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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0] 코고에리 :: 히스클리프 공개용

毛利 2022. 6. 27.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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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C 키사키 에리

PC 모리 코고로

 

 

 

중세시대 주종AU

이름은 영어판 코고에리 이름을 가져와 썼습니다

(Richard Moore / Eva Kadan)

 

 

w. 숑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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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나리오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도입 :: Tchaikovsky - Valse Sentimentale https://www.youtube.com/watch?v=rUuusqy50yk 

파티장 :: Masquerade Suite Waltz https://www.youtube.com/watch?v=fPp3Qh-GRqs 

정원 :: howl's moving castle - merry go round of life  https://youtu.be/Pa5Rff7L5OM

결혼식 당일 아침 :: Final Fantasy XV OST - 29.Valse di Fantastica https://youtu.be/FkKVUswNxX8
결혼식 당일 아침 조사 :: 친절한 금자씨 OST - The Angel https://youtu.be/2PwRRlfNqNw
당일 저녁 :: Ori and the Blind Forest Orchestral - Laura Platt https://youtu.be/KssFdT1QIl0
당일 저녁 에바와의 만남 :: Hotel Del Luna OST - Done For Me https://youtu.be/6n8HgIcJ6vo
둘째 날 :: Ori and the Blind Forest Orchestral - he Blinded Forest https://youtu.be/SbQrYomCG1M
살해 현장 :: Evangelion OST - Psycho https://youtu.be/D2WOquUwUoM
유치장 :: NIER OST - Snow in Summer https://youtu.be/6D4mOnSifzI
돌아온 시간 :: NIER OST - Amusement Park https://youtu.be/8jpJM6nc6fE
쫓아가는 길목 :: LOST ARK OST - Aman's Theme https://youtu.be/OStlVWo0TfM
정원 :: 심규선 - 폭풍의 언덕 https://youtu.be/qc3w4EO4EhQ / https://youtu.be/iK0eHWL8yEg
엔딩 :: Love latter - OST https://youtu.be/MAKVoNHhm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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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나리오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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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있어줄 수 있어?
 
나는 네가 필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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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당신의 결혼식 날입니다.
 
네, 상대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과 그 상대 집안의 명성만 익히 들어 알 뿐인 마음 없는 정략 결혼 말입니다.
 
이 지진한 시대의 결혼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놈의 가문의 명성. 그걸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팔아서……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저택의 모든 이들은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당신을 위한 예복과 함께 저녁에는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까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상당히 피곤한 일정입니다. 휴식 시간은 거의 주어지질 않는군요.
 
모두 이 결혼과 축하연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아니, 모두는 아닌가.
 
문간에서부터 당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정략 결혼이라는 소식을 접할 때부터 늘 어두운 낯이던 에바 카단입니다.
 
그는 당신의 파티 준비를 돕습니다.
 
겉옷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고, 머리를 정돈해 주면서요.
 
Eva Kadan:……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 모든 분들께 잘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 사소한 자세에도 평소보다 힘을 써 주세요.
 
Richard Moore:하루종일 같은 말만 듣고 있자니 귀에 못이 박이겠군. 알아서 잘 하는 거 알잖아. 왜, 부족한 놈처럼 보이나?
 
Eva Kadan:......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이런 날에 실랑이 할 시간은 없으니, 가만히 계세요. (중요한 날이라고 말한 것과는 반대로 조금도 기뻐보이지 않은 얼굴로 네 머리카락을 능숙하게 빗어나간다.) ...... 전날인데 어쩐지 긴장감이라곤 없어 보이시네요.
 
Richard Moore:허레허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언짢은 투로 대꾸하며 거울 너머로 움직이는 손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 어차피 저쪽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할 텐데. 긴장이니 기대니 할 이유가 없어.
 
Eva Kadan:....... (평소였으면 그래서는 안 된다며 덧붙였을 테지만 이번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눈을 내리깔고 느리게 움직이는 제 손끝만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 역시 이런 식의 정략 결혼은 싫으신 건가요?
 
Richard Moore:....... (그런 사적인 감정의 표출조차 완전히 통제당하는 게 이 저택 내의 생활이 아니었나. 손발목부터 시작해 혓바닥까지 족쇄가 채워진 느낌에 익숙해진 것도 아주 예전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는 단둘이 있기에 할 수 있는 거겠지. 손을 올려 제 턱을 만지작거렸다.) 달갑지 않아. 부인이 빨리 내게 질리게 할 방법이라도 강구해야 하나 싶군. 일단 가문을 물려받을 때까진 버텨야겠지.
 
Eva Kadan:...... 그런 거라면 결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건가요?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을 네 어깨 위로 내려놓고서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친 채였다. 그 상태로 몇 초 지나지 않아 왠지 초조한 기색으로 금방 고개를 다시 수그려 버린다.) ...... 죄송해요. 철 없는 소리를 해 버려서...... 알고 있어요. 멋대로 그럴 수는 없다는 거, 그래도......
 
Richard Moore: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거야. 혼담이 오가는 내내 언제든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확연히 동요하는 기색을 띄더니 어깨 위에 놓인 손을 스치듯 쓰다듬다 허벅지 위로 툭 떨어뜨린다. 서로 마리오네트라도 된 듯이 실에 묶여 인형극만 이어가는 삶은 진작 질렸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 지금이라도 도망치자고 한 마디만 해 봐.
 
Eva Kadan:....... (스쳐 지나간 어깨 위의 양손이 떨린다. 떨림을 감추려는 듯 겉옷이 살짝 구겨지는 것도 모르는 채 꼭 힘주어 쥐었다. 허공을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동요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담담한 어투로 네게 묻는다.) ...... 그 사람보다, 저를 더 사랑해요? 여전히, 아직까지도?
 
Richard Moore: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화를 내도 해결되는 건 없다. 순식간에 끓어오른 마음을 가라앉히려 천천히 숨을 고른다. 분명 오늘은 좋은 날인데, 우리 둘에게만 있어 장례식보다 고통스러워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당연한 걸 묻지 마. 괜히 화내고 싶지 않군.......
 
Eva Kadan:(흠칫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네 몸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마치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붙들고 있던 손을 가까스로 떼는가 싶더니, 네 목에 팔을 둘러 끌어안고서 고개를 파묻었다.) 조금만, 조금만 이렇게 있게 해 주세요....... ....... 저도 마찬가지라구요. 사실은 당장이라도 같이 도망치고 싶어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는데도.......
 
Richard Moore:...... 하루만 더 일찍 말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다시 팔을 느리게 들어올려 네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윤기가 도는 갈색 머리카락, 이 머리칼을 마음껏 만진 것도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비통함에 온몸을 좀먹힌 채 거울 속의 모습에서 눈을 돌린다. 이어 가능성 없는 말들을 주절주절 내뱉었다.) 그리 달라질 건 없을 거야. 약속해. 어쩌면 상대도 마음에 둔 이가 따로 있을지도 모르지....... 무슨 일이 생겨도 너는 내 곁에 둘 테니까, 어떻게든, 내가.......
 
Eva Kadan:(고개를 살그머니 들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잇는 네 옆모습이 보였다. 가까운 거리의 그 모습이 사무치게 그립고 애틋해서, 눈시울이 젖으면서도 자조적인 웃음을 작게 터뜨리며 다시 파묻어 버린다.) ...... 문을 열고 바깥에 나가기만 해도 그쪽 가문 사람들이 잔뜩 있을 텐데도요. ...... 기억나요? 어른들의 눈을 피해서 둘이서 멀리까지 나가 놀기도 했던 때 말이에요...... 후후. 마치 그때처럼, 함께라면 어떤 꿈이라도 꿀 수 있을 것만 같아져요. ...... 결국 꿈은 꿈이기에 이리도 행복함에 젖을 수 있는 걸 텐데도....... 저는 어디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Richard Moore:잡을 테면 잡아 보라지. (허세에 불과하다. 무력감이 몰아친다. 사랑하는 여자가 울고 있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니. 머리를 만지던 손이 내려와 부드러운 뺨을 감싼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질척할 만큼 감정이 묻어나 자기 자신을 미워할 지경이었다.) 꿈마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 그 찰나의 행복이 달콤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붙드는 거지. ......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다시 울리지 않겠어. 얼마나 허술한 말인지 알지만, 기다려 줘. 내 곁에서 한 발자국도 멀어지지 말고 기다려. 매달려도 괜찮아. 지옥에 떨어져도 너 하나만은 놓지 않을게.
 
Eva Kadan:....... (오랜만에 느껴본 그 나직한 목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대답도, 끄덕임도 없다. 제 뺨을 감싼 손을 겹쳐 잡고서 고개를 들면, 눈물을 닦아낸 제 눈동자에는 결의와 불안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 리처드, 저를 사랑한다면, 제가 뭘 해도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어 줄 건가요? 제가 무슨 짓을 해도 곁에 두고, 무슨 짓을 해도 절 놓지 않아 줄 건가요?
 
Richard Moore:...... 뭐? (네가 한다는 말이 단 한 번도 상정한 적 없는 말이어서 미간을 찌푸린다. 거울 너머의 모습조차 믿기 힘들어져 고개를 돌렸다. 네 눈동자를 직접 보고 나서야 턱 위로 조심스레, 아주 짧은 입맞춤을 남긴다.) 이미 약속했잖아. 두 번 확인하지 않아도 돼. 다만...... 에바, 너 자신이 위험해질 일은 하지 마라. 이건 부탁이 아니고 주인으로서 하는 명령이야.
 
Eva Kadan:....... (네 입술이 맞닿은 곳에서부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그제서야 널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어내고, 시선을 피하며 흐트러진 옷가지를 괜히 정리해 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걱정 끼칠 만한 작은 고용인이 아니니까요.
 
타이밍이 좋았던 걸까요? 그 순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Richard Moore:넌 늘 걱정만 하게 만들어. (바보 같긴. 다시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멋대로 만져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이렇게 손만 뻗어도 망가지게 만들 수 있는데. 그러던 중 노크 소리가 들려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무슨 일이지?
 
에바가 먼저 나가 문을 열어보면, 세네 명의 고용인들이 서 있습니다.
 
당신을 데리러 온 듯하네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Eva Kadan:벌써 시간이....... (시계와 널 한 번 번갈아 보고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숙인다.) 준비는 끝마쳤으니, 이제 홀로 내려가시지요. 초대받은 손님들은 전부 도착하신 것 같습니다.
 
Richard Moore:...... 그리 하겠네. (마찬가지로 평소와 다름없이 굴었으나 눈길만은 끝까지 떨어트리기 힘겹다. 목을 조이는 셔츠 칼라를 만지곤 걸음을 옮긴다.)
 
저택의 홀과 거대한 앞 정원에는 사람들이 벌써 모여 웃고 있습니다.
 
당신의 곁을 당연하게 지키고 선 에바가 유지하는 침묵만이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안기는 고요입니다.
 
주위는 어디를 보아도 소란스럽기만 합니다.
 
귀족A: 오랜만일세, 리처드! 자네가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린튼 가와 결혼을 하다니, 이건 정말 경사로군!
 
귀족B: 그 집안은 예로부터 아주 유명하지 않았나.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다고 말이야. 남은 건 만사형통이겠어!
 
있는 대로 아는 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양반들, 본 기억이 없습니다.
 
잘 나가는 것 같으니 일부러 친하게 구는 거겠죠.
 
Richard Moore:...... 축하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이런 좋은 일이 생긴 것도 다 여러분들 덕이 아니겠습니까. (겨우 가라앉힌 속이 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오자마자 이런 이름도 모르는 놈들의 가증스런 얼굴이나 마주하고 있어야 한다니. 부인 될 사람과 나란히 있는 것보단 나으니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억지로 입꼬리를 밀어올리며 대강대강 대답을 하고 주변만 둘러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초대된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어라 대화하고 있습니다.
 
Richard 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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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린튼 가에서… …다며?”
 
“결혼식 날짜가 발표된 이후에 계속 그렇다더라고. 무슨 마가 껴서, 이 경사스러울 때에…”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리처드를 알아본 몇 사람이 웃으며 다가옵니다. 이번에는 또 뭐라고 인사하려는 셈일까요......
 
Richard Moore:(도망치고 싶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당신을 놔줄 생각인 이가 단 한 명도 없나 봅니다...
 
Eva Kadan:(네 얼굴에서부터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표정이 잘 드러난다. 힐끗 눈치를 살피다,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슬그머니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네 곁에 다가가 서서 남모르게 옷깃을 살짝 당긴다.) ...... 도련님, 인사를 기다리는 다른 분들이 많이 기다리십니다. 잠깐 저쪽에도 얼굴을 비춰 주시는 게.......
 
Richard Moore:알고 있네. (알고 있지만, 싫어. 네 쪽으로 고개를 돌려 속삭이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인다. 오늘따라 예복이 온몸을 조여드는 기분이라 또 한 번 숨을 고르고 사람들 사이로 파고든다. 이왕이면 늙은이들 말고 젊은 놈들이 대하기 편할 텐데.) 오늘 이렇게 먼 곳까지 축하를 위해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인사를 나누고 있자 저 먼 발치에 있는 결혼 대상 집안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린튼 가.
 
문득 리처드는 린튼 가에 관한 소문을 떠올립니다.
 
가장 명예로운 집안! 왕족과도 줄이 이어져 있다던가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가문. 그러나 희한하게도 저들에 대한 정보는 많이 개방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가문 구성원조차 전부 공개하지 않으니 말 다했죠. 다만 조금 미친 이들이 많다 했던가? 불미스러운 소문은 그 정도입니다.
 
곁에 서 있던 에바는 린튼 가를 보자마자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리처드의 친척마저 다가와 웃으며 잔을 건네는 순간에도요.
 
친척: 오, 마침 잘됐군. 인사해야지, 이제 사돈인데 말이야.
 
Richard Moore:...... 아, 뭐. (찰나의 떨떠름함을 떨치지 못한 채 잔을 받아든다. 그러는 중에도 곁눈질로 널 보곤 달래듯 잠깐이나마 부드러운 눈길을 준다.)
 
Eva Kadan:....... (잔을 건네고 사라진 그 친척의 뒷모습을 대놓고 노려보고 있다가 너와 눈이 마주치자 퍼뜩 시선을 돌려버린다. 린튼 가 쪽의 눈치를 살피더니, 네게 바짝 붙어 눈썹을 늘어뜨린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인사하지 마세요, 네? 인사하지 말고 그냥 저랑 정원에나 나가요.......
 
린튼 가 쪽에 모인 친척들이 전부 당신을 돌아보며 얼른 오라는 듯 손짓합니다.
 
Richard Moore:...... 자네, 잠시 말 좀 전하도록. 저쪽으로 가서 내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잠깐 숨 좀 돌리고 오겠다고 해. (지나가던 다른 사용인의 팔을 붙잡아 작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나중에 혼나겠지. 그래도 그건 나중 일이다. 보통 얌전하게만 구는 네가 그러는 건 무슨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습관적으로 예복 자락을 당겨 고쳐 입고서 네게로 몸을 돌린다.) 그리 할 테니까, 자꾸 주인 잃은 개처럼 굴지 말아.
 
Eva Kadan:제, 제가 언제....... (다시금 뺨이 붉어지다가도 누군가 발견할까 허리를 바로세우고 자세를 고쳤다. 네 옆자리를 지키며 정원으로 통하는 바깥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알아요, 이따 정식으로 연회가 시작된다면 결국 인사하러 가셔야 한다는 것 정도는....... ...... 오늘만큼은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Richard Moore:어차피 저쪽에 가서 너무 꼬리를 흔들어도 좋은 인상은 못 남겼겠지.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말을 늘어놓는다. 익숙하게 보폭을 맞추어 걸으며 새삼 네 모습을 눈으로 훑는다. 내일 같이 예복을 입는 건 네가 되어야 했는데.) 네 주인이 고작 그런 것도 모르리라 짐작했나. 후에 적당히 벌을 주면 그만이야. ...... 어차피 숨이 막히긴 했어.
 
Eva Kadan:네, 얼굴에 전부 드러나시더군요. 오늘처럼 중요하신 날에 표정 관리가 그렇게 서투르셔야 되겠어요. (네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작게 입가를 가리고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서도 당신을 도와드렸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벌은 사양해도 되나요?
 
Richard Moore:이렇게 쫑알쫑알 대드는 것도 충분히 벌을 받을 만한 일이야. (정원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를 닫고 혹여 주변에 남은 사용인이 있는지 확인한다.) ...... 상대 측에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있는 모양이더군. 들었나?
 
Eva Kadan: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널 올려다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발걸음을 멈춘 채 생각이 미치자 시선을 피한다.) 아....... 네, 네에, 뭐....... 소문으로 조금씩 들은 정도였지만요. 그런 가문의 분들과 정략 결혼이라니, 너무하시기도 하죠....... 엮여서 좋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니까.
 
Richard Moore: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군. (부모는 이상하리만치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저 결혼해라, 한 마디의 통보가 전부였지. 자신을 올려다보는 네 손을 감싸듯 잡고서 눈을 가늘게 뜬다.) 자세히 캐묻진 않으마.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몰라. 흠이 많은 가문의 아가씨라면 적당히 홀대해도 될 거야. 그녀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가문과 가문의 만남은 원래 그런 것이지 않나.
 
Eva Kadan:...... 워, 원래 사용인들 중에서는 이것저것 소문 퍼뜨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으니까요. (걱정이 어린 얼굴로 네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이렇게 대답하면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여자처럼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모쪼록 너무 가까워지지는 말아 주세요.
 
