진짜 좋아하네……. (대충 팔랑팔랑 넘긴다. 그림 없어?)
꼼꼼히 읽어 보려면 교육이나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교육
기준치: |
65/32/13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유명한:(책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앗ㄸㅏ.) 애리야!!!!!!!!!!!!!!!!!!!!!!!!!!!!!!!
노애리:깜짝이야…… 왜 소리를 치고 그래요!? (캐리어를 주섬주섬 정리하다 이상하다는 얼굴로 네게 다가온다.)
유명한:쪼끄만게 어디 갔는지 보이길 해야지. (;) 반은 정리했어?
노애리:아, 아직은……. 그러게 왜 정리하고 있는데 부르고 그래요! 볼 일 없으면 다시 가요?
유명한:이거 책 좀 나 대신 읽어 봐라. 뭐라 써져있긴 한데 드럽게 어렵네……. 짐은 내가 정리할게. (머리를 벅벅 극는다…….)
노애리:제, 제 짐은 건드리지 마요! 아직! (네게 단단히 일러두고 책을 받아든다. 이걸 내가 읽는다고 아나……. 그렇게 생각하며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긴다.) 무슨 전설…….
유명한:왜? (단단히 이르든 말든 처음부터 제 짐부터 풀 생각이었기에 캐리어를 열고 옷 두 벌과 수영복 뿐인 짐을 설렁설렁 풀었다.)
노애리: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저도 뭐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책을 덮고 머리 벅벅 극으며 돌아옴)
유명한:그치? 그거 어렵지? 근데 휴대폰에 검색해도 안 나오냐? (같이 머리 벅벅 극음.)
노애리:아. 번역기 돌려 봐요, 번역기. (솔직히 이게 뭐라고……. 하지만 핸드폰으로 페이지를 찍어 번역기를 설정해 본다.)
아주 깊은 바다, 우리는 닿을 수 없는 저깊은 곳의 시간은 지상과 다르게 흐른다. 시간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해양 생물의 일생은 우리보다 한참 길어서 우리의 몇십 년이 그들에게는 겨우 며칠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신비한 바닷속 어딘가에는 우리는 가늠할 수도 없는 정도의 긴 세월을 산 신비의 생물들도 분명 있으리라…… (후략)
유명한:이 동네 양반들 이런 이야기 진짜 좋아하네. (네 옆에 찰싹 붙어 실눈을 뜨고 겨우 쪼그만 글자들을 읽는다.) 노안이 왔나…….
노애리:…… 이게 무슨 소리래. 뭐야, 별 거 아니었잖아요. (재미없다는 듯 책을 아무렇게나 두고 핸드폰도 넣는다. 그리고 다시 트렁크를 열어 주섬주섬 화장품들을 먼저 챙기고 네게 내밀었다.) 다시 짐정리 시작이에요. 이거 욕실에 좀 가져다 둬 주세요.
유명한:아까 직원도 인어에게 웃으면 인어도 웃고 화내면 걔도 화내고 어쩌고 하더라고. (중얼중얼 변명하곤 짐을 받아들었다.) …… 화장품이 이렇게 많았냐?
노애리:그런 거 믿는 타입이에요? (쭈그려 앉아 짐을 정리하다 널 올려다본다.) …… 그, 그야 당연하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쓰는 것도 다르고, 이건 방수용이고…… 이건 립스틱들……. 아, 여기 세면도구랑 스킨이랑 로션도 챙겨왔으니까 욕실에 두고 쓰세요.
유명한:이야기까지 들으니까 궁금해지잖냐. (오히려 짐이 점점 늘어나자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보통 화장품을 욕실에 두나?) 여자들 화장품이 많은 건 아는데 이건 좀……. 어어. 세면도구까지 챙겼어?!
노애리:…… 뭐, 뭐예요. 제가 화장품 많은 게 마음에 안 들어요!? (괜히 귀끝이 붉어진 채 발끈한다.) …… 세면도구도 챙기는 게 당연하잖아요? 아무거나 쓰면 안 좋다고요. 맞다, 그리고 이건 마스크팩이구요. 이건 고데기……. (캐리어 안에서 꺼내는 수가 점점 많아진다.)
유명한:아니, 그런 게 아니라…… 고생한다 싶, 어서……? (이렇게 좋은 리조트에서 어메니티를 대충 챙길 것 같지도 않지만 일단 얌전히 쌓여가는 짐을 바라본다.) …… 뭐 마법 가방이라도 돼……? 그게 어떻게 다 들어간대.
노애리:어떻게든 쑤셔넣었어요. (더 꺼낼 게 있나 보며 옷가지들과 속옷, 수영복이 있는 걸 확인하고서는 캐리어를 그대로 닫아버린다.) …… 나머지는 제가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그거 갖다놓고 아저씨 짐도 풀어요.
유명한:…… 나는 아까 너 책 볼 때 다 풀었어.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에 닫히는 캐리어를 흘끔 보고 욕실로 향한다.) 한 사람 무게는 나갔겠네…….
노애리:버, 벌써……?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놀란다. 뭘 챙겨온 거야? 옷만 가져왔나? 닫은 캐리어를 가지고 네가 욕실로 향한 사이 2층으로 낑낑대며 올라갔다. 옷장을 열어 제 옷과 속옷들을 하나하나 접어둔다.)
유명한:(욕실에 적당히 자리를 봐 물건들을 놔두고 제 캐리어도 들고 털레털레 2층으로 올라간다.) 옷 놔둘 자리 좀 남았냐?
노애리:(네 기척이 들리자 황급히 속옷과 수영복을 안 보이게끔 구석으로 밀어두고 벌떡 일어난다.) 마, 많아요. 옷장이 커서……. 캐리어도 여기 넣어두면 되겠어요.
유명한:그래? 잘됐네. (캐리어를 열어 옷을 대충 접어 넣어놓고 캐리어도 빈 자리에 넣었다.) …… 룸서비스가 왜 이렇게 늦냐. 수영하고 있을래? 아니면 쉴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룸 서비스를 알리는 초인종 소리가 1층에서 울립니다.
도착된 룸서비스에는 청량한 모히또 칵테일 두 잔과, 그리고 크래커와 종류별의 다양한 치즈, 과일, 갓 만들어진 감바스 알 아히요가 도착합니다.
칵테일의 도수가 높아 보이지는 않으니 다행이네요.
유명한:땡큐! (청량하게 대답하고 음식을 받아든 다음 널 본다.) 어디에서 먹을까?
노애리:(네가 귀엽다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퍼뜩 2층을 가리킨다.) 발코니요! 바다 보면서 먹을래요.
유명한:좋아. 거기 앉아서 마실까? (네가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잘도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노애리:(식기를 챙겨 널 뒤따라 올라간다.) 응. 거기 의자도 엄청 편해 보이던데요. (발코니로 나가면 테라스 의자들 사이의 테이블에 식기를 내려놓았다.) 후후, 이런 뷰는 살면서 웬만큼 구경 못할 거예요, 정말.
유명한:죽기 전에 한 번 정도는 더 올 수 있겠지? (테이블에 음식도 내려놓고 의자에 반쯤 드러눕는다.) 진짜 집에 돌아가기 싫다…….
노애리:그럼요. 우리 다음에 또 와요. 그땐 하와이가 아니라~ 뭐……. 몰디브? 방콕? 세부? 어디든지요. …… 아, 맞다. 아저씨, 잠깐만요. 잊고 온 게…….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침실이 있는 쪽으로 도로 들어간다.)
유명한:말은 잘도 해요. 오냐. (의자에 기댄 그대로 모히또를 홀짝거리며 바다를 바라본다. 저 안에 인어가 살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호러네. 에이, 없겠지.)
노애리:(침실에서 여행 가이드북을 챙겨와 네 곁에……. 앉으려다 네 다리 사이에 탈싹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거요. 아까 프론트에서 받았던 건데, 내일 일정에 좀 도움이 될까 해서.
유명한:어엉? (공상에 잠겨 있다가 네가 오자 고개만 들었다.) 네가 보고 알려줘. 어차피 다 영어로 써놓은 거 아니냐.
노애리:아, 아니에요! 한국어 버전도 있어요. 관광객용이라서. (팔랑팔랑 넘기다 찾아내고 네 쪽으로 내밀며 몸을 톡 기댄다.) 봐요.
유명한:그래? (칵테일 잔을 내려놓고 종이를 받아든다.) 어디 보자…….
이 지역 일대는 한적한 리조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추천 가이드와, 지도가 함께 동봉되어 있네요.
유명한:음……. (지도부터 한 번 훑어본다.)
유명한:죄다 먹고 놀 거리밖에 없네. (당연한 말을 하다 네 허리를 콕 찌르며 장난을 친다.) 어쩌냐. 여기도 수영복 가게 있다는데 새로 안 사고 버틸 수 있어?
노애리:그, 그래요? ……. (솔깃…….) 그, 그치만 이번 수영복 엄청 고심해서 고른 거라, 음, 으음……. 고민되네. 아저씨, 내일 바다에 들어갈 거예요?
유명한:글쎄, 안 들어가도 여기 수영장은 써야 하지 않겠냐. 적어도 너 물놀이 하는 거 구경은 해야지. (다시 지도를 쳐다본다.) 드라이브를 해도 되고…… 산책을 해도 되고. 팬케이크 같은 거 좋아해?
노애리: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팬케이크? (널 따라 지도를 같이 빤히 바라본다.) 어디든 물에 들어갈 거면 아저씨도 같이 놀아야죠, 네? 알겠죠?
유명한:난 먹어본 적 없는데. (포케는 또 뭐야……. 꿍얼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국밥집 없냐.) 나? 너보다 수영 잘하면 삐칠 것 같아서 좀…….
노애리:그럼 나랑 같이 먹으면 되겠다. (아랑곳 않고 대답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널 흘겨본다.) …… 같이 안 놀 거예요? 대답.
유명한:그래. 아무거나 너 땡기는 거로 정해라.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지자 자기도 모르게 흠칫한다.) 노, 놀아. 논다고! 누가 안 논다고 했냐!
노애리:…… 치. 뭐든 나 혼자만 신난 것 같고, 나 혼자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입을 삐죽이며 네게서 가이드북을 빼내 테이블에 탁 올려놓은 뒤, 일어나 버린다. 옆자리 의자로 몸을 파묻으며 다리를 쭉 폈다.) …… 어차피 팔찌 만들기 같은 것도 관심없을 거고…….
유명한:야아. (그건 아니지. 물론 왔으니 편하게 자고 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긴 하지만, 원래 반응이 너보다 무딘 거지 절대 평균 이하는 아니다. 뒤따라 옆자리로 가 네 몸 위로 올라타 앉는다.) 난 팔찌 만들기 하러 가고 싶은데…….
노애리:……. (네가 가까이 붙어오자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풋 터진다. 네 팔을 약하게 때리며 소리내어 웃었다.) 아. 웃겨, 진짜. 뭐예요? 안 어울려요……. 관심 하나도 없다는 거 알거든요!? 그리고 얼른 저리 나와요!
유명한:…… 크흠, 여기까지 왔는데 기념품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몸을 숙여 투정만 뱉는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춘다.) 관심 하나도 없는데 왜 여기까지 오냐고요. 이 멍청아.
노애리:응, 그치마안……. (간지러움에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부드럽게 네 몸을 끌어안아온다.) …… 진짜죠? 그럼 같이 만들기예요. 수영도 같이 하고, 맛있는 거 같이 잔뜩 먹고……. 대신 내일 해가 지면 바로 리조트로 돌아와서 쉬게 냅두겠다고 약속할게요!
유명한:그래. 팔찌 만들고, 팬케이크 먹고, 포켓볼인가 뭔가도 먹어. 그런데 바다에서 수영하려고? (서양 놈들하고 비교당하기 딱 좋겠네. 널 마주 안고서 목덜미에도 느긋하게 입을 맞춘다.) 돌아와서 룸서비스로 스테이크 좀 썰지 뭐.
노애리:잠깐, 간지럽다구요……. 포, 포켓볼……? (설마 포케 말하는 거? 고개를 기울이다가도 스테이크란 소리에 눈을 반짝 빛냈다.) 완전 좋아. …… 바다랑 여기에서 수영하는 거랑 뭐가 더 좋아요? 아저씨 좋을 대로 할래요, 그건.
유명한:스테이크에 와인도 마시고 하면 분위기 나겠네. (잠시 고민하다 으음, 소리를 내며 더 꼭 안았다.) 여기에서 하자. 둘이 있는 게 좋잖아. 그리고 바다는 아무래도 사고가 나기 쉬우니까…….
노애리:…… 사실 그렇게 말하면서 수영복 입은 저를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는 게 싫은 거 아니에요? (여유롭게 웃고서는 어깨를 으쓱인다.) 후후, …… 농담이에요. 아저씨가 그렇다면 둘만 있을래.
유명한:그건 당연한 거지. (미쳤다고 전시하고 다니나. 게다가 제 눈이 잠깐이라도 다른 곳에 가면 등짝에 손바닥 문신이 생길 것 같다.) 뭐, 원한다면 먹으면서 수영장에서 놀아도 되고.
노애리:……. (발그레하게 뺨을 물들인 채 말없이 칵테일을 한 입 홀짝였다.) 요, 요즘 이런 거 보고 호캉스라고 한다잖아요. 완전 그런 거네. 후후, 그럼 내일은 밖에서 이것저것 하고 돌아와서 수영장에서 노는 거예요. 일정 다 짜였다.
유명한:호화로운 바캉스라 호캉스라 해도 되겠다. (어깨를 으쓱이곤 몸을 일으켜 저도 칵테일을 마신다.) 좋아. 굳이 빡빡하게 움직일 필요 없지. 음식은 안 먹냐? 다 식겠어.
노애리:머, 먹을 거예요. …… 약간 배고파졌어요. 조금 움직였더니……. (그제서야 허기를 느끼고 팔을 뻗어 메뉴를 하나씩 먹어본다.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얼굴로 새우 세 개를 한 입 가득 밀어넣었다.) 이거 완전 술안주로 딱이에요.
유명한:술안주? (네가 먹는 모습을 입맛을 다시며 보다가 고개를 내밀고 입을 벌린다.) 나도 주라.
노애리:(새우 하나를 포크로 콕 집어 네 쪽으로 내민다.) 아~
유명한:아~ (너는 세 개 먹고 나는 하나 먹냐?! 하지만 순순히 먹는다.) …… 맛있다.
노애리:맛있죠? 그쵸? (크래커 위에 치즈를 얹어 이것도 네 쪽으로 가져다 준다.) 아저씨 이런 안주도 좋아하나? 먹어 봐요.
유명한:으응. 아아. (네 손가락까지 물었다 놓아주며 한참 우물거린다.) …… 좀 느끼하긴 한데 칵테일이랑 잘 맞네.
노애리:아저씨라면 이런 것보단 마른 안주라든지, 고기나 해장국 같은 걸 더 좋아할 것 같아서……. (끄덕끄덕…….) 그래도 난 이런 안주가 더 좋으니까 앞으로 익숙해져요. 자, 하나 더. 아~
유명한:육포 먹고 싶긴 하네. 육포 맛있잖아, 안 그, 아아. (냠냠냠…….) 근데 고기는 너도 좋아하잖아. 삼겹살에 소주가 싫어!?
노애리:그, 그건 당연히 좋죠! 좋지만요. …… 그런 건 혼자서 먹기 그렇잖아요. 여자 혼자서 고깃집에 가는 것도 그런데 소주까지 시키면……. (웅얼거리듯 말하고서는 네 옷깃을 만지작거린다.) 그, 그러니까 내 말은 그냥…… 기회가 없었다구요! 아저씨로 치면 팬케이크처럼.
유명한: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걸 눈치를 보고 그래. 어쩔 수 없구만. 앞으로 먹고 싶으면 바로 말해. 알았어? (아예 감바스 그릇을 가져다 포크로 새우를 왕창 뜬다.) 아~
노애리:…… 아. (고개를 끄덕이며 냉큼 네 포크의 새우를 받아먹었지만 어쩐지 또 어린애 취급을 당한 것만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이번에는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 어, 어쩔 수 없잖아요. 친구도 없고 같이 갈 사람도 없었으니까. …… 그, 그럼 한국에 돌아가거든 삼겹살 먹어요. …… 돼지갈비도.
유명한:그렇게 인기가 많은데 왜 그럴까. 너무 잘나서 그런가?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고 몇 번 더 먹이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릇을 내려놓는다.) 내가 삼겹살이랑 갈비 쏠 테니까 너는 소고기 쏴라.
노애리:네에? 이제는 막 비싼 거 뜯어내네! 저도 이제 돈 아껴야 하거든요? …… 백수니까. (열심히 우물거리고서 꿀꺽 삼키고 남은 칵테일로 입가심을 마친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는 다 못 먹어요!
유명한:그럼 취업 준비를 해야지. 백수 아가씨야. (저도 남은 칵테일을 전부 마시고 크래커를 하나 더 입에 넣는다.) 누가 하루에 다 먹쟤? 오늘은 삼겹살, 내일은 곱창, 그런 식으로 먹으러 다니면 돼.
노애리:…… 일하기 싫은데. (입술을 삐죽이며 제 손끝을 꼼질거린다.) 그렇게 매일 저랑 붙어있어 줄 거예요? …… 그럼 그냥 아저씨가 나 먹여살려 주면 안 되나……. (그러다 문득 어쩐지 제 말을 자각하고는 네 몸을 확 밀친다.) 그, 그런 뜻은 아니고! 그냥 금전적인……. 그런……. 농담이죠! 농담.
유명한:대단한 일을 하라는 건 아니다? 성격 살려서 사람들 만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연예인 하기엔 늦었나? (삐죽 나온 입술을 만지다 몸을 밀치자 눈을 가늘게 뜬다.) 먹여살리고 싶어도 누가 돈을 펑펑 써대서 혼자 벌어선 힘들지 싶은데. 야, 그런 뜻보다 금전적인 원조가 더 위험하거든?! 경찰이?!
노애리:연예인 같은 거 하면 얼굴 팔리니까 불안하단 말이에요. (슬금슬금 네게서 멀어져 자리에서 일어나 머뭇거린다.) 그…… 그런가요? 직접적인 돈을 달라는 건 아니고 숙식 제공의 그런 느낌이……. 할 수 있는 데까진 몸으로 때울 테니까요……. 집안일에는 재능이 없지만.
유명한:집안일에 재능이 없는데 뭘 때우겠다는 거야……. (이해가 안 가는 말만 줄줄 늘어놓자 속으로 혀를 찬다. 아직도, 그런 일을 겪고도 서로 아무 사이도 아닌 거라 생각하나 본데. 괜히 이쪽도 오기가 생긴다. 나도 모르는 척 할 거다. 흥.) 정 싫으면 인터넷으로 마술쇼라도 하든가. 마법도 쓰니 마술은 더 쉽겠지.
노애리:아저씨 진짜 아이디어 많네요……. 그치만 뭔가 성실하게 해야 하는 일들은 재미없단 말이죠.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못내 아쉬운 얼굴을 했다.) …… 집안일, 배, 배워 올까요? 요리는 원래 그럭저럭 잘하는 편이니까 봉사할 수 있어요.
유명한:내가 일하기 싫다는 놈들 한두 명 봤겠냐……. (널 올려다보며 뒷머리를 만지작거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괜찮네. 할 거면 요리부터 다시 배워. 난 요리 엄청 잘하는 와이프가 좋아. (그러곤 도망치듯 먼저 안으로 휙 들어간다.)
노애리:(지…… 지금으로는 모자라다는 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네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뒷정리를 끝내고 네가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아저씨, 씻고 잘 거죠? 아저씨가 2층 쓸래요? 난 1층 쓰고 싶은데.
유명한:(옷을 훌렁훌렁 벗다가 네가 다가오자 고개를 돌려 바라보곤 끄덕인다.) 그래. 욕조 있으니까 네가 거기 써라. 자는 건 어떻게 할래, 같이? 따로?
노애리:저, 저기! 여자랑 있는데 막 벗지 말아주세요! (휙 뒤를 돌아보며 작게 말을 이었다.) …… …… 따, 따로 자는 건 쓸쓸해서 싫어요.
유명한:속옷 벗은 것도 아닌데……. (머쓱하게 가슴팍을 팔로 가린다.) 알았다, 알았어. 빨리 씻고 올라와. 늦으면 먼저 잔다?
노애리:네에~ (적당히 대답하고서 후다닥 1층으로 내려가 욕실로 들어간다.)
유명한:(마저 옷을 벗고 저도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한다. 잠시 후 포곤포곤한 잠옷을 입고 나와 침대에 철퍼덕 눕는다.)
(*잠옷이 아니라 가운…….)
노애리:(샤워를 끝마치고 나와 세면대에 섰다. 트리트먼트를 하고, 마스크팩을 붙여 두고, 머리를 뽀송뽀송하게 말리고 나서야 팩을 끝낸 뒤 나왔다. 생각해 보니 갈아입을 속옷을 가지고 오지 않아 일단 가운을 걸치고 꽁꽁 여민다. 잠든 거 아니야? 2층으로 조심히 올라가며 널 부른다.) …… 아저씨, 자요? 아저씨~
유명한:얘는 왜 이렇게 안 와. (침대에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해도 오질 않으니 발코니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다. 다시 침대에 누우니 네 목소리가 들려 저도 대답했다.) 아저씨 안 잔다~
노애리:다행이다. 잠들었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어요. (화색이 밝아진 채 네가 있는 쪽의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살짝 네 얼굴을 내려다본다.) 나랑 같이 자려고 기다렸어?
유명한:어떻게 하긴. 또 두들겨 깨웠겠지. (너스레를 떨고서 고개만 돌려 널 올려다본다.) 응. 같이 자려고 기다렸다. 욕실을 만들어서 씻고 오는 줄 알았네.
노애리:…… 후후. 어쩔 수 없잖아요. 다 예뻐 보이기 위한 노력이라구요. (그 얼굴을 가만히 보다 눈을 감고 수줍게 네 입술 위로 쪽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 …… 담배 냄새.
유명한:가만히 있어도 예쁜데 뭘. (아니지, 가만히 있을 때가 가장 예쁜가? 달콤한 입맞춤 뒤로 들려오는 말에 눈을 돌린다.) …… 너무 안 오니까…….
노애리:……. (얼굴을 붉히면서도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서 한 손으로 네 뺨을 약하게 꾹 잡아당긴다.) 아저씨 말이야, 응? 어차피 같이 잘 거면 또 잔뜩 뽀뽀하고 그랬을 거면서, 담배나 피우고. 진짜 최악 아저씨.
유명한:내가 익숙해지는 게 있으면 너도 그런 게 있어야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네 허리를 끌어당겨 제 품에 안기게 하고서 변명했다.) 또 잔뜩 뽀뽀하고 다른 짓도 하고 싶었어? 애리야.
노애리:그, ……. (달아오른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다 소리쳤다.) 크, 크래커 같은 안주에 익숙해지라는 거랑 키스할 때마다 담배 냄새를 견디라는 건 누가 봐도 밸런스가 안 맞잖아요! …… 그, 그런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도 안 넘어간다구요, 바보……!
유명한:크래커에도 익숙해지고, 데리고 살고, 돈도 나만 버는데 담배 냄새 하나 정도는 괜찮은 딜 아냐? (이쯤 되면 소리를 질러도 고양이 우는 소리와 별로 다를 게 없어져 되려 태평해졌다.) 막상 담배 냄새 안 나면 이상하다고 여길 게 훤하다, 훤해.
노애리:씨……. 그럼 제가 돈 벌어오면 담배 냄새 안 나게 해주실 거예요? 글러먹었어, 진짜. (뚱하게 반눈을 뜨고 있다가 문득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네 품에서 빠져나오려 살며시 밀어낸다. 일단 옷! 옷부터 입고…….) …… 이따가 마저 싸워요! 잠깐 화장실 좀…….
유명한:글러먹은 아저씨를 좋아하게 될 거야. (갑자기 품에서 벗어나려 드는 모습에 되려 더 당겨 이불 속까지 끌고 들어간다. 화장실 저거 다 핑계구만.) 싸우긴 뭘 마저 싸워. 안 자? 아저씨 졸린데.
노애리:그렇게 굴지 말고 '아~ 내가 이 여자를 위해 이렇게 해야겠다~' 같은 무드는 없는 거예요!? 짜증 나. (품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꽁꽁 가둬져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떻게든 네 몸을 약하게 밀어내려 들었다.) 그, 글쎄 저 화장실 급하다니까……. 어, 얼마나 걸린다구요! 5분, 아니 3분이면 되는데……!
유명한:이 여자를 위해 이렇게 해야겠다, 까지 가려면 결혼해야지. (왜 이렇게 버둥거려. 잘 준비 다 마쳐놓고 왜? 문제를 자각하지 못해 의아한 표정만 지었다.) 방금 씻고 왔는데 왜 화장실이 급해. 잘 준비 하자. …… 빨리 뽀뽀하고 싶으니까, 응?
노애리:……. (그러니까 그 말은 뭐지? 결혼하고 나서야 들어준다는 건가? 아니면…… 너랑은 결혼할 일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안 든다는 건가? 온갖 생각으로 잠시 말이 없다가 힘주어 꾹 밀었다.) …… 아, 아니……. 저도 뽀뽀하고 싶기는 한데……. 시, 신경 쓰인단 말이에요.
유명한:뭐가 그렇게 신경쓰여.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몸단장한다고 그렇게 시간을 썼는데 이제와서 신경쓰일 일이 뭐가 있지. 아무튼 안 된다. 뒤따라 힘주어 꾹 안고 네 아랫입술을 깨문다.) …… 더 참으라고?
노애리:저, 저질. ……. (네게 안기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짓궂은 한 마디만을 덧붙였다. 숨결이 닿으면 눈동자가 흔들리다, 이내 눈을 꾹 감고 언성을 높였다.) 가, 가운 안에 지금 아무것도 안 입고 왔단 말이에요!
유명한:……. (아니……. 남녀 둘이 이런 곳까지 놀러와서 그거 때문에 그렇게까지? 그보다 누군 일부러 손도 안 대고 있는데? 미간을 찌푸리다 안은 팔을 풀고 물러난다.) 다녀 와라…….
노애리:…… 네, 네에.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 얼굴을 붉힌 채 침대 밖으로 나온다. 역시.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도 더 심드렁하고 반응이 없다. 차라리 놀리기라도 했으면 덜 부끄러웠을 것 같은데. 조금 심란한 기분이 되어 옷장으로 가 속옷과 잠옷을 챙겨들고 욕실을 향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평범한 원피스 잠옷을 입고 네 곁에 다시 들어가 거리를 두고 누웠다.) …… 이, 이제 다 입었어요…….
유명한:(나도 가운밖에 안 입었는데. 저 녀석은 정말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하나. 걸핏하면 입을 맞추고 잠도 같이 자는데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그거야말로 문제가 많지 않나. 네가 생각하는 그 정도로 더 거리를 둬야 하나 싶어 기다리는 내내 고민하다 네가 돌아오자 이불만 덮어주고 일자로 고쳐 눕는다.) …… 그럼 슬슬 자자.
노애리:……. (괜히 그런 이야기를 했나 보다. 왠지 모르게 어색해진 것도 같고 말수가 없어져서 부끄러웠다. 그냥 계속 화장실이라고 우길걸.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뽀뽀하고 싶다고 안아줬는데. 이래서야 같이 자는 의미도 없고, 왠지 제가 다 망친 것 같았다. 다가가면 멀어지는 그림자를 지워낼 자신이 없었다. 울상이 된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네게서 그냥 등을 돌려 누웠다.) …… 응.
유명한:……. (네가 원하는 대로 했는데도 미적지근한 반응이 돌아오니 오히려 더 답답해졌다. 옆을 흘긋흘긋 보다가 몸을 옆으로 돌려 뒤에서 안고 두어 번 토닥인 뒤 눈을 감았다. …… 연애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걸지도 모르겠네. 누구 말이 전부 맞나.) 잘 자라.
노애리:(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지, 토닥이는 손길에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 가뜩이나 울상인 얼굴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안경을 벗는 척하며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고는 이불로 얼굴 위까지 푹 덮어버린다.) …… 잘 자요.
오늘은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지요. 적당히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고요.
어느 쪽이라도 좋으니 일어나서 움직이도록 합시다. 어제 본 여행 가이드를 토대로 돌아다녀도 즐거울 겁니다.
유명한:(으어,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잠자리가 바뀌어 잠을 설칠 만도 했건만 장시간 비행이 피곤해서인지 푹 자고 말았다. 눈을 몇 번 깜박이고 여전히 품에 있는 네 상태를 살폈다.) …… 일어나야지. 더 잘 거야?
노애리:응…….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려 겨우 잠에서 깨어난다. 그러다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푹 시트에 박은 채 얕은 수면을 이어나갔다.) 쿨…….
유명한:팬케이크 안 먹어? 커플 팔찌 안 만들어? (네 몸을 살살 흔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자고 일어났으니 기분도 좀 나아졌기를 바라야지.) 안 나가고 방에 있을 거야?
노애리:나갈 거야……. (웅얼거리며 대답을 하고 인상을 찌푸린다. 몇 초간 정지된 채로 얼굴을 계속 박고 있다 꾸물꾸물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머리카락이 엉망이 된 채 앉은 채로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 팬케이크…….
유명한:으응. 팬케이크. (나란히 일어나 앉아 사자처럼 퍼진 머리카락을 대충 하나로 모아주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물, 물이……. 물을 한 컵 가지고 와 네 입가에 댄다.) 물 마시자. 아~
노애리:(얌전히 네가 주는 대로 물을 받아마시자 조금 나아졌는지 눈은 뜨고 있을 수 있었다. 그제야 힐끔 네 얼굴을 보더니 기억들도 되살아난다.) ……. (나 눈 안 부었나? 뒤늦게 고개를 푹 수그려 눈가를 가리고서는 벌떡 침대에서 내려가더니, 잠이 덜 깬 탓에 조금 휘청이며 계단으로 후다닥 발을 옮겼다.) 자, 잠깐 세수 좀…….
유명한:어, 뭐……. (역시 이렇게 빨리 기분이 풀리진 않나. 혼자 남게 되자 멍한 표정으로 제 머리카락도 대강 쓸어넘긴다. …… 샤워나 하자.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욕실로 들어간다. 바닷바람을 맞아야 하니까 빡빡 닦아야지.)
노애리:(다행히 생각보다 눈이 많이 붓지는 않았다. 안경을 쓰고 세면대의 거울을 마주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잠을 깨려 서둘러 세수를 끝마치고, 익숙하게 화장을 이어나갔다. 자느라 눌려 산발이 된 머리카락도 얌전히 빗은 뒤 묶어올리고, 천천히 바깥으로 나가 2층을 올려다본다.) …… 아저씨, 다 씻었어요?
유명한:(정신이 확 깨어날 만큼 차가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다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계단 밑을 내려다본다.) 어어. 나 옷 아무거나 입으면 돼?
노애리:응. 일단 바다에 가는 거니……. 혹시 모르니까 젖어도 괜찮은 걸로요. (너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어색하게 시선을 피한다.) 아, 아저씨. 거기 옷장에 제 흰색 원피스 있는데 그거 이쪽으로 던져 줘요. 저는 여기서 갈아입을게요.
유명한:뭐든 상관 없긴 한데. (눈길을 피하는 게 너무 뻔히 보여 어이가 없어졌다. 그대로 별 말 않고 옷장을 열었다. 어디 보자, 어제 숨기던 게……. 뭐야. 숨길 필요도 없는 걸 숨기고. 곧 흰색 원피스를 찾아들고 굳이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간다.) 옷이 워낙 많아서 찾는 것도 한 세월이야.
노애리:……. 던져 줘도 되는데. (중얼중얼 말하며 네가 있는 쪽으로 가 원피스를 받아들었다. 받아들고 나서도 여전히 어색하게 서있다 괜히 네 등을 두 손으로 밀어댄다.) 다, 다시 올라가요! 옷 입게. 아저씨도 입고 오고!
유명한:아, 알았어. (알아서 올라갈 생각인데 왜 이렇게 어색하게 구는 걸까. 밤새 찔찔댄 거 누가 모르냐. 그냥 좀 더 재울 걸 그랬나? 이것저것 생각하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옷장을 열고 고민하다 결국 평소와 큰 차이 없이 가벼운 면 반바지에 티셔츠를 챙겨 입고, 셔츠도 한 장 꺼내 걸친다. 고개만 계단 쪽으로 돌려 소리를 질렀다.) 다 입었냐?
노애리:(잠옷을 허물처럼 벗어두고 그 위에 원피스를 입었다.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귀걸이를 찾아낀다.) 네, 다 입었어요. 이제 내려오셔도 돼요. …… 뭐 챙겨갈 건 없겠죠? 지갑이나 그런 거 빼고는.
유명한:지갑에 신분증이랑 다 있잖아. (다시 방 안을 훑어보더니 네 클러치를 들고 제 지갑도 주머니에 넣고서 털레털레 내려간다. 클러치를 네 옆에 두고서 네가 뱀 허물처럼 벗어둔 잠옷을 들고 다시 올라간다. 진짜 뱀인가?)
노애리:자, 잠깐만요! 대, 대충 적당히 둬도 되니까! (클러치 안에 기본적인 짐을 챙기다, 허둥지둥 네 팔을 잡아 끌어당기고는 잠옷을 낚아채듯 뺏는다. 얼굴을 붉히며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어, 어차피 잘 때 또 입을 텐데, 뭐.
유명한:대충 적당히 뒀다가 아주 여기 두고 돌아가면 안 울 자신 있어? (마음에 드는 거였네 어쨌네 하면서 열흘은 징징거리겠지. 네게 붙들린 채 어깨를 으쓱인다.) 청소하는 사람이 네 잠옷 봐도 돼?
노애리:……. (네 말에 잠시 동안 말이 없더니, 다시 소파로 다가가 제 잠옷을 집어 네게 건넨다.)
유명한:그 화려한 아가씨, 잠옷은 청순한 타입이네~ 할 지도? (작게 웃는 소리를 내곤 옷을 받아들고 다시 계단을 올라간다. …… 앞으로 숙소는 복층을 피하자.)
노애리:…… 바보. (네가 없는 새 향수를 손목에 조금 뿌리고서 현관 쪽으로 다가가 꺼내두었던 신발을 고른다. 샌들을 신는 게 좋겠지? 네 몫의 샌들도 꺼내놓았다.) 맞다. 아저씨, 카메라도 챙겨 줘요.
유명한:카메라? (몸을 계단 밑으로 쭉 빼밀고 목소리를 키운다.) 캐리어 안에 있어?
노애리:어…… 아, 아마도요? 꺼내놓았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자신없는 목소리로 외친다.) 안 가져온 건 아니겠지? …….
유명한: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캐리어를 꺼내 짐을 하나씩 꺼내보기 시작한다. 이건 뭔지 모르겠고, 이것도 뭔지 모르겠고…….)
노애리:아저씨~! 멀었어요? (여전히 현관에 서있는 채로 힘껏 소리친다.)