어느새 정원 쪽으로 나온 사용인이 당신을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그들에게로 가야 할 시간이 온 걸까요?
 
Richard Moore:지긋지긋하군....... (멀리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오자 가감없이 짜증을 드러냈다. 그래, 어차피 방아쇠는 아까 전부터 당겨져 있었다. 묵묵히 네 얼굴을 바라보다 이마와 눈꺼풀에 입을 맞추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게 여자는 한 명 뿐이야. ...... 이만 가지. 더 질질 끌었다간 간만에 노성을 듣게 생겼어.
 
Eva Kadan:....... (네가 입을 맞추고 간 부위가 불에 덴 듯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그럼에도 우울한 낯으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발을 떼지 않았다. 시간이, 그리고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 저는 정원에 조금 더 있을게요. 그분들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서...... 죄송해요. 금방 들어갈 테니 염려 마시고 먼저 가세요.
 
에바는 린튼 가 사람들과는 얼굴조차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입니다.
 
그래도 장인 어른이 될 분도 계시고, 린튼 가는 왕족과 연관된 집안이고… 잘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 이 모든 건 가문을 위한 일인데.
 
어쩔 수 없이 리처드 혼자 홀로 돌아가면, 그들이 반갑게 당신을 맞이합니다.
 
린튼가A: 이게 누구야, 우리 새가족 될 사람 아니야!
 
린튼가B: 만나서 정말 반갑네.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총명하게 생긴 양반이군.
 
Richard Moore:(총명? 엿이나 바꿔 먹으라지.......) ...... 과찬이지요. 늦게 얼굴을 비추어 죄송할 따름이오. (전에 한 생각은 모조리 취소하는 게 좋겠다. 이 작자들의 얼굴만 봐도 침을 뱉고 싶어진다. 일부러 눈에 띄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파티의 주인공께서는 어디에......?
 
린튼가A: 그래, 곧 부부 될 사람끼리 춤이라도 한 번 춰야 하지 않겠어.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린튼 가 사람들을 자세히 살피면, 대부분 눈동자가 흐리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째서인가 눈밑이 거뭇하고 대다수 낯빛이 창백합니다. 햇빛을 오래 보지 않은 사람처럼. 혹은 잠을 오래 자지 못 한 사람들처럼.
 
그들은 당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부릅니다.
 
하퍼, 하퍼 린튼!
 
......
 
그렇게 나타난, 처음 마주하는 결혼 대상자는 썩 말끔하고 멀쩡한 생김새입니다.
 
가슴께까지 내려앉은 금색 머리에 푸른 눈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정중히 당신에게 인사를 올리는 모습마저 귀족답네요.
 
하퍼 린튼 :반갑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하퍼 린튼입니다.
 
Richard Moore:...... 리처드, 무어입니다. (목에 무언가 콱 박힌 것 같은 목소리다.) 드디어 얼굴을 보는군요.
 
하퍼 린튼 :익히 들은 대로 멋진 신사분이셨네요. (표면적인 미소를 띤 채 네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어때요? 딱딱한 첫만남보다는 춤이라도 한 곡 춰 주시겠나요?
 
Richard Moore:한 곡 멋들어지게 추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만, 레이디. (자꾸만 이 여자의 얼굴 위로 다른 이의 얼굴이 겹쳐져 불쾌하다. 적당히 농간을 부리는 수밖에. 내민 손을 잡아 입을 맞추는 시늉만 하며 속삭인다.) 그럴 힘은 내일 밤을 위해 아껴주시오. 아름다운 건 독식하고 싶어지기 마련이거든.
 
하퍼 린튼 :어머....... (네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뺨을 붉히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순순히 손을 내리고서 네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붙는다.) 좋아요. 사람을 다루시는 게 제법 능숙한 분이시군요. 이런 분일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빨리 만나뵙자고 조르기라도 할 걸 그랬어요.
 
사람들의 이목은 당신과 하퍼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웃음과 흡족한 박수 소리. 모두가 이 순간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한 사람만 제외하고.
 
하퍼 린튼의 어깨 너머, 정원으로 통하는 입구에서 고요하게 당신을 응시하는 에바의 얼굴이 보입니다.
 
무슨 표정인가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입매가 굳은 상태임은 확실합니다.
 
원하지 않음을, 이 순간을 바란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을 극렬히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하퍼 린튼을 빤히 응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감시라도 하듯이 말이죠.
 
Richard Moore:그럼 그렇게 하는 쪽으로. 언제가 되었든 결국 만났으니 잘 된 일이 아니겠소. (어떻게든 떨쳐냈군. 연기를 마치고 고개를 들자마자 네 얼굴을 마주쳐 한 순간 표정이 무너진다. 오해한 건 아니겠지. 그래. 서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다만 당장 저 몸을 안고 달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나. 주변의 말에 적당히 응수하며 빠져나갈 틈을 찾는다. 이 망할 파티는 언제까지 하는 거야? 어떻게 된 게 사람들도 죄다 이상하다.)
 
하퍼 린튼 :(네가 적당히 몸을 돌리는 순간 네 팔을 붙들어 잡았다.) ...... 저를 앞에 두고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죠? 급한 용건이라도 있으신가요?
 
Richard Moore:...... 아. (망할 여자. 네가 옷깃을 잡아챌 때와 달리 등골이 서늘해진다.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웃었다. 그러나 내뱉는 말은 그리 온순치 않았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지요.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 것은 사실이오. 잠시 보내줄 수 있겠소? 어차피 내일이면 전부 당신 것이 될 터인데.
 
하퍼 린튼 :....... (이쪽도 마찬가지로 웃는 낯을 유지하면서도 미간을 눈에 띄게 찌푸린다.) 아까부터 저희 쪽을 노려보고 있는 저 사용인 분에 대한 일인가요?
 
Richard Moore:먼 곳을 보느라 눈을 가늘게 떠서 그럴 겁니다.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닌지라. (이러다 휘말리겠어. 눈썹에 힘을 빼 나는 초식동물입니다, 하고 어떻게든 어필을 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저 이가 당신도 섬기게 될 텐데 미리미리 상태를 살펴서 나쁠 것 없지 않나 싶소만. 이렇게 좋은 날 무엇 하나라도 문제가 생겨선 안 되지.
 
하퍼 린튼 :저한테 적의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몰라볼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는 아닙니다만. (여전히 팔을 붙든 채 물러나지 않았다.) 저 사용인 분께서는 당신과 오랫동안 함께 자라온 친구라고 하셨던가요? 여기에 오기 전에 기본 정보는 알고 들어왔거든요.
 
Richard Moore:경계심이 많아 그런 거라 생각하는데...... 하하, 레이디께서도 오늘은 긴장을 많이 하셨나. (흘긋 팔을 붙든 손을 보고 여전히 나직하고 둥근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내가 그리 마음에 들었소? 그렇게 대놓고 뒷조사를 했다 알려 주어서 린튼 가에 좋을 일은 없을 거요. 그대에게도 오만 일정을 다 관리하는 집사 하나 정도는 있지 않소?
 
하퍼 린튼 :네...... 결혼식 전날 밤에 약혼자를 상대로 죽일 듯이 노려보는 집사는 없지만 말이죠. (뿌리치듯 네 팔을 놓아주고서 먼저 등을 돌린다. 그러다 슬쩍 널 뒤돌아보며 한마디 덧붙인다.) 하지만 관리는 좀 해두셔야겠습니다. 저 태도가 사심이 섞인 행동이라면 저희 쪽은 썩 달갑지 못하니까요. 저희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건 없잖아요?
 
그렇게 드러내는 웃음은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문득 불쾌감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의 배우자는 곧 자신이 있어야 할 린튼 가의 친척들에게로 돌아갑니다.
 
Richard Moore:섣부른 판단은 좋지 않소. 게다가. (돌아서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번엔 자신이 팔뚝을 붙든 채 귓가에 혼자 들을 수 있도록 속삭인다. 전과 달리 차갑기만 한 목소리였다.) 내가 내 사람을 어떻게 닦든, 부리든 내 소관이지 그대가 첨언할 일이 아니오. 얼마나 사람을 잘 길들였는지 보게 될 그 날을 기대하리다. (아, 이대로 파혼이나 하면 좋겠다. 부드럽게 붙든 팔을 놓고서 정원을 향해 몸을 돌린다. 아직 거기 있나.)
 
정원의 담장 너머로 에바의 모습이 스치듯 보입니다. 연회는 한창이라 모두들 정신없이 시끄럽고, 가볍게 술이라도 한 잔 가지고 나가 볼까요.
 
Richard Moore:(칵테일을 한 잔 들고 연회장을 빠져나간다. 마실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네게 주고 싶어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적당히 웃음으로 무마하며 점차 걷는 속도를 높인다.)
 
정원에 나오기 무섭게 고요가 찾아옵니다. 시끌벅적하던 파티홀 내부와는 상반되는 분위기입니다.
 
마침 홀에서 들려오는 음악도 바뀌는 것 같네요.
 
정원의 담장 너머에서 벤치에 앉아 달을 올려다보는 에바의 분위기는, 아까보다 더 온화해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시간은 밤 9시고 달은 보름달이네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해 별이 쏟아질 듯 무수히 많습니다.
 
Richard Moore:기다리게 했군. (벤치로 다가가 곁에 앉는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민다.) 덕분에 그 자리에서 걷어차이는 줄 알았어. 에바.
 
Eva Kadan:네? 어떻게...... (네 등장에 놀란 얼굴로 얼떨떨하게 잔을 받아들었다.) 더 계셔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이렇게 일찍.......
 
Richard Moore:누가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쳐다봐서 말이야. 뺨을 안 맞은 게 다행일 수준이었다고? (네가 잔을 받고 나서야 옆에 늘어지게 앉아서 히죽거린다.) 더는 무슨. 단체로 무슨 약쟁이만 있는 건지 분위기가 이상해. 그런 곳에 있다간 나도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거야.
 
Eva Kadan:아, 아니에요. 그런 거. 저는 그냥....... (뒷말을 삼켜내며 잔의 끄트머리만 만지작거린다. 조금은 누그러진 태도로 한참 동안 말이 없다, 하늘 위를 다시 올려다본다.) ...... 그래도 이런 날까지 여전히 날씨는 미울 만큼 좋네요. 저를 빼고 전부가 이 결혼식을 축하하는 것처럼.......
 
Richard Moore:마셔도 돼. 특별히 허락하지. ...... 한 가지는 정정하고 싶은데. 너랑 나만 빼고. 그럼 아무래도 좋잖아. (일단 이 아가씨의 가라앉은 기분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군. 등받이에 팔을 얹고 턱을 괸 채 네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있잖아. 저쪽에서 여기가 보일까?
 
Eva Kadan:....... (정말 아무래도 괜찮은 걸까. 네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인다. 술을 접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기에 조심스레 한 모금을 홀짝이고서 저택이 있는 쪽을 바라본다. 눈을 깜빡이며 다시 네게로 고개를 돌렸다.) ...... 안 보이지 않을까요? 걱정 마세요, 설마 이곳까지 린튼 가 사람들이 찾으러 오겠어요. 한창 떠들썩할 때인데....... 인사도 나눴고.
 
Richard Moore:그래? (아, 귀엽네. 애써 잊고 지냈던 감정이 자꾸만 치밀어 올라온다. 그냥 깍쟁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지....... 양 팔을 뻗어 술이 흐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네 몸을 품에 안는다. 연회장에 있을 때와 달리 잔잔한 꽃향기만 나서 한층 마음이 편해진다.) 그럼 이러고 있자. 이왕이면 밤새도록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데.
 
Eva Kadan:(제 몸이 네 품 안에 부드럽게 감싸지면 얼굴이 새빨개진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래도 바, 바깥인데....... (그렇게 말하는 저도 아까 전 널 끌어안았다는 사실이 생각나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차마 네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한 채 시선을 떨군다.) 지,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세요? 오해 살 법한 말씀은 관두세요.
 
Richard Moore:몰라. 이제 될 대로 되라지. (약혼자를 윽박지르기까지 했으니 모든 일은 제 손을 떠난 셈이다. 이렇게 제대로 끌어안는 것도 대체 얼마나 오랜만인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심장은 주책맞게 뛰고 있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네 귓가에 깊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며 장난스레 소곤거린다.) 오늘이 아니면 다른 여자를 안을지도 모르는데 진심이 아니라 생각하는 건가? 멍청하군.
 
Eva Kadan:자, 잠깐만요. (붉은 귓가가 간지럽다는 듯 몸을 잔뜩 움츠렸다. 네 말에 입술을 깨물고서 유혹과도 같은 그 말에 진심으로 흔들리는 얼굴을 하며 잔을 든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는 결국 눈을 질끈 감은 채 애써 고개를 반대쪽으로 홱 돌려버린다.) ...... 아, 안 돼요! 물론 다른 여자를 안으신다면 저로서는 슬프겠지만 그래도, 안 돼요....... 엄연히 약혼자 분이 존재하고 있고, 그리고, 그리고...... 어쨌든 안 돼요.
 
Richard Moore:가까이 가지 말라며. 밤엔 괜찮아? 나는 평생 너 하나만 안고 싶은데. 그렇고 그런 일이 아니라도 좋아. (같이 있고 싶을 뿐이야. 고개를 돌리자 드러난 턱과 목덜미에도 쪽, 쪽, 도장을 찍는다. 이 순간 뿐인 일탈이라면 세상 같은 건 내일 망해도 괜찮지 않나? 퍽 좋은 옷감으로 만들어졌으나 오래 입어 느슨해진 제복 너머로 살갗이 느껴져 비죽 웃는다.) 처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괜찮을 만큼 대범한 여자가 아닐 텐데, 너는.
 
Eva Kadan:그치만, 잠깐, 아,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눈을 꾹 감고 널 뿌리치지도 못한 채 네 입맞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입맞춤에 면역이 있을 리가 없는데, 그걸 잘 안다는 듯이 웃고 있는 저 낯이 조금은 밉살스러웠다.) ...... 같이 있고 싶었어요. 매일 밤 쓸쓸할 때마다 늘상 했던 생각이라구요. ...... 말한 것처럼 괜찮을 리가 없어요. 그래도....... 이번만큼은 명령이라고 해도 못 들어드리니까......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리처드는 옷으로 감춰진 에바의 목 부분에 희미한 상처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Richard Moore:사람이 너무 꽁꽁 감추기만 해도 안 돼. 쓸쓸할 때마다 왔으면 진작 소유자를 확인해 줬을....... (능글맞게 장난을 계속 치려다 발견한 상처에 입을 꾹 다물었다. 손을 올려 칼라를 벌렸지만 확실치가 않아 블라우스 단추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Eva Kadan:잠깐, 리처드...... (다급하게 네 손을 저지하려다, 아직 술이 남아있던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난다. 그럼에도 신경쓰지 않고 어떻게든 네 손을 밀어내려 애썼다.) 하, 하지 마세요. 그냥 일하는 동안 어딘가에서 긁힌 것뿐이니까, 네? 이거 놓아 주세요.
 
Richard Moore:가만히 있어. (유리가 깨지는 파열음이 예민해진 신경을 더욱 자극한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손을 넣어 목덜미의 상처부터 시작해 따로 다친 곳은 없는지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 없으니까 포기해. 네가 하는 일이 뭔지 아는데 계속 거짓말만 할 셈인가?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생채기들은 소매에 가려진 양쪽 손목 위에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Eva Kadan:자꾸 이러시면 아무리 당신이어도 사람 부를 거예요! (어떻게든 손을 밀쳐내려 애쓰며 평소에는 비치지 않던 필사적인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그 얼굴에는 조금의 수치심, 공포심과 불안감,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제발, 리처드, 네? 저를 사랑한다면 제 말을 들어 주세요.
 
Richard Moore:(목덜미도 손목도 죄다 위험한 곳들 뿐이다. 대상이 어디인지도 모를 화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풀어헤친 단추들을 하나하나 다시 채운다. 날카로운 네 목소리에도 아랑곳않고 짓씹듯 윽박지른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군. 이 건에 대해선 따로 문책하지. 둘이서 보내는 시간을 더 망치고 싶지 않거든. 그냥......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너야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슬프게 하지 말라고.
 
Eva Kadan:....... (이어지는 말 하나하나가 제게 더 아프게 다가오는 기분이다. 옷매무새를 고치고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제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어느덧 눈물이 고여 있었다. 욱해서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숨을 들이마셨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제 손가락 끝을 짓누른다. 고개를 저으며 네게서 뒤돌았다.) ...... ...... 돌아갈게요.
 
Richard Moore:가긴 어딜 가? (지금 정말 화난 게 누구인지 알기는 하는 거야? 멍하니 올려다본 얼굴이 슬픔에 젖어 있어 뒤따라 일어난다. 왜 우는 건데. 왜 다쳤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가느다란 허리를 잡아채 다시 품에 가두고 고개를 숙여 네 뒷덜미에 얼굴을 기댄 채 길게 한숨을 쉬었다.) 거칠게 말해서 미안. 하지만, 너.......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다치고 다니는 건 싫다. 차라리 내가 다치는 게 나아.
 
Eva Kadan:.......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손끝으로 눈꼬리를 훔쳐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지만 당신이 앞으로도 아무것도 몰랐으면 한다. 그랬기에 그 말에 되돌려 줄 수 있는 건 침묵밖에 없었다. 네 손등 위를 감싸쥐며 고개를 떨군다.) ......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당신의 사용인입니다. 사용인이 모시는 주인을 다치게 만들 리가 없잖아요.......
 
Richard Moore:주인이고 종이고를 떠나서!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려 하자 입술을 깨물었다. 새삼 감정이란 참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직위로도, 힘으로도 당장 바닥의 풀을 밟듯 밟아버릴 수 있건만 이렇게 소중해지다니. 한 손으로 네 상체를 훑고 올라가 턱을 잡아들어 눈을 맞춘다.) 좋아하니까 다치는 게 싫어. 같은 마음이 아니었나?
 
Eva Kadan:....... (아직까지 젖은 눈시울로 시선을 마주했다. 금세 약해진 얼굴을 하고서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고 한다면 저는 당신을 지킬 거라는 이야기예요. ...... 그러니까 화내지 마세요. 저는 당신에게 있어서 뒤가 켕길 만한 일들은 추호도 하지 않아요. 저를 믿어 주세요.
 
Richard Moore:믿어. 그래도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면 좋겠어. 나도 널 먼저 생각할 테니까. (같은 마음이 이토록 괴롭다면 다른 마음은 얼마나 괴롭단 말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화를 내고 싶지도 않다. 저택 쪽과 주변을 다시금 살피고 적당히 나무에 가려진다는 걸 알게 되자 네 몸을 돌려 안아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다.) ...... 그러니 밀어내지 마. 원하는 만큼 나를 받아들여.
 
Eva Kadan:...... 모르겠어요. (그 얼굴을 올려다보며 머뭇거렸다. 마음 속을 짓누르는 무거움이 제 발목을 붙잡는다.) ...... 그럴 자격이...... 제게 있을까요.
 
Richard Moore:너 아니면 누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래. (아주 오래 전부터 너만, 오직 너만 내 여자였다고. 소유욕이 빼꼼히 고개를 드민다. 짧게 입술을 맞대곤 눈썹을 늘어뜨린 채 묻는다.) ...... 싫어?
 
Eva Kadan:아니에요, 싫은 게 아니라......! (눈을 감았다 뜨면 드물게 외면하기 어려운 네 낯이 보여 금방 동요해 버린다. 작게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다 네 눈치를 살피더니, 네 팔을 붙잡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술 위로 먼저 입을 맞췄다. 그뿐인 행위였는데 눈에 띄게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 이렇게, 요?
 
Richard Moore:아....... 미리, 사과하지. 눈 뜨지 마. (평소 귀여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으면서 오늘따라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이대로 멈추면 어떻게 하지. 네 허리를 더 단단히 끌어안고 맞댄 입술을 조심스레 깨물었다. 나이가 무색하게 서투르지만 열의는 있다. 질근질근 깨물던 입술을 감싸듯 핥다가 깊게 물었다 놓으며 떨리는 숨을 뱉었다. 터질 듯 붉어진 얼굴로 그 이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옷깃만 거세게 쥐었다.) .......
 
Eva Kadan:(네 말대로 순순히 눈을 감고 있자 제 입술을 작게 깨무는 감촉에 하마터면 물러날 뻔했다. 네가 안았을 때보다 더 굳은 몸이었지만 가슴은 크게 요동친다. 여전히 면역이 없다. 이럴 때 보통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조차 여전히 모르겠다. 그럼에도 입술을 떼면 미련이 흐르는 눈길로 붉어진 네 얼굴을 마주한다.) ...... 한 번만 더....... (이렇게 욕심내도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이 마음 깊이 피어올랐지만서도 발꿈치를 들어올려 조금 더 진하게 네 아랫입술을 머금는다.)
 
Richard Moore:(솔직히 뺨 한 대 정도는 내어 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마주한 얼굴이 흐물흐물하다 해도 좋을 만큼 녹아 있어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 그래. (입술이 물림과 동시에 손이 움직인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허리에서 내려가 엉덩이를 받치듯 쥐고 다른 손은 네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엇갈려 문 윗입술을 핥다 네가 숨을 삼키는 틈을 타 혀를 밀어넣어 입안 여기저기를 차근차근 탐했다. 곧 얼굴 뿐만 아니라 온몸이 화끈히 달아오르고 만다.)
 
Eva Kadan:아, 응....... (혀가 뒤엉키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시며 비음을 흘렸다. 그 혀와 제 몸에 맞닿은 네 손길이 마냥 뜨겁게 느껴지기만 한다. 당신과의 첫 키스는 줄곧 꿈꿔 왔던 것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낯설었다. 가까스로 입술을 떼면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뱉어내며 조금 멍해진 시야로 널 바라본다.) ....... 죄송해요. 제가 머, 멋대로.......
 
Richard Moore:...... 처음 멋대로 구는 것도 아니면서. (방금까지 뒤얽히던 혀의 감촉이 선명하다. 뜨겁고, 축축하고, 다소 말캉거리는. 달아오른 얼굴로 우물쭈물대는 네 얼굴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아직 젖어 있는 입술에 두어 번 더 입을 맞춘다.) 더 하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아쉽군.
 
Eva Kadan:.......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쉽다는 듯한 표정은 제 얼굴 위에도 고스란히 떠올랐다. 부끄러움에 그대로 반 걸음 네게서 한 발짝 물러나 뒤늦게 주위를 살폈다.) ...... 이대로 더 했다간 정말로 들킬지도 모르고, 그리고 역시 죄책감이....... 아, 아무튼, ...... 그래도, 기뻤어요. 사랑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Richard Moore:아직 미혼이다만. ...... 사랑받는 듯한 게 아니라, 사랑해. 몇 번을 정정해줘야 할 지 모르겠군. 덜렁이 메이드 아가씨. (들킬 수도 있어 조마조마한 건 마찬가지다. 덩달아 저택 쪽을 곁눈질한 뒤 멀어진 네 몸을 한 번 더 꼭 안았다 놓아준다.) 오늘 밤에도 네가 쓸쓸함을 느끼면 좋겠네.
 
Eva Kadan:…… 평소보다 더 쓸쓸할지도 몰라요. (붉어진 얼굴로 투정을 부리듯 작게 덧붙였다. 사랑해, 이 세 글자가 가슴 아플 만큼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 옆자리는 내가 될 수 없었던 걸까.) …… 이, 이제 그만 돌아가 보세요. 누가 당신을 찾고 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Richard Moore:침실 문을 열어두지. (이 이상 권하는 것도 도에 어긋난다. 상체를 숙여 새빨갛게 달아오른 뺨에도 입을 맞추고 혀를 슬쩍 내밀어 제 입가를 핥았다. 립스틱이 묻었으려나.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지. 순식간에 생각이 차오르자 눈을 감았다 뜨고 유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감기 걸리니까 너무 밖에 오래 있지 마.
 
Eva Kadan:...... 네.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가볍게 허리를 숙여 네게 인사했다. 방금 전까지 걸려 있던 마법이 풀린 것처럼 완전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네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곳을 지키다 저도 따라서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눈을 뜨면 당신은 식장에 가게 될 테죠.
 
정원에서 작별한 에바는 줄곧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란함을 안은 밤이 지나갑니다.
 
결국 도래한 아침입니다.
 
일찍부터 모든 사람들이 분주합니다.
 
당신을 향유로 씻기고 몸단장을 해주는 사용인들 사이 이상하게도 에바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코빼기조차.
 
가족들은 연달아 당신의 방을 방문해 결혼을 축하한다 말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보이네요.
 
본인의 의사가 조금도 담기지 않은 정략혼인데도 말인가요? 귀족들이란.
 
식장으로 향하는 길목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여전히 에바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전날 밤 은밀한 만남을 가졌더라도 인사는 해야 할 거 아닌가? 당신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Richard Moore:(간밤에 그런 일이 있었지만 얼굴은 비쳐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곧 주변을 살피며 말을 걸 만한 사용인이 보이길 기다렸다 붙든다.) ...... 에바는?
 
사용인A: 글쎄요, 오늘 하루 종일 모습을 보이시지 않았는데.......
 
Richard Moore:글쎄요가 아니잖나. 오늘 같은 날 한 명이라도 안 보였다간 나중에 어떤 꼴이 나게 될 지 알면서. 집사장이나 하녀장도 모르나? (저도 모르는 사이 낮게 윽박질렀다.)
 
사용인A: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사용인B: 도련님, 린튼 가에 도착했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Richard Moore:허어....... (혀를 차곤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용인의 뒤를 따라 나선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도착한 식장, 그러니까 린튼 가의 대저택의 분위기가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묘하게 풍기는 기묘한 서늘함. 어디선가 나는 미미한 시큼한 냄새에 기시감이 듭니다.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 속,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것도 같습니다.
 
결혼식을 할 곳인데 이렇게 장례식 같을 일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Richard Moore:....... (관찰?)
 
가능합니다.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ㅋㅋ
 
Richard Moore:(주위를 봤지만 아무것도 모르겠군!)
 
리처드는... 머리를 극습니다
 
Richard Moore:(긁적긁적.)
 
저택의 안쪽으로 가볼까요?
 
Richard Moore:(음산한 분위기에 괜히 일행을 살피곤 앞서 저택으로 들어간다.)
 
조용히 발을 들여 내부를 살펴보니, 홀 쪽이 소란스러움을 깨닫습니다.
 
유난히 사람들의 말이 뒤섞이는 가운데, 묘한 한 단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Richard Moore: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지나가는 사용인들이 경찰이 왔어! 라고 연신 속삭이는 걸 듣습니다.
 
Richard Moore:(경찰? 지나가는 린튼 가의 사용인을 붙잡을까 하다가 그것도 영 아닌 것 같아 성큼성큼 홀로 향한다. 어쨌든 나는 오늘 이 저택을 돌아다닐 자격이 주어진 사람이니까.)
 
소란스러운 장소로 다가가니......
 
린튼 가의 부인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부인의 남편 또한 넋이 나간 기색입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당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제 마주한 당신의 예비 배우자. 하퍼의 시체입니다.
 
SanC 0/1
 
Richard Moore:
SAN Roll
기준치: 61/30/12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경찰들이 분주하게 현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Richard Moore:....... (응대할 사람이라곤 없어 보이는군. 린튼 경에게 최대한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하곤 경찰에게 다가간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경찰: 아, 혹시 배우자 될 예정이셨던 분입니까? 유감을 표합니다. (네게 동정의 시선을 건네며 경찰모를 살짝 들어올린다.) ...... 보시다시피 살인 사건입니다. 총살로 보여집니다.
 
Richard Moore:그렇습니까....... (글쎄, 약혼자로서의 유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사람이 세상을 떠났으니 다소 혼란스러울 뿐. 경찰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적당히 슬퍼하는 약혼자 포지션을 잡는 게 편하겠지.) 대체 언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요.
 
경찰: 두 시간 전, 부엌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이 총소리를 듣고 뛰어왔을 때 이미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다더군요.
 
살인 현장을 둘러봄이 가능합니다.
 
비록 경찰과 린튼 가의 사람들이 있지만 갑자기 배우자를 잃은 새 가족이 충격에 점철된 낯으로 조금 살핀다 하여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겁니다.
 
현장은 1층 응접실로, 카펫 위에는 쓰러진 하퍼 린튼의 시체가 있습니다.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린튼의 시체], [카펫], [열려있는 창문]과 [장식장] 정도입니다.
 
Richard Moore:음. (반쯤 눈을 내리깔고 머뭇거리는 척을 하다 카펫의 깨끗한 부분에 한쪽 무릎을 깔고 앉아 사체부터 살핀다.)
 
총살 당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채입니다. 눈도 채 감지 못했습니다.
 
확실히 죽이려는 셈이었던 듯 머리 쪽에 피가 흐르는 것이 정확히 머리를 쏜 모양입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
 
린튼의 시체를 자세히 살피니 그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Richard Moore:괜찮다면 장갑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린튼의 손으로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게 그 손을 돌린다.)
 
경찰: 네? 무엇을 하시려는 건가요? (조금 수상쩍은 얼굴이 되어 널 바라본다.)
 
Richard Moore:약혼자의 억울한 죽음에 감춰진 진상을 밝히고 싶을 뿐입니다. 증거가 나오거든 바로 넘겨드리죠. (한껏 울적한 표정을 유지하며 경찰과 눈을 마주친다.)
 
경찰: 마음은 이해하지만...... 안 됩니다. 이쪽은 저희 경찰들에게 맡겨 두시고, 사체에는 절대 손을 대지 말아 주십시오.
 
아무래도 경찰의 눈을 몰래 피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Richard Moore:그렇습니까. 그럼 사체는 건드리지 않을 테니. (어쩔 수 없이 예식용 장갑을 계속 끼고 있어야 하나. 약은 수를 쓰기 전에 주변부터 둘러보는 게 낫겠다. 가장 가까운 카펫부터 차분히 훑어보았다.)
 
카펫은 핏자국으로 너덜합니다. 그 위에는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습니다.
 
딱 봐도 고급 재질, 비싼 카펫 같은데. 관리도 어려울 것이 피로 적셔지다니 이 방면에서도 난감한 일이군요.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떨어진 탄피를 발견합니다. 매그넘 계열. 리볼버에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딱 봐도 이게 불쌍한 피해자를 죽인 무기겠죠.
 
Richard Moore:(불쌍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어 몸을 일으켜 열린 창가를 살핀다.)
 
창문 근처에는 마침 경찰이 있습니다.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살피면, 창가에 신발 자국이 남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여성으로 추측되는 크기로, ...... 어쩐지 익숙한 자국처럼 느껴집니다.
 
Richard Moore:....... (발소리를 죽이며 장식장으로 가 겉면부터 노려본다.)
 
장식장은 한쪽 문이 미미하게 열린 채입니다.
 
Richard Moore:(몸을 굉장하게 꺾어 장식장 안을 보려고 해 본다.)
(아니. 멀쩡하게 앉아서 볼래.)
 
열린 틈 바로 앞에 존재하는 것은 린튼 가의 가족 사진들이 모인 액자, 입니다만…
 
뭘까요? 유독 큰 액자 안 사진이 빠져 있습니다.
 
누군가 억지로 빼간 느낌입니다.
 
Richard Moore:(무릎을 털고 일어나 현장을 다시금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다. 살해한 뒤 사진을 가지고 도망친 건가. 사진을 먼저 가져갔을 수도 있지만 그건 제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주변에 있는 경찰은 몇 명인지 확인한다.)
 
몇 명이 들락거리기는 하고 있지만, 이 방에 남아있는 경찰은 당신에게 말을 걸었던 한 명입니다.
 
Richard Moore:(마침 잘 되었군. 창가로 가서 경찰의 팔을 부드럽게 톡톡, 두드린다.)
 
경찰: 무슨 일이시죠?
 
Richard Moore:카펫 위에 탄피가 떨어져 있습니다만, 수집하지 않아도 괜찮은 겁니까. 적어도 보관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말입니다.
 
경찰: 탄피요? 흐음.......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가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네게 꾸벅 인사를 하고 카펫이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Richard Moore:(일을 하긴 하는 건지. 혀를 차곤 경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틈이 보이면 손에 쥔 물건이 뭔지 확인하고 싶은데. 정 안 되거든 직접 하게 하든가, 내쫓든가 해야겠군.)
 
경찰이 탄피를 주워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괜찮을지도...?
 
Richard Moore:(롤 없이?)
 
원하신다면...
 
Richard Moore:
은밀행동
기준치: 40/20/8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경찰의 눈을 피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빼보면, 찢어진 쪽지가 보입니다.
 
Richard Moore:....... (잘 펼쳐서 읽어본다. 읽을 수 있나?)
 
거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마주합니다. 이건 도대체 뭘까요? 난데없이 왜 거미?
 
Richard Moore:(주머니에 샥 넣는다.)
 
마침 타이밍 좋게 경찰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정말 심각한 얼굴입니다.
 
경찰: 혹시 에바 카단을 아십니까?
 
Richard Moore:...... 예? (다소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다.)
 
경찰: 그 집의 고용인이라 들었습니다만.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들 말하더군요.
 
Richard Moore: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리고 덧붙인 말씀은 사건과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군요. 솔직히 무례하게 느껴집니다만.
 
경찰: 무례하게 느껴졌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분이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다던데요. 혼식을 대놓고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정원사가 1층 응접실을 빠져나가는 인영에 대한 인상착의를 묻고 다니니 모두 그분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합니다.
 
Richard Moore:(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애써 무시하려 했던 기시감이 결국.) 오늘 얼굴을 보지 못한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인을 좋지 않게 여기는 이는 그녀 외에도 있을 수 있지요. 목격 증언은...... 글쎄, 저는 방금 이 저택에 들어온지라 그렇다면 그렇구나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소 허술한 증언이긴 해도 말입니다.
 
경찰: 그렇군요...... 그렇다면 두 시간 전에 그분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신단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사정 청취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저희 쪽에서 경찰을 저택으로 보내 두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Richard Moore:예. 얼마든지 협조하겠습니다. 그럼....... (증언은 저택에서인가. 싫어도 돌아가야겠군. 린튼 부부에게 짧게 인사하고 일단 홀에서 빠져나온다.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건지 먼저 돌아갔는지 확인해야겠는데.)
 
당신이 린튼 부부에게 인사를 하자, 그들은 당신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그 태도가 다소 기형적이라 느껴질 지경이었죠.
 
그러나 어쨌든 확실한 사실은 이 결혼은 이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살인 현장에 오늘의 주인공이 더 머무를 이유는 없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워야 할 날이 바닥으로 추락함에 모든 이들이 슬퍼합니다.
 