유명한:잠깐만~ (최대한 엉망으로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엉망이 됐다. 가까스로 카메라를 꺼내고 나머지 물건들을 캐리어에 쓸어담은 뒤 후다닥 아래로 내려간다.) 있었어. 이거 맞지?
노애리:아, 다행이다! 가져왔네요. (화색과 함께 목소리도 밝아진다.) 아저씨가 가지고 있어 줘요. 목에 걸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유명한:알았어. (주섬주섬 카메라를 목에 걸고 샌들을 신었다.) 일단 배부터 채우러 갈까. 걸어서 갈래, 아니면 렌트?
노애리:…… 음, 아마 차로 20분 거리랬던 것 같은데. 렌트하는 게 낫겠어요. (문을 열고 리조트 바깥으로 나간다.)
오늘 날씨는 맑고 청명합니다. 이런 날씨라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리 없으니 안심하세요.
트러블조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유쾌한 시간이 될 테니까요.
시내는 호텔에서 차량 이동으로 약 20분 거리.
차는 호텔 측에서 수배해주는 택시를 타도 좋고, 호텔에 준비되어 있는 렌터카가 있으니 그것을 타고 가도 좋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유명한:(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다 네 얼굴을 쳐다본다.) 그치. 역시 렌트하는 게 좋겠지?
노애리:렌트할 거라면 오픈카로 할래요! 오픈카. 오픈카로! (기대 만땅인 얼굴!)
유명한:오픈카? 얼굴 따가울 텐데. (걱정하면서도 순순히 데스크로 가 오픈카를 부탁한다.)
유명한:
운
기준치: |
60/30/12 |
굴림: |
79 |
판정결과: |
실패 |
음...... 오픈카를 빌리려면 아주 비싼 차만 남았다고 하네요......
유명한:
재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83 |
판정결과: |
실패 |
노애리:변명은……. (네 지갑은 외면한 채 제 지갑을 뒤적인다.)
재력
기준치: |
80/40/16 |
굴림: |
3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끝내주는 오픈카를 렌트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유명한:이거 너무 과하게 끝내준다. (렌트카 봄)
노애리:(네 쪽으로 차키를 휙 던져준다.) 자요. 여행 왔는데 이 정도 기분은 내야지…….
유명한:……. (나도 돈 있다고……………………………. 꿍얼거리며 리조트 밖으로 먼저 휙 걸어간다.)
노애리:(뭐라고 하는 거야? 네 뒤를 졸졸졸 따라간다.)
유명한:(환전도 좀 했는데……. 여전히 투덜거리는 걸 멈추지 않고서 먼저 차에 올라탄다. 이 차, 문짝이 위로 열린다…….)
노애리:짱이다. (마냥 싱글벙글 신난 얼굴로 냉큼 조수석에 올라탄다.) 드라이브다, 드라이브. 후후……. 아저씨, 좋은 차니까 세게 밟아 주세요.
유명한:세게 밟아? (책임은 누가 져. 이 대책이라곤 없는 놈. 하지만 저도 좋은 차에 올라타 기분이 좋아지는 바람에 시동을 걸자마자 쭉쭉 달려나간다.)
노애리:아~ 완전 로망이잖아요, 이런 거. (바깥에 상체를 살짝 내빼고 있다 휙 뒤돌아본다.) 아저씨, 노래도 빵빵하게 틀어도 돼요?
유명한:마음대로 해. 조심만 해라. (혹시 비틀거리지나 않을까 흘끔흘끔 옆을 바라본다.) 아, 지도 좀 펴 봐. 서서 볼 수 있잖아.
노애리:(핸드폰을 연결해 노래를 빵빵하게 틀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지도를 꺼내 펼쳤다.) 음…… 이건가? 봐도 잘 모르겠는데……. 일단 쭉 가봐요. 바다가 보이면 바다를 끼고서 쭉 가면 된다고 했어.
곧 해안 도로를 타고 푸른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고도가 높은 절벽 도로를 타고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차창 너머 에메랄드 빛부터 깨질 듯한 새파란 하늘까지.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는 날입니다.
유명한:알았다. (지도를 잘 못 보나 보네. 별 수 없이 말 그대로 바다를 끼고서 길을 따라 쭉쭉 달린다.) …… 바다는 바다라고 여기도 짠내가 나네. 이야…….
노애리:진짜 파랗다. 한국이랑은 딴판이에요. (얌전히 조수석에 몸을 기대어 앉아 기분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러다 가방을 뒤적거려 포도 맛 젤리 하나를 꺼내 뜯어 먹었다. 하나를 꺼내 네게도 슬쩍 내민다.) 아저씨, 먹을래요? 젤리.
유명한:안에 들어가면 열대어 있을 것 같구만. (웬일로 네 말에 딴지를 걸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사고가 나지 않게 되도록 앞만 바라보며 차를 몰았다.) 응? 응. (먹여달라는 듯 입을 벌린다.)
노애리:후후. 아~ 해요. (이러니 진짜로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이 들어 싱글벙글한 낯으로 네게 젤리를 먹여준다.) 운전만 하면 심심할까 봐 챙겨왔어요. 이따 밥 먹어야 하니까 조금만……. (저도 우물거리며 어제 본 가이드북을 펼친다.) 그럼 도착하면 포케부터 먹으러 가요?
유명한:아~ (우물우물 열심히 젤리를 먹는다. 포도 맛이네. 하나 더 먹고 싶다…….) 응? 팬케이크 집 가는 거 아니었어? 아무래도 상관 없긴 한데. (흘끗 가이드북을 훔쳐본다.)
노애리:밥부터 먹자고 했잖아요? 그래서…… 포케가 좋으려나, 싶어서. 그럼 포케부터 먹고, 디저트로 팬케이크 먹어요. (혼자서 젤리를 계속해서 꺼내 냠냠 먹는다.) 아저씨 포케 같은 거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팬케이크도 그렇지만…… 후후, 안 어울려.
유명한:안 어울리든 어쩌든 외국에 왔으니 주는 대로 먹어야지. 근데 포케가 밥이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투로 되묻고 차를 계속 몰았다. 리조트에서 조식을 먹을 걸 그랬네. 그 와중에 네가 계속 군것질을 하자 눈을 흘긴다.) 이따 밥 먹어야 하니까 조금만 먹는다며?
노애리:뭐랄까, 하와이식 덮밥 겸 샐러드 같은 느낌의…… 건강한 맛이랄까……. 일단 밥은 있는 것 같던데요? 아저씨는 배 안 찰지도 모르겠다. (저도 잘 모르겠다는 투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한다. 그런 와중에도 젤리를 먹던 손을 조용히 내려놓고 두세 개를 집어 네 입에 밀어넣었다.) 그, 그럼 아저씨가 남은 거 다 먹어요.
유명한:하와이식 샐러드 덮밥……? (그게 음식이야? 덩달아 고개를 갸웃거리다 입이 막히자 사레가 들려 한참 콜록거린다.) 얌마, 말을 먼저 하고 집어넣어야지……. (다시 널 흘기다 은근슬쩍 손을 끌어와 기어에 얹고 그 위에 제 손도 얹는다. 이제 기분이 완전히 풀린 건가.)
노애리:(손이 겹쳐지자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진 채 시선을 바깥으로 돌린다. 제 허벅지에 얹은 다른 손을 초조한 듯 톡톡 두드리기만 하다 괜스레 화제를 돌리려 했다.) …… 아, 저, …… 그……. 대, 대신 저녁은 배부르게 먹어요. 다 아저씨한텐 안 맞을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어울려 줘요.
유명한:? 뭔 소리야. 끝까지 어울려야지. (조금만 어울리면 나머진 먼저 돌아가란 건가. 다시 옆을 보니 귀끝이 빨개진 게 보여 입꼬리가 올라간다.) 저녁엔 스테이크 먹기로 했었지.
노애리:그, 그러니까. 포케든 팬케이크든 팔찌든……. 다 아저씨한텐 귀찮고 안 맞는 것들일지도 모르겠지만 돌아갈 때까지만 어울려 달란 이야기예요! (여전히 네 얼굴을 외면한 채 고개를 살짝 수그렸다.) …… 응. 수영도 하구. …… 저녁에는 아저씨가 다녀오자마자 곯아떨어진대도 봐줄게요.
유명한:귀찮아도 네가 좋아하는 걸 보면 나도 좋으니까. (슬슬 차가 해변가에 가까워진다. 겹쳐 쥔 손등을 쓰다듬다 속도를 천천히 늦추며 고개를 내밀어 네 붉어진 뺨에 쪽 입을 맞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앞을 본다.) 글쎄, 애리가 밀린 뽀뽀 다 해준다고 하면 안 자겠지.
노애리:무, 무슨……. (얼굴뿐만 아니라 귀까지 붉어진 채 놀란 표정으로 널 돌아본다. 다른 손으로 네 팔뚝 위를 찰싹찰싹 때린다.) 변태 저질! …… 미, 밀린 기억 같은 거 없거든요. …… 바보.
유명한:왜 밀린 기억이 없어. 아니면 다 모아서 더한 거로 하게? (백미러로 네 얼굴을 확인하며 계속 낄낄거린다.) 아, 그만 때리고 저기 좀 봐라. 저기 아냐? 포케?
유명한: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바깥을 내다보면 저 멀리 바닷가에 무언가 커다란 일렁임이 보입니다.
이 먼 거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크기의 물보라라니, 용오름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혹시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 떼라도 있는 걸까요? 아니면 무언가…… 자연현상?
유명한:
지능
기준치: |
65/32/13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아니요,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물고기 떼의 움직임이라면 형체가 보여야 할 것이고, 조금 더 잔물살이 많이 튀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저 파도의 움직임은 마치 생물 하나가 걸어가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SAN Roll
기준치: |
39/19/7 |
굴림: |
70 |
판정결과: |
실패 |
노애리:아, 확실히 다 왔나 봐요. 바다 냄새도 더 진해진 느낌이고……. (몸을 쭉 빼고 해변가 쪽을 바라보고 있다.) 갑자기 배고파요.
유명한:응. 파도가 제법 치네? (별 이상을 못 느끼고 같이 해변을 흘끔 본 뒤 다시 페달을 밟는다.) 두 그릇 먹을 수 있을 것 같냐.
노애리:그, 그래도 두 그릇 먹으면 팬케이크를 못 먹게 될지도 몰라요! …… 아, 대충 저쪽에 차 세워 놓으면 되려나?
유명한:그럼 팬케이크를 많이 먹든가? …… 으음. 그래. 저기 세우자. (차가 미끄러지듯 네가 가리킨 곳에 멈춰선다.) 이래서 비싼 차가 좋아……………….
차를 해변가에 멈춰 세우면 바다향이 우리를 반깁니다. 간단히 주위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노애리:(홀랑 차에서 먼저 내려 문을 닫고, 기지개를 켠다.) 으응, 이제 진짜 하와이! 라는 기분이 팍팍 들기 시작했어요.
유명한:(뒤따라 차에서 내려 문을 잠근 뒤 주변을 바라본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 것 같지도 않네?
노애리:그러게요. 관광지 눈치 게임에 성공했나……. (종종걸음으로 네 곁에 다가가 꼭 붙어온다.)
주위를 둘러보면, 한쪽 구석에 꽃이나 간단한 음식 종류가 놓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이 마치 무언가에게 공양을 올리는 듯한 모양새라는 점을 깨달을 것 입니다.
유명한:그런 게임도 있어? (같이 주변을 보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꽃과 음식들을 바라본다.) …… 제사 지내나.
노애리:아니, 그런 게임이 진짜 있다는 게 아니고……. 아니에요. (네 곁에 서서 저도 그것들을 멀뚱히 바라본다.) 이거 가져가면 어떻게 돼요?
유명한:저주받겠지? (예전 같으면 이런 말을 안 했겠지만, 널 만난 뒤로 전혀 가볍게 보이질 않았다. 무릎을 털고 일어나 네 손을 잡았다.) 뭐하러 남이 두고 간 걸 가져가. 자자, 밥 먹으러 가자.
막 그곳을 떠나려던 참, 마침 나타난 어느 청년이 그 공양물들 사이에 꽃을 한 송이 올리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바다 쪽을 바라보고 손을 모으는 청년은 무엇에게 기도하고 있는 걸까요?
어딘가 경건해 보이기도 하고, 간절해 보이기도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명한:(물어보고 싶지만 영어가 짧으니 입 꾹…….)
노애리:(그 모습을 지켜보다 기웃기웃 다가가 대뜸 말을 붙인다.) 뭐하는 거예요? 기도? 제사???
청년:아, 바다에 사는 인어에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유명한:인어……? (미신을 믿는 사람이 제법 되나 보다. 여전히 꾸물거리며 네 옆에 찰싹 붙었다. 남자다. 남자. 적이야.)
노애리:??? (제게 붙어오는 네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 힐끔 올려다보고서는 여전히 신기한지 계속 기웃거린다.)
청년:이 바다 너머 어딘가에는 인어가 살고 있어요. 정확히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가끔…… 이렇게 날이 맑은 때에는 커다란 물보라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는 하거든요.
유명한:???? 아까 물보라가 쳤는데??? (??????)
청년:보셨나요? 그게 바로 ‘인어의 발자취’ 입니다. 인어가 지나가는 걸 보다니, 무척 드문 일인데 엄청난 행운이시네요. 뭔가 좋은 일이 있으실지도 몰라요.
노애리:응……? 뭘 봐? 무슨 물보라? (남자와 네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혼자 어리둥절…….)
유명한:내가 진짜 인어를 봤단 겁니까? (??????) 아니, 아까 바다가 좀 이상했거든. 그게, 꼭 뭐가 걷는 것처럼……. 어. (꽁꽁 얼었다.)
유명한:나…… 인어를 봤다는데? (같이 어리둥절)
청년:저는 뱃사람인데요, 인어들에게 배가 길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면 항해에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도가 높아서 바다가 멀리 보이는 이곳이라면 인어가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으니까 말이죠. 부럽네요, 저도 보고 싶은데.
노애리:뱃사람이시구나. 어쩐지 몸이 좋으시더라. (웃는 낯으로 대답하고서는 다시 널 올려다본다.) 좋은 일이 있을 거래요. 돌아가면 로또나 사자.
유명한:방금 지나갔으니 그쪽도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로또 사는 걸 까먹지나 마라. (아직도 얼떨떨하다. 그보다…….) 몸이 좋아?! 누가?! 씁, 밥이나 먹으러 가. 얼른!
노애리:아니, 그치만 모처럼 만난 분인데……. (아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청년을 바라본다.)
청년:아, 두 분 혹시 식사 전이신가요?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는 저쪽 해변의 집 M.M의 주인 아들이거든요. 괜찮으시다면 해변의 집으로 놀러오시겠어요? 서비스도 드릴게요. 모처럼 만나뵈었으니까요.
유명한:……. (노골적으로 팬케이크나 먹으러 갈 걸 그랬단 표정이 된다.) 뭐……. 그럽시다……. (또 혼자 쌩하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내가 저만큼 몸이 좋은 건 아니어도 굳이 그렇게 웃으면거 그런 말을 하고 그래야 하나? 응?)
노애리:럭키! 우리가 사람을 잘 알아봤네요. (네가 먼저 쌩 가버리면 청년과 함께 맞춰 걷기 시작하며 옆에서 조잘거린다.) 안 그래도 포케라는 거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하와이에 오는 건 처음이라 여기가 제일 맛있대서 와본 건데요, 아, 어쩌면 아까 말한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게 이거일지도 모르겠어요.
유명한:(잘도 떠드는구만. 이제 네 목소리마저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해 걸음이 더더욱 빨라진다. 해변의 집 간판이 보이자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 아무데나 앉아선 다리를 꼰다. 뭐, 경치는 좋네, 뭐…….)
한적한 바닷가 한 켠을 장식한 해변의 집입니다. 서퍼들이나 수영을 하던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인기가 있는 가게인 것 같지만 오늘은 운이 좋았는지 한산해요.
해변의 집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단촐한, 아니, 담백한 메뉴판이 당신을 반깁니다.
그날그날 바다에서 공수해오는 신선한 회와 야채가 듬뿍 들어간 포케가 제일 인기 있는 식사 메뉴입니다.
참치회, 연어회, 새우를 고를 수 있는 하와이식 회덮밥이네요.
그리고 진짜 코코넛 껍질 속에 가득 담아주는 코코넛 아이스크림, 달콤한 망고 쉐이크, 과일 주스, 맥주 등이 있습니다.
노애리:(여유롭게 들어와서는 네 맞은편에 탈싹 앉아 턱을 괸다.) 아저씨 엄청 배고팠나 봐요. 되게 빨리 가던데. 있죠, 저 사람 서른 다섯이래요.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그쵸? 동안이야.
유명한:…… 그렇네. (젋고 근육 빵빵한 연하라 좋았나 보지. 혓바닥까지 올라온 말을 물과 함께 삼킨다. 네게 시선을 주지 않고 메뉴판을 들이민다.) 나는 참치로 할래.
노애리:으응, 참치도 먹고 싶고 연어도 먹고 싶은데……. (한참 고민하다 청년에게 손을 흔들어 불러서는 주문을 했다.) 그럼 난 연어요. 아저씨 참치랑 반반 섞을래. 그래도 되죠? 연어회 포케랑 참치회 포케 주세요.
유명한:상관 없어. 마실 것도 시켜라. (그런데 딱히 볼 것도 없다. 괜히 창밖만 계속 바라보며 제 무릎에 손을 얹고 손끝을 토도독 두들긴다.)
명한과 애리는 청년에게 맛있어 보이는 망고 쉐이크 두 잔을 서비스로 받습니다.
노애리:대박, 역시 말 걸기를 잘 했다니까. (활짝 웃는 낯으로 쉐이크를 한 입 마신다.) 있죠, 아저씨. 고민되기 시작했는데 밥 먹고 바로 팬케이크를 먹으러 가는 게 좋을까요, 팔찌를 만들러 가는 게 좋을까요?
유명한:……. (쉐이크엔 손도 안 대고 고개를 돌려 네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켜본다. 태평하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네…….) 팬케이크까지 들어갈 자리 없잖아. 팔찌 먼저 만드는 게 낫지.
노애리:으음, 그런가? 그럼 팔찌 먼저 만들어요. 후후, 커플 팔찌 만들면…… 평소에도 하고 다녀줄 거예요?
유명한:…… 출퇴근 할 때 하고 다니면 금방 끊어지지 않을까? (심각)
노애리:그, 그런가……. 그럼 집에서만 해요? 그것도 뭔가 의미 없는 것 같은데……. (시무룩…….)
유명한:놀러다닐 때 하고 간다든지……. 너도 겨우 만든 팔찌가 나쁜 놈들 손에 끊어지는 건 싫지 않냐?
노애리:그건 그렇지만요……. …… 으응, 알겠어요. 그럼 데이트할 때만 끼는 걸로 해야겠다……. (납득은 했지만 여전히 시무룩하다.) 아저씨, 이 망고 쉐이크 맛있으니까 먹어 봐요.
유명한:퇴근해서 하고 출근할 때 벗으면 되니까 표정 좀 풀어라. (이어 쉐이크를 권하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회랑 단 걸 같이 마시긴 좀. 너 많이 마셔. 날이 더우니 수분 보충은 충분히 하는 게…… 좋지……. (으득)
노애리:네? 그치만 공짜잖아요? 아저씨도 방금 전까지 마실 것도 시키라고 했잖아요. 진짜 맛있다니까요? (네 몫의 쉐이크를 가까이 밀어준다.)
유명한:알아서 네가 안 단 거로 시킬 줄 알았지. 진짜 맛있으니까 애리가 많이 마시자? (절대 질투하는 건 아니다. 아니라고.)
노애리:…… 여기 안 단 게 어디 있어요. 과일 주스랑, 네? 망고 쉐이크랑…… 맥주밖에 없었는데. 별 이상한 트집이야. (시무룩한 얼굴이 풀리지 않은 채 네 쉐이크를 제게 휙 끌어온다.) 됐어요, 그럼! 제가 둘 다 마실게요. 좋은 마음으로 주신 거니까 내가 두 배로 갚는 셈이죠, 뭐.
유명한:…… 아무튼. (싫어. 잘생기고 훤칠하고 근육질이고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이 어린 놈이 준 서비스 따위 진짜 싫다. ……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그걸 네가 마시는 것도 싫다. 네가 가져간 쉐이크를 다시 잡는다.) …….
노애리:(쉐이크를 마시며 다른 쉐이크도 손에 꼭 쥐고 있으려니 네가 다시 가져가는 손길이 느껴진다.) …… 뭐예요?
유명한:…… 배탈 나. (다시 쉐이크를 가져다 제 앞에 놓지만 딱히 마시진 않았다. 음식이나 빨리 나왔으면…….)
노애리:(손을 뻗어 홱 그 쉐이크를 다시 가져온다.) 한 번에 마실 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애도 아니고. 방금은 나한테 많이 마시라면서 왜 이래, 진짜. 나 놀려요?
유명한:아, 그래라! 그래! 젊은 놈이 준 거 마시고 두 배로 갚든가. (성질을 내며 손을 거둬 팔짱을 끼고 다시 창밖을 쳐다본다.)
노애리:아, 진짜. 왜 짜증이야! (저도 버럭 소리를 치고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그런 말은 안 돼요! 서비스 준 사람한테 무슨 심통이야! 아까부터 이 아저씨가 초등학생처럼 왜 이래.
유명한:그럼 달라붙지나 말았어야지. 몸이 좋네 어쩌네부터 시작해서 옆에 착 붙어가지곤 쫑알쫑알……. (네 얼굴은 보지도 않고 혼자 중얼거리며 속 좁은 놈처럼 굴었다.)
노애리:네? 누, 누가 달라붙었다고…… 아저씨가 먼저 갔잖아요, 나 버리고. (턱을 괴고 테이블 아래 발끝으로 네 정강이를 톡톡 건드린다.)
유명한:버리긴 누가 버렸다는 거야. (먼저 좋아서 그러고 있는 걸 내가 다 봤는데. 정강이에 발이 닿자 비로소 고개를 돌린다.) 내가 네 샌드백이야?!
노애리:(네가 소리치면 깜짝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뜬다. 건드리던 발을 치워내고 놀란 탓에 말을 더듬으며 목소리가 차츰 작아진다.) 왜, 왜 화내요! …… 때린 것도 아니고, …… 그, 그냥 건드리기만 한 건데…….
유명한:나는 걸핏하면 때리기만 하면서 젊은 놈 하나 보이니까 외모 칭찬부터 나오는데 화가 안 나? (아, 꼴사납다. 그래도 어떻게 해. 좋아하면 아무리 티끌만한 일이어도 높은 해일이 닥치듯 크게 느껴지는걸.) 정 모르겠으면 상황을 반대로 놓고 생각해 봐라. 내가 다른 여자 보고 몸매가 참 좋으시네요~ 하고 헬렐레 하고 있었겠네. 흥.
노애리:아, 아니…… 내가 언제 때리기만 했다고……. (변명을 하려다가도 말수가 사라진다. 손끝을 테이블 아래서 꼼질거리며 네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 저, 저는 그냥 립 서비스 차원이었고……. 헬렐레 하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 그거 때문에 화난 거예요?
유명한:……. (그 사소한 립 서비스마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던가. 괜히 간밤의 일도 떠올라 속이 뒤엉킨다. 그래, 그래. 그리 깊은 관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거지. 쉐이크 대신 찬물을 들이킨다.) 그래. 립 서비스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거지. 그럼 됐어. 내가 별것도 아닌 일에…… 후.
신선한 회가 올라간 먹음직스러운 포케가 테이블 위를 장식합니다. 아보카도나 양파 등이 색채를 더해 더욱 알록달록해 보이네요.
노애리:……. (여전히 눈치를 살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결과적으로는 나 덕분에 서비스를 받은 거라 봐도 무방하고. 그래도 부끄러운 탓에 걸핏하면 때리기만 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쉐이크를 한 입 마시며 음식을 가만히 보기만 한다.) …… 이제 안 때릴게요. 아저씨 안 때릴게요.
유명한:말이나 못 하면. 밥이나 먹자. (안 때린다고 말을 한다 해서 고쳐질 거였으면 진작 하지 않았을 거다. 여전히 축 처진 모습을 보다 제 그릇에 담긴 참치회를 거의 전부 덜어 네 그릇에 넣고 남은 음식을 쓱쓱 비빈다. 대충 이렇게 먹으면 되겠지?)
노애리:너, 너무 많이 줬잖아요……. (저도 황급히 연어회를 덜어 네 그릇 위로 옮겨 준다. 한층 풀이 죽은 얼굴로 숟가락을 들고 아보카도만 깨작이며 먹기 시작했다.) …… 그냥 그렇네.
유명한:넌 좀 많이 먹고 쪄도 돼. (맛은 꽤 괜찮다고 생각하며 먹고 있는데, 네가 기껏해야 아보카도만 먹고 있으니 한숨을 쉬었다. 암만 봐도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고 그냥 내가 기분 나빠 보이니 저러는 것 같은데. 제 숟가락으로 포케를 듬뿍 떠서 그 위에 회도 올려 네 입가로 가져간다.) 자, 먹어.
노애리:……. (시무룩하게 네 얼굴을 바라보다 마지못해 입을 벌렸다. 양이 많아 낑낑대며 한 입에 받아먹고서는 오랫동안 우물거리다 삼켰다.) …… 혼자, 응, …… 먹을 수 있어요. (투덜거리듯 말하고 쉐이크를 마셨다. 제가 가져왔던 네 쉐이크는 다시 슬금슬금 네 쪽으로 밀어놓는다.)
유명한:혼자 못 먹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 (얘는 대체 날 뭐라 생각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아예 숟가락을 내려놓고 네 옆자리에 앉아 네 몫의 그릇과 숟가락을 빼앗아 들었다. 다시 한 숟갈을 퍼서 입가에 댄다.) 아.
노애리:호, 혼자 먹을 수 있다니까요. 애도 아닌데……. (귀끝을 붉히며 반대쪽으로 살짝 얼굴을 돌린다.) …… 다, 다른 사람들이 볼 거예요.
유명한:보든가 말든가. 진짜 안 먹어? (어차피 사람도 몇 없는데 뭐가 어때서. 다시 숟가락을 들이민다.) 아아~ 팔이 다 아프네~
노애리:지, 진짜……. (원망스레 입을 삐죽이며 널 흘겨보다가 결국 천천히 받아먹는다. 느리게 우물거리며 네가 든 제 그릇을 붙들었다.) …… 혼자 먹을 거예요……! 바보.
유명한:바보라 이런다, 왜? (네가 빼앗으려 든다 해서 뺏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다시 한 숟갈을 먹기 좋게 뜨려 숟가락을 움직이며 말을 덧붙인다.) 아직도 맛이 그냥 그래? 그러면 그만두고.
노애리:…… 맛있어요. 그, 그러니까 이제 그만 아저씨도 먹어요! 아저씨도 먹여 줄까요? 네에? (제 그릇을 뺏는 걸 실패하자 못마땅하게 네 그릇을 끌어온다.)
유명한:뭐하러 네가 날 먹여. 나는 알아서 잘 먹거든? (그제야 그릇을 돌려주고 제 그릇은 제 앞으로 가져온다. 여전히 저 아들놈인지 뭔지는 별로지만 음식은 맛있다. 이미 반쯤 녹아버린 쉐이크도 가져와 한모금 쭉 마셨다.) …… 윽.
노애리:망고 쉐이크, 처음 나왔을 때가 진짜 맛있었는데. (네가 쉐이크를 마시면 그제서야 화색이 조금 밝아진다. 숟가락을 들고서 조금씩 포케를 떠먹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냥 화내지 말구 먹었으면 좀 좋아…….
유명한:……. (장담하건대 이건 처음 나왔을 때도 엄청나게 달았을 거다. 입에 안 맞을 수밖에. 제게 있어서 단 음식이란 달착지근한 믹스 커피 정도가 딱 좋았다. 너보다 확연히 빠른 속도로 포케를 먹다 혀를 찬다.) 왜 화가 났는지 돌아가기 전에 알기나 하면 다행이겠네.
노애리:……. (아직도 자꾸만 제가 잘못한 사람처럼 말하는 네 태도에 저도 그만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저도 꾸역꾸역 빠른 속도로 포케를 해치우려 노력했다. 순 제멋대로야.) 그럼 아저씨도 똑같이 바다에 가서 여자들한테 몸매 좋다고 말하고 다녀 보든가요.
유명한:…… 그래도 너는 아무 생각 안 드냐? (이게 지금 정상적인 관계에서 나올 대답인가. 열심히 포케를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널 쳐다봤다.)
노애리:……. (곁에서 네 시선도 느껴지고, 당연히 좋은 기분은 아닐 거란 걸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괜히 오기가 생긴다. 아무튼 내가 말한 건 다른데. 시선을 외면하며 고집을 피웠다.) …… 어, 어차피 내 몸매가 더 좋을걸요…….
유명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지? 저도 별 것 아닌 일로 화가 나긴 했지만 방금 그 대답은 정말 기분이 나빠서 입맛이 사라졌다. 무뚝뚝한 표정이 되어 기계적으로 남은 포케를 먹었다.)
노애리:(화라도 낼 줄 알았는데 아무런 대답도 없자 힐끔 옆모습을 바라본다.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살피다 깨작이며 남은 음식을 먹는다.) …… 저기, 그러니까……. …… 시, 싫어요……. 다른 여자한테 그런 말 하면…….
유명한:왜 싫은데. (대답한 뒤 마지막 한 숟갈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좋아한다는 것도, 고백이나 다름 없었던 말들도 네겐 거짓으로 들렸던 걸까. 묵은 생각들이 풀풀 올라와 속이 탄다. 쉐이크용 빨대를 빼고 잔에 입을 대 남은 것을 단번에 마신다.)
노애리:그게, 음……. (숟가락을 꼭 쥔 채 곰곰이 생각에 빠진다. 싫은 이유가 질투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과연 그렇게 대답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했다. 그랬다가 성가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자 침묵이 절로 길어진다.) …… 아무튼 싫어요.
유명한:…… 고집은. (사실 더 캐물을 것도 없다. 자신이 아무리 추측하고 재단하려 해도 너는 좀처럼 재단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무리였다. 좋아하게 됐고, 그래서 질투도 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지만.) 그래서 나도 싫어.
노애리:…… 응. (이번에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어색함과 민망함에 귀가 붉어졌다가 쉐이크를 마시며 괜스레 구구절절 말을 덧붙였다.) 그, 그치만. 진짜 아무 생각 없었어요. …… 별다른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어차피 나는 그냥 아줌마로 보여질 테구……. 립 서비스 같은 게 몸에 너무 익어서 그런 것뿐이니까…….
유명한:다른 여자보다 더 몸매가 좋을 거라며. (그야 어떤지 나는 모르지만, 어쨌든. 테이블에 턱을 괸 채 앞만 보며 낮게 말을 잇는다.) 그런데 어떻게 아줌마로 보이겠냐. 나랑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노애리:처음 만났을 땐 가면이었잖아요! (머뭇거리며 네 옆모습을 힐끔거린다.) 그, 그치만 맞잖아요!? 저도 안다구요? 제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군다는 것도, 나잇값 못한다는 것도……. 내, 내일 모레면 마흔이고……. 응.
유명한:그러니까, 전혀 나잇값 못하는 얼굴이시라구요. 아줌마. 저런 놈들이 보면 열에 아홉은 이 여자를 어떻게 구슬려서 넘어뜨릴까 생각만 한다니까? (핵심을 못 짚자 얼굴을 찌푸린다.) 내일 모레 마흔이면 뭐 갑자기 세상 다 산 노인처럼 굴어야 한다고 누가 그러든?
노애리:…… 그치만……. (빤히 그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 뜸을 들이다 묻는다.) …… …… 아저씨는요? 저런 사람들이랑 다르게 아저씨는 그런 생각 안 하는 사람이에요?
유명한:……. (생각도 못한 질문이 돌아오자 잠시 조용했다. 뭐 그런 걸 물어보냐…….) …… 너한텐 하지, 이제. 근데 너 그런 거 싫어하잖냐.
노애리:그럼 아저씨도 열에 아홉에 드는 거면서, 뭘……. …… 그, 그런 거요? 어떤 거요?
유명한:그러니까 싫은 거래도?! …… 만지거나, 키스를 길게 한다거나, 씻고 나와서 그대로 안고 잔다거나…….
노애리:어, 어딜 만져요? 어, 어제도 씻고 나와서 그대로 잤잖아요? ……. (뺨이 붉어진 채 잠시 조용해졌다가 고개를 기울인다.) …… 키, 키스도 싫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유명한:조용히 말해, 바보야. …… 아니, 조금만 길어진다 싶으면 바로 밀쳐내니까……. 나랑은 그러기 싫은가 했지. 아니면 그럴 사이가 아니라 생각하나, 하고…….
노애리:…… 나, 나랑은이라고 표현하면 꼭 다른 사람한텐 허락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 물론 첫 키스라든가, 조금 이르게 해버리긴 했지만……. …… 지금도 충분히 과하게 이것저것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단계에서…….
유명한:전에 만난 남자도 있을 거 아냐. …… 지금 단계가 무슨 단계인데?
노애리:……. (썸이라고 대답했다가는 혼자 그리 생각하고 있으면 어쩌지 싶다. 사귀지 않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사귀는 게 전제되어 있는 것 같고……. 어쩐지 점점 심각한 얼굴이 되어간다.) …… 나, 남남인 사이……?
유명한:……. …… 너는 남남인 사람 집에 가서 자고 키스하고 그러냐?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되묻곤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미쳤나?) 내가, 전에, 그, 이상한 곳에 끌려갔을 때 했던 말은…… 뭔데?
노애리:아, 아니, 그러니까. 그래서 충분히 많이 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 어, 어떤 말이요……?
유명한:…… 같이 있자고…… 했잖아. 그리고 그. (얼굴이 점차 붉어진다.) 놀이공원에서도……. 너 바보야?!
노애리:가, 같이 있잖아요……? (제가 뭔가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점점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어간다. 놀이공원이라고 하면…… …… 몇 번이고 네게 있어서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실감한 기억밖에 없다. 어쩐지 조금 울적해진다. 그러면서 나보고 이런 거 저런거 싫어한다느니…….) …… 아저씨가 더 바본데.
유명한: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가벼워? 이 바보 천치 멍청이. (기껏 한다는 욕이 그게 전부라 스스로가 한심해진다. 누가 누굴 보고 바보래? 완전히 얼굴이 붉어져선 자리에서 일어난다. 계산이나 해야지.)
노애리:네에? (자기야말로 뭐든 다 가볍게 생각하면서! 키스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널 뒤따라간다.) 누, 누구더러 바보래요! 아무것도 모르는 이 바보 변태 천치 저질 멍청이.
당신이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에 서면, 아름다운 빛을 내는 수정이 눈에 띕니다.
가게 안쪽에 고이 전시되어 있는 그 수정은 얼핏 보기에는 상아색을 띄고 있지만, 또 각도를 조금 바꾸어보면 오색 찬란한 빛을 냅니다.