귀가하는 마차가 준비된 것 같습니다.
 
Richard Moore:이만 돌아들 가지. (어제도 오늘도 이레귤러가 되고 말았군. 겉으론 무표정했으나 슬픔을 느낄 틈도 없이 불안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란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마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입술을 깨물었다.)
 
마차에 올라타려고 할 무렵, 어디선가 강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선이 느껴지는 장소는 린튼 가 저택 한구석에 있는 풀숲 속.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하얗고 벌레처럼 생긴 무언가가 당신을 응시하다 사라짐을 발견합니다.
 
뭘까요?
 
Richard Moore:뭐지? (창문에 달라붙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풀숲을 바라본다.)
 
풀숲에서는 더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네요. 곧 마차를 출발시키는 사용인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돌아온 집안은 그야말로 난리입니다.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도 심지어 결혼 대상이.
 
당신은 어떤가요? 괜찮나요?
 
괜찮든, 괜찮지 않든, 지금 이 상황에서 에바가 미심쩍은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당장 경찰이 한 말만 봐도 말이에요.
 
그와 닮은 사람이겠거니 하려 해도 여러모로 찝찝한 구석이 많은 사건입니다.
 
하지만 설마, 에바가? 그렇게 극단적인 성격이었나?
 
일단 두 사람은 아주 오래 알아온 사이잖아요?
 
방으로 돌아가 고민해 봅시다.
 
Richard Moore:(소리를 치며 오늘의 또다른 주인공을 찾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빠른 발걸음으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밀치고 지나가 방으로 향한다.)
 
당신의 방은 고요합니다. 역시나 에바의 모습도 보이지 않네요.
 
Richard Moore:....... (신경질적으로 예복 장갑과 겉옷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진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유 없이 그랬을 리가 없다. 그 이유가 결혼하는 게 싫어서일 리도 없다. 성격상 들킬 일이 없게 잔꾀를 부렸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험한 일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애먼 침대만 뻥뻥 걷어차다 어제 눈을 마주쳤던 거울로 시선이 옮겨간다. 역시 그때 도망이라도 쳐야 했어.)
 
그러던 중에, 창밖으로부터 에바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Richard Moore:(급하게 창가로 가 창문을 활짝 열고 몸을 숙여 밖을 바라본다.)
 
하인과 당신의 가족이 뛰어나가 도대체 여태까지 어디 있었냐며 소란을 떨고 있습니다.
 
에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식사 재료를 사러 다녀왔노라 답하는 게 시야에 잡힙니다.
 
에바를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면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창문과 거리가 너무 먼 탓인지, 흐릿한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내기가 어렵습니다.
 
문득 창문 너머로 에바와 눈이 마주친 듯합니다.
 
당신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띠었던가요. 속을 알 수 없는 저 분위기…….
 
Richard Moore:당장......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고함을 내질렀다. 다행히 이름은 부르지 않았으나 주의를 단단히 끌었겠군. 감정을 가라앉히려 타이를 잡아 당기려 했으나 예복에 맞춘 컨티넨탈이 그리 쉽게 풀릴 리 만무했다. 대신 뒤로 돌아 침대를 한 번 더 걷어찼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당신을 한 번 바라보다가, 저택의 1층으로 에바를 데려가는 것이 보입니다. 보내겠다던 경찰도 마침 도착한 것 같군요.
 
Richard Moore:(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리하지도 않고 방을 벗어난다. 되도록 경찰보다 먼저 대면하고 싶었다.)
 
에바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가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있는 에바의 모습이 보입니다.
 
Eva Kadan:...... 시내에 있는 상점에 들러 부족한 식재료를 보충했습니다. 그뿐이에요. (자신이 들고 있던 봉투를 다른 사용인에게 넘겨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상점의 위치는 린튼 가 저택과 정반대에 있습니다.
 
에바가 물건을 산 영수증까지 제시하자 의심스러운 낯을 하고 입구를 지키던 경찰 몇이 결국 수긍하곤 철수합니다.
 
그럼 그렇죠. 그가 사람을 죽일 리 없잖아요.
 
그것도 단지 당신이 결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왜이리 찝찝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당신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에바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경찰: 몇 가지 간단한 물음이 있을 예정이니 잠시 이쪽으로 와 주시죠.
 
에바는 남은 짐가방을 잠깐 내려두고 경찰을 따라갑니다.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짐가방 바깥으로 식재료와 무관해 보이는 신문이 한 장 들어있는 게 보입니다.
 
Richard Moore:(노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신문을 꺼내 펼친다. 도무지 납득이 안 가. 돌이켜보면 어제부터 상태가 이상했지. 젠장.......)
 
신문을 꺼내보니 1면부터 린튼 가와 당신의 집안의 결혼 소식으로 떠들썩합니다.
 
이제 내일 신문에는 하퍼 린튼의 부고 사실이 실리겠죠.
 
Richard Moore: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특정 페이지에 사망, 실종자 명단이 적혀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명단을 보니 꺼림칙한 기분이 듭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요.
 
Richard Moore:(뭔가 공통점은 없는지 명단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본다.)
 
크게 특별한 점은 없어 보입니다.
 
Richard Moore:음. (아예 짐가방을 열어 뒤적인다. 뭐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평범한 식재료들이 보이네요.
 
Eva Kadan:...... 도련님. (취조가 끝난 건지 가방을 살피고 있는 네 쪽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Richard Moore:....... (특별한 대꾸 없이 뒤지고 있던 가방을 닫고 네 얼굴을 바라본다. 곧 따라오라는 듯 먼저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Eva Kadan:.......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고 순순히 널 뒤따라간다. 화라도 나신 걸까.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가며 아직 긴장으로 빳빳해진 제 팔을 매만진다.) ...... 괜찮으신가요? ...... 이번 일은 유감이에요.
 
Richard Moore:(적절한 대답을 찾는 게 평소보다 힘들다. 대신 문을 걸어 잠그고 네 손을 잡아끌어 품에 두었다. 밖에서 들을 수 없도록 거의 숨소리와 같은 말을 뱉었다.) ......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했잖아.
 
Eva Kadan:.......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품이 사무치게 그립다.) ...... 죄송해요.......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Richard Moore:정말 몰랐어? (입밖으로 떨어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겁기 그지없다. 네 눈을 바라보는 얼굴조차 수습할 수 없어 엉망으로 망가진 표정이다.)
 
Eva Kadan:...... 리처드, ...... 당신도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네 눈을 마주했다. 억울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은 슬픈 얼굴이다.)
 
Richard Moore:아니. (오히려 확신에 가깝다. 지금 제 얼굴은 네 것과 비슷할지 궁금했다. 손을 들어 입가를 느리게 쓰다듬으며 한숨을 쉰다.) ...... 말하기 싫은가?
 
Eva Kadan:......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 (네게서 고개를 휙 돌려 버리면서도, 네 옷깃을 약하게 쥐었다.) ...... 만약 제가 그분을 죽였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저를 원망하실 건가요? 미워하실 거예요?
 
Richard Moore:정확히 해. 말하고 싶지 않은 거잖나. ...... 탓하지 않아. 다만, 이유가 있었다면, 말이지.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나았을 거야. (그래, 이건 불안함이 아니라 참담함이었군. 붙든 뺨을 억지로 돌려 다시 얼굴을 마주했다.)
 
Eva Kadan:....... (도저히 그 눈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정말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시선은 아래를 향해 있다.) ......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당신은 그저 저를 믿어 주시면 돼요....... 그러니까 그런 말씀 마세요.
 
Richard Moore:믿기 위해 필요한 건 하나도 안 줘 놓고 말이지....... (이토록 숨기려 든다면 가능성은 좁혀진다. 네 일도 아니고 나와 관련된 일이겠지. 고개를 숙여 네 머리칼 위로 입을 맞추고 신음한다.) 네가 전부 끌어안을 필요 없어.
 
Eva Kadan:리처드....... (네 이름을 읊조리듯 부른다. 여전히 죄스러운 기분부터 약해질 것만 같은 마음에 네 품에서 벗어나 한 발짝 물러난다.) ...... 죄송해요. 혼자...... 있게 해 주세요.
 
Richard Moore:...... 나를 혼자 둘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네 얼굴만 바라본다. 어젠 그렇게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는데, 오늘은 서로에게 모진 말만 있을 뿐 달콤함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놓기 싫어. 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Eva Kadan:....... (네 한 마디에 잔뜩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다. 귓가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고민하는 듯하더니 한 발짝 더 뒤로 내뺀다.) ...... 죄송해요. 역시, ...... 역시 안되겠어요. 당신이랑 있으면 제가 제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 먼 길을 다녀와서 피곤하기도 한 탓도 있을 거예요.
 
Richard Moore:....... (덧없군.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도 이 한 번을 잡을 수 없다니. 그렇다고 멀어지는 너를 그대로 보내는 것도 싫어서 욕심을 부렸다. 두 걸음, 네가 멀어진 만큼 그대로 다가간다.) 오늘 일은 더 이상 꺼내지 않을게. 같이 쉬어. 얼굴을 보는 것도 싫다면 뒤에서 안고만 있을게. 나가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려갈 뿐이야. 그러니까.......
 
Eva Kadan:...... 아. (제 손끝을 입술로 깨물며 주춤주춤 더 뒷걸음질을 쳤다. 쉽게 내칠 수 없다. 내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랬기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 싫어요. 당신이랑 더 같이 있기 싫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보내 주세요. ...... 미안해요.
 
Richard Moore:그렇단, 말이지. 차라리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지 마. (믿지 않는다. 왜 자꾸 믿을 수 없는 말만 하는 거야. 어째서. 짜증을 숨기지 않고 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다 잠갔던 문을 열고 먼저 방에서 나가 버렸다.)
 
Eva Kadan:....... (네가 나가 버리자 참고 있던 눈물이 맺히는 기분이다. 입술을 깨물고 깊은 숨을 내쉰 뒤 눈가를 훔치며 네 방을 나가 제 방으로 발걸음을 조용히 옮겼다.)
 
당신이 복도를 걷고 있노라면 마침 당신을 찾고 있던 듯한 사용인과 마주칩니다.
 
사용인A: 아, 도련님. 찾고 있었습니다. 내일 린튼 가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취소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온다는 것 같아요.
 
Richard Moore:...... 나는 빼고 해도 될 일인데 굳이 전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약혼도 내가 없는 자리에서 마쳤잖나. 그리고...... 걔, 방에. 후우....... 먹을 것 좀 보내고. 서재에 있을 테니까 찾지 말게. 아버지가 찾으셔도 무리일세. 그리 전해.
 
사용인A: 네? 네...... 알겠습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지만 이내 꾸벅 인사를 올리고서 빠른 걸음으로 1층으로 사라진다.)
 
밤이 늦었습니다.
 
엉망이 된 결혼식날이 이렇게 저뭅니다.
 
리처드는 어떻게 할까요?
 
방에 돌아가 잠을 청할 수도, 혹은 서재에 계속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Richard Moore:(글러먹었다. 아무리 책을 펼치고 넘겨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기다려도 오지 않겠지. 그렇다면 내가 갈 수밖에. 마른세수를 하고 서재를 나서 네 방을 향해 느리게 걸었다.)
(그냥...... 문만 보고 올 것이다. 아마도.)
 
모두가 잠든 이 시간,
 
복도로 나가면 끝에 위치한 에바의 방이 불이 켜진 채 열려 있습니다.
 
안 자고 여태 뭘 하는 걸까요?
 
Richard Moore:...... 아마도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불빛이 새어나오는 문 앞으로 가 두어 번 노크한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Richard Moore:(묵묵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뭐, 이 정도 권리는 있어. 있으니 괜찮아. 끝없이 변명을 하면서.)
 
내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잡동사니들이 널브러진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이 늦은 밤까지 뭘 하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리는 하고 살라 잔소리를 해야 할 대목인가 싶습니다.
 
Richard Moore:(침대를 걷어차던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발을 딛을 수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볼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에바의 자필로 무어라 적힌 수첩입니다.
 
Richard Moore:(수첩을 들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긴다. 이래뵈도 읽는 건 자신 있다. 자신만.)
 
수첩을 살피면 빼곡하게 적힌 이름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전부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익숙합니다. 왜?
 
Richard Moore: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리처드는 이것이 신문에 적혀 있던 실종, 사망자들의 이름과 일치함을 깨닫습니다.
 
수첩을 더 넘기니 가장 마지막 부분에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익숙한 이름을 발견합니다.
 
Richard Moore:....... (대체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 거야. 이 사람들을 전부 손댔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켕기는 게 있는 건 맞잖아. 수첩을 제자리에 두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는다.)
 
응? 당신이 앉은 곳 발치에서 무언가 걸립니다.
 
탄피입니다.
 
리볼버의 탄피, 쓰지 않은 탄피가 굴러왔습니다.
 
근원지를 살피니 침대 밑입니다.
 
Richard Moore:뒤처리 정도는 제대로 하라고....... (침대 밑으로 팔을 쑥 집어넣는다.)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침대 밑에서 노트 한 권을 발견합니다.
 
Richard Moore:(세로로 들고 손에 탈탈 턴다.)
 
아무것도 나오는 건 없네요.
 
Richard Moore:흥....... (총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 페이지나 펼친다.)
 
노트를 펼쳐보면 6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거미 그림.
 
이건 분명 하퍼 린튼의 시체가 쥐고 있는 쪽지 속 그림과 동일한 것입니다.
 
옆에 적힌 글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Richard Moore:뭐라는 거야. (노트를 다시 침대 밑으로 넣고 침대에 기대 눈을 감는다. 언제 오나 보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당신이 일어나면, 에바가 방으로 들어오다 당신을 보고 놀란 낯을 합니다.
 
잠옷 차림의 에바는 어깨와 팔, 목이 전부 다 보이는 끈 형식의 잠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렇게 드러난 팔은…….
 
온갖 상처로 가득합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싶을 만큼 깊은 흉터들입니다.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눈치챈 에바가 빠르게 팔을 감싸 몸을 움츠렸지만 이미 늦었겠죠.
 
모든 걸 봐버린 뒤인데.
 
Richard Moore:...... 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겨우 한 마디를 뱉었다. 헛것을 본 게 아니다. 아무리 가리려 해도 보이지 않나. 그저 그 자리에 돌덩이마냥 선 채 끓기 시작한 눈길만 네게 주었다.)
 
Eva Kadan:....... (흠칫 몸을 떨더니 당혹감이 서린 얼굴로 네 눈을 피하지 않았다.) 왜, 여기에 있어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사용인들의 방에 멋대로 들어오시면 안 되잖아요.
 
Richard Moore:누가 안 된다고 했는데? (지금이 훈계나 할 때인가. 결국 네 손목을 붙들었다. 이제 네가 알아서 오거나, 다시 억지로 잡아끌거나. 둘 중 하나겠지.)
 
Eva Kadan:그러니까......! (제 손목이 붙들리자 어떻게든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팔을 세게 흔들었다.) 나가 주세요.......
 
Richard Moore:왜 내 걸 허락도 없이 망가뜨리는지. (알아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오는 대답은 없을 테니까. 손목을 거칠게 당겨 네 몸을 침대로 밀쳤다.)
 
Eva Kadan:읏...... 리처드! (속절없이 네 손에 이끌려,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풀썩 침대에 쓰러지듯 밀려난다. 간신히 몸을 반쯤 일으켜 제 한쪽 팔을 감싸며 인상을 찌푸린다.) ...... 아파요.
 
Richard Moore:나도 그래. (온 세상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아. 네 앞을 가로막고 서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와서 살인 사건의 진상 같은 걸 물을 가치가 있을까. 지금은 자신이 본 믿지 못할 상처가 머릿속을 징징 울렸다.) ...... 누가 그랬어.
 
Eva Kadan:(물론 당신이 화가 난 이유도 알고 있고, 오히려 조금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떨군다.) .......
 
Richard Moore:내가 그렇게 싫어? 단 하나도 말하지 않을 만큼? (알고 있다.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이 말이 나와 너 모두를 찔러 아프게 하기만 할 뿐이라는 걸. 그저 너무 슬퍼서, 뭘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누워.
 
Eva Kadan:그런 게 아니라....... (가까스로 바깥으로 새어나온 목소리는 그대로 허공에 흩어진다. 주춤거리며 저도 모르게 경계하는 듯한 눈으로 널 올려다본다.) ...... 왜요?
 
Richard Moore:억지로 하기 전에. 누워.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다. 그야 너로선 무섭겠지. 내가 무슨 짓을 할까 상상도 할 수 없겠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텐데도 말이야. 종일 입고 있던 셔츠 단추를 하나 풀자 숨통이 트였다. 아니, 트일 줄 알았건만 오히려 더 조여들었다.) 아니면 내가 밑으로 가?
 
Eva Kadan:아, 저, 리처드....... (조금은 겁을 먹은 듯한 얼굴로 네 이름을 불렀다. 알고 있다. 오랫동안 지켜봐 온 당신은, 여기서 싫다고 말해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꺾기 힘든 고집을 가진 남자다. 시선이 마구 방황하다 어쩔 수 없이 얌전히 몸을 뉘인다.) .......
 
Richard Moore:....... (눈에 보이는 상처가 전부일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영영 지워지지 않을 흉터라도 매일, 평생토록 만지다 보면 사라질지도 모르지. 천천히 네 몸 위로 올라타나 싶더니, 몸을 숙여 방금까지 붙들고 있던 손목 부근부터 시작해 상처마다 입을 맞추어 올라간다. 전부 내 것인데, 이제야 정말 내 것이 되었는데, 무엇 하나 알지 못함이 분했다.)
 
Eva Kadan:(네 얼굴이 가까워지자 반사적으로 몸이 크게 한 번 떨렸으나, 이내 입을 맞추는 감촉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귓가가 붉어진 채 팔을 빼내려 작게 움직인다.) 리처드, 왜 그런, ...... 그, 그만.......
 
Richard Moore:가만히...... 있어. (이미 늦었다고 해도 괜찮다. 지금부터라도 몇 겹이고 덧씌워 모두 잊어버릴 때까지. 그럴 수 없다면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 저항하는 움직임에 양쪽 손 모두 깍지를 껴 잡아 누르고 짙은 건지 얕은 건지 알 수 없는 입맞춤을 이어나간다. 한 번씩 입을 맞추는 데에도 시간이 꽤나 걸리고 말았다. 그조차 사무쳐 목덜미에 다다랐을 즈음 살갗을 깊게 물어 상처 위를 붉은 자국으로 덮는다.)
 
Eva Kadan:앗, 그만, 으응......! (입술을 꾹 깨물고 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에 네게서 벗어나려고 해도 양쪽 손이 단단히 잡힌 채라 밀어내지도 못 했다. 단순한 아픔보다는 아랫배가 저릿한 기묘한 감각에 가까웠다. 발끝을 빳빳하게 세우고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 화, 났어요?
 
Richard Moore:그래. (그것도 나 자신에게. 자국 위로 짧게 입을 맞추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당장이라도 몸의 힘이 빠질 것만 같으면서도, 동시에 뻣뻣해지는 이 느낌이 낯설다. 고개를 숙여 너와 이마를 맞대고 눈을 감았다.) 내가 모르는 게, 또 얼마나 많이 있을까.......
 
Eva Kadan:....... (긴장되어 있던 몸에 조금 힘이 빠져나가자 깍지낀 손도 한층 누그러진다. 이어지는 네 말에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 미안해요. 미안해요....... 당신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데, ...... 미안해요. 당신이랑 같이 있기 싫다고 말했던 건 거짓말이에요.......
 
Richard Moore:...... 나야말로, 그런 일을 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진정 사과해야 할 사람이 이 방에 있기나 할까? 입술이 닿지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한 채 숨을 삼킨다. 아이가 조르는 듯한 말만 줄줄이 흘러나왔다.) 상처, 하나도 안 받았으니까....... 그러니 더 이상 다치지 마. 내가 하는 게 아니면 싫어. 너만은 나 때문에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Eva Kadan: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그 두 시선을 번갈아보며 울 것 같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쥐어짜낸다. 그 이상의 약속은 할 수 없었다. 빈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서글프지만, 또렷한 초점을 네게 맞추고 포개어진 손등을 부드럽게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나직하게 이름을 불렀다.) ...... 있잖아요, 리처드.
 
Richard Moore:....... (제 탓이 아니면 누구의 탓인지 가늠할 수 없었을 뿐더러 가늠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일이 아니었더라면 몰래 웃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증명할 줄 넌들 알았을까.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다가도 아플까 싶어 금세 무르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 응.
 
Eva Kadan:....... (금방 말을 잇지 못 한 채 쓸쓸한, 혹은 불안하기도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바깥으로 꺼낼 수 있는 말들은 이미 한정되어 있을 게 분명함에도 쉽사리 침묵을 깨지 않다가, 눈을 느리게 깜빡인다.) ...... 마지막 순간, ...... 만약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그때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어요?
 
Richard Moore:당연하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어. 내어 주지도 않겠어....... (오래 전부터 평생 떼어놓지 않으리라 몇 번을 다짐했는지. 한쪽 손만 떨어뜨려 네 뺨을 천천히 더듬어 만진다. ...... 끝이라. 그 무엇이 끝을 고하러 와도 그 앞을 가로막게 되겠지. 굳이 그 말을 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뭘 바라든 전부 네 손에 쥐어 줄게.
 
Eva Kadan:(빈 손으로 그 손을 겹쳐 잡고서, 응석 부리듯 눈을 감으며 제 뺨을 느리게 부볐다.) 네, ...... 그거면 됐어요. 그거면 충분해요....... (어쩐지 조금은 안심한 얼굴이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그 손바닥 위로 잘게 입을 맞추고 시선만을 네게로 다시 돌렸다.) ...... 그때까지만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때까지만 화내지 말아 주세요.
 
Richard Moore:딱 끊어 약속할 수는 없어. (네가 얽혀 있다면 어느 방향으로든 쉽게 흥분하고 만다. 자명한 사실이다. 마주한 눈이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음에 안도하며 대답하듯 네 뺨에 입술을 누른다.)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용서한다는 걸 알면서.
 
Eva Kadan:...... 방금 전까지 무서운 얼굴 하고 있었으면서....... (그제서야 옅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 제 낯은 여전히 발그레 물들어 있었다. 목소리를 낮추어 농담처럼 가볍게 말하고서는 떨어지는 입술에 먼저 입 맞추더니, 뒤늦게 머뭇머뭇 눈치를 살핀다.) ...... 이렇게 마음대로 굴어도?
 
Richard Moore:그건. (변명을 생각하다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이 녀석에겐 다 간파당하고 말 것이다. 금세 깜찍한 짓을 벌이고 있자 대답 대신 그대로 네 입술을 삼켜 깨물었다. 이렇게 눈치 볼 필요 없는 삶이라면 좋았을 텐데. 어느새 눈을 감고서 느릿느릿 입을 맞추며 코 끝을 간지럽히듯 부볐다.)
 
Eva Kadan:(허락을 대신하는 입맞춤이 이어져 오자 만족스레 눈을 감았다. 여전히 널 따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네 입술을 부드럽게 물었다 놓더니, 곧 쓴웃음을 지으며 가까이에서 시선을 마주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일찍...... 욕심이라도 내볼걸.
 
Richard Moore:둘 다 바보였던 거지. (특히 자신이 그랬음을 안다. 마치 한참 울고 있던 사람에게 하듯 눈가를 몇 번이고 훔쳐 어루만지며 한 번 더 짧게 입을 맞춘다.) ...... 아주 늦지 않았다고 해 줘.
 
Eva Kadan:....... (쉽게 그렇다는 대답을 낼 수조차 없었다. 고요하게 손길을 받아들이며 숨을 내쉬다, 손을 뻗어 네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네, 아주 늦지는 않았을 거예요. 덕분에 이제 욕심은 아무것도 없어졌으니까. ...... 그래도 이런 엉망인 몸을 처음으로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 후후.
 
Richard Moore:안 돼. 더 욕심부리는 게 좋아. 그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 같아서. 이상한 일이다. 드디어 품에 안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불안해지다니.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는 팔의 상처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야. 충분히 예뻐. 사랑스럽고....... 아무리 구멍이 나고 틈이 생겨도 내가 전부 메울게. 그러니까.......
 
Eva Kadan:리처드....... (애달픈, 혹은 안타까운 얼굴을 하면서도 달래듯 어루만지는 손길을 계속했다. 곧 다른 손도 들어올려 뒷목을 감싸더니,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네 몸을 약하게 끌어안았다.) ...... 괜찮아요, 리처드. 괜찮아요....... ...... 안아 주세요. 나는 지금 여기, 당신 앞에 있는걸.
 
Richard Moore:하나도, ...... 괜찮지 않잖아. (화내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들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울컥할 뻔한 감정을 애써 가라앉혔다. 제게로 향하는 부드러운 손길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는데 이 슬픈 얼굴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존재를 확인하듯 네 몸을 꽉 끌어안고 작게 중얼거렸다.) 놓기 싫어.......
 
Eva Kadan:(네 고개 너머로 얼굴을 숨기며,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까 어떻게든 눈물을 삼킨다. 부드럽게 그 등을 쓸어내리며 맞닿은 이 온기와 향기를 몸속 깊이 기억해 두려 세게 마주안았다.) ...... 오늘 밤은 당신 곁에 있을게요. 그러니까, ...... 괜찮아요.
 
Richard Moore:다시는 도망치지 마. ...... 혼자 남은 네가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져. (자신은 그리 신경쓰이지 않았다. 다시 네 손목을 붙드는 순간 사라질 외로움에 불과하다. 얇은 천에 둘러싸인 등을 쓸어내리며 머리칼과 뺨을 가리지 않고 끝없이 입을 맞춘다. 그리고 후회는 반복된다.) ...... 한심하군. 진작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더라면 이런 걱정을 할 일도 없었을 텐데.
 
Eva Kadan:....... (그저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 입맞춤이 간지럽다는 듯 어깨를 움츠렸다. 고개를 살짝 틀어 똑같이 그 뺨과 턱, 입가에 입술을 대었다.) ...... 하지만 먼저 밀어내 버린 건 저였잖아요?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제 대답은 정해져 있을 테고, 이런 밤은 찾아오지 못했을 거예요....... 이런 걸 보고 운명이라 이름을 붙이는 거겠죠. 얄궂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까.......
 
Richard Moore:네겐 없는 강제가 내겐 있지. 에바....... 너를 위해서였다 생각하면서도 늘 마음에 걸렸어. ...... 이런 게 운명이라면 죄다 꺾어 버릴 거야. 가지가 다 꺾여 몸통만 남더라도 난 너만 안을 수 있으면 돼. (알잖아.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입술을 짧게 포갠다. 몇 번이나 입을 맞추어도 긴 세월 동안 쌓인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네가 신기루처럼 느껴져서 그럴지도.)
 
Eva Kadan:(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떨어지고서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안심시키려는 것도, 괜찮은 척도 아니었다. 체념의 끝에서 돌아오는 네 말을 그렇게나 믿고 싶어서였다.) ...... 오늘 밤만은 우리, 운명 같은 거 생각하지 말아요. 오늘 밤만은 운명을 꺾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사랑해 주세요. 저는 당신의 존재 하나면 충분해요.
 
Richard Moore:......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사랑할게. (그 말 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같은 곳에 서 있다. 같은 곳을,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의 끝이 미세하게 엇나가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두렵다. 말을 하면 할수록 두려워진다. 이 미소가 간절했음을 절절히 느끼곤 고개를 숙여 길게 숨을 뱉었다.) .......
 
Eva Kadan:....... (속눈썹 끝이 잘게 떨린다. 이제 충분하다. 이걸로 전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듣고서 느낀 이 행복감과 똑같은 무게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다 천천히 손에 힘을 빼낸다.) 고마워요....... 전부 다 괜찮아질 거예요. 정말로....... 네? 그러니 이제 슬픈 얼굴은 금지예요, 리처드.
 
Richard Moore:좀, 할 수 있는 걸 시키든가 해....... (괜찮지 않다면 괜찮게 만들어야 한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어 몸을 틀어 옆으로 누웠다. 몸이 떨어지는 잠깐이 싫어서, 네 허리를 당겨 품에 재차 안고 이마를 맞댄다. 죽겠군. 억지로 웃으며 평소처럼 삐죽거렸다.) 그래도 턱시도 차림의 남편을 두고 혼자 시장이나 보러 간 건 너무했어.
 
Eva Kadan:(그 품에 안겨 다시금 웃음을 작게 터뜨린다. 이 모든 것들이 거짓이어도, 꿈이어도 상관없다. 행복하다는 듯 눈을 접어 웃으며, 고개를 들어 턱 끝에 쪽 입을 맞추고 몸을 마주안았다.) 그게 제 일인데 어떻게 해요. 본분에 충실한 거죠. 보고 싶었어요?
 
Richard Moore:...... 응. 보고 싶었어.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놓아주겠어. 어리광을 부리듯 쪽쪽 입을 맞추고 흐트러진 잔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내가 정한 아내는 한 명 밖에 없으니까 앞으론 그쪽에 충실해지라고.
 
Eva Kadan:...... 후후, 정말로 그렇다면 좋을 텐데....... (장난스레 네 팔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린다. 자조적인 웃음을 띤 채 꿈을 꾸는 것처럼 흐르듯이 말을 이었다.) 어릴 때 한 번쯤은 상상했을지도요. 당신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어서, 예쁜 드레스도 입고, 모두에게 축복받는 자리에서 당신 곁을 차지할 수 있는 그런 상상....... 이 나이가 되어서는 감히 상상조차 않았지만 말이에요.
 
Richard Moore:왜 포기하는데? 이렇게 아름다워졌으니 그보다 아름다운 드레스는 만들 수 없겠지만, 가장 아름다운 걸 입혀 줄게. 그 누구든 축복할 수밖에 없을 거야. (부정하는 사람은 전부 혀를 뽑을 테니. 나이가 부질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너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둔해도 너무 둔하다. 자기 자리를 이렇게 오래 비우는 사람이 어디 있냔 말이다.) 아니면 앞으로도 내가 혼자 늙어가게 둘 셈인가?
 
Eva Kadan:그, 그런 게 아니라.......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움에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괜히 작아진 목소리로 엄한 옷깃만 만지작거릴 뿐이다.) 이, 이런 상상만으로도 주제넘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단 말이에요....... 저는 당신이랑 동등할 위치도 아니고, 한낱 사용인인 제가 과분하게....... ...... 그, 그래도, 봐요, 당신의 옆에 있는다는 것 자체는 변함없으니까요. ...... 그걸로도 행복했어요. 저는.
 
Richard Moore:(마치 그 행복이 금방 끝날 거란 말투에 얼굴을 찌푸렸다. 여태 쓰다듬던 머리부터 시작해 얼굴과 등, 다리까지 느리게 훑고 내려가며 속삭였다.)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게 하겠다 말하고 있잖아. 혼자 올라오지 않아도 돼. 내가 내려가서 직접 데리고 올 거야. 그마저도 싫으면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가자. (이만큼 일을 그르쳤으니 누구도 발목을 잡을 수 없을 거다. 그럼에도 만용을 부리는 이가 나타나면 혀 외의 다른 부분도 하나하나 부러뜨려 복종하게 만들어야지.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었다.)
 
Eva Kadan:앗, ....... (다리에 생소한 감촉이 닿자 흠칫 발끝이 반응했다. 뒷말이 이어질수록 가슴이 작게 두근거린다. 상상만으로, 혹여나 그 말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만으로 금방 이렇게 꿈을 품게 돼 버린다. 가능성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게 돼 버린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조심스레 널 다시 올려다보며 하나하나 확인받듯 되물었다.) ...... 정말? 당신은 그래도...... 좋아요? 지금같은 생활을 전부 버려야 한대도 좋아?
 
Richard Moore:인형놀이는 오래 전에 질렸어. 전부 내팽개치고 도망가서 둘이 살자. (얄팍한 옷자락을 만지는 손길은 서투르지만, 그렇다고 애정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깊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네 마음까지 알게 된 이상 퇴로 같은 건 선택지에서 사라졌다.) 매일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서로를 위해 일도 하고, 밤엔 이렇게 안고서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아이는 몇 명이 좋을까.......
 
Eva Kadan:.......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여겼던 동화 같은 꿈속에 점점 더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그럴수록 울 것만 같은 얼굴이 되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이 아프다 못해 애타는 감정이 터질 것만 같다. 짧은 숨을 한 번 뱉어내고 다시금 네게 입 맞추더니, 이내 팔을 꼭 붙잡고 어설프게나마 잇새를 훑었다. 혀를 몇 번 할짝이고서야 떨어지고는 여전히 붉어진 눈시울로 네 눈을 마주한다.) ...... 리처드....... ...... 좋아해요.......
 
Richard Moore:...... 바보네. 사랑한다고 해야지. (먼저 운명 같은 건 생각하지 말자고 했으면서. 잠깐 사이에 젖은 제 입술을 손끝으로 더듬다 다시 입술을 맞댄다. 비교적 능숙하게 네 입술 사이로 파고들어 진득히 뒤엉켰다. 손을 더 내려 오금을 잡아 제 몸 위로 당겨 얹으며 네 혀 밑을 집요하게 건드리니 질척한 소리가 끝도 없이 새어나온다. 그러다 잠시 숨을 삼키며 낮게 물었다.) 생각을 못 하게 만들면 울지도 않을까?
 
Eva Kadan:(얼굴이 다시 가까워지자 숨을 작게 들이마시며 두 눈을 꾹 감았다. 혀가 뒤섞이는 동안 어쩔 줄 모르는 손끝은 빳빳히 굳은 채 허공을 맴돌았다. 입술이 떨어지고 나서야 또 저도 모르게 멈추고 있던 숨을 쌕쌕 몰아쉰다.) 리처드....... (그 질문이 무색하게끔 네 어깨를 감싸안고서, 고개를 뻗어 네 입술을 조바심 내듯 오물거렸다.) ...... 더.......
 
Richard Moore:.......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서 보채는 널 보고 있자니 절로 표정이 무너진다. 새로이 후회가 밀려온다. 진작 이렇게 안으며 사랑한다고 할 걸. 일부러 입술을 떨어뜨렸다 그 순간의 네 표정을 만끽하고서 네 입술을 삼켰다. 입술만 살살 물어 빨아당겨 애를 태우며 가느다란 허리 위를 더듬었다.)
 