유명한:(뒤에서 들려오는 질타가 어이 없어 웃음을 흘렸다. 저러다 혼자 우물을 파겠네. 지갑을 꺼내 결제를 하는데 옆에 있는 수정에 눈길이 끌린다. 이건 또 뭐람.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홀린 듯 쳐다본다.)
예술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값이 나가보이는 비싼 수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웃거리며 바라보자 수정이 들어있는 투명한 유리 케이스 아래에 ‘인어를 그리며’ 라고 적혀 있는 게 보입니다.
확실히 그 수정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인어의 비늘을 연상시키는군요.
유명한:뭐만 하면 인어야, 무슨. (슬슬 질린다. 그나저나 이렇게 비싸 보이는 걸 막 내놔도 되나? 질렸다고 생각한 주제에 계속 쳐다본다…….)
노파:뭘 그렇게 쳐다보지? 수정이 마음에 들었나?
노애리:(옆에서 같이 기웃거린다. 아저씨 이거 갖고 싶은 건가…….)
유명한:(이 동네는 프라이버시가 없나…….) 아, 예뻐서요. 인어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대도 이상하지 않군요. (등에 땀이 난다………………….)
노파: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쉽게는 이야기해 주지 않을 거야. 많은 사람들이 이 수정을 보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오거든.
노파에게 위협을 제외한 대인기능 판정 성공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애리:(전시된 수정에 가만히 얼굴을 가까이한 채 빤히 쳐다본다.)
노애리:응? (네 쪽을 돌아본다.) 아저씨가 궁금한 거 아니었어요? …… 물론 궁금하긴 한데. (정확히는 값어치가)
유명한:이런 거 보면 신기하잖아. (눈을 마주친다.) 궁금하면 뭐…….
매혹
기준치: |
15/7/3 |
굴림: |
69, 56, 96 |
+2: |
실패 |
+1: |
실패 |
0: |
실패 |
-1: |
실패 |
-2: |
대실패 |
말재주
기준치: |
35/17/7 |
굴림: |
64 |
판정결과: |
실패 |
설득
기준치: |
10/5/2 |
굴림: |
24 |
판정결과: |
실패 |
노애리:이 수정은 무슨 수정이에요? 저희는 그냥 관광객인데 수정이 너~무 예쁘니깐…… 비싸 보이기도 하고……. 궁금해서~……. (괴도모드 ON)
말재주
기준치: |
60/30/12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유명한:……. (괴도 그만둔 거 아니냐는 눈)
노파:이건…… 내 옛날 친구인 인어가 선물로 준 물건이야.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추억이기도 하지.
유명한:(지긋한 시선 유지중) 인어를 만난 적이 있으신가 봅니다?
노파:그래. 이 지방의 인어 전설이 단지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음을 알아 주었으면 해서 늘 이렇게 꺼내두고 있지. 나에게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추억이니까. 살면서 한 번쯤은 다시 겪어보고 싶을 정도로.
유명한:단지 이야기가 아니라고요……. (곰곰) 사실 아까 제가 물보라가 치는 걸 봤습니다만……. (여전히 미심쩍은 목소리다.)
노파:자네 이야기는 아까 아들에게서 들었네. 인어는 자의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 운명적인 조우가 필요하지. 운이 좋은 게야. 만약 그 기회가 찾아온다면 결코 두려워 할 것 없다는 걸 기억해 두라고. …… 나도 또 만나고 싶구만.
유명한:운명적인…… 사건은 최근 몇 번 겪긴 했는데요. (애리 흘끔)(또 흘끔) 제가 웃으면 인어도 웃을 거란 그 이야기처럼 말입니까? 화내는 일 말고 제가 조심해야 할 일이 있는지……?
노파:…… 생각보다 무서울지도 모르고, 겁이 날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상냥한 만남이 될 게 분명할 걸세.
유명한:요 아가씨가 탐욕스러운 겁쟁이라 조심해야겠네요. (어차피 안 들리겠지?) 귀한 이야길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 얌마. 그만 봐.
노애리:…… 응. (네 말에 아쉬운 듯 시선을 거두고, 노파가 자리를 뜨면 몸을 낮춰보라는 듯 손짓한다.)
유명한:…… 왜? (네 키에 맞춰 몸을 낮춘다.)
노애리:…… 훔치면 혼낼 거예요? (진지한 얼굴이다.)
유명한:넌 저 어르신이 말년에 보물을 잃어버려서 엉엉 우는 얼굴이 보고 싶어? (굉장히 리얼한 발언.)
노애리:말년이시니까 오히려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양도하면 오히려 기뻐하실지도……???
유명한:친구가 준 선물이래. (손 찰싹) 그보다 안 들었냐? 우리 인어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노애리:네……? 인어는 별로 관심없어요……. (시무룩하게 손 문질문질…….) 치. 몰래 가져가서 한국에 무사히 들고 가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유명한:왜 관심이 없어. 그 인어가 저걸 줬다잖냐. (뒤에서 따라붙어 어깨에 척 팔을 올린다.) 만나면 엄청 무섭댄다. 망원경 사서 인어 찾으러 다닐까?
노애리: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이렇게 인어에 꽂혔어요? …… 인어가 예쁠까 봐 그렇죠?
유명한:네가 탐내는 저 보물을 인어가 줬다니까? 생각해서 말을 해도 꼭 그런다. 보석 가지기 싫으면 마라. 난 저런 거 사줄 돈 없다.
노애리:…… 흥. 제 경험상요, 이런 건 찾으려고 하면 더 안 보일 거예요. 관심이 없는 사람들한테나 찾아오는 기회라구요.
유명한:농담도 안 받아치니 원……. (말을 말자. 기지개를 쭉 펴며 엄청 쩌는 오픈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노애리:이제 팔찌 만들러 가요? (네 옆에 착 따라붙어 묻는다.)
유명한:응. 아니면 드라이브 좀 더 할래? (착 붙은 네 얼굴을 쳐다본다.)
유명한:아저씨는 애리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싶은데. (놀림조로 속삭인다.)
노애리:…… 가, 갑자기 뭐예요! (습관처럼 주먹으로 팔을 퍽 때린다.)
유명한:아야……. 너 갈수록 손이 매워진다?!
노애리:그, 그런가? 아저씨가 갈수록 맞을 짓을 더 많이 해서 그런 거겠죠. …… 얼르은. 팔찌 만들러 갈 거예요? 드라이브 할 거예요?
유명한:안 때린다며……. (아프다. 시무룩.) 어차피 내일 바다 실컷 볼 거니까 팔찌 만들고……. 팬케이크 먹고, 음. 돌아가서 열심히 놀고 스테이크 먹을까? (어쩐지 먹기만 하는 느낌.)
노애리:…… 그럴까요? 좋아요, 그럼. (신난 얼굴로 아프다는 네 말은 안 들리는지 홀라당 다시 조수석에 올라탔다.) 참, 만약에 배부를 것 같으면 팬케이크는 안 먹어도 돼요. 어차피 팬케이크는 한국에도 널렸으니까~ (여유롭게 기지개를 쭉 켠다.)
유명한:안 때린다며! (빽!) 돌아가도 하와이에서 파는 팬케이크는 안 파니까 칭얼거리지나 마라. (운전석에 앉아 네 안전벨트부터 꼭꼭 매어준다.) 지도 좀 다시 보자. 어딨어?
노애리:그치만 팬케이크 먹으면 스테이크를 많이 못 먹을 것 같은 기분이……. 하와이에서 파는 팬케이크랑, 최고급 리조트에서 맛볼 수 있는 스테이크 중에 뭐가 더 아깝냐고 하면 당연히 후자인 것 같아서……. (말끝을 흐리며 주섬주섬 지도를 꺼내 준다.) 여기.
유명한:그럼 그렇게 해. (어차피 달큰한 건 아까 잔뜩 먹었다. 지도를 받아들어 이리저리 가늠하다 시동을 걸었다.) 근데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냐? (부릉부릉~)
노애리:아, 그런가? 완전 좋은 생각인데요. 아저씨 천재다. 그럼 팔찌 만들구, 팬케이크 포장해서 돌아가면 딱 되겠어요. (편하게 몸을 기대고 바깥을 구경한다.) …… 그리고 역시 둘만 있는 게 좋달까…….
유명한:내가 원래 좀 엘리트긴 해. (식후인지라 빠르게 달리기보단 부드럽게 차를 몰며 지나가는 차들도 겸사겸사 구경한다.) 둘이서 뭘 그렇게 하고 싶으실까~ 어제는 안 그러더니.
노애리:그, 그런 게 아니라요! 바보! …… 아까처럼 얘기할 때에는 둘만 있는 게 더 편하니까 그런 거예요! (뺨을 붉힌 채 발끈하며 외쳤다.) 어제도 둘이 있어서 좋았거든요!
유명한:그거 내가 다 한 말이라고요. 아줌마. (이제 대놓고 놀려댄다.) 어제는 둘이 있어서 뭐가 좋으셨대요?
노애리:……. (짜증 나. 입을 꾹 다문 채 보란 듯이 등을 돌리고 옆으로 앉아버린다.)
유명한:그러다 교통사고나면 겨우 구한 목숨 다시 날아가. 똑바로 앉아. (금세 훈계조로 바뀌어선 등을 툭툭 친다.)
노애리:……. (더 짜증 난다. 입이 댓 발 튀어나온 채 똑바로 앉는다.)
유명한:아니, 진짜. 뭐가 좋았냐고 묻는 것도 하면 안 돼? (알다가도 모르겠다. 슬슬 공방에 가까워지자 속도를 더 낮춘다.)
노애리:…… 둘이 있어서 좋은 거에 이유가 있어요? 난……. 없는데. (제가 말했지만 여전히 뺨이 붉어진 채 괜히 창밖을 바라본다.)
유명한:아저씨가 좋아서 좋아요 정도는 할 수 있지. (그게 너 잘하는 립 서비스가 아니면 뭐래. 또 얼굴이 붉어진 걸 보고 웃음이 터진다.) 남남 사이에 이유 없이 좋고 그러냐. 바보. 왕바보.
노애리:……. 아이 씨, 진짜! (네 쪽을 돌아보고는 팔뚝을 약하게 때려댄다.) 자긴 맨날 아무렇지도 얼굴로! 누가 봐도 놀릴 생각 다분한데 묻는 것도 안 되냐고 하고! 짜증 나.
유명한:난 물을 자격도 놀릴 자격도 있어. 이미 사귄다고 생각하고 미래 계획도 세우고 있었는데 누구 덕분에 다 엎었거든. 심지어 안 때린다고 한지 한 시간도 안 지나서 또 얻어맞고 있잖냐. (어깨를 으쓱인다. 근데 왜 내 속이 쓰리지.)
노애리:……. (네 말에 두 눈을 깜박였다. 무슨 소리야? 사귀자는 말도 안 했고, …… 미래 계획? 처음 듣는 소리마냥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본다. 때리던 손길을 머뭇머뭇 거두고서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무, 무슨……. …… 때린 건 사과할게요. …… 아저씨가 놀리니까.
유명한:좋아한다고 해도 사귀는 게 아니면 평생 못 사귀겠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핸들을 꺾어 공방 근처에 주차한다.) 계속 때릴 거면 안 때리겠다고 한 말을 취소하는 쪽이 빠르다. 알지?
노애리:…… 그, 그럼 취소할게요……. (얼떨떨하지만 일단 대답하고서는 아직까지 내릴 생각을 않았다.) …… 아저씨 진짜 이상해. 나한테 바보라고 하면서 아저씨가 제일 바보예요. …… 혼자 아무렇지 않은 얼굴 하면서 속으로는 이상한 생각 다 하고 있구…….
유명한:그걸 또 취소하는구만……. (혀를 차며 운전석에 늘어져 다시금 팔다리를 쭉쭉 편다.) 내가 왜 바보야. 내가 왜 아무렇지 않은데.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데? 서로 좋아한다고 하고 같이 있자고도 했는데 남남인 사이면 그게 대체 뭐냐. 나는 그걸 더 모르겠다.
노애리:나, 남남이라고 한 건 최대한 순화해서, 오해가 없게끔? 아무튼 고르고 골라서 한 말이었는데……. ……. (네가 그렇게 말했지만서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제 손끝만 내려다보며 만지작거린다.) …… 어젯밤에도, 심드렁한 얼굴로 그냥 잤잖아요. …… 뽀뽀하자고 해놓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유명한:어젯밤엔 그대로 붙어있고 싶었는데 고작 옷 입겠다고 나갔잖아. 그게 네가 말하는 무드 깨는 행동이 아니면 뭔데……. (머릿속 복잡함이 그대로 드러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솔직히 이제 그런 거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 생각했다. …… 사실 너는 별로 안 하고 싶으니까 그랬나 보다 싶어서 가만히 잔 거야.
노애리:…… 이것 봐. 아저씨는 말로는 안 해주면서 멋대로 생각하고……. 나도 아저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차마 네 쪽을 돌아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힘이 빠진 어깨는 축 처진 채였다. 어젯밤에 내가 그렇게 잘못 행동했던 건가? 제가 들떠서 달라붙어오면 늘 제 쪽이 애가 되는 것만 같고, 칭얼거리는 건 내 몫이 되었던 것처럼 느낀 기억만 왕창인데.) …… 그만 얘기할래요. …… 팔찌 만들러 가요.
유명한:하루 정도는 그대로 잘 수 있잖아. 좋은 곳에 놀러와서 기분도 좋은데…… 나도 어차피 가운 차림이었고. (그만 이야기하겠다는 말에도 계속 말을 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네 손목을 잡았다.) …… 왜 좋았던 건 기억을 안 해?
노애리:…… 그, 그래도…… …… 아저씨는 그런 거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이처럼 생각했다고 했지만 만약 그 이상의 사이였어도……. 뭐랄까, 저는 아직 마냥 편하기보다는 부끄러운 것들도 있고, ……. (여자로 보이고 싶은 마음뿐인데 누누이 이야기해도 그러고 있다는 말만 돌아오겠지. 네가 손목을 잡으면 흠칫 눈을 마주하며 움츠러든다.) …… 기억해, 해요, 당연히……. 좋았던 것도…….
유명한:……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련될 때만 부끄러워하나. 차분히 네 말을 들으며 눈을 바라본다. 잠시 말을 고르려 숨도 같이 골랐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걸까.) …… 오해했던 건 사과하지. 그런데…… 내가 너만큼 기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야. 싫어하거나, 이성으로 안 느껴지면 뽀뽀 같은 걸 할 리가. 이런저런 짓도 하기 싫다면 거짓말이지. 싫거나 두려운 것보다 좋았던 것부터 생각해, 응? 끽하면 투덜거리는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건 전부 잊어버려도 되는 거라고. …… 내가 그렇게 못미더워?
노애리:(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도리도리 양쪽으로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 이렇게 시작한 건 처음이니까……. (확실히 첫 단추가 어긋났던 건 사실이니 저로서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고, 또 좋아하는 만큼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 방식이 다른 거겠지. 아직은 네 말에 완전한 안심은 들지 못했다. 머뭇머뭇 손을 뻗어 네 손끝을 포개어 잡는다.) …… 그럼 앞으로 더 많이 만들어 주세요, …… 좋은 기억들.
유명한:천천히 걷자. 여태 뛰면서만 살았는데 앞으로도 뛰기만 하면 금방 넘어질 거야. 그러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네 손을 잡고서 살살 흔들었다. 이제 막 발을 떼려는데 각자 편한 속도로 가겠다고 싸울 이유가 없다.) 그럼 이제 진짜 팔찌 만들러 갈까?
노애리:…… 응. (발그레한 얼굴을 끄덕이고 그제서야 차에서 내린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다시금 장난스레 틱틱대는 목소리를 냈다.) 아저씨는 저한테 평생 잘하셔야 돼요.
유명한:(그 뻔뻔한 낯짝은 대체 얼마나 두꺼운 건지. 네가 볼 수 없을 때 중얼거리고서 뒤따라 차에서 내린다.) 너는 그럼 조금만 잘하게?
노애리:그, 그런 뜻이 아니라요. (종종걸음으로 네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아온다.) 아, 아저씨 나이에, 네? 나 같은 여자 만나는 거니까 잘하란 뜻이죠. 흥. 저는 늘 아저씨한테 잘하고 있거든요?
유명한:너 그런 말 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만나주는 것 같은 거 알아?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어깨를 으쓱이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덧붙인다.) 확실히 이번엔 돈을 열심히 쓴 건 알겠는데.
노애리:아이, 진짜! 그런 뜻 아니라니까요. (얼굴을 붉히며 삐죽인다.) 제, 제가 어리니까! 훨씬 어리니까. 거기다 여러모로 좋은 점도 많으니까! …… 제, 제대로 대접해 달란 거죠!
유명한:내가 늙었으니까, 훨씬 늙었으니까, 게다가 여러모로 능숙한 점도 많으니까 잘 받들 생각은? (귀엽네……. 몸을 틀어 빨개진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집도 내 줘, 때려도 뭐라 안 해, 뭘 더 추가하면 좋을지 생각해야겠다.
노애리:……. (할 말이 없어져 붉어진 얼굴로 네 시선을 외면한 채, 가만히 땅바닥만 쳐다보며 걸었다.) …… 어, 어차피 저 정도 만날 남자라면 그 정도는 기본 조건이잖아요? …… 아, 아마도. …… 그리고 저, 저는 명한 씨라서 좋아하는 거지 나이 많은 남자 싫어요!
유명한:그런가? 하긴 맞는 말이네. (비록 직업은 사라졌지만 돈도 충분히 있었고, 생긴 것도 예쁘지. 성격이 상당히 까다롭긴 해도……. 곰곰이 생각하다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그럼 여태 연하만 만났냐?
노애리:네? 뭐……. (네가 인정하니까 괜히 더 부끄럽다. 우물쭈물 뒷말을 흐리며 슬쩍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내가 이런 거 물어봤으면 대답 안 해 줬을 거면서. 흥이다.) …… 비밀이에요.
유명한:야이, 사람 궁금하게. (차라리 기억이 안 난다든가 했으면 어이가 없어서 넘어갔을 텐데 이렇게 나오니 비밀을 캐고 싶어진다. 대충 형사의 직업병 같은 거지.) 진짜 비밀?
노애리:…… 벼, 별로 안 궁금하실 거잖아요. 흥. 아저씨는 저랑 다르게 어른스러우니까 구질구질하게 제 과거 같은 것도 신경 안 쓰이실 거고. (힐끔 네 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 그쵸?
유명한:그게 구질구질한 거랑 무슨 관련이라고?! 나이 정도는 물어볼 수 있잖아. 아니면 공정하게 서로 깔래?? (눈이 마주치자 입을 쭉 내민다.) 아니라고!
노애리:아저씨 구질구질하다. 내가 먼저 물어봤으면 화냈을 거면서. (네 입에 쪽 입을 맞추고는 메롱, 혀를 내밀고서 먼저 공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유명한:……. (구질구질? 내가? 쏜살같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냥 들어가지 말아버려? 아니. 그러면 더 구질구질하지 않아? 결국 금세 또 화가 난 상태로 공방에 들어섰다.)
그렇게 규모는 크지 않은 공방, 유리 창문 너머로 하얀 원목으로 마감한 깨끗한 실내가 눈에 들어옵니다.
밖에는 ‘1시간 체험, 당신만의 추억을 엮어 가세요.’ 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조개 팔찌와 꽃 목걸이를 만드는 1시간 DIY 체험 코스 안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인어가 팔찌를 차고 있는 일러스트가 귀엽게 그려져 있네요.
친절한 공방 주인의 안내를 받아 약 1시간 정도 조개 껍질과 산호로 팔찌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명한:인어 진짜 좋아하네.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 네가 어디 있는지 찾는다.)
노애리:(이미 혼자 앉아서 들어갈 장식물과 구슬을 꺼내보고 있다.)
유명한:(네 앞에 척하니 앉아서 턱을 괸다.) 혼자 들어오니까 좋냐?
노애리:아, 구질구질 아저씨다. (장난스레 말하며 작게 웃으며 네게 팔찌 끈을 내밀어 준다.) 아저씨가 만든 건 제가 낄 거니까 정성스럽게 만들어 줘야 돼요.
유명한:구질구질 아저씨는 미적 센스 없는데. (흥! 콧방귀를 뀌면서도 팔찌 끈을 낚아챈다. 네가 꺼낸 파츠들을 구경하며 손으로 대충 주르륵 훑는다.) 무슨 색 좋아하는데?
노애리:…… 파란색? 보라색도 좋아요. 흰색도 들어가 있으면 예쁘겠다. (후후 웃으며 자그마한 조개껍질들을 하나하나 넣어본다.) …… 아저씨는요?
유명한:파란색 보라색 흰색? (듣긴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이, 전혀, 단 하나도, 없다. 꼬물꼬물 색이 맞는 장식들부터 모아 본다.) …… 검은색.
노애리:…… 그럼 제 거에도 검은색 끼워 주세요. 아저씨 거엔 파란색 끼워야지……. (후후 작게 웃으며 힐끔 네 얼굴을 살폈다.) …… 아저씨부터 알려줘요.
유명한:이 검은색 꽃 넣어 줄게. (막상 구슬을 꿰기 시작하니 절로 집중하게 돼 미간이 팍팍 구겨진다.) …… 뭐를.
노애리:…… 아니면 말구요. 별로 궁금해한 것도 아니면서 왜 물어본 거야, 그럼……. (들릴 듯 말 듯 작게 투덜거리며 시선을 거둔다.)
유명한:너 진짜 사람 열 받게 말하는 거 알지. (오히려 대놓고 말하고선 구슬을 주르륵 꿴다.) 나이가 비슷한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도 있었다, 왜?!
노애리:…… 이상하다기보단…… 왜요? (힐끔) 어린 건 싫어서요?
유명한:애초에 누구처럼 사람을 많이 만난 것도 아니고……. 고르고 다닌 것도 아니야. 그냥 그렇게 됐어.
노애리:…… 누, 누구가 저 말하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노애리:…… 줄 선 남자들 다 만나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 내가 그렇게 가벼워 보였어요!?
노애리:지금 말 다했어요!? (벌떡 일어나서는 소리를 치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유명한:걸핏하면 나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니 다른 놈들 만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그럼 뭔데? (올려다보는 제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애리:그, 그건 말이 그렇단 거지, 진짜로 그렇진 않았잖아요! ……. (씩씩거리며 입술을 꾹 깨물다 제가 만들고 있던 팔찌를 가볍게 네게 집어던졌다.) …… 진짜 그렇다고 해도 아저씨 입으로 그렇게 말하면 안되잖아요!
유명한:너만 불안했을 리 없잖아.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그 말부터 꺼내는데 전부 다 거짓말로 들리겠냐. 신빙성이 없는 말도 아니고……. (팔찌를 얻어맞고서도 별다른 반격은 없었다. …… 가볍단 말을 대체 어디까지 깊게 생각하는 건지.) …… 말이 심했던 건 인정해. 사과할게.
노애리:……. (울상이 되어서 제가 던진 팔찌를 도로 가져와서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괜스레 계속 팔찌만 만지작거리며 입을 삐죽였다.) …… 그냥 아저씨가 날 더 소중하게 생각해 주길 바랐으니까 그랬던 것뿐이에요…….
유명한:그럼 솔직하게 말하면 되잖아. (소리 죽여 한숨을 쉬고서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괜히 이목을 끌고 싶진 않은데.) …… 이미 내 목숨을 걸어서 구할 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
노애리:……. (네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런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참았던 눈물이 어느 정도 들어갈 무렵에 작게 중얼거린다.) …… 남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 진지하게 만난 사람은 딱 한 명이었고…….
유명한:……. (덩달아 할 말이 사라져 애꿎은 구슬만 넣었다 뺐다 하며 꼼지락댄다.) …… 그리고?
노애리:…… 뭐……. 연상은 아니었어요. …… 끝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떨군 채 다물었다.)
유명한:그거 말하는데 왜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그래. (손을 뻗어 팔찌를 네 손목에 얹어 본다. 너무 화려한가.)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싫거나 그런 거냐?
노애리:……. (팔찌가 닿으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대답을 하고 있지 않다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덧붙였다.) 꼭 그렇지만은 않죠. …… 오히려 너무 좋은 사람이니 죄책감이 들 수도 있는 거고.
유명한:(너무 좋은 사람인데 왜 헤어지나. 다시 팔찌를 가져와 장식을 전부 빼내고 처음부터 꿴다.) …… 반대로 좋은 사람이 너고, 그놈이 죄책감을 느꼈으면 하는 건 아닌가?
노애리:…… 왜 다시 만들어요? (힐끔 보며 묻고는 제일 예쁜 조개 껍데기를 찾으려 뒤적거렸다. 내가 물어볼 때에는 하나도 대답해 주는 게 없었으면서 되게 꼬치꼬치 묻네. 삐뚤어진 목소리로 되갚아주길 계속했다.) 아저씨도 아는 거 없잖아요. …… 이상한 추측하지 마세요.
유명한:마음에 안 들어서. (네가 골라내는 조개 껍데기들을 보다가 하나를 약삭빠르게 가져와 끈에 끼운다. 적어도 네가 차고 다닐 팔찌가 더 예뻤으면 했는데. 이 미적 감각으로는 아무래도 힘들지 싶다. 그러다 다시금 얼굴을 팍 구기고 말았다.) 아, 예. 그러세요.
노애리:(뭐야? 왜 저런담. 흥……. 네 반응을 모르는 척 예쁜 검은색과 파란색 구슬을 꿰었다.) …… 이제 알겠죠? …… 가벼운 여자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유명한:……. (먼저 말해놓고 반응하지 말라 하시니 입을 다무는 수밖에. 제 눈에 가장 나아 보이는 구슬과 장식을 죄다 끼우고 다시 네 팔목에 댄다.) 그래.
노애리:비교적 마음에 든다면서 왜 자꾸 다시 만드는 건데요!? 주기 싫어요?
유명한:먼저 뭣같이 말한 게 누군데. 당연히 더 잘 만들고 싶으니까 다시 만드는 거잖아.
노애리:아니, 아저씨가 먼저 비교적이라 하고…… 하아. (그저 한숨만 내쉬며 다 만들어진 팔찌를 탁 내려놓았다.) 됐어요. …… 전 다 만들었어요.
유명한: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아, 됐어. (다시 입을 다물고 팔찌를 다시 만든다.) …….
노애리:(울적해.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마냥 오르락내리락 말도 아니다. 원래 이런 건가? …… 좋아하는 사람이랑 처음 온 여행인데. 저도 입을 다물고 턱을 괸 채 더 예쁜 조개 껍데기가 있나 손끝으로 뒤적이기만 했다.)
유명한:(좋은 생각을 해도 아니어도 이 꼴이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소중하게 대해지고 싶어서 금방 떠날 거라고 말하는 것도, 굳이 제 앞에서 전 애인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말하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 네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시선을 책상 위에 고정하고서 한참 고민하며 구슬을 끼운다. 끝내 남은 끈을 한데 묶고 잘랐다.)
노애리:(더 마음에 드는 조개 껍데기를 찾자 하나를 바꿔 끼웠다. 제가 마무리가 될 무렵 네 쪽도 대강 끝난 것 같아 그저 머뭇거리면서 팔찌를 손에 들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다 제 손을 슥 내밀었다.) …….
유명한:(내가 잘못했다는 건 안다. 근데, 너도 잘못했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가장 답답하다. 시야에 들어온 손목에 팔찌를 끼워주고 네 손에 들린 팔찌는 제 손목에 끼우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노애리:아, ……. (끼워 주려고 한 타이밍을 놓친 채 바보같은 얼굴을 하고서 널 올려다본다. 눈길도 주지 않는 네 모습을 보고서 그저 저도 허둥지둥 따라 일어나 쫓아갈 뿐이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탓인지, 울상을 짓지 않고 그저 조금 쓸쓸한 시선을 땅에 박았다.)
유명한:(이대로 돌아갈 수도 없고, 딱히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먼저 밖으로 빠져나와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다 네가 따라나오자 손을 낚아채 잡고 걸음을 옮긴다.)
노애리:……. (네 곁을 한 발짝 느리게 걸으며 바다가 펼쳐진 해변가 쪽을 바라본다. 괜한 말을 했다가는 네 화만 돋구거나 무시나 당할 것 같으니 아무 말도 않고 있는 게 나을까. 입을 열었다 닫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다 얌전히 걷는다.)
유명한:(진짜 할 거 없네. 앞을 향해 쭉 걷다 보면 미리 확인했던 수영복 가게가 나온다. 잠시 간판을 보며 고민하다가 여전히 손을 잡은 상태 그대로 가게에 들어간다. 그나마 아까 있었던 일을 모르는 척이라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서.)
수영복 가게입니다. 하와이안 셔츠부터 래쉬가드, 원피스… 등등 예쁜 수영복들을 많이 팔고 있습니다.
탈의실이 있고, 바로 앞이 바다니까 여기서 구매하고 바로 입고 바다로 직행해도 좋겠지요!
노애리:…… 아, 아저씨? (얼떨떨하게 네 옆모습을 올려다본다. 먼저 말을 붙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을 꼭 잡아당긴다.) …… 수영복 사시려구요?
유명한:……. (잡아당기는 손을 흘끔 보다 지나가는 직원에게 네 몸을 은근히 밀었다.) 나는 필요 없어. 너 몇 벌 사주러 온 거니까 천천히 봐라.
노애리:네? 아니, ……. (당황한 얼굴로 몸을 움츠린 채 밀려난다.) …… 수영복, 리조트에 이미 있는데…….
노애리:……. (네 눈치를 살피다 일단 수영복이 진열된 곳의 옷걸이를 괜히 하나씩 꺼내본다.) …… 아, 아뇨…….
유명한:조용히 기다릴 테니까 보고 싶은 만큼 봐. (진열대 앞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다 가까이 다가가 손끝으로 어깨를 톡 건드렸다. 나가서 담배 한 대만 피우면 복잡한 머릿속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골초의 병이다.) …… 혹시 모르니까 차 끌고 올게. 보고 있어. 알겠지?
노애리:…… 네? (어깨를 건드리는 네 쪽을 돌아본다. 뭐야, 갑자기 웬 수영복을 사라 한 건지. 결국에는 그냥 조금이라도 좋으니 나를 떼어놓고 싶었던 것뿐이다. 한숨이 섞인 쓴웃음을 짓고서 아무렇지도 않은 양 다시 수영복으로 고개를 돌렸다.) …… 네. …… 갔다 오세요.
유명한:(표정이 왜 저래. 아, 몰라. 또 내가 지랄맞다 생각하고 있겠지. 틀린 말도 아니니 그대로 가게를 빠져나와 담배를 입에 물고 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 차를 몰고 온다. 주차할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결국 담배는 제대로 피우지도 못한 채 가게로 돌아왔다. 되는 일이 없구만. 손님용 의자에 대충 앉아 마찬가지로 손님용으로 준비된 사탕을 입에 넣었다. 어디 있대. 애가 쪼끄매서 보이지도 않네.)
노애리:(가게 안을 둘러볼 필요는 저한테도 딱히 없었다. 고심해서 사온 수영복도 이미 있고, …… 어차피 구실밖에 없는 곳에서 진지하게 골라 봤자 저만 바보가 되는 꼴이겠지. 그저 가게 구석에서 남자 수영복을 구경하고 있기만 했다. 남자 수영복은 다 거기서 거기네…….)
유명한:(혹시 직원하고 고르는 중인가 싶어 가게 안의 소리에 집중을 해도 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네. 설마 나갔나? 차 댈 때 바깥엔 없었는데. 네 행적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닌지라 소파에서 일어나 가게 안을 훑고 다녔다. 아, 대체 어디 있냐고.)
노애리:(그나저나 언제 오는 걸까. 네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색으로 하나씩 골라보고 있다 보니, 어쩐지 점점 이대로 저를 두고 가 버린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덜컥 불안함이 밀려와 급하게 두리번거리고, 울상이 된 채 가게 바깥으로 가기 위해 서두르다 네 몸을 가볍게 맞닥뜨린다.) 아…….
유명한:(여자 수영복이 있는 곳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슬슬 바깥을 찾을까 고민하며 마지막으로 남자 수영복이 있는 쪽으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콩 부딪히는 감각에 고개를 숙이자마자 낯빛이 밝아진다.) 왜 이런 구석에서 나와. 혼자 가버린 줄 알았잖아.
노애리:(네 얼굴에 삐쭉 입술을 내밀더니, 울상은 곧 울먹임으로 변해 네 품에 얼굴을 한껏 박으며 꼭 끌어안았다.) 몰라요! 아저씨가, 아저씨가 나 혼자 뒀잖아요…….
유명한:아니, 내가 같이 있으면 또 싸울까 싶어서 저기 앉아 있었지. 진작 돌아왔다고. (네가 품에 폭 안겨들자 이젠 익숙하게 마주 안고 토닥인다.)
노애리:나, 나는 아저씨가 나 두고 간 줄 알고……. 그냥 사라졌을까 봐……. (얼굴을 부빗거리며 작게 어깨를 떨었다. 눈썹을 늘어뜨린 채 네 얼굴을 올려다본다.) …… 어디 가면 안 돼요, 네?
유명한:차 가지고 온다고 했잖냐. 가지고 오길 잘했네. (아무리 봐도…… 그 유일한 남자 친구 씨가 멀쩡한 새끼는 아니었던 것 같지? 네 얼굴을 마주한 채 생각하며 뺨을 살짝 쓸어준다.) 아무데도 안 가.
노애리:…… 응. (작게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얼굴을 묻고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얼굴이 붉어진 채 반 발짝 물러났다.) …… 이제, …… 으응. 이제 괜찮아요……. …… 혼자 두지 마요.
유명한: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 얼굴로 괜찮다고 해도 말이지. (네 얼굴을 다시 보니 괜히 멋적어져 손목의 팔찌를 만지작거린다.) 살 거 없으면 일찌감치 돌아갈까? 혼자 안 둘게.
노애리:…… 아저씨 건, 안 사도 돼요? 아저씨도 이미 챙겨왔나? …….
유명한:나는 괜찮아. 나이 먹고 이런 삼각 팬티 같은 거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흉본다. (괜히 과장하며 나가자는 듯 손짓한다.)
노애리:아, 안 챙겼어요? 그치만 반바지 같은 것도 있고 래쉬가드 있고……. (물론 삼각도 아저씨라면 잘 어울릴 것 같지만……. 혼자서 이것저것 상상하며 어쩐지 아쉬운 얼굴로 계속 쳐다본다.)
유명한:수영복 대신 입을 옷은 챙겼어. (물장구를 칠 것도 아니고 요트 위에서 있을 테니 더더욱 수영복까지 필요하지 않았다. 네 표정을 보곤 미적지근하게 물었다.) …… 사고 싶어?
노애리:…… 이왕 놀러왔고 수영장도 있는데……. 아, 아저씨는 나랑 같이 놀 생각 안 했어요!? …… 왜 수영복도 안 챙겨오고. (고개를 끄덕이며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 나만 들뜬 어린애 같잖아요.
유명한:…… 있어야 챙기지. 수영복 안 입어도 바다에서 놀 수 있잖아. …… 하와이는 수영복 없으면 바다에 못 들어가……? (심각해졌다…….)