Eva Kadan:(네 몸이 맞닿는 모든 부위가 뜨겁게 느껴진다.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처럼 가슴께는 마구 간질거리기만 한다. 스스로가 낯설기까지 할 만큼 부끄러움이 커졌지만 본능이 앞선다.) 으응, 리처드, 얼른....... (네게 조르듯이 혀끝을 맞닿으려 애쓰며 자연스레 몸을 더 밀착시켰다.)
 
Richard Moore:(여태 어떻게 아무 일이 없었나 과거가 의심스러울 만큼 강렬한 감정이 머릿속을 짓눌렀다. 허리를 건드리던 손은 금세 갈빗대를 훑고 올라와 한쪽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정말 바보네. 온몸을 꼭 밀착한 상태로 널 따라하듯 혀만 내밀어 조금씩 스치다 점차 야릇하리만치 끈적하게 맞댄다.)
 
Eva Kadan:핫, 잠, 잠깐, 리처드, ....... (손끝이 움찔 떨린다. 이미 얼굴은 빨갛다 못해 자신도 느껴질 만큼 잔뜩 열이 올랐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은지 머릿속은 점점 하얗게 되어가는데, 그러면서도 눈을 감고 혀를 뒤섞기 바빴다. 벌써부터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쉬며 뒤늦게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모, 르겠어요....... 멋대로라는 건 알지만, 해도, 해도 부족하니까...... 으응, 기분이 이상해서.......
 
Richard Moore:네가 원한 거잖아. (이 순간만큼은, 정말로 세상에서 유리된 게 아닐까. 손끝에 닿은 살덩이가 머리로 인지하기 힘들 만큼 말랑말랑하다. 본능적으로 가슴을 주무르며 끈적한 입맞춤을 이어나가다 너 못지 않게 흐트러진 낯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문제 없어. 좋을 대로 해. 나도 이제 전부 네 거니까, 온몸에 제대로 새겨 둬야지.
 
Eva Kadan:하아, 리처드....... (이런 짓을 해도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자연스레 욕심이 나는 건 멈출 수 없었다. 그저 네 손을 밀어내지 않고 몸을 꽉 끌어안을 뿐이다. 조급한 마음에 입술을 떼어내고 나서도 네 목덜미에 잘게 입을 맞춘다. 이런 걸 하면 당신이 싫어할까 생각하면서도, 제 가슴 위에 있던 손목을 붙잡아 천천히 맨살이 닿는 잠옷 안쪽으로 옮긴다.) ...... 그럼 오늘 밤에는, ...... 더 이상 쓸쓸하지 않게 해 주세요.......
 
Richard Moore:...... 그러지. (참으로 이상한 허니문이다. 그전에 허니문이라 해도 되나 싶지만. 제 목덜미에 달라붙어 애교를 부리는 네 머리를 쓰다듬다가, 부드러운 살갗에 손이 닿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막상 이렇게 닿으니 좀처럼 움직이질 못 하고 멈춰 있다가,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손이 닿는 대로 부드러운 맨살을 훑었다.) 너도 만지고 싶은 만큼 만져도 돼. 같이, ...... 나락의 밑바닥까지 떨어지자.
 
 
공개용 백업이라 수위 역극은 비공개 처리합니다... ^^ 🔞🔞🔞
 
 
Richard Moore:…… 마찬가지야. 좋아해. 아주 많이. (억지로 누르고 있던 다리를 놓아 편히 두도록 두고 네 몸을 고쳐 안는다. 눈물로 길이 트인 자리를 핥고 입을 맞추어 닦아주며 등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떨어지기 싫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붙들고 싶다. 어떻게 보면 유일하게 제 의지로, 처음으로 잡은 것이 아닌가. 입술을 깨물다 뒤늦게 네 몸 위로 기대 늘어진다.) 아직도 쓸쓸한가?
 
Eva Kadan:....... (숨을 고르며 다리가 자유로워지자 힘이 빠져나간 몸을 축 늘어뜨린다. 손을 들어 네 몸을 조금씩 쓸어내려 주며 붉어진 얼굴을 도리도리 저었다.) ...... 으으응. 안 쓸쓸해요....... 잔뜩 사랑받았으니까....... ...... 저, 오늘 밤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Richard Moore:내일 밤도, 모레도…… 잊지 못할 밤으로 만들어 줄게. 잔뜩 사랑해 줄게. (지금 명확히 약속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이다. 그러려면 혐의부터 벗겨야겠지. 이것저것 몰려드는 생각을 애써 내치며 그저 지금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품으려 네 몸을 더 꼭 안는다.) 오늘은, 안고 자자. …… 이대로.
 
Eva Kadan:....... (네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대답 대신 네 몸을 마주 끌어안을 뿐이었다. 머리를 톡 기대어 아직 따뜻하게 달아올라 있는 몸을 만지작거린다. 곧 얌전히 눈을 감고서 네 몸 위에 있는 제 손을 규칙적으로 두드려 준다.) ...... 응. 이대로 잠에 들게요....... ...... 잘 자요, 리처드.
 
Richard Moore:잘 자, 에바. (아직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부끄럽다. 대신 이마에 입술을 꾹 누르고 부비적대다 옆으로 돌아눕는다. 아무리 이대로 자자고 했지만 이랬다간 너무 무거울 테니까. 건성건성 이불을 당겨 덮고서 네 몸을 품에 가둔 채 눈을 감는다.)
 
결혼식 다음날의 동이 텄습니다.
 
당신이 눈을 떴을 때는, 에바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문 바깥으론 사용인들이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는 듯한 발걸음이 들립니다.
 
Richard Moore:…… 으음. (묘한 한기에 눈을 뜨고서 한참 멍하니 있다 벌떡 일어난다. 얼렁뚱땅 옷에 몸을 끼워 맞추듯 입으며 생각한다. 지금 몇 시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워?)
 
아침부터 집안이 분주하면서도 침잠한 이유는 어제의 살인 사건 때문일까 싶네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린튼 가의 사람들이 오기로 했던 게 기억납니다.
 
두 집안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함이겠죠.
 
Richard Moore:(이 방에서 나가도 되나. 정신 놓고 자는 게 아니었는데. 뒤늦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자 머리를 마구 흩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있다가 틈을 봐서 나간다.)
 
몰래 바깥으로 나가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1층으로 내려갈까요?
 
Richard Moore:(1층 말고 다른 선택지도 있나? 일단 주변을 둘러본다.)
 
돌아다니는 사용인들 말고는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Richard Moore:얜 어딜 간 거야. (괜히 투덜거리며 1층으로 털레털레 내려간다.)
 
리처드가 1층으로 내려가면, 린튼 가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이 보입니다.
 
가족들의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좋을 수 있을 리가요. 가문의 위상을 위해 잡은 정략 결혼인데 하필이면 이런 식으로…….
 
물론 자식의 혼사가 망쳐졌다는 사실이 더해 더더욱 초상난 분위기 같습니다.
 
린튼 가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리처드는 부엌, 휴게실, 뒷마당 순으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Richard Moore:(난 어제 허니문을 보냈으니 그건 별로 상관 없다. 그냥 걱정되는 놈이 있어서 그렇지. 적당히 가족들의 뒷모습을 흘기다 부엌으로 들어간다.)
 
부엌은 여느 때처럼 하인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음에도 산 자들은 음식을 먹고 살아가기에 맛있는 냄새가 만연합니다.
 
그들은 당신이 온 줄도 모르고 저들끼리 무어라 떠들고 있습니다.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이 속닥속닥 말이죠.
 
Richard Moore:(슬쩍, 스을쩍 귀를 기울여 본다. 뭔데? 왜 나 빼고 그러는데?)
 
Richard Moore: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사용인A: 린튼 가 사람들이 가문 구성원도 공개하지 않는댔잖아?
그런데 소문에 따르면 이번에 죽은 하퍼 린튼 씨가 마지막 후계자였다더라.
 
사용인B: 그럼 뭐야? 그 부부만 남은 거야?
 
사용인A: 글쎄, 아직 일가 친척이 몇 살아있긴 하다는데 전부 죽으면 대가 끊기는 거겠지…….
 
분주한 요리 소리에 묻혀 리처드가 들은 대화는 이 정도입니다.
 
Richard Moore:그렇게 떠들어도 변하는 건 없을 텐데? (사용인들 사이로 불쑥 끼어들며 불쾌한 기색을 숨김없이 내비친다. 그놈의 핏줄이 뭐라고.) 아무나 물 좀 주게.
 
사용인A: 헉! 죄송합니다. 도련님이 계신지 모르고 그만....... (곤란한 얼굴로 연신 허리를 숙이더니 빠른 걸음으로 물을 떠다준다.)
 
Richard Moore:(일단 물컵을 비우고 사용인에게 돌려주며 친한 척 두 사람의 손목을 잡아끌고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변하는 건 나거든. 알잖나. 뭐 더 아는 거 있어?
 
사용인A: 그, 그게....... 저도 들은 거라 잘은 모르겠지만....... 린튼 가에서 근래에 실종자들이 늘었다고도 들었습니다. 제가 들은 건 이게 끝이에요.
 
Richard Moore:그게 전부인가? 흠……. (가만히 생각하다 사용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오늘 일은 못 본 셈 치지. 하지만 숨기는 게 있다면 각오해야 할 걸세.
 
사용인A: 네.......! 이게 전부입니다. 정말로요. 그럼 이만....... 감사합니다. (다시 허리를 숙이며 빠르게 부엌으로 나가 네 앞에서 사라진다.)
 
Richard Moore:(신문에 뭐라 써져 있었더라. 벌써 희미해지기 시작한 기억을 되짚으며 부엌에 더 볼 건 없는지 확인한다.)
 
특별한 점은 없어 보입니다.
 
Richard Moore:(특별히 맛있어 보이는 것도?)
 
행운 판정 ㄱㄱ
 
Richard Moore:
기준치: 39/19/7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ㅋㅋ
 
아직 준비가 한창인가 봐요,,, 눈앞에 보이는 건 빵 정도가 전부인 것 같습니다.
 
Richard Moore:배고픈데. (빵을 하나 입에 쑤셔넣고 우물거리며 부엌을 나가 휴게실로 걸음을 옮긴다.)
 
휴게실은 고요합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만 되어 있을 뿐입니다.
 
탁자와 벽난로를 살필 수 있습니다.
 
Richard Moore:(탁자를 먼저 살핀다.)
 
탁자를 보면 손님 수에 맞게 놓인 찻잔이 있습니다.
 
손님용은 두 개.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Richard Moore:(신문을 손끝으로 질질 끌고 와서 훌렁훌렁 넘긴다.)
 
오늘자 신문이네요.
 
1면에 하퍼 린튼 살인 사건이 보도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죠.
 
'용의자가 몇 추려졌으나 모두 알리바이가 있어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드는 중이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머릿속을 스치는 이름입니다. 에바 카단.
 
Richard Moore:……. (침이나 뱉고 싶군. 신문을 돌돌 말아 손에 쥐고 어깨를 톡톡 두들기며 벽난로로 간다.)
 
벽난로 안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방금 막 장작을 넣었는지 타닥타닥, 잘도 탑니다.
 
…... 응? 문득 벽난로 안쪽에 타다 만 종잇조각이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Richard Moore:뭐야. (불쏘시개가 있나 난로 옆을 본다. 맨손을 넣었다가 신선한 손가락 구이가 될까봐 무섭다.)
 
난로 옆에 있는 것 같습니다.
 
Richard Moore:(좋아. 불쏘시개를 난로 안에 쑤셔넣어 종잇조각을 건져 본다.)
 
종잇조각을 꺼내보니, 기묘한 글자들이 일부 적혀있습니다.
 
<아이호트의 거래>, <숙주에 관하여>.
 
…... 이런 게 원래 있었던가?
 
SANc (0/1)
 
Richard Moore:
SAN Roll
기준치: 61/30/12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종이의 내용은 몇 가지 띄엄띄엄 적힌 단어만 겨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염을 통한… 지배…….
 
…그리고 그 아래에 그려진 소름끼치는 거미 그림…….
 
Richard Moore:? (어제 본 거미 그림과 같은지 다시 한 번 잘 살핀다.)
 
비슷해 보이는 그림입니다.
 
Richard Moore:(그냥 소설인지 아니면 누가 정말 전염됐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머리를 북북 긁으며 종이를 주머니에 찔러 넣은 뒤 마지막으로 뒷마당에 나간다.)
 
뒷마당으로 나가려던 리처드는 카펫 아래에 삐죽 튀어나온 종이가 눈에 띕니다.
 
Richard Moore:?? (이건 또 뭐지. 혹여 찢어질까 카펫 바깥쪽에 쭈그려 앉아 종이를 꺼낸다.)
 
어디 책에서 뜯어온 듯한 종이 한 장입니다.
 
암호처럼 무어라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살펴볼까요?
 
Richard Moore:(열심히 살펴본다!)
 
전부 지역 이름입니다.
 
△△에서 ○○○○로 이동. ○○○○에서 □□□로 이동. 최종적으로 이곳에 머무름.
 
가장 마지막에 적힌 글자는 명백한 암호라, 확실하게 읽기 어렵습니다.
 
암호를 해독하고자 한다면 교육 판정이 필요합니다.
 
Richard Moore:
교육
기준치: 65/32/13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아.
 
리처드는 암것도 모르겟습니다,,,
 
Richard Moore:아무것도 모르겠네……. 기합으로 봐도 모르겠네…….
 
하지만, 리처드는 한 가지만은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건 에바의 필체라는 것쯤은요. 익숙한 필체입니다.
 
도대체 이걸 왜 적어둔 거죠? 뭘 위해? 그들이 지내는 지역은 왜 알아내는 거고?
 
Richard Moore:??? (그들이 누군데? 린튼 가? 일단 에바를 찾아야겠다. 뒷마당으로…… 다시 간다.)
 
뒷마당으로 나가자......
 
마당 정원을 가꾸고 있는 에바의 모습이 보입니다.
 
Richard Moore:(소리를 쳐 부르려다가 그럴 때가 아니지 싶어 조용히 다가가 허리를 쿡 찌른다.)
 
Eva Kadan:(팟 고개를 들어올려 네 얼굴을 확인하자 크게 놀란 기색은 없었다. 주변을 슬쩍 돌아보고 나서야 옅은 미소를 띤 채 네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 리처드.
 
Richard Moore:잘 잤냐. 몸은 좀 어때? (일단 가장 걱정하던 것부터 묻고서 안색을 살핀다.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는데 말이지.)
 
Eva Kadan:저는 괜찮아요. 당신은 어때요? 잘 주무셨나요? (웃으며 머리카락을 넘겨내는 귓가가 붉었다.) 오늘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아침부터 먼저 자리를 비워 버렸어요.
 
Richard Moore:잠은 잘 잤는데 일어나니까 추워서 별로였어. (괜히 투정을 부리곤 정말 괜찮은 것 같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궁금한 게 좀 있는데.
 
Eva Kadan:....... (그 말에 네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뒤에 나올 말을 예상한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곧 다시 고개를 돌리곤 가꾸고 있던 정원 앞에 쭈그려 앉아, 꽃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른 말을 했다.) 이 꽃, 엄청 예쁘죠. 무슨 꽃인지 알아요? 에리카라는 꽃이에요.
 
Richard Moore:……. (말하기 싫은가. 네 옆에 나란히 앉아 꽃을 멍하니 바라본다. 누가 봐도 이 녀석이 수상하다. 믿어 달라 그렇게 말을 했지만 어떤 것을, 어떻게 믿어야 할 지는 제게 달렸다. 손을 뻗어 꽃 대신 네 손등을 어루만진다.) 꽃말이 뭔데?
 
Eva Kadan:...... 고독. (나지막하게 한 단어만을 뱉고는 꽃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양손으로 네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 히스 꽃이라고도 불린대요. 자식 분을 잃었으니, 손님들이 오시기 전에 이 꽃을 장식해 둘까 했어요.
 
Richard Moore:…… 좀 잔인하지 않아? (실례일지도 모르고. 네 작은 목소리가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왜 하필. 정말 그들을 위해서야? 잡히지 않은 손으로 네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냥 오늘은 그 사람들 근처에 가지 마. 준비도 하지 말고. 너까지 고생할 필요 없어.
 
Eva Kadan:...... 그런가요? 이걸 꽃다발로 만들면 예쁠 것 같거든요. 그동안 정성 들여 가꾸기도 했고....... (크게 주눅드는 기색은 없었다. 히스 꽃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곧 네 손을 천천히 놓더니 익숙하게 꽃의 줄기 부근을 하나씩 따기 시작한다.) 괜찮아요. 다른 사용인도 아니고 제가 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도련님은 걱정도 많으시네요. 후후.......
 
평이한 어조인 에바의 모든 말들은 어쩐지 이런 상황에서 묘하게 기이한 형태입니다.
 
Richard Moore:어제 경찰 조사도 받았으니 아무도 뭐라고 안 할 거야. (정성 들여 가꾼 꽃을 굳이 따는 이유도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아예 양손으로 네 어깨를 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묻기 전에 할 말이 있지 않나?
 
Eva Kadan:....... (네가 어깨를 붙잡으면 조금 놀란 얼굴이었지만 금세 평온한 시선으로 돌아온다. 부드럽게 어깨를 잡은 손을 밀어내며 고개를 기울인다.) ...... 잘 모르겠어요. 리처드,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잖아요. 네? 이러다 손님들이 도착하시겠어요. 여긴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도 쉽고.......
 
Richard Moore:계속 모르는 척만 할 거야? 언제까지 나만 바보로 둘래? (지금이 아니면 대체 언제 입을 열겠다는 건지. 간밤엔 그런 말을 했으면서, 왜 다시 아침이 돌아오니 넘어야 할 산이 남은 사람처럼 구는 거야. 화를 내고 싶지 않아 제 입술만 짓씹다 먼저 일어난다.) 말할 생각이 없으면 티라도 내지 말던가. …… 꽃다발은 네가 가져. 네 말대로 예쁘니까.
 
Eva Kadan:....... (네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다시 꽃을 따는 손길을 계속했다. 가슴 언저리가 아픈 기분이었지만 네게서 표정을 숨기려 가만히 모르는 척할 뿐이다. 침묵을 가만히 유지하다 네 이름을 부른다.) ...... 리처드.
 
Richard Moore:(드디어 끝이 보이나 했더니 빙 한 바퀴 돌아 시작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계속 괴롭힘만 당하던 머리를 또 괴롭히며 먼 곳을 바라보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왜 불러.
 
Eva Kadan:(한 움큼의 꽃을 품에 안고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얼굴을 바라보는 제 낯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
 
에바는 문득 당신을 응시합니다. 말없이 한참이나.
 
그 눈에 깊게 박힌 애정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맹목.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Eva Kadan:(그대로 네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침대 밑에 여분의 권총이 있어요.
제가, 제가......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걸 들고 절 만나러 와 주세요.
 
Richard Moore:무슨……. (순간 네가 한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으려다가,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 물어야 할 건 단 한 가지다.) 어디로?
 
Eva Kadan:...... (네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동안 네 손을 한 번 쥐며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 그리고 꼭....... 방아쇠를 당겨 주세요.
 
뭘 의미하는 말일까요? 물어볼 새도 없이 에바는 그대로 꽃을 안고 자리를 떠납니다.
 
Richard Moore:……. (영문을 모르겠군. 멀어지는 네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신문을 챙겨 걸음을 옮긴다. 권총을 미리 챙겨 두는 게 좋을지도. 일단 손님이 도착했는지부터 확인해야겠다.)
 
마침 바깥에서부터 손님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을 찾던 것으로 보이는 사용인 한 명이 다가옵니다.
 
사용인A: 아, 도련님. 방금 린튼 가 분들께서 찾아오신 참입니다. 주인님께서 먼저 응대할 예정이라고 하시니, 잠깐만 휴게실에서 쉬고 계셔 주시겠습니까?
 
Richard Moore:그러지. (늦게 좀 오지, 이럴 때만 안 좋은 일이 겹친다니까. 네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찡그린 표정으로 대꾸하고 휴게실로 간다. 쉬어야 할 것 같긴 하네.)
 
리처드는 휴게실에서 잠깐 한숨을 돌립니다.
 
그렇게 쉬고 있던 도중에,
 
탕.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명백한 총소리입니다. 근원지는 현관인 것 같습니다.
 
Richard Moore:……! (늘어져 있다가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뛰어간다. 설마. 설마?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뜀박질이 빨라진다.)
 
현관으로 향하면 그곳에는,
 
피가 묻은 히스 꽃다발을 늘어뜨린 에바가 서 있습니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 그곳을 가득 채운 붉은색 피.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악에 물든 표정으로 에바를 바라봅니다.
 
에바의 손을 보면, 그렇습니다. 리볼버. 리볼버가 쥐여져 있고, 그리고…….
 
바닥에는 린튼 부부의 시체가 쓰러진 상태입니다.
 
리처드, SanC (1/1d2)
 
Richard Moore: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가 튄 고개를 들고서 에바가 당신을 돌아봅니다.
 
어쩐지 이 현상이 익숙한 얼굴. 담담한 낯에는 슬픔이 번져 있습니다.
 
가쁜 숨을 몇 번 들이내쉬던 그가 소리 없이 발음한 건 당신의 이름입니다.
 
Eva Kadan:...... 리처드.......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 중얼거림.
 
누군가 외칩니다. 날카로운 비명입니다.
 
살인자! 살인자다!
 
사용인들이 뛰쳐나가 에바를 제압하고 총을 뺏어듭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분주한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에바는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이 순순히 무릎이 꿇렸습니다.
 
그 상태에서도 오로지 당신만을 바라보는 그 눈은 간절함이, 절박함이 서려 있습니다.
 
추락한 꽃다발이 무참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의해 짓밟힙니다.
 
망가지고 뭉개진 꽃이 마치 지금의 에바의 모습 같습니다.
 
Richard Moore:…… 에바.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에 정신이 팔릴 여유조차 없었다. 놔, 놓으라고. 뭔데 너희가 저 녀석을 붙잡아. 목구멍까지 꾹꾹 차오르는 말들을 참으며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 걸음을 옮긴다. 이래서였나. 이래서였냐고.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밀쳤다.)
 
이윽고 고개를 떨군 에바의 어깨 너머 경찰이 들이닥칩니다.
 
에바를 구속하고 끌고 나가는 과정이 슬로우 모션처럼 펼쳐집니다…….
 
침대 밑에 여분의 권총이 있어요.
 
제가......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걸 들고 절 만나러 와 주세요.
 
에바의 말이 떠오릅니다.
 
마침내 연행되는 에바가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납니다. 충격은 여전히 당신을 강타한 채 여파를 남겼습니다.
 
......
 
어떻게 할까요, 리처드.
 
지금부터 당신의 선택이 모든 걸 결정할 텐데.
 
Richard Moore:……. (아무런 말도 없이 짓밟힌 꽃줄기를 한 손에 그러모아 들고 네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올라가면, 굳게 닫혀 있던 에바의 방은 너무나도 손쉽게 열립니다.
 
Richard Moore:(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저 침대 위에 함께 누워 있었는데. 신음조차 뱉기 싫어져 입술이 터지도록 깨문 채 침대 밑으로 손을 넣는다.)
 
침대 밑을 살피면,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여분의 권총과… 상자를 발견합니다.
 
상자는 구석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손이 닿지 않았더라면 발견도 하지 못할 정도로.
 
Richard Moore:(권총의 모델을 확인하고 손에 든 채 바닥에 주저앉아 상자를 연다.)
 
에바가 들고 있던 리볼버와 같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신이 상자를 열려고 하자, 비밀번호가 걸려 있네요.
 
다이얼을 돌려 입력하는 방식입니다.
 
단 하나의 숫자면 되는 듯한데. 뭐라고 입력해야 할까요?
 
Richard Moore:? (하나씩 다 넣어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이얼을 만지작거리다 6에 맞춘다.)
 
6을 돌리면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에 돌돌 말린 양피지가 놓여 있습니다.
 
꽤나 낡았고, …예사 종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Richard Moore:(양피지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히 꺼내 펼쳐본다.)
 
종이를 펼치면 '림그니트 호텔'의 주소가 적혀있습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귀퉁이에는 린튼의 성을 단 몇 명의 이름이 동그라미 표시되어 있네요.
 
그리고, <시간을 돌리는 주문>이 적혀 있습니다.
 
Richard Moore:일을 시키려면 좀 정중하게 시킬 것이지. (아니, 처음부터 제게 맡기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이름들을 유심히 보다가 주문이라는 글자에 얼굴을 찌푸린다. 뭐야?)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리처드, SANc (1/1d3)
 
Richard Moore: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3
 
(
1
 
)
 
 
=
1
 
그러고 보니 에바가 뭐라고 했던가요.
 
방아쇠를 당신이 당겨주길 바란다 했던가요.
 
에바의 몸에 나 있던 상처들은……. 설마.
 
Richard Moore:……. (축축해진 입술을 핥으니 비릿한 맛이 난다. 이미 몇 번을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거지……. 이상하다 여기는 만큼 분명 제한이 있을 터다. 그럼 더더욱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양피지를 들고 권총의 상태를 살핀다. 몇 발이나 들어 있을지 모르겠다.)
 
겉보기로는 한 발 이상은 들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Richard Moore:부족해도 어쩔 수 없나. (정말로 이 비극이 끝을 맞이했을지 알 수 없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네 목적이 그들을 없애는 것이라면……. 분명 파티에 온 사람들이 한두 명은 아니었지. 생각만으로도 모든 게 버거워져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을 나선다. 어쩌다 보니 예복에게 미안한 일만 하고 있는 듯해 쓴웃음을 지었다.)
 
리처드는 에바가 구금되어 있는 곳으로 조용히 향합니다.
 
당신이 피해자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관계임을 아는 경찰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면회를 허락합니다.
 
에바는 당신의 기척이 느껴지자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하고서, 창살 너머로 구석진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킵니다.
 
Eva Kadan:....... (네가 있는 쪽으로 바짝 가까이 다가가 눈썹을 늘어뜨린 채, 창살을 사이에 두고 널 올려다본다.) ...... 리처드.
 
Richard Moore:……. (아무런 말도 없이 창살 사이로 손을 뻗는다. 마치 잡아 주기를 바란다는 듯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어떤 말부터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Eva Kadan:(머뭇거리다 살그머니 네 손을 감싸쥐었다. 차마 네 얼굴을 계속 바라보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 가져왔어요?
 
Richard Moore:…… 응. 그전에. (몇 번이나 돌아갔어? 진작 말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 이러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온갖 질문들이 혓바닥 위까지 올라왔다가도 연기처럼 사라진다. 맞잡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처리해야 할 사람이 남아 있어?
 
Eva Kadan:...... 네? (잠깐 당황한 낯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당신이 그 사실을 끝까지 모르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머뭇거릴 뿐이었다. 당신이 이 모든 걸 잊어 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 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 이런 저라도 싫지 않으신가요? 전 살인자인데.......
 
Richard Moore:솔직히 왜 그랬냐고 묻고 싶어. 묻고 싶지만, 넌 나보다 똑똑하잖아. 그렇지? (답을 들으려고 한 질문이 아니었기에 다른 손도 창살 안으로 넣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결국 나 때문이었겠지.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 하나 뿐이다. 말하기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사실을 확인했다.) 네가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군. …… 전부 그 호텔에 있나?
 
Eva Kadan:...... 당신이 본 것들은 전부 사실이란 걸 부정하지 않을게요. 그래도 이야기해 줄 순 없어요. 못 해요.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뜨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아무것도 모르길 바라니까.......
 
Richard Moore:내가 모르길 바라서, 내가 널 죽이게 하겠단 거야? (그것 참. 손을 쥔 쪽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죄를 나누어 지게 해 줘. 적어도 네 곁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니면, 그럴 자격조차 내겐 주어지지 않았어……?
 
Eva Kadan:그런, 그런 게 아니에요....... (필사적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건 그동안 쭉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랬지만.......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에게 나누어 지게 해 달라는 말을 들어도 이제 와서 그럴 수 있을 리 없잖아요....... ...... 총은 어디 있어요? 리처드.
 
Richard Moore:이유가 있다는 건 알아. 네가 이유조차 없이 움직일 만큼 바보였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겠지. 모든 걸 혼자 짊어지고 나면 결국 어떻게 하려고? 이딴 주문이 아무런 제약조차 없을 리 없어. (총은 어디 있느냔 말에도 대답을 않고 창살에 머리를 부딪힌다.) …… 무서워. 네가 나 때문에 발버둥치다가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무섭다고! 더 죽여야 한다면 내가 할 테니까. 그 다음에 너도 죽여 줄 테니까…….
 
Eva Kadan:안 돼요, 리처드. 안 돼요....... (손을 뻗어 네 뺨을 감싼다. 단호하고도 굳은 눈동자로 널 응시하며 고개를 몇 번이고 저었다.) 안 돼요, 리처드....... 부탁이에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네? 이게 마지막이에요....... 저를 죽여 주세요.
 
Richard Moore:싫어……. (죽이고 나면, 웃으면서 마주하게 될까. 차라리 내가 먼 과거에 죽어 버리는 게 나았을까. 생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 그 마지막이 네 마지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약속해.
 
Eva Kadan:리처드....... (네 뺨을 감싸던 손이 힘없이 차츰 떨어져 나간다. 떨어져내린 손은 네 옷깃을 붙잡고 꽉 힘주어 틀어쥘 뿐이었다.) ...... ...... 약속할게요. 이런 일을 당신에게 시켜서 미안해요.......
 
Richard Moore:미안하다고 하지 마. (지금 그보다 의미 없는 말이 있나? 마지막 약속조차 믿지 않았다. 한참 전부터 아무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손을 거둬 권총을 꺼낸 뒤, 장전을 마친다. 다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 뒤돌아서 눈 감아 줄래?
 
Eva Kadan:....... (고개를 숙인 제 얼굴에는 죄책감과 고통, 그리고 조금의 후련함이 섞여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에게, 이런 짓을 하게 만든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얌전히 한 발짝 물러나 널 등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은 이제 너무나 익숙했지만, 떨리는 제 손을 스스로 꼭 붙잡아 멈춘다.) ...... 부탁할게요.
 
Richard Moore:응. …… 고마워. (차마 얼굴을 맞댄 채 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의 용기를 짜낼 여건이 안 된다고, 변명하고 싶었다. 되도록 한 번에, 상처를 가릴 수 있는 곳이 좋겠지. 머리는 싫다. 심장으로 하자. 한쪽 팔을 창살 안으로 넣어 네 떨리는 손을 감싸고 등 위로 총구를 겨눈 뒤,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당신이 꺼낸 권총에 놀란 경찰들이 뛰어와 제압을 시도하려는 순간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탕, 소리와 함께 그대로 총알이 에바의 심장을 관통하고…….
 
암갈색 머리카락이 물결치는 마지막 뒷모습이 보입니다.
 
...... 그리고,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림과 함께 시야가 암전합니다.
 
......
 
정신을 차리면,
 
햇살이 들어오는 방 침대에서 눈을 뜹니다.
 
벌떡 일어난 당신이 달력을 살피면, 정략 결혼에 관한 통보를 듣던 날입니다.
 
결혼식에서부터 한 달 전.
 
정말 시간이 돌아갔습니다. 정말로 다시 과거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에바는 어디 있죠?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간 건가요?
 
Richard Moore:……. (아직 남아 있다고 그랬지. 헤멜 것도 없다. 손에 권총이 있는지 확인했다.)
 
권총은 그대로 있습니다.
 
Richard Moore:(그대로 권총을 챙겨 호텔로 향했다. 희한하게도, 이런 상황 속에서도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있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군. 입맛이 쓰다.)
 
당신이 현관을 나설 때쯤, 사용인 한 명이 당신을 붙듭니다.
 
사용인A: 아, 도련님. 방금 에바 씨가 떠나면서 도련님께 전해달라는 말씀이 있었어요. 혹시 만나지 못 하셨나요? 자신의 방에, 편지가 있다고 그러셨어요.
 
Richard Moore:못 만났다만. 알겠어. (손을 흔들어 물러가게 하고 발길을 틀어 네 방으로 간다.)
 
에바의 방으로 가면 허전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단정하게 깔린 이불과 텅 빈 방 안. 모든 짐이 빠져나간 장소. 에바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Richard Moore: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책상 위에는 편지가, 그리고 책상 아래 서랍 하나가 아주 조금 열려있음을 발견합니다. 채 닫지 못한 흔적입니다.
 
Richard Moore:(편지를 먼저 펼쳐 읽어본다.)
 
편지를 펼치면 간결한 문장이 몇 개 남겨져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마지막 순간.
 
도대체 그 마지막 순간이 뭐길래. 정작 지금 곁에 없는 건 그 본인이면서!
 
그래요. 에바는 당신을 위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었나 봅니다.
 
몇 번이고 죽어가면서도 이 모든 일을 감내해야 할 정도로 당신을 사랑했나 봅니다.
 
그럼 당신은? 당신은 어떤가요.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나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나요?
 
못 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겁니다.
 
적어도 그 사람은 할 수 있으니까. 그거면 되는 이야기 아닐까요.
 
Richard Moore:제정신이 아니야…… (편지를 소중히 접어 겉옷 안주머니에 넣고 서랍을 연다. 이제 뭐가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서랍 내부를 보면 거미가 그려진 노트가 있습니다. 노트를 펼쳐 볼까요?
 
Richard Moore:(표지부터 펼친다. 어쩐지 아직도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
 
[ 아이호트의 일족이 지배한 숙주 명단 ]
 
[ 숙주의 근원지인 린튼 가문원 명단 ]
 
아이호트의 일족? 의문을 갖기도 잠시입니다.
 
이 명단,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나요?
 
Richard Moore: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신문과 에바의 수첩에 적힌 명단의 이름이 연상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거미 그림과 함께 ‘숙주’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아이호트의 일족’이라는 작은 거미 같은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차지하는 내용.
 
그 수를 늘여가려 한 내용. 수를 늘여 마침내 저들의 신을 불러 모시려 한다는 모독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다음 숙주로 점찍힌 이는,
 
당신입니다.
 
SanC (1d2/1d4)
 
Richard Moore:
SAN Roll
기준치: 58/29/11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rolling 1d2
 
(
1
 
)
 
 
=
1
 
그 아래 필기체로 휘갈겨진 한 문장은 에바의 필체입니다.
 
에바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어디론가 사라진 그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Richard Moore:(숙주로 정해졌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후의 일들을 상상하는 게 고통스러워서 머리가 아프다. 멍청한 놈……. 입속말을 중얼거리며 명단이 적힌 페이지를 찢어 들고서 이번에야말로 호텔을 향했다.)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지방의 호텔이었습니다, 분명.
 
지금 쫓아간다면 아주 늦진 않을 테죠.
 