노애리:아, 아니, 그건 아닌데요……. 그냥 기분의……. (뒷말을 흐리다 네 발을 가볍게 꾹 밟았다.) 바보! 나는 아저씨한테 보, 보여 주려고, 같이 놀려고 이삼 일간 고민고민하다 샀는데!
유명한:…… 미, 미안. (아프다. 그래도 참을 만은 한 수준이라 꾹 눌러 참으며 눈가를 찌푸린다.) 나는 출발 전날까지 출근했잖아. …… 한 번만 봐주라…….
노애리:그래도요! 성의가 있었으면, 네? 수영복 정도야……. 흥! 됐어요! (네 팔을 틀어쥐고 질질 끌고간다.) 자! 골라요. 어떤 타입이 좋아요? 디자인은 내가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를 거예요.
유명한:……. (이거 봐. 또 사람을 이렇게 만들잖아. 차오르는 불만을 억누르고서 네게 질질 끌려간다.) …… 헐렁한 거면 돼…….
노애리:…… 그럼 래쉬가드는 별로구나……. (미련은 남았지만……. 널널하게 입을 수 있는 수영복을 둘러보며 네게 팔짱을 꼭 껴온다.) …… 이런 바지는요? 음, 너무 화려한가? 아, 아저씨가 좋아하는 곰돌이 무늬도 있다.
유명한:(수영하러 바다에 가는 게 아니라 요트를 탈 건데 그런 수영복까진 필요 없다. 조용히 네가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곰돌이 무늬 안 좋아해. …… 유치하지 않고 네 마음에 드는 거로 해라.
노애리:…… 치. 재미없어……. (심플한 남색 수영복을 하나 꺼내들었다. 아저씨는 나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추호도 없다는 것도, …… 단둘만의 여행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자꾸만 새삼스레 밀려오는 건지.) …… 이걸로 해요, 그럼……. …… 제 수영복 색이랑 비슷하니까…….
유명한:재미도 없고 성의도 없어서 미안하네. (네 말에 담담히 대답하고 골라든 수영복을 바라본다. 결국 수영복으로 고르긴 고르는구나……. 수영복을 마지막으로 입은 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서 계산대로 향한다.) 너는 좀 더 화려한 걸 고를 줄 알았다만.
노애리:…… 아저씨가 화려한 걸 안 좋아할 것 같으니까요. (짧게 대답하고서는 제 지갑을 뒤적여 계산한다.) 마음에 안 들면 지금이라도 다른 거 가져와도 괜찮은데요?
유명한:…… 네 수영복 말이야. (제가 계산할 틈도 없이 계산해버리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거로 충분해. 깔끔하고.
노애리:…… 제 거는, 으음……. …… 화려하다면 화려하고……. (말하고 보니 아차 싶어 고민에 빠진다. 괜히 화려한 걸로 샀나? 아니, 그렇게 화려한 정도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치만……. 별로 아무 감흥 없을 게 뻔하겠지. 심각한 얼굴이 되어 네게 쇼핑백을 넘겼다.) …… 여, 역시 내 것도 새로 사, 사갈까…….
유명한:갑자기 왜? 사흘이나 고민해서 준비했으면 그거 입어야지. (쇼핑백을 받아들고 팔짱을 낀 그대로 이번엔 제가 질질 끌고 매장 바깥을 향해 걸었다.) …… 그래도 노출이 심한 옷은 아니었음 좋겠는데…….
노애리:……. (질질 끌려가는 제 얼굴과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 수, 수영복이 노출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 어느 정도로 없는 게 좋은데요? 비, 비키니 같은 건 안 된단 거죠?
유명한:그러니까, 같은 종류여도 살이 더 많이 보인다거나……. 다른 놈들이 괜히 침이나 흘리고 벌떡 세우고 다닐 거 아니냐. (상상만 해도 짜증이 나는지 표정이 사나워진 채 밖으로 나왔다.) …… 야한 거 샀어?
노애리:그, 그냥 수영복일 뿐인데 말을 왜 그렇게……. 아, 아뇨. 그냥 평범, 한…… 수영복이에요. (고개를 빠르게 젓더니 네게서 팔짱을 풀고 뒷걸음질을 쳤다.) …… 저, 역시 다, 다른 것도 구경할까~ 싶은데…….
유명한:그냥 수영복이어도 나만 보고 싶은 게 따로 있기 마련이야. (널 지켜보다 단호한 얼굴로 네 손목을 잡았다.) 가서 직접 확인해야겠군.
노애리:아, 저, 저기……. 왜요! 아까는 사라고 했잖아요! (고집을 부리며 힘주어 네게 끌려가지 않으려 버틴다.) 새, 새로 살 거예요. 네!? 아, 아저씨가 마음에 드는 걸로……!
유명한:너 하는 짓 보면 견적 다 나와. 그리고, 비키니는 다 안 된다는 거 아니거든? (버텨 봤자다. 이제 부끄럽지도 않은 듯 덥석 안아들고 주차장으로 간다.) 리조트 수영장에서 입는 건 나만 보니까 괜찮아.
노애리:으응, 그, 그러니까…….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네 어깨를 잡았다. 어쩌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아저씨한테 사기 전에 골라 달라고 했어. …… 괜히 들떠서 사지 말걸. 벌써부터 잔뜩 걱정이 앞선 표정이었다.) …… 아까 말이죠. 어차피 수영복 시착하려면 입고 나와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도 상관없나 싶어서……. …… 혼자 보고 싶다 했으면서. …… 그래서 아저씨가 더 미웠어요.
유명한:응? 아니, 안 입어 봐도 살 수 있잖아. 시착까지 할 거란 생각은 안 했는데……. 애초에 기분 전환 좀 됐으면 해서 데리고 온 거고……. (여태 쌓여있던 불만은 늘 그렇듯 가슴 한켠 깊숙한 곳으로 숨어든다. 꺼내 봤자 이해할 수도 없을 텐데 뭘. 조수석에 널 앉히고 나서 운전석으로 향한다.) …… 그쯤 되면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 나겠네.
노애리:그, 그런 뜻이 아니고……. (말을 하려다 삼키며 얌전히 안전벨트를 했다. 제 다리를 꼭 끌어안아 앉은 채 애꿎은 창밖만 바라본다.) …….
유명한:괜찮아. (미움받는 게 하루이틀 일인가. 오늘 좀 많이 울컥하긴 했지만 사실 가능하면 다 참고 삼키는 게 나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배운 거라곤 그런 게 전부다.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차를 몰았다.) …… 팬케이크 살 거냐?
노애리:(괜찮긴 뭐가 괜찮아. 맞다고 한 적도 없는데. 진짜 싫어. 어차피 이 이상 나랑 다녀봤자 아까처럼 나랑 붙어있는 게 질릴지도 모른다. 반쯤 고개를 팔에 파묻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 안 먹을래요. …… 그냥 돌아갈래.
유명한:…… 알았다. (하긴 싫다 싫다 하면서도 꽤 오래 제 곁에 있었다 싶기도 하다. 자신이 괜찮은 놈이 아니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으니, 네가 무슨 결단을 내리든 수긍할 수밖에 없나. 여태 붙들기만 했는데 전부 네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아니었던 듯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이 되어 도로만 노려보았다.)
노애리:……. (무릎 위로 턱을 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창 바깥을 가만히 바라본다. 언제야 네게 조금 더 어울리고, 네가 좋아할 법한 여자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도 불가능일지도 모른다. 머리를 톡 기대며 생각에 빠진다. …… 역시 내가 없었다면 아저씨는 더 잘 살 수 있었을지도 몰라.)
유명한:(방금까진 좀 어떻게 잘 풀어낸 것 같았는데, 이 실타래는 조금 풀리나 싶으면 금세 더 엉키고 말았다. 혼자 두지 말라고 하면서, 밉다는 말을 함께 한다. 그럼 둘 다 받아들이는 방법을 몰라 헤메이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론 안 되는 건가 봐. 그래서 전에도, 지금도 연이어 이렇게 된 거겠지. 구해낸 다음 만나지 않는 게 좋았을까. 역시 네게 나 같은 사람은 어울리지도, 필요하지도 않을까. 입술을 짓씹다 리조트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린다. 보이에게 열쇠를 건네고 널 기다리며 정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노애리:……. (느릿느릿 느린 움직임으로 차에서 내려 힘없이 주변을 훑었다. 이럴 때만 쓸데없이 날씨만 더럽게 좋아서. 제 기분도 그렇지만 네 기분도 못지 않게 좋지 않아 보여 말없이 네 뒤로 얌전하게 걸어간다. 네 손끝에 시선이 닿으면 잡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다가도 애써 외면했다.) …… 들어가면 발부터 씻어야겠다. 여기저기 모래가 꽤 묻었네요…….
유명한:…… 1층 욕실 써라. (저는 샤워 부스면 충분하다. 이번엔 네가 달라붙지 않자 그러기 싫은가 보다 싶어 그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직원의 살가운 인사나 권유도 싸그리 무시하고서 객실을 향해 걷기만 했다. 이래서야 저녁 식사고 수영이고 할 수는 있을까. 저쪽은 여태 날 애인으로 생각조차 안 하는데 그래도 되긴 하나. 새삼 든 생각이 고통스러워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노애리:…… 네, 네. ……. (쌀쌀맞게도 느껴지는 짧은 대답에 눈을 내리깔았다. 그대로 저도 입을 다물고 리조트 안으로 들어가자, 샌들을 벗었다.) 그, 그럼……. …… 간단하게 씻고 올게요.
유명한:천천히 해. (나란히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욕실로 들어가 모래가 묻은 다리만 헹군 뒤 테라스로 나갔다. 마음 속은 우중충한데 세상은 아무것도 몰라주는구만.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줄담배를 피우자 그제야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스며들지 않아 숨통이 트였다.)
노애리:(1층의 욕실에서 욕조에 걸터앉은 채 깨끗하게 다리를 씻어낸다. 씻겨나가는 모래들을 하염없이 멍하게 바라보며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을 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이제는 크게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 만약 이 여행이 끝나고 그만 만나자고 말한다면 이건 이별 여행 같은 게 되나……. 그치만 사귄 것도 아니고……. 시답잖은 생각을 한다.)
유명한:(그래도 먹이긴 해야겠지……. 너라도 먹일 생각으로 스테이크를 고르고, 가장 독한 술을 부탁해 함께 주문했다. 담배가 몇 개비 남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 비치 체어에 비스듬해 누워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그냥……. 실제로 만나 보니 생각보다 별로라 그만 만나고 싶다고 나한테 말해주면, 그러면……. 그러기 싫어도 정리할 텐데.)
노애리:(늘상 생각하는 거지만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게 되는 건 괴롭다. …… 더 이상이라기에는, 아저씨한테 내가 필요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이미 답이 나온 문제를 오기로 붙들고 있는 자신이 실감되어 쓴웃음을 짓는다. 샤워기를 끄고 바깥으로 나와 발을 닦았다. …… 아직 씻고 있나. 힐끔 2층을 올려다보고는 천천히 올라갔다.)
유명한:(언젠가 이렇게 될 일이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변명에 불과하니까. …… 좋아한다는 말이 진심으로 닿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던 거라고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나 다른 답도 딱히 찾지 못했다. 적당히 감정을 나누고, 적당히 스킨십을 나누기 좋은 사람이 나인가. 종종 네가 보인 표정은 그 가설을 부정했지만, 역으로 증명하는 일도 없다고 할 수 없어 표정이 구겨진다. 재떨이에 꽁초를 퉤 뱉고 눈을 감았다.)
노애리:(2층에서 두리번거리며 널 찾아다니다 바깥으로 나가자 네가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보여 잠깐 멈칫했다. 자나? …… 방해하면 싫어하겠지. 얌전히 뒷걸음질을 치고 침대에 걸터앉아 가만히 바깥만 바라본다. …… 어차피 지금 와서는 얼른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을 게 뻔하다. 남은 시간만이라도 귀찮게 굴지 않아야지.)
유명한:(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가볍지 않다는 말도, 그때 그 표정도 전부 거짓이 되지 않나. 아……. 진짜 모르겠다. 애초에 남의 머릿속을 짐작한다는 거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닌 것을. 그나저나 아직도 아래에 있나.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자마자 네가 보여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간다.) …… 왜 그러고 있어?
노애리:아. (괜히 어색함이 느껴져 어깨를 움츠리고 시선을 피했다. 푹신한 소파에 앉은 채 다리를 달랑거리며 우물쭈물 말한다.) …… 자, 자는가 싶어서……. 자는 거면 내버려 두고 기다리려고 했죠.
유명한: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무슨. (네 옆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어정쩡하게 선다.) 냄새 많이 나겠네. …… 음. 나야말로 방해 안 할게. 스테이크 주문했으니 먹고 싶을 때 먹어라. (어쩌면 혼자 수영하고 싶을 수도 있고……. 생각하며 어깨를 약간 늘어뜨린 채 계단으로 간다.)
노애리:네?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팟 들고 널 돌아본다.) 어, …… 어디 가요?
유명한:…… 아래층에 있으려고. (여전히 널 등지고 나지막히 대답하며 걸음을 옮긴다.)
노애리:……. (여전히 벙찐 얼굴이었다. …… 스테이크, 같이 먹기로 했는데. 같이, 같이 술도 마시고. 이제 돌아갈 때까지 상종도 안 하겠다는 건가? 네가 내려가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눈가가 뜨거워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아침까지만 해도 같이 리조트에서 바캉스를 보낼 계획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침대에 털푸덕 엎드리더니 소리가 나지 않게 얼굴을 파묻고 작게 울음을 쏟아냈다. 이대로 사라지고 싶어. 이럴 줄 알았으면 옆에 있으라는 말을 듣고 냉큼 따라오지 않았어야 했는데. 이불을 덮어쓰고 숨이 가쁠 정도로 훌쩍이며 손등으로 입술을 꾹 눌렀다.) 흑, …….
유명한:(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은 점점 더 좁아진다. 당당하게 말한 놈 치곤 가장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직업병이라 변명할 수도 없다. 제게 있어 세상이 그 꼬락서니로 돌아간 건 아주 예전부터였으니까. 소파에 앉아 멍하니 벽지 무늬나 쳐다보고 있었더니 벨이 울린다. 보이를 2층으로 올려보낼까 하다 그냥 제가 받고서 접시와 술병을 양손에 나누어 들고 올라간다. …… 그렇게 내려와놓고 금방 다시 올라가니까 민망하네.)
노애리:(한참 동안을 울고 있다 네 인기척에 이불 바깥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확인했다. 네가 올라오는 것 같자 황급히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베개에 푹 파묻고 돌아누워,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는 척을 했다. 이렇게 하면 금방 두고 돌아가겠지. …… 어차피 할 말이 있어서 올라온 건 아닐 테니까.) …….
유명한:(침실로 들어가니 이불 덩어리가 보여 난감해졌다. 그새 자나. 하긴 오늘 종일 싸우고 울고 했으니 피곤할 만도. 협탁에 스테이크가 담긴 그릇을 두고서 침대 옆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그대로 병을 따 한 모금 쭉 들이킨다. …… 목구멍에서 불이 날 만큼 쓰다. 천천히 숨을 고르다 작게 중얼거린다.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 좋아하게 만들었으면서…….
노애리:……. (네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몰래 이불을 내려 네 모습을 확인했다. 왜 여기서 마시는 거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꼼짝도 않은 채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본다. …… 같이 마시고 싶었는데. 괜히 또 서러워져 작게 코를 훌쩍였다.)
유명한:싫다고 하질 않나……. 사귀는 사이도 아니라 그러고……. (흥, 이불 덩어리에 화를 내며 다시 술을 한 모금 마신다. 독한 술을 급하게 마셔서인지 순간 손발과 뒷덜미가 저렸다. 뭐, 괜찮을 거다. 이불 덩어리가 움직인 것도 모르고 술병을 내려놓고서 양손으로 화끈해진 얼굴을 가렸다.)
노애리:(젖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은 마음만 커졌다. 그것보다 혼자 마시는데 왜 저렇게 빨리 마셔? 나랑 노는데 잔뜩 취해 있으려고? 못마땅하게 삐죽이며 틈새로 보고 있다가, 슬금슬금 걱정이 밀려와 얼굴만 쏙 내민 채 작게 불러본다.) …… 아, 아저씨…….
유명한:(술기운은 점차 몸을 타고 기어오르고, 머릿속에 엉킨 실타래는 이제 꽉 묶여 풀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부터? 아니면 태어나기 전부터? 그건 아니면 좋겠다. 얼굴을 마구 문지르다 다시 병으로 손을 뻗는다. 머릿속이 뎅뎅 울려 네 작은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죽을까…….
노애리:…….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가만히 술만 마시는 네 모습을 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엉망이 된 얼굴을 닦을 생각도 않고 베개를 네 쪽으로 집어던진다.) 바, 방금 뭐라고 했어요!? 네?
유명한:……?! (퍽 소리와 함께 베개가 폭신하게 얼굴을 때리고 떨어진다. 감각이 둔해져 눈만 꿈벅거리며 네 쪽을 쳐다본다.) ……?
노애리:(그대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네 멱살을 틀어쥐고 소파에 눕혀 그 위에 올라타 앉았다. 잔뜩 울상이 되어 그 멱살을 마구 흔들어댄다.) 뭐라고 했냐구요! 나…… 나 다 들었어요.
유명한:…… 어……. (자고 있던 애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라 그렇겠지. 그저 힘없이 흔들렸다.) 왜, 왜 울어…….
노애리:……. (다시 차오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멱살을 잡았던 손아귀에 힘을 점차 풀었다. 힘없이 어깨를 들썩이다 고개를 기울였다.) …… 내가 아저씨 옆에 있어서, 나 때문에 그런 생각 하게 만든 거예요?
유명한: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아니. (이렇게 서럽게 우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느린 동작으로나마 네 몸을 안고 서투르게 토닥인다.) …… 나, 나는 좋아하게 만들어놓고 너는 싫다는 말만 해서 치사하다고 생각한 거 때문에 그래……?
노애리:네? 그런, 그런 말은……. (일순 뺨이 붉어지며 흠칫했다. 눈을 꾹 감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서 다시 멱살을 붙들었다.) 죽, 죽고 싶다고…… 아니, 죽을까, 했잖아요……. …… 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네에? ……. 아저씨……. (목소리가 점점 막혀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울먹이는 목소리를 계속했다.)
유명한:(재차 멱살이 잡히자 숨이 막혀 잠시 켁켁거렸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면 그건 분명히.) 태어났을 때부터 다시 시작하면 네가, 날 조금만 싫어하지 않을까 해서…….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잘못했다는 말도 믿을 수가 없는 자신이 싫었다.)
노애리:……. (흘러나온 대답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고였다. 멱살을 쥔 손이 잘게 떨려오기 시작하자 도로 놓아주곤 대신 네 옷자락을 틀어쥔다.) …… ……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아저씨가 싫은 적 단 한 번도 없는데, 아저씨야말로……. …… 나는 아저씨 취향 아니잖아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 괴도가 아니었다면 아저씨가 나를 지금보다 더 필요로 해 줬을지도 모르는데…….
유명한:나도 취향 아니라고 한 적 없는데……. (이렇게까지 엇나가도 되나. 좋은 것만 생각하자는 말은 역시 전혀 도움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 아직도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나는 누굴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널 울게만 하잖냐…….
노애리:……. (여전히 울음기가 어린, 어쩌면 불안감이 뒤섞인 얼굴로 가쁜 숨을 작게 내쉬었다.) …… 왜, 왜 계속 그런 말을 해요. 네? 아저, 아저씨……. 명한 씨. 내, 내가 잘못했어요…….
유명한:웃게, 해주고 싶어서 곁에 있어 달라고 했는데. (느릿느릿 뱉는 말에 침울함이 밴다. 네 잘못했단 말엔 그저 고개를 저었다.) 슬프고 화나는 일만 기억나게 만드는 사람은 연애 상대로 최악이지……. 애써 좋아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 좋아할 이유가 없는 놈인데…….
노애리:싫어……. 싫어. (저도 똑같이 고개를 양쪽으로 저으며 절박함에 가까운 목소리로 옷을 틀어쥔 손에 힘을 꽉 눌러담았다.) 명한 씨가 아니면 싫어. 다른 사람은 싫어…….
유명한:…… 나는, 네가 원하는 걸 하나도 줄 수 없잖아. 바보야……. (아, 그래. 나는 지쳐버렸구나. 아주 오래 전에 지친 주제에 외면만 했구나. 손을 올려 네 젖은 뺨을 쓰다듬었다.) 전부 말해버렸네……. 미안해.
노애리:……. (눈을 감고 뚝뚝 흐르는 눈물만 흘려보내며 네 손길을 느꼈다.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쥐어짜내며 다시 너와 시선을 맞췄다.) …… 나는 있잖아요, …… 당신을 만나고 처음으로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 어쩌면 내게도 그런 행복이 오는 건가 기대도 해 버렸죠. 내가 원하는 것들이었어요. …… 그런데,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이 죽을 생각을 할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면 그건, …… 그건. (말을 잇지 못하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 내가, 내가 없어야 당신 인생이 덜 꼬일 것 같아요. 내가 사라져야, 그래야…….
유명한:…… 전부 내가 주제 넘는 짓을 해서 그래. 너 하나 돌볼 수 없으면서, 웃게 만들 수 없으면서 할 수 있다고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거야. 한 번 실패했으니까 이번엔 할 수 있을 거라고 오만하게 군 거라고……. (조심스레 네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게끔 품어 안고서 낮게 말을 이었다.) 바보. 정말 죽고 싶었으면 병나발 불기 전에 죽었지. …… 모든 진실을 알고 나서 했던 말들은 다 진심이었어. 아직도 그래. 가능하다면, 네 이상에 전부 맞춰 주고 싶어. 네가…… 사라지면. 그러면……. 진짜 죽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언제 이만큼이나 좋아하게 된 건지, 정말로…….
노애리:……. (어깨를 크게 들썩이면서도 네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심장이 빨리 뛴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찬가지로 조심스러운 손으로 네 몸을 감싸안으며 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올려다본다.) …… 나, 안 사라져도 돼요? 옆에 더 있어도 돼요? …… 나 안 질렸어? 앞으로도 몇 번이고 후회할 거예요, 나여서. …… 그러니까, 그러니까…… 더 깊어지기 전에 밀어내도 돼요. 내가 더 희망을 갖지 못하게 밀어내도 돼요……. (시야가 희뿌얘 네 이목구비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더듬더듬 네 뺨을 감쌌다.)
유명한:전부, 내가 물어야 할 질문들이네. 내 곁에 있으면 같은 일로 끝없이 후회하게 될 거야. 네가 바라는 모습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우는 일도 또 생기겠지. 실망하게 만들고 매번 그럴듯하지도 않은 말로 붙드는 내가 한심하게 보일 거야. …… 그런데도, 더 좋아해도 괜찮아? (시선이 마주치자 가느다랗게 숨을 내뱉었다. 머릿속이 끈적하게 녹을 만큼 짙어진 술기운과 몽롱한 감정에 정신이 없었지만 해야 할 말이 많았다.) …… 멋진 왕자님도, 상냥하고 다정한 애인도 될 수 없어. …… 그래도 곁에 있고 싶어?
노애리:……. (잠시간의 정적 속에서 훌쩍이는 소리만이 두어 번 흘러나왔다. 손끝으로 애틋하게 네 뺨을 몇 번이고 만지작거린다.) …… 그게 아저씨인걸. 그게 내가 좋아해 버린 아저씨인걸……. (엉망이 된 얼굴을 가까이해 뺨에 힘없이 쪽 입을 맞췄다.) …… 변함없이 좋아해 주세요. 계속, …… 계속 날 붙들어 줘요. 어떤 말이어도 좋으니까. …… 이제 더 이상 아저씨가 없어서 외로운 밤을 보내는 건 싫어.
유명한:너 진짜, …… 취향 이상해. (뺨에 입술이 닿자 늘 하던 말을 하며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이 되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엉망이 된 네 얼굴을 조금씩 닦아주었다.) …… 노력할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외롭지 않게, 웃을 수 있게 노력할게.
노애리:…… 아저씨도 취향 이상해. …… 나 같은 거 아무도 안 데려갈 거예요. 사실은. (양손으로 뒷목을 꼭 끌어안고 네 손길에 뺨을 부비적거렸다.) …… 맨날 귀찮게 굴어서 미안해요.
유명한:거울 좀 보고 살아라. 이렇게 예쁜데. (머리칼에 가벼이 입을 맞추고 등을 토닥였다.) …… 항상 화만 내서 미안해.
노애리:……. (얼굴을 붉히며 눈가를 약하게 부볐다.) …… 내, 내가 가끔…… 아저씨한테 싫다거나 밉다거나 하는 건…… 정말로 미워! 같은 느낌이니까, 그러니까……. 으응……. (제가 말하면서도 무슨 억지를 부리는 건지 모르겠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에 눈치를 살핀다.) …… 그냥 토라진 거예요.
유명한:처음 몇 번은 그렇게 들을 수 있어. 그런데 울면서 밉다고 하기 시작하니까……. (자신이 불상이 아닌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눈치를 보자 양 뺨을 감싸고 쪽 입을 맞춘다.) 조금만 덜 토라지면 안 돼?
노애리:…….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며 대답할 말을 찾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 미안해요.
유명한:…… 안 된다는 뜻이냐? (…… 시무룩해졌다.)
노애리:그, 그게 아니라아! 그, 그냥 미안하다는 뜻이니까……! (허둥지둥 널 더 꼭 끌어안으며 얼굴을 바짝 가까이했다.) …… 그럼 아저씨도 조금만 더 상냥하게 해 주면 안 돼요? …….
유명한:그거는, …… 다투는 일이 줄어들면 자연히 그렇게 되겠지. 아닌가……. (얼굴이 가까워지자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 어떻게 상냥한 게 좋은데?
노애리:…… 일단 자주 웃어주면 좋겠고, 그리고……. (손가락을 펴서 하나씩 꼽아본다.) 생각이 그렇게밖에 안 되냐? 같은 말 하지 마시구요, 좋아한다면서요, 네? …… 그리고 무서우니까 단답하지 말구, 또……. …… 귀, 귀엽다고 자주 말해 주기라든지…….
유명한:차라리 성형해서 미남이 되어주세요, 하는 게 빠르겠는데……. (중얼거리다 입맛을 다신다.) 막말은 너도 많이 한다고. 뭣같이 말하네 어쩌네……. 단답은 화났으니까 하는 거고……. 귀, 귀엽다고 자주 말하는 건, 그, 음, 그래……. 알았어.
노애리:…… 화났어도. …… 늘 아저씨 화날 때 다시 말 붙이는 건 나잖아요…….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기대고 부어오른 눈을 감고 있었다.) …… 안 귀엽다고 느끼면 어쩔 수 없지만. …… 다른 사람들 보면 눈빛에서부터 귀여워, 하고 느껴지던데. 아저씨는 나랑 있을 때의 80%가 찡그린 얼굴이라 못 느끼겠어요……. …… 좋아함이 안 느껴져.
유명한:네가 간다고 할 때 붙잡는 건 나잖아. 공평하네, 뭐……. (역시 나는 불상이 아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으면 또 이런 일이 벌어지겠지.) 다툴 때가 많으니까 그렇지.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 있으면 120 퍼센트 정도 찡그리고 있어. …… 못 믿나?
노애리:믿어요. …… 그, 그치만 그런 말 듣는다고 하나도 안 기뻐요! …… 내가 아저씨 훨씬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사귀자고도 안 하지, …… 뽀뽀가 아니면 별로 스킨쉽을 나처럼 많이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지. 뒷말을 삼키며 가슴팍 위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 그리고 아저씨는 쩨쩨해.
유명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누군 손 한 번 잘못 대면 애부터 생길까 싶어서 조심하는데 무슨……. (겨우 들릴 만큼 작게 투덜거리다 이어지는 말에 미간을 확 찌푸린다.) 뭐야?!
노애리:…… 네? (깜짝 놀라서는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벌떡 들었다. 거짓말! 그, 그럴듯한 변명이면서. 귀까지 빨개진 채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나도 뒤끝 긴 편인데 아저씨도 뒤끝 장난 아니에요. 쩨쩨해. 그리고 나만 예민한 사람처럼 말하는데 아저씨도 진짜 예민하고. 성질 잘 내고.
유명한:네? 는 무슨 네? 다 큰 아가씨가 자기 몸이 얼마나 쉽게 망가지는지 몰라?! (되려 빽 화를 내고서 이어지는 말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적어도 난 네가 꼬장을 부려도 어지간하면 풀어주려고 하는데 너는 왜 화가 났는지도 모르면서 끝까지 같이 화만 내면서. 아까도 그렇고.
노애리:…… 아빠 같아. (그럼 그렇지. 김이 팍 새서는 자기 고개를 톡 기댄다.) …… 그, 그건……. …… 나, 나도 이유가 다 있어서……!
유명한:아이를 가질 거면 적어도 결혼하고 나서 너도 좀 마음의 여유가 생긴 다음이어야지, 지금 당장 안고 싶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사고나면 감당할 수 있어? (따발총처럼 잔소리를 쏟아붓다가 고개를 돌렸다.) ……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정작 내가 화났을 땐 왜 그러는지 묻지도 않잖아.
노애리:…… 네. 네. (성가신 잔소리처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대충 대답했다. 이 아저씨 원래 이러나?) …… 알겠어요. …… …… 미안해요.
유명한:…… 그리고 나이 많은 아저씨가 먼저 하고 싶다고 설치면 보기 흉하잖아. (진심을 마치 변명처럼 덧붙이고서 한숨을 쉬었다.) 서로 성질을 조금만 죽이면, 상냥함인지 뭔지도 생기겠지…….
노애리:상냥함인지 뭔지라니. 이것 봐. 이런 말투부터 조심하라구요! (몸을 일으켜 네 입술을 꾸욱 약하게 잡았다 놓아준다.) …… 원래 나이 많은 아저씨들은 그러잖아요. …… 그럼 뭐, 어린 여자들이 설치면 안 흉해요? 아저씨 그런 여자 안 좋아할 거 뻔한데. …… 제, 제가 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예시예요.
유명한:아야야. (아까 잔뜩 씹어서인지 입술이 유독 아프다. 얼굴을 찡그린 채 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아저씨들하고 똑같이 보이는 게 싫다고. …… 흥, 좋아하는 여자가 하면 뭔들 안 좋을까……. …… 섹스하고 싶었어?
노애리:(네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주먹을 치켜들었지만, 때릴 곳이 없어 고민하다 팔뚝을 퍽 때렸다.) 아,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 변태 저질 성희롱 형사! 그리고 그런 노골적인 말 하지 마요!
유명한:네가 그런데 왜 더 좋아하는 것 같다니 뭐니 그러는 거야?! 순 추측 뿐이잖아! (이건 진짜 아프다. 몸을 움츠린 채 뒤로 물러나지만 여긴 소파 위다.) 섹스가 아니면 뭐라고 해!!!!!
노애리:그,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죠! 꼭 그게 좋아한다는 마음인가, 뭐.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저씨는 바보. 같은 부위를 두 번 더 퍽퍽 때린 후 몸을 일으켜 소파에서 내려온다.) 아, 진짜 아저씨 같아. …… 내, 내가 그런 단어 막 남발했으면, 네? …… 경험 많은 가벼운 여자 취급했을 거면서!
유명한:참 나. 결국 섹스하고 싶은 사람도 나밖에 없었던 거구만. (뭐야. 진짜 모르겠다. 불현듯 이러다 어느날 네가 그게 사랑이 아님을 깨닫고 떠나는 모습을 떠올렸으나, 속으로만 삼켰다.) 섹스가 섹스지 뭘……. 빠구리 뜬다고 하는 것보다 백 배는 낫네. 그리고 경험 많은 게 뭐 어때서. 처녀에 집착하는 놈들이 진짜 몹쓸 놈들이야.
노애리:이, …… ……. (쏟아지는 말들에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 마, 말 뭣같이 하지 말라니까! …… …… 아, 아저씨는요? …… 많아요? …… 많겠죠…….
유명한:…… 너 방금 말 좆같이 한다고 생각했지. (자리에서 일어나 네 앞으로 바짝 붙었다.) 궁금하면 확인해 볼래? 아저씨는 경험 있는 여자가 좋던데.
노애리:네. (냉큼 대답하고서는 바짝 가까워진 거리에 저도 모르게 작게 숨을 삼켰다. 마른침을 삼키며 널 바라보다 슬쩍 시선을 피하고 중얼거렸다.) …… 허세는…….
유명한:나만 좆같이 하나, 뭐. (네 반응에 작게 웃고서 어깨를 쭉 밀어 침대에 앉힌다.) 인기 많은 아가씨보다야 적을지도 모르겠네. 일이 보통 바빠야 말이지.
노애리:지금 또 싸우자는 거죠? (눈썹을 보란 듯이 찌푸리며 널 올려다본다.) …… 흥. …… 물론 이 나이에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헤프게 살아오지는 않았으니까. …… 그래도 허세 부리는 사람치고 진짜 잘 하는 사람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유명한:내가 뭣같다 싶으면 너도 뭣같이 굴면 돼. (진짜 언제는 안 그랬나 싶다. 으이구. 네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서 스테이크 그릇을 집어들었다.) 헤픈 아저씨의 심각한 실력은 천천히 확인하면 되겠네. 수영복 갈아입고 나와라. 얼굴이 퉁퉁 불었으니 몸도 불려야지.
노애리:그런 게 어디 있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네? …… 잘 하자는 거 아니었나. (네가 머리를 쓰다듬자 간지러움에 눈을 감았다 뜬다. 불퉁한 얼굴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 늘 이렇게 빠져나가기만 하고 결국 나한테 손댈 마음 사실 하나도 없으면서. 흥이다.) …… 아저씨도 갈아입을 거죠? 아까 산 걸로.
유명한:서로 잘 하기야 할 건데, 갑자기 다 하하호호 할 수 없는 것도 맞지 않냐. (그릇을 든 채 조심스레 몸을 숙여 삐죽 나온 입술에 쪽쪽댄다.) 응. 너 갈아입고 나서. 어차피 부끄럽다고 할 거지?
노애리:……. (얼굴이 붉어진 채 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 왜 저 먼저예요? 부끄러운 거 알면 같이 입고 와 주면 덧나나……. 치. …… 알았어요. (여전히 삐죽이는 입으로 천천히 옷장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명한:술이랑 스테이크 가져다두려고? 아, 알았어. 바로 갈아입을 테니까. (그냥 그러고 싶다고 하면 되잖아! 복잡한 표정으로 술병을 집어든 뒤 걱정스러운 눈길로 네 뒷모습을 흘끔거리다 테라스로 나갔다.)
노애리:(옷장을 뒤적이며 조금이라도 구겨질까 모셔 두었던 수영복을 꺼낸다. …… 역시 이거, 너무 무늬가 화려한가? 주책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게다가 노출도 많으니까……. …… 차라리 그냥 평범하게 티셔츠를 입고 들어가는 쪽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끙끙대며 고민하다 결심한 듯 수영복을 다시 던져두고, 테라스로 걸어가 뻔뻔한 얼굴을 했다.) …… 노, 놓고 왔나 봐요~ 수영복……. …… 역시 아까 새로 살 걸 그랬나? …… 그냥 어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어야겠다~…….
유명한:(테이블에 병과 그릇을 올려두고 한숨 돌린 뒤 쇼핑백을 어디 뒀었는지 고민한다. 1층에 있나? 말 그대로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내려가 옷을 갈아입었다. …… 볼 때는 헐렁할 것 같았는데 막상 입으니 제법 붙는다. 이거 괜찮은 거 맞냐? 괜히 제 다리를 흘끔흘끔 보며 볼썽사납게 튀어나오진 않았나 고민하다가 테라스로 돌아간다. 돌아가자마자 네가 와서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미간을 구긴다.) 야, 나는 입었잖아!
노애리:…… 너무 기대한 나머지 두고 그냥 와 버렸나 봐. (어색하게 웃으며 제 뒤통수를 긁적인다. 힝. 진짜 아쉬운 사람은 난데 호통이나 치고. 네게 찰싹 달라붙어온다.) 아쉽지만 그래도 아저씨 건 잘 어울려요. 내가 보는 안목이 좋다니까, 그치이?
유명한:거어짓말 하지 마라. 어딜 경찰 앞에서 거짓말을 해? 요 아기 여우가. (다 큰 여우라고 하기엔 너무 애 같다. 금세 제게 붙은 네 코를 톡톡 두드리며 다시 침실로 질질 끌고 간다.) 그래. 안목 좋은 우리 아가씨가 자기 거는 얼마나 잘 골랐나 보자.
노애리:자, 잠깐만요. (당황하는 목소리를 그대로 내비치며 질질 끌고 가는 네 팔을 잡아당기려 했다.) 지, 진짜 두고 왔다니까요! 아저씨! 제 건 없대도! 네에?
유명한:뭘 진짜 두고 와. 아주 이삿짐을 싸놓고 그것만 쏙 빼고 온다는 게 말이 되냐? (기어코 침실로 들어가 네 등을 옷장으로 떠민다.) 자. 꺼내. 뭐라고 안 할게.
노애리:그, 그치만……. (옷장 앞에서도 머뭇거리며 손가락을 꼼질거린다. 쉽게 옷장을 열지 못하고 힐끔힐끔 눈치를 살폈다.) …… 화려하다고, 주책이라고 실망하면 안 돼요? …… 또, 으응, …… 가벼운 여자라고도 생각하면 안 되고…….
유명한:잘 어울릴 것 같으니까 화려한 걸 골랐겠지. …… 아, 진짜. 가벼운 여자든 무거운 여자든 상관 없어! 내가 잘 잡고 있으면 그만이야. (보채듯 네 허리를 툭툭 두들긴다.) 정 부끄러우면 몸 위에 올려보기만 하든지.
노애리:그, 그건 그거대로 부끄러워요. 아, 알겠으니까 잠깐만……. (옷장을 살짝만 열고 수영복을 제 품에 꼭 숨기듯이 안았다.) …… 그, 그럼 입고 올 테니까, 아저씨는 먼저 가 계세요. 아, 알겠죠? (네 대답을 듣기도 전에 후다닥 뛰어서 욕실로 들어가 버린다.)
유명한:대체 부끄럼을 얼마나 타는 건지. (채 형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수영복이 팔에 가려지자 대놓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숨기면 오히려 호기심이 동한다.) 알았, 야!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가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앉았다.)
노애리:(수영복을 입으면서도, 입고 나서도 몇 번이나 거울을 확인한 것 같다. 가슴이 조금 끼는 것도 같고, 허벅지가 두꺼워 보이는 것도 같고, …….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욕실 바깥으로 나온다. 서늘한 공기가 닿자 새삼스레 부끄러워진다. 갈아입은 옷을 정리하고, 얇은 겉옷을 걸친 채 옷자락을 끌어당겨 보이지 않게 둘둘 숨기며 네가 있는 쪽으로 나갔다.) …… 아저씨. 이, 입긴 했는데, …….
유명한:(그냥 옷 갈아입는 건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냐. 음식도 식어가고 있는 판이라 발장난을 치며 먼 바다만 바라본다. 그러다 인기척이 들리자 뒤를 돌아본다.) …… 싸매도 다 보이거든? 잘 어울리는데 뭘 그렇게 숨겼대? (몸을 틀어 완전히 널 향해 앉아선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예쁘네. 이리 와.
노애리:…… 저, 정말요? (조심스럽게 되물으며 여전히 겉옷을 감싼 손을 풀지 않고 네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달아오른 고개를 슬 피한다.) …… 아, 아저씨한테 이런 차림 보여 주는 거 처음이잖아요. 부끄러워. …… 실망하면 어쩌지, 하고…….
유명한:귀엽고 잘 어울리네 뭘. (가까이 다가온 네 몸을 가볍게 안아 끌어당긴다.) 하나도 실망 안 했어. 오히려 얼굴이 예쁘니 이런 화려한 옷도 잘 어울린다 싶구만. 들어갈래? 아니면 고기 먼저?
노애리:…… 후후. (고민하는 눈치로 잠시 시선을 굴리다 네 뺨에 작게 먼저 입을 맞추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 그럼 고기 먼저 먹을래요. …… 에너지를 다 써서 그런지 벌써 배고파져서.
유명한:그럼 여기 발 담그고 먹을까. (안고 있던 팔을 놓고 풀에서 빠져나온다. 그릇을 들고 가져와 다시 앉고서도 여전히 그릇을 든 채였다.) 옆에 앉아. 괜히 엎으면 안 되니까 먹여주마.
노애리:저, 저 그런 어린애 아니에요! (얼굴이 붉어져서는 다급하게 덧붙였다.) 제대로 혼자 먹을 수 있다구요. 바보. …… 아, 아저씨 아까 술도 시켰었죠? 술도 마실래. 딱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셔야지.
유명한:수영장에 스테이크 쏟고 싶냐. 싫잖아. (고기 한 점을 낼름 제 입에 넣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먹여줄 거야. …… 술? 그거 엄청 독한데. 나 아직도 좀 어지럽거든.
노애리:왜 독한 걸로 시켰어요? …… 취하고 싶어서? (고개를 기울인다.) …… 뭐어. 괜찮아요. 모처럼이니까 기분 좀 내죠, 뭐. 여기선 취해서 쓰러져도 아저씨 옆이니까 괜찮잖아.
유명한:그게 제일 비싸서. (말하고 보니 좀 부끄럽네. 은근히 시선을 피한다.) 그런 차림으로 취해서 쓰러지면 아저씨는 하나도 안 괜찮거든?
노애리:…… 풋. 그런 게 이유예요? …… 귀여워. (푸후후 웃음을 터뜨린다.) …… 흐음. 그치만 아저씨는 제가 취해서 잠들 때를 노릴 것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취해서 쓰러져 보고 싶기도…….
유명한:당연히 자는 사람은 안 건드리지. 그런데, 그……. 옷도 갈아입혀야 하고, 닦아주기도 해야 하고. 생각만 해도 벌써 손이 떨린다. (몸을 작게 떨더니 고기 한 점을 더 포크로 찍어서 네 입에 쑥 넣는다.) 취해서 쓰러지는 건 물에 안 들어갔을 때 하자?
노애리:……. (고기를 냠 받아먹고서 한참을 우물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 아저씨 이미 제 옷 갈아입혀 준 적 있으면서 뭐가 어려워요. …… 치, 그치만 마시고 싶은데.
유명한:그땐 생명이 위험할까 봐 급했고. (다시 한 점을 더 먹이고서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수영하고 놀 수 있을 만큼만 마셔야 한다.
노애리:(고개를 세네 번 세차게 끄덕이며 입을 가리고 크게 대답한다.) 네에~! 아저씨 짱. …… 안아 주고 싶은데 지금은 안아 줄 수가 없네요. 이따 들어가면 잔~뜩 안아 줄게요.
유명한:…… 누가 보면 이미 취한 줄 알겠다. 이놈아. 안아 주는 건 좋지만서도……. (물이 닿지 않는 곳에 그릇을 놓고 술병과 잔도 가져온다. 잔을 네게 들려주고 병을 가볍게 흔든다.) 얼마나 줄까?
노애리:음……. (싸맨 겉옷이 풀어지지 않게 한 손으로 슬쩍 잔을 내밀었다.) 첫 잔이니까 많이!
유명한:많이? 너 마시는 만큼 나도 마실 거다. (잔을 반보다 조금 더 많이 따라주고서 저도 병째로 한 모금 마신다.) …… 크, 비싼 값은 한다니까.
노애리:아저씨 진짜 술꾼 같아요. (작게 웃고서 한 입을 홀짝인다. 생각보다 강하게 올라오는 술향에 저도 모르게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으응, …… 마, 맛없어.
유명한:큰 사건 하나 마무리하면 술만 마시고 지낼 때도 있는데 뭐. (네가 기침을 하자 병을 내려놓고 등을 살살 쓸어내리며 웃었다.) 맛없어? 고기 한 점 더 먹자. 아, 해.
노애리:아. (울상이 되어 네가 내민 고기를 냉큼 받아먹었다.) 시키려면 조금 맛있는 걸로 시키라구요, 정말……! 이게 뭐가 맛있다고 그렇게 벌컥벌컥, 네? 마셔요.
유명한:내 입엔 맛있는데 뭘. 칵테일 좀 시킬 걸 그랬나……. (하지만 그땐 술 먹일 생각이 없었다. 왠지 잔소리가 이어질 것 같아 네 입에 고기를 가득 넣어주고 저도 한 점 먹었다.) 고기가 더 맛있어지니까 좋은데 왜 그런대.
노애리:우응. (한참 동안이나 입 안에 들어찬 고기 탓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양뺨 가득 고기를 물고 우물거리다 삼킨 뒤, 다시 조심스럽게 술을 한 입 더 마셨다. 이번에 기침은 나오지 않았지만 잔뜩 인상을 찌푸린다.) …… 으으. 그래도 이 한 잔은 전부 다 마실 거예요. …… 스테이크는 엄청 맛있어.
유명한:내일은 맛있는 술로 마시자. 따뜻할 때 먹으면 더 맛있을 텐데. 내일 아침에도 먹자고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금세 스테이크가 반은 사라져 포크를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술을 한 모금만 더 마신다. 취할 만큼 마셨다가 네게 못볼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그릇을 네 허벅지에 척 올려놓고 물에 들어간다.) 아, 시원하다~
노애리:(네가 물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마냥 싱글벙글한 얼굴로 스테이크를 한 입 더 먹으려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내려놓는다. 그저 술만 아주 조금씩 홀짝인다.) 아저씨는 수영도 잘하겠죠? 형사였으니까.
유명한:뭐……. 보통 사람보다 요만큼 정도는 잘하지. (몸을 뒤로 눕혀 물에 둥둥 뜬 채 눈만 굴려 너를 바라본다.) 너는 수영할 줄 아냐?
노애리:저도요. 조금? 보통? 괴도 일 하다가 쫓길 때 바다로 뛰어들지도 모르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담근 발을 가볍게 네 쪽으로 참방거린다. 딱 적당히 붉어진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우리 아저씨는 못하는 게 없네.
유명한:바다로 뛰어들지도 모르면 조금이 아니라 엄청나게 연습했어야지. (바보 아냐. 명줄 소중한 줄을 모르네. 발만 천천히 움직여 네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대로 멀쩡히 발을 딛고 서서 네 다리를 끌어안고 허벅지에 얼굴을 기댄다.) 네가 더 유능할 것 같은데.
노애리:……. (가뜩이나 붉어진 얼굴이 더 뜨겁다. 남은 술을 마저 비우고서는 머뭇거리며 네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 유능한 여자 좋아해?
유명한:…… 섹시하지. (순순히 대답하며 네 얼굴을 올려다본다. 부드러운 손길이 기분 좋아 표정이 평소보다 느슨했다.)
노애리:……. (마른침을 삼키며 열이 오른 얼굴을 마주했다. 한껏 부끄러운 시선을 보내면서도 네 눈을 피하지 않았다.) …… 그, 그런 말에 면역 없는데.
유명한:왜 면역이 없어. 아무도 그런 말 안 하든? (단체로 눈이 삐었네. 투덜거리며 네 다리를 천천히 훑어내리며 만지작거린다.)
노애리:…… 보통 그런 말은 진심이 아니잖아요. 어떻게 해보고 싶을 때나 하지. …… 그리고 아저씨한테 듣는 말이라 더 면역 없어요. (네 손길이 닿자 흠칫 다리를 움츠렸다.) …… 간지러워.
유명한: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유능한 것도 그렇지만, 뭔가 한 가지든 몇 가지든 잘 아는 사람은 멋있잖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더 내려 발바닥을 슬쩍 간지럽혔다.) 간질간질~
노애리:…… …… 잠깐, 가, 간지럽다고 했잖아요! 그, 그만! (어떻게든 네 손을 피하려 발버둥을 친다.) 으응, 이러다 얼굴 얻어맞고 싶어요!? 저리 가. 나도 들어갈래요.
유명한:진짜 저리 가? (맞아 봤자 얼마나 아프겠어, 생각하다가도 여태 얻어맞은 걸 생각하니 엄청 아플 것 같아 순순히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그대로 팔을 벌렸다.) 생각보다 깊으니까 조심해.
노애리:…… 응.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려 감고 있던 팔을 풀려다 잠깐 멈칫한다.) …… 저, 저기……. 잠깐 뒤돌아 있어요. 이, 이거 벗게…….
유명한:응? 으응. (술이 들어가서인지 별 태클을 걸지 않고 뒤로 돌아선다.)
노애리:……. (겉옷을 벗어 바닥에 그대로 늘어뜨리고서는 여전히 부끄러운 듯 머뭇거렸다. 한 팔로 가슴께를 가리고서 중얼거린다.) …… 다, 다 됐어요…….
유명한:(다 됐다는 말에 뒤로 돌아서니 배만 드러낸 채 여전히 가리고 있는 모습이 보여 웃음을 터뜨렸다.) 야, 나는 웃통 다 까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 빨리 들어와.
노애리:저, 정말……! 웃지 마요! 여자 마음도 모르고.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서 다시금 두 발을 먼저 담갔다. 그리고 네게 안아달라는 듯 쭉 양팔을 뻗는다.) …… 흥.
유명한:지금이야말로 네가 그렇게 바라는 어른스러움을 어필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미 충분히 어른으로 보고 있다는 걸 너만 모른다. 네 허리를 안고 천천히 수영장 안쪽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노애리:……. (시원한 물이 닿자 살짝 눈을 감았다 뜨며 네게 꼭 달라붙어온다. …… 수영복을 입었는데도 여유 넘치는 얼굴로 웃기만 하니 작전이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아 심통이 난다. 미동도 없고. 타격도 없어 보인다. 여전히 입을 삐쭉 내밀고 네 얼굴을 올려다본다.) …… 어필해 봤자 무슨 소용이에요. 됐어.
유명한:또 왜. 누구 부끄럽지 말라고 간신히 신경을 안 쓰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 아가씨는 삐치기만 하네. (고개를 숙여 이마를 툭 맞댄 채 속삭인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게 되면 부끄러워서 바로 도망칠걸?
노애리:…… 무슨 생각인데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온 네 눈을 흘겨본다.) …… 뭐, 까고 보니 생각보다 별것도 아니네, 그런 거?
유명한:온몸이 새하얗네. 새빨갛게 만들고 싶다, 가슴이 말랑말랑할 것 같으니 밤새 만지고 싶다, 근데 그러면 내일 요트 못 타고 한 달은 찡찡거릴 것 같으니 참아야지. (도망칠 수 없도록 네 몸을 꽉 안고서 냅다 줄줄 읊어버린다.) 더 해?
노애리:잠, 잠깐……. (당황한 얼굴은 네가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짙어진다. 몇 초간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던 얼굴은 새빨개져, 이내 푹 수그리고 널 꾹꾹 밀어낸다.) …… 바, 바보. …… 거, 거짓말……! …… 그, 그런 기색 하나도 없었으면서. 그, 그리고…… 저리 좀 떨어져요.
유명한:야, 세상 어느 형사가 생각하는 걸 그대로 다 드러내냐? (그러니 네가 늘 시큰둥하니 심드렁하니 불만스러워하는 거겠지. 네가 밀어내자 오히려 더 단단히 안은 채 낄낄거린다.) 싫은데? 가슴 대신 이렇게라도 만질 건데?
노애리:…….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얌전히 네 품에 안겨 있었다. 이 아저씨는 말로는 청산유수야. 중얼거리며 저도 네 몸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 변태같은 농담은 세상에서 제일 잘해. …… 귀, …… 귀엽다고도 해 주세요.
유명한:…… 나 원. 귀여운 건 기본이잖아. 엄청 엄청 귀여워. (이렇게 깜찍한 옷을 입었는데 섹시하게 보이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잔뜩 열이 오른 네 뺨을 쓰다듬었다.) 진짜로 귀여워.
노애리:……. (그제서야 다시 얼굴을 들어올려 마주했다. 한껏 풀어진 인상으로 가만히 바라보다 슬금 눈을 감고 웅얼거린다.) …… 키, 키스…….
유명한:키스? (정말 요상한 곳에서 발동이 걸리네. 귀엽다는 말이 약점이라는 걸 잘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감긴 눈가도 부드럽게 쓸어내리곤 아랫입술을 깊게 베어물었다.) …… 입 벌려.
노애리:응……. (역시 아저씨가 제일 좋아. 두근두근대는 가슴을 애써 외면한다. 살짝 입술을 벌려내며 양팔로 네 뒷목을 끌어안아 밀착했다.)
유명한:(입을 벌렸어도 그 사이의 틈은 비좁기 그지없다. 혀를 조금 내밀어 입술을 할짝이다 네 입안을 가득 채울 기세로 파고들었다. 고작 입맞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네가 역시 귀엽다.)
노애리:(네 혀가 안을 파고들면 기다렸다는 듯 냉큼 저도 혀를 뒤섞었다. 할짝이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 제 심장 소리도 더 커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고 숨을 고른다.) …… 야해.
유명한:…… 야해서 싫어? (이쯤 되면 야하단 말이 칭찬으로 들린다. 짧은 입맞춤이 아쉬워 아직도 네 입술에 매달린 채 잘게 입을 맞춘다.)
노애리:…… 으으응. (고개를 작게 저으며 입을 맞춰오는 네 입술 위를 핥았다. 제 몸을 끌어안은 네 한 손을 겹쳐 떼어내서는 손깍지를 꼈다.) …… 다른 사람들한테도 막 그렇게, …… 변태같고 야한 말 해대고 그래요?
유명한:나도. (야한 짓을 싫어한다면 사기로 잡혀갈지도 모른다. 그저 네가 조심스러우니 같이 조심스럽게 다가갈 뿐. 깍지를 낀 손등을 엄지로 천천히 쓸어내린다.) 절대 안 해. 변태같고 야한 말 해대고 다녔으면 진작 모가지 잘렸지.
노애리:…… 흐음. (고개를 기울이며 다른 손으로는 네 뺨을 감싼다.) …… 그치만 아저씨, 기억 안 나요? …… 아직 저 싫어할 때, 그때도 저한테 저질스러운 말 많이 했잖아요. …… 엉덩이도 때리고. …… 그래서 아저씨는 밖에서 그런 농담 막 하고 다니겠지, …… 싶었는데.
유명한:싫어할 때라고 하니까 좀 그렇다. 아니, 맨 처음엔 안 그랬잖아. 나중에 나름 면식이 생겨서 그런 거지……. (갑자기 죄인이 된 기분이 들어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노애리:그치만 싫어했던 거 맞는걸. 제가 괴도인지도 모르는 채로, 네? 그때 뭐라고 했더라. 애프터 열 번 해 준다고 하면 풀어 준다고도 했고……. (눈을 가늘게 뜬다.) 예전 아내 얘기하면서 키스도 운운한 사람이?
유명한:정말로 그럴 생각은 없었어! 갑자기 웬 아가씨가 공무 집행을 방해하니까 성질이 나서 그런 거다. …… 아, 진짜. 뭐 그런 걸 다 기억하냐?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 타고 뽀뽀도 하고 그런 거만 기억해, 좀! (시선이 따갑다. 죽겠네.) 너는 전 남자 친구랑 키스 안 했어?!
노애리:성질이 나면 성희롱을 해요!? 형사가!? 어이없어. 오죽하면 범죄자한테 그러는데 평범한 여자한테는 안 그러겠어. (양손으로 아예 네 양뺨을 다 감싸고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죠! 제가 아저씨한테 마음 없을 때 전 남자 친구가 안 잊힌다는 얘기 하면서 키스나 해 줄까~ 하진 않았잖아요!
유명한:질려서 돌아갈 줄 알았지! (아마 그랬을 거다. 아마. 슬슬 붙들린 뺨이 아파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러, 니, 까, 진짜 그럴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자꾸 그러면 네가 나 만만해서 어쩌구 저쩌구 그 이야기 또 한다??????
노애리:진짜 그럴 생각이 있고 없고가 중요해요? 밖에서 그러고 다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충분히 이유가 만들어지는데! (흥, 콧방귀를 뀌며 입을 삐죽인다.) 맨날 그 이야기야, 맨날. 나는 누구 때문에 아저씨와의 첫 키스도 최악의 기억으로 남았는데. 그때 키스도 아저씨는 마음 없이 했잖아요.
유명한:…… 그건 아니지. 마음조차 없는데 입술 문지를 만큼 만사태평한 성격이 아닌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게다가 그때 좋아한다는 걸 확인도 했으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순식간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늘어놓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노애리:……. (네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면서도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쪽도 거기에 대해선 할 말 많단 말이야.) …… 그때 아저씨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요? 시치미란 시치미도 다 떼면서 혼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 그걸 어떻게 확인이라고 해요?
유명한:고작 며칠 사이에 좋아하게 됐다는 것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좋아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데, 다른 입장도 아니고 형사인데 그럼 사랑에 빠졌어, 그러니 나랑 사귀자! 라고 할 수 있냐. 너는? (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걸까. 기분 좋게 키스도 하고 물장난 좀 치다가 자러 가게 될 줄 알았는데.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에 한숨을 쉬었다.)
노애리:…… 키스까지 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버려진 기분만 잔뜩 밀려왔던 내 입장은요. 아, 또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아저씨가 혼란스러웠던 만큼 나도……. (종알종알 말을 잇다 네 한숨 소리에 말을 멈췄다. 손을 거두고 한 발짝 떨어져 나온다. 지금 제가 하는 모든 말들이 네게는 평소처럼 귀찮은 소리들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닿자 시선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 아니에요.
유명한:…… 키스까지 했는데 보통 사람들이 키스하는 상황이 아니었잖아. 서로 혼란스러웠고, 많이 어긋났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도 인정해. …… 하지만 그 날 겨우 내 마음을 인정했는데 버려진 건 너 혼자가 아니야. (네가 떨어지고 나서도 이젠 제가 시선을 거두지 않고 네 얼굴을 바라봤다.) …… 하루종일, 기분이 좀 좋나 싶으면 자꾸 확인하려고 따지면서 화를 내는데. 계속 그러니까 힘들어. 내가 쓰레기인 건 이제 나도 잘 알겠거든?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믿냐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냐. 안 그런다 해도 아니래, 앞으로 그럴 일 없다고 해도 아니래. 다 터놓고 이야기한지 한 시간도 안 됐잖냐…….
노애리:……. (차마 고개를 들고 네 얼굴을 확인할 수도 평소처럼 말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말 하나하나가 제게 아프게 꽂혀오는 것만 같아 떨리는 손을 감추려 수면 아래로 밀어넣는다. 이래서야 네가 제게 질린다고 해도, 네게 버려진다고 해도 마땅한 일일지도 모른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잘못했어요. …… 죄송해요.
유명한:잘못했다는 말을 듣겠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하아. (물론 이제 싫어졌다는 뜻도 아니다. 그저 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이클이 버거웠을 뿐. 몇 번을 돌아도 답을 알 수 없으니 답안을 애원하고 있었다. 문제는, 네가 그걸 모른다는 거고.) 다시 한 번 말할게. 앞으로 노력할 거야. 시간이 엄청 걸릴 테니까 조금만 느슨하게 바라봐주면 좋겠어. 여기까지 놀러 와서 반절을 싸우기만 했으니 남은 시간 동안은 웃을 일만 있으면 좋겠어. …… 어려울까?
노애리:…….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마치 제 밑바닥을 전부 드러낸 채 네 앞에 서 있는 기분이라. 죄송해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덧붙이고서 시선을 외면하려 몸을 반쯤 돌렸다.) …… 아, …… 저기. …… 화, 화장실…… 다녀올게요.
유명한:…… 도망치지 마. (물론 도망치는 건 괴도의 숙명이지만, 너는 이제 더는 괴도가 아니다. 네 손목을 붙들고 제게로 끌어당겼다. 너도 붙들어주길 바랄 테니까. 그 마음이 꽁꽁 숨겨져 있다고 해도.) 차라리 앞으로 절대 그러지 말라고 화를 내. 그러면 네 속이라도 시원하잖아.
노애리:……. (또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여태껏 제 속 시원하자고 네게 강요했던 대답이 쌓이고 쌓여 네게서 힘들다는 말이 나오게 됐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힘없이 네게 붙들린 채 오도가도 못하고 우두커니 있었다. 더 이상 밑바닥을 보여줄 수는 없었기에 이대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만이 커졌다.) …… 아, 안 갈게요. …… 놓아 주세요.
유명한:…… 너는 내 모든 게 궁금해서 그러는 걸 텐데, 나는 네 일부를 말했다 해서 이렇게 무너지는 거야? (네 말에도 여전히 손목을 잡고 있었다. 사람이 타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은 정말, 정말 일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제게 선명히 보였던 점을 고하니 이렇게까지 무너지면 앞으로 대체 어떻게 버틸 셈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한숨을 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애리야. 어떤 일들은 아무리 원하는 대답을 들어도 만족할 수 없어. 내가 직접 증명해야 하고, 네가 그걸 직접 봐야 해. 그리고 그건 지금 보여줘요, 해서 되는 일도 아냐.
노애리:(네 말이 이어질수록 죄인이 된 것처럼 혼나는 기분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제가 어린애스럽고 네가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겠지. 가슴 안쪽이 아파와 답답했다. 네게 잡힌 손이 떨려와 다른 손으로 네 손을 잡아 떼내려 밀었다.) …… 나, 나는…… ……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 당신이 원할 만큼의 노련한 사람이 나는 아닐 거예요. …… 그러니까 나는……. 나는 계속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될지도 몰라요.
유명한:…… 알아. 그렇다고 해서, 네가 말하는 잘못을 반복하게 둘 수도 없어. 너도 내가 뭔가 잘못하고 불만이 생기니까 그런 거겠지. 그것도 알아. 그저 한계치가 있을 뿐이야. (다른 시대에, 다른 부모를 두고, 다른 곳에서 태어났는데 어찌 같을 수 있겠나. 서로 걸어온 길조차 너무 다르다. 네 손목을 놓는 대신 다시 품에 끌어안았다. 물이 차다. 슬슬 제가 맞는 말을 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워진다.) 괜찮다고 했잖아. 네가 나와 완전히 같은 사람이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결국 필요한 건 시간이야……. 오랫동안, 천천히, 그리고…… 같이 걷고 싶어. 어떻게 하면 내 눈에 너밖에 안 보인다는 걸 믿어 줄래…….
노애리:그치만, …… 그치만……. (습관처럼 말이 먼저 흘러나온다. 도로 입을 다물고 네 품에 안긴 채 눈물을 참아냈다. 네가 내 심정을 모르는 것처럼 나도 네 심정을 모른다. 그러니 끝없이 불안하기만 했다. 네 마음속에 있는 게 저뿐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답안을 알 수 있는 건 더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럴 때마다 도망을 치거나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밖에 못하는 한심한 여자다.) …… 죄송해요……. …… 이제, …… 이제 괜찮아요. 전부 이해했으니까…….
유명한:하나도 이해 못 했으면서! (흥분에 목소리는 엇나가는데, 네 머리 위로 닿은 손은 부드럽게 움직인다. 결국 저도 할 수 있는 일은 네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추측하는 일 뿐이다. 내가 그렇게, 믿기 힘든 인간인가. 전부 내가 뿌린 씨앗이다. 한심하고 역겹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금방 잊어버렸어? 괜찮아. 몇 번이고 다시 말할 수 있어. 그런 건 문제삼을 일도 아니야. 헤어진 아내는 이제 아무래도 좋아. 그 사람 생각할 시간에 널 생각하느라 바빠. 전부 떨쳐낼 수 있을 만큼 내게 스며든 사람도 너고, 이렇게 화가 날 만큼 좋아하게 된 사람도 너야. 얼마나 이상한 일들이 있었든, 싸웠든, 이제 너만 생각하고 싶어. 좋아하고 싶어. …… 잘 해보고 싶은데 자꾸만 어긋나는 내가 싫어! …… 후우…….
노애리:(큰소리를 치면 움찔 몸을 떨며 조심스레 네 쪽을 올려다본다. 입술을 앙다물고 네가 쏟아내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울상이 되어서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 아니에요. 아저씨 탓이 아니에요. …… 나 때문이니까, 내가 아저씨를 힘들게 했으니까……. (울먹이는 목소리로 네 몸을 마주 끌어안았다.) …… 나도 당신이 제일 좋아요. …… 그래서 더 무서웠어. 매분 매초마다 노심초사해요. 이전 사람과 비교당하지는 않을까, 내가 못하진 않을까, …… 모든 걸 다 주고 좋아했다가 버려질까, 내게 질릴까, ……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것들이 당신을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니까……. 내 탓이에요……. 미안해요. 마음 놓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짜증 나는 여자라서…….
유명한:…… 전부를…… 주지 않아도 돼. 네가 여전히 불안하고 두렵고 무섭다면 아주 일부분만 줘도 괜찮아. 여전히 서로 전부를 모르고, 그리고…… 아주 조금만 알고 있을 때에도 좋아했잖아. 급하게 굴 거 없어……. (네가 울먹이기 시작하자 가까스로 화를 짓밟아 누른다. 같은 두려움이 이렇게 깊은 골을 만들어내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 걸까. 그마저도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나도 그래. 네가 만났던 사람보다 부족할 텐데, 못나게만 보이지 않을까. 뭐든 못미덥고 한심하게만 보여서 결국 정말로 떠나버리지 않을까. …… 사과하지 마. 사과할 일 아니야.
노애리:……. (고개를 푹 파묻은 채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작게 끄덕이고서 네가 했던 것처럼 서투르게 네 등을 쓰다듬어내렸다.) …… 말했었잖아요? …… 아저씨가 나한테 가라고 하는 게 아닌 이상 난 아저씨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 그런 집요한 여자니까……. …… 그리고 나도, 아저씨가 아니면 다른 사람은 절대 생각 못하니까. 그러니까…… 아저씨의 전부를 알 때까지, 그 앞으로도 쭉 같이 있어 주세요…….
유명한:…… 그래. 시작은, 좀 이상했지만……. 앞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이것저것 할 수 있겠지. 그러면 점점 괜찮아질 거라 믿어. 너도, 나도. (로미오와 줄리엣도 이렇게까지 서로를 원하진 않았으리라.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서 한참을 말없이 네 머리를 쓰다듬었다.) …… 기껏 맛있게 먹었는데 또 배고파졌겠네.
노애리:…… 조금 배고파요. (작게 중얼거리며 네게 찰싹 붙어 쓰다듬을 받고 있었다.) …… 그치만 그러면, ……. (아저씨랑 나는 무슨 사이예요? 물어보려다 입을 도로 다물었다. 너무 어린애스럽나. 분위기를 깨는 건가……. 우물쭈물거리다 네게서 떨어져 나온다.) …… 아. 수, 술…… 술이라도 더 마실까요?
유명한:먹보. (장난스럽게 속삭이곤 품에서 떨어진 네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잠시 우물쭈물하자 다시 네 손목을 잡았다가, 아플까 싶어 힘을 뺀다.) 그치만 뭐? 말해봐.
노애리:아, 아니……. 저기. (어색하게 시선을 굴리며 머릿속으로 변명거리를 만들려 빠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그치만…… 아, 아저씨는 왜 좋아한다면서 소, 손끝 하나 안 대요? (아무 말을 던져 봤지만 오히려 더 부끄러운 말을 한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그, 그게, 제 말은, …… 하고 싶다는 게 아니고, 보통 남자들은 안 그러니까, 그래서…….
유명한:……. (그건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하는 말에 덩달아 온몸이 가려운 듯한 착각이 일었다.) 급하게 굴면 진짜 변태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애인이라든지 그런, 특별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 그러면 더더욱 내가 몹쓸 짓 하는 게 되잖냐…….
노애리:……. (이해를 못 했는지 고개를 기울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그러니까…… 그럼 애인 사이가 아닌 게 맞단 건가? 애인 사이라는 건가? 애인 사이라면 언제부터 1일로 해야 하는 거지? 그런 걸 안 정했으면 아닌 건가? 진지하게 고민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 아저씨가 평소에 티 같은 걸 안 내니까 궁금해서……. …… 어린애 같아서 그, 그런 류의 의식은 안 되고 있는지가 궁금했달까…….
유명한:그럴 리가 없잖아……. 어린애 같은데 키스하는 건 진짜 철창 들어가야 하는 변태 새끼고……. (나…… 그런 놈으로 보였나……? 조금 슬퍼졌다. 좀처럼 이해를 못 하는 듯한 너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 다시 만난 날부터 제대로 사귀는 거라 생각했는데 너는 아니라고 해서 나도 헷갈려.
노애리:…… 네!? 그, 그때 그렇게 느낄 만한 게 있었나? …… 좋아한다는 거랑 사귀는 거랑은 살짝 다르잖아요? 아, 아닌가? ……. (얘기하고 있으려니 부끄러워져 뺨을 붉히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 뭐, 뭐랄까, 저는……. 아저씨가 언젠가 멋진 곳에서 진지하게 말해 주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유명한:…… 생사의 기로 위에서 좋아한다고, 앞으로도 같이 있자고 한 말도 제법, 그, 멋진 고백 아니었나……? (망했다……. 얼굴에 절망을 그대로 드러내며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럼 여태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말들을 했다고? 진짜로?) …… …….
노애리:…… 아, 아니, …… 물론 기뻤어요. 엄청나게 기뻤고……. 그, 그치만 그건 제가 아저씨 옆에 계속 있어도 된다는 허락 같은 게……. (네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잇다가 다물었다. 화, 화났나……? 또 화나게 만들었을까 쩔쩔 매는 얼굴로 네 곁을 서성거린다.) …… 잘못했어요.
유명한:…… 보통…… 남녀 사이에 앞으로 계속 같이 있는다는 건…… 사귄다는…… 거지……? (혹여나 네가 또 착각할까 싶어 조심스레 물으며 찬물로 제 얼굴을 닦아낸다.)