린튼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한 지역의 고급 호텔이었습니다. 기차를 잡아 타고 움직이는 당신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호텔 안쪽으로 발을 디뎌도 당장 에바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Richard Moore:(주머니 속으로 권총을 쥐고서 프론트로 걸어간다. 너무 늦으면 안 되는데.)
 
호텔 직원: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Richard Moore:에바 카단이라는 여자가 왔지? 붉은 기가 도는 갈색 머리에, 안경을 쓴 미인이야. 안내 좀 해 주겠나?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겉옷자락을 펼치고, 그 안으로 총을 꺼내 직원만 볼 수 있게 들이민다.) 알려만 주면 돼. 별 일 없을 거요.
 
함께 대인 기능 판정이 가능합니다.
 
Richard Moore:
위협
기준치: 55/27/11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호텔 직원: 고, 곤란합니다. 몇 호실인지는 개인 정보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그분이 린튼 가 분들을 찾으셨던 건 기억하고 있습니다.......
 
Richard Moore: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한동안 이 호텔은 당신 덕분에 영업이 곤란하겠어. (괜히 화풀이를 하고서 무작정 객실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곧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호텔이 될 테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되는 일이 없군.)
 
무작정 걷고 있다 보면, 룸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던 직원이 다른 직원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호텔 직원B: 린튼 가 사람들이야? 또 룸서비스를 시켰나 보네.
 
호텔 직원C: 901호실 맞지? 린튼 가 사람들 맞나 봐. 얼굴을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지내는지조차 모르는데, 꼬박꼬박 룸서비스는 시킨다니까.
 
Richard Moore:(저 사람이 가기 전에 가는 게 나을까. 901호실이라. 일단 위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든 계단이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발을 딛기 무섭게 탕, 하는 총성이 들립니다.
 
얼어붙어 있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901호실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에바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으니까요.
 
당신과 눈이 마주친 에바는 당황한 듯한 얼굴을 비추다, 이내 서글픈 표정으로 변합니다.
 
총성에 사람들이 몰릴 조짐이 보이자 에바는 즉시 자리를 뜨려 몸을 휙 돌리고는 비상구로 뛰어가 버립니다.
 
Richard Moore:……. (감정을 표현할 수조차 없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네 뒷모습을 쫓아 뛰어간다.)
 
비상구를 통해 사라지는 에바의 뒤를 쫓습니다.
 
Richard Moore:
민첩
기준치: 75/37/15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계단의 중간에서 에바를 붙잡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전보다 더 상처가 늘어나고, 어디서 얻은 건지 모를 반창고까지 붙인 피곤한 얼굴은 더 많은 살인을 지나왔음을 알립니다.
 
Richard Moore:……. (거짓말쟁이네. 아무런 말도 않고 네 몸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Eva Kadan:....... (얌전히 그 품에 안겨서 몸을 축 늘어뜨린다.) ...... 전부 끝났어요, 전부.......
 
Richard Moore:……. (너에게 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망가지면서까지. 천천히 안고 있던 팔을 늘어뜨린다.) 가야 한다면 가도 돼. 난 이거면 충분해.
 
Eva Kadan:...... 이제 마지막이 머지 않았어요....... 리처드. 그러니까....... (슬픈 얼굴을 하고서 널 올려다본다. 슬그머니 네 옷깃을 붙잡았다가도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해 자신 없이 다시 그 손을 놓았다.) ...... 미안해요.
 
Richard Moore:처음부터 아무런 자격이 없던 놈에게 미안하단 말은 사치야. (말을 맺고 무너지는 표정을 숨기려 먼저 돌아선다.) 못 본 걸로 할 테니까, 가.
 
Eva Kadan:리처드....... (네 말 하나하나가 묵직하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것만 같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아내고 허공을 맴돌던 손을 끝내 네게 닿지 못한 채 떨군다.) ...... 저야말로, 이런 많은 죄를 지고도 당신에게 곁에 있어달라고 말했던 건 너무 큰 욕심이었던 거겠죠. ...... 나쁜 꼴만 보게 해서 미안해요....... (체념한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애써 네게서 저도 등을 돌린다.)
 
Richard Moore:……. (이 멍청한 놈은, 왜 끝까지 이기적으로 굴 줄 모르는 건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겨우 다시 입을 연다.) 나 같은 놈한테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말라고 하잖아. 도망치려던 거 아니었어? 내가 곁에 있으면 안 되니까 도망친 게 아니었냐고……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같이 사라지고 싶어……. (그럴 자격이 제게 있을까. 사과받을 자격도, 사랑할 자격도, 하다못해 살아갈 자격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탓할 곳이 없어 주먹을 쥐고 벽을 몇 차례 내리쳤다.)
 
Eva Kadan:....... (그저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네 말을 듣고 있다가도, 벽을 내치는 네 모습을 보고서 급하게 네 쪽으로 뛰어가 말리듯 팔을 붙잡았다.) 리처드! 리처드....... 리처드! ...... 아니에요, 리처드....... 그러지 마요, 네? 리처드. 저는 그냥, 당신을 더 볼 면목이 없어서, 그치만, ...... 편지에 썼던 것처럼 마지막 순간만큼은 당신이 있어 줬으면 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들어 버려서.......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는 제 목소리가 마구 떨린다.) 역시 미안해요.......
 
Richard Moore:면목이 없는 건 나야! (주변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고함을 치고서도 몇 번을 더 주먹질을 해댔다.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더 격해지려는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자 꽉 쥐고 있던 주먹이 덜덜 떨린다. 숨을 쉬어 울음을 삭이며 다시 널 끌어안았다.) 처음부터 도망가자고 하지. 아니, 도망가자고 할 걸 그랬어. 내가 바보였어…….
 
Eva Kadan:리처드, 그만...... 그만해요. (네 몸을 와락 끌어안으며 그 팔에 힘을 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말에 금방이라도 터뜨릴 것 같음 울음을 꾹꾹 눌러담으며 애썼다.) 괴롭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런 말하지 마요. ...... 당신 탓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Richard Moore:왜 혼자 끌어안고 있었어. 왜 혼자 괴로워했어. 왜…… 혼자 아파한 거야……. (혹시 다른 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애달파져 가슴이 아파왔다. 내가 바보처럼 웃고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게 안고 싶어도 으스러질까 느슨히 안고서 네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만 들썩였다.) 더 일찍 사랑한다 말하지 못 해서 미안해. 아프게 해서, 미안해…….
 
Eva Kadan:....... (이어지는 네 말에 결국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린다. 네 품에 안겨 훌쩍이는 소리가 나더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동안 이렇게나 소리내어 울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울음 소리가 섞여들었다.) 싫어요, 그런 말....... 저는 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걸로, 충분히 행복했는걸. 적어도 앞으로 당신이, 흑....... 당신이 살아갔으면 좋겠어. 그것뿐이에요......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Richard Moore:그렇게 많은 시간을 돌리고 돌렸는데도, 거짓말은 하나도 안 늘었네. (충분이라는 건 없다. 인간은 달콤함을 한 번 알게 되면 끝없이 탐하는, 단순한 생물이다. 네가 마음껏 울 수 있도록 천천히 등을 쓸어주었다. 소원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어디에 가면 좋겠어?
 
Eva Kadan:(자꾸만 흘러나오는 눈물을 어떻게든 손등으로 훔쳐내려 노력했다. 어깨를 잘게 떨다가 옷깃을 꼭 틀어쥐고, 네 얼굴을 올려다보며 붉어진 눈시울을 마주했다.) ...... 그러면....... (잠시 뜸을 들이며 코끝을 훌쩍인다. 가장 좋아했던 장소, 가장 애착이 있었던 장소. 짧은 시간을 고민하다가 물기어린 목소리로 덧붙인다.) ...... 정원. 저희 저택의 정원이 좋아요....... 데려가 줄래요?
 
Richard Moore:…… 응, 돌아가자. (마찬가지로 붉어진 눈으로 시선을 마주친다. 네 방에 두고 나온 꽃다발은 이제 없다. 몇 번이고 다시 만들어도 같은 꽃다발이 될 수 없다. 입꼬리를 겨우 밀어올려 웃으며 네 눈가를 훔쳐 주고 안아들었다.) 얼굴은 숨기는 게 좋겠네. 얌전히 있어.
 
Eva Kadan:아, 으응, 네에....... (얌전히 네 목덜미를 끌어안고 고개를 기대어 파묻었다. 이런 와중에도 가슴 언저리는 또 두근거리고 만다. 비스듬히 보이는 네 옆모습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참기로 했다.) ...... 고마워요.
 
Richard Moore:뭘. 너덜너덜한 사람 괴롭히는 취미 없어. (자극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품에 안은 네 몸이 어쩐지 어제의 너보다 가벼운 듯해 입술을 깨문다. 기차역으로 향하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리처드는 에바와 함께 돌아가는 길의 기차에 오릅니다.
 
기차 안, 당신의 곁에서 곤히 잠든 에바는 살인자라고 믿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한 기색처럼 보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투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덜한, 살해를 거듭한 굳은 살이 군데군데 박힌 손이 눈에 들어옵니다.
 
Richard Moore:……. (잠든 네 이마에 입을 맞추고 상처가 가득한 손을 쓰다듬는다. 점차 시야가 흐려져 새어나오는 소리를 막으려 다시금 입술을 깨물었다. 아팠다. 이거보다 몇 배나 아팠을까. 역시 직접 겪지 않고서 알 수 없겠지. 고개를 숙이고 쏟아지는 열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어느 정도 익숙한 길이 보이고, 곧 도착이라는 예감이 들 때쯤 기차 내에서는 신문을 나누어 줍니다.
 
리처드 또한 신문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ichard Moore:(어쩌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옷깃으로 얼굴을 대충 닦고 신문을 받아 펼쳤다.)
 
1면에는 속보로 뜬 린튼 가 살해 사건에 관한 기사가 적힌 상태입니다.
 
그때, 문득 복도 건너편의 누군가가 에바를 힐끔대는 게 느껴집니다.
 
기사 내에 서술된 용의자의 외관과 비슷하다 생각하는 걸까요?
 
Richard Moore:(기사를 다 읽고 나서 시선이 느껴지는 쪽을 노려보다가, 조심조심 겉옷을 벗고 네 몸 위로 덮어 가린다. 검문이 오면 아내라 하는 게 가장 넘어가기 좋겠지.)
 
다행히 그 승객은 당신의 눈치를 살피며 급하게 역에서 내려버립니다.
 
그로부터 몇 분을 더 달렸을까요, 내려야 할 역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Richard Moore:…… 일어나. (겉옷을 살짝 내려 드러난 얼굴에 여기저기 입을 맞추어 깨운다. 잠에서 깨자마자 보기 좋은 얼굴 상태는 아니겠지만, 남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Eva Kadan:...... 아. (그제서야 부스스하게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언제 이렇게 깊이 잠든 거지? 겉옷을 바라보다 뒤늦게 민망함이 몰려와 귀끝이 붉어진 채 괜스레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미, 미안해요. 잠들어 버려서.......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네게 겉옷을 되돌려준다.)
 
Richard Moore:잘 잤으면 됐어. 그건 걸치고 있는 게 좋겠군. 내 말 들어. (별다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눈치를 챌 게 뻔하다. 겉옷을 든 네 손을 다시 슬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택까진 마차로 가는 편이 나을까? 그리 멀진 않지만.
 
Eva Kadan:.(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겉옷을 둘러 걸친다. 네 손끝을 꼭 쥔 채 그 뒤를 따라가며 벌써 어둑해진 창밖을 바라본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자 또 한 번 가슴이 아릿하다.) ...... 네. 그게 좋겠어요.......
 
리처드와 에바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무사히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저택 뒤쪽에 난 정원으로 따라나가면, 에바는 그리운 듯이 자신이 소중히 가꾸던 히스 꽃밭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달빛 아래 꽃무리에 섞인 에바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지쳐 보입니다.
 
꽃무더기 사이에 살그머니 앉는 모습은 일어설 기운조차 없음을 알리는 것 같았습니다.
 
Richard Moore:(다시금 이 그림 속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꽃을 밟지 않도록 천천히 네게 다가가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는다.) …….
 
문득 달빛 아래 비춰지는 에바가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아니, 느껴지는 게 아닙니다. 흐릿합니다.
 
Eva Kadan:...... 리처드....... (점점 흐릿해져가는 제 손끝을 바라보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저는 이제 곧 사라질 거예요.
 
Richard Moore:…… 벌써. (너무 빠르다. 그리고 내가 너보다 이기적이라 다행이다. 사실은, 정말 죽도록 싫었지만.) 사랑해, 에바.
 
Eva Kadan:....... (어느 정도 마지막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태도로 슬금 뺨을 붉히며 웃어 보인다. 힘이 빠지기 시작한 몸을 움직여 네게 가까이 다가가, 품에 살짝 등을 기대어 앉았다.) ...... 있잖아요, 리처드.......
 
Richard Moore:응. (이제 자신이 말하는 시간마저 아깝다. 짧막히 대답하곤 품에 들어온 네 몸을 감싼다. 같이 흐려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va Kadan: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더듬더듬 네 손을 찾아 감싸쥐었다. 씁쓸하지만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말을 잇는다.) ...... 당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꺾어 버린다는 거 말이에요. 아무리 괴롭고 험난해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었어. 힘들지 않았어요. 전혀, 조금도....... 당연히 후회도 없어요.
 
Richard Moore:……. (그렇게 고통스러워했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네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상황이 정반대였다면 저도 그리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후회가 되고 미련이 남는 것이다. 후회를 고백하고 싶지 않다.) …… 널 사랑한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네가 내 인생에 걸어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두 기억할게.
 
Eva Kadan:...... 제가 사라지더라도, 당신은 오랫동안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그 기억으로, 오래오래...... 더 살아 주면 좋겠어. 리처드. (먼 곳을 응시하는 제 눈가는 편안히 올라간 입꼬리와는 반대로 다시금 젖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 이렇게, 열심히 꺾고 온 몸을 거듭 던져 지켜낸 당신의 삶을, ...... 물거품으로 만들지 말아 줘요....... 나를 사랑한다면 언제까지고 날 위해 살아 줘.
 
Richard Moore:바보야, 사람은 뒤를 도는 순간부터 잊어버리기 시작해. (바랄 걸 바라야지. 그렇게 한들 네가 겪은 고통의 반이나 체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반의 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널 사랑하는 나로 남고 싶어. 널 가장 많이 사랑하는 나로…….
 
Eva Kadan:당신이라면 분명, ...... 분명 내가 사라지고 나서도 허튼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이제 모든 게 안전할 거예요....... (서서히 겹쳐잡은 손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또다시 무력하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아, 정말이지....... 헤어지기 싫다, 그렇죠? 이제 겨우 당신과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뻔한 기대를 해 버렸는데....... 욕심 같은 거 내고 싶지 않았는데. ...... 어쩔 수 없었나 봐요.......
 
Richard Moore:…… 응, 싫다. 이대로 전부 멈췄으면 좋겠어. 아주 옛날로 돌아가서, 그래서……. (결국 말을 맺을 수 없었다. 그저 도저히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몸을 몇 번이고 더듬으면서 뺨과 입술에 입을 맞춘다.) 나중에 마중하러 와. 내가 어떤 꼴이어도 원망하지 않기야. 그리고 그 때가 오면, 오면 말이지……. 절대로 떨어지지 말자.
 
Eva Kadan:...... 응. 제 보잘것없는 삶에서 당신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행복했어요....... 제 처음도 마지막도, 당신이라 정말 다행이에요. 이 순간에 네가 내 곁에 있어 줘서 다행이야....... (차츰 목소리가 작아져간다. 마지막으로 네 입술에 덩달아 입을 맞추더니, 네 앞에서 환하게 웃어 보인다.) ...... 다음에는 절대로 떨어지지 마요, 우리. ...... 사랑해요, 리처드. 사랑해요.......
 
수많은 문장들이 스쳐 지나가고,
 
이별의 때가 도래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Richard Moore:사랑해. 에바. 아주 많이, 사랑해. (이렇게 덧없이 사라지는구나. 환하게 웃는 너를 따라 웃는다. 그러나 흘러내리는 눈물은 주체할 수 없었고, 너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 나밖에 없으리라. 천천히 입을 다물고 너라는 세상의 끝을 기다렸다.)
 
그렇습니다. 보내야만 합니다. 그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습니다.
 
이 마지막 순간에, 그저 곁에 당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듯이.......
 
달빛 아래 당신에게 가만히 기댄 에바는 어느 순간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감은 눈꺼풀과 잦아드는 숨. 숨결.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숨결.
 
꽃잎이, 수많은 히스-에리카의 꽃들이 향을 내뿜으며 당신의 주위를 감쌀 때.
 
달빛이 에바의 몸을 둘러쌀 때, 그래서 눈부실 때.
 
이 풍경이 견디기 어려워졌을 때,
 
품안이 가벼워집니다.
 
빛이 허공에서 맴돌고 누군가의 체온이 완벽하게 사라집니다. 허공으로. 공중으로 흩어져…….
 
Richard Moore:미안해.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한참 허공을 만지다 손을 내려 땅을 짚는다. 그대로 꽃밭에 누워 눈을 감았다.) 꼭 다시 만나자…….
 
바람이 불었던가요. 풍경을 메우는 꽃잎이 그저 아름답습니다.
 
그만큼 서글픈 것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아픈 이별이.
 
END 2. 히스클리프
 
에바 소멸, 리처드 생환.
 
리처드 보상 이성치 +1d2