노애리:…… 그건 아니죠. 마음 없이 동거도 할 수 있는 거고, …… 더군다나 아저씨는 계속 날 딸처럼 취급했으니까 좋아한다는 게 그 의미일지 아닐지도 고민했었고……. (네게서 살그머니 떨어져 괜스레 술병에 손을 뻗었다. 제가 비워 두었던 잔을 채우고 네게 조심스레 건넸다.) …… 아저씨 집에 자주 놀러갔던 동안에도 역시 아저씨는 날 여자로 생각 안 하는구나, 하고 느꼈던 적이 훨씬 많아서, 그래서……. 으응. …… 마, 마실래요……?
유명한:…… 난 그럴 만큼 착한 사람도 아니고 돈이 넘쳐나는 사람도 아냐. 딸처럼 좋아하는데 그렇게 키스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어쩌면 내가 너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린 건 아닌가 싶어 초조함까지 생겨났다. 네가 건넨 잔을 바로 받아들고 원샷한다.) …… 하아…….
노애리:……. (얌전히 네 곁에서 술만 따라준다. 잘은 모르겠지만 네가 심란해 보였다.) 그, 그러니까 진짜 딸처럼 대했다기보단……. 여자로 안 느껴져서 성적인 흥미가 없는 느낌의……. …… 나도 아저씨의 아빠같은 느낌에 더 익숙해져서……. 그런 마음은 잠시 접어뒀다고 할까. …… 그, 그러니까 제가 계속 야한 속옷이니 하면서 어필하려고 했던 거잖아요.
유명한:어쩐지 어색할 만큼 들이밀더라니……. (조금씩 걸음을 옮겨 가장자리에 다리를 기대고 서서 술을 홀짝인다. 바보 아냐……?) 흥미가 없는 게 아니라 억누른 거지……. 나도 사람인데……. 야한 속옷이 아니어도 그런 생각은 계속 든다고…….
노애리:……. (얼굴을 붉힌 채 슬슬슬 네게 가까이 다가와 우물쭈물 눈만 깜빡였다.) …… 저, 저도……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런 걸 했다가 또 헤어지면 싫으니까 진짜 그럴 생각으로 들이댄 건 아니지만……. …… 그, 그럼 평소에도 야한 생각 같은 거 했어요?
유명한:사귀는 사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건 맞지. 맞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어쩌면 우리가 처음 만나기 전부터?) …… …… 응.
노애리:……. (푹 익은 얼굴을 하고서 네게 들린 잔을 가져와 한 모금 마신다.) …… 아, 아저씨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어도 그런 거 할 수 있어요? …… 아, 아무튼, ……. …… 생각한다고 하면……. 그, 그걸로 됐어요. 으응……. 믿을게요.
유명한:하고 싶진 않은데, 그러는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고. 뭐어……. (손이 비자 괜히 수면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은근슬쩍 물었다.) …… 너도 했냐? 그런 생각.
노애리:(술잔을 들고 홀짝이다 깜짝 놀란 얼굴을 한다. 습관처럼 네 팔뚝을 찰싹 때렸다.) 여, 여자한테 그런 거 물으면 실례예요!
유명한:남자한테 묻는 건 실례 아니고?! (아파!)
노애리:어, 어차피 남자들은 전부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고 저질에 변태에 늑대니까 상관없잖아요! …… 근데 아저씨는 그런 생각 없어 보여서 물어본 거지! (남은 술을 몽땅 비워내고 탁 내려놓았다.)
유명한:너 대체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생각도 못한 대답이 돌아오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물론 그런 놈들도 많지만 아닌 사람도 많다??
노애리:…… 별로 아닌 남자는 만나본 적 없는데요. 손에 꼽으려나. 거기다 자기는 전부 그런 남자 아니라고 말한다는 게 공통점이었죠. (흥……. 시시하고 한심한 남자들을 떠올리며 쪼르륵 술을 더 따른다.)
유명한:허어……. (이해는 간다. 보통 화려한 외모에 이끌린 놈들이었겠지. 나도 안 끌렸다면 거짓말일 정도니까. 술이 채워지자 냉큼 잔을 빼앗아 들고 다시 원샷했다.) …… 나는 미래 계획 세우느라 바빴는데…….
노애리:앗! 내, 내 건데……. (잔이 빼앗기자 뾰로통한 얼굴로 빈손을 내밀었다.) …… 무슨 미래 계획?
유명한:…… 왔다갔다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살림을 합친다든지, 네가 이것저것 하고 싶어하니까 정기적으로 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든지…… 물론 이건 실패했지만. 그거 말고도 부모님께 소개를 한다거나……. (네 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노애리:…… 왜요. 더 주세요. (발그레하게 뺨을 물들인 채 칭얼거린다.) …… 그, 그치만 그건 거의, 그러니까……. 겨, 결혼이잖아요. …… 나는 사귀자는 말 하나 들으려고 엄청 여자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기 바빴는데.
유명한:나는 사귄다고 생각했다니까 그러네. (안 돼. 다시 강조하곤 붉어진 뺨에 입을 맞춘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지……. …… 가만히 있어도 매력은 흘러넘쳐. 바보야. 네 말버릇 그대로 젊고 예쁘고 귀엽고 그런 여자라고.
노애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괜히 시선을 굴리다, 저도 네 떨어진 입술에 쪽 입을 맞춘다.) …… 앞으로도…… 평생 그런 여자로 봐 줘야 해. 질리지 않고. …… 알겠죠?
유명한:물론이지. (괜히 맞닿았던 제 입술을 만지작거리다 슬쩍 말을 덧붙인다.) …… 너 그럴 때마다 덮치고 싶어.
노애리:…… 아,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지금은!?
노애리:응……? (이해하지 못하겠단 얼굴로 네게 조금 더 가까이 간다.) …… 내가 서운해 할까 봐 예의상 해 주는 말 아니구요?
유명한:…… 귀여워서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고. (꼬맹이. 네 코를 톡 눌러 밀어낸다.)
노애리:으응. …… 정말? (다시 되물으며 눈을 꼭 감았다 뜬다.) …… 그치만요, 막상 하고 나면 식을지도 모르잖아요. …… 그런 남자 되게 많던데…….
유명한:정말. …… 잠깐만, 뭐? (하고 나면 식어? 눈을 굴리다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건, 그, 보통…… 듣기로는? 말이지? 그 남자가 부족해서 그래…….
노애리:…… 아저씨는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네 품에 꼬옥 붙는다.) …… 왜, 하고 나면 그, 그런 환상도 다 깨지고, 권태기에 접어들면 안 해 준다든지……. 그런 거 있잖아요.
유명한:…… 그……. 네 기준에 합격일지는 모르겠는데……. (잔을 내려놓고 네 허리를 폭 안았다.) 환상까지 가질 게 있나.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건데. 음……. …… 네가 하기 싫거나 내가 할 수 없을 만큼 아프거나 피곤한 게 아니라면야…….
노애리:…… 그, 그런 것보다도. (부끄러움에 말을 잇지 않고 뜸을 들이다 힐끔거린다.) …… 아, 아저씨가 잔뜩, 뭐, 뭐랄까……. 요, 욕정…… 을 많이 해 주면 좋겠달까, 그, 그래야 제가 매력이 있는지 쭉 알 수 있고……. 제가 조르는 것보다…… 으응. 그, 그렇다구요. (제가 말하고도 부끄러워 다시 코를 박았다.) 대답하지 마요!
유명한:그러니까, 꼴……. (려 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잠자리에서 욕심이 많아지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다만 어떤 걱정이 찾아들었다. 네 수영복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골랐다.) …… 그, 욕정, 큼. 원하긴 하는데, 내가 네 체력을 못 따라가면……?
노애리:…… 네? (제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른 질문이 던져지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 아, 아저씨 벌써 체력 걱정할 나이예요? …… 나, 남자잖아요!?
유명한:…… 나중 이야기지, 나중! (저 순진무구한 눈빛에 잿가루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네가 야한 짓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앞으로 더 하고 싶어질 거라고……. 아마 몇 년 내로 그렇게 될 걸……?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아마.
노애리:……. (그제서야 새삼스레 네 나이가 실감되어 어쩐지 걱정이 담긴 진지한 얼굴이 됐다.) …… 저, 저는 그렇게 밝히는 여자가 아니지만, 그렇지만. …… 마, 만약에 그렇게 된다고 치더라도……! …… 만족할 만큼의 체력이 안 된다면…… 멋없을지도……. …… 쓸쓸할지도…….
유명한:…… 체력 단련 열심히 할게. (경찰서 내에서도 몇몇 큰 경찰서에만 있는 체력 단련실엔 근육에 미친 인간들이 많다. 한동안 그 사이에서 부대껴야 할 거 같다…….) 안 밝힌다고 해놓고 엄청 밝히면 어쩌려고 그러나. …… 피곤해도 만지거나 뽀뽀하는 건 할 수 있는데……. 그건 역시 싫은가?
노애리:저, 절 얼마나 변태로 보는 거예요? 저, 저는 그냥 단순히 아저씨랑 그냥……. …… 꼬옥 붙어서 사랑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뿐이거든요……! (뺨을 붉히며 툴툴거린다.) …… 그렇게까지 밝힐 일 없을 거예요. …… 만약 너무 너무 하고 싶은 날이라면 피곤해도 해 주면 안 돼요? …… 저, 저는 어차피 한 번이면 만족할 거니까.
유명한:그거야 나도 좋지. 싫을 리가…… (붉어진 뺨을 살살 간지럽히며 머리를 굴린다.) …… 으음. 그래. 왠지 매일 너무 너무 하고 싶다고 할 것 같지만……. …… 잠시만, 여태 늘 한 번만 했어……?
노애리:글쎄 저 그렇게 밝히는 여자 아니래도요! (뾰로통한 얼굴로 톡 때린다.) …… 왜 그, 그런 걸 물어보구……. …… 응. 한 번만 했는데……. …… 그게 당연한 것 같길래…….
유명한:…… 아, 알았어. (엄청 밝힐 상인데.) …… 한 번만 해서, 항상 만족했냐? 몸이랑 마음 전부?
노애리:음……. (기억을 되짚어보는 듯 시선을 굴린다.) 그,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그냥 꼭 붙어서 사랑받는 게 좋았을 뿐이라고. …… 그래서 만족이랑은 상관없이…… …… 으응. …… 뭐어, 조, 조금은……?
유명한:…… 그거 그냥, 놈팽이 새끼만 만족한 거잖아……. (갑자기 얼굴도 모를 인간을 저주하고 싶어졌다.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작게 속삭였다.) 하게 되면 전부 만족할 수 있게 힘내지.
노애리:…… 그, 그런가……. …… 어, 어차피 너무 밝혀도 남자들이 싫어해요. …… 그렇다고 했어요. (네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도 마른침을 삼킨다.) …… 아,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한 번으로 안 하고 여러 번 해 줬나 봐요……?
유명한:…… 누가 그랬냐. (기분 나쁘네. 진짜 어느 동네 미친놈이지? 저도 썩 좋은 남자는 아니지만 이건 진짜. 네 목덜미까지 붉어진 것 같아 그 위를 더듬는다.) …… 더 하고 싶다고 하면?
노애리:……. (괜한 걸 알게 됐어. 질투심과 함께 네가 상냥하게 사랑을 속삭여 줬을 걸 생각하면 기분이 묘했다. 어딘가 못마땅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인다.) …… 그렇구나. 좋으셨겠네……. (들으라는 듯 중얼중얼거리며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손을 약하게 밀어냈다.)
유명한:…… 지금 너만 질투하는 거 아니거든? (대놓고 나 기분 나빠요, 하는 모습에 입술을 바짝 붙여 쪽쪽댄다.) 애리는 더 많이, 더 잔뜩 기분 좋게 만들어 줄게.
노애리:우응, ……. 몰라요, 바보. …… 속으로, 네에? 잔뜩 비웃었을 거 아니에요? 이 녀석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하고, 흥……. (삐뚤어진 말만 절로 나왔지만 널 밀어내지는 않았다.) …… 내가 밝히는 여자가 되어도?
유명한:아무것도 모르게 두고 멋대로 널 탐한 놈들이 짜증 나. (솔직하게 말하곤 더 꼬오옥 안았다.) 그래. 밝힌다 해도 뭐 얼마나 밝히겠어. 그치?
노애리:…… 응. (붉어진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기에 마음껏 툴툴거리며 널 마주 끌어안았다.) …… 저, 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 모, 몸매는 제가 더 좋을걸요? …… 그러니까…… …… 아마도. 아저씨가 어떤 몸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으응.
유명한:…… 몸매는 네가 훨씬 더 좋아. 응. (이 정도 이야기는 괜찮겠지? 보들보들한 살갗을 만지고 있자니 더더욱 실감이 났다.) 너는 어떤 몸을 좋아하는데?
노애리:……. (그제서야 조금 기분이 풀린 듯 누그러진다. 사실 안심이 더 컸던 것 같지만.) …… 저요? …… 너무 볼품없는 몸은 싫고, 적당히 슬림하고 적당히 남자다운…… 느낌? (고개를 기울이다 네 어깨에 수줍게 입술을 꾹 눌렀다.) …… 지금은 아저씨 몸이 제일 좋아.
유명한:어렵네……. (적당히 슬림하고 적당히 남자다운 느낌이 대체 뭐지. 근육이 너무 많으면 안 되는데 군살도 있으면 안 되는 그런 느낌인가? 덩달아 갸웃거리다 네가 입을 맞추자 순간 몸이 굳었다.) …… 변태.
노애리:…… 아, 아저씨한테 들을 말은 아니거든요!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다시 파묻었다. 그리고는 네 가슴팍에도 두어 번 입을 더 맞춘다.) …… 역시 아저씨는 조금 꼴사납더라도 내가 처음이라면 좋았을 텐데. …… 아니면 조금 더 일찍 만났거나…….
유명한:엄청나게 꼴사납거든, 그거……. 마흔 넘게 먹어서……. (와. 상상도 하지 말아야지. 그보다 자기도 처음이 아니면서 귀엽게도 군다.) 마지막은 너 줄게. 싫어?
노애리:…… 아저씨가 처음이라 하면 귀여웠을 것 같은데. (곰곰이 상상해보다 큰소리를 쳤다.) 다, 당연히 나 줘야죠! 바보. …… 평생 나한테 줘야 해. …… 아저씨가 만약 나중에 감당 못 하니까 싫다고 해도 안 놓아 줄 거야.
유명한:막상 눈앞에 닥쳤으면 징그럽다고 했을 거다. (갑자기 큰소리를 내자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어어? 어. 그치. 그렇지. 평생 너만 줄게. 아주 쪽쪽 빨리겠구만…….
노애리:흥. 아까까지는 그럴 생각 없었는데 빨아먹을 만큼 빨아먹으려구요. 아저씨 기운 내가 다 빨아먹고 더 탱탱해져야지. (능청스레 말하고는 네 품에서 휙 빠져나간다.) …… 물론 아저씨가 더 하기 싫어하면 안 할 거지만. …… 이제 밖으로 나갈까요?
유명한:거기에서 더 탱탱해지면 아기로 돌아갈까 겁난다. (진짜 전부 빨리면 어쩌냐. 속으로만 진지하게 고민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러다 몸이 두 배로 불어터지겠어.
노애리:(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켜 올라간다.) 후후. 내일은 또 내일의 일정이 있으니까 오늘도 푹 자둬야죠. 내일도 수영복 챙겨 가야 하니까 잘 마르게 널어 둬야 돼요.
유명한:아, 맞다. 요트.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네. (미끄러지지 않도록 밑에서 받쳐준 뒤 저도 따라 올라갔다.) 내일 몇 시에 나가?
노애리:으응, 글쎄요……. 정오 무렵이었으니까 그 전에만 나가면 되겠죠. 삼십 분 전이면 되려나……. (대강 물기를 털어내고 살짝 서늘한 바람에 몸을 잘게 떨었다.) …… 아저씨, 수건 어디 있어요?
유명한:정오? (계획이 이렇게까지 느슨할 줄은. 머리에 묻은 물기를 탈탈 털다 네 말에 테이블 위의 커다란 수건을 펼쳐들었다.) 이리 와.
노애리:(신난 얼굴로 네 쪽으로 쪼르르 다가가 수건에 폭 몸을 맡겼다.) 후후. 내일은 타지 않게 선크림도 챙겨 가야겠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죠? 내일은 푹 자고 나가요.
유명한:그래, 그래. 난 안 발라도 되니까 네가 바를 건 잘 챙겨라. (네 몸에 수건을 돌돌돌 말아주곤 문을 열어 주었다.) 응. 술 마셔서 더 졸려.
노애리:무슨 소리예요. 아저씨 것도 챙겨왔는데. (수건을 돌돌 두른 채 실내로 들어가자 바깥보다는 따뜻해 몸의 힘을 뺐다.) 물론 저는 그을린 피부가 멋있어서 좋긴 하지만 피부 관리는 확실히 해야 돼요. 내일 요트에서 발라 줄게요.
유명한:어쩐지 화장품도 한가득 있더라니……. (그 이상 뭐라 말을 않고 새 수건을 가져와 네 머리에 척 올린 뒤 제 몸도 쓱쓱 닦기 시작했다.) 단순히 만지고 싶어지신 것 같은데요, 응큼한 젊은이~
노애리:…… 무, 무슨 소리예요! 변태! 제, 제가 아저씨인 줄 알아요? 그런 응큼한 생각이나 하게.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내며 몸의 물기도 꼼꼼히 닦아낸다.) 그럼 직접 바르세요, 뭐. 흥이다.
유명한:농담 한 번을 못 해요. (대충대충 몸을 닦고서 잠옷을 꺼내들고 욕실로 걸어간다.) 옷 갈아입고 올게. 넌 침실에서 갈아입어라.
노애리:네에. (옷장으로 걸어가 새 속옷을 꺼내고, 젖은 수건들을 주워 걸어두었다. 네가 욕실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서는 축축한 수영복을 그 자리에서 주섬주섬 허물처럼 벗어던졌다. 남은 물기까지 닦고 속옷을 입은 뒤 옷장을 뒤적인다. …… 이, 이건 혹시 몰라서 가져온 야한 잠옷이니까 안 되고. 음, 그러면 조금 귀여운 쪽이 낫나……. 오랜 고민에 빠진다.)
유명한:(그래도 오늘은 초상집 분위기로 잠들진 않겠군. 옷을 갈아입은 뒤 가볍게 세수와 양치까지 하고 욕실을 빠져나왔다. 혹시 몰라 침실 문 앞에서 얼쩡거리며 두어 번 노크한다.) 다 입었어?
노애리:(화들짝 놀라서는 비교적 평범한 원피스 잠옷을 후다닥 입었다. 비록 옷장 앞이 난장판이 되었지만 일단 수영복만을 골라 손에 쥐고 문을 열어준다.) 네, 네에. 다 입었어요. (작게 숨을 고르다 네 몫의 수영복까지 가져간다.) 이거 밖에다 널고 올게요.
유명한:(혼자 벗기 힘든 수영복인가? 고민하는 사이 네가 순식간에 수영복을 가져가 얼빠진 표정이 된다.) 어어……. (침실로 들어가니 옷장 앞에 네 옷들이 널부러진 상태라 헛웃음을 흘리며 바닥에 앉았다. 그대로 옷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구경한다. …… 이건 아주 속살이 다 비치겠네.)
노애리:(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람이 잘 들어오는 바깥에다 수영복을 잘 펼쳐서 널어두고 안으로 들어온다. 옷장을 정리하는 네 모습을 바라보다 퍼뜩 생각난 듯 달려가 네 뒤에서 팔을 잡아당겼다.) 자, 잠깐만요! 보지 마세요! 보, 보지 마!
유명한:(아무리 봐도 야하다. 이상하리만치 그 잠옷에 꽂혀 천조각 밑에 제 손도 받쳐본다. 와, 다 보이네. 진짜 다 보인다고. 그러다 갑자기 끌어당기는 힘에 몸이 흔들렸다.) 자, 잠깐만. 어지러워…….
노애리:저, 정말, 멋대로……! (얼굴이 새빨개져 네 반응은 아랑곳 않고 황급히 쭈그려 앉아 네 손에 있던 잠옷을 홱 뺏어들었다. 민망함에 잠옷을 꼭 쥔 채 불퉁한 얼굴을 하고서는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을 덧붙였다.) …… 제, 제 거 아니에요. 이거 내 거 아니야. …… 그, 그러니까 못본 걸로…….
유명한:…… 그럼 앞으로 입을 일 없어? (대놓고 아쉬운 목소리로 묻는 입꼬리가 끝을 모르고 내려간다.)
노애리:…… 아, 아니……. (어쩔 줄 모르는 시선이 마구 방황하다가, 옷장 안에 잠옷을 쑤셔박고 옷장 문을 닫아버린다.) …… 어, 언젠가……. 입, 입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 올지도…… 모르죠…….
유명한:아쉽네. 입으면 날 샐 때까지 몸만 섞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고개를 저으며 미련을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쩔 수 없지. 그러곤 대충 침대에 몸을 던져넣었다.)
노애리:…… 앗, ……. (옷장과 침대로 향하는 네 뒷모습을 번갈아보다 침실의 불을 끄고 허둥지둥 뒤따라간다.) 그, 그게…… 시, 싫어서 안 입은 게 아니라…….
유명한:알아. 부끄러워서 안 입은 거잖냐.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다 기지개를 쭉 편다.) 나중을 기대해야지. 빨리 와라. 팔베개 할래?
노애리:…… 응.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로 기어올라가 꾸물꾸물 옆자리를 파고들었다.) …… 삐, 삐친 거 아니죠?
유명한:안 삐쳤어. 그냥 요만큼 아쉬워서 그렇지. 그마저도 기대감이 더 크네. (자연스레 널 안고 이불을 덮어준다.) 입어는 봤어? 저거.
노애리:…… 사, 사고 나서 시착용으로 한 번……. (얼굴을 붉히며 네 몸을 끌어안았다. 이제는 조금 낯익게 느껴지는 이 품이 가장 안정됐다.) …… 여, 여행 왔으니까 하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유명한:어땠어. 스스로 봐도 야해서 기분이 이상해질 정도였어? (장난스레 물으며 마주 꼭 안고서 얼굴 여기저기 입을 맞춘다.) …… 돌아가면 하자. 오늘 했다간 비싼 요트 대여료가 다 바다에 뿌려질 거야.
노애리:저, 저 그렇게까지 저한테 자신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얼굴의 거리는 가까운데, 부끄러움에 좀처럼 눈을 마주할 수가 없다.) …… 정말? …… 하, 할 거예요?
유명한:아깐 몸매는 네가 더 좋을 거라며? (그저 그런 네 모습을 즐겁다는 듯 바라보며 웃었다.) 왜, 집에 가자마자 하고 싶어서 그런가~?
노애리:그, 그건 그냥 오기로……. (이제 대답도 잇지 못한 채 잔뜩 뜸을 들였다.) 모, 몰라요. 바보……. 그, 그런 말을 해두면 내내 신경 쓰일 거 아니에요…….
유명한:참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참았는지 직접 느끼고 나면 나중에 엄청 엄청 느낄 수 있겠지. (검지 끝으로 네 볼을 콕콕 누른다.) 역시 적응할 수 있게 처음엔 한 번만 하는 게 좋을까?
노애리:그, 그러니까……. …… 놀리지 마요! (뾰로통한 얼굴로 네 옷깃을 가볍게 쥐었다.) …… 그치만 아저씨 평소에 나랑 같이 잘 때에는 여태 별로 아무렇지도 않았잖아요.
유명한:몇 달씩 잠복하고 수사할 때의 인내심을 좀 빌렸어. (삐칠 것 같자 잽싸게 입술을 쪽 빨아들였다 놓아준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던 건 네 쪽이지.
노애리:…… 으응. (입술이 떨어지면 한층 풀어진 얼굴로 네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 그냥 아저씨랑 같이 꼭 붙어서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 그래서 늘 그냥 잠들어 버렸어요. …… 아직 사귀지도 않으니까, 하기도 했고…….
유명한:바보 멍청이. (연달아 몇 번이나 더 입을 맞춘다.) 같이 꼭 붙어서 잠드는 건 나도 좋았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
노애리:(그러고 보니 사귀는 건 어떻게 됐지……. 그래서 사귄다는 건가?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다 저도 네 입술에 쪽 입을 맞춘다.) …… 저는 아저씨가 말만 그렇지 그, 그런 쪽으로 전혀 흥미 없는 줄 알았어요. …… 혹시 뭔가 문제가 있나 싶었달까…….
유명한:그런 쪽으로 문제가 있든 흥미가 없든, 어느 쪽이든! 그러면 여자를 안 사귀지!! (와, 정말 끝이 없구나. 네가 이해했는지 확인하려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나 아직 팔팔하게 잘 서. 잘 선다고.
노애리:사귈 수도 있죠. 난 아저씨가 문제가 있어도 여전히 좋아했을……. (얼굴이 붉어져서는 시선을 휙 피했다.) 아, 알겠으니까 그렇게까지 말 안 해도 돼요! 바보 아냐!
유명한:그러니까 문제 없다고 몇 번을……. 에휴. (진짜 바보가 누군데. 괜히 네 몸을 고쳐 안고서 말을 돌린다.) …… 그래서, 언제부터 사귄 거로 할 거냐. 오늘? 아니면 저승에서 만난 날?
노애리:……. 네? 그치만 사귀자는 말 못 들었는데요……?
노애리:…… 사귀는 줄 알았다고만 했지, …… 사귀자고는 말 안 해 줬잖아요.
유명한:…… 앞으로도 같이 있자는 말이 사귀자는 말이었다고! (이불을 퍽 찬다. 세상에.)
노애리:(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지만 여전히 제 시선은 얼떨떨하다.) …… 아, 아저씨 혼자만의 생각이었잖아요……? 여태까지 나만 모르는 디데이가 흘러가고 있었는데 이걸 사귄다고 쳐도 되는 거예요!?
유명한:나는 그 말을 사귀자는 말로 듣지 못한 네가 이해가 안 간다, 진짜로……. 길 가는 놈 아무나 붙들고 물어도 '그건 프러포즈 아닌가요?' 할 거라고?????
노애리:…… 에이. 프러포즈는 결혼해 줄래? 같은 게 프러포즈죠, 뭘…….
노애리:…… 여자 친구가 아니라……. …… 배우자가 되는 점?
유명한:그거 빼고 같이 살고 살 부딪히고 나머지가 전부 똑같은 거 아냐???
노애리:다르죠! 느낌이 다르죠! 이, 이래서 결혼하기 전에 동거는 안 된다는 거 아녜요! 아주 그냥 당연한 줄 알아! 설렘이 없어.
유명한:질문의 본질을 못 파악하네……. 그래서 안 사귈 거야?!?!!!!
노애리:지, 지금 사귀자는 말을 침대에서 그딴 말로 하는 거예요? (잔뜩 심통난 얼굴로 뚱하게 바라보더니 네게서 몸을 휙 돌려버린다.) 안 사귀어요, 안 사귈 거예요! 됐어요?
유명한:혼자 엉뚱하게 들어놓고 이제와서 짜잔, 사실 사귀는 게 아니었어요, 하면 누가 더 당황스럽냐고. (어이가 없네. 그러든가. 속으로 투덜거리며 네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그럼 고백은 네가 해라. 프러포즈는 내가 할게.
노애리:(알아듣게 말 안 한 자기 잘못이지! 이불을 챙겨 덮는다.) …… 싫어. 둘 다 아저씨가 해.
유명한:불공평해. (뒤에서 끌어안고 옷깃을 만지작거린다.) 진짜 불공평하다. 나 혼자 며칠도 아니고 지금까지 사귄다고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노애리:…… 저, 저도 여태껏 헷갈렸거든요? …… 아직 안 사귀니까, 하고 참은 게 얼마나 많은데. (끌어안은 네 팔 위를 조금씩 쓰다듬어준다.) …… 만날 때마다 오늘은 말해 주려나, 하고 기대하고…….
유명한:사귄 날들이 하루라도 줄어드는 것도 싫은데……. (얼굴을 부빗거리며 앓는 소리를 낸다. 어쩌면 이렇게 엇갈릴 수가 있는지 여태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안 사귄다는 말까지 해버렸으니…….
노애리:…… 아, 아저씨가 무슨 협박투로 고백하니까……. (허둥지둥 변명을 하며 힐끗 곁눈질로 널 살핀다.) …… 화났어?
유명한:……. (네 시선이 닿는 것도 모르고 손끝을 꿈지럭댄다.) …… 조금.
노애리:……. (어, 어쩌지. 다시 고개를 돌리고 고민에 빠졌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 그치만 이건 내가 잘못한 건가? 잘못 알아들은 죄야? 따지고 싶었지만 아까처럼 네가 화를 낼까 봐 무서웠다. …… 우물쭈물 눈치만 살피다 대뜸 묻는다.) …… 가, 가슴…… 만질래요……?
유명한:……?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나는 그저 서로 사귀는 사이라 인식하게 되길 바랄 뿐인데. 진짜 소박한데. 괜히 옷깃을 만지던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가슴도 좋지만……. 사귀는 게 더 좋은데…….
노애리:…… 아, 아니……. 화 풀어 주고 싶어서…….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한 말이었는데 그저 한없이 부끄럽다. 저도 뜨거워진 얼굴이 시무룩해진 채 그저 말없이 이불을 꼭 쥐었다.) …….
유명한:어디서 이상한 걸 배워가지고……. 가슴 만지면 화가 풀리는 건 맞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사람 같다. 밑가슴 언저리만 살살 더듬으며 고개를 들어 네 귓가에 속삭였다.) …… 나, 분위기 잡고 고백하고 그런 거 완전 쥐약이야. 그래도 그땐 엄청 노력했어. …….
노애리:마, 만지지 마요……. (이미 울상으로 변한 얼굴로 네 손을 밀어내더니 이불로 가슴 부근을 꽁꽁 둘러싼다.) ……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하는 게 싫어? …… 몇 번이고 더 말해 줄 수는 없는 거예요? ……. 그때부터 사귄 걸로 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
유명한:…… 사귀자고 몇 번을 말해도 네가 전부 싫다고 할까 두려워. (순순히 손을 내리고 허리를 꽉 안았다. 어떻게 고백해도 볼품없겠지. 네 눈에 찰 리가 없다. 그럼에도 당시 전력을 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네겐 그게 중요하지 않은 듯해 우울해졌다.) …….
노애리:저는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이불을 쥔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다 입을 다물었다. 네가 화를 냈던 게, 힘들다고 말한 게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그렇게 느끼게끔 만들 수는 없었다. 어젯밤의 쓸쓸했던 기억마저 겹쳐져 눈을 내리깔고 메이는 목을 꾹 삼켜냈다.) …… 고집 부려서 미안해요.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건데……. 아저씨 말대로 해요. …… 이제 괜찮으니까……. …… 안 사귄다는 말도 당연히 빈말이었어요.
유명한:……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왜 또 꼬이는 거지. 네가 고백을 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때도 사실 고백이었음을 알아만 주는 게 아니라……. …… 사람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르지…….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고민하다 네 몸을 돌려눕힌다. 스스로가 엄청나게 멋없고, 찌질하고, 한심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 좋아해. …… 사, 사귀어 주라……. …….
노애리:……. (젖은 눈시울로 네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이어져나오는 말에 손등으로 눈꼬리를 훔쳤다.) …… 나는 아저씨가 그때 해준 말들이 기뻤어요. 아저씨 곁에 있을 수 있게 돼서 아직도 그날의 행복한 기억이 엊그제 같아요. 물론 조금 아픈 기억도 남아 있지만, 그렇지만……. …… 그치만. 고백 한두 마디 정도, 앞으로도 계속 듣고 싶고, 그래서…….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오자 잠깐 숨을 멈추며 훌쩍인다.) …… 내가 싫다고 할 리가 없잖아요…….
유명한:…… 내가 미안해. 울지 마. 응? (다급히 네 손 위로 제 손도 겹쳐 눈물을 닦아주며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몰랐다.) …… 그거야말로, 앞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일이 없을 리가 없잖냐……. 으응. 아저씨가 미안해. 많이 많이 잘못했다. (가슴팍에 네 머리를 꼭 안으며 등을 토닥여 달랬다. 동시에 네 과거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지금은 뒤로 묻어두기로 했다.)
노애리:……. (화를 내거나 또 한숨 소리가 들려올까 봐 노심초사하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짐과 동시에 안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져나오자 계속해서 제 뺨을 닦아낸다.) …… 잘못 알고 있던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흑. 그렇게까지 말하기 싫어하면 상처받는단 말이에요. …… 지금만 들을 수 있는 말이니까, 그래서…… 으응. (네 품에 머리를 박고 우느라 가빠진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 미안해요. 또 떼 써서…….
유명한:잘못했다고 한 적 없어, 이 바보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왜 사과해야 할 땐 안 하고 안 해도 될 땐 하는 건지. 온기를 조금이나마 더 느낄 수 있도록 더욱 꼬옥 안았다.) 말하기 싫었던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뚝 하자. 오늘 너무 많이 울었어. 내일 눈도 못 뜨겠네.
노애리:…… 응. (훌쩍이는 소리가 작아지자 천천히 끄덕인다. 조심조심 네 몸을 함께 끌어안고서 힘을 풀었다.) …… 그래도 말해 줘서…… 기뻐요.
유명한:…… 엄청 구질구질했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에 짧게 입을 맞춘다.) …… 아직도 좀 부끄럽네…….
노애리:뭐가 구질구질하단 거예요. …… 두근두근했는데……. 백 번 천 번 더 듣고 싶을 정도로…….
유명한:배, 백 번 천 번은 했다가 내가 말라죽지 않을까…….
유명한:안 싫어. 좋아해. 좋아한다고. …… 바보.
노애리:…… 좋아해요. (네 입술에 쪽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 아저씨가 제일 좋아. 아저씨만 좋아해. …… 오늘은 꼭 안아주고 이대로 자야 돼요.
유명한:알았어. 밤새 안고 있을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비로소 몸에서 힘을 뺀다.) 아침에 배고파도 너 일어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게.
노애리:…… 그, 그럴 땐 나 깨워도 돼요……. 바보. (무거워진 눈꺼풀을 감고서 품을 파고들었다. 어쩔 수 없이 옅은 미소가 번진 채 조용히 규칙적인 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 잘 자요, 명한 씨…….
유명한:…… 안 깨워. (금세 잘 자세를 취하자 몸을 틀어 네가 가장 편히 누울 수 있게 움직였다. 진짜 다사다난한 하루였네……. 네가 잠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작게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 잘 자. 내가 더 많이 좋아해.
3일째,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요트를 타러 가는 날입니다.
일찍 아침 식사를 마치고 너무 늦지 않게 시내로 나가도록 합시다. 저 드넓은 바다 위에 수놓아질 평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유명한:……. (잠에서 깬 지 얼마나 지났지. 흘끔, 아직 품속에서 자고 있는 네 얼굴을 쳐다본다.)
노애리:……. (네 품에 얌전히 안긴 채 퉁퉁 부은 눈으로도 행복하게 잠들어 있다.)
유명한:…… 이걸 어떻게 깨우냐고……. (얘 눈은 뜰 수 있나? …… 장난이나 칠까. 잠에 빠진 얼굴을 향해 천천히 속삭인다.) 아저씨 혼자 간다.
노애리:으응……. (귓가가 간지럽다는 듯 몸을 뒤척이며 품에 더 파고들었다.)
유명한:아저씨 혼자…… 애리 두고 간다~……. (이래도 안 깨나? 그럼 나도 그냥 조금 더 잘까…….)
노애리:응……? (눈을 감은 채 잠꼬대처럼 대답했다. 네 몸을 더 꼭 끌어안으며 고개를 부빗거렸다.) …… 싫어……. 가지 마…….
유명한:…… 지금 안 일어나면 두고 간대. (소곤소곤 속삭이고 꼬오옥 몸이 부서져라 안았다. 귀여워.)
노애리:……. (그제서야 눈을 반쯤 뜨며 비몽사몽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다. 마지막으로 네 얼굴에 시선이 닿으면 꿈벅꿈벅 올려다본다.) …… 아저씨? 아저씨 어디 가요?
유명한:(네가 깨는 낌새가 보이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대로 네 시선을 받아내다 모르는 척을 했다.) 응? 가긴 어디를 가.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
노애리:……. (꿈인가? 금방이라도 다시 잠들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 그럼 더 자도 되는 거예요? …….
유명한:아니, 일어난 김에 아침 먹고 요트 타러 가자. (눈 밑을 손끝으로 살짝 눌러 눈을 뜨게 하다가 입술을 겹친다.) 지금 일어나면 모닝 키스도 해 줄게.
노애리:…… 으응. 알겠어요……. (네가 입술을 겹치면 뒷목을 감싸 끌어안았다. 마냥 바보처럼 웃음기를 흘려내며 저도 입을 맞췄다.) …… 후후. …… 이제 내 남자 친구네…….
유명한:……. (어제도 남자 친구였다고. 속으로만 항의하며 맞댄 입술을 할짝이다 가볍게 혀를 얽었다. 너무 길지 않게 입을 맞추고 떨어져선 물었다.) 그렇게 좋아?
노애리:(느릿느릿 네 혀를 받아내며 눈을 감고서, 입술이 떼어지면 다시 시선을 맞춘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 응. 좋아. …… 엄청. …… 그리고 행복해.
유명한:앞으로 더 행복해지겠네. (이렇게 보니 순둥이 바보가 따로 없다. 올라간 입꼬리에도 입을 맞춘다.) 일어날 수 있겠어?
노애리:응……. (부어오른 눈가를 부비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칭얼거렸다.) …… 그치만 아직 졸려서 아침 생각은 없어요…….
유명한:그래? (뒤따라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가져와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있으면 점심 때 다 되겠는데요, 아가씨.
노애리:…… 아. …… 벌써? (입가를 가리고 작게 하품을 했다.) 그럼 바로 옷 갈아입고 요트 타러 가보는 게 좋을까요?
유명한:리조트 조식 안 먹을 거야? 호텔 조식이랑 비슷한 모양이던데. (이제 익숙한 폼으로 등을 탈탈 쓸어준다.)
노애리:…… 궁금하긴 한데. (고민되는 얼굴로 힐끔 널 뒤돌아본다.) 그랬다가 배불러서 요트에서 준비해 주는 식사를 다 못 먹으면 어떻게 해요? …… 아저씨는 둘 다 먹을 수 있으려나?
유명한:…… 그, 그런 것도 있어? 먹을 수는 있는데……. (눈이 마주치자 되려 너보다 더 고민에 빠진 얼굴이 되어 있었다.) 둘 다 아깝다.
노애리:…… 후후. (작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시트를 짚고 다가가 네 뺨에 쪽 입을 맞춘다.) …… 귀여워.
유명한:……. (평소 같았으면 바로 되받아쳤을 텐데, 그저 얼굴을 붉히고 침대에서 도망치듯 일어난다.) 빠, 빨리 씻자고.
노애리:(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리며 뒤따라 일어나 기지개를 쭈욱 켠다.) 얼굴 빨개졌대요. 후후……. 그럼 나도 씻고 올게요.
유명한:굳이 말하지 마!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툴툴댄다.) 그래. 오늘도 아래층 욕실 쓸 거냐?
노애리:아저씨가 1층 욕실 써도 되는데……. 쓸래요?
유명한:어차피 욕조 안 쓸 거니까 내가 2층 쓸게. 나 먼저 들어간다~
노애리:아, 네! (멍하니 있다 저도 허둥지둥 옷을 꺼내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이후 간단하게 샤워를 끝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는 동안 오랫동안 욕실에 박혀 있었다.)
유명한:(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욕실에서 나왔다. 수건을 들고 테라스로 나가 온몸을 탈탈탈탈탈 말리고, 옷을 챙겨 입고서 말린 수영복도 가방에 따로 챙겨 들고 내려간다. 아직 준비 중인가? 문이 닫힌 욕실을 흘끔 보며 소파에 앉았다.)
노애리:(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옷까지 입은 뒤 욕실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면 시야에 네가 보여 환하게 웃으며 뛰어간다.) 많이 기다렸죠. …… 으응, 눈이 부어서 아무리 화장을 해도 너무 별로예요, 오늘은…….
유명한:(발끝을 까딱거리며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린다. 우다다 뛰어오는 네 허리를 감싸고 올려다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똑같이 예쁜데.
노애리:……. (얼굴이 붉어져서는 네 어깨를 가볍게 통 때린다.) 바, 바보! 아침부터! 갑자기 낯 부끄러운 소리나 하고……!
유명한:좋으면서. (허리를 톡톡 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택시 타고 갈까? 가서 술도 마실지 모르잖냐.
노애리:그럴까요? 마침 잘 됐다. (네가 일어나면 팔짱을 끼고 꼭 붙었다.) 오늘은 술 마시게 해 줘야 돼요. …… 어제 조금밖에 못 마시게 해서 아쉬웠으니까.
유명한:조금이긴 해도 독한 술이었잖아. 맛없다고 켁켁댔으면서? (팔짱을 낀 그대로 걸어 샌들을 신고 객실을 나선다.) 술도 안주도 풍경도 기대되네……. 뱃속에서 배고프다고 난리야.
우리는 택시를 타고 요트 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당신은 오늘 해변은 무척이나 조용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모르고 보았을 때는 별 다를 거 없이 그저 아름다운 바다였겠지만, 그 일렁임을 보고나면 평화로운 수면이 어제와 다르다고 느껴질 테니까요.
요트 투어 사무소에 도착하면 예약을 확인한 뒤, 신발은 맡겨두고 요트에 탑승하기 전에 탈의실에 들러도 괜찮다고 합니다.
음료와 식사 또한 요트에서 제공한다고 하네요.
샴페인에 랍스터, 연어 스테이크! 선상에서 즐기기에 괜찮은 메뉴 아닌가요?
노애리:(마냥 들뜬 얼굴로 제 몫의 수영복을 꺼낸다.) 엄청 기대된다, 그쵸? 갈아입고 올 테니 요 앞에서 다시 만나요!
유명한:바다가 엄청 조용하네……. 응? 오냐. 다녀 와라. (얼렁뚱땅 설명을 듣고 수영복 바지를 덜렁덜렁 흔들며 탈의실로 향했다.) 왜 찝찝하지…….
노애리:(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수영복을 입고 겉옷을 걸친 채 나가면 네 모습이 보였다. 왠지 대낮에 보여주는 느낌은 달라서 어제처럼 겉옷으로 몸을 싸맨 채였다.) 아저씨, 갑자기 생각난 건데 아저씨 멀미 하고 그러면 어떡해요?
유명한:(수영복 바지에 얄팍한 셔츠를 헐렁하게 입고서 기다리고 있자니 이번엔 금세 네가 나타났다. 네 질문에 잠시 의아해하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배멀미 없…… 을 걸?
노애리:…… 음. 높은 데도 아니니까 상관없겠죠? 후후, 빨리 랍스터 먹고 싶다. (네게 찰싹 붙어 팔짱을 낀다.) 그럼 바로 타러 갈까요?
유명한:그렇겠지. (그때, 사실 고소 공포증이 있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여전히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빨리 가자.
요트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노라면 얼마 있지 않아 느리게 출발하기 시작합니다.
햇빛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내리쬐고, 블루 레몬 에이드를 닮은 파도는 새하얀 거품과 함께 살갗에 닿아 쏟아집니다. 꼭 하늘과 바다를 가위질하는 기분이 듭니다.
요트의 내부는 요리가 준비되어 느긋하게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는 공간과 그 아래로는 수영장이 있고, 더위를 피해 시원한 실내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흰 요트를 휘감는 청명한 바람은 백사장 위를 걸을 때의 관능적인 순간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청량감이 몸 속을 가득 채웁니다. 자유나 희망, 해방감, 고양감이란 이런 순간에 태어난 단어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애리:(여전히 네게 착 붙은 채로 바다를 구경하면서도 네 상태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저씨, 이 정도 높이는 괜찮아요?
유명한:엉? (그저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가, 네 질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별로 안 높잖아.
노애리:…… 그, 그치만. 어느 정도의 기준인지 모르겠어서……. (저도 덩달아 수줍게 웃고서는 손깍지를 낀다.) …… 어때요? 마음에 들어?
유명한:하늘에 매달리는 거. (깍지를 낀 손을 살살 흔들었다.) 어쩌면 사람이 이래서 돈을 버는 건가 싶네.
노애리:…… 후후. 어때요? 괴도 여자 친구를 둔 소감이? (능청스럽게 농담을 건네며 난간에 턱을 괴고 올려다본다.) 우리 아저씨랑 호화 바캉스 오려고 도둑질 백 번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유명한:떽. 나중에 퇴직금 받아서 오면 되는 걸 가지고. (농담인 것을 알기에 받아치는 얼굴에 여전히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도둑질 백 번 하기 전에 아기 만들어야겠다.
노애리:……. (얼굴이 금세 빨개져서는 네 팔뚝을 찰싹 때렸다.) 가, 갑자기 뭐예요! 아, 아기라니……!
유명한:아야. 농담이지, 당연히! 이제 아주 더 때리네?!
노애리:여자가 때리는 게 아프면 뭐 얼마나 아프다고 그래요! 나 참. (심드렁하게 흘려들으며 그늘 아래로 들어가 제가 가지고 온 가방을 뒤적인다.) 참, 참. 선크림 발라야지. 아저씨는 알아서 바른다고 했죠?
유명한:여자든 남자든 아프면 아픈 거지. 얌마. 어어, 아저씨는 그런 거 안 발라도 괜찮아. (네 뒤를 따라가 선베드 위에 척하니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바람 따뜻하니 좋네. 까딱하면 잠들겠어.
노애리:알아서 바르라고 했지, 누가 바르지 말랬어요? 땡볕 아래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네 옆자리에 앉아 손을 붙잡더니 그 위에 크림을 쭉 짜준다.) 아저씨 것까지 해서 넉넉하게 가져왔단 말이에요. 자지 말구 발라요.
유명한:그치만, 귀찮아. (진짜 완전 귀찮다. 선크림 그런 거 안 발라도 잘만 살더라. 크림이 묻은 손을 그대로 펼쳐두고 입을 쩍 벌려 하품한다.) 넌 무슨 애가 그렇게 쌩쌩하냐.
노애리:씨. 안 바를 거예요? 네? (결국 손부터 해서 셔츠 아래 드러난 팔까지 넓게 발라 조물조물 발라주기 시작했다. 툴툴거리며 얼굴을 붉힌다.) 놀러왔으니까 쌩쌩하죠! …… 나, 남자 친구랑.
유명한:어차피 평소에 드러내고 다니지도 않는걸. (네 손이 몸에 닿는 감각이 간지러워 움찔거리면서도 나름 가만히 있으려고 노력한다. 이어지는 말에 실눈을 뜨고 네 배를 손끝으로 찌른다.) 밤에 그렇게 울어놓곤. 여자 친구 씨도 발라 드려야 하나, 그러면.
노애리:……. (민망한 기억에 입술을 꾹 물고 방금 전 크림을 발랐던 팔을 찰싹 때렸다.) 시, 시끄러워요. 됐어요, 혼자 바를 수 있으니까! 아저씨한테 그런 센스 같은 거 기대하지 않았는걸. 자, 저쪽 팔은 이제 아저씨가 알아서 발라요. (네 손에 한 번 더 크림을 짜준다.)
유명한:나 참. 그럼 등은 어떻게 바를 건데. (이 녀석이라면 질투를 유발하겠답시고 무슨 짓을 벌일지 감도 안 잡힌다. 어쩔 수 없이 눈을 제대로 뜨고 얻어맞은 팔을 탈탈 턴다.) 진짜 아프다니까……. 흥.
노애리:그, 그런가……. (생각 못한 부분을 지적받자 아차싶은 얼굴을 했다.) …… 저는 뭐어, 그럼 이따 등만 발라 주시든가요. 흥. 아이, 글쎄 빨리 바르래도요. 사실은 지금 발라 주길 원해서 밍기적거리는 거예요? 네?
유명한:뭔 말도 안 되는 소릴……. 바르려고 눈 떴잖아. 바보. (크림 때문에 쓰라린 곳을 만질 수도 없어 얼굴을 찌푸린다. 반대쪽 팔에 대충대충 선크림을 바르고 다시 철퍼덕 고쳐 눕는다.)
노애리:자꾸 그럴 거예요? 아직 바를 곳은 많으니까 조금 더……. (아무래도 영 의욕이 없어 보인다. 입을 삐죽이다 콧방귀를 뀌더니 벌떡 일어났다.) 됐어요! 바보. 팔만 빼고 다 타 버려라. (그리고는 옆자리에서 자리를 떠 보란 듯이 반대편으로 가 탈싹 앉는다.)
유명한:나는 좀 타도 괜찮으니까 너나 잘 발라. (놀기만 잘 놀면 되지. 결국 삐쳤는지 굳이 다른 자리로 가는 모습에 네 뒤를 쫓아가 옆에 앉는다.) 좀 탄다고 사단이 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화를 내냐.
노애리:다 아저씨 생각해서 그런 거거든요? (네가 옆에 오든지 말든지 스스로 크림을 손과 팔에 먼저 바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바보야. 나는 드라마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알콩달콩 선크림 발라 주기~ 같은 걸 기대해서 들고 온 건데. 역시 아저씨한테 무드 같은 거 없었어. 치. 혼자 바를 거니까 저리 가요.
유명한:그러면 그런 걸 하고 싶었다고 말을 해야지. 미리 잔뜩 바르고 왔을 놈이 그러고 있으니 당황했다고. (당황까지는 아니지만, 알콩달콩 선크림 발라 주기~ 는 실제로 당황스럽다. 선크림 튜브를 빼앗아 들고 제 손에 넉넉하게 짠다.) 저리 안 갈 거니까 누우세요.
노애리:…… 아저씨는 여자 마음도 모르는 바보. (중얼거리며 순순히 자리를 잡고 눕긴 했지만, 여전히 뚱한 얼굴이다.) 여자한테 이런 걸 다 말하게 한단 점에서 꽝이야. 내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다 끝났어.
유명한:네, 네. 바보 천치라 바보랑 사귄답니다. (네 몸을 다리 사이에 두고 반쯤 기마 자세를 취한다. 뚱하디 뚱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어깨를 으쓱이곤 어깨부터 크림을 바르며 내려간다.) 자존심은 원래 박살났다가 지 혼자 척 붙고 그러는 거잖냐.
노애리:지금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끝났다는 여자 친구 앞에서! 로맨틱한 말 가득 해 주면서 달래 주지는 못할 망정. (네가 했던 것처럼 몸의 힘을 쭉 빼고는 슬며시 눈을 감고 손길을 느꼈다.) 아저씨한테는 정말 무드 잡기, 센스 챙기기, 로맨틱한 대답하기 강습 같은 게 필요하겠어요.
유명한:……. (그러니까 로맨틱한 말이 뭐냐고. 나는 그런 말 할 줄 모를 뿐더러 애초에 그걸 나한테 기대한다는 게. 차마 입밖에 낼 수 없는 말들이 혓바닥 위에서 뛰어다닌다. 겉옷 안으로 손을 넣기 귀찮아 아예 헤쳐 벌리고 수영복 라인을 따라 여기저기 꼼꼼하게 크림을 바른다. 하여간 말만 잘해.) 흥…….
노애리:…… 간지럽다. (무어라 호통을 칠까 걱정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중얼거리며 슬쩍 실눈을 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그 얼굴을 보고서 양팔을 뻗었다.) 삐쳤어요? 아저씨 안아서 토닥토닥 해 줄까?
유명한:마저 바르게 가만히 있어. (제게 뻗은 팔도 아래부터 쭉 훑어올려 다시금 크림을 바르고 조금 밑으로 내려간다. 제 기준 삐쩍 말라빠진 몸통에 크림을 짜며 투덜거렸다.) 평소에 입에 뭘 넣고 다니긴 하는 거야, 뭐야…….
노애리:(어쩐지 가까이에서 몸을 보여 주고 있는 기분이 부끄러워 다리를 살짝 움츠렸다.) …… 수, 수영복 입으려고 요 며칠간 노력해서 그래요. …… 아저씨랑 있으면 방심해서 이것저것 막 많이 먹게 된다구요. 저, 저기, 너무 구석구석 안 발라도 되니까요.
유명한:노력 안 해도 충분히 가볍고 말라빠졌거든? (여긴 너무 많이 만지면 간지럽겠지. 손끝에 힘을 줘 훑어내리듯 바르고서 다리로 내려가 손이 들어가기 쉽게끔 살짝 벌린다.) 땡볕 아래인데 안 바르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며?
노애리:아, 아니, 그러니까아, 이런 곳은 그렇게까지……. (네가 벌려낸 틈새를 다시 꼭 오므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부, 부끄러우니까 다리는 대충 발라요! 대충. 부족하면 내가 알아서 바르면 돼요.
유명한:이제 전부 내 거라는 건 너도 아는데 왜. (반항할 수 있을 리가 없잖냐. 손을 넓게 벌리면 허벅지가 거의 가려지는지라, 틈새까지 빠짐없이 바르다 보면 살갗이 달아오른 게 느껴져 입꼬리를 올려 조용히 웃었다.) 힘 빼라~
노애리:……. (입술을 우물거리며 아무 말도 못한 채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힘을 빼려고 해 봐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 붉어진 얼굴이라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슥 돌린다.) …… 아, 아저씨. …… 그럼 통통한 게 취향이에요? 마른 여자는 별로야?
유명한:통통하든 마르든 별 신경 안 써. …… 그래도 넌 좀 쪄야 한다. (괴도 노릇하느라 뭘 제대로 챙기지도 않았을 게 뻔히 보여 혀를 찬다. 발목과 발등까지 전부 크림을 바르고 나서 네 얼굴을 쳐다본다.) 몸이 두 배로 불어도 안든 업든 다 할 수 있으니까 괜히 건강 해치치 마. 알겠냐.
노애리:……. (발가락을 꼼질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크림을 다 바른 것 같으면 몸을 일으켜 앉아 겉옷을 완전히 벗었다.) …… 나중에 통통해졌다고 뭐라 하면 안 돼요? 알겠죠?
유명한:통통해지면 보기에도 좋고 이런저런 거 할 때도 좋은데 뭐라 하고 그럴 일이 있나. (스무 살 꼬맹이도 아니고 뭘 그렇게 부담을 가지는지. 네가 벗은 옷을 잘 개켜 옆자리에 둔다.)
노애리:(꾸물꾸물 몸을 엎드려 네게 등을 내보이고서 힐끔 뒤돌아본다.) 뭐야, 역시 통통한 게 취향인 거 맞잖아요. …… 이런저런 거 할 때가 뭔데요? 왜 좋은데요?
유명한:취향 문제가 아니라 네가 뼈랑 가죽만 달고 다니니까 그런 거 아니냐. …… 뭐어, 만질 때 말랑말랑해서 좋다든가……. (돌아보는 얼굴에 짧게 입 맞춘다.) 대충 그런 거.
노애리:…… 변태. (귀끝을 붉힌 채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려버린다.) 가슴이랑 엉덩이는 지금도 말랑말랑할 텐데.
유명한:사람은 다 변태야. (등에도 크림을 올리고 천천히 문질러 바르며 널 따라 고개를 반대쪽으로 옮긴 채 속닥거린다.) 그래, 엉덩이를 잔뜩 부딪혀도 덜 아프겠네.
노애리:…….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서는 다리를 마구 달랑거리며 흔들어댔다.) …… 진짜 변태야! 바보. 바보. …… …… 그, 그럼……. …… 다이어트, 그만둬 볼까나…….
유명한:응. 오늘부터 그만두자. 두 배 세 배로 살이 쪄도 아저씨가 야한 짓 마구 해줄 테니까. (나는 이걸 설득이라고 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귀여우니까. 응. 아무튼 괜찮다. 옆가슴 언저리에도 크림을 바르며 작게 웃었다.) 너도 야한 생각 하고 있으면서 나만 변태래.
노애리:저, 저는 그런 걸 바깥으로 꺼내서 말하지는……. 힉. (깜짝 놀라서는 고개를 돌려 네 손을 탁탁 치워내려 들었다.) 그, 그런 곳은 됐다구요! …… …… 두 배 세 배로 살쪄도 귀엽다고 말해 줄 거야?
유명한:남이 듣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따져. (네가 밀어내자 되려 가슴을 손아귀 안에 한 번 꾹 쥐었다 놓고서 엉덩이 쪽으로 내려간다. 역시 좀 더 찌우는 게 좋겠네.) 그래. 두 배 세 배 열 배로 살쪄도 귀엽고 예쁘다고 말할게.
노애리:으응, 진짜, 좀! (투정을 부리면서도 네가 손을 거두면 저도 다시 얼굴을 묻었다.) …… 아저씨가 응큼한 말을 하는 빈도만큼 로맨틱한 말을 해 줬더라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 약속했어요. 돌아가면 살찌는 디저트 왕창 먹어야지.
유명한:로맨틱한 말이 뭔지도 모르는 아저씨라 미안하네. 뭘 돌아가서 먹어? 여기에서도 먹을 수 있지 않냐? (요 말썽꾸러기가 제대로 불이 붙었으니 돌아가서 뭘 입에 넣을 시간이나 남길지 모르겠다. 장난스레 발바닥까지 크림을 발라주고 옆자리에 엎어졌다.) 그거 하나 바르는 게 엄청 오래 걸리네.
노애리:그런가? 그치만 여기선 비싼 것들 위주로 먹고 싶단 말이에요. (간지럽다는 듯 쿡쿡 웃고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저씨도 더 발라 줄까요? 필요해요?
유명한:비싼 음식은 살이 안 찌겠나. (고개만 돌려 네 얼굴을 보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바르고 싶으면 발라라. 이제 네 몸이 내 거고 내 몸이 네 거지.
노애리:후후. 그럼 똑바로 누워 봐요. 아저씨 몸도 잔뜩 미끌미끌하게 만들어 줘야지. (크림을 손에 듬뿍 짜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명한:야, 미끄러운 건 안 돼. 끈적끈적해지잖아. (바로 태클을 걸면서도 순순히 일어나 셔츠와 윗옷을 벗고 정자로 누웠다.)
노애리:끈적끈적한 게 좋은 거잖아요. 아저씨는 셔츠 걸치고 있을 테니까 등은 필요 없으려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냉큼 네 위에 올라타 하체를 깔고 탈싹 앉았다.) 근데 아저씨라면 피부를 태우는 것도 잘 어울리고 멋있을 것 같긴 해요.
유명한:난 끈적끈적한 거 싫어. 마음대로 하라곤 했지만 끈적끈적만은 안 돼. (네 허벅지를 아프지 않게 찰싹 올려붙여 경고했지만, 알아들었을지 모르겠다. 팔을 제 머리 뒤에 베개처럼 포개 베고서 눈을 감았다.) 평소에도 하얀 편은 아닌데?
노애리:끈적끈적한 게 뭐 어때서 그래요. 좋기만 한데. 같이 끈적해지면 좋잖아요. (손에 뿌린 크림을 네 배에 넓게 펴바른다.) 음, 아니에요. 왜 있잖아요. 태닝한 피부 같은 거.
유명한:바람도 바닷바람인데 끈적끈적은 무슨. 하여간. (특이해. 배에 손이 닿자 괜히 신경쓰여 단전에 힘을 준다.) 구릿빛 피부니 뭐니 하는 거? 그런 거 좋아하냐?
노애리:…… 응.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했던 것처럼 꼼꼼하게 발라 주며, 가슴팍에도 크림을 장난스레 짜내고서 신난 웃음을 지었다.) 멋있잖아요. 남자다운 느낌이고. 그런 태닝한 남자들은 보통 자기가 잘생겼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거든요. 아, 물론 아저씨도 남자답고 잘생겨서 짱 좋아.
유명한:좋아한다는 놈이 이렇게 열심히 바르기나 하고. (한쪽 팔을 내려 가슴팍 위에 놓인 네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얘는 사람 보는 눈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잘생겼다는 걸 알아? 그럼 너랑 비슷한 타입인가.
노애리:그건 그거고 아저씨 피부가 막 마음대로 상하면 안 되니까. (바르는 손길을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만지자 조금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저…… 저요? 제가 무슨 타입이지? 전 나랑 비슷한 사람은 별론데. 아, 한마디로 남자답게 잘생긴 사람이 좋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아저씨 좋아하지. 그쵸?
유명한:아저씨 피부는 가죽이라 안 상해. (실눈을 뜨니 보이는 얼굴에 잠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가도 모르는 척 다시 눈을 감으며 손을 거둔다.) 예쁜 거 알아서 들이밀고 자랑하고 꾸미고 보여주고 다니는 타입. 흐응…….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노애리:(아저씨 가슴……. 힐끔힐끔 엄한 곳을 바라보다 가슴 위를 조금 더 조물조물 만지듯 발라댔다.) 아니에요.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닐지두요. 남자는 자신감이 넘칠수록 멋있으니까. 서투른 남자보다는 능숙한 남자가 좋기도 하고……. …… 아저씨는 능숙한 부분도 있고 서투른 부분도 있어서 귀여워요.
유명한:(가슴을 만지는 손길에도 딱히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채 네 말에 대꾸하느라 바쁘다.) 예쁨 받고 싶어서 안달난 게 전부터 다 보였거든? 확실히…… 나이를 먹다 보면 마냥 서투른 사람은 좀 꺼려지긴 하지. (아니, 근데 이 녀석이.) 왜 자꾸 가슴만 쪼물거려?
노애리:예쁨 안 받고 싶어 하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네? 참고로 저는 전부 다 능숙……. …… 핫. (뜨끔한 얼굴을 하고서 후다닥 괜히 방금 전까지 발랐던 배로 손을 내렸다.) 제, 제가 언제요! 뭘 쪼물거려요, 쪼물거리기는. 발라 준 거지.
유명한:전부 다 능숙해? 나 참. 기대하게 하려는 건지 뭔지. (눈을 번쩍 뜨곤 네 손목을 끌어다 제 가슴 위로 올려 꾹꾹 누른다.) 뭐가 아니야. 이렇게, 이렇게 마구 만져댔으면서. 변태.
노애리:으응, 아, 아니라니까요! 왜, 왜 이래요, 진짜! 아저씨가 의식하니까 그렇게 느껴진 것뿐이겠죠!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네 손을 빠르게 뿌리친다.) 그, 그리고 처음 만져보는 거니까 손 좀 대볼 수도 있지…….
유명한:돌아가면 원없이 만지고 뽀뽀하고 할 텐데 하루를 못 참는군. (놀림조가 명백한 목소리로 웃으며 다시 네 손목을 잡아 제 아랫배 언저리에 댄다.) 아저씨지만 그래도 몸은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노애리:…… 응. (여전히 부끄러운 듯 짧게 대답만을 하고서 손끝으로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 물론 아저씨가 몸이 안 좋았더라도 귀여워했을 것 같지만, 나쁘지 않아서 좋아요. …… 흥. …… 저같은 연하랑 만나기에 잘 어울린달까…….
유명한:평가가 박하네……. (일부러 네 말뜻을 모르는 척을 하며 입꼬리를 올린다.) 너같이 능숙한 연하도 엉망으로 만들 수 있을걸. 이거 어째……. 여행을 왔는데 여행이 끝나길 기다리게 생겼어. 그치?
노애리:…… 그, 그러니까아…… 자꾸 성희롱 해대지 말라구요! 십 분에 한 번은 하는 것 같아. (몸을 네게 살짝 가까이한다.) 어때요? 끈적끈적해도 별로 나쁜 기분은 아니죠?
유명한:네가 좋아하는 아저씨가 성희롱 아저씨인데 어쩌냐. 감당해. (기다렸다는 듯 네 몸을 품에 안았다.)
끈적끈적한 건 여전히 별론데……. 네가 있으니까 괜찮네. 뭐. …… 흥.
노애리:으응. (네게 뒷목을 감고서 맨살이 닿게끔 찰싹 달라붙어 뺨에 입을 맞춰댄다.) 이것 봐요. 같이 끈적끈적하잖아요. 후후……. 기분 좋다. 아저씨 다리도 필요해요? 더 발라 줄까?
유명한:별 게 다 기분 좋대. (고개를 틀어 뺨이 아니라 입술이 맞닿게 하고서 네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발라 주고 싶어?
노애리:음……. (네 몸을 한층 더 세게 꼭 끌어안았다.) …… 뭐어, 여자 친구가 그 정도 봉사는 해줄 수 있어요. 대신 아주 잠깐만 이대로 더 있다가……. 아저씨는 기분 안 좋아? 미끌미끌……. 후후.
유명한:아주 잠깐만? (또, 또 귀엽게 굴지. 네 코를 깨무는 시늉을 한다.) …… 기분이야 좋지. 여자 친구랑 같이 있잖냐. 미끌미끌한 거, 원래 좋아해?
노애리:…… 음, 나쁘지 않을지도…….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고 네 목덜미에 뺨을 부비적거리며 쪽쪽 입을 맞춰댔다.) 목욕할 때에도 같이 미끌미끌해진다든지, 하면……. 좋잖아요. 뭔가 야하고…….
유명한:좋아하는 게 많아서 하고싶은 것도 많은가 봐. (그새 흡수된 건지 끈적하다기보단 매끈한 등을 쓰다듬어 문지르다 허리 언저리를 더듬는다.) 야한 느낌인가……. 진짜 야한 짓까지 하면 되는데.
노애리:…… 바, 바보. 또 음담패설이죠? (네게서 상체를 떼내고 제 허리를 붙잡는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가슴 아래까지 천천히 끌어당겼다.) 후후. 아저씨는…… 쭉 참아야 돼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내가 이래도 아무것도 하면 안 돼.
유명한: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조금 기분을 맞추어 주면 금세 이렇게 된다. 밑가슴을 부드럽게 받치다시피 한 채 가슴을 쳐다본다. 크긴 크단 말이지.) 나도 알아. 바보. …… 네가 가슴 만지는 것도 만져지는 것도 좋아한다는 사실도 자알 알겠다.
노애리:…….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는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다가, 이내 네 손을 밀어내고 꾸물꾸물 뒤돌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 아니거든요! 바보! 누, 누가 좋아한다고……! 아저씨가 가슴밖에 안 만져 봐서 그런 줄 아는 거예요. (괜히 서두르는 손길로 다리에도 크림을 바르기 시작했다.)
유명한:그래? 좋아한다고 하면 듬뿍 만져 주려고 생각했는데, 안 되겠네. (허둥지둥 움직이는 뒷모습을 헛웃음과 함께 쳐다보다 다시 손을 뻗었다. 엉덩이 밑을 엄지로 가볍게 훑어올려 엄한 곳을 쳐다본다.) 그러게. 여기도 만지고 싶게 생겼구만.
노애리:…… 거짓말 마세요. 어제는 만지라고 해도 안 만진…… 햣!? (깜짝 놀라 새된 목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본다. 황급히 제 손으로 엉덩이 부근을 가리며 얼굴을 붉혔다.) 무, 무슨 짓이에요! 이…… 이 저질. 보지 마요! 만지지도 말고!
유명한:참고 있던 거라고요. 사람 말을 듣긴 했냐? (가리든 말든 엉덩이를 가볍게 주무르며 낯빛 하나 변치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역시 살이 더 붙는 게 좋겠다. 그래야 손에 꽉 차지.
노애리:제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데……. 부끄럽고……. 핫, 으응, 마, 만지지 말라구요! 미쳤나 봐. (어떻게든 네 손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다 힐끔 눈썹을 늘어뜨린 채 묻는다.) …… 지, 지금은…… …… 빈약해?
유명한:내내 꼬리 살랑살랑 흔들면서 꼬시던 게 뭘 또 만지지 말래. 변태야. (눈이 마주치자 제 눈꼬리는 삐죽 위로 올라간다.) 여기 말고. 엉덩이 사이. 통통하면 더 많이 주무를 수 있는데, 싫어?
노애리:…… 그, …… 읏. (제가 스스로 대답하기에도 민망해져 고장난 것마냥 말을 더듬거렸다.) …… 취, 취향 이상해요…….
유명한:그것 참 능숙하시네. (엉덩이 대신 허리를 잡고서 제 사타구니 위로 꾸욱 누른다.) 여자도 여기가 통통한 남자를 좋아한다던데 아닌가~
노애리:힉, 아, 아저씨, 좀! (어쩔 줄을 모르는 채로 허둥거리다 붉어진 얼굴을 네게서 숨기며 푹 숙였다.) 느, 능숙한 거 맞다니까요. 변태같은 거랑 능숙한 거랑은 다르잖아요! …… 거, 거기다, 네? 아, 아래가 통통한 여자랑 자봤어요!? 좋아하는 게 쓰, 쓸데없이 상세해서 자본 것마냥 들리니까 질투나고 이상하잖아요!!!
유명한:왜 그래, 야한 짓도 안 했는데 너무 커서 놀랐어? (어디까지나 사귀는 사이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겠지. 느긋하게 상체를 일으켜 널 뒤에서 꼭 안고서 속삭인다.) 앞으로 아래가 통통한 여자랑 자게 될 것 같긴 해. 기대해도 되지? 어엉? 뭐야, 어차피 앞으로 전부 네 거야. 애리도 변태로 만들어 줄게.
노애리:……. (목덜미까지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반론이라도 하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아무런 말도 하기가 어렵다.) 흥, …… 허세만 가득하구. 누누이 말하지만 난 적당한 크기가 좋아요. 그리고 보기 전까지 안 믿는다고 했잖아요. …… 나중에 변태같은 여자가 다 됐다고 곤란해할 거 아니구?
유명한:그럼 나는 적당한 크기가 아니라 차이는 건가. 보라고 해도 안 볼 거면서 말은 참 많아. (새빨갛게 달아오른 목덜미에 쪽쪽 입을 맞추며 허벅지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변태같은 여자로 만들었으니 책임져야지.
노애리:……. (네게 살그머니 몸을 기대고 여전히 시선은 피한 채 두 다리를 접어 세웠다.) …… 자, 자꾸 이렇게 만지면서 그런 말 하면……. …… 진짜로 야, 야한 짓 잔뜩 하고 싶은 기분이 돼 버리니까 그만해요……!
유명한:네가 생각하는 그대로 잔뜩 잔뜩 해서 더 못 한다고 울 때까지 예뻐하고 싶어, 나도. (허벅지에서 손을 거두는 대신 네 다리까지 전부 안다시피 한 채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애인이 참으라고 했으니 참아야겠지.
노애리:…… 저, 정말……. 못 하는 말이 없어……. (묘한 기분에 휩싸여 그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만 냈다. 사랑받는 기분과 동시에 그 이후에 네가 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게 되거나 하면 어쩌지 싶은, 잔걱정들도 함께 밀려왔다.) …… 약속했어요. 많이 예뻐해 주기로……. …… 핫. 배, 배 안 고파요? 음식 다 식겠다.
유명한:그래. 약속할게. …… 배는 고프긴 한데. 움직이기 싫어. (계속 이대로 안고 있고 싶다고, 거기까지 말하기는 아직 부끄럽다. 네 뺨과 귓가, 목덜미에 끝없이 입을 맞추며 무릎 언저리를 매만졌다.) 먹여 주라.
노애리:무, 무슨 어리광이에요……. (물론 그런 아저씨가 귀엽긴 하지만. 간지러움에 어깨를 움츠린다.) 앗, 이, 이렇게 계속 뽀뽀하면 나도 움직일 수가 없는데에……. 으응. 그, 그럼 이대로 조오금만 더 있을까요? …… 밥은 언제든지 먹어도 되니까.
유명한:응. 아주 조금만. (어쩌면 그 짧은 시간들 속에서 너와 비슷해진 걸까. 아니면 이게 여태 모르는 척만 했던 애틋함일까. 고개를 더 숙여 입술을 맞대 부벼댄다.) 역시…… 끈적끈적한 것보다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게 더 좋아.
노애리:응……. (눈을 감고 네 입맞춤을 받아내며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손을 더듬거려 네 손 위에 겹친 뒤 그 입술을 조금씩 할짝인다.) …… 셋 다 좋아해 주면 안 돼?
유명한:나중에 진짜로 끈적끈적해지면 그때. (빼꼼 드러난 혀를 물었다가, 핥았다가, 아쉬울 때 놓아주며 가벼운 입맞춤만 이어간다.) …… 키스, 기분 좋네.
노애리:으응…… 치사해……. 순순히 말도 안 해 주고……. (투정을 부리며 조금 조바심이 나는 얼굴로 입을 벌려낸다.) 키스, 더…….
유명한:야한 짓은 안 된다며. (네가 입을 벌려도 혀만 넣어 안을 휘젓고 금세 떨어진다.) 그렇지?
노애리:키, 키스는 야한 짓 아니잖아요……. (붙잡은 네 손을 살살 흔들며 더 바짝 고개를 가까이했다.) 아, 안 해주면 삐칠 거야……. 돌아갈 때까지 말도 안 할 거야.
유명한:순 제멋대로군……. (어차피 먼저 못 참고 말 걸 거면서. 벌어진 입술 사이를 뚫어져라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갠다. 느릿느릿 혀를 밀어넣고 뜨겁게 달아오른 살덩이를 멋대로 탐닉했다.) …….
노애리:아, …… 흐응. (혀를 밀어넣고 숨이 뒤섞이는 찰나 사이사이에 작은 신음을 흘려냈다. 흥분이 서린 묘한 기분에 입맞춤은 더 진해져만 갔다.) …… 핫, 기분, …… 좋아…….
유명한:응…… 나도. (야릇하게 새는 소리며, 질척대는 물기며, 달아오른 몸뚱이까지 무엇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다. 입술을 완전히 맞댄 채 진득하게 입을 맞추다 혀 끝만 맞대 살살 간지럽히며 눈을 떠 네 얼굴을 바라봤다.)
노애리:……. (눈을 꼭 감은 채 오로지 혀가 닿는 네 입맞춤에만 집중했다. 이미 충분히 붙어있었음에도 어떻게든 네 몸에 더 밀착하며 안달난 손끝으로 네 허벅지 위의 옷자락을 틀어쥔다.) 하아…… 응. …… 아저씨, 좋아…….
유명한:(야해빠졌군. 말 그대로 남자들이 줄을 서도 이상하지 않다. 괴도의 팬도 남자가 더 많았던가. 옷자락을 움켜쥔 네 엄지와 검지 사이로 제 엄지를 쑤셔넣어 손바닥을 꾹꾹 문지르면서, 이젠 혀를 제 입 안으로 끌어들여 쪽쪽 빨아당긴다.) 아저씨도, 후……. …… 너 좋아해.
노애리:앗, 하아…… 흣, ……. (쪽쪽대는 소리가 흘러나올수록 제 흥분은 점점 더 커지는 것만 같았다. 아랫배가 당겨올 정도가 되자 저도 모르게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며 애타게 네 손가락에 매달리듯 꾹 쥐었다.) 후으, 응……. …… 야해…….
유명한:그렇게 기분 좋아? (네 반응이 더 빨라지자 무릎 위에 있던 손이 은근슬쩍 허벅지를 훑어 아랫배까지 옮겨간다. 손바닥에 힘을 실어 그 위를 압박하며 천천히 입술을 뗀다. 늘어지는 타액을 대충 끊어내고 흠뻑 젖은 네 입술을 핥았다.) …… 여기도, 잔뜩 키스하면 좋을 텐데.
노애리:……. (눈을 뜨자 멍해진 시선으로 네 얼굴을 올려다보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흥분과 입맞춤의 여파에 할딱이던 숨이 네가 아랫배를 압박하자 살짝 더 가빠졌다.) …… 응. …… 지금이라도 잔뜩 하고 싶어요……. …… 이렇게 말하면, 핫, …… 발랑 까졌다고 뭐라 할 거죠?
유명한:아니. …… 귀여워. (이내 손끝도 움직여 아랫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조금만 더 하면 정말 일을 치겠다 싶어 미간이 구겨진다. 이렇게 귀여우면 어쩌자는 거야.) 내일, 잔뜩…… 하자? 나랑만.
노애리:응. 내일 잔뜩……. 저, 안전한 날이니까요……♡ (귀엽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 네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서 속삭인 뒤 떨어진다. 발그레한 얼굴로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널 곁눈질로 보고서는 모르는 체를 하듯 품에서 쏙 빠져나온다.) 아아, 이제 진짜 배고파졌다~
유명한:…… 아, 안전……. (미치고 팔짝 뛰지 않은 게 용하다. 네 속삭이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빙빙 맴돌아 잠시간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 다람쥐처럼 빠져나간 네 모습을 넋 놓고 보다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요트 난간에 몸을 기대고 바다를 바라본다. 진정해야지. 진정…….)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넓은 바다의 광경을 보고 있…… 어야 하는 게 맞는데.
유명한:…… 엥. (주변을 마구 두리번거린다. 뭐야?)
저 멀리 있어야 할 요트 조종사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유명한:(순식간에 얼굴이 희게 질려선 조종석 쪽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바다 저 멀리에도 건물이나 섬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정신
기준치: |
60/30/12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명한은 순간 원래 있었던 섬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니까, 단지 이 앞바다 어디가 아니라 아주 다른 곳으로 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유명한:
SAN Roll
기준치: |
38/19/7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조종사가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사라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하다 못해 누군가 물에 빠지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그렇다는 건 갑자기 사라졌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노애리:아저씨? 왜 그래요? (음식 하나 냠냠 집어먹으며 네가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유명한:…… 우리 또 이상한 곳에 떠밀린 것 같은데. (방금까지 밀어를 나누던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며 네 허리를 잡아끌어 품에 단단히 안았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노애리:으, 으응?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머, 그러고 보니 진짜로 멈춰 있네……. 무슨 일이지? 저희 조난당한 거예요?
유명한:아마도……. (조종석과 망망대해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다.) 인어 이야기를 잔뜩 듣긴 했어도 이런 모험은 이제 사절인데.
주위를 둘러보던 당신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동굴이 하나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동굴은 그리 멀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헤엄을 쳐서 가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노애리:아! 다행이다. 무인도는 아니지 않을까요? (손뼉을 짝 치며 난간을 짚고 동굴이 있는 쪽을 쭉 내다본다.)
유명한:나는 저런 동굴 말고 돌아가고 싶은데 말이지. (특히나 그런 키스를 한 다음엔. 한숨을 쉬며 같이 동굴 쪽을 바라본다.) 수영할 줄 알아?
노애리:…… 음. 기본적인 정도로는요? 괴도는 생존술에 능해야 하니까. (장난스레 웃고서는 금방이라도 들어갈 듯 주섬주섬 난간을 넘기 시작했다.) 저기로 가볼 거예요?
유명한:여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네 모습을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셔츠를 벗었다. 아무래도 걸리적거리겠지.)
노애리:좋아요. 뒤처지지 않게 잘 따라갈 테니까 아저씨가 앞장서 줘요. (숨을 들이마시고 바다에 폴짝 뛰어내려 뛰어든다.)
유명한:어쩌다 이런 일에 익숙해지게 된 건지 원. (뒤이어 물이 첨벙이는 소리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튜브 없어도 돼? 혹시 모르잖냐.
노애리:(쏙 고개를 내밀고서 요트의 몸체를 짚었다.) 가까우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빠지면 아저씨가 멋있게 구해 주면 되죠, 뭐. 후후. 아저씨는 괜찮아요?
유명한:농담할 때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와. (아무렴 너보다 체력이 부족할까. 물에 젖은 머리를 대충 뒤로 넘기고 먼저 동굴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노애리:네에. (아저씨 멋있어.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숨을 합 참고 널 뒤따라 간다.)
흐르는 물을 따라 헤엄을 치다 보면, 얼마 있지 않아 발이 닿을 정도의 육지가 느껴집니다.
유명한:…… 애리야. (땅에 발이 닿자마자 뒤를 돌아보며 네게 손을 뻗었다.)
노애리:콜록, 응……. (물을 조금 먹었는지 기침을 하며 조금 휘청인다. 손을 뻗은 네 모습을 보고 얼굴이 금세 환해져서는 냉큼 붙잡았다.) 흐아……. 머리 엉망 됐겠어…….
유명한:괜찮아? (단숨에 품에 들여선 그대로 등을 몇 번 두드려 주더니, 품에 안아들고 물속을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미역 같고 좋은데 뭘.
노애리:미, 미역 같다는 게 칭찬은 아니잖아요!? 여자 친구한테 할 말이에요? (네게 전적으로 몸을 맡긴 채 열심히 발을 딛고 걸었다.)
유명한:바다의 여신 같은 걸지도 모르잖냐. (낮게 웃으며 보폭을 맞추어 걷는다.) 그나저나 진짜 여긴 어디야…….
무사히 육지로 도착한 우리는 어두운 동굴과 마주합니다.
저 너머는 아주 깊고, 또 알 수 없는 곳으로 이어지기라도 한 듯이 새카맣습니다.
여기는 어디인걸까요? 우리는 어디로 표류한 걸까요?
유명한:
SAN Roll
기준치: |
38/19/7 |
굴림: |
87 |
판정결과: |
실패 |
노애리:(기웃기웃…….) 사실 여기가 보물섬이라거나 그러면 좋겠다.
유명한:그럼 나 일 그만두라고 하게? (같이 기웃기웃…….)
노애리:응. 그치만 안 그만둘 거잖아요. (네게 팔짱을 꼭 껴온다.)
유명한:엄청나게 부자가 되면 전업할 수도 있지. (다른 팔을 동굴 벽에 짚고 고개를 쭉 내밀어 안을 살핀다.) 왜 이렇게 어두워?
유명한: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2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저 너머 동굴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빛이 보입니다.
분명 착각이 아니에요. 아주 희미하고 작지만 선명한 빛이 저 너머에서 보입니다.
유명한:…… 뭔가 있긴 있네. (먼저 발만 딛어본다.) 여기서 기다릴래?
노애리:네, 네!? 싫어요!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죽어도 같이 죽어요! (더 꽈악 끌어안는다.)
유명한:바보냐?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네가 방법을 찾아야지! (멍충이. 투덜거리면서도 고개를 숙여 마구마구 뽀뽀한다.)
노애리:아저씨 발목 잡을 일은 없을 테니까 같이 가요. (배시시 웃고서는 저도 똑같이 두어 번 입 맞춘다.) 내 남자 친구를 어떻게 이 수상한 동굴에 혼자 보내. …… 들어가 볼까요?
유명한: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애가 그러니까 웃기네.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노애리:(저도 조심조심 네 곁을 지키며 걷는다.) 아저씨 그런 말들 할 때, 농담 아니고 진짜 쥐어박을 것 같아서 무서운 거 알죠?
유명한:여자는 안 때려. 꿀밤 정도는 몰라도 말이지…… (주변을 살피느라 험상궂은 얼굴을 한 채 팔을 휘적거려 뭐가 없나 확인한다.)
노애리:애리 빼고는 다 때려도 돼요. (팔에 얼굴 부비적…….)
유명한:애리 빼고도 내 덩치에 여자 때리고 다니면 철창 신세지기 딱 좋아. (딱히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어둠에 익숙해져 걸음이 조금 빨라진다.)
노애리:아, 아저씨는 남자 때려도 철창 들어갈 거 아니에요. 질투나니까 나만 빼고. 공평하게. 알았죠? (네가 걸음이 빨라지자 저도 종종걸음으로 따라간다.) 아저씨이, 앞에 뭐가 있을 줄 알구. 천천히 가요.
유명한:좋아하는 여자는 애리밖에 없으니까 괜찮아. (네 말에 다시금 걸음이 느려진다.) 빨리 가야 빨리 제압해서 때려눕히지.
노애리:만약 다른 여자가 막 나를 위협해. 칼 들고 쫓아와. 그럼 그 여자는 때려? (시시콜콜한 상상을 하며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뭘 때려눕힐 생각부터 해요? 하와이발 사교도들이 있을 것도 아닐 텐데.
유명한:때릴 것도 없이 제압부터. 그전에 칼 맞을 일 없게 조심하라고. 바보야. (머리 쓰담쓰담…….) 사교도가 한국에만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가?)
노애리:씨이. 너무 현실적인 대답이잖아요. 그럼 당장 죽이지! 같은 대답 해 줘야죠! (음, 하고 짧게 고민하더니 고개를 기울인다.) …… 하와이에 있다고 해도 설마 제가 죽은 줄 아는 사교도들이 하와이의 사교도들에게 나를 함정에 빠뜨리라고 연락하진 않았을 거 아녜요? …… 역시 그럼 답은 인어인가?
유명한:그 사람이 왜 그랬냐에 따라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꼴로 만들 수도 있어.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제 턱을 매만진다.) 아니지. 널 쫓아온 게 아니더라도 우리가 운이 더럽게 없어서 걸려든 걸지도……. …… 인어라면 일단 주먹은 봉인이다.
노애리:후후. 이번 건 두근두근했어요. (귀여워. 팔에 뺨을 부빗부빗…….) 왜요? 아저씨 인어 좋아해요? 예쁜 인어 있으면 한눈 팔 거예요?
유명한:만약 사교도 놈들이면 얼굴을 묵사발보다 못생기게 만들어 버릴 거다. (? 왜 이러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가 친절하게 대하면 저쪽도 잘 대해줄 거란 말이 있었잖냐. 왜, 인어보다 예쁠 자신 없어?
노애리:…… 음. (시선을 도르륵 굴리더니 입술을 삐죽인다.) …… 적어도 미역 여신인 상태로는요.
유명한:난 인어보다 미역 여신이 좋더라~ (내뱉듯 말하고 딴청을 피운다.)
노애리:……. (네 말에 결국 픽 웃음을 터뜨리고서는 장난스레 팔을 톡 때렸다.) 바보. 바보. 자꾸 뽀뽀해 주고 싶게 아까부터 멋있구 귀여운 말만 하네.
어둠을 지나 점점 주위가 밝아지는 기분입니다.
유명한:미역은 맛있으니까. (미역국 먹고 싶다. 중얼거리며 헛기침을 한다.) 멋있는 말을 해도 바보래. 진짜 바보는 너야. 너.
노애리:애, 애정 표현의 바보잖아요. 바보. 그리고 그걸 이유라고 말해요? 으휴, 분위기 다 깨네. (가볍게 네게서 떨어져 나와 팔을 밀쳤다.) 됐어요, 됐어. 인어랑 여기서 살림이나 차려라.
유명한:아, 부끄러워서 하는 말이잖아! 위험하니까 떨어지지 마! (절 밀친 손을 다시 잡아 꽈악 잡았다.) 슬슬 뭔가 나올 것 같다고…….
마침내 오색 찬란한 수정동굴로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수정동굴은 그야말로 꿈이나 동화, 마법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입니다.
거대한 천연 수정들을 깎아서 만든 듯한 벽은 노래를 주고받는 세이렌처럼 서로의 빛을 반사합니다.
바닷물을 타고 들어온 작은 빛 한 점까지 남기지 않고 전부 집어삼킨 수정들은 우리를 유혹하는 인어의 눈물을 머금은 듯 찬란하고요.
유명한:대체…….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진짜인가 싶어 눈을 북북 비빈다. 아, 따가워.) 어제부터 심상찮더라니…….
노애리:우와……. (타박타박 걸어나가며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여기 진짜 보물섬 맞는 거 아니에요!?
유명한:어쩌면. (이게 대체 뭐지. 뭐냐고.) 혹시 모르니까 슬쩍하지 마라. 슬쩍 한 번에 너나 내가 끽 죽을지도 몰라.
유명한:주인한테 하나만 달라고 하든지. (허리 꾹.)
노애리:치. 깐깐해. (가져갈 게 이렇게 많은데……. 대놓고 아쉬운 표정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자, 이곳이 미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좌우로 갈려 있는 통로는 한치 앞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여기에 이 정도로 거대한 미로를 만들어 둔 걸까요?
단순히 생각해도 이는 자연적으로 만들어 질 리가 없는 공간입니다. 기묘한 공간이네요.
유명한:흠……. (헛기침을 몇 번 더 하고 소리를 지른다.) 여기요! 아무도 없습니까?!
유명한: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2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동굴의 울림을 타고 멀리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는 마치 바닥에 둔탁한 것을 끄는 듯한 소리네요.
유명한:이봐요!!!!!!!!!!!!!!!!!!!!!! (쩌렁쩌렁!)
노애리:아, 아저씨. 귀 터지겠어요! 여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유명한:아냐. 뭔가 소리가 나. (섣불리 미로로 뛰어들었다간 X되고 말 것이다. 네게 들어보라는 듯 손짓한다.)
노애리:음……. (듣는 시늉을 해 보인다.) …… 그런가?
유명한:질질 끌리는……. …… 아, 인어라서 그런가?
노애리:아저씨 인어 되게 좋아하네. 아, 가서 인어랑 살림 차리자고 하라고요. 가, 가면 되겠네. (네 손 잡고 미로 안쪽을 가리키며 끌어당긴다.)
유명한:아니. 여기로 우릴 불렀으면 돌려보낼 수 있는 것도 그쪽 뿐이겠지. (이런 요상한 상황인데 말이야. 질투하느라 바쁜 네게 끌려가선 뺨에 쪽쪽 뽀뽀한다.) 질투? 인어가 남자일 수도 있잖냐.
노애리:…… 그런가? 인어가 남자면 내가 노려 볼까. (들리라는 듯이 휘파람을 불며 네 뽀뽀를 모르는 체한다.)
미로를 따라서 걷자 이 미로 안에 사람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없다면 도대체 누가 왜 이런 미로를 조성해놓은 걸까요?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 미로를 만들 때에 미적인 부분도 꽤 중시했으리라는 점입니다. 세세하게 깎아놓은 수정들은 분홍색에 흰 빛, 보라색, 빛을 받으면 또 다른 색으로 바뀝니다.
몽환적인 광경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찰나의 음색과 우리의 발소리도 음악처럼 오색찬란해집니다. 정말 여기는 어디일까요?
유명한:노려서 뭐하게. 평생 아무도 없는 곳에서 보석만 안고 살게? (요 바보가. 뭐라 더 말하려다 말고 걸어온 길을 기억하려 입을 다문다.)
노애리:흥. 내 내연남 삼을 거예요. 잘생겼으면. 보석도 겸사겸사 가져오고. (팔짱을 다시 꼭 끼며 달라붙어온다.)
유명한:오른쪽, 왼쪽, 오른쪽, 그리고 또 왼쪽……? (곰곰 되짚다 네가 다시 다가오자 어깨를 으쓱인다.) 그럼 난 슬퍼하다 혼자 늙어 죽겠군.
노애리:(킥킥 작게 웃으며 애교를 부리듯 그 팔을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아이, 아저씨도 끼고 사는 거죠. 양손의 꽃, 그런 거? 나 그런 거에 로망 있었는데.
유명한:그럼 자살할 거야. (어느 누군가처럼 즉답하곤 주변을 계속 살핀다. 막다른 길인가…….) 저기 뭔가 반짝반짝한 게 있는 것 같은데.
노애리:극단적이잖아요! 왜 갑자기 자살인데요!? (네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어디요?
유명한:자살하고 싶을 만큼 싫으니까. (흥!) 저기, 수정구슬인가? 아닌가? 거울?
수정 구슬은 그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래라도 가르쳐주는 도구인 걸까요?
노애리:아저씨 귀엽다. (헤실헤실 웃으며 수정구슬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왜 여기에 이런 게 있지?
유명한:혹시 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거나? (옆을 지키듯 찰싹 붙어 수정구슬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수정구슬을 살펴보고 있으면, 어떤 생명체가 나타납니다.
손에 커다란 심해어를 두 마리 씩 들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는 못 해도 10m 정도의 키에, 세 개의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그 시선은 가히 압도당할 듯합니다.
처음 마주한 광경에 SanC (1d2/1d10)
노애리:힉. (뭐야, 저 징그러운 건? 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죽을 것 같아서 그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
유명한:
SAN Roll
기준치: |
37/18/7 |
굴림: |
3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애리야, 네가 꼬신다던 인어 씨다. (소곤거리곤 목을 빳빳하게 뒤로 꺾어 올려다본다.) …… 말이 통하려나. 안녕하세요……?
?:길을 잃은 인간들이 종종 이곳에 오고는 하건만, 너희도 그런 건가? 망망대해를 타고 왔겠지?
그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곧 뇌파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옵니다.
유명한:아, 예. 그런 셈입니다만……. (?? 입도 안 열고 말한 거냐?) (애리 허리 꼬옥.)
그 말투는 더 없이 상냥합니다. 길을 잃은 인간은 오랜만에 본다며, 나갈 수 있는 출구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네요.
노애리:(똑같이 네 허리를 마주 꼬옥 끌어안고 올려다본다.) 이, 이거 막 알고 보니 함정 아녜요……? (속닥속닥…….)
유명한:그럼 평생 여기서 헤맬래? (속닥속닥…….) 그럼, 가는 길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목이 아프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더니 미로의 출구처럼 보이는 방에 사뿐히 도착합니다.
그 커다란 방에 들어서자 노르
5마리가 모여 있습니다.
팔 네 개가 달린 이가 있는가 하면, 세 개가 달린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두 개입니다. 공통적으로 10m는 족히 넘는 키에 긴 꼬리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몇 배는 큰 그들은 가히 압도당할 정도의 박진감을 자랑합니다.
노르:혹여나 걱정할까 봐 말하지만, 우리는 너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우리들은 노르, 이 깊은 바다의 거주민이다. 해양 생물을 키우고, 세공품을 만들며 평화롭게 살아가지. 오는 길에 무언가를 봤을지도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들도, 이 동굴도 우리가 만든 작품이다.
유명한:그렇…… 군요? (여전히 애리 꼬옥) 오는 길에 본 건 없었는데……. 보석입니까? (애리 흘끔)
노애리:……! (보석이라는 말에 노르들과 명한이 번갈아서 휙휙 바라본다.)
유명한:너 여기서 물건 훔쳐서 살아남을 자신 있어? (소곤소곤)
노르:미로에 장식되어 있던 것들은 아마……. 진주 목걸이와 그 진주 목걸이를 만든 조개 속의 진주가 있었을 테지. 못 봤다면 유감이군.
노애리:(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라는 얼굴)
유명한:그거 참 아쉽군요. 애인이 그런 물건을 아주 좋아하는데……. (몰래 손끝으로 애리 가리킴)
노르:원한다면 진주 목걸이나 진주를 물물교환의 형태로 건네줄 수도 있는데.
대신, 너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것을 받고 싶군. 목걸이도 좋고, 반지도 좋고…… 아름답다면 무엇이든 좋다. 노래나 춤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런 걸로도 지불 받겠다.
유명한:음……. (너 뭐 있냐? 는 얼굴로 애리 봄)
노애리:……. (도리도리) 그, 그냥 이 평범한 귀걸이 정도만 있는데……. (하고 온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네게 속삭인다.)
유명한:(주머니를 열심히 뒤져본다……. 뭐가 있나……?)
지갑을 비롯한 당신의 소지품과...... 눈에 들어오는 커플 팔찌 정도가 있습니다.
유명한:팔찌는 안 돼……. (중얼거리며 낡은 지갑을 본다.) …… 그 귀걸이밖에 없는 것 같은데.
노애리:……. (힐끔힐끔 번갈아보다 제 하트 모양 귀걸이를 양쪽 다 빼서 네게 건넨다.) …… 이, 이걸로 먹힐까요……? 이만 원짜리인데. (속닥)
유명한:잘 부르는 노래 같은 거 없어? (이만 원이든 얼마든 상관이야 없겠지만……. 하트 귀걸이를 손끝에 집어 높게 들어올린다. 키가 저렇게 큰데 보이나?)
노애리:아, 아무리 그래도 이 큰 괴물들 사이에서 춤추고 노래하기는 싫어요!? (더 속닥속닥거리며 네 허리를 쿡 찔렀다.)
유명한:유도 시범은 보여줄 수 있는데……. (삐질삐질)
노르는 당신이 건넨 귀걸이를 유심히 보더니, 곧 그 귀걸이가 공중으로 떠오릅니다. 노르들이 가져가는 듯 멀리 사라지네요.
그리고는 진주 목걸이가 당신의 손에 천천히 내려옵니다.
이 목걸이 역시 수정으로 만든 공예품인 모양입니다. 천연 수정을 여러 모양으로 깎아서 만든 보석들이 걸려 있네요.
받아들인다면 재력에 +5 보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명한:…… 감사합니다……. (이거 진짜 기분 이상하다. 목걸이를 받아들고 네게 보인다.)
노애리:와아! (화색!) 아저씨, 뭐 더 없어요? 좀 더 털어 봐요. 더 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안 되나? 유도 시범 빼구요. (옆에 붙어서 목걸이를 빤히 바라본다.)
유명한:(네 목에 주섬주섬, 목걸이를 끼워주곤 대놓고 기분 상한 표정이 됐다.) …… 커플 팔찌…….
노애리:……. (네 손목의 커플 팔찌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 주, 줄 거예요……?
유명한:그거밖에 없어. 그러니까 목걸이로 만족해.
노애리:…… 응.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네 몸을 꼭 끌어안는다.) 아저씨 최고.
노르:밖에 나가기 전에, 혹시 나의 부탁 하나를 들어 줬으면 하는데. 괜찮겠나?
유명한:……. (찝찝하다. 하지만 일단 고개는 끄덕인다.)
노르:이곳에 소녀 하나가 흘러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드물게도 당차서 나를 보고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았지. 그녀와 다시 한 번쯤 만나고 싶다. 나의 소중한 친구니까.
유명한:어라……. (고개를 기울인다.) 그게 대충 얼마나 예전입니까?
노르:글쎄…….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군. 오래된 것만 기억하네. 몇 달 전이었나.
유명한:(시간 개념이 다를지도. 드물게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혹시 그 소녀에게 인어라고 불리셨다거나, 인어라고 설명하셨다거나……?
노르:사람들은 우리를 인어라고 부르기도 하더군. 이 지방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를 토대로 인어 전설을 만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유명한:(!) 그, 그럼 그 소녀에게 선물을 줬습니까?
노르:어떻게 알았지? 나는 그녀에게 소중한 수정을 주었지. 그것은 보통 쉬이 주지 않는 귀한 물건이다. 그것이 우리의 우정의 증표야.
유명한:어제 한 어르신을 뵈었는데, 인어가 준 선물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분명 그 집이 어업을 하고 있댔나……? (애리 흘끔)
노르:그럼, 괜찮다면 내 부탁을 들어 줄 수 있을까? 보름 간 기다릴 테니 이것을…….
이 수정 구슬을 바닷속에 빠뜨리면 수정 동굴까지 바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일회용이지만요.
유명한:아, 예. 그정도야 어렵지 않은데……. 어르신께서 그 말을 믿게 하려면 뭔가 있어야 할 텐데요. (요는, 더 내놓으란 뜻이다.)
노르:아마 내 말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다. 자, 그럼 부탁을 들어 준 답례로 좋은 구경을 시켜 주지. 이쪽의 특별한 통로로 들어와.
유명한:그렇다면야. (에이. 네 손목을 잡고 특별한? 통로? 로 가까이 다가간다.)
인어 공주가 왜 지상을 동경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법한 햇빛이 내리쬐는 바닷길은 노르들의 지느러미짓을 따라 몰려든 호기심 많은 열대어들이 동행합니다.
당신과 애리는 노르의 가호로 바닷속에서 숨을 쉬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경험은 어디서도 못 할 테죠.
물 위 거품을 계단 삼아 걸으며 발끝을 간지럽히는 물풀과 산호를 헤치고 나아가는 경험이요.
유명한:허어……. (넋이 나가 열대어들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노애리:(아저씨 귀엽다. 그런 너를 마냥 생글생글 웃으며 지켜본다.) 카메라가 없는 게 완전 아쉽네요. 그쵸?
유명한:바닷속에서 카메라를 쓸 수 있으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지……. (온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심호흡을 한다. 진짜 신기하다.)
노애리:어때요? 저…… 이러니까 완전 다리 얻어서 바깥으로 나가는 인어공주 같지 않아요? (네 쪽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인다.) 후후. 아저씨는…… …… 세바스찬.
유명한:안 돼. 인어공주 이야기는 슬프단 말이야. 그냥 애리 공주 해라. (부끄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낯으로 하다 고개를 기울인다.) 세바스찬?
노애리:…… 모르면 됐어요, 세바스찬. (혼자 킥킥 웃고서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린다.) 애리 공주의 결말은 해피엔딩일까요?
유명한:?? (세바스찬이 뭔데. 왜 외국인이 된 거지. 다시 바다로 고개를 돌린다.) …… 그래. 완전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정했어.
노애리:후후……. 후후.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음을 참는다.) …… 밖에 나가면 뽀뽀 왕창 해 줘야겠다아…….
아리따운 빛을 머금은 햇빛은 당장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깝습니다.
탄성을 자아내는 빛에 다다랐을 때에, 문득 주위를 보면 우리가 타고 온 요트가 저 멀리서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유명한:뽀뽀는 집에 가서 해. (부끄러움에 콧등을 긁다가 주변이 밝아지자 당황해 두리번거린다. 노르는? 열대어는? 투명 아가미는?)
분명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에 길을 잃었는데 높게 뜬 보름달이 우리에게 인사하네요.
바다를 가득 메운 별은 두 눈으로 담지 못할 정도로 넘쳐납니다. 우리를 다급하게 찾는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노애리:우와, 진짜 무사히 돌아왔네. (얼굴만 쏙 내놓고서는 물장구를 쳐 네게 가까이 다가와 붙었다.)
유명한:조심 좀 해라. (널 품에 안으면서도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일단 요트를 향해 손을 흔든다.) 놀 게 아니라 그 집에 다시 가야겠네…….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인어를 만나고 왔다고 말이죠.
배는 다시 우리가 탔던 요트 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 노르의 부탁을 들어주나요? 아니면 돌아갈 채비를 할까요?
유명한:(기운이 쪽 빠졌다.) 택시 타고 가면 금방 거기까지 가겠지? (널 쳐다본다.)
노애리:거기요? 어디요? (기지개를 쭉 켠다.)
노애리:와아. 또 만나겠네. 이것도 인연인가 봐요.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며 도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핫, 아니, 방금 건 별 뜻 없었어요.
유명한:……. (널 휙 지나쳐 도로로 나가 택시를 잡는다.)
노애리:자, 잠깐만요, 아저씨……! (헐레벌떡 뒤따라간다.) 아저씨, 그냥 저도 모르게……. 네에!?
무사히 택시를 타고 해변의 집으로 도착합니다.
유명한:(흥. 여전히 나 삐쳤수, 하는 얼굴로 택시에서 내려 해변의 집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노애리:히잉. (얌전히 있어야지. 시무룩한 얼굴로 네 뒤를 따라가기만 한다.)
노르의 초대를 노파에게 전하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합니다.
그녀도 분명 몇십 년을 다시 만나고 싶었겠지요, 자신의 소중한 친구니까요.
잊을 수 없는 그 추억을 다시 만나러 그녀와 함께 바닷속으로 돌아갑시다. 수정구슬을 이용해 볼까요?
유명한:그러니까……. (바다에 빠뜨리면 되는 거였지. 애리를 흘긋 본다.) 넌 노닥거리면서 꼬시고 있든지.
노애리:…… 진짜요? 진짜 난 가지 마? (울상…….) 저분이랑 놀고 있어요?
유명한:응. 그리고 난 자살할 거다. 그러니 너 하고 싶은대로 해. (노파가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뻗었다.) 가시죠.
노애리:저 아저씨가 자꾸 틈만 나면 자살한대! 씨이. 싫으면 그러라고 하질 말든가! (죄 없는 모래만 팍팍 차고서 종종걸음으로 네게 엉겨붙어 떼를 쓴다.) 나도 손~!
유명한:그러니까 누가 엉덩이 가벼운 척만 하고 다니래!? (윽박지르곤 양쪽에 사람을 달랑달랑 달고서 바닷가로 걸어가 수정구슬을 퐁당, 빠뜨린다.)
수정 구슬을 바닷속에 빠트리는 순간 우리가 보았던 그 용오름 같은 물보라가 우리를 감쌉니다.
신기한 건 그속에서도 무리 없이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이번에는 부탁을 한 그 노르가 수정 동굴 앞까지 마중을 나왔네요.
분명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었던 거겠지요? 노르는 그녀와의 재회를 기뻐합니다.
바깥과 이곳은 시간이 다르니 짧은 만남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친구와의 만남이란 언제나 기쁘니까요.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인연과의 시간을 보낼 예정인 노르는 우리에게 선물을 건넵니다.
유명한:뭐 이런 걸 다……. (받지 말까? 애리 흘끔.)
바다를 닮은 푸른색과 하얀색의 수정 목걸이입니다. 꼭 이 시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목걸이네요.
이 여름, 이 바닷가를 평생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 될 겁니다.
노르의 수정 목걸이 (아티펙트) - 딱 한 번 이성치 감소를 무효로 합니다. 타 세션에서 사용 시 반드시 키퍼 분과의 상의를 거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